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1일 목요일

Bis / Can Cakmur Plays Liszt-Schubert Schwanengesang 2020



https://www.youtube.com/watch?v=ItjkjXEZjCI&list=OLAK5uy_m7s_arkzgX0Q91I1TqXQy8JKYcqLHBwRg

https://www.youtube.com/watch?v=7XkjC0jOEuE


2017년 스코틀랜드 국제피아노콩쿠르 1위, 2018년 10회 하마마쓰 국제피아노콩쿠르 우승자인 잔 차크무르의 두 번째 음반으로 리스트가 피아노 독주용으로 편곡한 슈베르트의 3대 가곡집 중 하나인 '백조의 노래’와 4개의 잊힌 왈츠 'S 215를 연주한다.


1828년 출판된 '백조의 노래'는 그의 사후에 출판사에서 그의 가곡 14곡을 모아서 발표한 것으로 가사 내용의 연계성은 없으며 1840년 리스트가 피아노 버전으로 출판하였다.


본 음반에서 자크무르는 자신의 감성에 따라 곡 순서를 바꾸어 연주하고 있다. 우리 삶에서 느끼는 많은 감정들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피아노는 백조의 노래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음악적 의미를 정확히 유지하면서 보다 아름답고 승화된 음악으로 들려준다.


4개의 잊힌 왈츠는 담백하면서도 아름다운 선율로 1번이 가장 유명하다. 터키 출신의 잔 차크무르는 앙카라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후 파리 라 스콜라 칸토룸에서 마르첼라 크루델리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는 주요 국제 음악제에서 많은 초청을 받고 있다.


"This new disc presents his bona fides as a Liszt interpreter, and they are impressive... Given the wealth and range of his musical imagination, not to mention his genuine pianistic gifts, I believe Can Cakmur is someone from whom we can confidently and happily expect to hear a great deal more." - Gramophone Magazine (December 2020)


“이 새로운 음반은 리스트 해석자로서 그의 진실성을 나타내며, 인상 깊다... 그의 음악적 상상력의 풍부함과 범위를 감안할 때, 그의 진정한 피아노 연주에 대한 재능은 말할 것도 없고, 잔 차크무르는 우리가 자신 있고 행복하게 더 많은 것을 들을 수 있게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 2020년 12월 그라모폰 매거진



Hi, it's me, Can Çakmur! And we are at the Wyastone Concert Hall with Ingo Petry and we just finished the recording of Liszt's arrangements of Schubert's "Schwanengesang". This piece was my dream piece since I was small boy. I always wanted to play it and record it. And I'm really beyond words happy that we made it real. So you could always ask, "Why would you perform a transcription nowadays when the originals are so easily accessible?" Of course, back in Liszt's time, Schubert was relatively unknown and he wanted to highlight these pieces. But Liszt goes way beyond that; it's not a mere reproduction of Schubert's text. It's for me an original piece by Liszt, composed for the pianoforte. It's not just, you know, the voice blended in the piano. It's a new way of writing, it's a new sonority that Liszt manages to capture here. It's quite extraordinary because while it's a completely new piece, Liszt's transcriptions, arrangements manage to stay true to Schubert's intentions, the emotional effects, the content is exactly what Schubert wished for and it's quite astonishing how such a different piece written in such a different manner can still conjure the same emotions and the same world. Just see how wonderfully conceived the section from the song "Am Meer" is:


안녕하세요, 잔 차크무르입니다! 우리는 잉고 페트리와 함께 (웨일스 몬머스의) 와이어스톤 콘서트홀에서 리스트가 편곡한 슈베르트의 연가곡 <백조의 노래> 녹음을 막 끝냈습니다. 이 곡은 제가 소년일 때부터 꿈꾸던 곡이었어요. 항상 연주하고 녹음하고 싶었죠. 더 말할 나위 없이 실제로 이뤄서 행복해요. 그래서 언제든지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원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요즘 왜 필사본을 연주하시나요?” 물론 리스트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슈베르트는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며 그는 이러한 곡들을 강조하고 싶어 했죠. 그러나 리스트는 그 이상을 추구하는데, 슈베르트의 텍스트를 단순히 복제한 것이 아닙니다. 제게는 리스트가 피아노포르테를 위해 작곡한 원곡입니다. 그러니까 피아노에 섞인 목소리가 아니죠. 새로운 작곡 방식으로, 리스트가 여기에서 포착해내는 새로운 울려 퍼짐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곡이지만 리스트의 필사본, 편곡은 슈베르트의 의도, 정서적 효과, 내용이 정확히 슈베르트가 원했던 것과 정확히 일치하므로 매우 특별하며, 그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작곡된 이렇게 다양한 곡이 여전히 같은 감정과 같은 세계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게 놀라워요. <바닷가에서>라는 노래의 섹션이 얼마나 훌륭하게 구상되었는지 보세요.


