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0일 토요일

Renaud Capuçon, Alexandre Kantorow et Victor Julien-Laferrière aux Sommets Musicaux de Gstaad 2021



2021년 2월 6일 17시 그슈타트의 음악 정상회담

Eglise de Saanen / 자넨 교회

Renaud Capuçon, violin / 르노 카퓌송, 바이올린

Alexandre Kantorow, piano / 알렉상드르 캉토로프, 피아노

Victor Julien-Laferrière, cello / 빅토르 줄리앙-라프리에르, 첼로

Tchaikovsky Piano Trio "In Memory of a Great Artist", Op. 50 /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트리오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


이번에도 코로나19 때문에 무관중으로 진행된 연주회.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다.

Alexandre Kantorow - Live in Paris (30 January 2021)


https://live.philharmoniedeparis.fr/concert/1121222/alexandre-kantorow-brahms-rachmaninoff.html


알렉상드르 캉토로프 - 2021년 1월 30일 파리 리사이틀

Philharmonie 1 (Grande salle Pierre Boulez) / 필하모니 1 (피에르 불레즈 대강당)


Program

Brahms 4 Ballades, Op. 10 / 브람스 4개의 발라드 작품 10

No. 1 in d: Andante

No. 2 in D: Andante

No. 3 in b: Intermezzo. Allegro

No. 4 in B: Andante con moto


Rachmaninov Sonata No. 1 in d, Op. 28 /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1번

I. Allegro moderato

II. Andante

III. Allegro molto


Bach/Brahms Chaconne in d for the left hand / 바흐 샤콘느 (브람스의 왼손을 위한 편곡)


코로나19 때문에 무관중으로 진행된 연주회.

2021년 2월 19일 금요일

NIFC / Kate Liu - Winner of the 17th International Chopin Piano Competition 2015



https://www.youtube.com/watch?v=0goDGearksw&list=PLTmn2qD3aSQtkFX17r3hIEAqDAu887lhY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조성진, 샤를 리샤르-아믈랭에 이어 3위와 마주르카 특별상을 차지했던 미국 출신의 케이트 리우가 콩쿠르에서 들려주었던 쇼팽 연주를 모은 ‘블루 시리즈’ 음반이다. 협주곡을 제외한, 케이트 리우가 콩쿠르 예선과 결선에서 연주한 모든 연주가 수록되었다. 리우는 이번 콩쿠르 수상자 중에서 가장 시적인 감흥이 두드러진다는 평을 받았는데, 이 음반은 그 좋은 증거가 될 것이다. 리우는 어느 곡에서나 개성이 강한 해석을 선보이며, 특히 발라드와 스케르초는 대단히 아름답다. 리우 특유의 섬세한 터치가 돋보이는 소품들도 매력적이다.


CD1

01 Nocturne No. 17 in B, Op. 62 No. 1 / 녹턴 17번

02 Etude in a, Op. 10 No. 2 / 연습곡 작품 10-2

03 Etude in Gb, Op. 10 No. 5 / 연습곡 작품 10-5

04 Fantasie in f, Op. 49 / 환상곡

05 Ballade No. 4 in f, Op. 52 / 발라드 4번

06 Waltz No. 4 in F, Op. 34 No. 3 / 왈츠 4번

07 Scherzo No. 3 in c#, Op. 39 / 스케르초 3번

08 Andante spianato in G, Op. 22 / 안단테 스피아나토

09 Grand Polonaise in Eb, Op. 22 / 화려한 대 폴로네즈


CD2

01 Polonaise-Fantaisie in Ab, Op. 61 / 환상 폴로네즈

02 Impromptu No. 3 in Gb, Op. 51 / 즉흥곡 3번

03 3 Mazurkas, Op. 56 No. 1 in B / 3개의 마주르카 작품 56

04 3 Mazurkas, Op. 56 No. 2 in C

05 3 Mazurkas, Op. 56 No. 3 in c

06 Sonata No. 3 in b, Op. 58: I. Allegro maestoso / 소나타 3번

07 Sonata No. 3 in b, Op. 58: II. Scherzo. Molto vivace

08 Sonata No. 3 in b, Op. 58: III. Largo

09 Sonata No. 3 in b, Op. 58: IV. Finale. Presto non tanto



The United States has long been a force to reckon with at the International Fryderyk Chopin Piano Competition - think of Garrick Ohlsson and Kevin Kenner - but for the first time in 2015 there were two American prizewinner alongside two Canadians. Singapore-born yet domiciled in the States since she was eight years old, Kate Liu quickly established herself as one of the favourites in Warsaw and beyond, gaining the greatest support also among listeners to Polish Radio 2. The feelings were reciprocated, and she told the same radio station, 'I have a feeling of comfort in playing Chopin's music, because there is a lot of freedom in it. Obviously, you have to play what the composer wrote, and properly interpret his instructions, but in each performance of Chopin, there is also room for your own feelings, for playing from the bottom of your heart.' In the final reckoning, Liu came away with not only the third prize but also the award for the best mazurkas, proving that even this most personal of national styles now belongs to the global village.


미국은 오랫동안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고려할 만한 세력이었다. - 개릭 올슨과 케빈 케너를 생각해보라. - 그러나 2015년에 처음으로 2명의 캐나다인(2위와 5위)과 함께 2명의 미국인 입상자(3위와 4위)가 나왔다. 싱가포르에서 태어나 8세 때부터 미국에서 살고 있는 케이트 리우는 바르샤바와 그 밖의 지역에서 가장 선호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로 빠르게 자리매김하여 폴리시 라디오 2의 청취자들 사이에서 가장 큰 지지를 얻었다. 그 느낌들은 화답되었으며, 그녀는 같은 라디오 방송국에 이렇게 말했다. ‘쇼팽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되게 자유로워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당연히 이 작곡가가 쓴 것을 연주해야 하며, 그가 지시하는 것들을 적절하게 해석해야 되지만, 쇼팽의 각 연주에는 각 느낌들을 위한 방도 있는데, 진심에서 나오는 연주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리우는 3등상뿐만 아니라 최우수 마주르카 특별상도 받았으며, 이 가장 개인적인 민족풍조차도 이제 지구촌에 속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Documenting completely Liu's solo performances at the 17th International Fryderyk Chopin Piano Competition, these discs open with her repertoire for the First Stage, where she already gained attention for her individual yet idiomatic interpretations - highly atmospheric, too, as can be heard here in the very first track. The Nocturne in B major, Op. 62 No. 1, comes from a pair of works that were Chopin's last essays in this genre (1846), yet for all Chopin's advances over the short span of his creative life, the straightforward ABA aria principle remains the inspiration. It has been described as unfolding like a fevered dream, an impression reinforced by the rich embellishment of its reprise.


제17회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리우의 독주를 완전히 기록한 이 음반은 이미 그녀의 개성적이지만 자연스러운 해석으로 주목을 받았던 1라운드 레퍼토리로 시작되는데, 첫 번째 트랙에서 들을 수 있듯이 여기에서의 분위기도 매우 높다. 녹턴 17번은 이 장르(1846)에서 쇼팽의 마지막 에세이였던 한 쌍의 작품 62에서 나왔지만, 쇼팽의 창작 인생의 짧은 기간 동안의 모든 발전에 대해 직접적인 ABA 아리아 원칙은 영감으로 남아있다. 그것은 열렬한 꿈처럼 펼쳐지는 것으로 묘사되어왔으며, 그 재현의 풍부한 장식으로 강화된 인상이다.


Contestants were also expected to show their technical prowess early on, with a selection of two Etudes. Liu chose a pair from the Op 10 set. Composed between 1829 and 1832, on either side of his departure from Poland, Op. 10 shows the composer codifying his radical ideas about piano technique. The A minor Etude, Op. 10 No. 2, is called the 'Chromatic' for obvious reasons, consisting of a perpetual chromatic scale for the piece's entire duration; playing on the black keys is the goal of the G flat major Etude, Op. 10 No. 5. One of four works Chopin wrote incorporating 'Fantasy' into its title, the Fantasy in F minor, Op. 49, points already (1841) towards the innovation of his maturity, incorporating such material as a funeral march, heroic march and chorale into a single-movement work that, somewhat akin to Liszt's big B minor Sonata, even contains brief 'slow movement'.


참가자들은 또한 2개의 연습곡을 선택하여 초기에 그들의 테크닉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되었다. 리우는 작품 10 세트에서 한 쌍을 선택했다. 1829~1832년 폴란드 시절에 작곡된 작품 10은 그가 피아노 테크닉에 대한 급진적인 생각들을 성문화한 작곡가라는 것을 보여준다. 연습곡 작품 10-2는 분명한 이유들로 인해 ‘반음계’라고 불리는 곡으로, 작품의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끝없는 반음계 스케일로 구성되며, 작품 10-5의 목표는 검은 건반들을 연주하는 것이다. 쇼팽이 ‘환상’을 제목에 담아 쓴 4개의 작품 중 하나인 <환상곡>(1841)은 이미 짧은 ‘느린 악장’을 포함하는 리스트 소나타와 유사한 단악장 작품에 장송 행진곡, 영웅의 행진, 코랄 같은 소재를 통합하여 성숙함의 혁신을 가리킨다.


Already by the Second Stage, Dorata Szwarcman was able to declare in the "Chopin Courier", 'I admit that Kate Liu is one of my favourites... What splendid music-making! Every sound speaks to the audience, each one has its own justification.' Such sentiments are definitely supported by Liu's performance of the Ballade in F minor, Op. 52. The last (1842) of Chopin's four essays, it stands as one of the composer's supreme achievements that (in the words of Jim Samson) 'is a synthesis of many aspects of his art, ranging from the most popular to the most severe.' Somewhere in between lies the elegance of the Waltz in F major, Op. 34 No. 3, written before 1838 and brimming with sparkling bravura.


이미 2라운드에서 도라타 슈바르츠만은 <쇼팽 쿠리어>에 다음과 같이 고백할 수 있었다. ‘나는 케이트 리우가 내가 선호하는 사람들 중 하나라는 것을 인정한다... 정말 훌륭한 연주! 모든 소리가 청중에게 말하는데, 각각 타당한 이유가 있다.’ 이러한 감정들은 리우의 발라드 4번 연주에서 확실히 뒷받침된다. 쇼팽이 쓴 4편의 에세이 중 마지막(1842)인 이 곡은 (짐 샌슨의 말을 빌리자면) ‘가장 인기 있는 것부터 가장 심각한 것까지 그의 예술의 여러 가지 면을 종합한’ 작곡가의 최고의 업적 중 하나이다. 그 사이 어딘가에 1838년 이전에 작곡된 왈츠 4번의 우아함이 있으며, 반짝이는 화려함(고도의 예술적 기교)이 가득하다.


Despite the jovial lightness implied in their title, high spirits are hard to find in Chopin's very substantial four Scherzos. The last work inspired by the wintry wildness of Valldemossa, his Scherzo in C sharp minor, Op. 39, is the most concise of the set and requires - and receives from Liu - brilliant attack, as well as introspection in the chorale-like second subject. The extrovert style of the composer's earlier years is well summed up by the second part of the "Andante spianato et Grande Polonaise", but there are deeper layers within if the pianist is willing to find them, and here Dorata Szwarcman was again able to comment that, 'For the first time in this competition, the "Andante spianato" and "Grande Polonaise" were not "about nothing".'


제목에 암시된 경쾌한 가벼움에도 불구하고, 쇼팽의 매우 실질적인 4개의 스케르초에서 높은 영혼을 찾기란 어렵다. 발데모사의 거친 겨울에서 영감을 얻은 마지막 작품인 스케르초 3번은 이 세트 중에서 가장 간결하며 - 그리고 리우에게서 받은 - 코랄 같은 두 번째 주제에 대한 성찰뿐만 아니라 화려한 어택(한 개의 음표 또는 악구를 명쾌하고 민활하게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작곡가의 초기 외향적인 스타일은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대 폴로네즈>의 두 번째 부분으로 잘 요약되어 있지만, 피아니스트가 기꺼이 찾을 수 있다면 더 깊은 층들이 있으며, 여기에서 도라타 슈바르츠만은 다음과 같이 다시 언급할 수 있었다. ‘이 콩쿠르에서 처음으로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대 폴로네즈가 별것도 아닌 게 아니었다.’


A major test for any player reaching the Third Stage is the "Polonaise-Fantasy" in A flat major, Op. 51. A late and revolutionary work (1846) of structural complexity, it poses the intriguing question - like some of the late Mazurkas - as to where Chopin's involvement with Poland's national dances might have taken him. Like the Cello Sonata, it certainly signals a new direction in Chopin and points prophetically towards music of a later era than its time of composition. Yet it still requires all the discipline needed when playing that most Polish of dance forms, the polonaise: it is, as it were, a polonaise about the polonaise. Liu never lost sight of this thread, while conjuring up dark and frenzied pictures in sounds that might have suggested to Polish listeners the epic scenes of Artur Grottger.


3라운드에 도달하는 모든 연주자를 위한 주요 테스트는 <환상 폴로네즈>이다. 복잡한 구조를 지닌 후기의 혁명적인 작품인 이 곡(1846)은 - 몇몇 후기 마주르카처럼 - 쇼팽의 폴란드 민족 무용에 대한 몰두가 그를 어디로 데려갔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을 제기한다. 첼로 소나타와 마찬가지로, 이 곡은 쇼팽의 새로운 방향을 알리며 작곡 당시보다 후기 시대의 음악을 예언적으로 가리킨다(암시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폴란드 춤곡 형태인 폴로네즈를 연주할 때 필요한 모든 훈련이 여전히 필요한데, 이 곡은 말하자면 폴로네즈에 대한 폴로네즈이다. 리우는 이 맥락을 놓치지 않으면서, 폴란드 청취자들에게 아르투르 그로트게르(폴란드 낭만주의 화가)의 장대한 장면들을 제안했을지도 모르는 어둡고 미친 듯한 소리들을 떠올리게 했다.


Chopin himself described his Impromptu in G flat major, Op. 51 as an 'occasional piece', and taken together, his four Impromptus hardly count among the composer's most significant music. Yet seen as an extension of the "bel canto" impulse that runs through his music - and even perhaps like expanded Nocturnes - the Impromptus deserve to be taken seriously. As Chopin's last work in this genre, the Impromptu in G flat major (1842) is music of calm reflection and great distinction. Dating from the following year, the cycle of three Op. 56 Mazurkas are far removed from the earthy dances that inspired them - notwithstanding the drone bass at the start of the middle piece - and take on an introspective, nostalgic identity of their own. It was these performances that earned Liu the special mazurkas prize; interestingly, the Op. 56 set was also the passport to success in this department when Daniil Trifonov won 3rd prize in 2010.


쇼팽은 자신의 즉흥곡 3번을 ‘드문 곡’으로 묘사했으며, 종합하자면 4개의 즉흥곡은 작곡가의 가장 중요한 음악 중에는 거의 연주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음악을 통해 흐르는 충동적인 “벨칸토”(아름다운 노래)의 연장선으로 - 심지어는 어쩌면 확장된 녹턴처럼 - 보이며 즉흥곡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일 가치가 있다. 이 장르에서 쇼팽의 마지막 작품인 즉흥곡 3번(1842)은 차분한 성찰의 음악이자 탁월한 성과이다. 이듬해부터 3개의 마주르카 작품 56은 이 곡들에 영감을 준 소박한 춤들에서 동떨어져 있으며 - 중간에 있는 마주르카의 시작 부분에 있는 드론 베이스(낮은 성부에서 길게 지속되는 음들)에도 불구하고 - 이 곡들의 성찰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정체성을 취한다. 리우는 바로 이 곡들을 연주하여 마주르카 특별상 받았다. 흥미롭게도 작품 56은 다닐 트리포노프가 2010년에 3위를 했을 때 이 분야에서의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여권이기도 했다. (2005년에는 우승자 라파우 블레하치가 이 곡을 연주하여 마주르카 특별상을 받았다.)


Written an Nohant, George Sand's estate, in 1844, the Sonata in B minor, Op. 58, was Chopin's last large-scale work for solo piano (only the Cello Sonata was to come later). When it came to the form of the sonata, German hegemony was an yet unchallenged and Chopin, having resourcefully circumvented it in his B flat minor Sonata, Op. 35, came closer to meeting it in Op. 58 that anywhere else in his output. Even Schumann had thought that the enigmatic finale that follows the earlier work's Funeral March was a 'sphinx with a mocking smile', but nothing is mocked in the affirmative and heroic, rondo finale of Op. 58, and Liu fully captures its impetuosity.


