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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6일 일요일
DVD / Alfred Brendel Plays & Introduces Schubert's Late Piano Works 4-5
https://www.youtube.com/watch?v=T0ymoKeYV3Q
DVD 4
<소나타 19번 c단조>에 이르러 우리는 피아노 작곡가로서 슈베르트가 성취한 위업의 절정을 이루는 동시에 그가 서른한 살의 나이로 죽기 직전의 몇 주로 되돌아가게 하는 소나타 삼부작에 도달하게 된다. 진정한 위대성의 영역에 속하는 이들 세 소나타는 서로 너무나도 판이하다. <소나타 19번 c단조>는 셋 가운데 가장 짧고 간결하면서 단연 극적이다. 또한 이 곡은 슈베르트가 쓴 것 가운데 가장 어두운 부류에 속하는, 무시무시한 비극적 힘을 지닌 작품이기도 하다. 이 비극은 곡 전반에 걸쳐 있는 폭풍 속에서 몇 번이고 등장하는, 외견상의 휴식에 불과한 부드러우면서도 신랄한 순간에 의해 완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증폭된다. 이 곡에서 투쟁은 베토벤의 <소나타 c단조>에서만큼이나 처절한 양상을 띠면서도, 베토벤의 의도가 승리 혹은 초월로 끝마치려는 것임에 반해 여기서는 운명의 손길이 슈베르트의 편에 있지 않으며 따라서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타란텔라 풍의 4악장 피날레는 죽음의 무도를 연상케 하며, 종결부 화음은 관에 가하는 마지막 못질과도 같다. 그러나 이는 그저 하나의 극이 끝난 것에 불과하다. 작곡가 슈베르트는 이후로도 두 개의 소나타와 위대한 <현악5중주 C장조>에서 건재함을 과시하게 된다.
비록 슈베르트의 소나타는 19세기의 대부분에 걸쳐 어둠 속에 묻혀 있었으나(최후의 세 편은 작곡가가 죽은 지 11년 뒤인 1839년까지도 출판되지 않았다.), 더 짧은 소품 혹은 적어도 즉흥곡이나 6개의 <악흥의 순간> 등 연작으로 묶여 출판된 소품은 상당한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악흥의 순간>은 실제로는 연작으로 작곡된 것이 아니라 1823년에서 1828년에 걸쳐 띄엄띄엄 작곡되었다. 그러나 조성(과 성격) 구성에서 미루어 보면, 이들은 한 묶음으로 했을 때 더 효과적이라는 계산으로 묶인 것이다. “1번”은 일종의 목가로 오스트리아의 전통적인 요들이며, “2번”은 고민에 찬 폭발을 수반하는 매우 통렬한 고백이다. “3번”은 <로자문데>를 회고하는 간결한 곡으로, 어쩌면 슈베르트가 쓴 모든 피아노 소품 가운데 가장 친숙하게 들릴 수도 있다. 강력한 추진력과 대위법적인 경향을 보여주는 “4번”은 바흐에 대한 슈베르트의 사랑을 반영하며, “5번”은 두터운 구름 사이로 여기저기서 번개가 번뜩이는 폭풍우처럼 휘몰아친다. 마지막 “6번”은 일종의 무언가이자 부드러우면서도 대단히 사무치는 느낌을 주는 춤곡이다. 유토피아적이지도 않고 천국적인 느낌도 없으나, 그럼에도 이 곡은 듣는 이에게 천상의 평화 같은 느낌을 안겨준다.
<피아노 소품 D. 946>은 아마도 1828년에 전곡이 작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 곡은 슈베르트가 쓴 것 가운데서도 매우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매혹적인 악상을 담고 있음에도 작곡가의 위대한 작품 가운데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실제로 이 곡은 1868년에 브람스가 편집할 때까지 출판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었다. 비록 세 곡만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이 작품은 대단히 다양한 분위기를 보여주며 슈베르트의 피아노곡 가운데 가장 황홀한 한 순간을 제공한다.
Sonata in C minor, D. 958 / 소나타 19번
I. Allegro
II. Adagio
III. Menuetto & Trio
IV. Allegro
The sonatas in C minor, A major, and B flat major were written in September 1828, only weeks before Schubert's death. That we should regard these three works as a single entity is clear from the autograph, which describes them as Schubert's first, second and third sonatas. Schubert planned to dedicate them to Johann Nepomuk Hummel, the leading piano player of the period, but nothing came of this plan. It was not until ten years later that these works were published by Diabelli, who dedicated them to Robert Schumann, as Hummel had died the previous year. In the event Schumann reacted far les enthusiastically to these sonatas than to the earlier ones in G major, A minor Op. 42 and D major. He claimed these final sonatas were much more simplistic in their invention and that certain universal musical ideas were spun out at inordinate length where Schubert normally added new threads from phrase to phrase. We could agree with Schumann if he meant that these final sonatas reveal a greater concentration of the musical material and of the building bricks and motifs, in short, if simplicity were to be interpreted as unity. But Schumann also speaks of a voluntary abandonment of brilliant novelty, where Schubert had earlier set himself such lofty demands. This comment is as unfathomable to us today as the sentence: "It is as if there could be no ending, no embarrassment about what comes next. Always musical and tuneful, it ripples along from page to page, interrupted here and there by single more abrupt impulses, which quickly subside." Schumann evidently glanced at these pieces only cursorily. I can compare this group of three sonatas only with Beethoven's last three sonatas or with Mozart's last three symphonies. In each case we're dealing with works which, apart from the fact that they date from the same period, belong together and are interrelated. In the case of Beethoven's Opp. 109, 110 and 111, this emerges not only from their stylistic unity but also from the fact that they share certain basic musical cells. Schubert's last three sonatas are similarly interrelated by dint of building blocks of this kind. By the steps 7-1...
소나타 19번 c단조, 20번 A장조, 그리고 21번 B플랫 장조는 슈베르트가 죽기 몇 주 전인 1828년 9월에 작곡되었습니다. 이 3개의 작품을 하나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은, 악보에는 이들 작품이 슈베르트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세 번째 소나타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슈베르트는 당대 피아노의 거장인 훔멜에게 그 소나타들을 헌정하기로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이 실현되지는 않았습니다. 작품이 완성되기 이전에 훔멜의 죽음으로 인해 슈만에게 그 소나타들을 헌정했고 디아벨리에 의해 10년 뒤에야 이 작품들은 출판되어졌습니다. 그러나 슈만은 이들 소나타에 16번 a단조 Op. 42나 17번 D장조, 18번 G장조로 된 다른 초기작보다 덜 열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는 이 마지막 소나타들이 극단적으로 단순화되었으며 슈베르트가 여기저기에 새로운 선율들을 덧붙임으로써 누구에게나 뻔한 악상이 터무니없는 길이로 늘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슈만의 말이, 이들 마지막 소나타가 동기나 소재를 다루는데 더 큰 집중력을 보여준다는 뜻이라면 다시 말해, 단순함이 통일성으로 해석된다면 우린 슈만의 견해에 동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슈만은 슈베르트가 이전에는 엄청난 수준으로 스스로에게 요구했던 화려한 신기함을 자발적으로 포기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 말은 다음의 문장만큼이나 심오하게 들립니다. “마치 끝도 없고 다음에 올 것에 대해 아무런 거북함도 없는 듯하다. 항상 음악적이고 선율적이며 끊임없이 너울거리며 번져나간다. 갑작스런 충격이 여기저기서 이 물결을 방해하곤 하지만 이내 가라앉고 만다.” 슈만은 분명히 이 작품들을 단지 피상적으로 보았습니다. 이 세 소나타 그룹은 오직 베토벤의 마지막 세 소나타나 모차르트의 마지막 세 교향곡과만 비교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경우에서, 이들 작품은 같은 시기에 작곡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한데 묶여 서로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베토벤의 소나타 30번 작품 109, 31번 작품 110, 32번 작품 111의 경우엔 이 점이 형식적 통일성뿐만 아니라 특정한 기본 음악 요소를 공유한다는 데서도 드러납니다. 슈베르트의 마지막 세 소나타는 이런 종류의 기초 원칙에 의해 상호 관련되어져 있습니다. 7도-1도 음정이나...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and 6-5...
