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15일 월요일

Eumyeon Piano Magazine Cover Story (January 2010)








[Cover Story]

하마마쓰 콩쿠르의 새로운 역사를 쓰다

조성진 · 허재원 · 김현정 · 안수정은 지난 11월 8일부터 23일까지 일본에서 개최된 제7회 하마마쓰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각각 1위 · 3위 · 5위 · 6위를 차지하며 한국 음악계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다시 한 번 증명해보였다. 최연소 및 동양인 최초 우승자 탄생과 더불어 한국 피아니스트가 네 명이나 입상했다는 점, 그리고 순수 국내파 출신으로 세계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이번 하마마쓰 입상은 새로운 역사라고 할 수 있다.


한국 피아니스트 4명 입상의 쾌거

지난 11월 8일부터 23일까지 일본에서 열린 제7회 하마마쓰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우승자 조성진을 비롯해 허재원 · 김현정 · 안수정이 각각 3위 · 5위 · 6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네 사람 모두 순수 국내파 출신으로 세계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점, 그리고 한국 음악계의 발전을 다시 한 번 증명해보였다는 점에서 이번 입상은 그 의미를 더했다.


일본 언론도 한국 젊은 연주자들의 활약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것은 비단 하마마쓰 콩쿠르 결과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다. 베토벤 국제 콩쿠르 · 더블린 국제 콩쿠르 · 밴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등 지난 일 년 동안 한국 연주자들이 권위 있는 국제 콩쿠르에서 이룬 성과는 주목할 만했다. 2009 리즈 국제피아노콩쿠르 3위 입상자인 알레산드로 타베르나를 비롯해 뛰어난 연주자들이 참가하여 치열한 경쟁을 보인 하마마쓰 콩쿠르에서도 한국 연주자들의 저력은 어김없이 발휘되었다.


그래서일까. 특정 국가 참가자들이 결선 진출자의 3분의 2를 차지했다는 사실에 문제를 제기했을 법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 언론에서는 결선에 한국 참가자들이 3명 이상 올라갈 것으로 예측했다고. 결선 진출자가 확정된 후 마련된 기자회견에서도 ‘한국인에게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다’며 비결을 궁금해 했다. 기자회견에 한국어 통역사가 동석한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1991년 개최된 이래 3년마다 열리고 있는 하마마쓰 콩쿠르의 위상은 역대 입상자들에게서 짐작할 수 있다. 2009년 더블린 국제 콩쿠르 우승자인 알렉세이 고를라치와 2005년 쇼팽 국제 콩쿠르 우승자인 라파우 블레하치가 대표적이다. 두 사람은 각각 2006년과 2003년에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인으로는 김태형(2006년 3위)과 임동혁(2000년 2위)이 입상한 바 있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이번 하마마쓰 콩쿠르에는 DVD 심사로 세계 각국에서 지원한 100여 명의 참가자들이 선발되었으며, 1차 · 2차 · 3차를 거쳐 6명의 결선 진출자가 결정되었다. 심사위원으로는 나카무라 히로코(심사위원장)를 비롯해 아리에 바르디 · 데임 패니 워터먼 · 존 오코너 · 도미니크 메를레 · 세르게이 도렌스키 · 김대진 등이 참여해 권위를 더했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하마마쓰 콩쿠르는 입상자에게 뿐만 아니라 대회 운영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 대회로 유명하다. 이런 의도는 평소 도시 분위기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기차역에서 콩쿠르가 열리는 공연장으로 가는 길에는 역대 입상자들의 연주 사진이 걸려 있어요. 콩쿠르 기간이 아니어도 광장에는 항상 쇼팽의 음악이 흘러나오고요. 일본에서 피아노를 처음 만들기 시작한 도시인 만큼, 가와이와 야마하 본사도 하마마쓰에 자리하고 있어요. 음악을 위한 기획 도시란 생각이 들 정도로 콩쿠르에 대한 지원도 완벽했습니다. 기차역 · 콩쿠르 장소 · 호텔을 연결하여 참가자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놓았거든요. 무엇보다 연습시간과 장소를 충분히 확보해놓은 점이 만족스러웠어요.” (허재원)


하마마쓰 국제피아노아카데미에 참가한 바 있는 안수정과 조성진도 진정한 음악 도시임을 느낄 수 있었다며 그의 말에 공감했다.


콩쿠르가 진행되는 16일 동안 현지의 관심은 대단했는데, 공연 한 시간 반 전부터 몇 백 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은 물론, 티켓도 대부분 매진되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참가자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콩쿠르를 하면서 처음으로 음악을 즐겼던 것 같아요. 비록 경쟁하는 자리이지만 콩쿠르 또한 하나의 무대이고, 제 연주를 듣기 위해 와준 분들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지더군요. 그래서인지 연주하는 내내 청중과 대화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연주하는 순간순간뿐만 아니라 무대에 오르기 직전의 긴장감조차 즐기게 되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콩쿠르였습니다.” (안수정)


하마마쓰 콩쿠르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레퍼토리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는 압박감이 더해져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든 시간이었다고 이들은 고백했다.


“연습을 많이 하다 보니 손가락이 찢어져서 나중에는 펼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상처를 진정시키기 위해 밤에는 꿀을 바르고 자고, 낮에는 밴드를 다섯 번씩 감고 연습했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더군요. 협주곡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탓에 연습 시간을 줄일 수도 없고, 걱정만 가득했어요. 결국, 결선 당일까지 통증이 사라지지 않아 진통제를 먹고 무대에 올랐는데, 연주가 끝나자마자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과 준비한 것 이상으로 연주했다는 만족감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허재원)


“콩쿠르에 참가하기 전부터 어깨에 통증이 있었는데, 작은 체구로 큰 스케일의 곡을 소화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더해지면서 상태가 악화되었어요. 다른 참가자들이 12시간씩 연습하는 모습을 보니 불안한 마음에 항상 피아노 앞에 앉아있게 되더군요. 일단 3차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에 파스를 붙이고 무대에 올랐어요. 연주를 끝내고 내려오자 한국에서 인터넷 생중계를 본 친구들이 ‘눈물 나는 투혼’이라며 위로해준 기억이 나요.” (김현정)


2차 지정곡으로 주어진 일본 현대작곡가의 위촉곡도 네 사람이 고전했던 부분 중 하나이다. 기존 레퍼토리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곡을 익혀야 한다는 부담감과 난해한 현대음악을 암보로 연주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특히 올해 위촉곡인 아키라 니시무라의 "Daydream for Piano"(한낮의 꿈)와 아쓰히코 곤다이의 "Transient Bell for Piano"(덧없는 종)는 현대적인 어법으로 작곡되어 참가자 대부분이 힘들어했다는 후문이다.


