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3일 금요일

DVD / Maurizio Pollini, De main de maître 2014



https://www.youtube.com/watch?v=kW0ogdrIfdI

https://www.medici.tv/fr/documentaries/maurizio-pollini-de-main-de-maitre-a-musical-profile


대가의 손 (브루노 몽생종 다큐멘터리)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인터뷰를 담은 귀중한 다큐멘터리 영상이 발매된다. 음악가의 진면목을 가장 생생하게 그려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브루노 몽생종이 제작한 것으로, 1960년 쇼팽 콩쿠르에서부터 그의 음악 동료들, 그의 음악 세계, 그리고 정치적 견해까지 폴리니의 모든 것을 포괄하고 있다. 그의 모습을 만나게 되는 극히 드문 영상물이면서도 노 대가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놓쳐서는 안 된다.


마우리치오 폴리니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것에는 여러가지 훌륭한 이유들이 있다. 그는 친절하고 지적이며, 매우 다양한 주제에 박식하지만,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접근하기 어려우며, 그의 별난 콘서트와 매우 드문 인터뷰들을 제외하곤 정보가 거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70세가 넘는 그가 처음으로 영화에 찍히는 것을 수락했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장시간에 걸친 인터뷰 장면들을 기반으로, 폴리니와 직접 촬영한 라이브 영상과 그에 대한 기록들을 담는다. (2014년 제10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Music]


Maurizio Pollini: The piano is finally a rather neutral instrument. But it has a limitless ability to transform itself. Thus, it can become a singing instrument...


마우리치오 폴리니 : 피아노는 결국 다소 중립적인 악기입니다. 하지만 변신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노래하는 악기가 될 수 있습니다...


[Music]


Maurizio Pollini: To see how this instrument actually reacts, and yields to whatever you want to do, to what you are after, is something quite extraordinary. This is why I still am, so happy to be a pianist.


마우리치오 폴리니 : 이 악기가 실제로 어떻게 반응하고 원하는 것, 무엇을 추구하는지 보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입니다. 이것은 제가 오늘날에도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행복한 이유죠.


[Maurizio Pollini: Beethoven Piano Sonata No. 26 in Eb, Op. 81a "Les Adieux": I. Das Lebewohl. Adagio]


[마우리치오 폴리니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6번 <고별> 1악장 <고별>]


Who is that boy who can be seen on the canvas behind you? Is that you?


당신 뒤에 있는 캔버스에 보이는 저 소년은 누구인가요? 당신인가요?


Maurizio Pollini: No, no! It's my grandfather's brother. He ran away from home when he was 16, in 1800, joined Garibaldi's army, and took part in the battle of Mentana which Garibaldi led against the Papal States without the help of the Italian State. He died there...


마우리치오 폴리니 : 아니, 아니! 할아버지의 형제입니다. 1800년 16세에 집을 떠나 가리발디의 군대에 들어가 이탈리아 연방의 도움 없이 가리발디가 이끄는 멘타나 전투에서 교황령(1870년까지 교황이 지배한 중부 이탈리아 지역)에 맞서 싸웠어요. 그곳에서 돌아가셨지요...


On the battlefield?


전장에서요?


Maurizio Pollini: Yes, on the battlefield.


마우리치오 폴리니 : 네, 전장에서요.


He looks so much like you!


당신을 많이 닮았군요!


[Music]


Maurizio Pollini: I find it hard to speak about my childhood, for some personal, mysterious reason. In any event, there is no doubt that mine was a family of artists. My father was an architect. He was very active in the modernist movement of Italian architecture in the 30's. My uncle, Fausto Melotti, was an important sculptor. His abstract works, which he created from 1930 to 1970, became very famous. My mother loved music, she sang and played the piano. A real passion for music pervaded the whole family: my father played the violin, my uncle played the piano. For instance, they were keen on Debussy, Ravel, Stravinsky, and rather less keen on the Austro-German trend. They didn't talk about Schönberg, Berg, Webern. I discovered them later on. I took all these things in probably unconsciously. This accounts for my curiosity and interest for modern art which have remained to this day...


마우리치오 폴리니 : 사적인 비밀스러운 이유로 어린 시절에 대해 말하기는 어려워요. 어쨌든 우리가 예술가 집안이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죠. (가족 중에 예술가가 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아버지는 건축가였어요. 1930년대 이탈리아 건축의 모더니즘 운동에 매우 활발히 참여하셨죠. 외삼촌인 파우스토 멜로티는 유명한 조각가였는데요. 1930~1970년에 만드신 추상 작품들이 매우 유명해졌죠. 어머니는 음악을 사랑했고 노래를 불렀으며 피아노를 치셨죠. 음악에 대한 진정한 열정은 온 가족에게 스며 있었는데(가족 전체에 퍼져 있었는데), 아버지는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외삼촌은 피아노를 연주했어요. 예를 들어 그들은 드뷔시, 라벨, 스트라빈스키를 높이 평가했고, 오히려 오스트리아-독일의 풍조에 덜 열광했죠. 그들은 쇤베르크, 베르크, 베베른(신빈악파)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저는 신빈악파를 나중에 발견했는데요.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이 모든 것을 받아들였을 겁니다. 이것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현대 예술에 대한 저의 호기심과 관심을 설명해줍니다...