1844년 노앙에 있는 조르주 상의 저택에서 작곡된 소나타 3번은 쇼팽이 피아노 독주를 위해 쓴 마지막 대규모 작품이었다. (첼로 소나타만 나중에 나왔다.) 소나타의 형태에 대해서라면, 독일의 헤게모니(패권)는 아직 도전적이지 않았으며, 쇼팽은 소나타 2번에서 이걸 능숙하게 우회하여 자신의 작품의 다른 곳에 있는 소나타 3번에서 그것을 만나는 것에 가까이 왔다. 슈만조차도 초기 작품(소나타 2번)의 장송 행진곡(3악장)에 이어지는 불가사의한 피날레(4악장)를 ‘조롱하는 미소를 지닌 스핑크스’라고 생각했지만, 소나타 3번의 긍정적이면서도 영웅적인 론도 피날레(4악장)에서 조롱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리우는 그 추진력을 완전히 포착한다.


John Allison / 존 앨리슨 글



Kate Liu has won Third Prize and was awarded the Polish Radio Prize for the best performance of Mazurkas, in the 17th International Fryderyk Chopin Piano Competition [2015]. Born in 1994, in Singapore, she studied with Alan Chow, Micah Yui and Emilio del Rosario at the Chicago Institute of Music. She is currently preparing her bachelor's degree at the Curtis Institute of Music, under the guidance of Robert McDonald. She has won prizes in the 3rd Asia-Pacific International Chopin Piano Competition, competitions in Montreal, at the Eastman School of Music, at Hilton Head, the Thomas and Evon Cooper in Oberlin, in New York, the Music Teachers National Association Competition and the Louisiana International Competition. Twice a recipient of a grant from the American Chopin Foundation (2011 and 2012), she has given recitals in New York (incl. Carnegie Hall, Subculture Arts Underground, Salmagundi Club, Temple Emanu-El) and Washington DC (Kennedy Center, Phillip's Collection), on television (WTTW Chicago) and radio ('From the Top' programme on American public radio and a programme broadcast by WFMT radio of Chicago). At the Chicago Symphony Center, she performed Schubert's Fantasy in F minor four-handed with Lang Lang. She has performed with the Daegu (South Korea), Montreal, Cleveland, Hilton Head, Evanston, Skokie Valley and Rochester orchestras.


케이트 리우는 2015년에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7회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했으며 마주르카 최우수 연주로 폴란드 라디오 특별상도 받았다. 1994년 싱가포르에서 태어난 그녀는 시카고 음대에서 애런 초우, 미카 유이, 에밀리오 델 로자리오를 사사했다. 그녀는 현재 로버트 맥도널드의 지도하에 커티스 음대에서 학사 학위를 준비하고 있다. 그녀는 2015년 대구에서 열린 제3회 아시아-퍼시픽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시니어 부문 1위, 2014년 캐나다에서 열린 제13회 몬트리올 국제음악콩쿠르 파이널리스트, 2012년 뉴욕 주 로체스터 시에서 열린 이스트만 음대 청소년 국제피아노콩쿠르 3위, 2011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열린 제16회 힐턴 헤드 청소년 국제피아노콩쿠르 6위, 2010년 오하이오 주 오벌린 음악원에서 열린 제1회 토머스-에본 쿠퍼 국제음악콩쿠르 3위, 2010년 제5회 뉴욕 국제피아노콩쿠르 1위 및 현대음악 작품 최우수 연주 특별상, 2007년과 2008년 일리노이 주에서 열린 전국음악교사협회(MTNA) 볼드윈 주니어 콩쿠르 1위, 2009년 루이지애나 국제피아노콩쿠르 주니어 부문 1위에 입상했다. 미국 쇼팽 재단 장학금 2회 수상자(2011년과 2012년)인 그녀는 뉴욕(카네기홀, 서브컬처 아트 언더그라운드, 살마군디 클럽, 템플 에마누-엘), 워싱턴 DC(케네디 센터, 필립스 컬렉션), 텔레비전(WTTW 시카고), 라디오(미국 공영 라디오 프로그램 <프롬 더 탑> 및 시카고 WFMT 라디오 중계 프로그램)에서 리사이틀을 가졌다. 시카고 심포니 센터에서는 랑랑과 슈베르트 4개의 손을 위한 환상곡을 협연했다. 그녀는 대구 경북도립교향악단,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힐턴 헤드 심포니 오케스트라, 에번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스코키 밸리 심포니 오케스트라, 로체스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2016년에 선물 받았던 음반인데 내가 케이트 리우의 팬도 아니고 내 취향도 아니라고 했음에도 주셨다는... 시간이 흘러 2019년에 리핑해서 외국 분들과 공유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들여다보니 협주곡 녹음이 없다. 이게 연주자의 의견을 반영해서 음반 트랙에 들어갈 레퍼토리를 정하는 거라서... 2010년에는 입상자 6명에게 두 장을 발매해줬고 나머지 4명은 한 장씩 발매해줬는데 2015년에는 4위까지 2장이고 나머지가 1장씩이다. 케이트 리우가 레코딩 아티스트로서 음반을 낸 적이 없으므로 그거 아니면 딱히 얘기할 거리가 없다. 지난 5년 동안 반강제로 콘서트 피아니스트들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나랑 별로 맞지 않았다. 케이트 리우가 쇼팽 콩쿠르에서 음악을 그린다는 평이었다고 들었다. 야마하 피아노를 스타인웨이처럼 소화한다는 게 느껴지기도 했고. 솔직히 관심이 크게 가지 않는다. 관심이 조금이라도 가려면 나한테 콩쿠르 실황 음반 말고 다른 음반이 있으면 된다.

American Pianist / Garrick (Olof) Ohlsson


https://en.wikipedia.org/wiki/Garrick_Ohlsson

http://en.chopin.nifc.pl/chopin/persons/detail/id/2872

https://www.facebook.com/GarrickOhlsson/timeline?ref=page_internal

http://www.allmusic.com/artist/garrick-ohlsson-mn0000756978

http://www.bach-cantatas.com/Bio/Ohlsson-Garrick.htm

http://www.opus3artists.com/artists/garrick-ohlsson

http://www.hyperion-records.co.uk/a.asp?a=A1853

http://gayinfluence.blogspot.kr/2013/05/garrick-ohlsson.html


건반악기의 표현력과 정통 피아니즘을 고수하는 이 시대 마지막 거장. 쇼팽 음악과 라흐마니노프 음악 등에 해박한 지식과 설득력 있는 해석으로 널리 알려진 정통 피아니스트.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에는 미국 출신의 피아니스트이면서도 폴란드의 국가적 영웅이 되다시피 했으며 르몽드 지는 ‘쇼팽 등 특히 낭만파 음악 해석에 있어 탁월한 기량을 자랑한다’고 격찬했다.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개릭 올슨은 낭만파 작곡가들의 작품 외에도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등 폭넓은 레퍼토리를 가진 연주자로 RCA, 버진 클래식스, 텔락, 넌서치 등 유수의 음반사에서 녹음 활동을 해왔다. 미국 태생으로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은 순수 미국인 연주자로서 밴 클라이번과 앙드레 프레빈 등의 뒤를 이어가고 있는 중견 연주자. 실업가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한다. 조기 수재 교육을 받은 뒤, 웨스트체스터 음악원에서 18세로 줄리아드 음악원에 진학. 1979년에 내한 공연을 가졌다.


올슨은 신장 190cm, 체중 240파운드(약 109kg)라는 거인으로, 좌우 양손 모두 1옥타브와 4도 내지 5도까지 닿는다고 한다. 이 야구 글러브와 같은 손으로 난곡을 쉽게 쳐 내는 모습은 정말 시원하다. 연주는 외모처럼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하여 병적인 그늘 따위는 털끝만치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테크닉에 내맡긴 채 그냥 척척 친다는 것은 결코 아니고, 청년 음악가다운 상쾌한 서정도 충분히 나타내고 있다. 음색의 변화도 좋아서 터치로 컨트롤해서, 싱싱한 음악을 노래하게 하는 모습은 역시 보통의 테크니션은 아니다. - 음악사 대도감


타건이 강한 호쾌한 스타일로 유명했지만 초기에는 그 특질이 자칫 표현면에서 경박하다는 인상을 주었는데 최근의 연주에서는 성능 좋은 스포츠카와 같은 예전의 이미지가 많이 사라졌다. 1989년 카토비체(폴란드)에서 가진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 라이브 녹음(폴란드 방송 교향악단)에서는 차분하게 낭만적인 서정성을 추구하는 자세를 느낄 수 있어 그 변모가 인상적이다. 레퍼토리도 자신의 스타일을 세련되게 하기 위해 낭만주의의 대곡인 부조니의 피아노 협주곡(도흐나니/클리블랜드 관현악단 외, 네덜란드 필립스)을 녹음하는 등 의욕을 보이고 있다. - 노모토 이사오


“수정처럼 맑은 소리를 내는 피아니스트”라는 찬사를 받았다. - 1979년 5월 22일 경향신문



Garrick Ohlsson is a pianist with a flawless technique, a strong grasp of form, and a clean, non-romanticized style of performing.


뛰어난 테크닉, 강한 구성, 깔끔하고, 낭만적이지 않은 연주 스타일을 가진 피아니스트.


Garrick (Olof) Ohlsson was born on 3 April 1948 in White Plains, Bronxville, New York. Son of a Swedish father and Italina (Sicilian) mother, Garrick Ohlsson took up the piano at the age of eight at the Music Conservatory of Westchester, New York, with Thomas Lishman. After he saw Rubinstein in concert, he told interviewer Michael Steinberg, his choice of career was set. "I was blasted into orbit. And that's when I said in my mind...when other little boys say, 'I want to be a fireman,' that's what I want to do." In 1961, he entered the preparatory course of the Juilliard School when he was 13, where he studied with Sascha Gorodnitzki; from 1968 remaining at Juilliard for his bachelor's degree in music (earned in 1971), he studied with Rosina Lhévinne. Private studies with Olga Barabini (a pupil of Claudio Arrau and Josef Hofmann), Irma Wolpe, and Claudio Arrau rounded out Ohlsson's education. He made his first public appearance at the age of 12, in 1960. During his student days he was a whiz at math and languages (he speaks English, Polish, Italian, Spanish, French, German and Swedish).


개릭 올슨은 1948년 4월 3일 뉴욕 주 브롱스빌 화이트플레인스의 스웨덴계 아버지와 이탈리아계(시칠리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8세에 뉴욕 웨스트체스터 음악원에서 토머스 리쉬먼과 함께 공부.

9세에 콘서트에서 루빈스타인을 본 후 그는 그의 경력에 대한 선택이 설정되었다고 인터뷰 진행자인 마이클 스타인버그에게 말했다. “나는 궤도로 쏘아 올려졌다. 그리고 내가 내 마음에 말했을 때였다...다른 소년이 ‘나는 소방관이 되고 싶다’고 말할 때 그게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1960년 12세에 첫 공개 연주회.

1961년 13세에 줄리아드 학교 예비 과정에 입학해서 사샤 고로드니츠키 사사.

1968년부터 로지나 레빈 사사.

1971년 학사 학위.

올가 바라비니(클라우디오 아라우와 요제프 호프만의 제자), 이르마 볼페, 클라우디오 아라우와의 개인 교습은 올슨의 교육을 완성시켰다.

학생 시절에 수학과 언어(영어, 폴란드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웨덴어)에서 수재.


Although Ohlsson is especially noted for his performances of the works of Chopin, Mozart, Beethoven and Schubert, he has a broad range from Bach and Busoni to Copland and Gershwin. Writing in The New York Times, music critic Allan Kozinn has characterized Ohlsson's repertory as "huge."


올슨은 특히 쇼팽,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에 뛰어나지만 바흐와 부조니부터 코플랜드와 거슈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다.


After winning First Prizes at the 1966 Busoni Competition in Italy and 1968 Montréal Piano Competition, he made his New York recital debut on January 5, 1970. Later that year he gained international recognition when he became the first American pianist to win the prestigious quinquennial Chopin Competition in Warsaw. A Polish writer described Ohlsson as a "near-butterfly" for his ability to traverse the entire spectrum of 18 dynamic degrees discernible on the modern piano, from the thundering fortississimo to the finest pianississimo, with reference also to his height (6 foot, 4 inches), weight (225 lbs.), and strech of hands (an octave and 5th in the left hand and an octave and a 4th in the right hand).


부조니 콩쿠르와 몬트리올 콩쿠르 우승 후 1970년 1월 5일, 뉴욕 데뷔. 폴란드 작가는 그의 외모(6피트 4인치의 키, 225파운드의 체중, 도~솔까지 12도가 닿는 왼손, 도~파까지 11도가 닿는 오른손)에 대한 언급과 함께 우레와 같은 포르티시시모부터 더없이 아름다운 피아니시시모까지 현대 피아노로 식별 가능한 18개 동적도의 전체 스펙트럼을 가로지르는 그의 능력에 대해 “나비에 가깝다”고 묘사했다.


Working with impresario Sol Hurok, he went on his first grand tour of Europe in 1969. His performances at the Santa Cecilia Academy in Rome and the La Fenice in Venice were particularly well received. After his triumph at the Chopin Competition, Ohlsson became a very popular pianist with a heavy invitations overload. American newspapers wrote of him as a national hero; Sol Hurok organized a major US tour, consisting of over 40 concerts. Since that time, Mr. Ohlsson has continued to tour extensively, playing with the best conductors and orchestras in the world. In 1998 he inaugurated the Beijing Music Festival, performing with the Berlin Radio Orchestra under Rafael Frühbeck de Burgos. In 1999, in celebration of the 150th anniversary of Chopin's death, he gave a series of Chopin recitals at European festivals, including La Roque d'Anthéron, the Fêtes Romantiques de Nohant, and the Klavier-Festival Ruhr in Essen. Mr. Ohlsson often performs in Poland as a recitalist and soloist with symphonic orchestras. His playing is a favourite of Polish audiences, highly praised for the virtuosity and grandeur of his interpretations of Chopin, Liszt and Scriabin.


연출가 솔 휴록과 함께 작업하면서 1969년 유럽에서 첫 그랜드 투어.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 아카데미’와 베니스의 오페라 극장 ‘라 페니체’에서의 연주가 특히 반응이 좋았다. 쇼팽 콩쿠르 우승 후 엄청난 초청을 받는 매우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미국 신문은 그를 ‘국가 영웅’이라고 썼다. 솔 휴록은 40개 이상의 콘서트로 이루어진 주요 미국 투어를 조직했다. 그 이후 올슨은 세계의 최고 지휘자 및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면서 폭넓게 투어를 계속했다. 1998년 라파엘 브뤼벡 데 부르고스의 지휘로 베를린 라디오 오케스트라와 함께 베이징 음악제 개막 연주. 1999년 쇼팽 서거 150주기 기념 행사로 라 로크 당테롱, 노앙의 낭만적인 휴일, 에센의 루르 클라비어-페스티벌을 포함한 유럽 페스티벌에서 쇼팽 리사이틀 시리즈. 폴란드에서 종종 리사이틀리스트 및 솔로이스트로서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 폴란드 청중이 그의 연주를 좋아하며, 그의 쇼팽, 리스트, 스크리아빈 해석은 뛰어난 연주 기교와 장엄함으로 극찬 받는다.


In 1966 he won the Busoni Competition in Italy, and in 1968, the Montreal Piano Competition, but it was his 1970 victory in the Chopin Competition in Warsaw that launched his career. He was the first American winner, and his victory gained some of the same kind of attention as had Van Cliburn's Tchaikovsky Competition triumph a little over a decade earlier. A Warsaw critic called Ohlsson a "near-butterfly" of a pianist, and the young pianist had a distinctive image to go with his credentials.


1966년 이탈리아 부조니 콩쿠르와 1968년 몬트리올 콩쿠르에서 우승했지만 1970년 바르샤바 쇼팽 콩쿠르 우승은 그의 경력의 시작이었다. 그는 첫 미국인 우승자가 되었고, 그의 우승은 불과 12년 전에 밴 클라이번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것과 같은 관심을 받았다. 바르샤바 비평가는 올슨을 “나비에 가까운” 피아니스트로 불렀고, 젊은 피아니스트는 그의 자격과 어울리는 독특한 이미지를 가졌다.


Garrich Ohlsson has made nearly a dozen tours of Poland, where he retains immense personal popularity. He has appeared with major symphony orchestras in Europe, USA, Japan, New Zealand Symphony Orchestra. In the late 1980's and early 1990's he appeared with the Cleveland Orchestra, Chicago Symphony Orchestra, Philadelphia Orchestra, Pittsburgh Symphony Orchestra, and San Francisco Symphony Orchestra in the USA; European engagements with the Münchner Philharmoniker, North German Radio Orchestra, Rotterdam Philharmonic Orchestra, all the London orchestras; City of London Festival, South Bank Summer Music, Promenade Concerts with BBC Symphony Orchestra; Festivals, recitals, concerts in Bergen, Prague, Sofia, Dubrovnik, Tivoli. He has also performed with symphony orchestras of Saint Louis Symphony Orchestra, Cincinnati Symphony Orchestra, Indianapolis Symphony Orchestra, Houston Symphony Orchestra, Baltimore Symphony, Pittsburgh Symphony Orchestra, Los Angeles Philharmonic Orchestra, Seattle Symphony Orchestra, Denver Symphony, National Symphony Orchestra (Washington D.C.), and Berkeley; and the National Arts Centre, Saint Paul Chamber Orchestra, and the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at Lincoln Center.


