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17일 화요일

Russian Pianist - Igor Zhukov


https://en.wikipedia.org/wiki/Igor_Zhukov
https://ru.wikipedia.org/wiki/%D0%96%D1%83%D0%BA%D0%BE%D0%B2,_%D0%98%D0%B3%D0%BE%D1%80%D1%8C_%D0%9C%D0%B8%D1%85%D0%B0%D0%B9%D0%BB%D0%BE%D0%B2%D0%B8%D1%87
http://musicalworld.com/artists/igor-zhukov/
http://www.bach-cantatas.com/Lib/Zhukov-Igor.htm
http://muzkarta.info/solist/igor-zhukov
http://www.independent.co.uk/news/media/classical-martin-roscoe-igor-zhukov-wigmore-hall-london-1258194.html
https://solistynn.ru/personalii/dirizhyory/igor-mihailovich-zhukov/
http://www.scriabin-association.com/igor-zhukov-obituary/

Biography
The Honored Artist of Russia, pianist, conductor and sound engineer Igor Mikhailovich Zhukov (Игорь Михайлович Жуков) was born on 31 August 1936 in Gorky (now Nizhny Novgorod). But his family moved to Moscow in the following year. Four years later, they were evacuated to Vyatka (then known as Kirov) as a result of World War II. After the war, they returned to Moscow.

러시아 공훈예술가, 피아니스트, 지휘자이자 사운드 엔지니어인 이고르 미하일로비치 주코프는 1936년 8월 31일 고르키(오늘날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가족은 이듬해에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4년 후 그들은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비야트카(오늘날 키로프)로 피난했다. 종전 후 그들은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As a pianist, he studied at the Music School of the Moscow Conservatory with Leonid Roizman, then at the Moscow Conservatory with Emil Gilels and then Heinrich Neuhaus. In 1957, he won 2nd prize in the 7th Long-Thibaud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 in Paris. He has since then been much sought after as a soloist by orchestras around the world. Many critics, as well as music lovers, consider him one of the great pianists of his generation. They find his affinity above all else for Russian works for piano to be exemplary. He widely performed in the USSR and abroad (in almost all European countries, in the US, Singapore, Malaysia, Hong Kong, Japan), preferring a romantic repertoire (from Chopin to Scriabin). In 1960, he graduated the Moscow Conservatory. In 1972, he was the first to record the complete set of Scriabin's piano sonatas (in 2000 the German company Telos made a new digital recording). These recordings have attracted considerable international attention, and are regarded as a milestone in the history of the interpretation of the composer.

피아니스트로서 그는 모스크바 음악원 부속 중앙음악학교에서 레오니드 로이즈만을 사사했다. 이어서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에밀 길렐스를 먼저 사사한 다음 하인리히 네이가우스를 사사했다. 1957년에는 파리에서 열린 제7회 롱-티보 국제음악콩쿠르에서 준우승했다. 이후 그는 전 세계의 오케스트라들로부터 독주자로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많은 비평가들뿐만 아니라 음악 애호가들도 그와 동세대의 위대한 피아니스트들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러시아의 피아노 작품들이 모범적이라는 것에 대해서 친근감을 느낀다. 그는 (쇼팽부터 스크리아빈까지) 낭만파 레퍼토리를 선호하면서 소련과 해외(대부분의 유럽 국가들, 미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홍콩, 일본 등지)에서 폭넓게 연주했다. 1960년에는 모스크바 음악원을 졸업했다. 1972년에는 스크리아빈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최초로 녹음(2000년 독일 음반사 텔로스에서 새로운 디지털 녹음으로 발매)했다. 이 녹음들은 상당한 주목을 받았으며 작곡가에 대한 해석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간주된다.

He was a pianist of profound insight, which was vividly conveyed by an enormous, seemingly infallible technical capacity. His authoritative recording of all ten Scriabin sonatas was the first complete recording to be made in Russia, and was issued in the composer's centenary year of 1972. It aroused great interest in the West, and has been reissued on CD.

그는 겉보기에 엄청나게 오류가 없는 기술적 능력으로 생생하게 전달되는 심오한 통찰력을 가진 피아니스트였다. 그의 스크리아빈 소나타 10곡에 대한 권위 있는 녹음은 러시아에서 최초로 전곡이 녹음된 것으로, 1972년 작곡가의 탄생 100주년에 발매되었다. 이 음반은 서방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CD로 재발매되었다.