“다른 콩쿠르와 달리 하마마쓰에서는 위촉곡을 외워서 연주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우연히도 24명 중 한 명(알레산드로 타베르나)을 제외하고는 모두 ‘Daydream for Piano’를 선택했는데, 암보에 대한 부담감이 컸는지 대부분 이 곡을 처음에 연주했어요. 저희 네 명도 마찬가지였고요.” (김현정)


준비과정부터 마지막 연주를 끝내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까지 각자 이겨내야 했던 어려움은 달랐지만, 이들은 이 과정을 거치며 한층 성숙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입을 모았다.


“새로운 청중을 만나 내가 생각하는 음악을 들려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즐거움인 것 같아요. 물론,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 좋겠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콩쿠르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부분이지요. 그런 면에서 콩쿠르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축제와 같다고 생각해요. 연주에 집중한다면 실력도 자연스럽게 성장하지 않을까요?” (안수정)


조성진, 최연소 및 동양인 최초 우승자

하마마쓰 콩쿠르의 가장 큰 화제는 단연 조성진이었다. 조성진은 하마마쓰 콩쿠르 역사상 최연소 및 동양인 최초 우승자로 새로운 기록을 세운 것과 더불어 일본 현대작곡가의 위촉곡을 잘 연주한 참가자에게 주어지는 특별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모스크바 국제 청소년 쇼팽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바 있지만, 주니어가 아닌 일반 콩쿠르에 처음 도전하여 우승했다는 점은 분명 주목할 만하다. 어린 나이에 심리적 부담감을 안고 타이트한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 힘들지 않았냐고 묻자, 조성진은 오히려 편하게 연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승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담담한 그의 모습에서 ‘성과보단 공부에 의미를 두었다’는 말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을 청중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했어요. 말이 아닌 피아노로 이야기하는 것이기에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콩쿠르가 끝나고 나니 레퍼토리를 다룰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서 좋아요. 베토벤 소나타를 시작으로 다양한 작품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조성진)


조성진의 실력은 이미 여러 무대를 통해 입증되었다. 이화경향 콩쿠르 · 음연 콩쿠르 · 음악춘추 콩쿠르 1위 입상을 비롯해 지난 3월에 참가한 하마마스 국제피아노아카데미 콩쿠르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한국 이미지상 시상식에서 정명훈에게 발탁되어 서울시향과 세 번의 연주를 가졌고, 로린 마젤이 젊은 음악가 육성을 위해 만든 캐슬턴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폐막식에서 마젤과 협연 무대를 선보였다.


조성진은 이번 콩쿠르 우승으로 16회의 연주 기회를 갖게 되며, 이외에도 올해 상반기에 네덜란드 · 러시아 · 폴란드에서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콩쿠르 기간 중 조명을 받은 또 한 사람은 피아니스트 강충모(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이다. 한국인 입상자 4명 가운데 허재원 · 김현정 · 안수정이 모두 그의 제자였던 것이다. 제자들이 결선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으로 달려간 그는 입상자들만큼이나 바쁜 시간을 보냈다. 나카무라 히로코 심사위원장 역시 이례적인 일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허재원 · 김현정 · 안수정은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은 강충모 교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입을 모았다.


제7회 하마마쓰 콩쿠르는 한국 음악계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였다. 이번 콩쿠르 입상으로 세계무대에 한 걸음 다가간 조성진 · 허재원 · 김현정 · 안수정. 한층 깊어진 음악으로 더 높이 비상할 이들을 기대한다.


- 글 · 권기호 기자 / 사진 · 윤은수 기자


Seong-Jin Cho / 조성진

28 May 1994 in Seoul / 1994년 5월 28일 서울 출생

2004 - 7th Korean National Chopin Competition of Young Pianists in Seoul, Korea [Elementary School Low Level Division] 3rd prize / 서울 제7회 한국 쇼팽 콩쿠르 [초등부 저학년] 3위

2004 - 9th Eumak Chunchu Competition in Korea [Elementary School Grade 4 Division] 1st prize / 제9회 음악춘추 콩쿠르 초등4학년부 1위

2004 - Student Art Contest in Gyeonggi-do in Korea 1st prize / 경기도 학생예술경연대회 1위

2004 - 3rd Chung-Ang University National Piano Competition for Students in Seoul, Korea 1st prize / 서울 제3회 중앙대학교 전국 학생 피아노 콩쿠르 1위 (9월)

2005 - 54th Ewha Kyunghyang Music Competition in Korea [Elementary School Division] 2nd prize / 제54회 이화 경향 콩쿠르 초등학교부 2위

2005 - Eum Yeon Competition in Korea [Elementary School Grade 5-6 Division] 1st prize with Eun-Sil Yoo (Korea) / 음연 콩쿠르 [초등5~6학년부] 류은실과 공동 1위

2006 - 55th Ewha Kyunghyang Music Competition in Korea [Elementary School Division] 1st prize / 제55회 이화 경향 콩쿠르 초등학교부 1위 (4월)

2006 - 1st Eumaksekye Young Artist Contest in Korea Grand Prize / 제1회 음악세계 콩쿠르 전체 대상

2007 - 11th Eum Yeon Winter Music Camp Competition in Korea 1st prize / 제11회 음연 겨울음악캠프콩쿠르 1위

2008 - The Music Association of Korea New Artist Prize ex-aequo with Eun-Sil Yoo (Korean pianist) / 한국음악협회 주최 한국음악상 - 류은실과 신인상 공동 수상 (2월)

2008 - 6th International Chopin Competition for Young Pianists in Moscow, Russia 1st prize, Youngest Prize, Concerto Prize, Polonaise Prize and Jury Award / 러시아 모스크바 제6회 쇼팽 청소년 국제피아노콩쿠르 1위, 최연소 특별상, 협주곡 특별상, 폴로네즈 특별상 및 심사위원상 (9월, 심사위원 9명 중 7명이 1위로 선택)

2009 - Korea Image Award / 한국 이미지 상 (1월)

2009 - 14th Hamamatsu International Piano Academy Competition in Japan 1st prize / 일본 제14회 하마마쓰 국제피아노아카데미 페스티벌 콩쿠르 1위 (3월)

2009 - 7th Hamamatsu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Japan 1st prize, Best Performer of the Japanese Work and The Mayor of Sapporo Award (first Asian and youngest winner) / 일본 제7회 하마마쓰 국제피아노콩쿠르 1위, 삿포로 시장상 및 일본인 작품 최우수 연주상 (11월, 아시아 최초이자 역대 최연소 우승)

2009 - Performance Series Louvres 2011-2012 Season Audition Pass /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2011~2012 시즌 공연 시리즈 오디션 합격 (12월)

2010 - "100 Koreans who will shine and out in 2020" by The Dong-A Ilbo / 동아일보 <10년 후 한국을 이끌 100인>에 선정 (5월)

2010 - 4th Youth Hero Award in Seoul / 서울 제4회 젊은 영웅상 (10월)

2011 - 14th Tchaikovsky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 in Moscow, Russia 3rd prize and Bronze Medal / 러시아 모스크바 제14회 차이코프스키 국제음악콩쿠르 3위 및 동메달 (7월)

