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17일 화요일

Telos Music / Igor Shukow Edition Vol. 1 Scriabin 10 Piano Sonatas & Fantasy 1999


이고르 주코프 에디션 1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대표적인 러시안 피아노 작품 연주가로 사랑받고 있는 이고르 주코프 에디션이다. 스크리아빈의 10개의 소나타 전곡 녹음을 처음 시도했던 연주자가 주코프이었기에 이 음반이 갖는 의의는 더 크다. 로맨티시즘이 느껴지는 초기의 곡부터 후기의 신비주의까지 스크리아빈의 음악적 변화와 그의 특유의 신비하고 웅장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있는데, 주코프의 노련미와 깔끔한 테크닉으로 더욱 빛을 발한다.

러시아 명 피아니스트 이고르 주코프가 35세 때인 1971년 멜로디아 레이블에서 녹음한 스크리아빈 전집 앨범. 네이가우스에게 사사받은 주코프는 타고난 냉철한 품성과 네이가우스적인 낭만적인 성향이 이상적 조화를 이루고 있다. 스크리아빈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를 최초로 시도한 피아니스트로, 본 녹음 이후 28년이 지난 63세에 Telos 레이블에서 또 한 번의 전곡 레코딩에 도전하였다. 하지만 짧지 않은 시차를 지닌 이 두 개의 연주는 전혀 다른 감각과 템포의 연주로 큰 차이를 보인다. 인상적인 다이내미즘을 보여주는 날카로운 피아니즘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멜로디아 레코딩.

CD1
01 Sonata Nr. 1, Op. 6: I. Allegro con fuoco / 소나타 1번
02 Sonata Nr. 1, Op. 6: II. (ohne Bezeichnung)
03 Sonata Nr. 1, Op. 6: III. Presto
04 Sonata Nr. 1, Op. 6: IV. Funebre
05 Sonata-Fantasy Nr. 2, Op. 19: I. Andante / 소나타 2번 <환상 소나타>
06 Sonata-Fantasy Nr. 2, Op. 19: II. Presto
07 Sonata Nr. 3, Op. 23: I. Drammatico / 소나타 3번
08 Sonata Nr. 3, Op. 23: II. Allegretto
09 Sonata Nr. 3, Op. 23: III. Andante
10 Sonata Nr. 3, Op. 23: IV. Presto con fuoco

CD2
01 Fantaisie, Op. 28: Moderato / 환상곡
02 Sonate Nr. 4, Op. 30: I. Andante / 소나타 4번
03 Sonate Nr. 4, Op. 30: II. Prestissimo volando
04 Soante Nr. 5, Op. 53: Allegro impetuoso con stravaganza / 소나타 5번
05 Sonate Nr. 6, Op. 62: Modere / 소나타 6번

CD3
01 Sonata Nr. 7, Op. 64 'While Mass': Allegro / 소나타 7번 백미사
02 Sonata Nr. 9, Op. 68 'Black Mass': Moderato quasi andante / 소나타 9번 흑미사
03 Sonata Nr. 10, Op. 70 'Trill': Moderato / 소나타 10번 트릴
04 Sonata Nr. 8, Op. 66: Lento - Allegro agitato / 소나타 8번

The Piano Sonatas of Alexander Scriabin - An Introduction by Igor Shukov / 알렉산더 스크리아빈의 피아노 소나타에 대하여 - 이고르 주코프의 소개
You will hear in this recital the piano music of Alexander Scriabin: his ten Sonatas and the B minor Fantasia, all of them works on a large scale. They not only denote significant stages in the composer's creative development, but also serve figuratively as the bricks from which the mysterious and majestic Temple of Scriabin, that singular structure in the musical culture of the world, is built.

이 리사이틀에서 모두 대규모인 알렉산더 스크리아빈의 소나타 10곡과 환상곡을 들을 텐데요. 작곡가의 창의적인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단계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세계의 음악 문화에서 유일한 구조인 스크리아빈의 신비하고 장엄한 사원이 세워진 벽돌로도 상징적으로 제공합니다.