Igor Zhukov, whose repertoire ranges from Jean Philippe Rameau to Alban Berg, made a splendid comeback at the Herkulessaal in Munich. In the Suddeutsche Zeitung, the recital was hailed as a 'miracle' (Klaus Bennert). Since then, Shokov has appeared as guest pianist at musical events in many well-known location.

장 필리프 라모에서 알반 베르크에 이르는 레퍼토리를 가진 이고르 주코프는 뮌헨의 헤라클레스 홀에서 화려하게 복귀했다. 쥐트도이체 차이퉁에서 이 리사이틀은 ‘기적’(클라우스 벤네르트)으로 표현되었다. 이후 주코프는 잘 알려진 여러 장소에서 음악 행사의 게스트 피아니스트로 출연해왔다.

Igor Shukov has also made a name as a conductor. The beginning of his conductor career is connected with the Chamber Orchestra of Ulyanovsk (1978-1983). He founded the New Moscow Chamber Orchestra in 1983 (after the former Moscow Chamber Orchestra, founded by Rudolf Barshai, was reassigned and renamed the State Academic Chamber Orchestra) and conducted it until 1994. He disbanded the orchestra that year in order to devote himself to the piano with renewed vigour. In the repertoire of the orchestra under the guidance of Zhukov was a wide range of music from different eras, from C.F.E. Bach to Stravinsky. From 2004 to 2008, he worked as the main conductor in the Nizhny Novgorod municipal chamber orchestra "Soloists of Nizhny Novgorod".

이고르 주코프는 지휘자로서도 유명해졌다. 그의 지휘자 경력의 시작은 1978~1983년 울리야노프스크 실내 오케스트라와 연결된다. 그는 (루돌프 바르샤이가 창설한 이전 모스크바 실내 오케스트라가 국립 아카데믹 실내 오케스트라로 변경되고 개명됨에 따라) 1983년에 뉴 모스크바 실내 오케스트라를 창단하여 1994년까지 지휘했다. 그는 그 해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어 피아노에 몰두하기 위해 오케스트라를 해산시켰다. 주코프의 지휘로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부터 스트라빈스키에 이르는 폭넓은 범위의 시대에 걸치는 음악이었다. 2004~2008년에는 니즈니노브고로드의 시립 실내 오케스트라인 “니즈니노브고로드 솔로이스츠”의 수석지휘자로 일했다.

As a human being Zhukov was warm, generous, hospitable and hugely enthusiastic and knowledgeable about all aspects of music. His enormous repertoire as pianist and conductor was predominantly Russian and German, but it is a testimony of his breadth of sympathies that he conducted moving and eloquent performances, with the Nizhny Novgorod Soloists, of works by Elgar and Britten.

인간으로서 주코프는 음악의 모든 면에 대해 따뜻하고, 관대하고, 친절하고, 열정적이며 지식이 풍부했다.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로서 그의 거대한 레퍼토리는 러시아와 독일 위주였지만, 엘가와 브리튼의 작품들을 니즈니 노브고르드 솔로이스츠와의 협연으로 감동적이고 인상적인 공연을 지휘했다는 것이 폭넓은 공감의 증거다.

Igor Zhukov was the pianist of the long-running Zhukov Piano Trio which was founded in 1963 and continued performing until 1980. (The other members were the violinist Grigory Feighin and cellist Valentin Feighin brothers.) The trio was noted for its "Historic Concerts" which featured repertoire spanning the 17th to the 20th centuries. Zhukov also proved to be an outstanding partner to the soprano Natalia Gerasimova in a disc of songs by Glinka and Rachmaninov.

이고르 주코프는 1963년에 창설되어 1980년까지 연주를 지속했던, 오래 계속되어 온 주코프 피아노 트리오의 피아니스트였다. (다른 멤버들로는 바이올리니스트 그리고리 페이긴과 첼리스트 발렌틴 페이긴 형제가 있었다.) 이 트리오는 17~20세기를 아우르는 레퍼토리를 특징으로 하는 “역사적인 협주곡들”로 유명했다. 주코프는 또한 글린카와 라흐마니노프의 가곡들을 녹음한 음반에서 소프라노 나탈리아 게라시모바의 뛰어난 파트너임을 입증했다.