2011 - 6th Daewon Music Awards in Seoul "Best New Artist" Prize / 서울 제6회 대원음악상 신인상 (11월)

2014 - 14th Arthur Rubinstein International Piano Master Competition in Tel Aviv, Israel 3rd prize, Competition Bronze Medal, Arnold & Marjorie Ziff Prize, Junior Jury Prize and Special Prize for the Best Performer of Chamber Music ex-aequo with Andrejs Osokins (Latvia) / 이스라엘 텔아비브 제14회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국제피아노마스터콩쿠르 3위, 콩쿠르 동메달, 아놀드-마조리 지프 상, 청소년 심사위원상 및 안드레이스 오소킨스(라트비아)와 실내악 최우수 연주 특별상 공동 수상 (11월)

2015 - 17th Chopi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Warsaw, Poland 1st prize and Fryderyk Chopin Society Prize for best performance of a polonaise / 폴란드 바르샤바 제17회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1위 및 폴로네즈 특별상 (10월)

2015 - 23rd Young Artist of the Year Award [Music Section] Special Prize /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제23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음악 부문 특별상 (11월)

2015 - Medalem Młodego Pozytywisty (Young Positivist Medal) in Poznan, Poland / 폴란드 포즈난에서 젊은 실증주의자 메달 수상 (12월)

2016 - 10th Pony Chung Innovation Award / 제10회 포니정 혁신상 (7월)

2018 - The 8th Kumho Musician Award / 제8회 금호음악인상 (1월)

2018 - Forbes 30 under 30 Entertainment & Sports in Asia / 포브스 지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 선정 (3월)

2018 - Mecklenburg-Vorpommern Festival in Germany Audience Award / 독일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페스티발 청중상 (11월)

2019 - 12th Daewon Music Awards in Seoul Grand Prize / 대원문화재단 제12회 대원음악상 심사위원 만장일치 역대 최연소 대상 (4월)

2020 - Nation Brand Grand Prize by The Institute of Nation Brand Promotion in Korea / 국가브랜드진흥원 주최 국가브랜드 [예술 부문] 대상 (9월)


David Jae-Weon Huh / 허재원 (데이비드 허)

19 December 1986 in Pohang / 1986년 12월 19일 포항 출생

1998 - TBC 음악콩쿠르 1위

2003 - 서울 제6회 음연 쇼팽 콩쿠르 [고등부] 김혜진과 공동 2위

2004 - 서울 제7회 음연 쇼팽 콩쿠르 [고등부] 김혜인과 공동 1위

2004 - 5th Asia Chopi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Tokyo, Japan [Senior High School] Bronze Prize ex-aequo with Kana Kizawa (Japan) / 일본 도쿄 제5회 아시아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고등학생 부문] 가나 기자와(일본)와 공동 3위 (2월)

2004 - 한국일보 음악 콩쿠르 1위

2004 - 제53회 이화경향콩쿠르 고등학교부 2위

2005 - 제45회 동아음악콩쿠르 5위

2005 - 51st Maria Canals Barcelona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 in Barcelona, Spain Medalist (Semifinalist) / 스페인 바르셀로나 제52회 마리아 카날스 국제음악콩쿠르 세미파이널리스트 (4월)

2005 - The Music Association of Korea Competition in Seoul 3rd prize ex-aequo with Eun Shik Park / 서울 한국음악협회 제20회 해외 파견 콩쿠르 [피아노 부문] 박은식과 공동 3위 (5월)

2007 - 서울 한국음악협회 제26회 해외 파견 음악 협회 콩쿠르 전체 대상 및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5월)

2007 - 4th Shanghai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China 1st prize / 중국 제4회 상하이 국제피아노콩쿠르 1위 (11월)

2009 - 7th Hamamatsu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Japan 3rd prize / 일본 제7회 하마마쓰 국제피아노콩쿠르 3위 (11월)

2011 - 7th Seoul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 in Korea Semifinalist (Top 12) / 제7회 서울 국제음악콩쿠르 세미파이널리스트 (4월)

2011 - 19th Cleveland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Ohio, USA Semifinalist (Top 8) and Russian Prize / 미국 오하이오 제19회 클리블랜드 국제피아노콩쿠르 세미파이널리스트 및 러시아 작품 최우수 연주 특별상 (8월)

2012 - 9th Dubli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Ireland Semifinalist (Top 12) / 아일랜드 제9회 더블린 국제피아노콩쿠르 세미파이널리스트 (5월)

2014 - 10th Franz Liszt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Utrecht, the Netherlands Semifinalist (Top 9) /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제19회 리스트 국제피아노콩쿠르 세미파이널리스트 (11월)

2015 - 4th Top of the World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Tromsø, Norway Semifinalist (Top 12) / 노르웨이 트롬쇠 제4회 탑 오브 더 월드 국제피아노콩쿠르 세미파이널리스트 (6월)

2015 - 18th Paloma O'Shea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Santander, Spain 2nd prize / 스페인 산탄데르 제18회 팔로마 오셰아 국제피아노콩쿠르 2위 (8월)

2015 - 18th Leeds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England 2nd Stage (Top 30) / 잉글랜드 제18회 리즈 국제피아노콩쿠르 2라운드 진출 (9월)

2017 - 13th Hastings International Piano Concerto Competition in England Semifinalist (Top 12) / 잉글랜드 제13회 헤이스팅스 국제피아노협주곡콩쿠르 세미파이널리스트 (3월)

2017 - 16th Montreal International Musical Competition in Canada Semifinalist (Top 12) / 캐나다 제16회 몬트리올 국제음악콩쿠르 세미파이널리스트 (5월)

2018 - 27th New Orleans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Louisiana, USA 3rd prize and Bronze Medal / 미국 루이지애나 제27회 뉴올리언스 국제피아노콩쿠르 3위 및 동메달 (7월)


Hyun Jung Kim / 김현정

4 April 1991 in Seoul / 1991년 4월 4일 서울 출생

2001 - 서울 제4회 음연 쇼팽 콩쿠르 [초등부 저학년] 1위

2002 - 음연 콩쿠르 [초등 5~6학년부] 안지혜 및 이주현과 공동 3위

2002 - 제51회 이화경향 음악콩쿠르 [초등부] 이주현과 공동 3위

2003 - 4th Asian Chopi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Japan 1st prize ex-aequo with Park Sang-Ah (Korea) / 일본 제4회 아시아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초등학교 5~6학년 부문] 박상아와 공동 1위

2003 - 제52회 이화경향 음악콩쿠르 [초등부] 손정범과 공동 2위

2004 - Gina Bachauer International Junior Piano Competition in Salt Lake City, Utah (USA) 3rd prize / 미국 유타 주 솔트레이크 시티 "지나 박하우어" 청소년 국제피아노콩쿠르 3위

2005 - 제54회 이화경향콩쿠르 중학부 2위

2006 - 제55회 이화경향콩쿠르 중학부 1위

2008 - 9th Asian Chopi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Tokyo, Japan [General Category] 1st prize and [Concerto C Category] / 일본 도쿄 제9회 아시아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일반부] 1위 및 [협주곡 C급] 1위 (1월)

