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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0일 금요일
Melodiya / Mikhail Pletnev - Russian Piano School, Vol. 9
미하일 플레트뇨프(제2음절에 악센트가 있는 그의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기 위해서 종종 Pletnyov라고 쓰기도 한다.)는 수많은 러시아의 현대 피아니스트 가운데서도 매우 특이한 존재이다. 그는 명 피아니스트 야코프 플리에르의 문하에서 배웠는데, 플리에르는 파벨 파브스트의 제자인 콘스탄틴 이굼노프의 제자였다. 알렉산더 골덴바이저의 스승이기도 했던 파벨 파브스트는 베토벤의 마지막 제자들 중의 한 사람인 유명한 카를 체르니의 제자인 안톤 도르에게서 배웠다.
이리하여 플레트뇨프의 음악적 계보는 베토벤까지 거의 두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플레트뇨프가 러시아의 주도적인 음악적 전통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명확한 근거로 제시될 수도 있다.
미하일 플레트뇨프는 1957년 백해에 연해 있는 러시아의 주요 항구도시 아르한겔스크에서 태어났다. 이 도시는 노르만들에 의해서 서기 1000년경에 건립된 오래된 수도원이 있는데, 그 이름을 따서 도시의 이름도 지어졌다. 플레트뇨프는 최초의 피아노 교육을 볼가 강의 둑이 있는 도시로 한때 타르타르 왕국의 수도였던 카잔에서 받았고, 13살이 되면서 모스크바 음악원의 예비학교인 에프게니 티마킨의 클래스에 들어갔다.
그리고 1974년에는 모스크바 음악원으로 진학해 야코프 플리에르의 제자가 되었는데, 바로 그전 해인 1973년 파리에서 열린 국제 청소년 음악경연대회에서 그랑프리를 따냈다. 또 1977년에는 전 소련 음악경연대회에서 1등상을, 그리고 그 이듬해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그는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미국, 독일, 일본,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전 세계의 음악 중심지들을 차례차례 방문했고 그때마다 자신의 스승인 야코프 플리에르의 신세를 얼마나 지고 있는지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의 지도 아래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프로그램 전부를 연습했고, 가는 곳마다에서 그의 대리인으로 극히 효과적으로 연주할 수 있었다.”라고 플레트뇨프는 술회하고 있다.
전 세계의 비평가들이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에게도 결코 뒤지지 않는 그의 놀라운 테크닉을 찬미하기 시작했고, 그의 학식(특히 고전에 관한)은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와 비교되었다.
플레트뇨프는 만능 음악가이다. 수년전부터 그는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설립하여 흑자운영을 하고 있고, 이것은 그에게 교향악의 해석에 대한 귀중한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는 또 바이올린 연주에도 탁월한 재능을 지니고 있는데, 그가 건반악기의 대가로 입신하게 된 것은 단지 그가 배운 최초의 악기가 피아노였기 때문일 뿐이다. 미학적인 견지에서 말하자면 플레트뇨프는 전통적인 기질을 가진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스카를라티나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소나타들이나 리스트의 B단조 소나타와 헝가리 광시곡, 슈만의 교향적 연습곡, 쇼팽의 환상 폴로네즈 등을 다른 어떤 레퍼토리보다 좋아한다는 것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는 또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는 특별한 친화성을 가지고 있어 이 대가의 G장조 소나타를 위시하여 12곡의 피아노 소곡으로 이루어진 사계, 또 많은 피아노 소품들과 세 곡의 피아노 협주곡 등을 정기적으로 연주하고 있다. 또 플레트뇨프의 다재다능한 추구 속에는 작곡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특히 발레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 “호두까기 인형” 중의 일부를 피아노곡으로 옮겨 썼으며,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에프게니 오네긴”을 발레음악으로 편곡하기도 했다.
19세기에는 오페라적인 패러프레이즈나 오페레타의 멜로디들이 크게 유행했기 때문에 발레나 오페라로부터 발췌되어 편곡된 오케스트라 조곡들이 원곡을 대신하여 연주되는 일도 흔했는데, 그들 중의 가장 성공적인 몇몇 곡은 연주회장의 프로그램으로 완전히 자리를 굳히게 된다.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조곡도 바로 그런 곡이라 할 수 있다. 이 유명한 오케스트라용 조곡을 다시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플레트뇨프의 7곡의 피아노 편곡판은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여 단조로움을 피하고 극히 피아니스틱한 완성을 이루어 플레트뇨프의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엿보게 해주는데, 무엇보다도 이런 식의 패러프레이즈는 리스트로부터 비롯되는 낭만적 음악 정신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의 연주 또한 탁월한 기교와 선명하고 풍부한 음색이 돋보이는 훌륭한 것으로, 다채롭고 자유로운 음악성이 잘 표출되어 있다.
로디온 콘스탄티노비치 셰드린(Rodion Konstantinovich Shchedrin, 1932~)의 발레 “안나 카레니나”로부터 플레트뇨프가 편곡한 프롤로그와 말 경주는 이런 종류의 리스트 편곡판들을 생각나게 하는 로맨티시즘과 눈부신 화려함이 비르투오소적인 장대한 음악 세계를 이룬다. 연주 또한 최고의 기교와 음악적 윤택함을 들려준다.
프로코피에프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1~43년 사이에 그의 서사적 오페라 “전쟁과 평화”를 작곡하였는데, 여기에 수록된 그의 제7번 피아노 소나타도 바로 그 시기에 작곡된 것이다. 프로코피에프는 스크리아빈 이후로 피아노 소나타를 체계적으로 또 지속해서 다루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최초의 러시아인이다. 그는 신중하게 베토벤과 슈만, 브람스에 의해 확립된 전통을 따랐다. 그는 제5번 소나타의 작곡을 마친 후 로맹 롤랑이 베토벤을 소재로 쓴 소설 “장 크리스토프”를 읽고 감명을 받아 즉시 새로운 세 개의 소나타를 작곡할 욕망에 불탔으나 제7번 소나타를 시작할 무렵에는 소련이 전쟁에 휩쓸려 더 이상 그 일에 집중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1942년에는 코카서스의 티플리스로 거처를 옮겼고, 거기서 다시 영감이 떠올라 며칠 만에 내림B장조 소나타를 완성했다. 이 소나타는 그 이듬해인 1943년 1월 모스크바에서 리흐테르에 의해 초연되었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두 소나타 가운데 첫 번째 내림B장조 K. 570은 그가 죽기 이태전인 1789년에 쓰였는데, 이 음악 장르에서의 그의 생각을 요약하고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그러나 초판은 희한하게도 1796년에 빈의 출판업자 아르타리아에 의해서 바이올린 파트를 포함하여 출판되었기 때문에 그 신빙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중간 부분에 통렬한 C단조 에피소드가 들어있는 부가된 부분은 유창한 내림E장조의 아다지오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작곡가의 후기 양식의 특징인 다성 기법에 대한 강조가 증대되어 생동감 있는 피날레를 이루고 있는 것이 극히 인상적이다.