Igor Zhukov also has a passionate interest in recording, and says of himself "I'm the best pianist among recording engineers, and the best recording engineer among pianists".

이고르 주코프는 녹음에도 열정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나는 레코딩 엔지니어들 중에서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피아니스트들 사이에서 최고의 레코딩 엔지니어”라고 말한다.

His last recording was released in 2017. He had little interest in foreign travel and none at all in personal image.

그의 마지막 음반은 2017년에 발매되었는데 차이코프스키 그랜드 소나타, 프로코피에프의 <덧없는 환영>, 베르크의 소나타가 수록되었다. 그는 해외여행에 대한 관심이 적었으며 개인적인 이미지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He died on 26 January 2018 in Moscow.

그는 2018년 1월 26일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러시안 피아노 스쿨 음반 내지에서 발췌
음악가들 중에는 그 끓어 넘치는 예술적 에너지를 여러 방향으로 발산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휘자 카라얀이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다는 사실이나, 작곡가로서 활동하려고 했던 호로비츠가 전업 피아니스트로 다시 성공하게 된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반면 천재적인 탤런트를 갖고 자기의 분야에 일가견을 이룬 사람이라도 여러 분야에 걸쳐서 성공하지는 못하는 사람도 있어서 흥미롭다. 요컨대 자신의 기질이 음악의 어떤 필드(장르)에 부합되는지를 찾는 것도 예술가로서의 완성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하겠으며 특히 러시아에서 이런 멀티플한 예술가가 역사적으로 많이 배출되었고 음악계의 분위기 또한 이런 활동을 자연스럽게 요구하는 것 같다. 예를 들자면 끝이 없지만, 이고르 주코프도 바로 그런 음악가 중 하나다. 피아니스트로 출발하여 편곡자, 심지어는 레코딩 엔지니어에 이르기까지 그의 활동은 매우 방대하다. 1955년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하여 처음에는 에밀 길렐스에게 배우다가 이듬해부터는 길렐스의 스승이었던 명교수 겐리흐 네이가우스를 사사했다. 1960년 음악원 졸업과 동시에 프랑스 롱-티보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하고 그 후 헝가리 등 유럽 각지에서 연주 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주코프는 독일에서 많은 인기를 얻은 피아니스트로, 지금까지 매년 방문하여 콘서트를 열고 있다.

주코프는 매우 냉철하고 지적인 이미지의 음악가이다. 매년 새로운 레퍼토리를 개발하여 음악 애호가들은 그의 프로그램만 매번 듣는다고 해도 새로운 음악적 정보와 함께 충분한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작은 소품이라고 하더라도 오랜 시간의 분석과 실험을 통하여 확신을 가지고 연주에 임하며 그것이 자기 안에서 논리적인 절대성과 합리성을 띠는 곡만을 무대 위에 올릴 정도로 완벽주의자이다. 때로는 오만해보일 정도로 자신감에 찬 그의 작품 해석은 그래서 “지성 제일주의”라는 오해를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연주에서 유연하지 못하다든지 차갑다든지 하는 느낌을 별로 받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네이가우스의 가르침을 받은 최후의 한 사람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네이가우스는 각자의 숨어있는 영감을 끌어내어 그것을 구체화시키는 교육방법을 택했기 때문에, 제자들 사이의 공통점을 찾는 것이 무척 어려울 정도로 그 개성이 뚜렷한 피아니스트들을 배출해냈지만 그래도 그들의 “혈액형”은 같다고 할 수 있다. 네이가우스의 “학생”들에게는 그들만의 “멋”이 있는데 그것은 너무나도 “절절한 리리시즘”이다. 주코프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의 연주에서 느껴지는 또박또박한 억양과 함께, 이런 멋들어진 로맨틱한 표정들이 곳곳에서 완충작용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상대적인 기질을 가진 스승과 제자가 만나서 가장 최대의 교육효과를 낳는, 합리적인 러시아 음악 교육의 승리라고 보겠다.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주코프는 지휘자로서, 또한 실내악 연주자로서도 제일급이다. 모스크바 챔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최근에는 그의 이름을 지휘자의 자리에서 찾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게 되었다. 또 러시아의 음악 명문가 중 하나인 페이긴 형제와 함께 한 피아노 트리오는 17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모든 트리오 문헌을 망라하는 “히스토리컬 콘서트” 시리즈로 유명하다. 그리고 사운드 엔지니어로서의 활동은 그의 분석적이고 합리주의를 추구하는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 것으로, 나름대로 일가견을 얻고 있다. 최근 주코프는 지휘 활동에서 손을 떼고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의 비중을 높이려는 것 같다. 자신은 휴식을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는데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그 말이 사실이었으면 한다. 왜냐하면 그는 단순히 피아노를 치는 것만이 의미가 있는 음악가가 아닌 전 방위적 예술가이며, 또 그런 점이 전체 음악계나 주코프 자신을 위해서도 옳은 일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The Multiple Talents of Igor Mikhailovich Zhukov (born 1936) / 이고르 미하일로비치 주코프의 다재다능함
Igor Zhukov is a veritable jack-of-all-trades - pianist, arranger, conductor and recording engineer, in short, the very man that we need today, a latter-day Liszt, a new type of musician, a man, in fine, whose playing is not just technically flawless but inspired by heart and brain.