[Music]


Maurizio Pollini: The musical events that took place in Milan then also played a key role. There were many. For example, all the great pianists came to play in Milan...


마우리치오 폴리니 : 당시 밀라노에서 열린 음악 행사들도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많이 있었는데요. 예를 들어 모든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밀라노에 연주하러 왔죠...


[Artur Rubinstein: Chopin Waltz No. 1 in Eb, Op. 18]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 쇼팽 왈츠 1번]


Maurizio Pollini: Artur Rubinstein came almost every year, Benedetti Michelangeli too, of course, Walter Gieseking, Clara Haskil, Edwin Fischer, Wilhelm Backhaus, Alfred Cortot... And then, conductors. At a Wagner concert, conducted by Toscanini, I was ten, I inched my way to the balcony to listen. I wasn't mature enough to appreciate, really, but that was taking place in Milan.


마우리치오 폴리니 :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거의 매년 왔는데, 베네데티 미켈란젤리도 물론이고, 발터 기제킹, 클라라 하스킬, 에트빈 피셔, 빌헬름 박하우스, 알프레드 코르토... 그러고 나서 오케스트라 지휘자들도 왔어요. 10세일 때에는 토스카니니가 지휘하는 바그너 콘서트에서 발코니로 가서 들었어요. 진정으로 감상할 만큼 성숙하지 않았지만, 밀라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죠.


[Maurizio Pollini: Beethoven Piano Concerto No. 3 in c, Op. 37: I. Allegro con brio]


[마우리치오 폴리니 -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1악장]


Maurizio Pollini: Karajan also came, Furtwängler conducted a fantastic #Ring#. I know about it through a recording, because of course I did not attend. There was Mitropoulos whom I heard conduct #Pélleas and Mélisande# by Schönberg and the #Alpine Symphony# by Strauss... I say that to give you an idea of Milan's rather rich musical life.


마우리치오 폴리니 : 카라얀도 왔는데, 푸르트뱅글러가 환상적인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를 지휘했어요. 물론 저는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음반을 통해 알고 있었죠. 거기에서 미트로풀로스가 쇤베르크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을 지휘한 것을 들었는데... 밀라노의 풍요로운 음악적 삶에 대한 생각을 제공하기 위해 그렇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 모든 것은 밀라노를 지배했던 다소 풍부한 음악적 풍토를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Who decided you were going to play the piano?


누가 당신이 피아노를 칠 것이라고 결정했나요? (당신 자신이요?)


Maurizio Pollini: My parents, for sure. It came very naturally. I started when I was 5 or 6. Obviously, I had some aptitude. I did manage to play in a way, let's say, acceptable a few famous works acceptable, that is, for a young boy, for a budding pianist.


마우리치오 폴리니 : 물론 부모님입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다가왔어요. 5세나 6세에 시작했거든요. 분명히 약간 적성에 맞았어요. 저는 어떤 식으로든 연주할 수 있었는데, 말하자면 몇 가지 유명한 작품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즉 어린 소년이나 신진 피아니스트에게 허용되는 방식으로 연주할 수 있었죠.


[Maurizio Pollini: Chopin Prelude in f#, Op. 28 No. 8]


[마우리치오 폴리니 - 쇼팽 전주곡 8번]


Maurizio Pollini: I did play some small concerts, one, when I was 9, another at 10, then at 12. So at 13, I had around three concerts to my credit. It's odd, you're prompting me to delve into my memory something I never do. I don't really remember these things. It may be strange, but it's all rather vague in my mind.


마우리치오 폴리니 : 제가 9세에 한 번, 10세에 한 번, 12세에 한 번 등 몇 가지 작은 공연을 했어요. 그래서 13세에는 덕분에 세 번의 연주회를 했죠. 이상하게도 당신은 제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을 제 기억 속으로 파고들라고 부추기고 있군요. 저는 거의 기억나지 않아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낯설지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들이죠.


So, your first contact with the instrument was natural? Effortless, with no preparation, and little practice?


그럼 악기와의 첫 만남이 아주 자연스러웠나요? 노력도, 준비도, 연습도 거의 없이 수월했나요?


Maurizio Pollini: Oh no! My first teacher, Carlo Lonati, endeavoured to teach me the rudiments of piano technique. In fact, he just let me play.


마우리치오 폴리니 : 오 아뇨! 제 첫 스승인 카를로 로나티는 제게 피아노 테크닉의 기초를 가르치려고 애쓰셨죠. 사실 그분은 단지 저를 연주하게 놔두셨죠.


[Maurizio Pollini: Chopin Impromptu No. 3 in Gb, Op. 51]


[마우리치오 폴리니 - 쇼팽 즉흥곡 3번]


Maurizio Pollini: He let me play in my own way. Then, Carlo Vidusso made me learn the Chopin #Etudes#, which I performed in public when I was 14. That, I remember very clearly. It was a lot of work: my technique was not sufficiently evolved for these very difficult works. But it helped me build up a more solid technique.