...6도-5도 음정...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in the major and minor...
...장조와 단조...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or combined as a passing note.
...혹은 경과음으로서 결합된 경우나,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And finally also by repeated notes not only within the themes but also in the form of long pedal points. Most of the themes are based, moreover, on the first six notes of the scale. In thirds...
마지막으로 주제 내에서뿐만 아니라 각 페달 포인트의 형식으로 반복되는 음에 의해서입니다. 게다가 이 주제의 대부분은 그 음계의 첫 여섯 음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3도 음정이나...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or spread out over six notes.
여섯 음 위로 펼쳐진 형태로...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How does one write several motivically related works at the same time without giving the impression that the listener is hearing only repeats? By sufficiently concealing the common material. In Liszt's symphonic poems, for example, the points in common are all too evident. The notes of entire themes clearly remain the same in spite of all the changes to their musical character. Beethoven's or Schubert's motivic links create a more indirect impression. These cells are small enough to be able to appear in the most varied combinations and transpositions. Schubert's C minor Sonata is curiously austere in its sonorities. This makes it more difficult for some listeners to access the work while endearing it to others. It's perhaps the one sonata by Schubert that suffers most from a comparison with Beethoven. The key of C minor, the character of grim resolve, an A flat major Adagio as a slow movement instead of an andante and a rondo-finale with aspects of sonata form - all these seem to be typically Beethovenian characteristics. True, Beethoven wrote a whole series of important works in C minor but Mozart had stolen a march on him with C minor Sonata and C minor Keyboard Concerto. Even before this, Haydn had set an example with his C minor Sonata. Perhaps it was an act of unprecedented boldness on the part of a young composer to risk writing another C minor Sonata so soon after Beethoven's Op. 111. But not even Beethoven's closest admirers recognized the unique and ultimate significance of his Op. 111 and Schubert's C minor Sonata harks back, rather, to the early and middle-period Beethoven. As a result, the affinity between the beginning of the sonata and the theme of Beethoven's C minor Variations has often been noted. But it seems to me that the similarities between the two themes are less instructive than the features that keep them apart. The opening bars of the Beethoven theme arouse expectations that are fully met in the following bars thanks to a foreshortening technique.
어떻게 듣는 이에게 반복만 계속된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면서 동기적으로 연관된 몇 개의 작품을 쓸 수 있을까요? 이는 공통되는 소재를 충분히 숨김으로써 가능해집니다. 예컨대 리스트의 교향시에서는 공통 요소가 너무나 분명합니다. 전체 주제의 음들은 분명히 똑같이 남아있습니다. 음악적 성격은 변할지라도 말입니다. 베토벤이나 슈베르트의 동기 연결은 좀 더 직접적인 인상을 만들어냅니다. 이들 동기의 조각들은 극도로 다채로운 결합과 변형 속에서도 모습을 보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작습니다. 슈베르트 소나타 19번 c단조는 신기할 정도로 간결한 울림을 지닙니다. 이 점은 몇몇 사람들이 이 작품에 접근하는 것을 어렵게 합니다. 이 때문에 이 곡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마도 이 곡은 슈베르트가 쓴 것 가운데 베토벤과 가장 많이 비교된 소나타 중 하나일 겁니다. 굳은 결의의 성격을 지닌 c단조라는 조성, 안단테 대신에 느린 2악장에 온 A플랫 장조의 아다지오, 그리고 소나타 형식의 요소를 지닌 4악장 론도-피날레, 이 모든 것은 전형적인 베토벤의 특징인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베토벤은 c단조로 된 일련의 중요한 작품을 썼지만 모차르트는 c단조 소나타와 c단조 피아노 협주곡으로 베토벤을 앞질렀습니다. 그 이전에는 하이든이 c단조 소나타의 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베토벤의 소나타 32번 작품 111 이후로 또 다른 c단조 소나타를 쓰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젊은 작곡가 입장에서는 전례 없는 대담한 행동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심지어 베토벤의 열렬한 찬양자들조차도 그의 소나타 32번 작품 111이 지닌 독특하고 궁극적인 중요성을 인식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슈베르트의 소나타 19번 c단조는 오히려 초기나 중기의 베토벤을 따랐습니다. 그 결과로서, 소나타의 첫머리와 베토벤의 c단조 변주곡의 주제 사이에 유사성이 종종 지적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이 두 주제의 유사성은 이들을 갈라놓는 특징들보다는 덜 중요한 것 같습니다. 베토벤은 주제의 처음 몇 마디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게 했고 이 기대감은 단축 기술 덕분에 이어지는 마디들에서 충분히 만족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Schubert rouses similar expectations with his opening theme only to disappoint them in his sixth bar.
슈베르트도 첫머리 주제에서 비슷한 기대를 불러일으킵니다. 단지 여섯 번째 마디에서 그 기대를 실망시키기 위해서입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And so it goes on... When related to Beethoven's theme, without our disappointed expectations, Schubert's theme should sound like this:
그리고 이런 과정이 계속됩니다. 기대와 실망으로 이어지는 일 없이 베토벤의 주제와 관련될 때 슈베르트의 주제는 이렇게 들려야 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When related to Schubert's own later development of the material his theme should sound like this:
악상이 슈베르트만의 방식으로 다뤄지는 후반부 발전에서는 이 주제는 이렇게 들려야 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e question is whether this foreshortening should really succeed or whether its failure affects the whole character of the movement. The subsequent course of the movement merely confirms the sense of despair conveyed by its opening. The structure of the themes can be justified retrospectively. In terms of its character, it can be read less as a heroic maestoso than as an expression of panic. The main figure in the tragedy is pursued into a blind alley and looks in vain for a way out. Where Beethoven conveys a comparable panic, in the "Pathetique", for example, he by no means avoids the consequence of his foreshortenings.