Track
01 Tchaikovsky/Pletnev Concerto-suite from the ballet 'Nutcracker', Op. 71: 1. Marche / 차이코프스키 발레 모음곡 <호두까기 인형> 중 1곡 <행진> (플레트네프 편곡)
02 Tchaikovsky/Pletnev Concerto-suite from the ballet 'Nutcracker', Op. 71: 2. Danse de la Fee-Dragee / 차이코프스키 발레 모음곡 <호두까기 인형> 중 2곡 <설탕 요정의 춤> (플레트네프 편곡)
03 Tchaikovsky/Pletnev Concerto-suite from the ballet 'Nutcracker', Op. 71: 3. Tarantella / 차이코프스키 발레 모음곡 <호두까기 인형> 중 3곡 <타란텔라> (플레트네프 편곡)
04 Tchaikovsky/Pletnev Concerto-suite from the ballet 'Nutcracker', Op. 71: 4. Intermezzo / 차이코프스키 발레 모음곡 <호두까기 인형> 중 4곡 <인터메조> (플레트네프 편곡)
05 Tchaikovsky/Pletnev Concerto-suite from the ballet 'Nutcracker', Op. 71: 5. Trepak / 차이코프스키 발레 모음곡 <호두까기 인형> 중 5곡 <트레팍> (플레트네프 편곡)
06 Tchaikovsky/Pletnev Concerto-suite from the ballet 'Nutcracker', Op. 71: 6. Danse chinoise / 차이코프스키 발레 모음곡 <호두까기 인형> 중 6곡 <중국의 춤> (플레트네프 편곡)
07 Tchaikovsky/Pletnev Concerto-suite from the ballet 'Nutcracker', Op. 71: 7. Andante maestoso / 차이코프스키 발레 모음곡 <호두까기 인형> 중 7곡 <안단테 마에스토소> (플레트네프 편곡)
08 Shchedrin/Pletnev: Prologue & horse-racing from the ballet 'Anna Karenina' / 셰드린 발레 <안나 카레니나> 중 <프롤로그와 말 경주> (플레트네프 편곡)
09 Prokofiev Sonata No. 7 in Bb, Op. 83: 1. Allegro inquieto / 프로코피에프 소나타 7번
10 Prokofiev Sonata No. 7 in Bb, Op. 83: 2. Andante caloroso
11 Prokofiev Sonata No. 7 in Bb, Op. 83: 3. Precipitato
12 Mozart Sonata in Bb, K. 570: 1. Allegro / 모차르트 소나타 17번
13 Mozart Sonata in Bb, K. 570: 2. Adagio
14 Mozart Sonata in Bb, K. 570: 3. Allegretto
Mikhail Vasilievich Pletnev (born 1957) / 미하일 바실리에비치 플레트뇨프
Mikhail Pletnev (whose name should properly be spelt and pronounced Pletnyov, with the stress on the second syllable) is a special case in that he not only performed the works featured on this CD, but also provided the keyboard arrangements of two Russian ballets with a philosophical background. This is no coincidence, for Pletnev stands firmly in the Beethoven tradition, which accounts for his closeness to the thinking of Tchaikovsky and Tolstoy. His teacher, Yakov Flier (1912-1977), was a pupil of Konstantin Igumnov (1873-1948), who had been trained by Pavel Pabst - just like Goldenweiser, the "maker of Russian pianists". Pabst, for his part, had been a protege of Anton Door, who had studied with Karl Czerny, the last of Beethoven's pupils. So this pianistic line of descent spans almost two centuries.
미하일 플레트뇨프(제2음절에 악센트가 있는 그의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기 위해서 종종 Pletnyov라고 쓰기도 함)는 이 음반에서 연주한 작품들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배경을 가진 두 개의 러시아 발레를 피아노로 편곡했다는 점에서도 특별한 경우이다. 이것은 플레트뇨프가 차이코프스키와 톨스토이의 사고에 대한 그의 친밀감의 이유가 되는 베토벤의 전통에 확고하게 서기 때문에 우연이 아니다. 그의 스승인 야코프 플리에르(1912~1977)는 “러시아 피아니스트 제조기” 골덴바이저처럼 파벨 파브스트의 제자인 콘스탄틴 이굼노프(1873~1948)의 제자였다. 그의 일부인 파브스트는 알렉산더 골덴바이저의 스승이기도 했던 파벨 파브스트는 베토벤의 마지막 제자들 중의 한 사람인 카를 체르니의 제자인 안톤 도르에게서 배웠다. 이리하여 플레트뇨프의 음악적 계보는 베토벤까지 거의 두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Pletnev (born 1957) was born in Archangel, Russia's chief White Sea port, a place founded by Normans around the year 1000 and named after an ancient monastery. He received his first piano lessons in Kazan, a town on the banks of the Volga that had briefly been the capital of a Tartar empire. At the age of 13 he entered Evgeny Timakin's preparatory class for the Moscow Conservatory, where he became a pupil of Yakov Flier in 1974. Having been awarded the Grand Prix at the international Jeunesses musicales competition in Paris the year before, he went on to win gold medals at the All-Union Competition and the Tchaikovsky Competition (with 80 entrants) in 1977 and 1978, respectively. While touring the major centres of the musical world - Italy, Spain, Britain, United States, Germany, Japan, Switzerland, Austria - he never forgot how much he owed to his teacher, Yakov Flier. Here is how he put it himself: "Having rehearsed the entire programme for the Tchaikovsky Competition under his guiding hand, I effectively performed there in his name." Critics worldwide have meanwhile begun to liken his breathtaking virtuosity to that of Vladimir Horowitz, no less, and his readings (especially of the classics) invite comparison with Arturo Benedetti Michelangeli.