마우리치오 폴리니 : 그분은 제 방식으로 연주하게 해주셨어요. 그러다가 카를로 비두소에게 쇼팽 연습곡을 배우게 되었는데, 제가 14세에 대중 앞에서 연주했던 곡들이었죠. 그건 제가 뚜렷이 기억해요. 많은 작업이었는데, 제 테크닉은 이러한 매우 어려운 작품들을 위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거든요. 그러나 제가 더 견고한 테크닉을 구축(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죠.


[Maurizio Pollini: Chopin Prelude in b flat, Op. 28 No. 16]


[마우리치오 폴리니 - 쇼팽 전주곡 16번]


[Chopin: Andante spianato et Grande Polonaise brillante in Eb, Op. 22]


[쇼팽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대 폴로네즈>]


#The Chopin Competition is over. The jury has deliberated. Here is the verdict. The 1st Prize goes to an 18 year old, Maurizio Pollini. His performance of Chopin has aroused enthusiasm right from the start. He is the 1st Italian pianist awarded this coveted prize.#


“쇼팽 콩쿠르가 끝났습니다. 심사위원단은 심사숙고했습니다. 여기 판결이 있습니다. 1등상은 18세의 마우리치오 폴리니에게 돌아갑니다. 그의 쇼팽 연주는 시작부터 열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는 이 탐나는 상을 받은 최초의 이탈리아 피아니스트입니다.”


Maurizio Pollini: In Warsaw, I made the acquaintance of Artur Rubinstein whom I had already heard when he performed in Milan. This time, I came to know him personally. He sat on the jury only for the Finals. He was extraordinarily sympathetic, that was obvious. He gave me a piece of advice, the best I've had in all those years. He asked me to come together with another pianist, Michel Block. It went like a flash: he put his middle finger on my shoulder and said: "By using that kind of weight, I never get tired while playing". He made us feel that really impressive weight.


마우리치오 폴리니 : 바르샤바에서 저는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을 만났는데, 밀라노에서 그의 연주를 이미 들은 적이 있었어요. 이번에는 그를 개인적으로 알게 되었죠. (이번에는 그를 직접 만나보기로 했어요.) 그는 결선에서만 심사위원이었어요. 그는 매우 훌륭했고, 그건 분명했어요. (그는 정말 친절했어요.) 그는 몇 년 동안 제가 받은 최고의 조언을 제게 해주었죠. 그는 제게 또 다른 피아니스트 미셸 블록과 함께 가자고 했어요. 즉석에서 그는 제 어깨에 가운뎃손가락을 올려놓고 이렇게 말했죠. “그 무게를 실어서 연주해도 저는 지치지 않아요.” 그는 우리에게 이 절대적으로 인상적인 무게를 느끼게 했습니다.


The weight...


무게라...


Maurizio Pollini: No, not only of the finger! He managed to transfer through his 3rd finger all the strength of his arm and shoulder, in a perfectly natural way. He said it was the very basis of his technique which allowed him never to get tired, and to produce the glorious sound that was his.


마우리치오 폴리니 : 아니, 손가락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중지를 통해 팔과 어깨의 모든 힘을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었어요. 지치지 않고 장엄한 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이 그 테크닉의 기초(근간)였다고 합니다.


A great lesson!


좋은 레슨이군요!


Maurizio Pollini: The more I think of it, years later, the more I find it precious. These are things one appreciates more and more with the passing of time.


마우리치오 폴리니 : 생각하면 할수록, 세월이 흐를수록(몇 년이 지나니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돌이켜보면 점점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입니다.


[Maurizio Pollini: Chopin Scherzo No. 3 in c#, Op. 39]


[마우리치오 폴리니 - 쇼팽 스케르초 3번]


Didn't he declare: "Maurizio Pollini plays better than all of us!"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요? “우리 심사위원 중에 누가 마우리치오 폴리니보다 잘 칠 수 있겠는가!”


Maurizio Pollini: That's not quite accurate. Rubinstein only said that I played #technically# better than any member of the jury. I've always thought he said that to sort of tease his colleagues in the jury. It was fun to say that a young chap played technically better than them. I'm sure that was the reason. Thereupon, unbeknownst to me, this Rubinstein's statement was quoted without the "technically". The compliment had become grossly exaggerated...


마우리치오 폴리니 : 정확하진 않아요. 루빈스타인은 제가 심사위원들보다 “기교상으로” 낫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저는 항상 그가 심사위원 동료들을 조롱하는(약간 자극하기 위해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해왔죠. 젊은 녀석(어린 소년)이 그들보다 기교적으로 더 잘했다고 말하는 게 재밌었어요. 그게 이유였다고 확신해요. 그래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 루빈스타인의 언급은 “기교적으로”가 없이 인용되었죠. 칭찬이 너무 과해져서... (정말 과장된 칭찬이 되어버렸군요...)


#Maurizio Pollini is met in Milan, by journalists, photographers, and by his family. Was it a real ordeal?#


“마우리치오 폴리니는 밀라노에서 기자, 사진작가, 가족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어려운 대회였나요?”


Maurizio Pollini: #Yes, nerve-racking, and very long. The competition lasted 3 weeks.#


마우리치오 폴리니 : “네, 너무 길어서 신경 쓰였어요. 콩쿠르는 3주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How many competitors were there?#


“참가자들은 몇 명이었나요?”