개인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보유하고 있는 폴란드에서 12회에 가까운 투어를 가졌다. 유럽, 미국, 일본의 주요 심포니 오케스트라 및 뉴질랜드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미국에서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 유럽에서는 뮌헨 필하모닉, 북독일 라디오 오케스트라,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런던의 모든 오케스트라와 협연. 런던 시 페스티벌, 사우스뱅크 여름음악제,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프롬나드 콘서트에 출연. 베르겐, 프라하, 소피아, 두브로브니크, 티볼리에서 페스티벌, 리사이틀 및 콘서트. 세인트루이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신시내티 심포니 오케스트라, 인디애나폴리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볼티모어 심포니,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시애틀 심포니 오케스트라, 덴버 심포니, 워싱턴 DC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버클리 오케스트라, 국립예술센터 오케스트라, 세인트폴 실내 오케스트라와 협연 및 링컨 센터에서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


Ohlsson played with Eugene Ormandy and the Philadelphia Orchestra, gave a solo recital in New York and played at the White House for President Nixon. In the early 1970s he toured Europe extensively, made a three-week tour of Japan and made his London orchestral debut playing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 3 in D minor Op. 30. During the 1970s he made a huge number of appearances, playing around ninety concerts a season. He reduced this, but has continued to play regularly in North America, Europe, the Far East and New Zealand. Today he is in great demand, particularly in America, where in one season he can appear with all of the major orchestras. During the 1997–1998 season Ohlsson performed complete cycles of Chopin’s works in London, Paris and Warsaw and in the mid-1990s gave the cycle in New York and many other American cities. In the summer of 2003 he appeared at many music festivals including Tanglewood, Ravinia, Riverbend, and Mostly Mozart.


유진 오먼디의 지휘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협연.

뉴욕에서 독주회.

닉슨 대통령을 위해 백악관에서 연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으로 런던 데뷔.

1970년대 동안 한 시즌에 90여 회 이상 연주.

연주 횟수를 줄였으나 북아메리카, 유럽, 동아시아, 뉴질랜드에서 정기적으로 연주.

한 시즌에 모든 주요 오케스트라와 협연 가능한 미국에서 특히 수요가 많다.

1997~1998 시즌에 런던, 파리, 바르샤바에서 쇼팽 작품 전곡 연주.

1990년대 중반 뉴욕과 미국의 다른 다수 도시들에서도 전곡 연주.

2003년 여름에 탱글우드, 라비니아, 리버벤드, 모스틀리 모차르트를 포함하여 다수 음악제 출연.


Ohlsson has maintained a strong association with the music of Chopin, and has played the Polish master's complete piano works several times in recital and on recordings. His Chopin interpretations favor intense emotionalism over a languid, swooning salon style. Ohlsson is by no means exclusively a player of Chopin; however, his repertory extends from Haydn to 20th century masters and includes more than 80 works for piano and orchestra. He tours and appears as a guest soloist with orchestras around the world.


쇼팽의 음악과 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폴란드 마스터의 피아노 작품 전집을 리사이틀과 녹음에서 여러 번 연주. 그의 쇼팽 해석은 나른하고 황홀해하는 살롱 스타일을 넘어 강렬한 감성주의를 선호한다. 올슨은 결코 쇼팽뿐인 연주자가 아니다. 그의 레퍼토리는 하이든부터 20세기 음악까지 폭넓고 80개 이상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들을 포함한다. 연주 여행 및 전 세계의 오케스트라들과 함께 객원 솔로이스트로 출연. 특히 그의 쇼팽 연주를 존중하는 폴란드에서 12회 이상 투어.


During the 2002-2003 season, Ohlsson appeared as part of the Lincoln Center Great Performers series in New York, performing works by Busoni. A pianist completely consumed with musical life, Ohlsson has, when asked by an interviewer, been unable to remember what kind of car he drives.


2002~2003 시즌 동안 뉴욕 링컨 센터 ‘위대한 연주자들 시리즈’의 일부로 출연해서 부조니 작품 연주. 음악 인생으로 완전히 소비하는 피아니스트인 올슨은 인터뷰 진행자가 물었을 때 그가 운전하는 자동차의 종류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Ohlsson is an avid chamber musician and has collaborated with the Cleveland, Emerson, Guarneri, Takács and Tokyo string quartets, among other ensembles. In 2005-2006, Ohlsson toured with the Takács Quartet. Ohlsson is also a founding member of San Francisco's FOG Trio, together with violinist Jorja Fleezanis and cellist Michael Grebanier. Passionate about singing and singers, Mr. Ohlsson has appeared in recital with such legendary artists as Magda Olivero, Jessye Norman, and Ewa Podles. He also performs in partnership with violinist Hilary Hahn.


열렬한 실내악 연주자로 클리블랜드, 에머슨, 과르네리, 타카치, 도쿄 스트링 콰르텟 등과 협연.

2005~2006년 타카치 콰르텟과 투어.

바이올리니스트 조르자 플리자니스, 첼리스트 마이클 그레버니어와 함께 샌프란시스코의 포그 트리오 창단 멤버.

성악과 성악가들에 대한 열정으로 전설적인 성악가 에바 포들레스, 마그다 올리베로, 제시 노먼과 협연.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과도 협연.


During the summer of 2006, Garrick Ohlsson presented the complete cycle of L.v. Beethoven piano sonatas in both the Ravinia and Tanglewood festivals, a cycle he performed for the first time in the summer of 2005 at Switzerland's prestigious Verbier Festival. In 2006-2007, he opened the Mostly Mozart Festival in New York in a live, nationally televised performance. He also appeared in North America and Canada with the Atlanta Symphony Orchestra, Detroit Symphony Orchestra, Milwaukee Symphony Orchestra, Montreal Symphony Orchestra, New Jersey Symphony Orchestra, and Pittsburgh Symphony Orchestra, among others. A series of recitals in Anchorage, Boston, Cleveland, Florida, Los Angeles, Ottawa, and San Francisco culminated in three recitals of L.v. Beethoven sonatas at Lincoln Center, and a performance of L.v. Beethoven's "Emperor" concerto at Carnegie Hall with Orchestra of St. Luke's. In Europe, he performed at the BBC Proms with the Budapest Festival Orchestra, at the Warsaw Chopin Festival, with the Czech Philharmonic, with the BBC Philharmonic, and in recital in Spain and Italy.


2006년 여름 동안 라비니아 페스티벌과 탱글우드 페스티벌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 (최초 전곡 연주는 2005년 여름의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

2006~2007 시즌, 전국적으로 텔레비전 생중계된 뉴욕 “모스틀리 모차르트 페스티벌”에서 개막 연주. 애틀랜타 심포니 오케스트라, 디트로이트 심포니 오케스트라, 밀워키 심포니 오케스트라,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 뉴저지 심포니 오케스트라,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과 함께 북아메리카와 캐나다에서 협연. 앵커리지, 보스턴, 클리블랜드, 플로리다, 로스앤젤레스, 오타와,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리사이틀 시리즈는 링컨 센터에서의 베토벤 소나타 리사이틀 3회, 세인트루크 오케스트라와 함께 카네기홀에서의 베토벤 “황제” 협연으로 끝났다. 유럽에서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BBC 프롬스에서 협연, 바르샤바 쇼팽 페스티벌에서 연주, 체코 필하모닉과 협연, BBC 필하모닉과 협연 및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리사이틀.


In the 2007-2008 season, Garrick Ohlsson appeared with the Atlanta Symphony Orchestra, Baltimore Symphony Orchestra, Boston Symphony Orchestra, Houston Symphony Orchestra, San Francisco Symphony Orchestra, and Toronto Symphony Orchestra, among others. Special projects included performances in Berkeley and Los Angeles with Mark Morris Dance Group and pianist Yoko Nozaki in Mozart Dances; performances with the Russian National Orchestra and Vladimir Jurowski in California and at New York's Lincoln Center; and a Florida tour with the Pittsburgh Symphony Orchestra. Additionally, he performed with the Warsaw Philharmonic Symphony Orchestra, RTVE Madrid, MDR Sinfonieorchester Leipzig, and Sydney Symphony Orchestra with Vladimir Ashkenazy.


2007~2008 시즌 애틀랜타 심포니 오케스트라,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 토론토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과 협연. 특별 프로젝트는 버클리와 로스앤젤레스에서 마크 모리스 댄스 그룹 및 피아니스트 요코 노자키와 함께 “모차르트 춤곡들” 협연, 캘리포니아와 뉴욕 링컨 센터에서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의 지휘로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와 협연,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플로리다 투어를 포함한다. 게다가 바르샤바 필하모닉 심포니 오케스트라, RTVE 마드리드 오케스트라, MDR 라이프치히 심포니 오케스트라,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지휘)와도 협연.


In the 2008-2009 season, Garrick Ohlsson appeared in North America with the Atlanta Symphony Orchestra, Philadelphia Orchestra, Pittsburgh Symphony Orchestra, Saint Louis Symphony Orchestra, and the National Symphony Orchestra, among others. He performed Prokofiev's Fifth Piano Concerto with Michael Tilson Thomas and the San Francisco Symphony Orchestra, followed by a west coast tour including Seattle and Los Angeles' Disney Hall. With pianist Yoko Nozaki, Ohlsson reprised their performances with Mark Morris Dance Group in the critically acclaimed Mozart Dances. With contralto Ewa Podleś, he embarked on a tour of North America, followed by the release of their live-recorded recital from London's Wigmore Hall, a project he will revisit with her in the same hall in December 2009. A recital project focusing on the piano music of Scriabin and Russian contemporaries, which began in San Francisco and San Diego in the spring of 2008, continued through the 2008-2009 season and included performances at New York's 92nd Street Y. In Europe, Ohlsson performed with the Salzburg Mozarteum and Hugh Wolff, Hallé Orchestra with both Mark Elder and Edward Gardner, and Deutsche Symphony Berlin.


2008~2009 시즌 애틀랜타 심포니 오케스트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 세인트루이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과 함께 북아메리카에서 연주. 마이클 틸슨 토머스의 지휘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협주곡 5번 협연은 시애틀과 로스앤젤레스의 디즈니 홀을 포함한 서부 해안 투어로 이어졌다. 피아니스트 요코 노자키와 함께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은 “모차르트 춤곡들” 공연에서 마크 모리스 댄스 그룹과 함께 재공연. 2008년 봄에 샌프란시스코와 샌디에이고에서 시작한 스크리아빈과 러시아 현대 피아노음악에 집중된 리사이틀 프로젝트는 2008~2009 시즌에 걸쳐 계속되었고 뉴욕 92번가 Y에서의 연주를 포함한다. 유럽에서는 휴 울프의 지휘로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협연, 마크 엘더와 에드워드 가드너의 지휘로 할레 오케스트라와 협연,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와 협연.


Highlights during the 2009-2010 season include Martinu's rarely performed Concerto No. 4 with the New York Philharmonic Orchestra and the BBC Scottish Symphony Orchestra as well as appearances with the San Francisco Symphony Orchestra, Houston Symphony Orchestra, Atlanta Symphony Orchestra, Vancouver Symphony Orchestra, Indianapolis Symphony Orchestra, San Diego Symphony Orchestra, Milwaukee Symphony Orchestra, Minneapolis Symphony Orchestra and Baltimore Symphony Orchestra.


2009~2010 시즌 동안의 하이라이트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 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애틀랜타 심포니 오케스트라, 밴쿠버 심포니 오케스트라, 인디애나폴리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샌디에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밀워키 심포니 오케스트라, 미니애폴리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뿐만 아니라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마르티누의 보기 드문 협주곡 4번 협연 및 BBC 스코티시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포함한다.


In 2010, he visited Australia and gave concerts in Melbourne.


2010년 오스트레일리아 방문 및 멜버른에서 콘서트.


Mr. Ohlsson brought Busoni's rarely programmed piano concerto to the National Symphony (Washington) and London's Barbican with the BBC Symphony Orchestra in the fall of 2014. 2015 marked the centenary of the death of Alexander Scriabin whose piano music Mr. Ohlsson presented in a series of recitals in London, San Francisco, Chicago and New York. He also returned to the orchestras of San Francisco, Detroit, Dallas, Houston, Baltimore, Minnesota, BBC Scotland and Prague where he is a frequent guest. 


2014년 가을, 워싱턴 DC 국립 심포니 및 런던 바비칸 센터에서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부조니의 보기 드문 피아노 협주곡 연주. 2015년 알렉산더 스크리아빈 서거 100주기를 기념하여 런던,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뉴욕에서 스크리아빈 리사이틀 시리즈. 또한 그가 게스트로 자주 출연하는 샌프란시스코, 디트로이트, 댈러스, 휴스턴, 볼티모어, 미네소타, BBC 스코틀랜드, 프라하의 오케스트라들과 재협연.


The 2015-2016 season includes recitals in Berkeley, New York, Indianapolis, Brisbane, Seattle, La Jolla, Evanston, Forth Worth, Lincoln and Costa Mesa. In return visits to Australia he will appear in Perth, Brisbane, Sydney, Melbourne and Adelaide and for the first time with the New Zealand Symphony in Wellington and Auckland. With concerti as diverse as Beethoven, Brahms, Barber and Busoni he can be heard with orchestras in Boston, Los Angeles, Ottawa, Nashville, Indianapolis, Oregon, Warsaw, St. Petersburg, Manchester (UK) and Lugano (Switzerland).


2015~2016 시즌은 버클리, 뉴욕, 인디애나폴리스, 브리즈번, 시애틀, 라호이아, 에번스턴, 포트워스, 링컨, 코스타 메사에서의 리사이틀을 포함한다. 오스트리아 재방문에서 퍼스, 브리즈번, 시드니, 멜버른, 애들레이드에서 연주하고 웰링턴과 오클랜드에서 뉴질랜드 심포니와 함께 처음으로 협연. 베토벤, 브람스, 바버, 부조니만큼 다양한 협주곡들과 함께 보스턴, 로스앤젤레스, 오타와, 내슈빌, 인디애나폴리스, 오리건, 바르샤바, 상트페테르부르크, 영국 맨체스터, 스위스 루가노에서 협연.


Among his many recordings, Ohlsson undertook a survey of Chopin's complete piano music—including sonatas, preludes, etudes, ballades, rondos, scherzos, variations, polonaises, nocturnes, waltzes, mazurkas, concertos, and others. In 1989, he recorded Busoni's five movement Piano Concerto in C major, Op. 39 with the Cleveland Orchestra under Christoph von Dohnányi.


다수 녹음들 중에서도 소나타, 전주곡, 연습곡, 발라드, 론도, 스케르초, 변주곡, 폴로네즈, 녹턴, 왈츠, 마주르카, 협주곡 등 쇼팽 피아노 전곡 조사에 착수. 1989년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의 지휘로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함께 5악장 구성의 부조니 피아노 협주곡 녹음.


Mr. Ohlsson can be heard on the Arabesque, RCA Victor Red Seal, Angel, BMG, Delos, Hänssler, Nonesuch, Telarc, Hyperion and Virgin Classics labels. His ten-disc set of the complete Beethoven sonatas, for Bridge Records, has garnered critical acclaim, including a GRAMMY® for Vol. 3. His recording of Rachmaninoff’s Concerto No. 3, with the Atlanta Symphony and Robert Spano, was released in 2011. In the fall of 2008 the English label Hyperion re-released his 16-disc set of the complete works of Chopin followed in 2010 by all the Brahms piano variations, "Goyescas" by Enrique Granados, and music of Charles Tomlinson Griffes. Most recently on that label are Scriabin's Complete Poèmes and ètudes by Debussy, Bartok and Prokofiev. The latest CDs in his ongoing association with Bridge Records are "Close Connections", a recital of 20th-Century pieces, and two CDs of works by Liszt. In recognition of the Chopin bicentenary in 2010, Mr. Ohlsson was featured in a documentary "The Art of Chopin" co-produced by Polish, French, British and Chinese television stations. Most recently, both Brahms concerti and Tchaikovsky's second piano concerto were released on "live" performance recordings with the Melbourne and Sydney Symphonies on their own recording labels, and Mr. Ohlsson was featured on Dvorak's piano concerto in the Czech Philharmonic's live recordings of the composer's complete symphonies & concertos, released July of 2014 on the Decca label.