I want to make it clear that it is not my intention to set Scriabin against any other style or school of composition. He does not edge out anyone, nor does he elevate himself over others, although his high place in the panorama of world music is assured. It is not possible to look at his works through the refracting prism of analogies, for he followed no one, and left none to follow him. Within the brief 25 years constituting the creative part of his life, he evolved, as it were, a fantastic spiral whose first whorl was rooted in the late romantic period, but whose last whorl already reached out to contemporary musical idiom and ideology. His artistic development was unusually stormy and meteoric. It was so to speak a genuine product of Russia, obviously derived from the turbulent land that was Russia at the end of the nineteenth and the beginning of the twentieth century.

스크리아빈을 다른 스타일 또는 작곡 스쿨과 비교하는 것이 제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그는 세계 음악계에서 높은 위치가 보장되어 있지만, 자신을 돋보이게 하거나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을 높이지 않습니다. 비유의 굴절 프리즘을 통해 그의 작품을 볼 수는 없는데, 왜냐 하면 그는 아무도 따라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의 인생에서 창조적인 부분을 구성하는 약 25년 동안, 그는 말하자면, 첫 소용돌이가 후기 낭만파시기에 뿌리내렸지만 마지막 소용돌이가 이미 현대음악의 작풍과 이데올로기에 도달한 환상적인 소용돌이로 진화했습니다. 그의 예술적인 발전은 평소와 달리 폭풍우와 유성 같았죠. 말하자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러시아라는 혼란스러운 땅에서 나온, 러시아의 진정한 성과였죠.

There is, unfortunately, a whole series of theoretical studies purporting to prove that the source of the Scriabin phenomenon is to be traced to the musical models set by three great Europeans: Chopin, Liszt and Wagner. By accepting this thesis, however, one makes a major mistake at one by concentrating on superficial features, and missing those most important ones which predetermine the greatness and problematic inaccessibility of Scriabin's work.

불행히도, 스크리아빈 현상의 근원이 세 명의 위대한 유럽 작곡가인 쇼팽, 리스트, 바그너가 설정한 음악 모델에 의해 추적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일련의 이론적 연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논문을 받아들이면, 피상적인 기능들에 집중하고 스크리아빈의 작품의 위대함과 문제가 있는 접근 가능성을 미리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것들을 놓치며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고 맙니다.

Scriabin totally rejected such theories. He was one asked, 'Would you say that you are a Wagnerian?', and he replied, 'No, I am a Scriabinist!' Naturally it would not make sense to assert that Scriabin developed entirely independently, in a vacuum as it were. On the contrary: there were already preparations for the appearance of such a star in the firmament of world music. And they were even more extensive than is sometimes recognized. Scriabin's appearance coincided not only with the rise of European and Russian music, but also - and this is most significant - with a great wavelike surge in modes of thought.

스크리아빈은 그러한 이론을 완전히 거부했습니다. 그는 ‘당신은 바그너풍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고, 그는 ‘아뇨, 저는 스크리아빈풍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말하자면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당연히 스크리아빈이 완전히 독립적으로 발전시켰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반대로, 이미 세계 음악의 창공에 그런 별이 등장하기 위한 준비는 있었죠. 그리고 그들은 때로는 인정받는 것보다 훨씬 더 폭넓었습니다. 스크리아빈의 등장은 유럽과 러시아 음악의 부상뿐만 아니라, 사고방식에서 큰 파도 소리와 함께 가장 중요하기도 하죠.

It is known that Scriabin completed the course in the Moscow Conservatory only in the subject of piano. His leanings towards creative independence, and freedom, manifested themselves very early. They got in the way of his completing the study of composition. These characteristics annoyed and irritated his teachers, Taneyev at first and then also Arensky. The result was his departure from the composition class. His great emotionalism, his sharp reaction to sociopolitical happenings, his thirst for knowledge - none of rigorous instruction in composition. Scriabin strove nevertheless to grasp the foundations and goals of artistic creativity.