Schwanengesang, S. 560 (after Schubert's D. 957) No. 12 Am Meer / 바닷가에서


It gives such a warmth and depth to the sound. And when you don't have a voice singing, it's crucial to use the maximum span of the keyboard to get the emotional desired effect, and Liszt captures brilliantly. Of course, it's not only about creating new effects, it's also about solving pianistical problems. Liszt was at the height of his performing career and he was the pianist in Europe. And here you can see that he presents unique difficulties for the pianoforte and solves them in the most exquisite manner. Just look at how virtuosic and how delicious this piano texturing "Frühlingssehnsucht" is:


소리에 따스함과 깊이를 줍니다. 노래하는 목소리가 없을 때에는, 건반의 최대 범위를 사용하여 원하는 감정 효과를 얻는 것이 중요하며, 리스트는 훌륭하게 포착하죠. 물론 새로운 효과들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피아노 연주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리스트는 연주 경력의 정점에 있었던 유럽 피아니스트였는데요. 여기에서 그가 피아노포르테에 독특한 어려움을 제시하여 가장 절묘한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봄의 동경>이 어우러지는 이 피아노가 얼마나 기교적인지 그리고 얼마나 맛깔 나는지 보세요.


Schwanengesang, S. 560 (after Schubert's D. 957) No. 3 Frühlingssehnsucht / 봄의 동경


Needless to say, it's extremely difficult to play, but to solve this challenge is also the part of the piece, to make this sound like Schubert, sound like Schubert's original and meanwhile staying true to Liszt's spirit and [the] Paris of the 19th century. That's why I believe these pieces are worth performing and bringing back to life. One of Liszt's most ingenious inventions in the cycle is how he transcribes "Ständchen", a strophic song for the pianoforte. Of course, it was not imaginable to play the same text, same melody twice and expect it to be as interesting as Schubert's wonderful words. So what Liszt does is... he presents the melody as it is the first time, the second time, he writes quasi-violoncello, like the violoncello:


말할 것도 없이 연주하기 매우 어렵지만, 슈베르트처럼 들리게 하고 슈베르트의 원본처럼 들리게 하면서 리스트의 정신과 19세기의 파리에 충실하려는 것, 이 도전을 해결하는 것도 곡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곡들을 연주하여 되살릴 가치가 있다고 믿어요. 전곡에서 리스트의 가장 독창적인 발명품 중 하나는 그가 피아노포르테를 위한 획기적인 노래인 <세레나데>를 잘 편곡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같은 가사, 같은 멜로디를 두 번 연주하여 슈베르트의 멋진 말들만큼 흥미로울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죠. 따라서 리스트가 하는 것은... 그는 먼저 멜로디를 제시하고 다음으로 첼로 같은, 첼로에 준하는 걸 쓰죠.


Schwanengesang, S. 560 (after Schubert's D. 957) No. 4 Ständchen (2nd verse) / 세레나데 2절


But then, his imagination doesn't stop there and he had the third verse which doesn't exist in Schubert's original and he lets the theme echoed by the upper register an octave higher. It's an eerie effect and it fits the purpose of the "Ständchen" so well. The lover serenades to his beloved and it resonates in the river, in the valley, in the mountains.


그러나 그의 상상력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슈베르트의 원곡에는 존재하지 않는 3절을 가졌으며, 고음역에서 나오는 주제를 한 옥타브 더 높게 울렸는데요. 묘한 효과를 내면서도 <세레나데>의 목적에 잘 맞죠. 연인은 그가 사랑하는 이에게 세레나데를 부르며 강에서, 계곡에서, 산에서 울려 퍼집니다.


Schwanengesang, S. 560 (after Schubert's D. 957) No. 4 Ständchen (3rd verse) / 세레나데 3절


If this is not a pianistic invention, I don't know what is.


이것이 피아노 연주에 능한 발명이 아니라면, 뭔지 모르겠네요.