플레트뇨프는 1957년 4월 14일 백해에 연해 있는 러시아의 주요 항구도시 아르한겔스크에서 태어났는데, 노르만들에 의해서 서기 1000년경에 건립된 오래된 수도원이 있는데, 그 이름을 따서 도시의 이름도 지어졌다. 그는 한때 타르타르 왕국의 수도로 볼가 강의 둑이 있는 도시 카잔에서 최초의 피아노 교육을 받았다. 13세가 되면서 그는 모스크바 음악원의 예비학교인 에프게니 타마킨의 클래스에 들어갔고, 1974년에는 모스크바 음악원으로 진학해 야코프 플리에르의 제자가 되었다. 바로 그전 해인 1973년 파리에서 열린 국제 청소년 음악경연대회에서 그랑프리를 따냈으며, 1977년 전 소련 음악경연대회와 1978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80명 참가)에서는 각각 우승했다. 그는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미국, 독일, 일본,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전 세계의 음악 중심지들을 차례차례 방문했고 그때마다 자신의 스승인 야코프 플리에르의 신세를 얼마나 지고 있는지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 “나는 그의 지도 아래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프로그램 전부를 연습했고, 가는 곳마다에서 그의 대리인으로 극히 효과적으로 연주할 수 있었다.” 전 세계의 비평가들이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에게도 결코 뒤지지 않는 그의 놀라운 테크닉을 찬미하기 시작했고, (특히 고전에 관한) 그의 학식은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와 비교되었다.
Pletnev is an all-round musician. Some years ago he founded his own orchestra, which" has managed to stay afloat, affording him "a welcome opportunity to interpret symphonic music". He would also like to achieve greater mastery on the violin, having become a keyboard virtuoso only because the piano was the first instrument he learned to play. Aesthetically speaking, he is a tradition-minded artist, showing a preference for the sonatas of Scarlatti, Haydn, Mozart and Beethoven, Liszt's B minor Sonata and Hungarian Rhapsodies, Schumann's Symphonic Etudes, and Chopin's Polonaise-Fantaisie. Pletnev has a special affinity for Tchaikovsky, regularly performing various piano miniatures as well as the G major sonata, the cycle "The Seasons" and all three concertos. Pletnev, whose wide-ranging pursuits include composing, has also displayed a keen interest in ballet, transcribing extracts from "The Nutcracker" for piano (as heard on this CD) and arranging the score of Tchaikovsky's opera "Eugene Onegin" for ballet performances.
플레트뇨프는 만능 음악가이다. 수년전부터 그는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설립하여 흑자운영을 하고 있고, 이것은 그에게 “교향악의 해석에 대한 귀중한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는 또 바이올린 연주에도 탁월한 재능을 지니고 있는데, 그가 건반악기의 대가로 입신하게 된 것은 단지 그가 배운 최초의 악기가 피아노였기 때문일 뿐이다. 미학적인 견지에서 말하자면 플레트뇨프는 전통적인 기질을 가진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스카를라티나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소나타들이나 리스트의 B단조 소나타와 헝가리 광시곡, 슈만의 교향적 연습곡, 쇼팽의 환상 폴로네즈 등을 다른 어떤 레퍼토리보다 좋아한다는 것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는 또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는 특별한 친화성을 가지고 있어 이 대가의 G장조 소나타를 위시하여 12곡의 피아노 소곡으로 이루어진 <사계>, 또 많은 피아노 소품들과 세 곡의 피아노 협주곡 등을 정기적으로 연주하고 있다. 또 플레트뇨프의 다재다능한 추구 속에는 작곡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특히 발레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 <호두까기 인형> 중의 일부를 피아노곡으로 옮겨 썼으며,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에프게니 오네긴>을 발레음악으로 편곡하기도 했다.
The operatic paraphrases and medleys of operetta tunes which enjoyed great popularity during the 19th century were gradually superseded by orchestral suites drawn from ballet scores as the most successful numbers were apt to hold their own in the concert hall. It was Tchaikovsky who set the ball rolling, and there may well be a good many music-lovers who are familiar with the "Nutcracker" suite without ever having seen the ballet itself. "The Nutcracker" was Tchaikovsky's third and final contribution to the medium, described as "symphonic ballet" because the music was no longer confined to the role of providing clues for the dancers, but lent the proceedings on stage a heretofore neglected psychological dimension by echoing the subconscious desires, presentiments and feelings of the protagonists.
19세기에는 오페라적인 패러프레이즈나 오페레타의 멜로디들이 크게 유행했기 때문에 발레나 오페라로부터 발췌되어 편곡된 오케스트라 조곡들이 원곡을 대신하여 연주되는 일도 흔했는데, 그들 중의 가장 성공적인 몇몇 곡은 연주회장의 프로그램으로 완전히 자리를 굳히게 된다. 일을 시작한 사람은 차이코프스키였고, 아마도 발레 자체를 본 적이 없는데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에 익숙한 음악 애호가들이 많을 것이다. <호두까기 인형>은 “교향적 발레”로 표현되는 차이코프스키의 매체에 대한 세 번째이자 마지막 기여였는데, 음악이 더 이상 무용수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는 역할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주역들의 잠재의식적인 욕망, (불길한) 예감, 감정에 의해 모방되는 이전에 무시된 심리적 차원의 무대에서 진행을 빌렸다.
"The Nutcracker" proved eminently suitable for a concert arrangement because the ballet does not have much of a plot. The entire second act is little more than a grandiose divertissement full of sumptuous and scintillating music, which together with the fascination of the "ballet blanc" makes it as delectable as a well-assorted box of chocolates presented at Christmas - the time of year which provides the background to this children's tale. Even though Tchaikovsky derived his material from a story by Ernst Theodor Amadeus Hoffmann called "Nußknacker und Mausekönig" (The Nutcracker and the King of Mice), the French element (in his own ancestry and mentality as well as in the evolution of ballet) proved strong enough to produce a Christmas setting that was German only in name. In his cycle "The Seasons", Tchaikovsky even chose a waltz for his musical portrayal of the month of December.