Maurizio Pollini: #Close to eighty, I think. The President of the jury, Rubinstein, said you had a colossal talent. He said lots of things... quite exaggerated!#


마우리치오 폴리니 : “80명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심사위원장인 루빈스타인은 제게 엄청난 재능이 있다고 말했죠. 말씀이 많으셨는데... 과장이 심하네요!”


#What was the most difficult moment?#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Maurizio Pollini: #Probably the 1st round.#


마우리치오 폴리니 : “아마도(의심의 여지 없이) 1라운드.”


#Is it true you were nervous?#


“긴장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Maurizio Pollini: #I was, indeed! But that's only natural.#


마우리치오 폴리니 : “정말 그랬어요! 하지만 당연한 일이죠.”


#With this prize, your career starts under favourable auspices. Is it true you have many engagements?#


“이 상과 함께 당신의 경력이 좋은 후원하에 시작됩니다. 계약이 많은 게 사실인가요?”


Maurizio Pollini: #True!#


마우리치오 폴리니 : “맞아요!”


#Concerts in Europe?#


“유럽에서의 연주회들?”


Maurizio Pollini: #Concerts in Europe, yes.#


마우리치오 폴리니 : “유럽에서의 연주회들, 맞아요.”


[Maurizio Pollini: Chopin Piano Concerto No. 2 in f, Op. 21: III. Allegro vivace]


[마우리치오 폴리니 -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3악장]


After the Warsaw Competition, I was faced with a difficult situation. Naturally enough, a competition winner is sought after by many music societies around the world. It's always the case after a competition. And so, I started playing such concerts. But I quickly realised that such an intense concert life was a bit premature for me. I wanted to study more repertoire, I wanted to play Beethoven, Schumann and Brahms, whom I had of course tackled earlier on, but with whom I wanted to go deeper. Well, after Warsaw, everybody was always asking me to play Chopin, which was quite normal actually. It's odd, because today I find being labelled as a Chopin performer is a great honour, the most marvellous thing that can happen to a pianist. But then, the 18 year old chap I was wanted to be involved in many other musical experiences.


마우리치오 폴리니 : 바르샤바 대회가 끝난 후 저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당연히 콩쿠르 우승자는 전 세계의 많은 음악 협회에서 찾고(높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대회가 끝난 뒤에는 항상 그렇죠. (대회가 끝나면 늘 이런 식이죠.) 그래서 그런 연주회들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런 강렬한(치열한) 연주 인생이 제게는 다소 시기상조라는 것을 빨리 깨달았죠. 저는 더 많은 레퍼토리를 공부하고 싶었고, 베토벤, 슈만, 브람스를 연주하고 싶었는데, 물론 이전에 다루었지만, 더 깊이 들어가고(나아가고) 싶었어요. 음, 바르샤바 이후로 모든 사람이 항상 제게 쇼팽을 연주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사실 그건 아주 평범한 것이었죠. 이상한데, 오늘날 쇼팽 연주자(해석자)로 낙인찍힌 것은 큰 영광이며 피아니스트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일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때 18세의 소년은 더 많은 음악적 경험을 하고 싶었어요.


[Arturo Benedetti Michelangeli: Scarlatti Sonata in c, K. 11]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 - 스카를라티 소나타 K. 11]


Maurizio Pollini: So, I cancelled all my concerts for a year and a half, and went to study with Benedetti Michelangeli. I went to see him, first in Bolzano where he resided, then in Arezzo, where he had a villa in which all his pupils lived. I stayed there for a short time.


마우리치오 폴리니 : 그래서 1년 반 동안 모든 콘서트를 취소하고 베네데티 미켈란젤리를 사사하러 갔는데요... 그를 만나러 처음에는 그가 살았던 볼차노에 갔고, 그다음에는 그의 모든 제자가 살았던 별장이 있는 아레초에 갔죠. 저는 그곳에 잠시 머물렀어요.


How were these lessons with Michelangeli?


미켈란젤리의 레슨은 어땠나요?


Maurizio Pollini: I would play, of course, and he would give me some very useful advice. For instance, he suggested some fabulous fingering for the trills. I still use it today. He suggested that I start the #Waldstein Sonata# using the double escapement, #legatissimo#, not from the key, but from beneath the key. Michelangeli used the double escapement from beneath the key to produce as impalpable a sound as possible.


마우리치오 폴리니 : 물론 저는 연주했고, 그는 제게 매우 유용한 조언을 제공했는데요. 예를 들어 그는 트릴에 대한 멋진 운지법을 제안했어요. 지금도 사용하고 있어요. 그는 제가 반복 메커니즘(이중 이탈장치)인 “레가티시모”(극도로 이어서)를 사용하여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을 건반이 아닌 건반 아래에서 시작하자고 제안했어요. 미켈란젤리는 건반 아래에서 이중 이탈장치를 사용하여 가능하면 만져지지 않는(최대한 만질 수 없는) 소리를 냈죠.