문제는 이러한 단축이 정말 계속되어야 하는지 아닌지, 아니면 그 실패가 악장 전체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지 아닌지 하는 것입니다. 그 악장의 연속되는 과정은 단지 그 도입부에 의해 전달된 절망감을 확인합니다. 그 테마들의 구조는 소급해서 정당화되어집니다. 성격적인 면에서 보면 그것은 영웅적인 장엄함보다 갑작스런 공황의 표현으로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비극의 주인공은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게 되고 탈출구를 헛되이 찾습니다. 예를 들어 베토벤은 슈베르트에 필적하는 공포를 전달하는 소나타 8번 <비창>에서 단축이 가져오는 귀결을 결코 회피하지 않습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Even at moments of extreme chaos Beethoven offers a consoling sense of order. Schubert deprives us of this certainty. What happens in Schubert's music is so directly at odds with its musical form that it occasionally goes to the very brink of disintegration. The panic of the opening movement is further intensified in the finale. Whether or not this movement is felt to express a sense of dancelike ritual or a demonic psychological hunt, it remains a picture of hopeless constraint in which relaxation is merely apparent. As a result the B major theme at the centre of the movement seems like a Fata Morgana, unreal, intangible and unattainable.
심지어 극심한 혼란의 순간에도 베토벤은 질서의 위안감을 제공합니다. 슈베르트는 우리에게서 이 확신을 앗아갑니다. 슈베르트의 음악에서 일어나는 것은 가끔 붕괴 직전까지 가는 음악 형식만큼이나 뻔할 정도로 이상해보입니다. 1악장의 돌연한 공포는 피날레에서 더욱 강렬해집니다. 1악장이 춤이 곁들여진 의식이나 악마적인 심리 사냥을 표현하는 것처럼 느껴지건 아니건 그것의 휴식은 단지 겉으로 드러날 뿐인 절망적인 억압의 그림으로 남아있습니다. 그 결과 악장 중간에 등장하는 B장조 주제는 신기루처럼 비현실적이고 막연하며 성취할 수 없는 듯이 보입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is figure in particular...
특히 이 특징은...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expresses the intangibility of the passage. It runs through one's hands like water. Schubert's well-known fondness for chromatically neighbouring keys finds particularly bold expression in this movement. There's probably no precedent for the fact that the second subject-groups in a C minor piece are in C sharp minor and B major. Even the solemn calm of the Adagio is permeated by something of the delirium of the outer movements. The episodes in this movement shake the piece's tonal foundations, feverishly and chromatically. The final return of the theme with its pizzicato accompaniment in the bass shows particularly clearly how powerfully the sound world of the String Quintet of 1828 left its mark on the last three sonatas.
그 악구의 막연함을 표현합니다. 그것은 물처럼 손 사이로 흘러버립니다. 반음으로 인접한 조성에 대한 슈베르트의 유명한 선호는 이 악장에서 특히 대담하게 표현되었습니다. C장조 작품에서 두 번째 주제 그룹이 c#단조와 B장조라는 사실은 전례가 없습니다. 심지어 2악장 아다지오의 엄숙한 고요함에도 앞뒤 악장이 지닌 모종의 흥분이 배어있습니다. 이 악장의 에피소드들은 이 작품을 이루는 음의 기초를 열에 들뜬 듯이, 그리고 반음계적으로 뒤흔듭니다. 베이스 성부의 피치카토 반주가 딸린 형태로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이 주제는, 1828년 작인 현악5중주의 음향 세계가 마지막 세 소나타에 얼마나 강력하게 영향을 미쳤는지 분명히 보여줍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e coda reveals great shrewdness in exploring the degrees of the chromatic scale. Schubert struck a new note in this Adagio. His death ensure that this movement remained unique.
코다는 반음계 음정들을 탐구하는 데서 위대한 통찰력을 드러냅니다. 슈베르트는 이 아다지오(2악장)에서 새로운 음을 만들어냈습니다. 그의 죽음은 이 악장이 유일무이한 것으로 남게 했습니다.
Moments musicaux, D. 780 / 악흥의 한때
No. 1 in C major: Moderato
No. 2 in A flat major: Andantino
No. 3 in F minor: Allegro moderato
No. 4 in C sharp minor: Moderato
No. 5 in F minor: Allegro vivace
No. 6 in A flat major: Allegretto
The shorter piano pieces, the Moments musicaux, the Impromptus and perhaps some of the dances were long regarded as Schubert's principal achievement as a piano composer. For those pianists who played piano duets, there were also the Marches, Rondos, Variations, Polonaises and the "Divertissement a la Hongroise". The F minor Fantasy and the "Wanderer" Fantasy occupied a place apart. Listeners mistrusted the sonatas. They belonged to an old-fashioned genre and none of them could hold a candle to Beethoven. Not until 1827 did Schubert publish those famous sets of shorter works for piano two hands, the Moments musicaux and the Impromptus. Perhaps he was responding to market demands, for sonatas were of greater interest to him. The dances are Schubert's aphorisms. He was not always equally careful as an aphorist and the order to the landler, waltzes and German Dances was presumably left to chance. Schubert's finest, most elaborate landler are in the trios of his scherzos, in his sonatas, his chamber works and his symphonies. When compared to many of his dances the Moments musicaux are works of positively loving perfection, sharply individualized and lovingly arranged, concentrated character pieces like some of Beethoven's Bagatelles, with which they also share their sense of concentration. The first Moment musical is an Alpine nature piece, a mountain piece. It could be called "The Yodeller and his Echo".
피아노 소품들, <악흥의 한때>, <즉흥곡>, 아마도 몇몇 춤곡들은 오랫동안 피아노 작곡가로서의 슈베르트의 주요 성과로 간주되었을 것입니다. 피아노 듀오 작품들을 연주한 피아니스트들의 경우에는 행진곡, 론도, 변주곡, 폴로네즈, 4개의 손을 위한 <헝가리풍의 디베르티스망>도 있었습니다. 4개의 손을 위한 환상곡 f단조와 <방랑자 환상곡>도 하나의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청취자들은 소나타를 믿지 않았습니다. 소나타는 구식 장르에 속했으며 소나타 중의 아무 것도 베토벤만 못했습니다. 슈베르트가 1827년에 피아노 독주를 위한 유명한 피아노 소품들, 악흥의 한때, 즉흥곡을 출판할 때까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소나타가 그에게 보다 흥미로웠기 때문에 시장의 요구에 응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춤곡은 슈베르트의 금언입니다. 그는 금언 작가로서 항상 똑같이 조심스럽지 않았으며 랜틀러, 왈츠, 독일 춤곡에 대한 주문은 아마도 운에 맡겨졌을 것입니다. 슈베르트의 가장 훌륭하고 고상한 랜틀러는 그의 스케르초, 소나타, 실내악, 교향곡에 있습니다. 그의 많은 춤곡들과 비교할 때 <악흥의 한때>는 긍정적으로 사랑스러운 완벽함을 가진 작품들로, 예리하게 개별화되었으며, 역시 집중된 감각을 공유하는 베토벤의 바가텔처럼 집중된 성격 소품들입니다. <악흥의 한때> 1번은 알프스의 자연 조각, 산 조각인데, <요들 가수와 그의 메아리>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Whereas I see this piece's main movement more as a depiction of nature the middle section in G major strikes me as an expression of joyful gratitude to nature, a feeling that both Schubert and Beethoven are known to have expressed in words.