2008 - Taipei Chopi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Taiwan 2nd prize / 대만 타이베이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2위 (9월)

2009 - 7th Hamamatsu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Japan 5th prize / 일본 제7회 하마마쓰 국제피아노콩쿠르 5위 (11월)

2009 - 서울 제20회 KBS 한전 음악콩쿠르 피아노 부문 1위 및 대상 (11월)

2010 - 4th Rhodes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Greece 3rd prize / 그리스 제4회 로도스 국제피아노콩쿠르 3위 (4월)

2010 - 8th Paderewski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Bydgoszcz, Poland 2nd prize and 1,000 Euro for the best piano quintet / 폴란드 비드고슈치 제8회 파데레프스키 국제피아노콩쿠르 2위 및 피아노5중주 최우수 연주 특별 상금 1천 유로 (11월)

2011 - 7th Seoul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 in Korea 4th prize (3rd was not awarded) / 제7회 서울 국제음악콩쿠르 3위 없는 4위 (4월)

2016 - 4th Dallas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Texas, USA 3rd prize / 미국 텍사스 주 제4회 댈러스 국제피아노콩쿠르 3위 (3월)

2016 - 6th Sendai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 in Japan 1st prize / 일본 제6회 센다이 국제음악콩쿠르 1위 (6월)


Soo Jung Ann / 안수정

15 September 1987 in Seoul / 1987년 9월 15일 서울 출생

1997 - 제2회 음악춘추 전국피아노콩쿠르 초등4학년부 1위 (5월)

1997 - 서울 제28회 틴에이저 피아노 콩쿠르 초등 저학년부 특등 (10월)

1998 - 삼익 전국피아노콩쿠르 1위 (6월)

1998 - 조선일보 음악 콩쿠르 1위 (9월)

1999 - 서울 제3회 한국 주니어 쇼팽 피아노 콩쿠르 초등부 1위 (4월)

2000 - 3rd Chopin International Competition for Young Pianists in Moscow, Russia 5th prize / 러시아 모스크바 제3회 쇼팽 청소년 국제피아노콩쿠르 5위 (4월, 최연소 참가자)

2000 - Seoul Youth Chamber Ensemble Competition 1st prize / 서울 청소년 실내악 앙상블 콩쿠르 1위 (5월)

2001 - 제50회 이화경향 음악 콩쿠르 중학교부 2위

2002 - 3rd Asian Chopi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Kariya, Japan [General Applicant Category] 1st prize and Concerto Prize / 일본 가리야 제3회 아시아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일반부 금상 및 협주곡 특별상 (12월)

2003 - Seilor International Competition for Young Pianists in Kitzingen, Germany 5th prize / 독일 키칭엔 자일러 청소년 국제피아노콩쿠르 5위 (5월)

2005 - 6th Asian Chopin International Piano Compeittion in Tokyo, Japan [Delegate Competition] Gold Prize and Faith Prize / 일본 도쿄 제6회 아시아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파견 부문] 1위 및 페이스 상 (1월)

2005 - 15th Chopi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Warsaw, Poland Semifinalist (Top 32) / 폴란드 바르샤바 제15회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세미파이널리스트 (10월)

2007 - Royal Irish Academy of Music Concerto Competition in Dublin, Ireland winner / 아일랜드 더블린 왕립음악원 협주곡 콩쿠르 우승 (12월)

2009 - 8th AXA Dubli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Ireland 3rd prize / 아일랜드 제8회 더블린 국제피아노콩쿠르 3위 (5월)

2009 - 16th Leeds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England 2nd Stage (Top 33) / 잉글랜드 제16회 리즈 국제피아노콩쿠르 2라운드 진출 (9월)

2009 - 7th Hamamatsu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Japan 6th prize / 일본 제7회 하마마쓰 국제피아노콩쿠르 6위 (11월)

2010 - 2nd Baltic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Special Prize for the best performance of Chopin's works / 제2회 발틱 국제피아노콩쿠르 쇼팽 작품 최우수 연주 특별상 (5월)

2010 - Chopin Piano Competition in Salzburg, Austria winner /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쇼팽 피아노 콩쿠르 우승 (7월)

2011 - 3rd Hong Kong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4th prize / 제3회 홍콩 국제피아노콩쿠르 4위 (10월)

2012 - 58th Maria Canals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 in Barcelona, Spain 1st prize and Gold Medal / 스페인 바로셀로나 제58회 마리아 카날스 국제음악콩쿠르 1위 및 금메달 (3월)

2012 - 17th Leeds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England 2nd Stage (Top 30) / 잉글랜드 제17회 리즈 국제피아노콩쿠르 2라운드 진출 (9월)

2013 - 3rd Top of the World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Tromsø, Norway Semifinalist (Top 12) / 노르웨이 트롬쇠 제3회 탑 오브 더 월드 국제피아노콩쿠르 세미파이널리스트 (6월)

2013 - Piano Academy Eppan, Italy winner / 이탈리아 에판 피아노 아카데미 우승 (10월)

2013 - 5th International Telekom Beethoven Competition Bonn in Germany 1st prize / 독일 본 텔레콤 제5회 본 베토벤 국제피아노콩쿠르 1위 (12월)

2015 - 17th Chopi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Warsaw, Poland 2nd stage (Top 43) / 폴란드 바르샤바 제17회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2라운드 진출 (10월)


스승 신수정 · 박숙련 교수가 말하는 조성진

피아노를 잘 치고 싶다는 것 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점, 곡을 배우고 싶어 하는 열정이 크다는 점에서 조성진은 남다른 면모를 보여줍니다. 계획된 연주회를 대부분 새로운 곡으로 준비하겠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레퍼토리에 대한 욕심이 대단해요. 우승으로 들떠 있을 법도 하지만, 주변의 관심에 흔들리지 않고 계속 공부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스스로를 다잡는 모습과 심지가 굳은 성품은 연주자로 성장하는데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곡을 소화하는 능력 또한 뛰어납니다. 하마마쓰 콩쿠르에서 특별상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이런 능력이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 공부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려는 것도 성진이의 특징입니다. 예를 들어, 리스트의 단테 소나타를 공부한다면 단테의 <신곡>을 직접 읽어보는 것은 물론, 음반도 다양하게 듣고 연주회도 꼭 찾아다니거든요. 음악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대단하다고 생각될 때가 있어요. 성진이는 평소에는 조용하고 침착하지만 무대에서는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합니다. 이번 콩쿠르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표현했기에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어려서부터 뚜렷한 목표의식과 집중력으로 페이스 유지해온 만큼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해줄 것을 바라는 마음입니다.