이고르 주코프는 팔방미인으로 피아니스트, 편곡자, 지휘자, 레코딩 엔지니어인데,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오늘날 필요로 하는 현대판 리스트, 새로운 유형의 음악가, 기술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심장과 두뇌에서 영감을 받는 연주를 하는 훌륭한 사람이다.

Student Ambitions / 포부를 가진 학생
Zhukov was born in the ancient Russian city of Nizhny-Novgorod in 1936, but by 1937 his family had already moved to Moscow. Four years later they were evacuated to Vyatka (then known as Kirov) - even in Soviet Russia there was no avoiding the Second World War. The family returned to Moscow in time to supervise the young Igor's professional training. He completed his studies at the Conservatory's School of Music 1951, and in 1955 enrolled at the Conservatory proper, first with Emil Gilels, then, in 1956, with Heinrich Neuhaus. By the time that be graduated in 1960 at the age of twenty-four he had already won his first foreign spurs in the form of a second prize at the Long-Thibaud Piano Competition in Paris. He undertook his first foreign tour - to Hungary - in 1960 and was soon appearing on three continents, in which respect his career progressed far more smoothly than that of many of his elders. He has been a particularly frequent visitor to Germany, where he performed annually between 1981 and 1995.

주코프는 1936년 러시아의 오래된 도시들 중 하나인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태어났지만, 1937년 그의 가족은 이미 모스크바로 옮겼다. 4년 후 그들은 비아트카(나중에 키로프로 개칭)로 대피했다. - 소비에트 러시아에서조차 2차 세계대전을 피할 수 없었다. 가족은 장래에 어린 이고르의 전문적인 훈련을 감독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그는 1951년 모스크바 음악원 부속 중앙음악학교에서 공부를 마쳤고 1955년에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하여 처음에는 에밀 길렐스에게 배우다가 1956년에는 하인리히 네이가우스에게 배웠다. 1960년 24세에 음악원 졸업과 동시에 파리에서 열린 롱-티보 국제음악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하고 그 후 헝가리 등 유럽 각지에서 연주 활동을 시작했으며 곧 대다수의 그의 선배들보다 훨씬 더 진보된 그의 경력을 존중하는 세 개의 대륙에 등장하고 있었다. 그는 특히 독일을 자주 방문하는데, 1981~1995년 동안 매년 방문하여 콘서트를 열었다.

Conductor, Chamber Musician and Sound Engineer / 지휘자, 실내악 연주자 그리고 사운드 엔지니어
Igor Zhukov has toured not only as a pianist, but also as conductor of his own Moscow Chamber Orchestra. In both capacities he is now so well known that it would be otiose to list all the countries where he has appeared. As a pianist he bears all the hallmarks of a Neuhaus pupil, but has none the less gone his own way, so that it is impossible to pigeonhole him as a performer. His repertory as a pianist extends Classical composers to 19th-century Romanticism and the Russian school of Tchaikovsky and Rachmaninov, while the scores that he has conducted with the Moscow Chamber Orchestra range from the Baroque to Respighi, Stravinsky and present-day Russian composers. He has also been active as a chamber musician. For seventeen years from 1963 to 1980 the Zhukov Piano Trio was something of an institution in the Soviet Union with its "Historic Concerts" of works from the 17th to the 20th centuries. (Its other members were Grigory and Valentin Feighin.) Zhukov is also a committed and sympathetic vocal accompanist, and has further made a name for himself as an editor and arranger with his own version of Bach's perennially challenging "Musical Offering", which he has also recorded. His discography as a pianist and harpsichordist currently runs to more than forty recordings, in three of which he additionally appears as conductor.