<호두까기 인형>은 발레가 플롯(줄거리)을 많이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연주회용 편곡에 탁월하게 증명되었다. 전체 2막은 호화롭고 아주 재밌는 음악으로 꽉 찬 거창하기만 한 짤막한 발레에 지나지 않는데, “발레블랑”(길고, 흰 얇은 천의 의상을 입은 소녀들이 수행하는 발레)의 매력과 함께 크리스마스 때 선물되는 여러 종류의 초콜릿 상자를 맛볼 수 있다. - 크리스마스는 일 년 중 이 어린이 동화에 배경을 제공할 때이다. 차이코프스키는 에른스트 테오도르 아마데우스 호프만의 동화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대왕>에서 소재를 얻었지만, (발레의 진화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혈통과 사고방식에서) 프랑스적인 요소는 독일어로만 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출할 만큼 충분히 강했다. 차이코프스키는 <사계> 전곡에서 12월의 음악적인 묘사를 위해 왈츠를 선택하기까지 했다.
Pletnev has taken the arrangement process a step further by adapting the ballet suite for piano. The well-known "March" is presented at a brisk pace with brilliant virtuoso scale passages. The "Dance of the Sugar Plum Fairy" displays the silvery tone of the concert grand in the high treble register (this is the piece which marked the entry of the "divinely beautiful tone" of the celesta into orchestral music). The fiery "Tarantella" is notable for its delicate figurations above sturdy bass figures (often played at the octave). In the sensuous "Intermezzo", the pianist plays the melody in the rich alto register, with both hands adding embroidery in the time-honoured Liszt tradition. A powerful build-up leads to a chordal version of the theme, which is also assigned to the middle register with telling effect. The "Trepak" is a vigorous Russian folk dance with characteristic stamping movements. Pletnev embroiders it with fleet passage-work, generating tremendous momentum with rumbling basses and a breathtaking stretta. An exotic aura surrounds the "Chinese Dance", where the lowest reaches of the keyboard are used as a foil to the crystalline notes of the top register. The closing "Andante maestoso", which recalls the atmosphere of the "Intermezzo", is one of the most accomplished and impassioned "Pas de deux" in the whole ballet repertoire. Denied a permanent relationship with a loving woman, the composer used his music and the stage to give poignant expression to his unquenched and unquenchable longing. This explains why he turned his ballets into timeless fairy-tales about the possibility of achieving happiness. In marked contrast to his operas (which he saw as truthful reflections of life's misery), they allow good to triumph over evil at last - whether this be in "Swan Lake", in "Sleeping Beauty" or even in "The Nutcracker", a work in which toys come to life.
플레트뇨프는 피아노를 위한 발레 모음곡을 정리하여 편곡 과정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잘 알려진 <행진곡>은 화려한 비르투오소 스케일의 패시지들로 활발하게 진행된다. <설탕 요정의 춤>은 고음역에 있는 콘서트그랜드피아노의 은빛 음색을 표시한다. (이것은 오케스트라 음악에 첼레스타의 “성스러운 아름다운 음색” 등장을 표시하는 곡이다.) 불타는 듯한 <타란텔라>는 (종종 옥타브로 연주되는) 튼튼한 베이스 연주 위의 섬세한 피규레이션(비유적 표현이나 상징적인 음악)으로 유명하다. 오감을 만족시키는 <인터메조>에서 피아니스트는 풍부한 알토 성부에서 멜로디를 연주하는데, 양손으로 리스트로부터 비롯되는 낭만적 음악 정신의 산물을 추가한다. 강력한 전개는 주제의 화음 버전을 이끄는데, 매우 효과적으로 알토 성부에도 주어진다. <트레팍>은 특유의 발 구르는 동작들이 있는 러시아의 민속춤이다. 플레트뇨프는 따르르 구르는 베이스와 숨이 멎는 듯한 스트레타(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빠른 템포로 연주되는 악곡의 종결부)로 엄청난 가속도를 만들어내면서 빠른 패시지워크(작품의 주제와 관계없이 화려하고 장식적인 부차적 부분)로 이 곡을 수놓는다. 이국적인 분위기는 <중국의 춤>을 둘러싸는데, 건반의 가장 낮은 음들은 윗성부의 수정같이 맑은 음들을 돋보이게 하는 데에 사용된다. 곡을 끝내는 <안단테 마에스토소>(느리고 장엄하게)는 <인터메조>의 분위기를 상기시키는데, 발레의 모든 레퍼토리에서 가장 출중하고 열정적인 <파드되>(발레에서 두 사람이 추는 춤으로, 고전 발레에서는 주역 발레리나와 그 상대역이 추는 춤) 중의 하나이다. 사랑하는 여성과 영원한 관계를 맺지 못한 작곡가는 그의 음악과 무대를 사용하여 가셔지지 않고 채울 수 없는 갈망을 감동적으로 표현했다. 이것은 그가 발레를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영원한 동화로 바꾼 이유를 설명한다. (그가 인생의 불행에 대한 진실한 반영으로 보았던) 그의 오페라와는 크게 달라서, 발레는 마침내 악에 대한 승리를 선사한다. - 이것이 <백조의 호수>든지 <잠자는 숲속의 미녀>든지 심지어는 장난감이 살아 움직이는 <호두까기 인형>이든지 간에.