[Maurizio Pollini: Beethoven Piano Concerto No. 3 in c, Op. 37: I. Allegro con brio]


[마우리치오 폴리니 -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1악장]


[Music]


Maurizio Pollini: Later on, during the 60s, I pursued a more "measured" activity which allowed me to enlarge my repertoire considerably. I gave my first concerts in America in 1968. From those years also date my first attempts in the field of so called "modern" music: Schönberg, if one can say he is modern, and Bartok. Then came Boulez whose #2nd Sonata# I learnt and performed in 1968 for the first time.


마우리치오 폴리니 : 나중에 1960년대에는 제 레퍼토리를 상당히 확장할 수 있는 보다 “제약된” 활동에 전념했어요. 1968년에는 미국에서 첫 콘서트를 가졌죠. 그 해부터 소위 “현대” 음악 분야에서 제가 처음 시도한 시기이기도 한데, 쇤베르크, 그가 현대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리고 버르토크입니다. 그러고 나서 불레즈가 왔고, 그의 2번 소나타를 배웠으며, 1968년에 처음으로 연주했어요.


[Music]


Maurizio Pollini: Little by little, my musical life was getting richer, my repertoire larger, and I gained self-assurance.


마우리치오 폴리니 : 조금씩 제 음악적 삶이 풍요로워지고 레퍼토리가 넓어지며 자신감(확신)이 생겼습니다.


You didn't fear you might vanish by remaining silent for two years?


2년 동안 침묵하다가 사라질까 두렵지 않았나요?


Maurizio Pollini: Was I running the risk of playing too many concerts or of being forgotten by not playing? Both, quite obviously!


마우리치오 폴리니 : 제가 너무 많은 콘서트를 하거나 연주하지 않아 잊힐 위기에 처했던 걸까요? 물론 둘 다 분명히!


[Maurizio Pollini: Prokofiev Piano Concerto No. 3 in C, Op. 26 - III. Allegro, ma non troppo]


[마우리치오 폴리니 -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협주곡 3번 3악장]


In fact, your real international career took off during the difficult years of spreading terrorism in Italy. Is there a link between your interest in contemporary music and your political commitment?


사실, 당신의 진정한 국제 경력은 이탈리아에서 테러리즘이 퍼지는 어려운 시기에 시작되었습니다. 현대 음악에 관한 관심과 정치적 헌신 사이에 연관성이 있나요?


Maurizio Pollini: Music is one thing, interest... in political ideas is another thing. These are completely separate things. In the 60s, I was completely neutral politically, I had no interest in politics. How did my interest arise? It dates back to the time of my acquaintance with Luigi Nono. I became politically conscious, which in turn at that time led me to decide somehow to join the Italian Communist Party. I could do that only because the Communist Party condemned the invasion of Prague by the Soviet army, thereby changing and becoming democratic. In that respect, earlier on, though I had no precise political ideas, I've always been intransigent. I could never have sympathised with a party which wouldn't have been democratic, in all respects.


마우리치오 폴리니 : 음악은 관심사이고... 정치적인 생각은 또 다른 것입니다. 완전히 다른 것들이죠. 1960년대에 저는 정치적으로 완전히 중립적이었고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는데요. 제 관심이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루이지 노노와 친분을 쌓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저는 어느 정도 정치적 양심을 얻었고(정치적으로 자각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공산당에 어느 정도 충실하기로 했어요. 제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공산당이 소비에트 군대의 프라하 침공을 규탄했고, 따라서 민주화를 통해 태도를 바꿨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전에는 정확한 정치적 사상이 없었지만, 항상 비타협적이었고, 모든 면에서 민주적이지 않은 정당에 결코 동조할 수 없었습니다.


[Music]


Maurizio Pollini: To be a left-winger at that time in Italy, was a way of protesting against a horrible right wing. Horrible then, and which has remained so, if not worse! In order to define it, one should coin a special adjective.


마우리치오 폴리니 : 그 당시 이탈리아에서 좌익이 된다는 것은 끔찍한 우익에 대항하는 항의의 한 형태였는데요. 그때는 끔찍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죠! 그것을 정의하려면 다른 형용사를 찾아야 합니다.


[Music]


Maurizio Pollini: It was a period of acute confrontation between political leanings. There were rumours of a possible fascist coup, or something similar. The extreme left was violent and one heard talks of a possible right-wing coup.


마우리치오 폴리니 : 정치적 성향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였어요. 파시스트 쿠데타 또는 이와 유사한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소문이 있었죠. 극좌파는 폭력적이었는데 누군가는 우익 쿠데타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Music]


Maurizio Pollini: There was a bomb attack against a bank in Milan, the slaughter of Banca dell'Agricoltura. A terrorist action still not elucidated, just like the other massacres. I remember, one or two days later walking to the Piazza del Duomo which isn't far from here. There was a crowd of people protesting. I had the clear feeling that fascism wouldn't win, thanks to the strong opposition of public opinion. I found it comforting.


마우리치오 폴리니 : 국립농업은행의 대학살인, 밀라노의 한 은행에 대항한 폭탄 공격이 있었습니다. 다른 학살과 마찬가지로 테러 행위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는데요. 하루나 이틀 뒤에 여기에서 멀지 않은 두오모 광장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항의하는 군중이 있었어요. 여론의 거센 반대에 파시즘이 이길 수 없다는 분명한 예감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이것이 저를 안심시켰죠.