스크리아빈은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피아노 과정만 수료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창의적인 독립과 자유에 대한 그의 관심은 매우 일찍 나타났죠. 그들은 작곡 공부를 끝내는 길에 들어섰습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그의 스승들인 타네예프가 처음에, 아렌스키가 다음으로 화를 냈죠. 그 결과 그는 작곡과를 떠났죠. 그의 위대한 감성주의, 사회-정치적인 사건에 대한 날카로운 반응, 지식에 대한 갈망 등 작품에서는 엄격한 지시가 없었습니다. 스크리아빈은 그럼에도 예술적 창의성의 토대와 목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The Sonata No. 1, Op. 6, which appeared in 1892, reflects already a serious crisis in the composer's life. Scriabin wrote, 'At age twenty, an advanced state of illness in the hands. The first important event in my life: fate is the barrier to reaching the longed-for-goals-lustre and fame. The doctors think that the illness cannot be got over. The first failure of my life. The first earnest reflections. The beginning of analysis...most gloomy mood. The first indignation about Fate and God. Compose the first Sonata, with funeral march.' Thus was the problematic status of the genre of sonata among Scriabin's works defined: the Sonata would be the bearer, the representative, of the composer's quest after a philosophy of life.

1892년에 등장한 소나타 1번은 이미 작곡가의 인생에서의 심각한 위기를 반영합니다. 스크리아빈은 다음과 같이 썼죠. - ‘20세에 손에 있는 병이 진전된 상태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사건인 운명은 빛을 목표로 하는 갈망과 명성에 도달하는 장벽이다. 의사들은 그 병이 끝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의 첫 번째 실패였다. 첫 번째 진지한 반성이었다. 분석의 시작...가장 우울한 분위기였다. 운명과 신에 대한 첫 번째 분노였다. 장송 행진곡이 있는 첫 번째 소나타를 작곡하라.’ 따라서 스크리아빈의 작품들 사이에서 소나타 장르에 대한 문제가 많은 상태가 정의되었죠. - 소나타는 인생철학 이후 작곡가의 탐구의 전달자, 대표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When one hears the Sonata No. 10, Op. 70 (1913) after the first Sonata, one becomes aware of the whole sublime evolution of Scriabin's compositional and philosophical way of thinking. This however is not the end of the evolutionary process, but rather the next whorl of the evolutionary spiral. Thanks to his fantasy, the composer had penetrated distant worlds and touched many cosmic mysteries. Now he turns again to his immediate surroundings, and rapturously observes the beauty and perfection of the world. Scriabin wrote, 'It is the forest! Sounds and moods of the forest... Has there been something like that with me before?... This Sonata, it will be light and joyous, worldly; and yet there is also this, namely the disintegration, the destruction of the physical.' One can assess the tenth Sonata as a striking example of a tone painting. Here dominates a plenitude of colours, of living colours which are reflected in their own light, from the most sombre to the dazzlingly brilliant...

첫 번째 소나타를 들은 다음에 소나타 10번(1913)을 들을 때, 스크리아빈의 작품에 대한 전체적인 절묘한 진화와 철학적인 사고방식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화 과정의 끝이 아니라 진화의 소용돌이의 다음 소용돌이죠. 그의 환상곡 덕분에 작곡가는 먼 세계를 관통하고 많은 우주의 신비를 다루었습니다. 이제 그는 그의 주변 환경으로 다시 돌아와서 열정적으로 세상의 아름다움과 완벽함을 관찰합니다. 스크리아빈은 다음과 같이 썼죠. ‘숲이다! 숲의 소리와 분위기... 전에 나와 함께 했던 비슷한 것이 있었나?... 이 소나타는 세속적으로 가볍고 즐겁게 될 것이며 이것도 있는데, 다시 말해 붕괴, 육체의 파괴이다.’ 열 번째 소나타를 음화(音畵 : 표제 음악에서 가사나 이야기를 음악적으로 묘사하는 일)의 놀라운 예라고 평가할 수 있죠. 여기에 가장 어둠침침한 것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것에 이르기까지 그것들의 빛에 반영되는 살아있는 색상, 다양한 색채가 지배적입니다.