아라베스크, RCA 빅터 레드 실, 앤젤, BMG, 델로스, 핸슬러, 넌서치, 텔락, 하이페리언, 버진 클래식스 레이블에서 녹음.

베토벤 소나타 전곡 녹음은 그래미 상을 받은 3집 음반을 포함하여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2008년 가을, 잉글랜드 레이블 하이페리언에서 쇼팽 작품 전집 16장 재발매.

2010년 브람스 피아노 변주곡 전곡, 엔리케 그라나도스의 고예스카스, 찰스 톰린슨 그리프스의 음악 녹음.

2010년 쇼팽 탄생 200주년으로 폴란드, 프랑스, 영국, 중국 방송국 합작 다큐멘터리 <쇼팽의 예술>에서 연주.

2011년 로버트 스파노의 지휘로 애틀랜타 심포니와 협연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 음반 발매.

스크리아빈의 포엠 전곡 및 드뷔시, 바르톡, 프로코피에프 에튀드 녹음.

브리지 레코드와의 지속적인 관계인 최근 음반들로는 20세기 작품 리사이틀인 <클로즈 커넥션스> 및 리스트 작품을 녹음한 두 장의 음반이 있다.

멜버른 및 시드니 심포니와 협연한 브람스 협주곡들과 차이코프스키 2번 협주곡 모두 실황 연주 녹음이 그들의 소속 레이블에서 발매.

체코 필하모닉의 작곡가의 교향곡 및 협주곡 전곡 실황 녹음에서의 드보르작 피아노 협주곡 연주는 2014년 7월, 데카 레이블에서 발매.



A 2003 profile in the New York Times by James Oestreich mentioned that Ohlsson lives in San Francisco with his companion, Robert Guter, an historic preservationist. While Ohlsson doesn't like being labelled solely as a gay pianist, he doesn't pretend to be otherwise. He is out and proud, and “I'm no coward,” he says.


제임스 외스트라이히에 의해 뉴욕 타임스에서 2003년 프로필은 올슨이 그의 동반자인 역사 환경 운동가 로버트 구터와 함께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음을 언급했다. 올슨은 게이 피아니스트로만 표시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척하지 않는다. 그는 대놓고 자랑하고, “나는 겁쟁이가 아니라고” 말한다.


No coward, indeed. As proof, in 2013, Ohlsson released Close Connections, a disc on which most of the music was written by gay male composers. I received this album as a Christmas gift, and I’m embarrassed that I’m just now listening to it (sorry, Rob!). It contains Triptych (1969), a solo piano piece by Louis Weingarden (1943-1989) written for Ohlsson. Weingarden also wrote a piano concerto (1974) for Ohlsson, and that composition was nominated for the Pulitzer Prize in 1977. Weingarden and Ohlsson were good friends, even roommates for a time. Also on this disc is Handwork, a piece for solo piano commissioned by Ohlsson in 1986, written by gay composer William Hibbard (1939-1989). Robert Helps (1928-2001), another gay composer, is represented by the solo piano composition “Shall We Dance”.


정말 겁쟁이가 아니다. 그 증거로 2013년에 올슨은 게이 작곡가들의 작품을 녹음한 <클로즈 커넥션스> 음반을 발매했다. 나는 이 앨범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고, 내가 지금 그것을 듣고 있는 것에 당황했다. (미안해, 로버트!) 그것은 올슨을 위해 루이 웨인가든(1943~1989)이 작곡한 <트립틱>(1969)을 포함한다. 웨인가든은 또한 올슨을 위해 <피아노 협주곡>(1974)을 작곡했고, 1977년 퓰리처 상 후보에 올랐다. 웨인가든과 올슨은 좋은 친구이고 한동안 룸메이트였다. 또한 이 디스크에는 게이 작곡가 윌리엄 히버드(1939~1989)가 올슨의 위촉으로 작곡한 독주 피아노 작품 <핸드워크>(1986)가 있다. 로버트 헬프스(1928~2001)는 또 다른 게이 작곡가로 독주 피아노 작품 <쉘 위 댄스>가 대표적이다.



Awards

1966 - 18th Busoni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Bolzano, Italy 1st prize / 이탈리아 볼차노 제18회 부조니 국제피아노콩쿠르 1위

1968 - 4th Montreal International Musical Competition in Canada 1st prize / 캐나다 제4회 몬트리올 국제음악콩쿠르 1위

1970 - 8th Chopi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Warsaw, Poland 1st prize, Gold Medal and Polish Radio Prize for the Best Performance of Mazurkas / 폴란드 바르샤바 제8회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1위, 금메달 및 마주르카 특별상

1994 - Avery Fisher Prize / 에이버리 피셔 상

1998 - University Musical Society Distinguished Artist Award in Ann Arbor, Michigan (USA) / 미국 미시건 주 앤아버 시 대학음악협회 "두각을 나타낸 연주자"상

2008 - Grammy Award for Best Instrumental Soloist Performance (without Orchestra) for his Beethoven Sonatas, Vol. 3 (Bridge Records, Inc.) / 베토벤 소나타 3집 음반(브리지 레코드 발매)으로 그래미 상 최우수 기악 독주 부문 수상 (2월)

2014 - Jean Gimbel Lane Prize in Piano Performance from the Northwestern University Bienen School of Music / 노스웨스턴 대학교 비에넨 음악학교로부터 피아노 연주로 "장 짐벨 레인" 상








Eumyeon Piano Magazine (May 2004) Interview with Garrich Ohlsson in Paris (30 March 2004)

순수하고 자유로움에서 오는 행복함

‘브람스 협주곡 1번은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매우 무겁게 쓰여졌고, 피아니스트에게 투쟁을 요하는 작품이다. 1악장의 주요 주제는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사이의 커다란 투쟁이다. 2악장은 매우 정신적이며, 숭고하다. 3악장은 우선 너무 빠르지 않게 연주해야 한다. 너무 빠르게 연주하면 화성적인 진행감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 음악평론가 김동준 글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진행된 쿠르트 마주어의 브람스 전곡 연주 프로젝트 피아니스트로 개릭 올슨이 초대되었다. 4월 1일과 2일 이틀 동안 개릭 올슨은 쿠르트 마주어가 지휘하는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와 두 곡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다. 첫날 연주에서는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d단조’를 교향곡 다음에 연주하는, 그러니까 협주곡을 마지막으로 연주하는 다소 이례적인 구성을 보여주었다.


개릭 올슨은 음반을 통해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실황 연주의 생생함과 흥분감을 느끼게 했다. 브람스 협주곡 1번에서는 곡의 웅장함과 고통스러운 투쟁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그리고 협주곡 2번에서는 실내악적인 구성의 요소가 많은 이 작품을 뛰어나게 아름답게 연주했다. 특히 둘째 날 협주곡 2번에서는 연주자의 의식이나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 마치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자유로운 연주를 들려주어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의 순수한 행복감을 느끼게 했다.


- 당신은 현재 뉴욕에서 살고 있는가.


아니다. 현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살고 있다. 뉴욕에서 태어나서 오랫동안 살았지만 지금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살고 있다.


- 파리에서는 자주 연주를 하는가.


자주 연주를 하는 편은 아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파리에서 연주를 자주 했었는데, 그 이후에는 파리에서 자주 연주를 할 기회가 없었다. 쇼팽 전곡 연주를 뉴욕 · 토론토 · 런던에서 했는데, 런던에서 전곡 연주를 마치고 나서 파리의 살 가보에서도 전곡 연주를 했다.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와의 연주도 이번이 처음이다. 연주 경력은 각각의 피아니스트들이 각 국가나 도시마다 다르게 쌓아가게 된다.


- 언제 처음으로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는가.


우선 협주곡 1번 d단조를 1971년에 처음으로 연주했다. 그리고 협주곡 2번을 1973년에 처음으로 연주했다.


-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을 처음 연주한 이후 당신의 해석은 어떻게 변모되었는가.


많은 것이 변했다. 젊은 시절에는 두 협주곡에 대해서 아주 잘 알지는 못했다. 두 개의 협주곡은 서로 매우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우선 첫 번째 협주곡을 나는 클라우디오 아라우의 제자였던 올가 바라비니와 매우 집중적으로 공부했고, 연주할 준비가 잘 되었었다. 그래서 여러 오케스트라와 연주를 했고, 피아니스트로서 나의 경력을 쌓아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브람스의 협주곡 2번도 공부했고, 연주하기 시작했다. 1973~1974년에는 클라우디오 아라우와 직접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아라우는 작품에 대한 해석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들에 대해서 많은 조언을 해주었고 나에게 커다란 도움이 됐다. 그러면서 작품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도 자연스럽게 변해갔다. 협주곡 1번의 경우는 당시 뉴욕 필하모닉을 지휘하는 쿠르트 마주어와 함께 연주하면서도 해석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쿠르트 마주어와는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투어를 했던 일도 있었다. 그리고 브람스 협주곡을 함께 연주했던 지휘자 가운데는 루돌프 켐페가 기억나며, 클라우스 텐슈테트와의 연주도 잊을 수가 없다. 함께 연주를 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음악에 대한 열정과 감정을 나눌 수가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함께 연주한 위대한 지휘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브람스의 두 개의 협주곡의 문제는 매우 다르다. 우선 협주곡 1번은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매우 무겁게 쓰여졌고, 피아니스트에게 투쟁을 요하는 작품이다. 예를 들면 1악장의 주요 주제는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사이의 커다란 투쟁이다. 2악장은 매우 정신적이며, 숭고하다. 3악장은 우선 너무 빠르지 않게 연주해야 한다. 너무 빠르게 연주하면 화성적인 진행감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브람스의 협주곡 3악장을 연주할 때에 편안함을 느낀다. 왜냐하면 나의 손에 잘 맞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피아노 작품들이 나의 손에 잘 맞는 것은 아니다. 협주곡 2번의 문제점은 1번과는 매우 다르다. 분명히 2번 협주곡은 1번 협주곡에 비해서 가볍게 쓰여졌다. 그러나 3도 · 6도의 진행 등 해결해야 하는 다른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와 실내악적인 조화를 이루어야만 한다.


- 이번 연주 이전에 쿠르트 마주어와 함께 연주했던 연주회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다.


나는 이미 쿠르트 마주어와 브람스의 두 곡의 협주곡을 연주했다. 첫 번째 연주회는 1980년 라이프치히에서였다. 쿠르트 마주어와 처음으로 연주했던 곡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었고, ‘리스트의 협주곡 1번’을 그 다음으로 함께 연주했다. 그 이후에 쿠르트 마주어와 함께 뉴욕 · 부에노스아이레스 등의 투어를 함께 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라이프치히에서 하루 저녁에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곡을 연주했다. 그 이후에도 다시 뉴욕과 런던 등에서 브람스의 협주곡과 다른 작곡가의 협주곡을 함께 연주하고 나서 브람스의 협주곡을 녹음했다. 쿠르트 마주어와 함께 연주하는 일은 커다란 즐거움이다.


- 협주곡을 연주할 때에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지휘자는 어떤 지휘자인가.


좋은 지휘자는 많이 있다. 우선 브람스의 협주곡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진정으로 교향곡을 잘 지휘하는 지휘자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브람스 협주곡은 정말로 교향곡적인 구성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우선 쿠르트 마주어의 이름을 들어야겠다. 그리고 볼프강 자발리쉬와 함께 브람스를 연주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그가 지휘한 작품 대부분을 좋아한다. 유진 오먼디 역시 훌륭한 지휘자이다. 오자와 세이지 역시 뛰어난 지휘자이다. 그는 유연함을 갖춘 지휘자이다. 지휘자는 독주자에게 봉사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음악에 봉사하는 사람일 뿐이다. 간혹 음악적으로 비논리적인 피아니스트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지휘자는 독주자의 연주를 들을 줄 알아야 하고 함께 의논할 수 있어야 한다. 젊은 지휘자와 연주할 때 그 지휘자가 나의 연주를 듣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마에스트로, 나는 당신을 따라가야만 하고, 그렇게 할 수도 있소.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는 함께 음악을 만들어야 하오.’


공동 작업이라는 개념은 분명히 어느 한쪽이 명령을 하고, 어느 한쪽이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함께 춤을 출 때에 리드를 하는 쪽은 분명히 어느 한쪽만은 아니다. 나의 음악적인 아이디어를 이해하고, 나 역시 지휘자의 음악적인 아이디어를 이해할 수 있다면 가장 좋다. 물론 가끔 그렇지 못할 경우도 있다. 그리고 서로 의견이 같지 않더라도 나는 좀 더 유연한 자세로 임한다. 시간이 많지 않을 경우 서로 싸우는 것은 음악을 위해서는 나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주는 아니지만 간혹 정말로 좋아할 수 없는 지휘자를 만났을 경우에는 연주를 마치고 감사의 인사를 하지만, 절대로 다시는 함께 연주하지 않는다. 나는 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 1970년 바르샤바 쇼팽 콩쿠르에서의 우승(*개릭 올슨은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바르샤바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이 당신의 삶을 바꾸어놓았는가? 그리고 동시에 쇼팽(*개릭 올슨은 최근 뉴욕 링컨 센터 등에서 쇼팽의 피아노 작품 전곡을 연주)은 당신이 가장 열정을 갖고 있는 작곡가인 것으로 알고 있다.


분명히 그렇다.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기 전에도 나는 미래가 밝은 젊은 피아니스트였고, 계속해서 연주회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쇼팽 콩쿠르가 있었던 1970년에는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도 있었다.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는 바흐 · 모차르트 · 리스트 · 차이코프스키 등 모든 작품을 연주해야 하는 콩쿠르이다. 나는 이미 이전에 부조니와 몬트리올 콩쿠르에서 우승을 한 상태였기에, 마라톤 콩쿠르 같은 차이코프스키보다는 쇼팽 콩쿠르를 택했다. 쇼팽 콩쿠르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쇼팽만을 연주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콩쿠르에 나갈 때에 결코 ‘나는 이겨야만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항상 자신보다 뛰어난 피아니스트는 존재하고 또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나는 이기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더 낫다.


당시 나는 쇼팽 콩쿠르와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사이에서, 쇼팽 콩쿠르는 이기지 못하더라도 분명 음악적으로 중요한 경험이 될 것 같았기 때문에 쇼팽 콩쿠르를 택했다. 바르샤바 쇼팽 콩쿠르 우승을 통해서 나는 전 세계 주요 도시에 데뷔할 수가 있었고,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경력을 쌓아갈 수 있었다. 뉴욕 · 런던 · 도쿄 · 파리 등의 당시 모든 연주회는 매진되었고, 사람들이 나에게 ‘우리들은 당신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다. 당신은 중요한 예술가 가운데 한 명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나는 아직 젊었다.


쇼팽은 내 평생 동안 열정을 기울이고 있는 작곡가 가운데 한 명이다. 쇼팽 콩쿠르 역시 쇼팽에 대한 나의 이해를 깊어지게 했다. 쇼팽 콩쿠르를 위해서 피아노 소나타 가운데 한 곡, 협주곡 가운데 한 곡 등의 주요 작품을 포함해서 다양한 쇼팽의 작품들을 연주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나는 모든 소나타와 협주곡을 공부했다. 쇼팽에 완전히 미쳤었기 때문이었다. 우승을 했을 때 많은 기자들이 나에게 쇼팽의 작품들이 당신을 지치게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반대였다. 콩쿠르 동안에도 쇼팽을 연주할수록 쇼팽에 대한 열정이 커져갔다. 그의 피아노 작품들은 정말로 뛰어나기 때문이다. 콩쿠르 이후에 나는 쇼팽을 더 자주 연주했고, 결국 쇼팽의 모든 피아노 작품들을 녹음했다. 좋은 연주를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하며, 그 작품과 함께 살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는 운 좋게도 쇼팽 해석에 관해 뛰어난 스승들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가 있었다. 우리들 피아니스트들은 쇼팽의 작품들을 통해서 피아니스트로 성숙할 수가 있는 것이다.


- 당신의 쇼팽 해석에 관해서 가장 영향을 준 피아니스트는 누구인가.