Tchaikovsky/Pletnev Concerto-suite from the ballet 'Nutcracker', Op. 71: 1. Marche / 차이코프스키 발레 모음곡 <호두까기 인형> 중 1곡 <행진곡>
Tchaikovsky/Pletnev Concerto-suite from the ballet 'Nutcracker', Op. 71: 2. Danse de la Fee-Dragee / 차이코프스키 발레 모음곡 <호두까기 인형> 중 2곡 <설탕 요정의 춤>의 고음역
Tchaikovsky/Pletnev Concerto-suite from the ballet 'Nutcracker', Op. 71: 3. Tarantella / 차이코프스키 발레 모음곡 <호두까기 인형> 중 3곡 <타란텔라>의 옥타브로 연주되는 피규레이션
Tchaikovsky/Pletnev Concerto-suite from the ballet 'Nutcracker', Op. 71: 4. Intermezzo / 차이코프스키 발레 모음곡 <호두까기 인형> 중 4곡 <인터메조>의 알토 성부에서 연주되는 멜로디
Tchaikovsky/Pletnev Concerto-suite from the ballet 'Nutcracker', Op. 71: 5. Trepak / 차이코프스키 발레 모음곡 <호두까기 인형> 중 5곡 <트레팍>(러시아의 춤)에서 발 구르는 동작
Tchaikovsky/Pletnev Concerto-suite from the ballet 'Nutcracker', Op. 71: 6. Danse chinoise / 차이코프스키 발레 모음곡 <호두까기 인형> 중 6곡 <중국의 춤>
Tchaikovsky/Pletnev Concerto-suite from the ballet 'Nutcracker', Op. 71: 7. Andante maestoso / 차이코프스키 발레 모음곡 <호두까기 인형> 중 7곡 <안단테 마에스토소>
Tchaikovsky's compositions may be seen as the musical equivalent of the contributions which three eminent authors made to 19th-century Russian literature: Pushkin, Turgenyev and Tolstoy. Pushkin provided the material for his highly successful operas "Eugene Onegin" and "The Queen of Spades". The composer shared Turgenyev's predilection for all things French, laying himself open to charges of "Westernism" by radical Russian nationalists. Like Tolstoy, the creator of the three "fate" symphonies addressed the eternal questions of freedom, self-determination, implacable fate and guilt. For Tchaikovsky it was gratifying to know that on one occasion - he was then still a student at the Conservatory - he had moved Tolstoy to tears with his music, the slow movement of the D major String Quartet.
차이코프스키의 작품들은 푸시킨,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같은 저명한 작가 3명이 만든 19세기 러시아 문학과 맞먹는 음악에 대한 기여로 볼 수 있다. 푸시킨은 차이코프스키의 성공적인 오페라 <에프게니 오네긴>과 <스페이드의 여왕>에 대한 소재를 제공했다. 작곡가는 투르게네프의 모든 것을 프랑스어로 쓰는 것을 공유했는데, 러시아의 급진적인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서양 기술[전통]의 신봉”에 대한 죄로 자신을 공개했다. 톨스토이처럼, 세 가지 “운명” 교향곡의 창시자는 자유, 민족 자결권, 무분별한 운명과 죄에 대한 영원한 문제들을 다루었다. 차이코프스키에게 그것은 일찍이 알게 되어서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 그가 여전히 음악원에서 재학했을 때 - 톨스토이는 차이코프스키의 현악 4중주 1번의 느린 2악장을 들었을 때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Tchaikovsky String Quartet No. 1 in D, Op. 11: II. Andante cantabile / 차이코프스키 스트링 콰르텟 1번 2악장에 나오는 러시아 민요에 의한 제1주제
While Tolstoy was working on the manuscript of "Anna Karenina" in 1873, his wife Sofia noted that he was writing a novel about an "unfaithful woman and the ensuing drama". The heroine commits suicide, but the passionate love which has impelled her to flout convention - even at the price of being deprived of her child - proves stronger than all else. Unable to conceal her feelings any longer, she publicly confesses to adultery during a horse race. A story like this virtually cries out for musical treatment.
1873년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의 초고를 집필하는 동안, 그의 아내 소피아는 그가 “불륜에 빠진 여인과 그 이후의 드라마”에 관한 소설을 쓰고 있다고 언급했다. 여주인공은 자살하지만 관습을 무시할 정도로 그녀를 부추겼던 열렬한 사랑은 - 그녀의 아이를 뺏기는 대가로 - 다른 모든 것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녀의 감정을 더 이상 숨길 수 없기 때문에 그녀는 경마 중에 간통죄에 대해 공개적으로 고백한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사실상 음악 치료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Rodion Konstantinovich Shchedrin, born in 1932, was first trained in choral singing. As a boy he attended the Choir School of his native Moscow for seven years. In 1950 he entered the local Conservatory to study composition with Yuri A. Shaporin (a pupil of Nikolai Sokolov, the St Petersburg composer associated with the circle led by Rimsky-Korsakov and the impresario and benefactor Mitrofan Belyayev) and piano with Yakov Flier (like the pianist featured on this CD). He owes his popularity to three stage works: the ballet "The Little Hump-backed Horse", the opera "Not Love Alone" (1961) and "Anna Karenina", a ballet based on Tolstoy's famous novel. Its highly successful premiere took place in 1968 with Maya Plissetskaya, the composer's wife, performing the title role.
로디온 콘스탄티노비치 셰드린은 1932년에 태어난 작곡가로 처음에는 합창단에서 노래했다. 소년 시절에 그는 7년간 고향 모스크바의 합창단 학교에 다녔다. 1950년에 그는 지역 음악원에 입학하여 유리 샤포린(니콜라이 소콜로프의 제자로 림스키코르사코프, 단장이자 후원자 미트로판 벨랴예프가 이끄는 동아리와 관련된 상트페테르부르크 작곡가)에게서 작곡, (이 음반에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플레트뇨프처럼) 야코프 플리에르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다. 그는 3개의 무대 작품들 덕분에 인기가 있다. - 발레 <곱사등이 망아지>, 오페라 <사랑만으로는>, 톨스토이의 유명한 소설을 토대로 한 발레 <안나 카레니나>. 1968년에 작곡가의 아내이자 발레리나였던 마야 플리세츠카야가 주인공 안나 카레니나를 연기하면서 매우 성공적인 초연을 거두었다.
In the "Prologue", a brooding atmosphere gradually evolves into outright tragedy, but this mood is ultimately relieved by tenderness. As in Tolstoy's book, love prevails, if only in death after successive blows of fate. In the "Horse Race", the underlying hectic rhythm is built up to a nightmarish frenzy, which inevitably leads to self-destruction.