저는 이 곡의 주요 악장을 자연의 묘사로 더 많이 보는 반면, G장조의 중간부는 슈베르트와 베토벤이 말로 표현한 것으로 알려진 느낌인 자연에 대한 즐거운 고마움에 대한 인상으로 제게 충격을 줍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Between times we gaze down into the ravines in D major.
때때로 우리는 D장조의 협곡을 내려다봅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In the second Moment musical the narrator alternates with the singer the narrator begins.
<악흥의 한때> 2번에서는 내레이터가 가수와 번갈아가며 내레이터가 시작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e singer later continues.
가수는 나중에 계속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In this piece, too, we find a distinctive feature of Schubert's piano writing. Octave doublings are temporarily resolved into part-writing.
이 곡에서도 슈베르트의 피아노곡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옥타브 더블링이 일시적으로 각 성부의 작곡으로 해결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Here the colour of the chord of the diminished seventh is emphasized by removing the octave doubling. Schubert's notation was very old-fashioned in this piece, as can be seen from the suspensions. Or, rather, one appears not to notice this, as they are always incorrectly played as short appoggiaturas, instead of on the beat. One normally hears this:
여기서 감7화음의 색상은 옥타브 더블링을 제거함으로써 강조됩니다. 이 걸림음에서 볼 수 있듯이 슈베르트의 표기는 이 곡에서 매우 구식입니다. 더 정확히는,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걸림음이 항상 박자에 맞는 대신에 짧은 아포자투라(앞꾸밈음)으로 잘못 연주되기 때문입니다. 보통 다음과 같이 듣습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But it should sound like this:
그러나 다음과 같이 들려야 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Short passing notes rob the appoggiaturas of their expressive force and rhythmic sense. Their rhythm would not be any different from the semiquavers of the theme. In the well-known third piece, narrative and song are joined by gesture - dance. This piece was written in 1823 and appeared a year later in an "Album musical" published by Sauer & Leibersdorf under the nonsensical title "Air russe". I regard this piece as a polka. In the fourth Moment musical, in C sharp minor, the polka is joined by a kind of Bachian prelude. The prelude is in the right hand, the polka in the left.
짧게 지나가는 음들은 표현력과 리듬 감각의 아포자투라(앞꾸밈음)를 빼앗습니다. 아포자투라의 리듬은 주제의 16분음표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잘 알려진 <악흥의 한때> 3번에서 묘사와 노래는 몸짓인 춤으로 연결됩니다. 이 곡은 1823년에 작곡되었으며 1년 후 무의미한 제목 <러시아의 노래>로 “자우어 & 라이베르스도르프”에서 <음악 앨범>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저는 이 곡을 폴카로 여깁니다. <악흥의 한때> 4번 c#단조에서 폴카는 일종의 바흐 프렐류드로 연결됩니다. 프렐류드는 오른손에, 폴카는 왼손에 있습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e middle section in D flat major is a dream polka. The main stresses are displaced or concealed, as they were later to be with Schumann.
D플랫 장조의 중간부는 꿈의 폴카입니다. 주요 악센트는 나중에 슈만과 함께 있을 때처럼 옮겨지거나 숨겨집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e main stresses do not fall on the long notes, which were accented by Schubert. According to the time signature they are on the notes that we hear as the upbeat.
주요 악센트는 슈베르트가 강조했던 긴 음표로 돌려지지 않습니다. 박자 기호에 따르면 악센트는 우리가 여린박으로 듣는 음표에 있습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e fifth piece similarly reminds me of Schumann as it's almost entirely monothematic, as though possessed by an idee fixe, a showpiece of furious, almost comical obstinacy. Its sense of disquiet stems from its constantly shifting periodic structure. The sixth piece, in A flat major, is a menuetto in terms of its form rather than its character. It's characterized not by graceful balance but by its declamatory language.
<악흥의 한때> 5번은 거의 코믹한 집요한 끈기를 가진 맹렬한 대표작으로 강박관념에 의해 소유된 것처럼 거의 단조롭기 때문에 슈만과 유사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려줍니다. 그 불안감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주기적 구조에서 생겨납니다. <악흥의 한때> 6번 A플랫 장조는 그 성격보다는 형식에 관해서 미뉴에트입니다. 이 곡은 균형이 잘 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열변을 토하는 언어로 묘사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Alfred Einstein said the piece could be the menuetto of an unwritten sonata. It was published in 1825, in the second edition of the "Album musical" mentioned earlier, with the even more nonsensical title "Plaintes d'un Troubadour". Its middle section...
알프레드 아인슈타인은 이 곡이 슈베르트가 작곡하지 않았던 소나타의 미뉴에트 악장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곡은 앞서 언급한 <음악 앨범> 두 번째 판에서 더 무의미한 제목 <음유시인의 불만>으로 1825년에 출판되었습니다. 그 중간부는...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recalls a piece written by the Czech composer Wenzel Tomasek in 1815. A minor composer of lyrical piano works, he anticipated the Romantics. Transposed to D flat major, it sounds like this:
...체코 작곡가 벤젤 토마셰크가 1815년에 쓴 곡을 떠오르게 합니다. 서정적인 피아노 작품들의 비중이 낮은 작곡가인 그는 낭만주의를 예상했습니다. D플랫 장조로 편곡하면 다음과 같이 들립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ere's something very moving about the way in which the repeat of the menuetto - although literal - The idea that there appears to be a third mode in addition to major and minor is demonstrated by the ending, with its open octave.
문자 그대로지만 미뉴에트의 반복에 대해 매우 가슴 뭉클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장조와 단조 외에 제3의 조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악상은 미결의 옥타브로 곡이 끝나는 것에 의해 입증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ree Piano Pieces, D. 946 / 3개의 피아노 소품
No. 1 in E flat minor: Allegro assai
No. 2 in E flat major: Allegretto
No. 3 in C major: Allegro
In 1963 I was invited to play at a charity concert at an embassy. Pope John XXIII died on the day before the concert and the state of national mourning meant the next day's events were cancelled. The ambassador rang me up and explained that in spite of this he had decided that the concert should go ahead. The pope, he said, would approve as the concert was meant to help those in need. As for the programme, he had only one request. Mozart and Beethoven were fine by him but the name of Schubert might suggest a certain frivolity on account of "Lilac Time". I've told you this story in order to show you that our grandparents' prejudices are still alive and kicking today. The worldwide success of "Lilac Time" made Schubert an object of kitsch. One of Schubert's pieces that Herr Berte plundered for his operetta was the second of the three posthumous Klavierstucke. These works date from 1828, the year in which Schubert died. They are dated "May 1828", but it was not until forty years later that they were published by Brahms. Like the last three sonatas, they were published posthumously - after the composer's death - even though most of Schubert's other works to which publishers gave posthumous opus numbers didn't appear in print in Schubert's lifetime. I share Paul Badura-Skoda's view that the autograph of these three pieces is not a fair copy - unlike that of the Impromptus, say - but an early and relatively cursory draft. Clearly Schubert failed to revise it. Some of the bridge passages are so impressively bare one would think that they were by late Liszt. In the third piece Schubert moves from C major to D flat major without any attempt to mediate between them.