우선 내가 어렸을 적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호로비츠와 루빈스타인이었다. 나는 호로비츠와 루빈스타인의 연주회에 무척 많이 갔었다. 당시 나는 10대였는데, 이 두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가장 흥미로웠다. 두 피아니스트는 서로 너무나 달랐다. 루빈스타인은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귀족적이며 아름다운 소리를 지니고 있었고, 마치 오후의 햇살 같았다. 그러나 호로비츠는 창백하고 흥미로우며 관능적이고 밤의 불빛 같았고 악마 같았다. 그리고 간혹은 미치광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당시 나는 이 두 피아니스트의 연주회를 들으며 두 명의 피아니스트는 완전히 다른데 어떻게 둘 다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존재할 수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방식의 질문은 지금의 젊은 피아니스트들에게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특히 쇼팽의 작품 해석에 관해서는 말이다. 쇼팽은 베토벤처럼 건축적이기만 한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루빈스타인과 호로비츠의 쇼팽 해석에 과연 어떠한 공통점이 존재하는지 많은 생각을 해보았었다. 물론 나는 당시 뛰어난 젊은 피아니스트였던 아쉬케나지나 길렐스 · 리흐테르와 같은 거장 피아니스트의 연주회도 많이 들었다. 라흐마니노프의 쇼팽 연주도 매우 흥미롭고 아름다웠다. 나는 많은 피아니스트들의 쇼팽 해석의 전통을 이해하게 됐다. 몇몇 프랑스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도 나에게 커다란 흥미를 주었다. 아무튼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쇼팽 해석에 대해서 내가 이해한 것은 매우 간단한 것이었다. 그것은 쇼팽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는 반드시 마술적인 무엇인가를 작품에 부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색채이든 향기이든, 그런 특별한 요소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바흐적인 구조가 상실되어 있는 쇼팽은 더더욱 끔찍하다. 단순히 음악적인 구조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리고 단순한 색채만으로 작품을 해석하려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쇼팽은 가장 고전적인 동시에 낭만적인 작곡가였고, 또한 가장 낭만적이면서 고전적인 작곡가이다. 그렇기에 그러한 요소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빠지게 된다면 쇼팽의 작품 해석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 당신이 생각하는 위대한 해석은 어떤 것인가.


나는 행운아이다. 단지 커다란 손을 타고났을 뿐만 아니라 어렸을 적부터 피아노를 연주하기에 아무런 저항감이나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신경에 관련된 부분도 피아노 연주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연주를 듣고 나서는 ‘당신처럼 커다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섬세하게 연주할 수 있는지요’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듣기도 한다.


위대한 해석을 한다는 것은 우선 악보를 정확하게 연주하는 데서 출발한다. 연주상의 어려움을 잘 해결하고 작품의 특성들을 지키는 것 역시 악보를 정확하게 연주하는 것에 속한다. 단지 아름답게 연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가 않다. 작품과 함께 살아야 하며, 마치 연기를 하는 배우와 같아야 한다. 위대한 연기자는 서로 다른 희곡들을 다르게 연기한다. 루빈스타인이 브람스를 연주할 때에 마치 베토벤을 연주하는 것처럼 소리를 내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간혹 연주를 통해서 청중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설명하기 힘든 기적과 같은 일은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내가 음악을 연주하면서 추구하는 것 가운데 하나이다.


푸르트뱅글러는 브람스의 교향곡을 실황으로 많이 녹음했는데, 그의 지휘는 정말로 훌륭하다. 특히 1952년의 그의 브람스 교향곡 실황 녹음은 나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물론 내가 푸르트뱅글러가 본 것과 같은 것을 보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위대한 작품은 그 자체로 위대하지만, 푸르트뱅글러와 같이 강렬한 인격의 소유자는 마치 자신이 작곡가인 것처럼 작품을 바라보며 해석한다. 그것은 단순히 음악적인 구조를 꿰뚫고 있다고 해서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는 브람스 교향곡은 무엇인가 다른 것으로 바꾸어놓았다. 나에게 있어 위대한 해석이란 이러한 것이다. 물론 다른 스타일을 지닌 다른 지휘자도 푸르트뱅글러와 같은 위대한 해석을 할 수 있다. 결국 해석이란 이러한 방식도 또 다른 방식도 가능한 것이며, 언제나 가능성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호로비츠와 루빈스타인은 서로 너무나 다르지만 그 둘은 모두 위대한 피아니스트이자 위대한 해석자였다. 베토벤 소나타에 있어서 리흐테르 · 길렐스 · 아라우 이들은 모두 다르게 연주했지만 모두 위대한 해석자였다. 그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이다. 결국 위대한 해석을 이루는 요소들을 설명한다는 것은 어려운 질문이다.


- 당신은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연주회를 들으러 종종 가곤 하는가.


솔직히 나는 다른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들을 기회가 많지 않다. 나는 늘 연주를 위해서 여행을 하는데, 예를 들어 이번 파리 일정도 연습과 오케스트라와의 리허설로 바쁜 가운데, 오늘 저녁에는 자유시간이 있지만 다른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들으러 가고 싶지는 않다(웃음). 그러나 만일 시간이 허락된다면 내가 흥미를 가지고 있는 피아니스트들, 예를 들어 안드라스 쉬프 ·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 라두 루푸 등의 연주회에는 가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피아노 연주회를 피해서 현악4중주나 오페라 연주회에 갈 것이다.


- 과거와는 달리 국제 콩쿠르의 수가 매우 많고, 콩쿠르를 통해서 자신을 알리려는 젊은 피아니스트의 수 역시 매우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서 당신은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는가.


국제 콩쿠르에서 1등을 한다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출발일 뿐이다. 또 다른 어려움은 요즘은 국제 콩쿠르의 수가 너무나 많고, 경쟁이 너무나 치열하다는 것이다. 내가 젊었을 때에도 어려움은 있었지만, 요즘의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더 힘들고, 경쟁이 치열하다. 내가 바르샤바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당시에는 3개의 국제 콩쿠르, 그러니까 쇼팽 콩쿠르와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정도가 있었다. 물론 밴 클라이번 콩쿠르와 리즈 콩쿠르 등이 점점 성장하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각 주요 도시마다 국제 콩쿠르가 있고, 해마다 누가 우승을 했는지조차도 알기가 어렵다. 이 이야기가 유용할지는 모르겠지만, 간혹 콩쿠르 심사를 하게 될 경우 나는 젊은 피아니스트들을 격려하려고 노력한다. 한 번은 공연 기획과 관련된 사람이 나에게 와서 어떤 젊은 피아니스트에 대해서 ‘그가 천재인가?’라고 물었을 때에, 나는 ‘재능이 무척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저런, 요즘은 모두가 천재이다’라고 답했다(웃음).


나는 그 얘기를 듣고 나 자신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 보았다. 분명히 콩쿠르는 국제적인 경력을 쌓게 해주지만, 그렇게 경력을 쌓아가는 동안에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극복하면서 음악적으로도 성장해갈 수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신동이라고 하더라도 곧 잊히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바이올린 분야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다. 뛰어난 젊은 피아니스트들은 16세이면 이미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연주를 시작한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신동이라 하더라도 매일 저녁 완벽하게 연주할 수는 없는 일이다. 청중은 그들의 연주를 한두 번 듣고는 곧 새로운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를 들으러 갈 것이다. 물론 완벽하고 뛰어난 연주를 하는 젊은 연주자들의 연주를 들으면 흥분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17세의 나이에 믿을 수 없는 연주를 하는 피아니스트들이 존재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이다. 그러나 그의 나머지 인생이 음악적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음악과 함께 성장하고 성숙해지기가 힘든 것이 또한 현실이다.


- 당신은 학생들을 지도하는가.


가르치는 일은 하고 있지 않다. 간혹 공개나 비공개적인 마스터클래스를 하는 경우는 있지만 정기적으로 가르치는 일은 하고 있지 않다. 나는 석 달에 한 번 두 시간 정도의 레슨을 해주는 그런 선생이 되고 싶지는 않다. 가르친다는 일은 커다란 책임이 요구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 이 인터뷰는 3월 30일 파리의 라디오 프랑스 홀에서 이루어졌다.


음연 피아노 잡지 2004년 5월호에 나오는 인터뷰는 내가 돈을 주고 산 정보이다.

2021년 2월 15일 월요일

Seong-Jin Cho Recital at Mozart Hall in Seoul (5 March 2010)


조성진 피아노 독주회 - 2010년 3월 5일 19시 30분 모차르트홀

Young Artist Concert Series VII


Program

Schumann Fantasiestucke, Op. 12 / 슈만 환상소곡집

I. Das Abends / 석양

II. Aufschwung / 비상

III. Warum? / 어찌하여

IV. Grillen / 변덕

V. In der Nacht / 밤에

VI. Fabel / 우화

VII. Traumes-Wirren / 꿈의 얽힘

VIII. Ende vom Lied / 노래의 종말


Beethoven Piano Sonata No. 23 in f, Op. 57 "Appassionata" / 베토벤 소나타 23번 <열정>

I. Allegro assai

II. Andante con moto

III. Allegro ma non troppo - Presto


Akira Nishimura "Daydream" / 아키라 니시무라 <한낮의 꿈> (백일몽)


Mussorgsky Pictures at an Exhibition /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I. Promenade / 프롬나드 1

II. The Gnome / 난쟁이

III. Promenade / 프롬나드 2

IV. The old castle / 고성

V. Pormenade / 프롬나드 3

VI. Tuileries / 튈르리 궁전

VII. Bydlo / 비들로

VIII. Promenade / 프롬나드 4

IX. Ballet of the unhatched chicks / 껍질을 덜 벗은 햇병아리들의 발레

X. Samuel Goldenberg et Schmuyle / 사무엘 골덴베르크와 시뮐레 (폴란드의 어느 부유한 유대인과 가난한 유대인)

XI. Promenade / 프롬나드 5

XII. Limoges-The market / 리모주의 시장

XIII. Catacombae. Sepulcrum Romanum – Con mortuis in lingua mortua / 카타콤 - 죽은 언어로 말하는 죽은 사람과 함께

XVI. The hut on fowl's legs (Baba Jaga) / 닭발 위의 오두막 (바바 야가)

XV. The great gate at Kiev / 키예프의 대문



Eumyeon Piano Magazine Concert & Interview (March 2010)

일본 순회 연주를 앞두고 리사이틀 - 조성진


제7회 하마마쓰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했던 조성진(서울예고 1)이 3월 5일 모차르트홀에서 모차르트홀 ‘영 아티스트 콘서트 시리즈’ 일곱 번째 리사이틀을 갖는다. 지난 1월 6일 초청연주를 통해 뛰어난 음악성을 다시 한 번 입증시킨 그는 3월 12일 도쿄 오페라 시티 콘서트홀(1800석)에서의 데뷔 연주를 앞두고 같은 프로그램으로 이날 독주회를 열게 된다.


데뷔 입상자들에게 많은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진 하마마쓰 국제피아노콩쿠르 측은 조성진에게 2010년 시즌부터 3월 12일 동경 리사이틀을 시작으로 3월 16일 · 3월 18일 · 3월 21일 · 7월 8일과 11일 · 16일 · 17일 · 18일 · 19일 · 21일 · 23일 · 27일에 걸쳐 독주회를 비롯해 NHK 교향악단과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등 1위 수상자인 조성진에 대해 적극적으로 공연 무대를 마련해줄 예정이다.


하마마쓰 콩쿠르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레퍼토리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는 압박감이 연주자에게는 굉장히 힘든 콩쿠르로 알려져 있다. 15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국에서도 정명훈에게 발탁되어 서울시향과 세 번의 연주를 가졌고, 로린 마젤이 젊은 음악가 육성을 위해 만든 캐슬턴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폐막식에서 마젤과 협연 무대를 갖기도 했다. 그의 연주는 피아노 음악의 전체를 아우르는 해석과 풍부한 음악성, 침착함과 집중력이 돋보인다는 평이다.


조성진은 이날 슈만의 ‘환상소곡집 Op.12’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Op. 57, 열정’, 니시무라의 ‘한낮의 꿈’,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연주한다. 3월과 7월에는 도쿄 · 오사카 · 삿포로 · 후쿠오카 · 하마마쓰 등에서 독주회 및 나고야 필하모닉 · PMF ·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앞두고 있고, 4월에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독주회 협연 일정이 잡혀 있다.


조성진은 이미 국내 여러 콩쿠르에서 입상했으며 2008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6회 국제 청소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과 함께 최연소상 · 협연상 · 폴로네즈상 등 3개의 특별상을 수상했다.


하마마쓰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조성진은 “성과보다는 공부, 과정에 더 큰 의미를 둔다며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청중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한 점이 좋은 성과를 거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연주는 말이 아닌 피아노로 이야기하는 것이기에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다양한 작품을 공부하고 성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금호영재콘서트를 시작으로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독주회를 가졌고, 러시아의 크렘린 궁에서 열린 크렘린 청소년 국제 음악제 2008(International Festival Young Musical Kremlin 2008)과 독일 가와이 사의 초청 독주회에서 열렬한 호응을 얻으며 호평을 얻은 바 있다. 현재 서울 스프링 페스티벌과 세종 솔리스트와의 실내악 연주를 통해 폭넓은 음악세계를 쌓아가고 있으며, 신수정 · 박숙련 교수를 사사하고 있다.


- 국지연 기자



음연 피아노 잡지 2010년 3월호에 있는 PMK는 PMF로 고쳤다.

Eumyeon Piano Magazine Cover Story (January 2010)








[Cover Story]

하마마쓰 콩쿠르의 새로운 역사를 쓰다

조성진 · 허재원 · 김현정 · 안수정은 지난 11월 8일부터 23일까지 일본에서 개최된 제7회 하마마쓰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각각 1위 · 3위 · 5위 · 6위를 차지하며 한국 음악계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다시 한 번 증명해보였다. 최연소 및 동양인 최초 우승자 탄생과 더불어 한국 피아니스트가 네 명이나 입상했다는 점, 그리고 순수 국내파 출신으로 세계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이번 하마마쓰 입상은 새로운 역사라고 할 수 있다.


한국 피아니스트 4명 입상의 쾌거

지난 11월 8일부터 23일까지 일본에서 열린 제7회 하마마쓰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우승자 조성진을 비롯해 허재원 · 김현정 · 안수정이 각각 3위 · 5위 · 6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네 사람 모두 순수 국내파 출신으로 세계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점, 그리고 한국 음악계의 발전을 다시 한 번 증명해보였다는 점에서 이번 입상은 그 의미를 더했다.


일본 언론도 한국 젊은 연주자들의 활약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것은 비단 하마마쓰 콩쿠르 결과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다. 베토벤 국제 콩쿠르 · 더블린 국제 콩쿠르 · 밴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등 지난 일 년 동안 한국 연주자들이 권위 있는 국제 콩쿠르에서 이룬 성과는 주목할 만했다. 2009 리즈 국제피아노콩쿠르 3위 입상자인 알레산드로 타베르나를 비롯해 뛰어난 연주자들이 참가하여 치열한 경쟁을 보인 하마마쓰 콩쿠르에서도 한국 연주자들의 저력은 어김없이 발휘되었다.


그래서일까. 특정 국가 참가자들이 결선 진출자의 3분의 2를 차지했다는 사실에 문제를 제기했을 법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 언론에서는 결선에 한국 참가자들이 3명 이상 올라갈 것으로 예측했다고. 결선 진출자가 확정된 후 마련된 기자회견에서도 ‘한국인에게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다’며 비결을 궁금해 했다. 기자회견에 한국어 통역사가 동석한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1991년 개최된 이래 3년마다 열리고 있는 하마마쓰 콩쿠르의 위상은 역대 입상자들에게서 짐작할 수 있다. 2009년 더블린 국제 콩쿠르 우승자인 알렉세이 고를라치와 2005년 쇼팽 국제 콩쿠르 우승자인 라파우 블레하치가 대표적이다. 두 사람은 각각 2006년과 2003년에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인으로는 김태형(2006년 3위)과 임동혁(2000년 2위)이 입상한 바 있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이번 하마마쓰 콩쿠르에는 DVD 심사로 세계 각국에서 지원한 100여 명의 참가자들이 선발되었으며, 1차 · 2차 · 3차를 거쳐 6명의 결선 진출자가 결정되었다. 심사위원으로는 나카무라 히로코(심사위원장)를 비롯해 아리에 바르디 · 데임 패니 워터먼 · 존 오코너 · 도미니크 메를레 · 세르게이 도렌스키 · 김대진 등이 참여해 권위를 더했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하마마쓰 콩쿠르는 입상자에게 뿐만 아니라 대회 운영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 대회로 유명하다. 이런 의도는 평소 도시 분위기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기차역에서 콩쿠르가 열리는 공연장으로 가는 길에는 역대 입상자들의 연주 사진이 걸려 있어요. 콩쿠르 기간이 아니어도 광장에는 항상 쇼팽의 음악이 흘러나오고요. 일본에서 피아노를 처음 만들기 시작한 도시인 만큼, 가와이와 야마하 본사도 하마마쓰에 자리하고 있어요. 음악을 위한 기획 도시란 생각이 들 정도로 콩쿠르에 대한 지원도 완벽했습니다. 기차역 · 콩쿠르 장소 · 호텔을 연결하여 참가자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놓았거든요. 무엇보다 연습시간과 장소를 충분히 확보해놓은 점이 만족스러웠어요.” (허재원)


하마마쓰 국제피아노아카데미에 참가한 바 있는 안수정과 조성진도 진정한 음악 도시임을 느낄 수 있었다며 그의 말에 공감했다.