Track

01 Schwanengesang, S. 560 (after Schubert's D. 957) No. 10 Liebesbotschaft / 사랑의 전령

02 Schwanengesang, S. 560 (after Schubert's D. 957) No. 14 Kriegers Ahnung / 병사의 예감

03 Schwanengesang, S. 560 (after Schubert's D. 957) No. 8 Ihr Bild / 그녀의 초상화

04 Schwanengesang, S. 560 (after Schubert's D. 957) No. 9 Fruhlingssehnsucht / 봄의 동경

05 Schwanengesang, S. 560 (after Schubert's D. 957) No. 5 Abschied / 이별

06 Schwanengesang, S. 560 (after Schubert's D. 957) No. 6 In der Ferne / 먼 곳에서

07 Schwanengesang, S. 560 (after Schubert's D. 957) No. 7 Standchen / 세레나데

08 Schwanengesang, S. 560 (after Schubert's D. 957) No. 11 Der Atlas / 아틀라스

09 Schwanengesang, S. 560 (after Schubert's D. 957) No. 2 Das Fischermadchen / 어부의 딸

10 Schwanengesang, S. 560 (after Schubert's D. 957) No. 4 Am Meer / 바닷가에서

11 Schwanengesang, S. 560 (after Schubert's D. 957) No. 3 Aufenthalt / 나의 집

12 Schwanengesang, S. 560 (after Schubert's D. 957) No. 1 Die Stadt / 도회지

13 Schwanengesang, S. 560 (after Schubert's D. 957) No. 12 Der Doppelganger / 나의 그림자

14 Schwanengesang, S. 560 (after Schubert's D. 957) No. 13 Die Taubenpost / 비둘기 우편

15 Valses oubliees, S. 215 No. 1 / 잊힌 왈츠 1번

16 Valses oubliees, S. 215 No. 2 / 잊힌 왈츠 2번

17 Valses oubliees, S. 215 No. 3 / 잊힌 왈츠 3번

18 Valses oubliees, S. 215 No. 4 / 잊힌 왈츠 4번


Liszt/Schubert: Schwanengesang, S. 560 / 리스트의 슈베르트 연가곡 편곡 <백조의 노래>

Seeing a transcription of a full song cycle on the programme, one very obvious reaction from a music lover might be 'Why?'. In the age of the Urtext, playing mere imitations of the originals seems like heresy. But this is not the case at all: a masterful arrangement becomes a work of its own and its fame can often transcend that of the original. Think of Liszt's "First Mephisto Waltz" or "Liebestraum", or Busoni's piano version of Bach's Chaconne for solo violin, which has taken its place in the literature next to the original score. First published in 1840, twelve years after Schubert's death, Liszt's arrangement of "Schwanengesang" is his very own work that takes only its core from Schubert's music. This is not to say that the pieces are not faithful to the original songs: they retain the meaning of the music very clearly while also giving us a vision of Liszt's understanding of what lies beyond the black dots on paper. They are striking, horrifying, grand, intimate, full of life and yet often as pale as death. The marvel of what a single instrument can attain plays an integral role in all these pieces. Achieving such powerful rhetoric and depth of feeling on a solo piano could only be done by a master such as Liszt.


프로그램에서 노래 전체의 필사본을 보면 음악 애호가의 분명한 반응 중 하나는 ‘왜?’일 수도 있다. 원본의 시대에 원작들을 모방하여 연주하는 것은 이단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닌데, 뛰어난 편곡은 그 자체로 작품이 되며, 그 명성은 종종 원작을 능가할 수 있다. 리스트의 <메피스토 왈츠 1번>이나 <사랑의 꿈>, 또는 바흐의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샤콘느를 부조니가 피아노로 편곡한 버전을 생각해보라. 슈베르트가 사망한지 12년 후인 1840년에 처음 출판된 리스트의 <백조의 노래> 편곡은 슈베르트의 음악에서 그 핵심만을 취하는 자신만의 작품이다. 이 곡들이 원래의 가곡에 충실하지 않다는 말은 아닌데, 음악의 의미를 매우 명확하게 유지하면서(이 곡들의 음악적 감각은 보존되지만) 종이의 검은 점들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리스트의 이해에 대한 비전(견해)도 제공(표현)한다. 이 곡들은 눈에 띄고, 무섭고, 웅장하고, 친밀하며, 생생하지만 종종 죽음만큼 창백하다. 하나의 악기로 얻을 수 있는 경이로움(하나의 악기가 이룰 수 있는 기적)은 이 모든 곡들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피아노 한 대에서 이런 강력한 수사학과 정서적 깊이를 얻는(이룰 수 있는) 것은 리스트 같은 대가만이 할 수 있다.


"Schwanengesang" is not a true cycle like "Winterreise" and "Die Schöne Müllerin". It is a collection of songs that Schubert "may" have intended to be grouped together. The original order doesn't seem to suggest a story or a common theme. Liszt took the liberty of reordering the songs based on their tonalities, but as I find the original ending with "Der Doppelgänger" followed by "Die Taubenpost" very satisfying, I do not follow Liszt's order either. Instead I have sought to arrive at a sequence which presents not a storyline but an emotional journey. "Liebesbotschaft" and "Taubenpost" constitute the prelude and the conclusion to the cycle: "Liebesbotschaft" focuses mainly on the poet's promise to return to his lover while "Taubenpost", on the other hand, embraces longing with glistening tears. The songs in between culminate in "Der Doppelgänger" where the poet returns to his lover's now empty home. "Sehnsucht" ('longing' in German) is the feeling that drives the cycle, for longing carries both hope and disappointment within itself.


<백조의 노래>는 <겨울 나그네>와 <아름다운 물레방앗간의 아가씨> 같은 진정한 전곡은 아니다. 슈베르트가 함께 묶으려고 했던 가곡 모음일 것이다. 원래의 순서는 이야기(줄거리)나 통일된 주제를 나타내지 않는 것 같다. 리스트는 조성에 따라 가곡들의 순서를 자유롭게 배열할 수 있었지만, 나는 <나의 그림자>에 이어 <비둘기 우편>으로 끝나는 원본이 매우 만족스럽기 때문에, 리스트의 순서도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줄거리가 아니라 감정적인 여정을 제시하는 순서를 추구했다. <사랑의 전령>과 <비둘기 우편>은 전곡의 서주이자 결론을 형성하는데, <사랑의 전령>은 주로 시인이 그의 연인에게 돌아오겠다는 약속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비둘기 우편>은 반짝이는 눈물로 그리움을 품고 있다. 그 사이의 노래는 <나의 그림자>에서 절정을 이루는데, 시인은 이제 그의 연인의 빈 집으로 돌아간다. <봄의 동경>은 그 자체에 희망과 실망을 모두 담고 있기 때문에 전곡을 이끄는 느낌이다.