<프롤로그>에서 우울한 분위기는 점차 전적인 비극으로 발전하지만, 이 분위기는 부드러움에 의해 궁극적으로 해소된다. 톨스토이의 책에서와 마찬가지로, 운명의 연속적 타격 후에 죽음에서만이라면 좋을 텐데, 사랑은 승리한다. <말 경주>에서 기본적으로 빡빡한 리듬은 악몽 같은 광란에 이르게 되어, 필연적으로 자기 파괴로 이어진다.
Before Shchedrin, another great Russian had turned his attention to Tolstoy: Sergei Prokofiev in his epic opera "War and Peace" (1941-43). His Piano Sonata No.7 dates from that period. After Scriabin, Prokofiev was the first Russian composer of world renown to deal systematically and continuously with the piano sonata (contributing eight works to the medium compared to Scriabin's ten). He deliberately followed the great tradition forged by Beethoven, Brahms and Schumann. It was Romain Rolland's novel about Beethoven, "Jean Christophe", which prompted him to tackle a set of three new sonatas after he had finished No, 5. But when he began work on No.7, he found it impossible to concentrate on the task at hand for the obvious reason that the Soviet Union was at war. Evacuated to Tiflis in the Caucasus in 1942, he was touched by inspiration again, writing down the B flat major sonata in a matter of days. The work was premiered by Sviatoslav Richter in Moscow the following January. The Allegro inquieto, with its uneasy 6/8 time, is marked by an acerbic style reminiscent of his radical early sonatas. The two-part main theme is made up of dashing quavers and spiky thirds over fiercely dissonant, stamping basses. Savagery takes over in the development, which features one of the wildest passages in all Prokofiev's piano music. The slow waltz of the more relaxed Andante caloroso, heard in the rich middle register of the piano, recalls the tonal idiom of the (countless) juvenilia from which the composer had quoted repeatedly in his previous sonatas. But every peace is fragile. The idyllic mood is shattered by the Precipitato finale with its highly unusual 7/8 rhythm, which creates a halting sense of congestion (while the accentuation remains symmetrical throughout: 2 + 3 + 2). The opening movement was aggressive enough, but the music of the grandiose finale is downright infernal, recalling Scriabin's "Black Mass" sonata in its eerie evocation of the powers of darkness.
셰드린 이전에, 또 다른 위대한 러시아 작곡가가 톨스토이에게 관심을 돌렸다. - 프로코피에프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1~43년 사이에 그의 서사적 오페라 <전쟁과 평화>를 작곡하였다. 그의 제7번 피아노 소나타는 바로 그 시기에 작곡된 것이다. 프로코피에프는 스크리아빈 이후로 (스크리아빈의 10개 소나타에 비교된 매체에 대한 8개 작품에 기여하는) 피아노 소나타를 체계적으로 또 지속해서 다루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최초의 러시아인이다. 그는 신중하게 베토벤과 슈만, 브람스에 의해 확립된 전통을 따랐다. 그는 제5번 소나타의 작곡을 마친 후 로맹 롤랑이 베토벤을 소재로 쓴 소설 <장 크리스토프>를 읽고 감명을 받아 즉시 새로운 세 개의 소나타를 작곡할 욕망에 불탔다. 그러나 제7번 소나타를 시작할 무렵에는 소련이 전쟁에 휩쓸려 더 이상 그 일에 집중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1942년에는 코카서스의 티플리스(트빌리시)로 거처를 옮겼고, 거기서 다시 영감이 떠올라 며칠 만에 내림B장조 소나타를 완성했다. 이 소나타는 그 이듬해인 1943년 1월 모스크바에서 리흐테르에 의해 초연되었다. 1악장 알레그로 인퀴에토(불안한 알레그로)는 불안한 6/8박자로, 그의 급진적인 초기 소나타들을 연상케 하는 신랄한 스타일이 특징이다. 두 부분으로 된 메인 테마는 힘찬 8분음표들, 베이스음들을 쿵쾅거리는 사나운 불협화음 위에 있는 뾰족뾰족한 3도 화음으로 구성된다. 야만성은 프로코피에프의 모든 피아노 음악에서 가장 거친 패시지들 중의 하나를 연주하는 발전부로 이어진다. 보다 느긋한 2악장 안단테 칼로로소(느리고 정열적으로)의 느린 왈츠는 피아노(여리게)의 풍부한 중간 성부에서 들리는데, 작곡가가 그의 이전 소나타들에서 인용했던 (수많은) 젊은 시절 작품의 음색의 작풍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모든 평화는 불안정하다. 2악장의 목가적인 분위기는 매우 특이한 7/8박자를 가진 3악장 프레치피타토 피날레(성급한 피날레)에 의해 산산조각나면서 (악센트가 “2 + 3 + 2”로 대칭을 유지하는 동안) 혼잡함이 자꾸 중단되는 느낌을 만든다. 1악장은 충분히 공격적이었지만, 당당한 피날레(3악장)의 음악은 으스스한 어둠의 세력을 불러내는 스크리아빈 소나타 9번 <흑미사>를 연상시키는 완전한 지옥이다.
Prokofiev Sonata No. 7 in Bb, Op. 83: I. Allegro inquieto (dashing quavers) / 프로코피에프 소나타 7번 1악장에 나오는 힘찬 8분음표들
Prokofiev Sonata No. 7 in Bb, Op. 83: I. Allegro inquieto (spiky thirds over fiercely dissonant, stamping basses) / 프로코피에프 소나타 7번 1악장에 나오는 베이스음들을 쿵쾅거리는 사나운 불협화음(파란 네모) 위에 있는 뾰족뾰족한 3도 화음(빨간 네모)
Prokofiev Sonata No. 7 in Bb, Op. 83: II. Andante caloroso / 프로코피에프 소나타 2악장의 풍부한 중간 성부
Prokofiev Sonata No. 7 in Bb, Op. 83: III. Precipitato / 매우 특이한 7/8박자로 시작하는 프로코피에프 소나타 3악장 (악센트는 1, 3, 6박에 붙는다. 여기에서 7박을 셀 때에는 2+3+2로 나눠서 센다.)