1963년에 저는 대사관의 자선 연주회에 초청받았습니다. 교황 요한 23세가 연주회 전날에 사망하여 국가적인 애도가 있었는데, 이는 다음날의 행사가 취소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대사님이 제게 전화를 걸어서 이와 같은 상황임에도 연주회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결정하셨습니다. 교황은 이날 연주회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찬성했을 것입니다. 프로그램에 대한 것으로 그는 단 한 가지만 요청했습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괜찮았지만 슈베르트의 이름은 <라일락 핀 시절> 때문에 어떤 경솔한 것을 나타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우리 조부모님의 편견이 아직 살아있고 오늘날 저항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라일락 핀 시절>의 세계적인 성공은 슈베르트를 키치(싸구려 예술)의 대상으로 만들었습니다. 베르테 씨가 그의 오페레타(<라일락 핀 시절>)에 표절한 슈베르트의 곡들 중 하나는 3개의 유작 피아노 소품들 중에서 2번입니다. 이 작품은 슈베르트가 죽은 해인 1828년에 작곡되었습니다. “1828년 5월”로 기록되었지만, 브람스가 출판한지 40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3개의 후기 소나타처럼 이 곡들은 작곡가의 사후에 유작으로 출판되었습니다. - 유작 작품 번호를 주었던 출판사들에게 슈베르트의 다른 대부분의 작품들은 슈베르트의 평생 동안 인쇄되어 나오지 않았지만요. 저는 이 3개의 소품의 자필 악보가 - 말하자면 즉흥곡과 달리 - (고친 데가 없는) 깨끗한 원고(정서본)가 아니라 일찍이 상대적으로 간단한 초안이라는 파울 바두라-스코다의 견해를 공유합니다. 분명히 슈베르트는 그것을 개정하지 못했습니다. 두 주제를 잇는 간주 악절(間奏樂節)의 일부는 매우 인상적이라는 것이 드러났으므로 후기 리스트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피아노 소품 3번에서 슈베르트는 조성들 사이에 중재하려는 시도도 없이 C장조에서 D플랫 장조로 옮깁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e first of these piano pieces was written down in five sections, in the form A-B-A-C-A, but Schubert himself struck out the second episode - the C section. He was right to do so. First, this episode is weaker in terms of its invention; second, the first subject-group, A, is too long to be repeated in its entirety; third, the A-B-A form fits symmetrically into the three Klavierstucke: two ternary forms frame a central piece in five sections. In spite of this, the discarded episode appears in most editions, generally without a footnote, as if it were still part of the piece. On one of my recordings it's described in the liner notes even though I don't play it. We really must allow Schubert the right to cut whatever he didn't like. People initially neglected these and other works by Schubert, but then suddenly they cannot get enough of him and clutch desperately at discarded or unfinished works, as if there weren't already enough finished works. The extant version of these three piano pieces strikes me as a series of inspired sketches that are clear enough for us to feel obliged and able to play them as long as we add the missing tempo marking over the middle section of the third piece, for example. This piece, I should add, combines Bohemia's two national dances, the polka and the sousedska. In the polka we hear sounds that could come from "The Bartered Bride".
이 피아노 소품 중 1번은 A-B-A-C-A 형식의 5개 섹션으로 작곡되었지만, 슈베르트 자신은 두 번째 에피소드인 C섹션을 지웠습니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옳았습니다. 첫째, 이 에피소드는 그 창조의 관점에서 보다 약합니다. 둘째, 첫 번째 주제 그룹인 A는 너무 길어서 전체적으로 반복될 수 없습니다. 셋째, A-B-A 형식은 3개의 피아노 소품에 대칭적으로 맞는데, 2개의 세도막 형식은 다섯 섹션에서 곡의 중간을 구성합니다. 이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버려진 에피소드는 아직도 곡의 일부인 것처럼 일반적으로 부차적인 존재 없이 대부분의 판에 나타나는데, 제가 연주하지 않더라도 제 녹음들 중의 하나에 있는 라이너 노트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슈베르트가 자신이 싫어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잘라낼 권리를 허용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처음에 슈베르트가 쓴 3개의 피아노 소품들과 다른 작품들을 소홀히 했다가도, 이미 충분히 완성된 작품들이 없는 것처럼 폐기되거나 완성되지 않은 작품들에 눈을 떼거나 절망적으로 붙잡을 수 없습니다. 제게 일련의 영감 받은 스케치로 충격을 주는 남아있는 이 3개의 피아노 소품은 예를 들어 3개의 피아노 소품 3번의 중간부에 빠진 템포 표시를 추가하기만 하면 우리에게 고맙게 느끼기에 분명히 충분하며 이 곡들을 연주할 수 있습니다. 제가 추가해야 하는 이 곡은 보헤미아의 두 가지 국가적인 무용인 폴카와 소세카(이웃사람들의 춤)를 결합합니다. 폴카에서 우리는 스메타나의 오페라 <팔려간 신부>에서 나올 수 있었던 소리를 듣습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And the sousedska transports us to the world of Dvorak's "Slavonic Dances".
그리고 소세카는 우리를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YENRsbze3KE
https://www.youtube.com/watch?v=TKy0Lyl4g-s
DVD 5
A장조라는 조성은 전통적으로 밝은 햇살이나 듣기 좋은 가락, 따뜻함, 풍부한 짜임새, (야하지는 않은) 색채감, 기운을 돋우면서도 그리 심하지는 않은 장난기, 무르익은 풍요로움 등과 관련되어 있다(영국에서는 안개와도 관련이 있지만 말이다.). 슈베르트가 쓴 마지막 소나타는 이 모든 요소를 아우르고 있다. 인상적이며 거의 호전적으로까지 들리는 첫머리는 엄격한 울림과 딱딱하고 공격적인 리듬, 작살처럼 내리꽂히는 하강 도약 등이 지배하고 있어 이런 요소를 거의 찾을 수 없으나, 팡파르가 아직 듣는 이의 귀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거의 무게감 없이 떨어지는 (그럼에도 무성하게 우거져 있는) 나뭇잎처럼 셋잇단음표의 부드러운 소나기가 온 몸을 적시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예기치 못한 풍요로운 대비가 이 악장, 나아가 이 소나타를 이룬다. 상호 인용과 미묘한 변화로 점철된 이 곡은 지금까지 작곡된 모든 소나타의 세계에서도 가장 정밀하게 (그리고 가장 까다롭게) 구성된 작품에 속한다. 전통적인 고전파 양식을 폭넓게 수용(이 점에서 그는 자신이 존경했던 베토벤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었다.)했으면서도, 슈베르트는 거의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발전이라는 놀라운 체험을 선사한다(이는 작곡가 자신에게도 무시할 수 없는 도전이었을 것이다.). 위대한 소나타라면 대부분 그렇듯이, 이 작품의 핵심도 느린 악장에 있다. 이 경우는 그렇게 느리지만은 않지만 말이다. 이보다 더 가슴을 쥐어짜는 슬픈 악장은 그 뒤로 작곡된 적이 없다. 잉그리드 버그만(스웨덴 출신의 영화배우)은 이렇게 말했다. “행복은 좋은 건강과 나쁜 추억에서 비롯된다.” 슈베르트 역시 끔찍했던 추억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그도 결국 회복되었지만, 이후로도 그(그리고 우리 모두)의 눈앞에는 심연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즐겁고 경쾌한 스케르초(3악장)와 서정적이고 대담하며 여유로운 피날레(4악장)는 안단티노(2악장)에서의 체험에 어느 정도, 그러나 심하지는 않을 만큼 영향을 받고 있다.