It is obvious that the basic condition to be met by a thoughtful artist, if his engagement is genuine, is a clear definition of his attitude towards his environment, and of his own position in it. What every philosophy of life finds at this starting point, appears in the case of Scriabin to be unusual and idiosyncratic. If one were to ask him, 'What is primary in the world, spirit of matter?', then his answer surely would be, 'Neither the one nor the other. What is primary is creative work! There is certainly nothing spiritual in the world which does not also have a material aspect, and nothing material which does not generate thoughts. Thus spirit and matter are none other than constituent parts of a sublime happening: creation.'

사려 깊은 예술가가 만날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은 그의 참여가 진정한 것이라면 자신의 환경에 대한 태도와 자신의 입장에 대한 명확한 정의입니다. 이 출발점에서 인생의 모든 철학이 발견한 것은 스크리아빈의 경우 색다른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에게 ‘세계에서 주요한, 문제의 정신이란 무엇일까?’라고 묻는다면, 그의 대답은 분명히 ‘어느 쪽도 아니다’일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창조적인 작품이죠! 물론 세상에는 물질적인 측면도 없고 사고를 발생시키지 않는 물질이 전혀 없는 영적인 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정신과 물질은 창조에 대한 절묘한 일의 구성 요소 중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It is apparent that Scriabin meant by the term 'creation' not just that which results in art, for he was convinced that each and every person must be creative. What then must a person have in order to be creative? 1) An unremitting desire! Desire is at the core of creativity. Scriabin said, 'Desire is my element, my fortune.' 2) An unlimited capacity for enthusiasm, for fantasy. Scriabin thought that it was through fantasy that a person gains all that is new and good. 3) A purpose, a determination, that always stays with the person, so that the fantasy is not in a vacuum. The person must continually advance and enrich this purpose.

스크리아빈은 ‘창조’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결과 예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는 것이 분명한데, 그는 모든 사람이 창조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죠. 창조적인 면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가져야 할까요?
1) 끊이지 않는 욕망! 욕망은 창의력의 핵심입니다. 스크리아빈은 다음과 같이 말했죠. ‘욕망은 나의 요소, 나의 행운이다.’
2) 환상에 대한, 열정에 대한 무한한 능력. 스크리아빈은 사람이 새롭고 좋은 것을 모두 얻는 것이 환상을 통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3) 환상이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 있지 않도록 항상 사람과 함께하는 목적, 결단력. 사람은 계속해서 이 목적을 발전시키고 풍성하게 해야 합니다.

In my opinion, the third, sixth, and fifth Sonatas, in that order, serve as a compelling illustration of the Scriabin Triad. The intentional departure above from the chronological sequence supports an emphasis on the sustained unify of the composer's conception of life. The youthful Scriabin wrote in one of his letters, '...a person can raise his head with pride and say, "I have conquered you! I have transformed impenetrable virgin forests and rocky slopes into luxuriant parks... I have tamed you, and make you my servant. My determination and my reason rule all that surrounds me."'

제 생각에 3번, 6번, 5번 소나타가 그 순서대로 스크리아빈 3화음의 강렬한 예시로 작용합니다. 연대순으로 위의 의도적인 출발은 작곡가의 인생의 개념에 대한 지속적인 통합을 강조합니다. 젊은 시절의 스크리아빈은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 사람이 자랑스럽게 고개를 들고 “나는 너를 정복했노라! 나는 뚫을 수 없는 원시림과 바위가 많은 경사면을 울창한 공원으로 변형시켰노라... 나는 너희들을 길들여 나의 종으로 삼았도다. 나의 결심과 나의 이성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지배하노라.”’

In the Sonata No. 3, Op. 23 (1897/1898) one finds, 'The free and wild soul tumbles passionately into the chasm of sorrow and struggle.' One can say that Scriabin's hero has only just begun to understand the world. Although still immature, he is already capable of enthusiasm and effort. Scriabin writes for the finale of the Sonata. 'The soul gets carried away in the exhilaration of the struggle. Out of the depths of existence, the creative person's threatening voice raises itself, his victorious singing sounds triumphant! But too frail to reach the summit, he collapses into the abyss of nothingness, momentarily defeated.'