콩쿠르가 진행되는 16일 동안 현지의 관심은 대단했는데, 공연 한 시간 반 전부터 몇 백 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은 물론, 티켓도 대부분 매진되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참가자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콩쿠르를 하면서 처음으로 음악을 즐겼던 것 같아요. 비록 경쟁하는 자리이지만 콩쿠르 또한 하나의 무대이고, 제 연주를 듣기 위해 와준 분들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지더군요. 그래서인지 연주하는 내내 청중과 대화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연주하는 순간순간뿐만 아니라 무대에 오르기 직전의 긴장감조차 즐기게 되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콩쿠르였습니다.” (안수정)


하마마쓰 콩쿠르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레퍼토리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는 압박감이 더해져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든 시간이었다고 이들은 고백했다.


“연습을 많이 하다 보니 손가락이 찢어져서 나중에는 펼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상처를 진정시키기 위해 밤에는 꿀을 바르고 자고, 낮에는 밴드를 다섯 번씩 감고 연습했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더군요. 협주곡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탓에 연습 시간을 줄일 수도 없고, 걱정만 가득했어요. 결국, 결선 당일까지 통증이 사라지지 않아 진통제를 먹고 무대에 올랐는데, 연주가 끝나자마자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과 준비한 것 이상으로 연주했다는 만족감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허재원)


“콩쿠르에 참가하기 전부터 어깨에 통증이 있었는데, 작은 체구로 큰 스케일의 곡을 소화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더해지면서 상태가 악화되었어요. 다른 참가자들이 12시간씩 연습하는 모습을 보니 불안한 마음에 항상 피아노 앞에 앉아있게 되더군요. 일단 3차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에 파스를 붙이고 무대에 올랐어요. 연주를 끝내고 내려오자 한국에서 인터넷 생중계를 본 친구들이 ‘눈물 나는 투혼’이라며 위로해준 기억이 나요.” (김현정)


2차 지정곡으로 주어진 일본 현대작곡가의 위촉곡도 네 사람이 고전했던 부분 중 하나이다. 기존 레퍼토리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곡을 익혀야 한다는 부담감과 난해한 현대음악을 암보로 연주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특히 올해 위촉곡인 아키라 니시무라의 "Daydream for Piano"(한낮의 꿈)와 아쓰히코 곤다이의 "Transient Bell for Piano"(덧없는 종)는 현대적인 어법으로 작곡되어 참가자 대부분이 힘들어했다는 후문이다.


“다른 콩쿠르와 달리 하마마쓰에서는 위촉곡을 외워서 연주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우연히도 24명 중 한 명(알레산드로 타베르나)을 제외하고는 모두 ‘Daydream for Piano’를 선택했는데, 암보에 대한 부담감이 컸는지 대부분 이 곡을 처음에 연주했어요. 저희 네 명도 마찬가지였고요.” (김현정)


준비과정부터 마지막 연주를 끝내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까지 각자 이겨내야 했던 어려움은 달랐지만, 이들은 이 과정을 거치며 한층 성숙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입을 모았다.


“새로운 청중을 만나 내가 생각하는 음악을 들려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즐거움인 것 같아요. 물론,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 좋겠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콩쿠르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부분이지요. 그런 면에서 콩쿠르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축제와 같다고 생각해요. 연주에 집중한다면 실력도 자연스럽게 성장하지 않을까요?” (안수정)


조성진, 최연소 및 동양인 최초 우승자

하마마쓰 콩쿠르의 가장 큰 화제는 단연 조성진이었다. 조성진은 하마마쓰 콩쿠르 역사상 최연소 및 동양인 최초 우승자로 새로운 기록을 세운 것과 더불어 일본 현대작곡가의 위촉곡을 잘 연주한 참가자에게 주어지는 특별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모스크바 국제 청소년 쇼팽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바 있지만, 주니어가 아닌 일반 콩쿠르에 처음 도전하여 우승했다는 점은 분명 주목할 만하다. 어린 나이에 심리적 부담감을 안고 타이트한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 힘들지 않았냐고 묻자, 조성진은 오히려 편하게 연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승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담담한 그의 모습에서 ‘성과보단 공부에 의미를 두었다’는 말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을 청중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했어요. 말이 아닌 피아노로 이야기하는 것이기에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콩쿠르가 끝나고 나니 레퍼토리를 다룰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서 좋아요. 베토벤 소나타를 시작으로 다양한 작품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조성진)


조성진의 실력은 이미 여러 무대를 통해 입증되었다. 이화경향 콩쿠르 · 음연 콩쿠르 · 음악춘추 콩쿠르 1위 입상을 비롯해 지난 3월에 참가한 하마마스 국제피아노아카데미 콩쿠르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한국 이미지상 시상식에서 정명훈에게 발탁되어 서울시향과 세 번의 연주를 가졌고, 로린 마젤이 젊은 음악가 육성을 위해 만든 캐슬턴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폐막식에서 마젤과 협연 무대를 선보였다.


조성진은 이번 콩쿠르 우승으로 16회의 연주 기회를 갖게 되며, 이외에도 올해 상반기에 네덜란드 · 러시아 · 폴란드에서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콩쿠르 기간 중 조명을 받은 또 한 사람은 피아니스트 강충모(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이다. 한국인 입상자 4명 가운데 허재원 · 김현정 · 안수정이 모두 그의 제자였던 것이다. 제자들이 결선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으로 달려간 그는 입상자들만큼이나 바쁜 시간을 보냈다. 나카무라 히로코 심사위원장 역시 이례적인 일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허재원 · 김현정 · 안수정은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은 강충모 교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입을 모았다.


제7회 하마마쓰 콩쿠르는 한국 음악계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였다. 이번 콩쿠르 입상으로 세계무대에 한 걸음 다가간 조성진 · 허재원 · 김현정 · 안수정. 한층 깊어진 음악으로 더 높이 비상할 이들을 기대한다.


- 글 · 권기호 기자 / 사진 · 윤은수 기자


Seong-Jin Cho / 조성진

28 May 1994 in Seoul / 1994년 5월 28일 서울 출생

2004 - 7th Korean National Chopin Competition of Young Pianists in Seoul, Korea [Elementary School Low Level Division] 3rd prize / 서울 제7회 한국 쇼팽 콩쿠르 [초등부 저학년] 3위

2004 - 9th Eumak Chunchu Competition in Korea [Elementary School Grade 4 Division] 1st prize / 제9회 음악춘추 콩쿠르 초등4학년부 1위

2004 - Student Art Contest in Gyeonggi-do in Korea 1st prize / 경기도 학생예술경연대회 1위

2004 - 3rd Chung-Ang University National Piano Competition for Students in Seoul, Korea 1st prize / 서울 제3회 중앙대학교 전국 학생 피아노 콩쿠르 1위 (9월)

2005 - 54th Ewha Kyunghyang Music Competition in Korea [Elementary School Division] 2nd prize / 제54회 이화 경향 콩쿠르 초등학교부 2위

2005 - Eum Yeon Competition in Korea [Elementary School Grade 5-6 Division] 1st prize with Eun-Sil Yoo (Korea) / 음연 콩쿠르 [초등5~6학년부] 류은실과 공동 1위

2006 - 55th Ewha Kyunghyang Music Competition in Korea [Elementary School Division] 1st prize / 제55회 이화 경향 콩쿠르 초등학교부 1위 (4월)

2006 - 1st Eumaksekye Young Artist Contest in Korea Grand Prize / 제1회 음악세계 콩쿠르 전체 대상

2007 - 11th Eum Yeon Winter Music Camp Competition in Korea 1st prize / 제11회 음연 겨울음악캠프콩쿠르 1위

2008 - The Music Association of Korea New Artist Prize ex-aequo with Eun-Sil Yoo (Korean pianist) / 한국음악협회 주최 한국음악상 - 류은실과 신인상 공동 수상 (2월)

2008 - 6th International Chopin Competition for Young Pianists in Moscow, Russia 1st prize, Youngest Prize, Concerto Prize, Polonaise Prize and Jury Award / 러시아 모스크바 제6회 쇼팽 청소년 국제피아노콩쿠르 1위, 최연소 특별상, 협주곡 특별상, 폴로네즈 특별상 및 심사위원상 (9월, 심사위원 9명 중 7명이 1위로 선택)

2009 - Korea Image Award / 한국 이미지 상 (1월)

2009 - 14th Hamamatsu International Piano Academy Competition in Japan 1st prize / 일본 제14회 하마마쓰 국제피아노아카데미 페스티벌 콩쿠르 1위 (3월)

2009 - 7th Hamamatsu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Japan 1st prize, Best Performer of the Japanese Work and The Mayor of Sapporo Award (first Asian and youngest winner) / 일본 제7회 하마마쓰 국제피아노콩쿠르 1위, 삿포로 시장상 및 일본인 작품 최우수 연주상 (11월, 아시아 최초이자 역대 최연소 우승)

2009 - Performance Series Louvres 2011-2012 Season Audition Pass /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2011~2012 시즌 공연 시리즈 오디션 합격 (12월)

2010 - "100 Koreans who will shine and out in 2020" by The Dong-A Ilbo / 동아일보 <10년 후 한국을 이끌 100인>에 선정 (5월)

2010 - 4th Youth Hero Award in Seoul / 서울 제4회 젊은 영웅상 (10월)

2011 - 14th Tchaikovsky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 in Moscow, Russia 3rd prize and Bronze Medal / 러시아 모스크바 제14회 차이코프스키 국제음악콩쿠르 3위 및 동메달 (7월)

2011 - 6th Daewon Music Awards in Seoul "Best New Artist" Prize / 서울 제6회 대원음악상 신인상 (11월)

2014 - 14th Arthur Rubinstein International Piano Master Competition in Tel Aviv, Israel 3rd prize, Competition Bronze Medal, Arnold & Marjorie Ziff Prize, Junior Jury Prize and Special Prize for the Best Performer of Chamber Music ex-aequo with Andrejs Osokins (Latvia) / 이스라엘 텔아비브 제14회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국제피아노마스터콩쿠르 3위, 콩쿠르 동메달, 아놀드-마조리 지프 상, 청소년 심사위원상 및 안드레이스 오소킨스(라트비아)와 실내악 최우수 연주 특별상 공동 수상 (11월)

2015 - 17th Chopi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Warsaw, Poland 1st prize and Fryderyk Chopin Society Prize for best performance of a polonaise / 폴란드 바르샤바 제17회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1위 및 폴로네즈 특별상 (10월)

2015 - 23rd Young Artist of the Year Award [Music Section] Special Prize /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제23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음악 부문 특별상 (11월)

2015 - Medalem Młodego Pozytywisty (Young Positivist Medal) in Poznan, Poland / 폴란드 포즈난에서 젊은 실증주의자 메달 수상 (12월)

2016 - 10th Pony Chung Innovation Award / 제10회 포니정 혁신상 (7월)

2018 - The 8th Kumho Musician Award / 제8회 금호음악인상 (1월)

2018 - Forbes 30 under 30 Entertainment & Sports in Asia / 포브스 지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 선정 (3월)

2018 - Mecklenburg-Vorpommern Festival in Germany Audience Award / 독일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페스티발 청중상 (11월)

2019 - 12th Daewon Music Awards in Seoul Grand Prize / 대원문화재단 제12회 대원음악상 심사위원 만장일치 역대 최연소 대상 (4월)

2020 - Nation Brand Grand Prize by The Institute of Nation Brand Promotion in Korea / 국가브랜드진흥원 주최 국가브랜드 [예술 부문] 대상 (9월)


David Jae-Weon Huh / 허재원 (데이비드 허)

19 December 1986 in Pohang / 1986년 12월 19일 포항 출생

1998 - TBC 음악콩쿠르 1위

2003 - 서울 제6회 음연 쇼팽 콩쿠르 [고등부] 김혜진과 공동 2위

2004 - 서울 제7회 음연 쇼팽 콩쿠르 [고등부] 김혜인과 공동 1위

2004 - 5th Asia Chopi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Tokyo, Japan [Senior High School] Bronze Prize ex-aequo with Kana Kizawa (Japan) / 일본 도쿄 제5회 아시아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고등학생 부문] 가나 기자와(일본)와 공동 3위 (2월)

2004 - 한국일보 음악 콩쿠르 1위

2004 - 제53회 이화경향콩쿠르 고등학교부 2위

2005 - 제45회 동아음악콩쿠르 5위

2005 - 51st Maria Canals Barcelona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 in Barcelona, Spain Medalist (Semifinalist) / 스페인 바르셀로나 제52회 마리아 카날스 국제음악콩쿠르 세미파이널리스트 (4월)

2005 - The Music Association of Korea Competition in Seoul 3rd prize ex-aequo with Eun Shik Park / 서울 한국음악협회 제20회 해외 파견 콩쿠르 [피아노 부문] 박은식과 공동 3위 (5월)

2007 - 서울 한국음악협회 제26회 해외 파견 음악 협회 콩쿠르 전체 대상 및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5월)

2007 - 4th Shanghai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China 1st prize / 중국 제4회 상하이 국제피아노콩쿠르 1위 (11월)

2009 - 7th Hamamatsu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Japan 3rd prize / 일본 제7회 하마마쓰 국제피아노콩쿠르 3위 (11월)

2011 - 7th Seoul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 in Korea Semifinalist (Top 12) / 제7회 서울 국제음악콩쿠르 세미파이널리스트 (4월)

2011 - 19th Cleveland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Ohio, USA Semifinalist (Top 8) and Russian Prize / 미국 오하이오 제19회 클리블랜드 국제피아노콩쿠르 세미파이널리스트 및 러시아 작품 최우수 연주 특별상 (8월)

2012 - 9th Dubli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Ireland Semifinalist (Top 12) / 아일랜드 제9회 더블린 국제피아노콩쿠르 세미파이널리스트 (5월)

2014 - 10th Franz Liszt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Utrecht, the Netherlands Semifinalist (Top 9) /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제19회 리스트 국제피아노콩쿠르 세미파이널리스트 (11월)

2015 - 4th Top of the World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Tromsø, Norway Semifinalist (Top 12) / 노르웨이 트롬쇠 제4회 탑 오브 더 월드 국제피아노콩쿠르 세미파이널리스트 (6월)

2015 - 18th Paloma O'Shea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Santander, Spain 2nd prize / 스페인 산탄데르 제18회 팔로마 오셰아 국제피아노콩쿠르 2위 (8월)

2015 - 18th Leeds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England 2nd Stage (Top 30) / 잉글랜드 제18회 리즈 국제피아노콩쿠르 2라운드 진출 (9월)

2017 - 13th Hastings International Piano Concerto Competition in England Semifinalist (Top 12) / 잉글랜드 제13회 헤이스팅스 국제피아노협주곡콩쿠르 세미파이널리스트 (3월)

2017 - 16th Montreal International Musical Competition in Canada Semifinalist (Top 12) / 캐나다 제16회 몬트리올 국제음악콩쿠르 세미파이널리스트 (5월)

2018 - 27th New Orleans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Louisiana, USA 3rd prize and Bronze Medal / 미국 루이지애나 제27회 뉴올리언스 국제피아노콩쿠르 3위 및 동메달 (7월)


Hyun Jung Kim / 김현정

4 April 1991 in Seoul / 1991년 4월 4일 서울 출생

2001 - 서울 제4회 음연 쇼팽 콩쿠르 [초등부 저학년] 1위

2002 - 음연 콩쿠르 [초등 5~6학년부] 안지혜 및 이주현과 공동 3위

2002 - 제51회 이화경향 음악콩쿠르 [초등부] 이주현과 공동 3위

2003 - 4th Asian Chopi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Japan 1st prize ex-aequo with Park Sang-Ah (Korea) / 일본 제4회 아시아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초등학교 5~6학년 부문] 박상아와 공동 1위

2003 - 제52회 이화경향 음악콩쿠르 [초등부] 손정범과 공동 2위

2004 - Gina Bachauer International Junior Piano Competition in Salt Lake City, Utah (USA) 3rd prize / 미국 유타 주 솔트레이크 시티 "지나 박하우어" 청소년 국제피아노콩쿠르 3위

2005 - 제54회 이화경향콩쿠르 중학부 2위

2006 - 제55회 이화경향콩쿠르 중학부 1위

2008 - 9th Asian Chopi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Tokyo, Japan [General Category] 1st prize and [Concerto C Category] / 일본 도쿄 제9회 아시아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일반부] 1위 및 [협주곡 C급] 1위 (1월)

2008 - Taipei Chopi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Taiwan 2nd prize / 대만 타이베이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2위 (9월)

2009 - 7th Hamamatsu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Japan 5th prize / 일본 제7회 하마마쓰 국제피아노콩쿠르 5위 (11월)

2009 - 서울 제20회 KBS 한전 음악콩쿠르 피아노 부문 1위 및 대상 (11월)