[Music]


Did such preoccupations have an effect on your musical activity?


그러한 선입견(우려)이 음악 활동에 영향을 미쳤나요? (걱정거리가 음악 활동으로 이어졌나요?)


Maurizio Pollini: Yes, attempts were made in Italy to organise concerts and meetings in Reggio Emilia and neighbouring villages. I took part in them for a while. Undoubtedly, the idea that music was a right for everyone, was very strong then. This is why all these experiments were made.


마우리치오 폴리니 : 네, 이탈리아에서는 레조 에밀리아(레조넬에밀리아)와 인근 마을들에서 연주회와 분산 회의를 조직하려는 시도가 있었어요. 잠시 참여했죠. 의심할 여지 없이 음악은 모든 사람의 권리라는 생각이 당시에는 매우 강력했어요. 이 모든 실험을 시도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모든 실험이 완료되었습니다.)


[Maurizio Pollini: Debussy Preludes, Book I No. 12 "Ce qu'a vu le vent d'ouest"]


[마우리치오 폴리니 - 드뷔시 전주곡 1집 12번 <서풍이 본 곳>]


Maurizio Pollini: Concerning programmes, we tried to promote the coexistence of the great Classics, the music of Beethoven and of other great authors of the past and that of avant-garde composers such as Stockhausen, Boulez or Nono.


마우리치오 폴리니 : 프로그램과 관련하여 우리는 위대한 클래식, 베토벤과 다른 위대한 과거 저자들의 음악, 그리고 슈톡하우젠, 불레즈, 노노 같은 전위음악 작곡가들의 음악 공존을 도모하고자 노력했습니다.


[Music]


#As encores, Pollini plays pieces by Debussy. Last night at La Scala, he repeated the same concert before an audience of young students, as a gesture of solidarity with the Polish people for the freedom and independence of people.#


“앙코르로 폴리니는 드뷔시의 곡(서풍이 본 곳)을 연주합니다. 어젯밤 라 스칼라에서 그는 폴란드 국민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연대의 표시로 어린 학생들 앞에서 같은 연주회를 반복했습니다.”


Maurizio Pollini: The most remarkable initiative from that time, was that of concerts for workers and students organised by Paolo Grassi at La Scala. Claudio Abbado was there and gave important cycles of concerts. For some years, these concerts took place, they were important, because of the ideals that inspired them, as much as because of their musical quality. Alas, these experiments had finally limited impact. From that point of view, it was something of a let-down. Our ideal had not materialised.


마우리치오 폴리니 : 그때부터 가장 주목할만한 계획은 라 스칼라에서 파올로 그라시가 조직한 노동자들과 학생들을 위한 연주회였어요.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거기에 있었으며 중요한 전곡 연주회들을 제공했죠. 몇 년 동안 이러한 연주회들은 이상을 위해 중요했으며 음악적인 질에 대해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불행히도 이러한 실험은 궁극적으로 제한된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아, 이 실험에는 속편이 없었어요.) 그런 면에서 보면 아쉬운 부분이었죠. 우리의 이상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Maurizio Pollini: Beethoven Piano Concerto No. 3 in c, Op. 37 - II. Largo]


[마우리치오 폴리니 -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3악장]


Maurizio Pollini: It was clear that that type of activity couldn't go on in the same way. But one might have hoped it would leave a trace in Italian musical life. Such was not the case, except in a very limited way.


마우리치오 폴리니 : 그런 식으로 활동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것이 이탈리아 음악 생활에 흔적을 남기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매우 제한된 방식을 제외하고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Did you feel you were part of a group together with Claudio Abbado, Maderna or Sciarrino?


클라우디오 아바도, 브루노 마데르나 또는 살바토레 시아리노와 함께 그룹의 일원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나요?


Maurizio Pollini: Yes... but in fact no! Because a "group" means a tight association. Yet, our friendship left open to each one of us the possibility to realise oneself independently from the others. There was undoubtedly a friendly bond between us.


마우리치오 폴리니 : 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그룹”은 긴밀한 연결(관계)을 의미하니까요. 그러나 우리의 우정은 우리 각자에게 다른 사람들과 독립적으로 자신을 실현할 가능성을 열어두었습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 사이에는(그러나 틀림없는) 우호적인 유대가 있었죠.


[Maurizio Pollini: Schumann Piano Concerto in a, Op. 54 - I. Allegro affettuoso]


[마우리치오 폴리니 - 슈만 피아노 협주곡 1악장]


Maurizio Pollini: My first encounters with Abbado go back to our earliest years. Abbado is a bit older than I, we were friends, we went together to the Piccolo Teatro to watch Strehler's productions. We made music together. Our musical relationship has remained intact up to now.


마우리치오 폴리니 : 아바도와의 첫 만남은 우리의 초창기(지난 몇 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바도는 저보다 약간 나이가 많고, 우리는 친구였으며, 우리는 조르조 스트렐러의 작품을 보기 위해 피콜로 극장에 함께 갔죠. 우리는 함께 음악을 만들었어요. 우리의 음악적 관계는 지금까지 변함이 없었죠.


