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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12일 화요일
Brilliant Classics / Legendary Russian Pianists CD7 Vladimir Horowitz
CD7 Vladimir Horowitz /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01 Chopin Etude in c#, Op. 10 No. 4 / 쇼팽 에튀드 작품 10-4
02 Chopin Etude in Gb, Op. 10 No. 5 'Black Key' / 쇼팽 에튀드 작품 10-5 <흑건>
03 Chopin Etude in F, Op. 10 No. 8 / 쇼팽 에튀드 작품 10-8
04 Chopin Etude in F, Op. 25 No. 3 / 쇼팽 에튀드 작품 25-3
05 Chopin Mazurka No. 7 in f, Op. 7 No. 3 / 쇼팽 마주르카 7번 작품 7-3
06 Chopin Mazurka No. 27 in e, Op. 41 No. 2 / 쇼팽 마주르카 27번 작품 41-2
07 Chopin Mazurka No. 32 in c#, Op. 50 No. 3 / 쇼팽 마주르카 32번 작품 50-3
08 Chopin Scherzo No. 4 in E, Op. 54 / 쇼팽 스케르초 4번
09 Chopin Sonata No. 2 in b flat, Op. 35: I. Grave - Doppio movimento / 쇼팽 소나타 2번
10 Liszt Funerailles, S. 173 No. 7 / 리스트 장송곡
11 Liszt Sonata in b, S. 178: Lento assai - Allegro energico - Grandioso - / 리스트 소나타
12 Liszt Sonata in b, S. 178: Andante sosenuto - Quasi adagio -
13 Liszt Sonata in b, S. 178: Allegro energico - Piu mosso -
14 Liszt Sonata in b, S. 178: (Cantando espressivo) - Stretta quasi presto - Presto - Prestissimo -
15 Liszt Sonata in b, S. 178: Andante sostenuto - Allegro moderato - Lento assai
Vladimir Horowitz (1903-89) /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Principal Teachers: Vladimir Puchalski, Sergei Tarnowsky, Felix Blumenfeld / 블라디미르 푸할스키, 세르게이 타르노프스키, 펠릭스 블루멘펠트 사사
Prizes:
1963-89 - 21 Grammy Awards / 21개의 그래미상 수상
'Until I heard Horowitz, I did not realize the possibilities of the piano' (Rachmaninoff, "Gramophone", June 1931). Every generation has its 'Last Romantic'. In post-1960s mythology, notwithstanding Arthur Rubinstein (born 1887), Mieczyslaw Horszowski (1892), Shura Cherkassky (1909) and Earl Wild (1915), it was Horowitz - the man who knew Rachmaninoff, re-wrote Liszt, stormed Tchaikovsky before 17,000 in Hollywood Bowl, and came out of retirement four times. A 'provincial boy' brought up in Kiev and trained at the Conservatory there, master of the ordinary beginning and highly charged ending, son-in-law of Arturo Toscanini, he was a super-hero for some, a showman to others. 'To people I am a legend [...] my future is in my past and my past in my present. I must now make the present my future' ("New York Times", 17 March 1965). Favoring Steinways with gravity basses and high-altitude trebles, he could generate tsunamies of sound, dirt by the cart-load and the saddest of heart-signs - never more so than in Rachmaninoff's G sharp minor Prelude or Schumann's "Traumerei".
‘내가 호로비츠를 들을 때까지 나는 피아노의 가능성을 깨닫지 못했다(1931년 6월, 그라모폰 지에서 라흐마니노프).’ 모든 세대에는 ‘마지막 낭만주의자’가 있다. 1960년대 이후 아르투르 루빈스타인(1887년생), 미에치스와프 호르쇼프스키(1892년생), 슈라 체르카스키(1909년생), 얼 와일드(1915년생)가 있었음에도 전설은 호로비츠였다. 그는 라흐마니노프를 (잘) 알고 리스트를 편곡했으며 차이코프스키를 장담한 사람으로, 이후 할리우드 볼에서 17,000명 앞에서 연주했으며 은퇴를 4번 번복했다. 키예프에서 성장하여 그곳의 음악원에서 훈련받은 ‘지방 출신 소년’으로, 평범하게 시작하여 매우 열띠게 끝낸 거장인,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사위인 그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슈퍼 영웅, 다른 사람들에게 쇼맨(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그들을 즐겁게 하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에게 나는 전설이다. [...] 내 미래는 내 과거에 있으며 내 과거는 내 현재에 있다. 나는 이제 현재를 나의 미래로 만들어야 한다(1965년 3월 17일, 뉴욕 타임스).’ 주요한 저음역과 높은 고도의 고음역으로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선호하는 그는 소리의 쓰나미, 대량의 먼지, 가장 슬픈 마음의 신호를 만들어낼 수 있었는데, 라흐마니노프 전주곡 작품 32-12나 슈만의 <트로이메라이>(꿈)보다 더 그러한 적이 없었다.