Mozart's penultimate Sonata in B flat major, K. 570, written in 1789, two years before his death, epitomizes his concept of this musical form. Curiously enough, the first edition, published in 1796 by the Viennese publisher Artaria, included a violin part, which is however of doubtful authenticity. The additional part may have been inspired by the flowing E flat major Adagio, which contains a poignant C minor episode in its middle section. The increased emphasis on polyphonic writing typical of the composer's "late" period (during which he studied Bach intensively) leaves its imprint on the lively finale.
모차르트의 마지막 두 소나타 가운데 첫 번째 내림B장조 K. 570은 그가 죽기 이태전인 1789년에 쓰였는데, 이 음악 장르에서의 그의 생각을 요약하고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그러나 초판은 희한하게도 1796년에 빈의 출판업자 아르타리아에 의해서 바이올린 파트를 포함하여 출판되었기 때문에 그 신빙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부가된 부분은 중간 부분에 통렬한 C단조 에피소드가 들어있는 유창한 내림E장조의 2악장 아다지오(느리게)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작곡가의 후기(그가 바흐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동안) 양식의 특징인 다성 기법에 대한 강조가 증대되어 생동감 있는 피날레(3악장)를 이루고 있는 것이 극히 인상적이다.
Mozart Sonata in Bb, K. 570: II. Adagio / 모차르트 소나타 17번 2악장 중간부의 통렬한 에피소드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대왕 - 에른스트 테오도르 아마데우스 호프만의 동화
어느 날 슈탈바움(Stahlbaum) 가문에 7세 소녀 마리(Marie), 8세 소년 프리츠(Fritz)가 살고 있었다. 마리는 크리스마스이브에 기술자인 드로셀마이어(Drosselmeyer)로부터 호두까기 인형을 선물로 받았지만 마리의 오빠인 프리츠는 호두까기 인형을 망가뜨리고 만다. 마리는 부서진 호두까기 인형에 붕대를 감고 침대에 놓았을 정도로 호두까기 인형을 돌봐준다.
그러던 중에 시계 종소리가 울리면서 갑자기 생쥐 떼가 등장했고 호두까기 인형과 장난감들은 생쥐 떼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게 된다. 드로셀마이어는 마리에게 호두까기 인형에 관한 전설을 들려주게 된다. 옛날 어느 왕국에 사는 공주가 생쥐의 저주를 받아 흉측한 모습의 얼굴을 갖게 되었는데 청년이 호두를 깨물어 공주에게 건네주면서 공주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렇지만 생쥐 대왕은 청년을 못 생긴 호두까기 인형으로 만들었고 진심어린 사랑을 받아야 저주에서 풀릴 수 있다고 명령하게 된다.
얼마 뒤 호두까기 인형은 마리가 준 칼로 7개의 머리가 달린 생쥐 대왕을 물리쳤고 마리를 인형의 나라로 초대하게 된다. 다음날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 마리는 인형의 나라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드로셀마이어는 마리의 사랑이 자신의 저주를 풀어주었다고 이야기했으며 자신의 정체는 호두까기 인형의 모습을 했던 인형 나라의 왕자였음을 밝히게 된다.
안나 카레니나 -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주된 무대는 1870년대의 러시아이다.
정부 고관 카레닌의 아내인 미모의 안나는 오빠인 스테판 부부의 다툼을 중재하기 위해서 모스크바에 왔다가 젊은 귀족인 장교 브론스키 백작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지방의 순박한 지주 레빈은 스테판의 부인 돌리의 여동생 키티에게 구혼하지만, 브론스키와의 결혼을 기대하는 키티에게 거절당한다. 실의에 빠진 레빈은 영지로 돌아와, 농지 경영 개선에 열심히 힘쓴다. 그런데 브론스키는 안나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키티는 병이 들어 버린다.
안나는 남편과 어린 외아들이 기다리는 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지만, 브론스키는 안나를 쫓아간다.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히 깊어지지만, 그것을 안 카레닌은 세간에 대한 체면 때문에 이혼에 응하지 않는다.
안나는 브론스키의 아이를 출산한 후, 사경을 헤매게 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카레닌은 동정심과 관대한 태도로 안나를 용서한다. 그 관대함에 놀란 브론스키는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하지만 미수에 그친다. 그 후 브론스키는 은퇴하고, 건강을 회복한 안나를 따라 외국으로 떠난다.
귀국한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허락되지 않은 사랑 때문에 사교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브론스키의 영지에 머무르게 된다. 안나의 이혼은 카레닌의 반대와 외아들을 빼앗길 것이라는 안나의 우려 등으로 인해 좀처럼 진행되지 않는다. 자신의 처지에 불만인 안나는 시골에서 농장경영에 열중하면서 소일거리를 찾는 브론스키와 점차 다투는 횟수가 늘어나고, 안나는 브론스키의 애정이 다른 여성으로 가버린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까지 하게 된다. 마침내 절망한 안나는 열차에 몸을 던진다. 사는 목적을 잃은 브론스키는 사비를 투자해 의용군을 편성하고 터키와의 전쟁터를 향해 간다.
레빈은 병이 치유된 키티와 결혼해 영지의 농촌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형의 죽음을 계기로 생기게 된 인생의 의의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레빈은 키티와 아이도 얻고 행복한 가정을 이끌면서 사람은 타인이나 신을 위해서 살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곱사등이 망아지 - 표트르 에르쇼프의 동화
1834년에 출간된 러시아 최초의 장편 시 동화이며 러시아 아동문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시 동화란 처음부터 끝까지 각 연의 운율과 리듬을 철저하게 맞춘 시로 된 이야기다. 환상, 모험, 고난, 극복 등 옛이야기에 필수적인 요소와 더불어 표트르 에르쇼프는 구어체와 방언을 사용해 생동감 있게 작품을 표현했다. 시인이기도 한 에르쇼프가 페테르부르크 대학 재학 시절에 집필한 작품으로 그해 단행본으로 출판되어 많은 인기를 누렸다. 이반이 자신의 욕망을 통제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으나 모든 것을 극복하고 새로운 인간으로 재탄생하는 것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에르쇼프의 가장 대표적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곱사등이 망아지≫는 러시아 최초의 장편 시 동화다. 시인으로 활동했던 작가의 시적 재능이 드러난 작품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각 연의 운율과 리듬을 철저하게 맞춘 시 작품이다. 환상, 모험, 고난, 극복 등 옛이야기에 필수적인 요소와 더불어 작가는 구어체와 방언을 사용해 생동감 있게 작품을 표현했다.