이고르 주코프는 피아니스트로서 뿐만 아니라 그가 이끄는 모스크바 실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서 여행하기도 한다. 두 역량 모두에서 그는 자신이 출현한 모든 국가를 열거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피아니스트로서 그는 네이가우스 제자의 모든 특징을 지니고 있지만, 그 자신의 길을 간 적은 없기 때문에, 그를 연주자로서 분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피아니스트로서 그의 레퍼토리는 고전파 작곡가들부터 19세기 낭만파, 차이코프스키와 라흐마니노프의 러시아 악파까지 확장시킨 반면, 그가 모스크바 실내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던 총보들의 범위는 바로크부터 레스피기, 스트라빈스키, 오늘날의 러시아 작곡가들에 이른다. 그는 실내악 연주자로서도 적극적이었다. 1963년부터 1980년까지 17년 동안 주코프 피아노 트리오는 17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모든 트리오 문헌을 망라하는 “히스토리컬 콘서트” 시리즈로 유명했다. (다른 멤버들로는 그리고리와 발렌틴 페이긴 형제가 있다.) 주코프는 헌신적이고 공감되는 성악 반주자이기도 했으며, 그가 녹음하기도 했던 바흐의 지속적으로 도전적인 <음악의 헌정>의 편집자이자 편곡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의 피아니스트와 하프시코드 연주자로서의 음반은 현재 40장 이상인데, 그 중 그가 지휘자로 나오는 것은 세 장이다.

But it is not only as a pianist and conductor that Igor Zhukov is active in the recording studio. Inquisitive by nature, he has always been at the forefront of developments in studio technology, casting aside his role as performing artist and donning the mantle of expert assistant to one or other of his colleagues. He himself expresses it with disarming candour: "I'm the best pianist among recording engineers, and the best recording engineer among pianist." He gave up conducting in 1994 - it was time, he felt, for a rest - and in 1995 was feted at a benefit concert in his honour in Sochi, when a number of young Russian composers performed works written specially for the occasion.

그러나 이고르 주코프가 녹음 스튜디오에서 활동하는 것은 피아니스트와 지휘자로서일 뿐만이 아니었다. 본래 호기심이 많은 그는 공연 예술가로서의 역할을 제쳐두고 그의 동료의 전문가 조수의 역할을 맡으면서 항상 스튜디오 기술 발전의 선두에 있었다. 그 자신은 그것을 상대방을 무장 해제시키는 솔직함으로 표현한다. - “나는 레코딩 엔지니어들 중에서 최고의 피아니스트이고, 피아니스트들 사이에서 최고의 레코딩 엔지니어이다.” 그는 1994년에 지휘를 포기했다. - 휴식을 위해서였다. - 그리고 1995년에 소치에서 그를 주빈으로 한 자선 콘서트가 열렸는데, 많은 젊은 러시아 작곡가들이 이 행사를 위해 특별히 만든 작품들을 연주했다.




Wigmore Recital Review on the Independent by Adrian Jack (26 June 1997) / 위그모어 홀 리사이틀 리뷰 - 1997년 6월 26일 인디펜던트지에서 에이드리언 잭의 리뷰
Martin Roscoe called his three recitals featuring the music of Szymanowski "Szymanowski, the Polish Impressionist". That was convenient, because he put Szymanowski with Debussy. But then he also played Chopin, whom nobody has yet called a proto-Impressionist. None of the Szymanowski works that Roscoe played in his final recital on Friday 13th suggested the Impressionist label. The two-movement Second Sonata of 1911 exemplifies a post-Romantic crisis of overblown gestures in decadent harmonies approaching atonality. Szymanowski survived the crisis, constructing a personal style without any loss of richness but a tremendous gain in clarity and subtlety, as shown by the Mazurkas, Op 50, written in the mid-1920s, which began Roscoe's programme. Not only did he play these as to the manner born, he also gave a forthright account of Chopin's Barcarolle, sensitive performances of Chopin's Op 59 Mazurkas and a well-shaped one of the epic fourth Ballade. The series has been a noble undertaking and Roscoe is not only an exceedingly reliable and consistent pianist, he is also irrepressible. But some of his most enjoyable playing has been of Debussy and, on this final night, he evoked all the sensuousness and orchestral depth you could expect in four from the second book of Preludes.