위대한 <소나타 21번 B플랫 장조>가 슈베르트 소나타의 대미를 장식한다. 이 작품은 언뜻 보기에 대단히 광대하면서도 극도로 단순하다. 작곡가는 이 곡의 어느 대목에서도 서두르지 않는다. 어디서도 악상이 서로 부대끼는 일이 없다. 모든 대목에서 슈베르트는 모든 것을 (영적인 면에서건, 감정적, 음악적, 혹은 표현 면에서건) 그 정수에 이르기까지 다듬는 것처럼 보인다. 비록 그가 쓴 다른 어떤 곡만큼이나 순수하게 슈베르트적이기는 하나, 이 곡은 어떻게 보면 광활한 폭과 경제성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서사시적인 규모로 확장된 모차르트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는 모순이 아니다. 슈베르트의 어법 가운데 일부는 광활함으로 특징지어진다. 풍요로움과 초시간성이야말로 이 걸작의 전체적인 정신과 구조 그리고 미적 관심의 핵심을 이룬다. 그리고 작곡가는 탁월한 판단력으로 광대한 두 악장(그러나 1악장만큼 광대하지는 않다.) 사이에 낀 스케르초 악장을 간결하게 처리했다. 만약에 이 3악장마저도 길었다면 분명히 전체적인 짜임새가 망가졌을 것이다. 피날레는 두 번의 폭발(악상의 반복 때문에 두 번째는 효과가 덜하다.)을 거친 뒤 당당하고 낙관적인 코다로 마무리된다.
Sonata in A major, D. 959 / 소나타 20번
I. Allegro
II. Andantino
III. Scherzo. Allegro vivace
IV. Rondo. Allegretto
Schubert discovered feverishness in music. In the second movement of the grandiose A major Sonata, which, like the Sonatas in C minor and B flat, he wrote just before his death, we find the most astonishing example of this musical fever. It's not explosions of anger, storms and hail that break over the listener, as in Beethoven's early rondos. In Schubert's case, it's not the sky that clouds over, but the conscious mind. Visions of terror take us to the very brink of madness. They remind me of the fact that the painter Goya died in the same year as Schubert. The music doesn't reproduce chaos here but it is seemingly allowed to be chaotic in the middle section of the Andante to the extent that music's links to functional harmony made this possible. This degree of anarchy is something probably not surpassed until Schoenberg in the third of his Op. 11 piano pieces. Precisely because the first two movements of his A major Sonata are so bizarre and rhapsodical I'd like briefly to explore with you the world of musical analysis. However different this sonata of Schubert's is from Beethoven's, it nonetheless shares with it the fact that all its movements are linked together by the same motivic building blocks. Even the "Wanderer" Fantasy had aspired to a motivic link between its movements. In Schubert's last three sonatas this link is less apparent but, as a result, it's all the more logical and consequential. As with Beethoven, the themes of all the movements have the same characteristics whereas in the "Wanderer" Fantasy the second subject-groups were all devised to be independent of the main themes. People often speak of the inner unity of a sonata or symphony and of the non-exchangeability of its movements but they rarely notice that the musical material of a masterpiece can provide proof of this unity. In the A major Sonata there are two pairs of adjacent notes: F sharp-E or F-E or, alternatively, G sharp-A, around which the themes are structured.
슈베르트는 음악에서 열정을 발견했습니다. 19번 c단조 소나타나 21번 B플랫 소나타와 마찬가지로 슈베르트가 죽기 전에 썼던 웅대한 20번 A장조 소나타의 2악장에서 이 음악적 열정의 가장 놀라운 예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베토벤의 초기 론도에서처럼 듣는 이에게 퍼부어지는 폭풍우나 우박, 분노의 표출은 아닙니다. 슈베르트의 경우엔 그것은 짙은 구름이 드리워진 하늘이 아니고 자각하고 있는 의심입니다. 공포에 대한 환상은 우리를 광기 바로 직전까지 이르게 합니다. 그 환상들은 화가 고야가 슈베르트와 같은 해에 죽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음악은 여기서 혼란을 주지는 않지만 2악장 안단테의 중간부에서 기능 화성이 허용하는 범위까지는 외관상으로 혼란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혼란은 쇤베르크가 쓴 피아노 소품 Op. 11의 세 번째 곡 이전에는 다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슈베르트가 쓴 20번 A장조 소나타의 첫 번째 두 악장은 너무나 기괴하고 자유분방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음악적 분석의 세계를 잠시 탐험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슈베르트의 이 소나타는 베토벤과는 다르지만 그럼에도 이 소나타의 전 악장이 같은 기초 악상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심지어 <방랑자 환상곡>에서도 각 악장 사이를 잇는 연결고리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슈베르트의 마지막 3개의 소나타에서 이 연결고리는 덜 분명합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더 논리적이고 필연적입니다. 베토벤의 경우에는 모든 악장의 주제가 같은 성격을 보여줍니다. 반면 <방랑자 환상곡>에서는 부 주제 그룹이 주 주제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다루어집니다. 소나타나 교향곡은 내적으로 통일되어 있으며 각 악장은 서로 바뀔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한 걸작은 음악 소재만으로도 이러한 통일성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A장조 소나타 20번에서 주제부 주변에 F#-E 혹은 F-E 아니면 G#-A 등의 음이 서로 인접해 한 쌍을 이루고 있습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It can also be their inversions:
또한 음이 반대로 배열된 경우도 볼 수 있습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Or:
또는...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Let me play you the beginning of the opening movement.
제가 첫 악장의 시작 부분을 연주해 보겠습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ree times this opening contains the interval E-F sharp or F sharp-E.
이 대목에서는 E-F# 혹은 F#-E가 세 번 등장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At the end of this progression comes the interval A-G sharp.
이 연주의 마지막에는 A-G#가 나옵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Let me play you the second subject as it appears in the recapitulation, in other words, in A major.
이제 제2주제가 재현부에서 A장조로 등장하는 대목을 연주하겠습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In this theme the melodic line first includes both intervals of a second. A-G sharp and F sharp-E. Later we again have F sharp-E.
이 주제에서 멜로디 라인은 맨 처음에 두 개의 2도 음정을 보여줍니다. A-G#와 F#-E, 나중에 다시 F#-E가 나옵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While the middle voice remains entirely on the interval A-G sharp.
반면 중간 성부는 오직 A-G#만 연주합니다.
Not only the themes circle around these same few notes, so, too, do their transpositions and even the transitional figures that seem to be carelessly scattered around. The musical idea that follows the opening theme, for example, quotes both intervals of a second at once.
단지 그 테마들에만 이 똑같은 몇 개의 음들이 반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의 전위형에서도 볼 수 있고 무심코 흐트려 놓은 듯한 경과구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첫머리 주제를 잇는 악상에서는 앞서 말한 2도 음정 두 개가 함께 등장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G sharp-A and E-F at once. The introductory passages of the second subject-group likewise make little sense without these two basic motifs.