Sviatoslav Richter both admired and deplored him: 'Phenomenal and off-putting and excellent (in the "conservatory" sense) and fantastic tone, and thoroughly contradictory,' he wrote in his notebook after watching "The Last Romantic". 'Such talent! And such a trivial mind [...] so artistic and yet so limited (listen to his little laughs and look at him).' (13 November 1987). 'A pianist! [...] But what about the music?' (13 October 1990).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는 다음과 같이 그에게 찬사를 보내면서 호평했다. - 그는 다큐멘터리 <마지막 낭만주의자>를 본 후 그의 음악수첩에 이렇게 썼다. ‘(“음악원”에서 말하는) 비범하고 좋아하기 힘들며 탁월하면서도 환상적인 음색으로 철저히 모순된다. 그런 재능! 그리고 그런 하찮은 마음은 [...] 매우 예술적임에도 매우 제한적이다. (그의 작은 웃음을 듣고 그를 보라.)’ - 1987년 11월 13일. ‘피아니스트! [...] 그러나 음악은 어떤가?’ - 1990년 10월 13일.
Chopin Mazurkas and Etudes / 쇼팽 마주르카와 연습곡
'As a young man, I was always criticised because I was unorthodox, particularly in Chopin. Why? Because I thought the late-Victorian tradition of Chopin playing was an exaggeration - just like the furniture and literature of the period - that Chopin himself must have played his music completely differently than his disciples' (1971).
‘젊은이로서 나는 항상 특이하기 때문에 항상 비판을 받았는데, 특히 쇼팽에서는 그렇다. 왜? 쇼팽 연주의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전통은 과장이었는데, 그 시대의 가구와 문학 작품과 마찬가지로 쇼팽 자신이 그의 음악을 제자들과 완전히 다르게 연주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1971).’
'Trifles, details, make greatness; but exaggeration, too much "greatness", too much "rubato", too much emphasis here and there - these reduce greatness to triviality. The rhythm of the mazurka is a case in point. [Their 3/4 rhythm] is, as every one knows, accented [...] strong, weak, strong. In some of the mazurkas I begin with that rhythm. But then presently I change and play several [bars] perhaps, or a whole phrase or two with no marked "mazurka" rhythm at all, but rather with the rhythm of the "phrase". Because these mazurkas are not absolute dances. They are poems!' (Horowitz in "The Etude", March 1932).
‘사소한 디테일이 위대함을 만들지만, 과장, 지나친 “위대함”, 지나친 “루바토”, 지나친 악센트가 여기저기에 있는데, 이런 것들은 사소함에 위대함을 줄인다. 마주르카의 리듬이 좋은 예이다. [3/4박자 리듬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 강, 약, 강의 악센트가 있다. 몇몇 마주르카에서 나는 그 리듬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현재 나는 아마도 여러 [마디들], 또는 전체 프레이즈, 또는 “마주르카” 리듬이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은 두 마디를 바꿔서 연주하지만, 오히려 “프레이즈”의 리듬으로 바꿔서 연주할 것이다. 이 마주르카들은 절대적인 춤곡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곡들은 시이다! (1932년 3월, <더 에튀드>에서 호로비츠)’
Chopin Sonata No. 2 in b flat, Op. 35 (1839) / 쇼팽 소나타 2번
'My duty is to make the audience feel [this is] a great sonata, even with its flaws. I must help it along; that is a big job of the interpretor. This is no trick, believe me. This is work. And some days, you can't do it.'
‘나의 임무는 청중에게 그 결점이 있더라도 [이것이] 훌륭한 소나타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나는 이 곡을 도와야 하는데, 해석자의 커다란 일이다. 이것은 속임수가 아니다, 믿어 달라. 이것은 작품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할 수 없다.’
Liszt Funerailles (by 1852) / 리스트 장송곡
From the "Harmonies poetiques et religieuses" cycle, this commemorates the 1848-49 Hungarian uprising and the Martyrs of Arad. 'Not simply the expression of personal sorrow but a symbol of that suffering felt by mankind when great ideals perish and the heroes who espoused them (of whatever nationality) are no more' (Alan Walker).
<시적이고 종교적인 선율> 전곡에서 이 곡은 1848~49년 헝가리 혁명과 아라드 순교자들을 기린다. ‘단순히 개인적인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이상들이 소멸되어 (모든 국적을 불문하고) 그들을 지지했던 영웅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 인류가 느끼는 고통의 상징이다(앨런 워커).’
Liszt Sonata in b, S. 178 (1851-53) / 리스트 소나타
In a legendary performance of long shadow, the 29-year-old Horowitz plays the sonata 'on the crest of a considerable waves, his name already having become synonymous with playing of white-knuckle bravura and intensity [...] Never again would we hear [him] consistently taking such risks or displaying such raw nervous energy in the recording studio [...] a unique fusion of fantasy, daring, keyboard colour and musical insight' (Bryan Crimp).
중요한 의미가 있는 전설적인 연주에서, 29세의 호로비츠는 ‘상당한 파도의 정점에 있는 소나타를 연주하는데, 그의 엄청난 이름은 이미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고도의 예술적 기교와 강렬함의 연주와 같은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 다시 한 번 우리는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지속적으로 위험을 감수하거나 그런 날것의 초조한 에너지, [...] 환상, 대담함, 건반의 색채, 음악적 통찰력의 독특한 결합을 보여주는 [그의 연주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브라이언 크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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