"Liebesbotschaft" (Love Message) recalls the songs from "Die Schöne Müllerin". The lyrical I, in a distant place, implores the brook to bring a message to his love and reassure her that he will soon return. As is often the case with this cycle, the poet does not disclose why he is far away and tells us little about his own self.


<사랑의 전령>은 <아름다운 물레방앗간의 아가씨>에 나오는 가곡들을 회상한다. 서정적인 자아는 먼 곳에서 시냇물에 그의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그가 곧 돌아올 것이라고 그녀를 안심시키기를 간청한다. 이 전곡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시인은 그가 왜 멀리 떨어져있는지 밝히지 않으며(자신의 소원에 대한 이유를 밝히거나) 그 자신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는다.


"Kriegers Ahnung" (Warrior's Premonition) takes us to the trenches where the poet's comrades are all asleep. He yearns for his beloved, recalling the times when he was able to slumber in her arms. Alas, now loneliness engulfs him. He prays that consolation will never desert him, for many a battle awaits. Hoping that he will soon sleep peacefully, he bids his beloved goodnight. Perhaps it is just my fantasy, but I do feel that the lover of "Liebesbotschaft" is in fact the soldier whom death awaits. Liszt reimagines Schubert's already highly dramatic version as a miniature symphonic poem. However modest the genre of song may seem, this is grand drama on any scale.


<병사의 예감>은 시인의 동지들이 모두 잠들어있는 참호로 우리를 이끈다. 그는 연인을 그리워하며 그녀의 품에서 잠잘 수 있었던 시간을 회상한다. 아아, 이제는 외로움이 그를 삼켜버린다. 그는 위로가 그를 버리지 않길 기도하는데, 많은 전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곧 평화롭게 잠들기를 바라면서, 그는 연인에게 밤의 작별 인사를 고한다. 어쩌면 내 환상일지도 모르지만, <사랑의 전령>의 연인은 사실 죽음을 기다리는 군인이라는 느낌이 든다. 리스트는 슈베르트의 이미 매우 극적인 버전을 축소하여 교향시로 재해석한다. 가곡 장르가 겸손해보이지만, 규모에 상관없이(모든 면에서) 웅장한(장대한) 드라마이다.


"Ihr Bild" (Her Portrait) is one of the bleakest pieces in the cycle. The poet gazes at his lover's portrait. He imagines that the picture slowly comes to life with a wonderful smile and tears of melancholy. Just as his own tears begin to flow he realizes that he has indeed lost her.


<그녀의 초상화>는 전곡에서 가장 암울한 곡들 중 하나이다. 시인은 연인의 초상화를 바라본다. 그는 그 그림이 멋진 미소와 우울한 눈물로 천천히 살아나는 것을 상상한다. 자신의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자마자(뺨에 흘러내릴 때에야) 그는 정말로 그녀를 잃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Frühlingssehnsucht" (Longing for Spring) is paired by Liszt with "Ihr Bild". It differs from the preceding song in every aspect. Where there is introspection in "Ihr Bild", here there is all the exuberance of spring. While the music moves on expectantly, the protagonist remains detached from it. Schubert injects hesitancy into the music by breaking off the momentum after each strophe. The last strophe is in minor, and is also the only time that the protagonist is affirmative: 'Only you will bring spring to my soul.' Liszt presents this piece as a true virtuoso work. It is terrifyingly difficult and clearly written to challenge the performer to the limit.


<봄의 동경>은 리스트에 의해 <그녀의 초상화>와 짝을 이룬다. (리스트는 <봄의 동경>을 <그녀의 초상화>와 연관시킨다.) 이 곡은 모든 면에서 전곡과 다르다. <그녀의 초상화>가 자기 성찰이라면, 봄의 모든 활기가 여기를 지배한다. 음악이 예상대로 진행되는 동안, 주인공은 여전히 분리되어 있다. (음악은 기대감으로 진행되지만, 주인공은 낯선 사람이다.) 슈베르트는 각각의 절이 나온 이후 기세를 멈춰 음악에 어떤 망설임(우유부단한 느낌)을 더한다. 마지막 절은 단조이며, 주인공이 긍정하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하다. - ‘너만이 이 가슴에 봄을 가져온다.’ 리스트는 이 곡을 진정한 거장 작품으로 제시한다. 연주자에게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 무섭게 어렵고 분명하게 작곡되었다. (무서운 어려움은 연주자를 자신의 한계까지 밀어붙이기 위한 것 같다.)