소나타 3번(1897/1898)에서는 ‘자유롭고 거친 영혼이 열렬히 슬픔과 투쟁의 틈으로 쓰러진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스크리아빈의 영웅이 세계를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직 성숙하지 않지만, 그는 이미 열정과 노력이 가능합니다. 스크리아빈은 소나타 3번의 피날레인 4악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씁니다. ‘영혼은 투쟁의 흥분 속에서 날아간다. 존재의 깊이에서, 창조적인 사람의 위협적인 목소리가 상승하고 승리로 끝나는 노래가 승리로 빛난다! 그러나 정상에 도달하기에는 너무 약하므로, 그는 무의식의 심연으로 무너지고 순간적으로 패배했다.’

The Sonata No. 6, Op. 62 (1911) is a picture of petrified gloom. The composer, thanks to his fantasy, receives an insight into the vast unknown world. This very inhuman world conceals within it an appreciable amount of disfigurement and ugly movement, but it also has cells of increasing beauty. These exist, for the time being, following their own laws, which are known only to them.

소나타 6번(1911)은 겁에 질린 어둠에 대한 그림입니다. 작곡가는 그의 환상 덕분에 광대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통찰력을 얻습니다. 이 매우 비인간적인 세계는 상당량의 외모 손상과 험악한 악장을 숨기지만, 아름다움을 키우는 세포들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당분간 그들만이 알고 있는 그들만의 법칙에 따라 존재합니다.

The Sonata No. 5, Op. 53 (1907) is introduced with the following verse written by Scriabin:
I call you to life,
O latent endeavours!
Sunk in the dark depths of creative spirit,
Fearful germs of life, I bring you courage!

소나타 5번(1907)은 스크리아빈의 자작시 일부가 인용됩니다.
창조의지의 저 깊고 어두운 곳에 불타고 있는 신비로운 힘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생명을 주노라.
아직 신비로운 인생의 그림자들이여,
그대들에게 용기를 주고자 하노니!

The work was composed in a few days, after the Poem of Ecstasy. It is the quintessence of Scriabin's creative philosophy: desire, dream, and determination fuse together into a unity, thoughts materialize, matter becomes spirit. And the course of creation is endless, just as the world is without end. Taneyev's remark, 'just consider this, that this music does not end, it just breaks off,' is well known. One can say that Taneyev has therein stated clearly the essence of the fifth Sonata: the flow of creativity cannot be stopped, it can only be interrupted. Even so ends the Sonata like a foolhardy escape to the limitless. The flight from petrified gloom to bright transparence continues.

이 작품은 <법열의 시> 이후에 며칠 만에 작곡되었습니다. 스크리아빈의 창조 철학의 본질인 욕망, 꿈, 결단력이 하나로 결합되어 사고가 구체화되고 물질이 정신이 되죠. 그리고 물론 세상이 끝이 없는 것처럼 창조의 과정은 끝이 없습니다. 타네예프의 발언은 ‘이것을 이 음악이 끝나지 않고 그냥 끊어지는 것이라고 단지 고려해보라’는 것이라고 잘 알려져 있습니다. 타네예프가 5번 소나타의 본질을 그 안에 나타낸다고 할 수 있는데, 창의력의 흐름을 멈추게 할 수는 없으며, 단지 중단될 수는 있습니다. 심지어는 무한대로의 무모한 탈출처럼 그렇게 소나타가 끝나죠. 겁에 질린 어둠부터 밝은 색채로의 비행이 계속됩니다.

There was already mention of the feeling for nature that had developed early in Scriabin. It was just this sensitivity and precision of perception which provides the fertile soil in which his life was planted and grew. The fact that the boy Scriabin grew up in his aunt's family played a notable role in this, because he thereby got to know in full measure the beauty of Russian folk tales. And he embraced nature as a magical chorus, as something full of mystery, enticing, and unique. He described a trip on the Volga as follows: 'Something happened yesterday in nature that was special and barely noticeable. It had the mark of an enchanting, inexplicable mood.' And this was no mere youthful rapture. It was rather an effort to consider, to generalize. Reading further, we find, 'It seems as if every blade of grass, every flower, begins to grasp the meaning of being. You humans are blessed with life, but you should not believe that the world was intended for you. The world was already there long before you, and the time will come when you are no more, but the world will still be there!' The sources are thus clear, for Scriabin's later theory about the merging together of nature and humanity. This idea is strikingly manifest in the tenth Sonata. For the time being, however, the young Scriabin developed a great sensitivity to the multicoloured visual impressions which often contain a musical reality.