G#-A와 E-F 음정 말이지요. 두 번째 주제 그룹의 도입부 소절은 이 두 개의 기본 동기 없이는 의미가 통하지 않습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Let me play this again, this time stressing these intervals.
이것을 제가 다시 연주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이 음정들을 강조하면서.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At many points in this sonata Schubert uses a particularly exciting device, for the first time, I think. He brings both intervals of a second together and in that way he creates harmonically ambivalent situations: we are, as it were, in two keys at once. Let me play you a passage from the opening movement.
이 소나타의 여러 대목에서, 제가 보기에 슈베르트는 흥미로운 방법들을 처음으로 구사합니다. 두 개의 2도 음정을 결합함으로써 모순된 상황을 조화롭게 만듭니다. 마치 두 조성이 한 번에 울리는 듯합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1악장 중 한 소절을 연주해드리겠습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And another passage from the development section where it emerges with particular clarity.
그리고 특별한 명쾌함이 드러나는 전개부의 또 다른 소절도 연주해드리겠습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Superimposed, as it were.
마치 겹쳐진 것처럼 들리지요.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Why do we concern ourselves with technical details of this kind instead of simply allowing ourselves to be impressed by them? Many people will say that we can hear these things only if we know they are there. I would say to you that a knowledge of these things doesn't diminish their emotional impact but sometimes puts it on the right lines. Conversely, we also gain criteria that help us answer a question that has always concerned me: Wherein lies the difference between a masterpiece and works by lesser composers? The phenomenon of Schubert in particular has fuelled the misunderstanding that the composer is a kind of passive tool who is overwhelmed by ideas from some higher world. Franz Liszt summed this up very well. He addresses Schubert directly: "You almost cause us to forget the greatness of your mastery, because of the magic of your mind." There's another way in which Beethoven's name is linked to this sonata. The splendid finale of this work was modelled on the rondo from Beethoven's Sonata Op. 31 No. 1. As both Charles Rosen and Edward Cohen have notes, Schubert used not only Beethoven's formal ground plan in his own piece, many other individual features were also taken over. But its atmosphere is so different, its emotional range is so much greater and the proportional relationships between its sections are so drastically altered that we can barely divine the mystery of the result. I think it unlikely that anyone listening to Schubert's rondo would be reminded of Beethoven's style if they didn't already know the Op. 31 No. 1 rondo.
우리는 왜 이런 종류의 기술적 세부사항에 감명 받지 않고 단지 관심만 가지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 세부사항들을 알 때만 이것을 들을 수 있다고 저는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들 세부사항에 관한 지식은 이들의 감정적 영향력을 줄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제가 항상 품어온 의문, 즉 시시한 작곡가의 작품과 대가의 걸작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우리가 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척도를 얻습니다. 특히 슈베르트라는 인물은 작곡가란 다른 세계에서 온 착상에 압도당한 수동적인 도구와도 같은 존재라는 오해를 부채질해왔습니다. 프란츠 리스트는 이 사실을 매우 잘 말해주었습니다. 그는 슈베르트와 대화하는 것처럼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에 깃든 마법 때문에 우리는 당신의 재능을 거의 잊게 됩니다.” 베토벤의 이름과 이 소나타가 연관이 있다는 또 다른 설도 있습니다. 이 작품의 훌륭한 피날레는 베토벤 소나타 16번 Op.31 No. 1의 3악장 론도를 모델로 하고 있었습니다. 찰스 로젠과 에드워드 코헨이 언급해왔듯이 슈베르트는 자신의 작품에 베토벤의 기초적인 형식만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다른 개인의 특징들도 또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의 분위기는 너무나 다르고 그것의 감정적 범위는 훨씬 폭넓습니다. 그리고 각 부분 사이의 비례 관계가 너무도 과감히 바뀌어 우리가 그 미지의 결과를 거의 추측할 수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만약 이전에 베토벤 소나타 16번 Op.31 No. 1의 3악장 론도를 몰랐다면 슈베르트의 론도를 듣는 이는 베토벤의 형식을 생각할 수 없었을 겁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Instead, the listener would describe it as a particularly pure example of Schubert's instrumental lyricism. Conversely, anyone hearing Beethoven's rondo who didn't know Schubert's rondo or their dates of composition would consider this movement the most Schubertian that Beethoven ever wrote.
대신, 그 청중은 그것을 슈베르트의 기악 작품이 지닌 서정성의 순수한 예로 묘사할 겁니다. 반대로, 베토벤의 론도를 슈베르트의 론도나 그 작곡 시기를 모른 채 듣는 이는 이 악장을 베토벤이 쓴 것 가운데 가장 슈베르트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By 1828 Schubert must have felt sufficiently secure to learn from Beethoven without abandoning his own identity.
1828년에 슈베르트는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은 채 베토벤에게 충분히 배웠음이 틀림없습니다.
Sonata in B flat major, D. 960 / 소나타 21번
I. Molto moderato
II. Andante sostenuto
III. [Scherzo] Allegro vivace con delicatezza
IV. Allegro ma non troppo
The B flat Sonata was completed less than two months before Schubert's death. In 1828 Schubert wrote not only his last three sonatas but F minor Fantasy for piano duet, the song of "Schwanengesang", the Mass in E flat major and the three posthumously published Klavierstucke. And he at least revised the C major Symphony. These are merely the main works. This tremendous workload must have further weakened his already frail constitution. At least the first two movements of the B flat major Sonata sound like a leave-taking but with open, clear-sighted, dry eyes. Even so, it would be irresponsible to assume that Schubert, already sick with typhoid fever, suspected he was to die prematurely. Schubert's music had long been familiar with death. His late style is not a late style like that of "Die Zauberflote". If the B flat major Sonata puts us in mind of late works by other composers this is almost certainly accidental. Beethoven's last work, the rondo-finale that he wrote for the B flat major Quartet Op. 130 and that was meant to replace the "Grosse Fuge" resembles the finale of Schubert's B flat major Sonata. Both movements seem to start in a foreign key; both transport us back to earth. And in the case of Mozart's last keyboard concerto, also in B flat, not only the sense of calm, a certain resignation and its songlike qualities look forward to Schubert. Schubert himself could have had the idea of modulating from B flat major to the remote key of B minor, as he does at the start of the development section.