마틴 로스코는 시마노프스키의 음악을 연주하는 3편의 리사이틀을 <시마노프스키, 폴란드 인상주의자>로 불렀다. 그가 드뷔시와 함께 시마노프스키를 넣었기 때문에 편했다. 그러나 그는 쇼팽도 이어서 연주했는데 쇼팽은 아직 원시 인상주의자라고 불렀다. 로스코가 13일 금요일에 마지막 리사이틀에서 연주한 시마노프스키의 작품들 중에서 인상주의자 꼬리표를 제안한 것은 없었다. 1911년에 작곡된 2악장 구성의 소나타 2번은 무조주의에 접근하는 퇴폐적인 화성들에서 과도한 제스처의 후기 낭만주의의 위기를 보여준다. 시마노프스키는 풍부함을 잃지 않고 개성적인 스타일을 구축하면서 위기를 넘겼지만, 로스코의 프로그램을 시작한 1920년대 중반에 쓰인 마주르카 작품 50에 나타난 것처럼, 맑은 음과 섬세함에 엄청난 이득을 얻었다. 그는 타고난 것처럼 연주했을 뿐만 아니라 쇼팽 뱃노래에 대한 솔직 담백한 연주, 쇼팽 마주르카 작품 59의 민감한 연주, 서사적인 발라드 4번의 균형 잡힌 연주를 선사했다. 이 시리즈는 고귀한 프로젝트였으며 로스코는 믿을 수 있는 꾸준한 피아니스트일 뿐만 아니라 활력이 넘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가장 즐거운 연주는 드뷔시가 맡았으며, 이 마지막 밤에 그는 드뷔시 전주곡 2권 중 4개의 곡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감각과 오케스트라적인 깊이를 불러일으켰다.

Igor Zhukov has waited a long time to give his first recital in London, which he did at the Wigmore Hall on Wednesday. Now in his early sixties, Zhukov spent several years conducting and running the New Moscow Chamber Orchestra, which he has now disbanded. He seemed extremely relaxed, aiming at breadth and smoothness, with an almost languid approach to rhythm in energetic movements. At times, he tended to over-pedal, and ran movements together without breaks.

이고르 주코프는 수요일에 런던 위그모어 홀에서 런던 데뷔 리사이틀을 가지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이제 60대 초반인 주코프는 뉴 모스크바 실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운영하는데 수년을 보냈다. 그는 정력적인 움직임의 리듬에 대해 거의 나른한 접근 방식과 함께, 폭넓고 부드러움을 목표로 하면서 극도로 편한 것처럼 보였다. 때때로 그는 페달을 과도하게 밟는 경향이 있었으며, 휴식을 취하지 않고 악장들을 진행했다.

The most rewarding performances were of Scriabin's Second and Third Sonatas, in which Zhukov's penchant for floating sounds in a sonorous haze seemed more idiomatic. In the Third Sonata, the way he made the middle of the second movement into an intangible, luminous vision was extraordinarily imaginative, altogether transcending Scriabin's notation.

가장 가치 있는 연주는 스크리아빈 소나타 2번과 3번이었는데, 주코프의 낭랑한 안개 속에 떠 있는 소리에 대한 애호가 더 자연스러워보였다. 3번 소나타에서 그가 2악장 중간부를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환영으로 만들었던 방식은 스크리아빈이 악보에 표기한 것을 완전히 뛰어넘으면서 극도로 상상력이 풍부했다.


이 프로필을 전에 썼다가 다시 올린 이유는, 요즘에 주코프의 음반을 몇 장 구매했는데 구글에서 주코프에 대해서 찾다가 부고를 알았기 때문이다. 주코프는 우리나라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연주자인데, 그런 연주자들은 내한하여 연주한 적이 없거나 음반으로 알게 된 경우가 많다. 그런 연주자들을 알아나가는 건 지금껏 음반을 들으면서 꾸준히 해온 것들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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