스크리아빈의 작품에서 초기에 발전시켰던 자연에 대한 느낌을 이미 언급했는데요. 그의 인생이 심어지고 자라나는 비옥한 토양을 제공하는 것은 바로 이 예민함과 지각의 정확성이었죠. 이 소년 시절의 스크리아빈이 숙모의 가족에게서 키워졌다는 사실은 이 점에서 주목할 만한 역할을 했는데, 그것 때문에 그가 러시아 설화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알게 되었죠. 그리고 그는 자연을 마법의 합창으로, 신비감과 유혹과 독특함으로 가득 채웠죠. 그는 볼가 여행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 ‘어제 자연에서 특별하고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일어났다. 그것은 매혹적이고 영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젊은이 특유의 황홀감이 아니었죠. 일반화하기 위해 오히려 고려해야 할 노력이었죠. 더 읽을 수 있듯이, 우리는 ‘모든 풀잎, 모든 꽃이 존재의 의미를 파악하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너희 인간들은 생명으로 축복받았지만, 세상이 너를 향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세상은 이미 너보다 오래 있었고, 이제는 더 이상 없을 때가 올 것이나, 세상은 여전히 거기에 있게 될 것이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근원은 이렇게 자연과 인류의 합류에 관하여 스크리아빈의 이후의 이론을 위해 명확합니다. 이 아이디어는 소나타 10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당분간 젊은 시절의 스크리아빈은 종종 음악적인 현실을 포함하는 여러 가지 색상의 시각적 인상에 큰 예술적 감성을 발전시키게 되었습니다.

Thus the Sonata No. 2, Op. 19 (1892-1897), also known as the Fantasy - or Sea-Sonata appeared. The first part of the work was composed in Genoa, and the second part in the Crimea. It took such a long time to complete because it was during this period that the process through which Scriabin composed was taking its final shape. In connection with this, he wrote in a letter, 'When what I am composing finally becomes quite clear to me, I can not stop working on it. But if I have any grounds whatever for further thought, then I cannot write further, because what is to follow depends on what has gone before. Of course one can force oneself, but that is not pleasant.' It should also be mentioned that Scriabin totally reworked the already completed second Sonata.

따라서 소나타 2번(1892-1897)은 환상곡 또는 바다 소나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작품의 첫 번째 부분은 제노바에서, 두 번째 부분은 크림 반도에서 작곡되었습니다. 이 시기 동안 스크리아빈의 작곡 과정이 최종 형태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완성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내가 작곡하는 것이 마침내 내게 분명해지면 나는 그것에 공들이는 것을 멈출 수 없다. 그러나 내가 더 깊은 생각을 하기 위해 어떤 근거라도 가지고 있다면, 이어지는 것이 이전에 있었던 것에 달려있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쓸 수 없다. 물론 자신을 강요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즐겁지 않다.’ 스크리아빈이 이미 완성된 두 번째 소나타를 완전히 수정했다는 것도 언급되어야 합니다.

Scriabin was enchanted by his first encounter with the sea, and was captivated by the pictures of its many aspects: 'I like the sea so much, and am drawn to it! There is its freedom, quite apart from its infinite colours and shapes.' He described with exuberance how the sunrise looked: 'The sun was at first crimson, then pink, and finally a silvery brilliance flooded over the water's surface; the green of the sea water blended with the blue of the reflected sky, and the sun scattered its golden rays over the rising wave crests. It was a play of colours and shadows, a celebration of light, a triumph of truth. The sea sparkled, the air was radiant, the magic of the day filled the whole world.'