"Abschied" (Farewell) is a song of departure; the poet has to leave his home town for reasons unknown. With his horse trotting happily along, he bids farewell to various sights in the town once so dear to him. Only at the end, in a truly heart-breaking moment, the protagonist pleads that "if" he can't stay, "if" he must move on, the stars shouldn't follow him either. This song is Schubert to its very core, occupying that grey area between happiness and melancholy. Schubert manages to capture a trace of sadness in each 'Farewell' while the nature of the music remains cheerful.


<이별>은 출발의 노래인데, 시인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고향을 떠나야 한다. 행복하게 뛰는 말과 함께, 그는 그토록 좋아하는 마을의 여러 명소들에 작별을 고한다. 겨우 끝에 가서야, 진정으로 가슴 아픈 순간에, 주인공은 “만약” 그가 머무를 수 없다면, “만약” 그가 계속 나아가야 한다면, 별들도 그를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간청한다. 이 노래는 슈베르트에게 있어 핵심으로, 행복함과 우울함 사이의 어중간한 영역을 차지한다. 슈베르트는 음악의 본질이 즐거운 성격을 유지하는 동안 각각의 ‘이별’에서 슬픔의 흔적을 포착한다.


"In der Ferne" (Far Away) is again a piece in which Liszt transcends all the presumed limitations of the small-scale song form. Just like in "Kriegers Ahnung", he turns this song too into an orchestral fantasy. The effect is so overwhelming, yet so in accordance with Schubert's music that it surpasses even the emotional impact of the original song. The protagonist, in a distant land, laments his destiny as he sends a greeting to the one who has broken his heart and caused all his suffering. In my opinion, this is the finest of all the Schubert song arrangements by Liszt.


<먼 곳에서>는 리스트는 다시 한 번 소규모 가곡 형식의 한계를 모두 뛰어넘는 곡이다. <병사의 예감>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는 이 노래도 관현악적인 환상으로 바꾼다. 그 효과는 너무나도 압도적이지만, 슈베르트의 음악과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원곡의 감정적 영향도 능가한다. 먼 땅에 사는 주인공은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모든 고통을 일으킨 사람에게 인사를 전하며 자신의 운명을 한탄한다. 내 생각에 이것은 리스트의 모든 슈베르트 가곡 편곡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


"Ständchen" (Serenade) is probably one of the most recognizable pieces in the world. Even those who have never heard of Schubert can hum the famous melody of this work. The work lends itself easily to a dramatic operatic reading, although the poem barely justifies this. It is about a young man declaring his love over a gentle guitar-like accompaniment. When the poem reads 'Fear not, beloved, that some traitor will eavesdrop', it speaks of soft reassurance, not of defiance. This piece is no longer only a song by Schubert but is equally appreciated as a song without words by Liszt.


<세레나데>는 아마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곡들 중 하나일 것이다. 슈베르트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이 작품의 유명한 멜로디를 흥얼거릴 수 있다. 이 작품은 시가 이것을 거의 정당화하지 않더라도, 극적인 오페라의 해석에 잘 어울린다. 이 곡은 기타를 닮은 부드러운 반주를 통해 사랑을 고백하는 청년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인이 다음과 같이 읽을 때, 반항이 아닌, 부드러운 안심을 말한다. ‘연인이여, 심술궂게 엿듣는 이들일랑 두려워 말아요.’ 이 곡은 더 이상 슈베르트의 가곡이 아닌, 리스트의 무언가(가사가 없는 노래)가 된다.


"Der Atlas" (Atlas) is one of the many truly terrifying songs of the cycle. Already with the piano introduction we are thrown in a world of fire and suffering. Atlas, forced to carry the world on his shoulders, blames his heart for the never-ending misery: 'Proud heart, you have asked for eternal happiness or for eternal suffering and now you are wretched!'


<아틀라스>는 전곡에서 진정으로 무서운 노래들 중의 하나이다. 이미 피아노 도입부와 함께 우리는 불과 고통의 세계에 빠진다. 세계를 어깨에 메도록 강요받은 아틀라스는 끝없는 고통에 대해 그의 마음을 탓한다. ‘교만한 마음, 그대는 한없이 행복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한없이 불행하기를 원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대는 참으로 불행하다!’


"Das Fischermädchen" (The Fisher Girl) is a cryptic song. It appears to have no drama, no conflict; a poem and a song that goes nowhere. The poet asks the beautiful fisher girl to sit beside him and fear not, for deep beneath all the conflicts in his heart a pearl lies. The poem takes place in the moment, thus does not present a progression of events. There is a nagging feeling that there has to be more to it, but the expected dramatic climax never occurs. In a stroke of genius Liszt adds a beautiful postlude to it with the comment 'Wie mit Zerstreuung fortfahrend' ('Continuing as if distracted').