스승 강충모 교수가 말하는 허재원 · 김현정 · 안수정

허재원은 다양한 음색으로 내면의 소리를 섬세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재원이의 연주를 들으면 성숙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른스러운 면모와 따뜻한 성품은 재원이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콩쿠르에서도 손가락이 찢어져서 통증이 심했을 텐데, 어른스럽게 잘 참아내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 보여주었어요. 대담한 면을 보충한다면 음악적으로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현정은 나이에 비해 인격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성숙한 면모를 갖추고 있습니다. 어떤 레퍼토리도 설득력 있게 연주하는 능력이야말로 현정이의 장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폭발적인 에너지로 청중을 사로잡는 모습에서는 연주자로서의 카리스마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체구는 작아도 무대에 올라가면 꽉 찬 느낌이 들어요. 시간이 흐르고 다양한 경험이 쌓이면 더 깊은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수정은 언제나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며 침착하게 연주를 이끌어나갑니다. 그래서 어떤 무대에 오른다고 해도 신뢰할 수 있어요. 무대에서의 집중력, 청중을 집중하게 만드는 흡입력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평소에는 얌전하다가도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달라지는데, 이것은 수정이가 좋은 연주자로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비해 음악을 보는 시각이 넓어진 모습을 보며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Interview with Daejin Kim

김대진 (한구예술종합학교 교수, 제7회 하마마쓰 콩쿠르 심사위원)


하마마쓰 콩쿠르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땠나요.


러시아 · 미국 · 이탈리아 · 프랑스 · 중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참가했지만 특히 한국 지원자의 수가 많았습니다. 입상자를 비롯해 우수한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던 만큼 심사위원과 언론에서는 ‘굳이 외국으로 유학 갈 필요가 없겠다’며 한국 음악 교육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하마마쓰 콩쿠르만의 특징이 있었다면요.


콩쿠르가 진행되는 동안 참가자들에게 연습 장소와 시간을 충분히 제공해준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심사위원을 비롯해 모든 참가자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한 부분은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심사위원의 수와 참가자들의 연주 프로그램에서도 수준 높은 콩쿠르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번 콩쿠르에서는 한국 학생들이 네 명이나 입상하며 한국 음악계의 발전을 증명해보였습니다. 심사위원으로서 의미가 남다를 것 같은데, 어떠신지요.


심사위원으로서 물론 기분 좋은 일이지만 편한 상황이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선 진출자의 대부분이 한국 학생이란 것을 왜곡된 시선으로 보려는 사람도 분명 존재할 테니까요. 하지만, 결선 진출자가 모두 한국 참가자들이어도 될 만큼 실력이 월등했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결과에 큰 이견이 없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조성진 학생은 최연소 및 동양인 최초 우승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조성진 학생은 1차부터 결선까지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흔들림 없는 연주를 보여주었습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해석으로 모든 레퍼토리를 고르게 소화한 점도 인상적이었어요. 음악적으로 성숙한 연주는 심사위원들에게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프로페셔널한 연주와 자세도 대회 초반부터 돋보였습니다. 이번 우승을 계기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하마마쓰 콩쿠르 입상자와 국제 콩쿠르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요즘 국제 콩쿠르에 도전하는 학생들을 보면 자신의 실력을 평가받는 것에만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우려되기도 합니다. 콩쿠르는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일 뿐, 목적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콩쿠르에 집중하다 보면 상대평가에 익숙해지는데, 이것은 자신의 개성과 해석을 보여주어야 하는 시기에 위기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음악을 펼칠 수 있는 하나의 관문을 통과했다고 생각하며 부단히 노력하는 자세가 콩쿠르 입상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마마쓰 콩쿠르는 한국 피아니스트들의 실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나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콩쿠르 입상자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노력뿐만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지원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Interview with Yeol Eum Son

지난 6월, 미국에서 열린 밴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는 낭보를 전해온 피아니스트 손열음. 순수 국내파로 에틀링겐 국제 콩쿠르와 비오티 국제 콩쿠르를 석권한 재능 있는 소녀로 이름을 날렸던 그녀는 이제 세계를 향해 자신의 존재를 더욱 뚜렷하게 각인시켰다. 또한 이번 밴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준우승을 통해 3년간의 미국 순회 연주와 2만 달러의 상금, 그리고 아르모니아 문디에서의 음반 발매의 특혜를 누리게 되었다. 하이든의 ‘피아노 소나타 제58번 C장조, Hob.XVI:48’, 바버의 ‘피아노 소나타 Op.26’, 드뷔시의 ‘전주곡집 제1권 중 6곡’, 고도프스키의 ‘요한 슈트라우스 Die Fledermaus(오페레타 박쥐) 주제에 의한 교향적 변용’이 녹음된 이 실황 음반에서 다시 한 번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가능성과 음악세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2월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잠시 고국을 찾은 손열음을 만났다.


밴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이후 어떻게 지냈나요.


클라이번 끝나고 미국에서 연주가 많아서 거의 미국에 있었어요. 밴 클라이번 콩쿠르는 미국에서 정말 큰 이벤트예요. 심지어 미국에서는 연주자가 누군지는 상관없고 밴 클라이번 위너라고 하면 표가 잘 팔린대요. 밴 클라이번 콩쿠르 위너라는 타이틀 자체가 그 연주자의 실력을 보증하는 하나의 지표로 통하는 것 같아요. 이곳에서는 누구도 입상자들을 등수로 얘기하지 않아요. 똑같이 ‘위너’라는 표현을 쓰더라구요. 밴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는 앞으로 3년의 연주 스케줄을 마련해주었는데, 앞으로의 연주활동은 그동안 공부했던 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이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하는 게 목표예요.


이번 음반은 밴 클라이번 준우승에 대한 특전이라고 알고 있어요. 모두 실황으로 녹음되어 부담되진 않았나요.


워낙 출반하기 전부터 방송이나 유튜브를 통해 노출이 되어 있어서 크게 부담은 없었어요. 처음에 수록곡을 정할 때 아르모니아 문디 측에서 그쪽에서 원하는 목록을 보내오며 제 의견을 물었는데, 다행히 제 생각과 일치해서 순조롭게 음반을 만들 수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운 녹음은 어떤 곡인가요.


하이든이요. 콩쿠르에서 독주 라운드가 세 번 있었는데 솔직히 세 번 다 너무 떨렸어요. 그런데 다행히 녹음이 잘 됐고 추후에 수정한 부분도 없습니다. 라이브라서 아쉬운 점은 없었어요.


전반적으로 이번 음반에 대해 본인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이번 음반의 수록곡은 하나의 리사이틀 프로그램으로도 괜찮은 프로그램이고, 저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구성인 것 같아요. 저는 평소에도 스튜디오 녹음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제 것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었죠. 듣는 이도 없는데 혼자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거든요. 저는 음악을 만들 때 청중과의 소통을 가장 중요시하는데, 스튜디오 녹음은 마치 벽에다 얘기하는 것 같았죠. 예전부터 기회가 되면 라이브로 녹음하겠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많은 독자들이 손열음 씨의 연주방법에 대해 궁금해 할 텐데요. 연습을 할 때 자신만의 어떤 룰이 있는지 궁금해요.