[Maurizio Pollini: Schumann Piano Concerto in a, Op. 54 - I. Allegro affettuoso]


[마우리치오 폴리니 - 슈만 피아노 협주곡 1악장]


Maurizio Pollini: We still make music together, we have performed the bulk of the repertoire, all the important things, with a mutual understanding... a complicity, between pianist and conductor, conductor and pianist, really extraordinary. Usually, the relationship between a soloist and a conductor is finally limited to only a fraction of time. As a matter of fact, one sometimes manages to combine the conceptions of both by rehearsing straightaway with the orchestra, without preliminary discussions. With Karajan, I never had a piano rehearsal. Same thing with Pierre Boulez... We never rehearsed at the piano.


마우리치오 폴리니 : 우리는 계속해서 음악을 만들고, 많은 레퍼토리, 중요한 모든 것을 상호 이해하면서 연주했는데... 피아니스트와 지휘자, 지휘자와 피아니스트 사이의 관계는 정말 대단합니다. 보통 독주자와 지휘자의 관계는 궁극적으로 매우 짧은 시간에 제한됩니다. 사실 사전 논의(대화) 없이 오케스트라와 곧바로 예행연습하여 서로의 개념(생각)을 결합하기도 합니다. 카라얀과 함께 저는 피아노 리허설을 한 적이 없었어요. 피에르 불레즈도 그렇고... 우리는 피아노 리허설을 한 적이 없었죠.


You played Bartok without rehearsal?


리허설 없이 버르토크를 연주하셨나요?


Maurizio Pollini: We played for the first time Bartok's #1st# and #2nd Concertos# in New York when Boulez was the music director of the New York Philharmonic, without preliminary rehearsal at the piano, but straightaway with the orchestra, unless I forgot. But no! I would remember!


마우리치오 폴리니 : 불레즈가 뉴욕 필하모닉의 음악 감독(상임 지휘자)이었을 때 우리는 뉴욕에서 처음으로 버르토크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을 사전 피아노 리허설 없이 오케스트라와 바로 협연했어요. 하지만 아니에요! 전 기억해요!


[Music]


I know that you travel with your own piano, your concert instrument.


저는 당신이 자신의 피아노, 연주회용 악기를 가지고 여행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Maurizio Pollini: Yes, it's a piano I bought about two years ago. I almost always play on that instrument, which fits my requirements. It combines two elements which, for me are of utmost importance. Originally, the piano was not designed for concerts in venues sitting 2 or 3000 people, but to fill the sound space of small halls. So that in order to make sure that the works really reach out to the listeners, it is necessary to fill the hall with the sound of the instrument. The power of the instrument is therefore essential, together with something even more important: its sound quality. One should have a piano meeting all these requirements, which would adjust to the characteristics of each composer. One should have an instrument for each composer! It's obviously impossible! The slightest variant achieved by the tuner brings to the sound a variety of harmonic shades. Each concert has its own requirements: the venues are different, people change, I change, Fabbrini and programmes change too. Things are never identical.


마우리치오 폴리니 : 네, 약 2년 전에 산 피아노입니다. 저는 거의 항상 제 요구 사항에 맞는 그 악기로 연주해요. 제게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를 조화롭게 결합하거든요. 원래 피아노는 2000명 또는 3000명이 앉을 수 있는 공연장의 콘서트를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 작은 홀의 사운드 공간을 채우기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그래서 작품들이 청중에게 진정으로 닿기 위해서는 홀을 악기 소리로 채워야 합니다. 따라서 악기의 힘은 필수적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음질이 수반됩니다. 이러한 모든 요구 사항을 충족하고 각 작곡가의 특성에 적응할 수 있는 피아노가 있어야 하죠. 각 작곡가를 위한 악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분명히 불가능합니다! 조율사에 의해 달성되는 가장 작은 변형은 사운드에 다양한 화성적 음색을 제공합니다. 각 콘서트에는 다음과 같은 자체 요구 사항이 있는데, 공연장들이 다르고, 사람들이 바뀌고, 저도 바뀌며, 파브리니 스타인웨이 피아노와 프로그램들도 바뀌죠. 상황이 절대 같지 않아요.


If I understand correctly, the brightness is alright, but slightly below?


제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밝기가 괜찮지만, 약간 아래인가요?


Maurizio Pollini: I want a round sound, we're almost there, but... Not quite. Brightness and substance are not the same thing, the substance can be made better, provided the roundness remains. The tuning is somewhat altered.


마우리치오 폴리니 : 저는 둥근(멋진) 소리를 원하는데, 거의 다 왔지만... 완전한 건 아니네요. 명도와 물질은 같은 것이 아니며, 원형이 남아 있다면 물질을 더 좋게 만들 수 있어요. (밝기와 내용은 같지 않아요. 내용은 전체가 남아 있는 한 더 좋아질 수 있어요.) 조율이 약간 변경되었군요. (합의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군요.)


It has to do with transportation...


수송과 관련이 있군요...


Maurizio Pollini: During the night, the piano... It will stay here.


마우리치오 폴리니 : 밤이 되면 피아노는... 여기에 머물 것입니다.


Tonight, we'll put it on the side. And tomorrow, it will stay there all the time.