<어부의 딸>은 비밀스러운(수수께끼 같은) 노래이다. 드라마도 없고 갈등도 없는 것 같은데, 아무데도 가지 않는(어디로도 인도하지 않는) 시와 노래이다. 시인은 아름다운 어부 소녀에게 그의 곁에 앉아 두려워하지 말라고 부탁하는데, 그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갈등 아래에는 진주가 놓여있기 때문이다. 시는 일련의 사건이 아니라 순간을 묘사한다. 더 많은 것이 있어야 한다는 불평하는 느낌이 있지만, 예상되는 극적인 절정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천재적 솜씨로(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던) 리스트는 ‘산만한 것처럼 계속하여’(계속 산만함을 유지하는 것처럼)라는 언급과 함께 아름다운 후주곡을 추가한다.


"Am Meer" (By the Sea) is a marvellous poem. It unfolds a tragedy in but a few lines. The poet describes a scene where he and his lover sit alone and silently by the sea. She cries and he drinks her tears from her hands. Only in the last stanza do we learn that this is all in the distant past and that he has been consumed since that hour: the wretched woman has poisoned him with her tears.


<바닷가에서>는 놀라운 시이다. 비극을 아주 적은 몇 개의 줄로 전개한다. (<바닷가에서>는 단 몇 줄로 비극을 드러내는 위대한 시이다.) 시인은 그와 연인이 해변에 홀로 앉아 조용히 있는 장면을 묘사한다. 그녀는 울고 있고 그는 그녀의 손등에서 무릎으로 떨어지는 눈물을 마신다. 마지막 절에서만 우리는 이것이 모두 먼 과거에 있고 그 시간 이후로 소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불행한 여인은 눈물로 그를 불살라버렸다.


"Aufenthalt" (The Resting Place) is a song where Schubert seems to foreshadow the drama of Verdi. Schubert's tempo marking, "Nicht zu geschwind, doch kräftig" (Not too fast but powerful), suggests a certain gravity to the situation described here. The resting place of the hero is far from mankind, it is the rugged nature. Amid surging river, roaring forest and immovable rocks stands the hero, his tears rolling incessantly. The suffering that never ceases is likened to the ancient ore in the rocks.


<나의 집>은 슈베르트가 베르디의 드라마를 예고하는 것처럼 보이는 노래이다. 슈베르트의 템포 표시인 “너무 빠르지 않지만 강력하게”는 여기에 묘사된 상황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영웅의 안식처는 사람과는 거리가 먼, 거친 자연이다. 밀려오는 강물, 술렁거리는 숲, 높이 솟은 바위가 영웅을 나타내며, 그의 눈물은 끝없이 흐른다. 영원히 변함없는 고뇌는 태고 때부터 솟아있는 거대한 바위와 같다.


In Liszt's order, "Die Stadt" (The City) is the first piece in the cycle. It is not hard to understand why he chose it for the opening number. It starts with a rowing rhythm based on an unstable harmony and depicting a boat approaching the city in the evening mist. The mood is very heavy from the first note on. As the sun shines in its full glory once more and illuminates the place where the poet lost his love, the music climbs to a terrifying climax. The boatman goes on rowing, however, and the piece ends as it began: without tonality and as quietly as possible. It is as if Schubert is playing with reality: the boat glides on, as if the harrowing sight hadn't been real…


리스트의 순서에 의하면, <도회지>는 전곡에서 첫 곡이다. 그가 시작하는 번호로 선택한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불안정한 화성을 바탕으로 한 노를 젓는 리듬으로 시작하여 저녁 안개 속에서 도시로 다가오는 배를 묘사한다. 첫 음부터 분위기가 매우 무겁다. 해가 다시 한 차례 지상에 빛을 던져, 시인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그 장소를 보여주면서 음악은 끔찍한 절정에 이른다. 뱃사공이 (슬픈 가락으로) 노를 젓지만, 조성이 없이 가능하면 조용히, 곡이 시작하는 것처럼 끝난다. 마치 슈베르트가 현실을 가지고 노는 것 같은데, 끔찍한 광경이 실제가 아닌 것처럼 배가 미끄러지듯이 나아간다...


"Der Doppelgänger" (The Double) is for many the absolute masterpiece of Schubert's song output. It is a whisper that turns into a scream as the protagonist sees his own likeness, standing in front of a house in which his beloved used to live. The psychological drama is twofold: memories of lost love are triggered by the setting but also thoughts of his own mortality, as during the Romantic era seeing one's double was often thought to herald impending death. The austere mood seems to belong to a different time. There is no poetry in the suffering here, just pure pain and rage – arguably there is no other music so terrifying and so scary.


<나의 그림자>는 슈베르트가 쓴 가곡 중에서도 최고 걸작이다. 주인공이 연인이 살던 집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지르게 되는 속삭임이다. 심리 드라마는 두 가지인데, 낭만주의 시대에 자신의 이중환영을 보는 것은 종종 임박한 죽음을 예고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 배경은 과거의 사랑에 대한 기억뿐만 아니라 자신의 죽음에 대한 생각에 의해서도 촉발된다. 엄숙한 분위기는 다른 시대에 속한 것 같다. 여기에는 고통 속의 시가 없는데, 오직 순수한 고통과 분노뿐이다. - 그토록 두렵고 무서운 다른 음악은 아마 없을 것이다.