연습할 때에 특별한 룰은 전혀 없어요. 평상시에도 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쉬는 편이에요. 그러나 일단 연습을 하게 되면 집중하죠. 집중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하는 손 연습은 하지 않아요. 저는 건반 위에서 꼭 소리를 내야만 연습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소리를 내지 않더라도 악보를 보면서 생각하는 것 또한 연습에 포함된다고 생각해요. 원래 연습을 잘 안 하는 타입인데, 독일에 가서 연습을 더 재밌게 할 수 있게 됐어요.


서른 살이 되기 전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무엇인지 듣고 싶어요.


29세에 저만의 식당을 갖고 싶어요. 여기서 작은 음악회도 열고 싶어요. 전 항상 30대를 꿈꿔왔어요. 여자도 30대에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구요. 20대 때에는 잘되고 있어도 뭔가 불안하잖아요. 뭔가 잘 안 되면 안 되니까 걱정, 잘되고 있어도 걱정... 30대는 안정된 시기를 시작하는 시기이면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도 늦지 않은 시기라고 생각해요. 내면적으로 더욱 성숙해지고 불안이 잦아드는 시기를 동경해왔어요.


앞으로 주력하고픈 레퍼토리는 무엇인가요.


요즘에는 차분하게 레퍼토리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어서 아쉬울 때가 많아요. 어떨 때는 연주하는 것보다 공부하는 걸 더 즐길 때가 있거든요. 제가 다른 거엔 그다지 욕심이 없는데, 레퍼토리에 대해서만큼은 그렇지 않아요. 치기 싫은 몇 가지를 빼놓고는 다 쳐보고 죽는 게 꿈이에요(웃음). 원래 성격이 경쟁적이지 못한 편이지만, 레퍼토리만큼은 뒤지고 싶지 않아요.


- 배인혜 기자 글






피아노 탄생 300주년 기획 (5) 피아니스트의 전설

20세기의 위대한 피아니스트들을 추억하다


20세기에는 가히 피아니스트의 시대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비르투오소들이 각축을 벌였다. 이 가운데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몇 명을 추려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지만, 피아노란 악기의 한계를 뛰어넘어 피아노 음악의 새로운 차원을 연 다섯 명의 피아니스트를 고심하여 선정해보았다. 20세기를 풍미했던 이들 다섯 명의 피아니스트들을 일별하며 그들이 어떤 업적을 이루었는가를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 음악 칼럼니스트 박제성 글


완벽의 극치, 요제프 호프만

요제프 호프만(Josef Hofmann; 1876~1957)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드물겠지만, 그나마 그를 기억할 수 있는 정보라고 한다면 아마도 피아노 전문 서적을 통하여 라흐마니노프의 동료(제3번 협주곡을 헌정 받았다)로서, 혹은 커티스 음악원의 학장이자 유명했던 피아니스트로서가 전부일 것이다.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라흐마니노프는 1910년대부터 사망하기 직전까지 꾸준하게 녹음 작업을 했고, 그 결과 RCA에서 방대한 양에 이르는 그의 레코딩 전집을 발매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호프만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10대 소년 시절 에디슨과 함께 최초로 클래식 음악을 녹음했을 정도로 레코딩 분야에서 선구자적인 인물이었지만, 전기녹음이 시작될 무렵부터 그는 스튜디오 레코딩을 거부하고 교수이자 콘서트 연주자로서 활동했다.


그는 초기 스테레오 시대인 1957년까지 생존했다. 그러나 최고의 능력이 발산되었던 1930년대 이후 정신적 · 예술적 쇼크에 의한 알코올 중독에 빠진 탓에 더 이상 꽃을 피우지 못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역사에서 가정법은 없다고 하지만, 만약 그가 양질의 레코딩을 남겼더라면 아마도 20세기 중반 이후의 피아노계의 판도는 많이 변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의 연주를 듣고 좌절한 피아니스트들이 많았을 테니까. 70여 년에 이르는 긴 세월 동안 그의 연주는, 마치 호로비츠처럼 드라마틱하게 변화의 변화를 거듭했다. 그가 SP 시절에 남긴 소수의 녹음을 통하여 확인해볼 때, 처음에는 텍스트와 음표를 중요시하는(당시의 파흐만 · 자우어 · 달베르 · 파데레프스키와는 전혀 다른) 객관주의자였다. 1930년대 이후 그는 자신의 내부에서 울려나오는 고유의 소리, 풍부한 색채의 팔레트, 그가 충성을 맹세했던 모슈코프스키와 스감바티, 안톤 루빈스타인 등의 기벽에 경도하기 시작했다. 한편 알코올 중독에 빠진 1940년대 이후의 그는 레퍼토리가 좁아지면서 완벽함 또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슈퍼-비르투오소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부여받은 진정한 거장이었다. 초인적인 암보력과 테크닉, 그의 스승인 안톤 루빈스타인으로부터 전수받은 작품에 대한 투철한 분석력과 자유롭게 숨쉬는 레가토, 그의 사후 아무도 흉내 낼 수조차 없는 테크닉과 다이내믹 레인지(어윈 니레지하지 정도가 그에 필적할 것이다), 폴리포니에 대한 완벽한 이해, 종을 울리는 듯한 타건과 비할 바 없이 유연한 레가토 등은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호프만은 그와 자주 비견되는 레오폴트 고도프스키에게는 없던 열정을 가지고 있었고, 동료였던 라흐마니노프에게는 없던 강한 시성과 색채감을 가지고 있었다. 낭만주의 피아니즘의 극점에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라흐마니노프와 같은 현대적인 피아니즘의 모범을 제시하기도 한, 진정한 의미에서 피아노의 한계를 뛰어넘은 20세기 걸출한 예술가이기도 하다.


강철의 팔, 황금의 심장,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1976년 5월의 마지막 날, 9세의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런던 위그모어 홀에서 마지막 리사이틀에서 슈만의 ‘카니발’을 연주했다. 이 연주회에 참석했던 머레이 페라이어는 “내가 얼마나 오래 살든 카니발을 저처럼 연주할 수는 없을 거야”라고 고백했다고 한다. 그날 연주회에서 루빈스타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요즘 사람들 가운데 라흐마니노프의 연주를 직접 들은 사람은 없을 테지만, 그야말로 진정한 ‘카니발’ 그 자체였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 1873~1943)는 러시아에서 작곡가이자 지휘자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었지만, 러시아 혁명 이후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현실적인 문제로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19년 4월 18일부터 23일 사이 토머스 에디슨 컴퍼니에서 레코딩 데뷔를 했는데, 당시 녹음한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 제2번은 아직까지도 대적할 만한 사람이 없는 명연 가운데 명연으로 기억되며 9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후 RCA에서 녹음하면서 다행스럽게도 그는 CD 10장 분량의 음반을 남겨 호프만과는 달리 후대의 귀감으로 남을 수 있었다.