<곱사등이 망아지>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삼형제 중 막내이자 바보 같은 주인공 이반이 어떻게 수말 두 마리와 곱사등이 망아지를 얻게 되고, 어떻게 황제의 마구간지기가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2부에서는 황궁에서 일하게 된 이반이 길가에서 주운 불새의 황금 깃털 때문에 황제가 제시하는 어려운 과제를 푸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곱사등이 망아지의 도움으로 무사히 불새를 잡아 오고, 아름다운 공주까지 황궁으로 데려오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3부에서도 황제는 이반에게 어려운 과제를 부과하고, 그를 죽음으로까지 내몬다. 그러나 곱사등이 망아지의 도움으로 우리의 주인공 이반은 문제를 해결한다. 마침내 아름다운 공주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게 된다는 이야기로 작품이 마무리된다.
어느 러시아 시골에 살고 있는 삼형제 중 막내인 이반은 어리숙하지만 마음만은 착한 청년으로 바보 멍청이로 놀림 받는 신세다. 이반은 마법을 가진 곱사등이 망아지와 함께 황금 갈기의 흑마를 몰고 와 시장에 팔고, 왕으로부터 불새의 깃털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받아 불새의 깃털을 가져오기도 한다. 어느 날 왕은 이반에게 궁전 벽화에 새겨진 공주를 데려오라고 명하고 이반은 망아지와 함께 공주를 궁전으로 데려온다. 공주와 결혼하려는 왕은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이반으로 하여금 여러 과제를 수행하게 한다. 하지만 공주는 이반을 택하고 이에 질투가 난 왕은 이반에게 펄펄 끊는 항아리 속에 들어갈 것을 명한다. 이반은 망설임 없이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고 곱사등이 망아지의 마법으로 멋진 젊은이로 변신한다. 멍청하고 어리석다고 놀림 받던 이반은 공주와 결혼하고 행복하게 산다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전쟁과 평화 -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1805년 나폴레옹 전쟁 당시 안드레이 볼콘스키와 니콜라이 로스토프는 러시아를 위해 전쟁에 참가했지만 아우스터리츠에서 러시아군은 크게 패하고 만다. 한편 안드레이의 친구 피에르는 외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자기 아버지인 베주호프 백작의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는다. 아우스터리츠 전투에 참가한 안드레이는 부상을 입고 인사불성에서 깨어난다. 곧 나폴레옹의 목소리를 듣고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그는 눈에 비치는 끝없는 가을 하늘에서 영웅적 행위의 덧없음을 깨닫고 귀향하지만, 아내를 산후병으로 잃게 된다. 한편 나폴레옹의 찬미자인 전도양양한 피에르는 부정한 아내 옐레나와의 결혼 생활에 좌절하여, 결투 사건 뒤 프리메이슨 교리에 끌리기도 하고 영지농민 해방 사업에도 참여해 보았으나 인생에 대한 회의는 더욱 심해진다. 이러한 역경 속에서 인생에 대한 불신에 빠지는 두 주인공에게 다시 생활의 활력을 불어넣는 사람이 로스토프가의 나타샤이다.
그녀는 태양과 같은 광원으로서 이야기에 등장하여 다양하고 비약적인 힘을 구사해 삶의 순간에 무한한 의미를 부여한다. 이른 봄 여행 도중 로스토프 가에서 하룻밤을 묵던 안드레이는 그날 밤 계단 아래에서 들려오는 나타샤의 노래 소리에 매혹되고, 이튿날 아침 뜰에서 멀리 달려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엿보고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삶의 약동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생활의 의미를 완전히 잃었던 안드레이는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안드레이는 반대하는 아버지의 조건인 일 년 후 결혼을 나타샤에게 약속하지만 그 동안 나타샤는 바실리 공작의 파렴치한 아들 - 이미 기혼자로써 결혼을 속인 바람둥이 - 아나톨리의 유혹에 빠져 그와 도망가려다가 실패하고 약혼이 깨진다.
그 후 나폴레옹은 러시아를 침공하고 안드레이는 다시 전쟁에 참가해 싸우다가 끝내 큰 부상을 입고 나타샤의 간호 속에서 생을 마감한다. 한편 피에르는 전쟁포로로 나폴레옹 군에 붙잡혀 고생하게 되는데 그동안 삶에 대한 개혁적 긍정주의의 면모를 갖게 된다. 그 후 피에르는 포로로 끌려가다가 구출된 후 다시 만난 나타샤와 결혼한다. 한편 안드레이의 여동생인 마리아 볼콘스카야는 가난해서 몰락의 지경에 있는 니콜라이 로스토프 백작을 사랑하게 되어 결혼한다.
플레트뇨프는 철자를 그대로 읽으면 플레트네프라고도 한다.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를 창단하여 지휘자로도 활동한다. <호두까기 인형> 발레에서는 마리가 클라라로 나온다. 옛날에 읽었던 동화책에서도 클라라로 나온다. <전쟁과 평화> 줄거리는 나무위키에서 찾았는데 나타샤란 이름이 러시아 여성 이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나오는 그 나타샤가 이 소설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전에 무한도전에서 노홍철이 러시아에서 시집온 며느리 역할로 나오는 설정에서 이름을 나타샤로 썼는데... 전쟁과 평화는 중3 때인가 책으로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책에 영화 속 장면들이 있었는데 나타샤 역할이 오드리 헵번. 나무위키에서 보니깐 그 영화 망했다고... 이후에 드라마나 영화로 몇 번 제작되었다. 부정적이었던 안드레이는 죽지만 긍정적인 피에르는 나타샤와 결혼해서 자식 넷 낳고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 플레트네프에 대해서 전에 프로필을 썼지만 생년월일 말고는 보태서 쓴 정보가 없다. 모차르트에 대한 설명은 한글과 영어가 다른데 내가 보기에는 한글이 잘못되었다. 영어에서 마지막 단락을 해석할 것 없이 한글 정보를 그냥 가져다 썼더니 악보 발췌가 잘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어를 해석해보니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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