21번 B플랫 소나타는 슈베르트가 죽기 두 달 전에 완성되었습니다. 1828년 슈베르트는 그의 마지막 세 소나타뿐 아니라 현악6중주, 피아노2중주를 위한 f단조 환상곡, 연가곡 <백조의 노래>, E플랫 장조의 미사곡, 또한 유작으로 출판된 <3개의 소품>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는 C장조 교향곡 9번 <그레이트>를 개정했습니다. 이것은 단지 주요 작품들만입니다. 이 엄청난 작업량은 이미 그의 연약한 체력을 악화시켰음에 틀림없습니다. 적어도 B플랫 장조 소나타 21번의 첫 번째 두 악장은 눈물을 흘리지 않고 두 눈을 뜬 채 작별인사를 고하는 듯이 들립니다. 그렇더라도 이미 장티푸스로 인해 열에 시달리고 있던 슈베르트가 자신이 너무 일찍 죽는다고 생각했으리라 추정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일 것입니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죽음과 오랫동안 친숙해왔습니다. 그의 후기 형식은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만약 B플랫 장조 소나타 21번이 다른 작곡가들의 후기 작품들을 연상시킨다면 이것은 거의 확실한 우연입니다. 베토벤의 마지막 작품들로 B플랫 현악4중주 13번 Op. 130의 일부분으로 작곡되었으며, 그리고 “대푸가”(베토벤 현악4중주 6악장)를 대체하는 론도 피날레(슈베르트 소나타 21번 4악장)는 슈베르트의 B플랫 소나타 21번과 닮아있습니다. 두 악장 모두 이질적인 조성으로 시작하는 듯 보입니다. 두 악장은 우리를 현실로 되돌려 보냅니다. 그리고 역시 B플랫 장조로 되어 있는 모차르트의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은 평온함과 일종의 체념 그리고 노래하는 듯한 성격으로 슈베르트를 예견케 합니다. 슈베르트는 B플랫 장조부터 b단조라는 먼 조성에 이르기까지 조옮김하려는 생각을 가졌을 것입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In the opening movement of the B flat major Sonata Schubert achieves a magnificent harmonic projection of a very different kind. Just before the end of the development section, he quotes the main theme in the tonic, B flat major, and yet we see it as belonging to the world of D minor, as though from an extreme distance.
전개부의 시작에서 그랬듯이 B플랫 장조 소나타 21번 도입부 악장에서 슈베르트는 매우 다른 종류의 장엄한 조화의 계획을 성취합니다. 그는 전개부가 끝나기 직전에 주 주제를 기본 조성인 B플랫 장조로 등장시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먼 d단조의 세계에 속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When the opening theme returns a few lines later in its basic form our standpoint has changed completely. The theme is once again very close to us in its hymn-like delicacy.
도입부 테마가 몇 줄을 그것의 기본 형태로 나중에 되돌아갈 때 우리의 관점은 완벽하게 변하게 됩니다. 그 테마는 다시 찬송가 같은 고상함으로 매우 가깝게 다가옵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An understanding of this theme is decisive for our understanding of this movement. Unlike the composer Dieter Schnebel, I don't regard this trill as a disruptive foreign body. Nor, unlike August Halm, do I see it as a movable feast in comparison to the immovability of the theme. I see it as a third dimension that is part and parcel of the theme into whose depths we peer.
이 주제를 이해하는 것은 이 악장을 이해하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작곡가 디터 슈네벨과는 달리 저는 이 트릴을 파괴적인 외부 물체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또한 아우구스트 할름과 달리 저는 그것을 주제의 고정적인 성격과 비교해 이동 축제일로 보지도 않습니다. 저는 이 트릴이 주제의 일부이자 주제와 동등한 것으로 3차원적인 깊이를 지녔다고 봅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During the rest the sound dies away into infinity. It's not continuity that is interrupted here. Rather, a relationship is established between music and silence. The minor-key clouding of the trill also seems to me to be adumbrated in the solemn melancholy of the opening. It's a dark reflex of the G-F in the fourth bar and the following bars.
나머지 부분에서 음은 무한을 향해 사라집니다. 이는 연속성을 방해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음악과 침묵 사이의 관계를 확립합니다. 엄숙한 슬픔을 보여주는 제시부에서 트릴을 흐리는 단조 조성이 윤곽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네 번째 마디와 다음 마디들에서 G-F 음정의 어두운 반영입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All three of the 1828 sonatas share this interval as their main motif,
1828년에 작곡된 세 개의 소나타 모두 그것들의 주요 동기로서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as a major sixth,
장6도 음정으로서,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as a minor sixth,
단6도 음정으로서,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or as a three-note auxiliary.
또는 세 음표로 된 보조음으로서 이 음정을 공유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In the B flat major Sonata the interval of F-G flat-F in the bass dominates the whole exposition.
B플랫 장조 소나타 21번에서 베이스 성부의 F-G플랫-F 음정은 전 제시부를 지배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e opening theme immediately reappears in G flat major.
그 제1주제는 G플랫 장조로 바로 다시 나타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e first second-subject group later appears in F sharp minor.
첫 번째 제2주제 그룹은 나중에 f#단조로 나타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e development section begins on the fifth of F sharp, in C sharp minor.
전개부는 c#단조에서 F#의 5도 음정으로 시작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e second movement, too, is in C sharp minor. This is the most beautiful of all elegies for the piano. The Scherzo similarly vacillates. C sharp and F sharp can be heard here as D flat and G flat major.
2악장 역시 c#단조입니다. 이것은 피아노를 위한 모든 애가(엘레지)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3악장 스케르초는 유사하게 변동됩니다. C#과 F#는 D플랫과 G플랫 장조로 들릴 수 있습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e finale begins on the major sixth, G, which is comically stressed throughout the whole rondo, like an accent in the horns. The G flat is of significance here only as an auxiliary note.
장6도 음정인 G음으로 시작하는 마지막 4악장은 호른에서의 강세처럼 론도 전체에 걸쳐 코믹하게 강세가 주어져 있습니다. G플랫은 여기서 단지 보조음으로서만 중요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e minor sixth is finally vanquished before we reach the final stretta. The piece ends on a happy and almost carefree note. I find less sigh-filled weariness in this movement than humour and playful strength. In this respect, too, the movement is related to Beethoven's last work. Schubert then wrote the song "The Shepherd on the Rock" before he died. In its stylized grace it reveals nothing of Schubert the expressionist. Grillparzer's epitaph "The art of music here entombed a rich possession but even fairer hopes" is not true. No doubt Schubert's inexhaustible musical imagination concealed many more surprises. but whether he would have been able to create anything more beautiful than the B flat major Sonata is bound to remain an open question.
단6도 음정은 마침내 우리가 마지막 스트레타에 도달하기도 전에 극복됩니다. 그 소품은 즐겁고 대부분 태평스런 음표로 끝을 맺습니다. 저는 이 악장이 유머와 쾌활한 힘보다는 연약함으로 차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런 면에서 이 악장은 베토벤의 마지막 작품과 관련이 있습니다. 슈베르트는 그 후 그가 죽기 전에 <반석 위의 목자>라는 노래를 썼습니다. 이 곡의 양식화된 우아함은 표현주의자 슈베르트를 암시하는 그 어떤 것도 나타내지 않습니다. 그릴파르처가 슈베르트를 위해 쓴 묘비명 “음악은 여기 풍부한 업적과 더불어 훨씬 더 큰 희망을 얻었다”라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슈베르트의 지칠 줄 모르는 음악적 상상력은 많은 놀라움을 감추게 했던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가 B플랫 장조 소나타 21번보다 더욱 아름다운 어떤 것을 작곡할 수 있었느냐 하는 문제는 미결의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Recording: Radio Bremen. June 1976, June 1977 & December 1977. First Release on DVD. / 라디오 브레멘에서 녹화. 1976년 6월, 1977년 6월, 1977년 12월. DVD로 첫 발매.
여기까지 동영상을 보면서 타이핑을 하여 자막을 해석했는데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지루한 작업이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 나름대로 공부하는 방식인데 매번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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