짧은 머리에 커다란 키, 미소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우울한 표정이 트레이드마크다. 호프만이 위대한 컬러리스트였다면 러시아로부터 온 이 죄수와도 같은 피아니스트는 위대한 건축가랄까. 그는 결코 직감에 의존하여 연주를 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피아니스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결함과 세련미, 특유의 권위적 분위기를 바탕으로 감정의 모든 요소를 이성의 차원으로 환원시켜놓았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리스트와 레셰티츠키의 제자들이 감각과 스타일을 자랑하느라 정신없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지만, 미국에서의 라흐마니노프는 묵묵히 난공불락의 음표의 성을 쌓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경외심을 가지고 우러러보는 장인정신과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엄청난 능력을 바탕으로, 그는 리듬을 강하게 휘몰아치기도 하고 남성다운 활력, 고상한 음향 감각을 구사했다.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제2번을 들어보면 그의 낭만적 상상력과 결합한 고전주의적 엄격함의 백미를 체험할 수 있을 뿐더러, 베토벤의 32개의 변주곡 WoO 80을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베토벤에 정통한 연주자인지를 새롭게 깨달을 수 있다. 특히 그의 베토벤 해석은 당시 베토벤 해석의 1인자로 손꼽히던 아르투르 슈나벨도 극찬했을 정도다. 물론 그의 피아노 협주곡 4곡과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 녹음은 이 작품에 대한 최고의 기준으로서, 그의 담담하되 강인한 터치와 우수어린 분위기, 냉정한 듯 불타오르는 비르투오시티, 엄격한 템포와 수직적 상승 구도 등등은 지금까지도 넘볼 수 없는 전설로 남아있다.


건반 위의 시인, 알프레드 코르토

알프레드 코르토(Alfred Cortot; 1877~1962)가 아니었다면, 우리 시대의 쇼팽과 슈만은 한층 빈약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코르토에 의해 쇼팽의 서사와 슈만의 서정이 새롭게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의적 해석으로 점철되었던 낭만주의 피아노 시대에 신선한 기운과 순수한 아름다움 그 자체를 발견한 진정한 의미의 낭만주의자이기도 했다. 피아니스트뿐만 아니라 자크 티보와 파블로 카잘스와의 트리오를 결성한 탁월한 앙상블리스트이자 바이로이트에서 부지휘자를 지냈을 정도의 열혈 바그네리안으로 지휘자로도 탁월한 기량을 발휘했다. 20세기 프랑스 피아니즘의 계보를 가능케 했던 위대한 교육자이자 작품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테크닉의 발전을 꾀한 음악학자였던 그는 파울 푸뇨의 뒤를 이어 1917년 파리 음악원의 피아노과 교수가 되었다. 이후 그는 클라라 하스킬 · 이본느 르페뷔르 · 유라 귈러 · 마그다 탈리아페로 · 디누 리파티 · 상송 프랑수아 · 디노 치아니 등등과 같은 1950년대를 대표하는 모든 피아니스트들을 길러낸 주인공이다. 실로 그는 20세기 초반 유럽의 중심이었던 파리를 대표하는 위대한 음악가였다.


그의 명성은 너무도 높아 1930년대까지 그에 대적할 만한 피아니스트는 유럽에 존재하지 않았다. 에밀 폰 자우어나 모리츠 로젠탈 같은 리스트의 제자들은 너무 늙었고 러시아 피아니스트들은 미국에서 자리 잡고 있었으며, 독일 피아니스트들은 그의 감각적인 터치와 우아함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한 마디로 대적할 만한 라이벌이 없었던 것이다. 그의 전지전능함에 대한 꿈이 깨진 것은 1930년대 초반 러시아에서 날아온 호로비츠가 리스트 소나타를 녹음하면서부터다. 더군다나 그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미스터치였다. 너무도 다양하고 바쁜 스케줄 때문에 프로페셔널한 피아니스트로서 연습할 시간이 부족했던 그는, 천부적인 테크닉에도 불구하고 녹음과 공연 모두에서 여지없이 미스터치를 남기곤 했다. 그러나 그의 아름다운 터치와 숭고한 예술성을 생각한다면, 그의 미스터치는 평화 위에 내려앉은 티끌과도 같은 미미한 것이었다.


그에게는 지적인 권위, 귀족적인 기질, 남성다운 대범함과 남성 특유의 섬세함, 시적 상상력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외향적인 화려함보다는 내향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고, 음악을 재창조하는 진정한 예술가로서 논리를 뛰어넘는 심오한 세계를 보여주었다. 쇼팽 전주곡 24곡을 한 무대에서 모두 연주하여 전체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던 그 용기와 직관은 코르토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비록 그가 1940년대 이후의 녹음에서는 기력이 쇠한 모습을 보여주곤 했지만, 그가 그 이전에 남긴 쇼팽과 슈만 레코딩들은 피아노에서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우리 시대의 소중한 보물이다.


베토벤의 여사제, 엘리 나이

엘리 나이(Elly Ney; 1882~1968)의 이름은 호프만의 이름보다 더욱 낯설게만 느껴질 법하다. 왜냐하면 그녀는 독일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던 탓에 단 한 번도 서유럽이나 미국 언론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녀는 1937년부터 나치에 가입하여 문화 교육에 앞장섰던 ‘총통의 피아니스트’로 유명했던 만큼, 전후 그녀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그러나 그녀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과 같은 베토벤의 위대한 모습을 경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베토벤에는 고결함과 숭고함은 물론이려니와 투명한 선율미와 수채화빛 음색, 그리고 남성보다 더 남성적인 근육질적인 대범함과 철을 두 동강내는 듯한 날카로움까지 배어있기 때문이다. 슈나벨의 연주는 이에 비하면 훨씬 낭만주의적이고 그녀의 제자인 빌헬름 켐프의 연주는 훨씬 여성적이다. 그녀가 60년대에 콜로세움 레이블에서 녹음한 베토벤 소나타들을 들어보면, 특히 ‘템페스트’ 3악장이나 ‘발트슈타인’ 2악장에서의 그 처연하고도 살을 에는 듯한 날카로움이 공존하는 아름다움의 세계는 형언할 수 없는 경외의 대상이다.