스크리아빈은 바다와의 첫 만남에 매혹되어 여러 측면의 그림들에 사로잡혔죠. - ‘나는 바다가 매우 좋은데, 그것에 끌린다! 무한한 색채와 형태를 제외하고는 자유가 있다.’ 그는 해돋이가 어떻게 보였는지 생동감 넘치게 묘사했습니다. - ‘태양은 처음에는 진홍색, 그러고 나서 분홍색, 마침내 물의 표면에 뒤덮인 은빛의 광채였는데, 초록빛 바닷물이 반사된 푸른 하늘과 섞였으며, 태양은 상승하는 물결마루에 황금빛 광선을 흩뿌렸다. 그것은 색과 그림자의 놀이, 빛의 향연, 진리의 승리였다. 바다가 반짝였고, 공중이 밝았는데, 오늘의 마법은 온 세상을 채웠다.’

Nevertheless, what is most important here is not a reflection on the impressions of the sea, but rather the decision on a musical programme - the mutual confrontation of extreme positions. Thus was the structure of composition anticipated for the later, mature, Scriabin.

그럼에도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다의 인상에 대한 반영이 아니라 오히려 음악 프로그램에 대한 결정, 즉 극단적인 입장의 상호 대립입니다. 따라서 나중에 성숙한 스크리아빈에 대해 예상되는 작곡 구조였죠.

'What comes later already appears in what has gone before...' This aphorism applies well to the evolution of Scriabin's philosophy. He wrote when still a young man, 'I assure you that no science can give such exact and simple answers to so many questions as can nature itself. A person shall in no way avoid contact with nature.' His pantheism began gradually to acquire a garb of ideas, and some time later he said, 'One cannot but love nature, one cannot but love truth.' These are concepts, and one must go into them more deeply. What is truth? Truth is beauty and ugliness, it is goodness and evil, light and darkness, creation and destruction, and finally, life and death. And so great is the extent of this panorama which is the criterion for the true value of an artist, the symbol of his intellectual strength.

‘나중에 나온 것은 이전에 있었던 것에 이미 나타난다...’ 이 경구는 스크리아빈의 철학의 진화에 잘 적용되죠. 그가 아직 청년이었을 때 ‘나는 과학이 자연 그 자체만큼이나 많은 질문에 대해 정확하고 간단한 답을 줄 수는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 사람은 결코 자연과의 접촉을 피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썼죠. 그의 범신론은 점차 아이디어를 얻기 시작했고, 얼마 후 그는 ‘자연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진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것들은 개념이며, 더 깊숙이 들어가야 합니다. 진실은 무엇일까요? 진실은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 빛과 어둠, 창조와 파괴, 그리고 마지막으로 삶과 죽음입니다. 그리고 예술가의 진정한 가치, 즉 그의 지적 능력의 상징에 대한 기준인 이 파노라마의 범위가 매우 광범위하다는 거죠.

It must be admitted that, unfortunately, there are still much nebulosities and prejudices surrounding Scriabin's personality. I refer to the mysticism, idealism, and egoism which are imputed to him. Do these several philosophies truly correspond to the truth? We find a worthy answer in the composer's personal papers. It is not easy to overestimate the value of these writings, for contained therein are the titanic workings of his thinking, his reflection, the search after his self, his philosophy, the logic of its evolution.

불행히도, 스크리아빈의 개성을 둘러싸는 많은 표현의 모호함과 편견이 여전히 있음이 인정되고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저는 그에게 귀속되는 신비주의, 이상주의, 이기주의를 언급합니다. 이 몇 가지 철학이 진정으로 진리와 일치할까요? 우리는 작곡가의 개인 기록들에서 합당한 답을 찾습니다. 이 글들의 가치를 과대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은데, 그의 사고의 거대한 작용, 그의 성찰, 그 자신의 추구, 그의 철학, 그 진화의 논리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죠.

Scriabin was no out-of-touch philosopher, no encapsulated artist. Rather, he was actively interested in the realities of life, and loved the company of people. There is persuasive evidence to that effect: Georgi Plechanov, the well-known russian marxixt, recalls after a conversation with Scriabin, 'The talk was about happenings in the home country. It turned out that although Scriabin had left Russia long ago and was now fully immersed in his new compositions, he still followed with the greatest interest the heroic revolutionaries. Conversation with him is very agreeable, because he can grasp with astonishing speed and completeness the thoughts of the other person.'