2010 - 4th Rhodes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Greece 3rd prize / 그리스 제4회 로도스 국제피아노콩쿠르 3위 (4월)

2010 - 8th Paderewski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Bydgoszcz, Poland 2nd prize and 1,000 Euro for the best piano quintet / 폴란드 비드고슈치 제8회 파데레프스키 국제피아노콩쿠르 2위 및 피아노5중주 최우수 연주 특별 상금 1천 유로 (11월)

2011 - 7th Seoul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 in Korea 4th prize (3rd was not awarded) / 제7회 서울 국제음악콩쿠르 3위 없는 4위 (4월)

2016 - 4th Dallas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Texas, USA 3rd prize / 미국 텍사스 주 제4회 댈러스 국제피아노콩쿠르 3위 (3월)

2016 - 6th Sendai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 in Japan 1st prize / 일본 제6회 센다이 국제음악콩쿠르 1위 (6월)


Soo Jung Ann / 안수정

15 September 1987 in Seoul / 1987년 9월 15일 서울 출생

1997 - 제2회 음악춘추 전국피아노콩쿠르 초등4학년부 1위 (5월)

1997 - 서울 제28회 틴에이저 피아노 콩쿠르 초등 저학년부 특등 (10월)

1998 - 삼익 전국피아노콩쿠르 1위 (6월)

1998 - 조선일보 음악 콩쿠르 1위 (9월)

1999 - 서울 제3회 한국 주니어 쇼팽 피아노 콩쿠르 초등부 1위 (4월)

2000 - 3rd Chopin International Competition for Young Pianists in Moscow, Russia 5th prize / 러시아 모스크바 제3회 쇼팽 청소년 국제피아노콩쿠르 5위 (4월, 최연소 참가자)

2000 - Seoul Youth Chamber Ensemble Competition 1st prize / 서울 청소년 실내악 앙상블 콩쿠르 1위 (5월)

2001 - 제50회 이화경향 음악 콩쿠르 중학교부 2위

2002 - 3rd Asian Chopi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Kariya, Japan [General Applicant Category] 1st prize and Concerto Prize / 일본 가리야 제3회 아시아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일반부 금상 및 협주곡 특별상 (12월)

2003 - Seilor International Competition for Young Pianists in Kitzingen, Germany 5th prize / 독일 키칭엔 자일러 청소년 국제피아노콩쿠르 5위 (5월)

2005 - 6th Asian Chopin International Piano Compeittion in Tokyo, Japan [Delegate Competition] Gold Prize and Faith Prize / 일본 도쿄 제6회 아시아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파견 부문] 1위 및 페이스 상 (1월)

2005 - 15th Chopi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Warsaw, Poland Semifinalist (Top 32) / 폴란드 바르샤바 제15회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세미파이널리스트 (10월)

2007 - Royal Irish Academy of Music Concerto Competition in Dublin, Ireland winner / 아일랜드 더블린 왕립음악원 협주곡 콩쿠르 우승 (12월)

2009 - 8th AXA Dubli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Ireland 3rd prize / 아일랜드 제8회 더블린 국제피아노콩쿠르 3위 (5월)

2009 - 16th Leeds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England 2nd Stage (Top 33) / 잉글랜드 제16회 리즈 국제피아노콩쿠르 2라운드 진출 (9월)

2009 - 7th Hamamatsu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Japan 6th prize / 일본 제7회 하마마쓰 국제피아노콩쿠르 6위 (11월)

2010 - 2nd Baltic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Special Prize for the best performance of Chopin's works / 제2회 발틱 국제피아노콩쿠르 쇼팽 작품 최우수 연주 특별상 (5월)

2010 - Chopin Piano Competition in Salzburg, Austria winner /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쇼팽 피아노 콩쿠르 우승 (7월)

2011 - 3rd Hong Kong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4th prize / 제3회 홍콩 국제피아노콩쿠르 4위 (10월)

2012 - 58th Maria Canals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 in Barcelona, Spain 1st prize and Gold Medal / 스페인 바로셀로나 제58회 마리아 카날스 국제음악콩쿠르 1위 및 금메달 (3월)

2012 - 17th Leeds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England 2nd Stage (Top 30) / 잉글랜드 제17회 리즈 국제피아노콩쿠르 2라운드 진출 (9월)

2013 - 3rd Top of the World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Tromsø, Norway Semifinalist (Top 12) / 노르웨이 트롬쇠 제3회 탑 오브 더 월드 국제피아노콩쿠르 세미파이널리스트 (6월)

2013 - Piano Academy Eppan, Italy winner / 이탈리아 에판 피아노 아카데미 우승 (10월)

2013 - 5th International Telekom Beethoven Competition Bonn in Germany 1st prize / 독일 본 텔레콤 제5회 본 베토벤 국제피아노콩쿠르 1위 (12월)

2015 - 17th Chopi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Warsaw, Poland 2nd stage (Top 43) / 폴란드 바르샤바 제17회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2라운드 진출 (10월)


스승 신수정 · 박숙련 교수가 말하는 조성진

피아노를 잘 치고 싶다는 것 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점, 곡을 배우고 싶어 하는 열정이 크다는 점에서 조성진은 남다른 면모를 보여줍니다. 계획된 연주회를 대부분 새로운 곡으로 준비하겠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레퍼토리에 대한 욕심이 대단해요. 우승으로 들떠 있을 법도 하지만, 주변의 관심에 흔들리지 않고 계속 공부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스스로를 다잡는 모습과 심지가 굳은 성품은 연주자로 성장하는데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곡을 소화하는 능력 또한 뛰어납니다. 하마마쓰 콩쿠르에서 특별상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이런 능력이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 공부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려는 것도 성진이의 특징입니다. 예를 들어, 리스트의 단테 소나타를 공부한다면 단테의 <신곡>을 직접 읽어보는 것은 물론, 음반도 다양하게 듣고 연주회도 꼭 찾아다니거든요. 음악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대단하다고 생각될 때가 있어요. 성진이는 평소에는 조용하고 침착하지만 무대에서는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합니다. 이번 콩쿠르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표현했기에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어려서부터 뚜렷한 목표의식과 집중력으로 페이스 유지해온 만큼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해줄 것을 바라는 마음입니다.


스승 강충모 교수가 말하는 허재원 · 김현정 · 안수정

허재원은 다양한 음색으로 내면의 소리를 섬세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재원이의 연주를 들으면 성숙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른스러운 면모와 따뜻한 성품은 재원이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콩쿠르에서도 손가락이 찢어져서 통증이 심했을 텐데, 어른스럽게 잘 참아내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 보여주었어요. 대담한 면을 보충한다면 음악적으로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현정은 나이에 비해 인격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성숙한 면모를 갖추고 있습니다. 어떤 레퍼토리도 설득력 있게 연주하는 능력이야말로 현정이의 장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폭발적인 에너지로 청중을 사로잡는 모습에서는 연주자로서의 카리스마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체구는 작아도 무대에 올라가면 꽉 찬 느낌이 들어요. 시간이 흐르고 다양한 경험이 쌓이면 더 깊은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수정은 언제나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며 침착하게 연주를 이끌어나갑니다. 그래서 어떤 무대에 오른다고 해도 신뢰할 수 있어요. 무대에서의 집중력, 청중을 집중하게 만드는 흡입력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평소에는 얌전하다가도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달라지는데, 이것은 수정이가 좋은 연주자로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비해 음악을 보는 시각이 넓어진 모습을 보며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Interview with Daejin Kim

김대진 (한구예술종합학교 교수, 제7회 하마마쓰 콩쿠르 심사위원)


하마마쓰 콩쿠르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땠나요.


러시아 · 미국 · 이탈리아 · 프랑스 · 중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참가했지만 특히 한국 지원자의 수가 많았습니다. 입상자를 비롯해 우수한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던 만큼 심사위원과 언론에서는 ‘굳이 외국으로 유학 갈 필요가 없겠다’며 한국 음악 교육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하마마쓰 콩쿠르만의 특징이 있었다면요.


콩쿠르가 진행되는 동안 참가자들에게 연습 장소와 시간을 충분히 제공해준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심사위원을 비롯해 모든 참가자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한 부분은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심사위원의 수와 참가자들의 연주 프로그램에서도 수준 높은 콩쿠르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번 콩쿠르에서는 한국 학생들이 네 명이나 입상하며 한국 음악계의 발전을 증명해보였습니다. 심사위원으로서 의미가 남다를 것 같은데, 어떠신지요.


심사위원으로서 물론 기분 좋은 일이지만 편한 상황이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선 진출자의 대부분이 한국 학생이란 것을 왜곡된 시선으로 보려는 사람도 분명 존재할 테니까요. 하지만, 결선 진출자가 모두 한국 참가자들이어도 될 만큼 실력이 월등했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결과에 큰 이견이 없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조성진 학생은 최연소 및 동양인 최초 우승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조성진 학생은 1차부터 결선까지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흔들림 없는 연주를 보여주었습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해석으로 모든 레퍼토리를 고르게 소화한 점도 인상적이었어요. 음악적으로 성숙한 연주는 심사위원들에게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프로페셔널한 연주와 자세도 대회 초반부터 돋보였습니다. 이번 우승을 계기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하마마쓰 콩쿠르 입상자와 국제 콩쿠르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요즘 국제 콩쿠르에 도전하는 학생들을 보면 자신의 실력을 평가받는 것에만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우려되기도 합니다. 콩쿠르는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일 뿐, 목적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콩쿠르에 집중하다 보면 상대평가에 익숙해지는데, 이것은 자신의 개성과 해석을 보여주어야 하는 시기에 위기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음악을 펼칠 수 있는 하나의 관문을 통과했다고 생각하며 부단히 노력하는 자세가 콩쿠르 입상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마마쓰 콩쿠르는 한국 피아니스트들의 실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나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콩쿠르 입상자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노력뿐만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지원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Interview with Yeol Eum Son

지난 6월, 미국에서 열린 밴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는 낭보를 전해온 피아니스트 손열음. 순수 국내파로 에틀링겐 국제 콩쿠르와 비오티 국제 콩쿠르를 석권한 재능 있는 소녀로 이름을 날렸던 그녀는 이제 세계를 향해 자신의 존재를 더욱 뚜렷하게 각인시켰다. 또한 이번 밴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준우승을 통해 3년간의 미국 순회 연주와 2만 달러의 상금, 그리고 아르모니아 문디에서의 음반 발매의 특혜를 누리게 되었다. 하이든의 ‘피아노 소나타 제58번 C장조, Hob.XVI:48’, 바버의 ‘피아노 소나타 Op.26’, 드뷔시의 ‘전주곡집 제1권 중 6곡’, 고도프스키의 ‘요한 슈트라우스 Die Fledermaus(오페레타 박쥐) 주제에 의한 교향적 변용’이 녹음된 이 실황 음반에서 다시 한 번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가능성과 음악세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2월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잠시 고국을 찾은 손열음을 만났다.


밴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이후 어떻게 지냈나요.


클라이번 끝나고 미국에서 연주가 많아서 거의 미국에 있었어요. 밴 클라이번 콩쿠르는 미국에서 정말 큰 이벤트예요. 심지어 미국에서는 연주자가 누군지는 상관없고 밴 클라이번 위너라고 하면 표가 잘 팔린대요. 밴 클라이번 콩쿠르 위너라는 타이틀 자체가 그 연주자의 실력을 보증하는 하나의 지표로 통하는 것 같아요. 이곳에서는 누구도 입상자들을 등수로 얘기하지 않아요. 똑같이 ‘위너’라는 표현을 쓰더라구요. 밴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는 앞으로 3년의 연주 스케줄을 마련해주었는데, 앞으로의 연주활동은 그동안 공부했던 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이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하는 게 목표예요.


이번 음반은 밴 클라이번 준우승에 대한 특전이라고 알고 있어요. 모두 실황으로 녹음되어 부담되진 않았나요.


워낙 출반하기 전부터 방송이나 유튜브를 통해 노출이 되어 있어서 크게 부담은 없었어요. 처음에 수록곡을 정할 때 아르모니아 문디 측에서 그쪽에서 원하는 목록을 보내오며 제 의견을 물었는데, 다행히 제 생각과 일치해서 순조롭게 음반을 만들 수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운 녹음은 어떤 곡인가요.


하이든이요. 콩쿠르에서 독주 라운드가 세 번 있었는데 솔직히 세 번 다 너무 떨렸어요. 그런데 다행히 녹음이 잘 됐고 추후에 수정한 부분도 없습니다. 라이브라서 아쉬운 점은 없었어요.


전반적으로 이번 음반에 대해 본인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이번 음반의 수록곡은 하나의 리사이틀 프로그램으로도 괜찮은 프로그램이고, 저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구성인 것 같아요. 저는 평소에도 스튜디오 녹음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제 것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었죠. 듣는 이도 없는데 혼자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거든요. 저는 음악을 만들 때 청중과의 소통을 가장 중요시하는데, 스튜디오 녹음은 마치 벽에다 얘기하는 것 같았죠. 예전부터 기회가 되면 라이브로 녹음하겠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많은 독자들이 손열음 씨의 연주방법에 대해 궁금해 할 텐데요. 연습을 할 때 자신만의 어떤 룰이 있는지 궁금해요.


연습할 때에 특별한 룰은 전혀 없어요. 평상시에도 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쉬는 편이에요. 그러나 일단 연습을 하게 되면 집중하죠. 집중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하는 손 연습은 하지 않아요. 저는 건반 위에서 꼭 소리를 내야만 연습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소리를 내지 않더라도 악보를 보면서 생각하는 것 또한 연습에 포함된다고 생각해요. 원래 연습을 잘 안 하는 타입인데, 독일에 가서 연습을 더 재밌게 할 수 있게 됐어요.


서른 살이 되기 전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무엇인지 듣고 싶어요.


29세에 저만의 식당을 갖고 싶어요. 여기서 작은 음악회도 열고 싶어요. 전 항상 30대를 꿈꿔왔어요. 여자도 30대에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구요. 20대 때에는 잘되고 있어도 뭔가 불안하잖아요. 뭔가 잘 안 되면 안 되니까 걱정, 잘되고 있어도 걱정... 30대는 안정된 시기를 시작하는 시기이면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도 늦지 않은 시기라고 생각해요. 내면적으로 더욱 성숙해지고 불안이 잦아드는 시기를 동경해왔어요.


앞으로 주력하고픈 레퍼토리는 무엇인가요.


요즘에는 차분하게 레퍼토리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어서 아쉬울 때가 많아요. 어떨 때는 연주하는 것보다 공부하는 걸 더 즐길 때가 있거든요. 제가 다른 거엔 그다지 욕심이 없는데, 레퍼토리에 대해서만큼은 그렇지 않아요. 치기 싫은 몇 가지를 빼놓고는 다 쳐보고 죽는 게 꿈이에요(웃음). 원래 성격이 경쟁적이지 못한 편이지만, 레퍼토리만큼은 뒤지고 싶지 않아요.


- 배인혜 기자 글






피아노 탄생 300주년 기획 (5) 피아니스트의 전설

20세기의 위대한 피아니스트들을 추억하다


20세기에는 가히 피아니스트의 시대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비르투오소들이 각축을 벌였다. 이 가운데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몇 명을 추려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지만, 피아노란 악기의 한계를 뛰어넘어 피아노 음악의 새로운 차원을 연 다섯 명의 피아니스트를 고심하여 선정해보았다. 20세기를 풍미했던 이들 다섯 명의 피아니스트들을 일별하며 그들이 어떤 업적을 이루었는가를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 음악 칼럼니스트 박제성 글


완벽의 극치, 요제프 호프만

요제프 호프만(Josef Hofmann; 1876~1957)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드물겠지만, 그나마 그를 기억할 수 있는 정보라고 한다면 아마도 피아노 전문 서적을 통하여 라흐마니노프의 동료(제3번 협주곡을 헌정 받았다)로서, 혹은 커티스 음악원의 학장이자 유명했던 피아니스트로서가 전부일 것이다.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라흐마니노프는 1910년대부터 사망하기 직전까지 꾸준하게 녹음 작업을 했고, 그 결과 RCA에서 방대한 양에 이르는 그의 레코딩 전집을 발매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호프만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10대 소년 시절 에디슨과 함께 최초로 클래식 음악을 녹음했을 정도로 레코딩 분야에서 선구자적인 인물이었지만, 전기녹음이 시작될 무렵부터 그는 스튜디오 레코딩을 거부하고 교수이자 콘서트 연주자로서 활동했다.