남성 연주자로서 빌헬름 박하우스 · 아르투르 슈나벨 · 에트빈 피셔가 이전 시대의 베토벤 삼총사라고 한다면, 프랑스의 이본느 르페뷔르와 헝가리의 아니 피셔와 더불어, 독일의 엘리 나이, 이렇게 세 명의 베토벤 여사제가 1950년대 이후를 주도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나이의 경우 에밀 폰 자우어로부터 리스트로 계승되어 온 베토벤의 정신을 물려받았고 레셰티츠키로부터 유럽 피아노 전통의 아름다움을 전수받았던 만큼, 그녀에게는 독일적 베토벤의 권위의 월계관이 씌워져 있다. SP 시대에는 브람스의 친구인 막스 피들러와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녹음했을 정도로 독일 음악 정신에 투철했던 그녀는, 항상 베토벤의 정신적인 위대함에 경도되어 있었다. 그러한 만큼 그녀의 희귀한 베토벤 소나타 녹음들로부터 우리는 가장 독일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동시에 가장 현대적인 베토벤의 위대한 모습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신의 또 다른 이름,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다소 낮게 앉은 의자, 건반 밑으로 뚝 떨어진 팔꿈치, 직선으로 곧게 뻗친 손가락, 마치 손가락 하나하나마다 지능이 있는 것처럼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핑거링, 피아니시모에서의 섬세한 운지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빠른 스피드와 원자폭탄이 터진 것과 같은 전율적인 효과를 내는 옥타브, 스카를라티와 클레멘티 같은 바로크 작곡가부터 쇼팽과 리스트 · 슈만을 걸쳐 무소르그스키와 스크리아빈, 그리고 라흐마니노프와 프로코피에프, 바버에 이르는 현대 작품까지를 완벽하게 자기 스타일로 환원시킨 블라디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 1903~1989)! 작곡가의 꿈을 접고 피아니스트로 전향했던 그는 자신의 체형과 해석에 맞게 그러한 연주 스타일을 개발해냈다고 말했다. 그렇다. 연주 스타일(수단)이란 곧 연주가의 음악 해석(목적)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연주 스타일이 특수하다는 것은 곧 그의 음악 세계가 그만큼 독창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일생에 걸쳐 많은 공백기를 가지며 자신의 내면과 스타일을 변화시켜나간 카멜레온 같은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1936년부터 38년까지 공백기를 가지며 테크니션에서 고전주의자로 변화했고, 1953년부터 1965년까지 12년에 걸친 긴 공백기 이후 카네기홀에서 역사적인 복귀 리사이틀을 가지며 진정한 피아노의 신으로 군림했다. 낭만주의와 고전주의를 이상적으로 통합해낸 그에게는 더 이상의 비평과 반대의견이 있을 수 없었고 오로지 복종만을 요구했다. 1969년부터 74년까지 공백기 이후 악마적인 시기로 접어든 그는 청중을 최면상태로까지 몰아갈 정도로 마지막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음반 판매와 연주회 개런티는 천문학적인 수준까지 올라갔다. 1983년 엉망진창이었던 일본 연주회 이후 짧은 공백기를 거치며 복용하던 약을 모두 끊고 다시 부활하여 천사의 복음과도 같은 황홀하고도 마법 같은 음색과 낭만의 향연을 보여주며 60년 만의 고향 방문과 수차례의 유럽 연주를 통해 낭만주의의 본질을 재발견해내기도 했다.


그의 위대함을 증명할 수 있는 많은 레코딩이 존재하지만 초기 RCA 시대 때의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과 장인인 토스카니니와 함께 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제1번, 라이너와 오먼디와 남긴 두 차례의 라흐마니노프 제3번 협주곡, 마지막 비르투오소의 불꽃을 연소시킨 1981년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를 비롯해서, SONY에서 발매된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와 ‘어린이 정경’, 스카를라티 소나타들, DG에서 줄리니와 함께 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4번과 1986년 모스크바 실황 등만 꼽더라도, 이들 녹음은 20세기 피아노 예술의 한 획을 금과 동시에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일종의 이상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우리 시대의 모범이라고 말할 수 있다.



커버스토리만 보여주려다가 다른 좋은 정보들을 더 스캔했다. 2009 하마마쓰 콩쿠르에서는 우리나라가 4명이나 결선에 진출하여 화제였다. 이후 9년 후에는 일본도 4명이 진출했다. 하지만 일본에게는 우승이 허락되지 않았다. 이혁 포함 아시아가 5명인데 터키 1인을 못 넘어가지고... 조성진을 2010년이나 2011년에 알았을 것인데... 아마 2011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소식을 접하고 알지 않았을까? 2012년에는 확실히 기억하는데, 콩쿠르를 주제로 한 발표 수업에서 피아니스트 인기투표할 때 내가 조성진을 끼워 넣어봤거든. 하지만 임동혁이 다 제치고 압도적인 1위! 히히히~ 학생 때만 해도 조성진이 아시아 최초로 하마마쓰 콩쿠르에 우승했나보다 이런 생각이었다. 물론 임동혁이 쉽지 않은 대회에서 준우승이란 걸 그전에 알고는 있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글을 봤거든. 2009년과 2018년 보고서를 둘 다 번역하여 정리해봤는데 2009년 대회는 시간이 흘러서 본 거라 모든 참가자들을 명단만 알고 연주가 어떤지는 일일이 모른다. 2018년 대회는 못 본 것까지 다 챙겨봤고. 이 대회에서 유럽의 벽을 넘어 우승한 사람은 현재까지 조성진이다. 2018년 대회는 나한테 이 대회의 속성이 어떤지 확실히 깨닫게 해줬다. 아시아한테는 쉽게 우승을 내주지 않는 만만치 않은 대회란 걸 단단히 확인시켜줬다. 코로나19 때문에 2021년 대회가 취소될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어쩔 수 없이 우승 후보는 유럽을 찍고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 가지를 스캔했는데 다 연결된다. 하마마쓰 콩쿠르에서 클라이번 콩쿠르 얘기도 나오고... 피아니스트 스토리에서는 조성진이 좋아한다는 코르토도 나오고... 코르토나 엘리 나이나 음악성은 높이 평가받아도 나치에 협조했다는 것 때문에 이미지가 깎였다는... 타이핑하면서 읽었는데 코르토는 상송 프랑수아를 공부하기 이전에 알아야 할 인물!


모처럼 피아니스트 이야기를 읽었는데 옛날에는 이런 스토리를 좋아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여기저기 좋은 정보가 널려도 별로 안 취하려 들면서 관심이 멀어졌다. 옛날에 동호회에서 나처럼 피아노 음악을 특히 좋아하시는 분이 이야기를 하나 해주셨다. 헝가리의 에르빈 니레지하지가 어린 시절에 신동이었는데 자기를 상품 취급하는 음악계가 싫었단다. 어느 날 갑자기 뉴욕 무대에서 사라진다. 이후 뉴욕 부두에서 일했다고. 나중에 무대에 복귀하긴 했다. 그분이 리파티 팬이셨는데 나한테 2004년인지 2005년에 소콜로프란 연주자도 알려주셨다. 연주자의 홈페이지도 알려주셨고. 녹음을 전혀 안 하니까 많이 모아두라고 하셨다. 그래서 온갖 녹음을 쥐게 되었다. 난 그 말을 잘 들었으니까! 내가 피아니스트의 연주 외적인 것에 흥미가 있다면 그건 상송 프랑수아! 중고 잡지를 구매해서 읽었는데 무지 재밌었다. 워낙 팬이라서 그런 건지도. 히히히히히~


여기에 올린 글들은 내가 돈을 주고 산 음연 피아노 잡지 2010년 1월호에 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