오늘 밤, 우리는 피아노를 옆으로 치울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 항상 거기에 머물 것입니다.


Maurizio Pollini: The contact with the instrument and the public is always something quite emotional. One changes because there's a musical emotion and because of the public. Acoustically, things are altered because of the presence of the public. One is not totally sure about what's going to happen.


마우리치오 폴리니 : 악기와 대중과의 접촉은 항상 상당히 감정적입니다. 음악적 감정이 있고 대중이 있으므로 바뀝니다. 음향적으로는 대중의 존재로 인해 상황이 변경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완전히 확신할 수 없어요.


[Music]


Maurizio Pollini: I've always stuck to a basic principle concerning my choice of repertoire, which isn't particularly large, many pianists have a repertoire much larger than mine. My decision to include a piece in my repertoire is based on the absolute certainty that I will never grow weary of the works I've selected.


마우리치오 폴리니 : 저는 항상 레퍼토리 선택에 관한 기본 원칙을 고수했는데, 특별히 많지는 않아요. 많은 피아니스트가 저보다 훨씬 더 방대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 레퍼토리에 곡 하나를 포함하려는 결정은 제가 선택한 작품들에 절대 질리지 않을 것이라는 절대적인 확신에 근거합니다.


[Maurizio Pollini: Debussy Preludes, Book II No. 6 General Lavine - eccentric]


[마우리치오 폴리니 - 드뷔시 전주곡 2권 6번 <괴짜 라빈 장군>]


Maurizio Pollini: A pianist has in his repertoire works he will play again and again in various circumstances and cities. He has to learn and relearn them, he must have with them a special and sustained connection. I may not have such a connection with pieces that don't feature in my repertoire and which are beautifully played by others, but towards which I don't feel that necessity of having a special rapport, implying a searching, scrupulous and repeated study. I therefore stick to the idea of playing only things I know for sure I will never grow weary of. Consequently, since I only select works which I will never find tiresome, there are quite a few missing in my repertoire.


마우리치오 폴리니 : 피아니스트는 자신의 레퍼토리에 다양한 상황과 도시에서 반복하여 연주할 작품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배우고 다시 익혀야 하며, 그것들과 특별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제 레퍼토리에 포함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아름답게 연주하는 곡들과 저는 그러한 연결이 없을 수도 있지만, 조사하여 세심하고 반복적인 연구를 의미하는 특별한 교감을 가질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요. 그러므로 저는 제가 절대 질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들만 연주한다는 생각을 고수합니다. 그래서 질리지 않을 작품들만 고르다 보니 제 레퍼토리에 빠진 작품이 꽤 많아요.


Yes, quite a few. Could you make out a list of them?


네, 꽤 많군요. 그것들을 나열해주실 수 있나요?


Maurizio Pollini: No way!


마우리치오 폴리니 : 안 돼요!


There is neither Spanish music, nor Scarlatti...


스페인 음악도 없고, 스카를라티도 없고...


Maurizio Pollini: I find Scarlatti a composer of genius, like Ravel whom I also seldom play. There are really a lot of marvellous pieces which I never played, much to my regret.


마우리치오 폴리니 : 스카를라티는 제가 거의 연주하지 않는 라벨처럼 천재라고 생각하는 작곡가입니다. 제가 한 번도 연주하지 않은 놀라운 곡들이 정말 많이 있는데, 그게 되게 아쉽군요.


[Maurizio Pollini: Beethoven Sonata No. 27 in e, Op. 90 - I. Mit Lebhaftigkeit und durchaus mit Empfindung und Ausdruck]


[마우리치오 폴리니 - 베토벤 소나타 27번 1악장]


Maurizio Pollini: So this is a choice which leaves behind works that I love listening to played by others. However I make the most rigorous choice: it's something I have to defend in the first person.


마우리치오 폴리니 : 그래서 이것은 다른 사람들의 연주를 듣고 싶은 작품들을 남기는 선택입니다. 그러나 저는 가장 엄격한 선택을 하는데, 제가 1인칭으로 방어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In a way, you are a kind of missionary?


어떻게 보면 당신은 전도사인가요?


Maurizio Pollini: No, no, please!


마우리치오 폴리니 : 아니, 아니, 제발!


A pioneer? A missionary?


개척자? 전도사?


Maurizio Pollini: Absolutely not! I do things for my own pleasure, #basta# !


마우리치오 폴리니 : 절대 아닙니다! (당연히 아니죠!) 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재미로) 모든 것을 해요, 이제 충분해요!


[Maurizio Pollini: Beethoven Sonata No. 27 in e, Op. 90 - II. Nicht zu geschwind und sehr singbar vorgetragen]


[마우리치오 폴리니 - 베토벤 소나타 27번 2악장]



유튜브에서도 전체를 볼 수 있다.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를 절충하여 번역했다. 실제로 DVD에서 지원되는 다른 외국어에는 독일어,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도 있다.

댓글 1개:

  1. Neige눈사람 드라이브
    https://drive.google.com/drive/u/0/folders/1wpfdQBgpLO2L-FFwchXvfngzHkuX1Yxh

    You have to download until 31 October 2022.

    2022년 10월 31일까지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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