그는 초기 스테레오 시대인 1957년까지 생존했다. 그러나 최고의 능력이 발산되었던 1930년대 이후 정신적 · 예술적 쇼크에 의한 알코올 중독에 빠진 탓에 더 이상 꽃을 피우지 못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역사에서 가정법은 없다고 하지만, 만약 그가 양질의 레코딩을 남겼더라면 아마도 20세기 중반 이후의 피아노계의 판도는 많이 변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의 연주를 듣고 좌절한 피아니스트들이 많았을 테니까. 70여 년에 이르는 긴 세월 동안 그의 연주는, 마치 호로비츠처럼 드라마틱하게 변화의 변화를 거듭했다. 그가 SP 시절에 남긴 소수의 녹음을 통하여 확인해볼 때, 처음에는 텍스트와 음표를 중요시하는(당시의 파흐만 · 자우어 · 달베르 · 파데레프스키와는 전혀 다른) 객관주의자였다. 1930년대 이후 그는 자신의 내부에서 울려나오는 고유의 소리, 풍부한 색채의 팔레트, 그가 충성을 맹세했던 모슈코프스키와 스감바티, 안톤 루빈스타인 등의 기벽에 경도하기 시작했다. 한편 알코올 중독에 빠진 1940년대 이후의 그는 레퍼토리가 좁아지면서 완벽함 또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슈퍼-비르투오소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부여받은 진정한 거장이었다. 초인적인 암보력과 테크닉, 그의 스승인 안톤 루빈스타인으로부터 전수받은 작품에 대한 투철한 분석력과 자유롭게 숨쉬는 레가토, 그의 사후 아무도 흉내 낼 수조차 없는 테크닉과 다이내믹 레인지(어윈 니레지하지 정도가 그에 필적할 것이다), 폴리포니에 대한 완벽한 이해, 종을 울리는 듯한 타건과 비할 바 없이 유연한 레가토 등은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호프만은 그와 자주 비견되는 레오폴트 고도프스키에게는 없던 열정을 가지고 있었고, 동료였던 라흐마니노프에게는 없던 강한 시성과 색채감을 가지고 있었다. 낭만주의 피아니즘의 극점에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라흐마니노프와 같은 현대적인 피아니즘의 모범을 제시하기도 한, 진정한 의미에서 피아노의 한계를 뛰어넘은 20세기 걸출한 예술가이기도 하다.


강철의 팔, 황금의 심장,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1976년 5월의 마지막 날, 9세의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런던 위그모어 홀에서 마지막 리사이틀에서 슈만의 ‘카니발’을 연주했다. 이 연주회에 참석했던 머레이 페라이어는 “내가 얼마나 오래 살든 카니발을 저처럼 연주할 수는 없을 거야”라고 고백했다고 한다. 그날 연주회에서 루빈스타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요즘 사람들 가운데 라흐마니노프의 연주를 직접 들은 사람은 없을 테지만, 그야말로 진정한 ‘카니발’ 그 자체였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 1873~1943)는 러시아에서 작곡가이자 지휘자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었지만, 러시아 혁명 이후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현실적인 문제로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19년 4월 18일부터 23일 사이 토머스 에디슨 컴퍼니에서 레코딩 데뷔를 했는데, 당시 녹음한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 제2번은 아직까지도 대적할 만한 사람이 없는 명연 가운데 명연으로 기억되며 9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후 RCA에서 녹음하면서 다행스럽게도 그는 CD 10장 분량의 음반을 남겨 호프만과는 달리 후대의 귀감으로 남을 수 있었다.


짧은 머리에 커다란 키, 미소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우울한 표정이 트레이드마크다. 호프만이 위대한 컬러리스트였다면 러시아로부터 온 이 죄수와도 같은 피아니스트는 위대한 건축가랄까. 그는 결코 직감에 의존하여 연주를 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피아니스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결함과 세련미, 특유의 권위적 분위기를 바탕으로 감정의 모든 요소를 이성의 차원으로 환원시켜놓았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리스트와 레셰티츠키의 제자들이 감각과 스타일을 자랑하느라 정신없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지만, 미국에서의 라흐마니노프는 묵묵히 난공불락의 음표의 성을 쌓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경외심을 가지고 우러러보는 장인정신과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엄청난 능력을 바탕으로, 그는 리듬을 강하게 휘몰아치기도 하고 남성다운 활력, 고상한 음향 감각을 구사했다.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제2번을 들어보면 그의 낭만적 상상력과 결합한 고전주의적 엄격함의 백미를 체험할 수 있을 뿐더러, 베토벤의 32개의 변주곡 WoO 80을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베토벤에 정통한 연주자인지를 새롭게 깨달을 수 있다. 특히 그의 베토벤 해석은 당시 베토벤 해석의 1인자로 손꼽히던 아르투르 슈나벨도 극찬했을 정도다. 물론 그의 피아노 협주곡 4곡과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 녹음은 이 작품에 대한 최고의 기준으로서, 그의 담담하되 강인한 터치와 우수어린 분위기, 냉정한 듯 불타오르는 비르투오시티, 엄격한 템포와 수직적 상승 구도 등등은 지금까지도 넘볼 수 없는 전설로 남아있다.


건반 위의 시인, 알프레드 코르토

알프레드 코르토(Alfred Cortot; 1877~1962)가 아니었다면, 우리 시대의 쇼팽과 슈만은 한층 빈약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코르토에 의해 쇼팽의 서사와 슈만의 서정이 새롭게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의적 해석으로 점철되었던 낭만주의 피아노 시대에 신선한 기운과 순수한 아름다움 그 자체를 발견한 진정한 의미의 낭만주의자이기도 했다. 피아니스트뿐만 아니라 자크 티보와 파블로 카잘스와의 트리오를 결성한 탁월한 앙상블리스트이자 바이로이트에서 부지휘자를 지냈을 정도의 열혈 바그네리안으로 지휘자로도 탁월한 기량을 발휘했다. 20세기 프랑스 피아니즘의 계보를 가능케 했던 위대한 교육자이자 작품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테크닉의 발전을 꾀한 음악학자였던 그는 파울 푸뇨의 뒤를 이어 1917년 파리 음악원의 피아노과 교수가 되었다. 이후 그는 클라라 하스킬 · 이본느 르페뷔르 · 유라 귈러 · 마그다 탈리아페로 · 디누 리파티 · 상송 프랑수아 · 디노 치아니 등등과 같은 1950년대를 대표하는 모든 피아니스트들을 길러낸 주인공이다. 실로 그는 20세기 초반 유럽의 중심이었던 파리를 대표하는 위대한 음악가였다.


그의 명성은 너무도 높아 1930년대까지 그에 대적할 만한 피아니스트는 유럽에 존재하지 않았다. 에밀 폰 자우어나 모리츠 로젠탈 같은 리스트의 제자들은 너무 늙었고 러시아 피아니스트들은 미국에서 자리 잡고 있었으며, 독일 피아니스트들은 그의 감각적인 터치와 우아함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한 마디로 대적할 만한 라이벌이 없었던 것이다. 그의 전지전능함에 대한 꿈이 깨진 것은 1930년대 초반 러시아에서 날아온 호로비츠가 리스트 소나타를 녹음하면서부터다. 더군다나 그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미스터치였다. 너무도 다양하고 바쁜 스케줄 때문에 프로페셔널한 피아니스트로서 연습할 시간이 부족했던 그는, 천부적인 테크닉에도 불구하고 녹음과 공연 모두에서 여지없이 미스터치를 남기곤 했다. 그러나 그의 아름다운 터치와 숭고한 예술성을 생각한다면, 그의 미스터치는 평화 위에 내려앉은 티끌과도 같은 미미한 것이었다.


그에게는 지적인 권위, 귀족적인 기질, 남성다운 대범함과 남성 특유의 섬세함, 시적 상상력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외향적인 화려함보다는 내향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고, 음악을 재창조하는 진정한 예술가로서 논리를 뛰어넘는 심오한 세계를 보여주었다. 쇼팽 전주곡 24곡을 한 무대에서 모두 연주하여 전체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던 그 용기와 직관은 코르토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비록 그가 1940년대 이후의 녹음에서는 기력이 쇠한 모습을 보여주곤 했지만, 그가 그 이전에 남긴 쇼팽과 슈만 레코딩들은 피아노에서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우리 시대의 소중한 보물이다.


베토벤의 여사제, 엘리 나이

엘리 나이(Elly Ney; 1882~1968)의 이름은 호프만의 이름보다 더욱 낯설게만 느껴질 법하다. 왜냐하면 그녀는 독일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던 탓에 단 한 번도 서유럽이나 미국 언론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녀는 1937년부터 나치에 가입하여 문화 교육에 앞장섰던 ‘총통의 피아니스트’로 유명했던 만큼, 전후 그녀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그러나 그녀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과 같은 베토벤의 위대한 모습을 경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베토벤에는 고결함과 숭고함은 물론이려니와 투명한 선율미와 수채화빛 음색, 그리고 남성보다 더 남성적인 근육질적인 대범함과 철을 두 동강내는 듯한 날카로움까지 배어있기 때문이다. 슈나벨의 연주는 이에 비하면 훨씬 낭만주의적이고 그녀의 제자인 빌헬름 켐프의 연주는 훨씬 여성적이다. 그녀가 60년대에 콜로세움 레이블에서 녹음한 베토벤 소나타들을 들어보면, 특히 ‘템페스트’ 3악장이나 ‘발트슈타인’ 2악장에서의 그 처연하고도 살을 에는 듯한 날카로움이 공존하는 아름다움의 세계는 형언할 수 없는 경외의 대상이다.


남성 연주자로서 빌헬름 박하우스 · 아르투르 슈나벨 · 에트빈 피셔가 이전 시대의 베토벤 삼총사라고 한다면, 프랑스의 이본느 르페뷔르와 헝가리의 아니 피셔와 더불어, 독일의 엘리 나이, 이렇게 세 명의 베토벤 여사제가 1950년대 이후를 주도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나이의 경우 에밀 폰 자우어로부터 리스트로 계승되어 온 베토벤의 정신을 물려받았고 레셰티츠키로부터 유럽 피아노 전통의 아름다움을 전수받았던 만큼, 그녀에게는 독일적 베토벤의 권위의 월계관이 씌워져 있다. SP 시대에는 브람스의 친구인 막스 피들러와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녹음했을 정도로 독일 음악 정신에 투철했던 그녀는, 항상 베토벤의 정신적인 위대함에 경도되어 있었다. 그러한 만큼 그녀의 희귀한 베토벤 소나타 녹음들로부터 우리는 가장 독일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동시에 가장 현대적인 베토벤의 위대한 모습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신의 또 다른 이름,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다소 낮게 앉은 의자, 건반 밑으로 뚝 떨어진 팔꿈치, 직선으로 곧게 뻗친 손가락, 마치 손가락 하나하나마다 지능이 있는 것처럼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핑거링, 피아니시모에서의 섬세한 운지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빠른 스피드와 원자폭탄이 터진 것과 같은 전율적인 효과를 내는 옥타브, 스카를라티와 클레멘티 같은 바로크 작곡가부터 쇼팽과 리스트 · 슈만을 걸쳐 무소르그스키와 스크리아빈, 그리고 라흐마니노프와 프로코피에프, 바버에 이르는 현대 작품까지를 완벽하게 자기 스타일로 환원시킨 블라디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 1903~1989)! 작곡가의 꿈을 접고 피아니스트로 전향했던 그는 자신의 체형과 해석에 맞게 그러한 연주 스타일을 개발해냈다고 말했다. 그렇다. 연주 스타일(수단)이란 곧 연주가의 음악 해석(목적)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연주 스타일이 특수하다는 것은 곧 그의 음악 세계가 그만큼 독창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일생에 걸쳐 많은 공백기를 가지며 자신의 내면과 스타일을 변화시켜나간 카멜레온 같은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1936년부터 38년까지 공백기를 가지며 테크니션에서 고전주의자로 변화했고, 1953년부터 1965년까지 12년에 걸친 긴 공백기 이후 카네기홀에서 역사적인 복귀 리사이틀을 가지며 진정한 피아노의 신으로 군림했다. 낭만주의와 고전주의를 이상적으로 통합해낸 그에게는 더 이상의 비평과 반대의견이 있을 수 없었고 오로지 복종만을 요구했다. 1969년부터 74년까지 공백기 이후 악마적인 시기로 접어든 그는 청중을 최면상태로까지 몰아갈 정도로 마지막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음반 판매와 연주회 개런티는 천문학적인 수준까지 올라갔다. 1983년 엉망진창이었던 일본 연주회 이후 짧은 공백기를 거치며 복용하던 약을 모두 끊고 다시 부활하여 천사의 복음과도 같은 황홀하고도 마법 같은 음색과 낭만의 향연을 보여주며 60년 만의 고향 방문과 수차례의 유럽 연주를 통해 낭만주의의 본질을 재발견해내기도 했다.


그의 위대함을 증명할 수 있는 많은 레코딩이 존재하지만 초기 RCA 시대 때의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과 장인인 토스카니니와 함께 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제1번, 라이너와 오먼디와 남긴 두 차례의 라흐마니노프 제3번 협주곡, 마지막 비르투오소의 불꽃을 연소시킨 1981년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를 비롯해서, SONY에서 발매된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와 ‘어린이 정경’, 스카를라티 소나타들, DG에서 줄리니와 함께 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4번과 1986년 모스크바 실황 등만 꼽더라도, 이들 녹음은 20세기 피아노 예술의 한 획을 금과 동시에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일종의 이상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우리 시대의 모범이라고 말할 수 있다.



커버스토리만 보여주려다가 다른 좋은 정보들을 더 스캔했다. 2009 하마마쓰 콩쿠르에서는 우리나라가 4명이나 결선에 진출하여 화제였다. 이후 9년 후에는 일본도 4명이 진출했다. 하지만 일본에게는 우승이 허락되지 않았다. 이혁 포함 아시아가 5명인데 터키 1인을 못 넘어가지고... 조성진을 2010년이나 2011년에 알았을 것인데... 아마 2011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소식을 접하고 알지 않았을까? 2012년에는 확실히 기억하는데, 콩쿠르를 주제로 한 발표 수업에서 피아니스트 인기투표할 때 내가 조성진을 끼워 넣어봤거든. 하지만 임동혁이 다 제치고 압도적인 1위! 히히히~ 학생 때만 해도 조성진이 아시아 최초로 하마마쓰 콩쿠르에 우승했나보다 이런 생각이었다. 물론 임동혁이 쉽지 않은 대회에서 준우승이란 걸 그전에 알고는 있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글을 봤거든. 2009년과 2018년 보고서를 둘 다 번역하여 정리해봤는데 2009년 대회는 시간이 흘러서 본 거라 모든 참가자들을 명단만 알고 연주가 어떤지는 일일이 모른다. 2018년 대회는 못 본 것까지 다 챙겨봤고. 이 대회에서 유럽의 벽을 넘어 우승한 사람은 현재까지 조성진이다. 2018년 대회는 나한테 이 대회의 속성이 어떤지 확실히 깨닫게 해줬다. 아시아한테는 쉽게 우승을 내주지 않는 만만치 않은 대회란 걸 단단히 확인시켜줬다. 코로나19 때문에 2021년 대회가 취소될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어쩔 수 없이 우승 후보는 유럽을 찍고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 가지를 스캔했는데 다 연결된다. 하마마쓰 콩쿠르에서 클라이번 콩쿠르 얘기도 나오고... 피아니스트 스토리에서는 조성진이 좋아한다는 코르토도 나오고... 코르토나 엘리 나이나 음악성은 높이 평가받아도 나치에 협조했다는 것 때문에 이미지가 깎였다는... 타이핑하면서 읽었는데 코르토는 상송 프랑수아를 공부하기 이전에 알아야 할 인물!


모처럼 피아니스트 이야기를 읽었는데 옛날에는 이런 스토리를 좋아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여기저기 좋은 정보가 널려도 별로 안 취하려 들면서 관심이 멀어졌다. 옛날에 동호회에서 나처럼 피아노 음악을 특히 좋아하시는 분이 이야기를 하나 해주셨다. 헝가리의 에르빈 니레지하지가 어린 시절에 신동이었는데 자기를 상품 취급하는 음악계가 싫었단다. 어느 날 갑자기 뉴욕 무대에서 사라진다. 이후 뉴욕 부두에서 일했다고. 나중에 무대에 복귀하긴 했다. 그분이 리파티 팬이셨는데 나한테 2004년인지 2005년에 소콜로프란 연주자도 알려주셨다. 연주자의 홈페이지도 알려주셨고. 녹음을 전혀 안 하니까 많이 모아두라고 하셨다. 그래서 온갖 녹음을 쥐게 되었다. 난 그 말을 잘 들었으니까! 내가 피아니스트의 연주 외적인 것에 흥미가 있다면 그건 상송 프랑수아! 중고 잡지를 구매해서 읽었는데 무지 재밌었다. 워낙 팬이라서 그런 건지도. 히히히히히~


여기에 올린 글들은 내가 돈을 주고 산 음연 피아노 잡지 2010년 1월호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