"Die Taubenpost" (Pigeon Post) is the last song Schubert composed before his death. Many have been baffled at the innocence of the song, in comparison to the other works of the composer's final year. Schubert wasn't in bad health until his very last weeks, however, and was filled with life until the very end. The poem describes a pigeon, so loyal and so devoted that it never fails to deliver the poet's love. 'And its name', reads the poem, 'is longing'. And thus is the cycle completed: Hope forged into longing through pain. Schubert lived an unfulfilled life. He must have been tormented by what he knew would be an untimely death caused by syphilis, by not being able to assert himself as the true heir of Beethoven and by loving so much and not being loved back. How fitting it is that this song is the last one he ever composed.


<비둘기 우편>은 슈베르트가 죽기 전에 작곡한 마지막 노래이다. 작곡가가 말년에 쓴 다른 작품들에 비해, 이 노래의 순수함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슈베르트는 마지막 몇 주까지 건강이 나쁘지 않았고, 쓰라린 끝까지 활력이 넘쳤다. 이 시는 시인의 사랑을 전하는 데에 실패하지 않을 정도로 충실하고 헌신적인 비둘기를 묘사한다. ‘그리고 그 이름은 동경’이라는 시를 읽는다. 따라서 전곡이 완성되는데, 희망이 고통을 지나 동경으로 변했다. 슈베르트는 이루지 못한(성취되지 않은, 미완의) 삶을 살았다. 그는 매독으로 인한 자신의 갑작스러운 죽음, 베토벤의 진정한 계승자가 아니라는 사실, 그가 너무나 사랑했고 다시는 사랑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고통 받았을 것이다. 이 노래가 그가 마지막으로 작곡한 노래라는 것이 딱 맞다.


Liszt: Quatre Valses oubliées, S. 215 / 리스트 4개의 잊힌 왈츠

In 1880, the nearly 70-year-old Liszt was reminded of a piece that he had composed more than thirty years earlier and then forgotten about. After revising it, he renamed the piece "Romance oubliée" and had it published. This return to the past appears to have had a strong emotional impact on the composer, and over the next couple of years he composed a number of pieces with the word 'forgotten' in the title. If I were to describe these waltzes with one word, it would be 'elusive': it is very difficult to pinpoint the character of these works. Are they wistful? Ironic? Sardonic? Self-loathing? Melancholic? Perhaps all at once. One can almost imagine Liszt, upon hearing these pieces played, saying with a twisted smile: 'Oh, they… They signify… nothing.' Indeed, none of the pieces seems to have an ending – instead they vanish into thin air. They do not make a point, they rather seem merely to point out that (to quote Michelangelo):


1880년에 거의 70세에 가까운 리스트는 그가 30년도 더 전에 작곡한 후 잊은 곡을 회상했다. 그것을 개정한 후, 그는 <잊힌 로망스>라고 이름을 변경하여 출판하게 했다. 이 과거로의 복귀는 작곡가에게 강한 감정적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이며, 다음의 2년 동안 그는 제목에 ‘잊힌’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여러 곡들을 썼다. 이 왈츠들을 한 단어로 설명한다면, ‘규정하기 힘들다’인데, 이 작품들의 성격을 딱 집어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 곡들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가? 비꼬는 것인가? 냉소적인가? 자기혐오인가? 우울한가? 아마도 한 번에. 이 곡들이 연주되는 것을 듣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는 리스트를 상상할 수 있다. ‘아, 이 곡들은... 이 곡들은... 아무 의미가 없어.’ 사실, 어떤 곡들도 끝이 없는 것 같다. - 대신 허공으로 사라진다. 이 곡들은 어떤 의도도 취하지 않으며, (미켈란젤로를 인용한다면) 그저 다음과 같이 나타내는 것처럼 보인다.


All things living soon shall perish,

All things, all things that men cherish,

Time is fleeting and the splendid sun

beholdeth thought and action,

sorrow, pleasure quickly ended.

Fled like shadows in a second,

Like a vapor swept away.

We were also men like you,

Gay and mournful, false and true,

Now we are but lifeless clay,

And in earth our forms must vanish.

All things living soon shall perish,

All things, all things that men cherish.

Michelangelo, Rime 21, translation by Nathan Haskell Dole


모든 살아있는 것이 곧 사라져간다네, (태어난 모든 것은 죽게 된다)

모든 것들, 남자들이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들, (모든 게 다 사라져)

시간은 잠깐이고 찬란한 태양은 (시간은 흐르고 태양이 / 고통과 슬픔이 사라지고 시간과 함께, 태양 아래,)

생각과 행동을 바라보네, (모든 게 지나가는 걸 보네 / 인간의 영혼, 그들의 말)

슬픔, 즐거움이 빨리 끝났다네. (생각하고, 말하고, 고통과 기쁨)

순식간에 그림자처럼 달아나, (낮처럼 희미해진 그림자)

마치 증기가 휩쓸듯이. (산들바람의 안개처럼.)

우리도 당신 같은 인간이었다,

화사함과 슬픔, 거짓과 진실, (당신처럼 행복하고 슬프다,)

이제 우리는 생명이 없는 점토에 불과하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여기에 생명이 없네,)

그리고 지상에서 우리의 형태는 사라져야 한다네. (보다시피 지구일 뿐이네.)

모든 살아있는 것이 곧 사라져간다네, (모든 것이 다 사라졌네,)

모든 것들,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들.

- 미켈란젤리, 21시


© Can Çakmur 2020 / 잔 차크무르 글



Can Çakmur (pronounced Djahn Tchakmur) is the first prize winner of the 2018 Hamamatsu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where he also won the Chamber Music Prize, and of the Scottish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2017. He has performed at venues such as the Glasgow Royal Concert Hall, Eindhoven Muziekgebouw, Tokyo Opera City, Salle Cortot in Paris and Wigmore Hall, as well as the most important concert halls in his homeland Turkey. 2019 saw his débuts with Japanese and European orchestras including the Nagoya Philharmonic Orchestra, the Sapporo and Osaka Symphony Orchestras and the Royal Scottish National Orchestra, and he headlined the closing concert of the Festa Summer at the MUZA Kawasaki Symphony Hall with the Tokyo Symphony Orchestra conducted by Tadaaki Otaka.


잔 차크무르는 2018년 제10회 하마마쓰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과 함께 실내악상도 받았으며, 2017년 스코티시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도 우승했다. 그는 글래스고 왕립 콘서트홀, 에인트호벤 무지크헤보우, 도쿄 오페라 시티, 파리 코르토 홀, 위그모어 홀 같은 공연장뿐만 아니라 조국 터키의 가장 중욯나 콘서트홀들에서도 연주했다. 2019년에는 나고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삿포로 심포니 오케스트라, 오사카 심포니 오케스트라, 왕립 스코틀랜드 국립 오케스트라 등 일본과 유럽의 오케스트라들과 데뷔 협연을 가졌으며, 무자 가와사키 심포니 홀에서 다다아키 오타카의 지휘로 도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페스타 서머 폐막 연주회에서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Released in 2019, his début disc received top marks from magazines and websites including "Diapason", "ResMusica" and "Pizzicato". It also won Çakmur an International Classical Music Award (ICMA) in the Solo Instrument category. Can Çakmur is a dedicated chamber musician, and collaborates with the cellist Jamal Aliyev, the violinist Fenella Humphreys and the Borusan Quartet. An avid writer and speaker on music, he contributes to the Turkish music magazine "Andante" and often moderates his own concerts.


2019년에 발매된 그의 데뷔 음반은 디아파종, 레뮈지카, 피치카토 등의 잡지와 웹사이트에서 최고 점수를 받았다. 또한 앙카라에서 열린 국제 클래식 음악상 기악 독주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잔 차크무르는 열정적인 실내악 연주자이며 첼리스트 자말 알리예프, 바이올리니스트 페넬라 험프리스, 보루산 콰르텟과 협연한다. 열정적인 작가이자 연사로서 터키 음악 잡지 <안단테>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자신의 콘서트에서 사회도 맡고 있다.


Born in 1997 in Ankara, Can Çakmur began his music education with Leyla Bekensir and Ayşe Kaptan. In 2012, he was accepted to La Schola Cantorum in Paris to work with Marcella Crudeli, and gained his Diplôme de virtuosité with highest honours in 2014. He currently pursues his studies with Grigory Gruzman in University of Music Franz Liszt Weimar and continues to work privately with Diane Andersen in Belgium. Can Çakmur is part of the 'Güher & Süher Pekinel Young Musicians on the World Stages' scholarship programme, supported by Tüpraş, and has been granted a grand piano to aid his studies.


1997년 12월 5일 앙카라에서 태어난 차크무르는 레일라 베켄시르, 아이쉐 카프탄과 음악 교육을 시작했다. 2012년에는 파리 스콜라 칸토룸에 입학하여 마르첼라 크루델리를 사사하였으며, 2014년에는 비르투오시테 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는 현재 바이마르 리스트 음대에서 그리고리 그루즈만을 사사하고 있으며 벨기에에서는 다이앤 앤더슨의 개인 레슨을 받는다. 잔 차크무르는 튀프라쉬 회사가 지원하는 <귀에르 & 쉬에르 페키넬 세계무대의 젊은 음악가들>(터키의 피아노 듀오 페키넬 자매가 주도하는, 젊은 연주자들이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음악 교육 프로젝트) 장학생이며, 학업을 보조할 그랜드 피아노를 받았다.

댓글 1개:

  1. https://sanet.st/blogs/hakunamatata/can_akmur_liszt_schwanengesang_s__valses_oublies_s.3516920.html

    https://rutracker.org/forum/viewtopic.php?t=5987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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