스크리아빈은 접촉이 없는 철학자도, 캡슐에 넣어진 예술가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삶의 현실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사람들과의 모임을 사랑했죠. 그 인상에 대한 설득력 있는 증거가 있는데요. - 러시아의 마르크스주의자로 잘 알려진 게오르기 플레차노프는 스크리아빈과의 대화 이후를 회상하는데요, ‘그 얘기는 본국에서 일어난 일들에 관한 것이었다. 스크리아빈이 오래전에 러시아를 떠났으며 이제는 그의 새로운 작품들에 완전히 몰두했지만, 그는 여전히 영웅적인 혁명가들에게 가장 큰 관심을 보였다. 그와 대화하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인데, 왜냐하면 그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We turn now to the motto which is often attributed to Scriabin: 'I am, the diversity that is to be seen is there because of my creative powers of imagination. I play. How frightful is this conclusion! I am alone. I play. But that is a terrible deception. A game without a partner. A fight with a puppet and thus the certainty of victory. Here is a big mistake... Without genuine diversity, there is no life. The prerequisites for life are unity and diversity. That means that I not only cannot deny the surroundings, but also that I cannot exist without them.' These wise observations have little in common with the somewhat straight interpretation by several contemporary musicologists of the proud motto to the Third Symphony, 'I am', by which Scriabin concentrates into two words his expressed thought, 'I go to the people to explain their strength and power to them.'

이제 우리는 종종 스크리아빈에 기인한 모토로 바꿉니다. - ‘나는 창조적인 상상력으로 인해 다양성을 볼 수 있다. 나는 연주한다. 이 마무리가 두렵도다! 나는 연주한다. 그러나 그것은 끔찍한 속임수이다. 짝이 없는 게임이다. 인형과의 싸움이므로 승리가 확실하다. 여기에는 큰 착각이 있다... 진정한 다양성이 없다면 생명이 없다. 생명의 전제 조건은 통합과 다양성이다. 즉, 나는 주변을 부인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명한 관찰은 스크리아빈이 그의 표현된 생각인 두 단어 ‘나는 사람들에게 그것들의 견고성과 힘을 설명하기 위해 간다’는 것에 집중하는 것에 의해 ‘나는 존재한다’는 교향곡 3번에 대한 자부심에 대한 몇몇 현대 동시대의 음악학자들에 의한 다소 직접적인 해석과 공통점이 거의 없네요.

We are not justified, alone because of his premature death, in taking the liberty of evaluating Scriabin's entire philosophy. Thus important things were left uncompleted, what he had in mind was not carried out. Meanwhile he fantasized over new perspectives: 'There can and should be no art. Life itself is ever creative, full of wonder and revelation, always newer and deeper, boundless and inexhaustible.'

우리는 그의 이른 사망으로 인해 스크리아빈의 전체 철학을 자유롭게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들이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그의 마음속에 있었던 것이 수행되지 않았습니다. 한편 그는 새로운 관점을 상상했습니다. - ‘예술이 아닌 것이 있을 수도 있고 예술이 없어야 한다. 인생 자체는 항상 창조적이며, 경이로움과 계시로 가득 차 있으며, 항상 더 새롭고 더 깊고 더 무한하며 있을 수 있고 없어야 한다. 인생 자체는 항상 창조적이고, 경이와 계시가 있으며, 항상 새롭고 깊고 무한하며 무궁무진하다.’

We now concentrate our attention on the fact that Scriabin was a creator who exalted truth. Everything that has been said so far is very significant for the interpretation of the two sonatas of the late period, the Ninth and Seventh. The former, Op. 68 (1913), is known as 'the black Mass', and the latter, Op. 64 (1912), as 'the white Mass'. However, Scriabin spoke sometimes only of a 'white Mass Sonata', although this name is not legitimised in the original manuscript. And as for the ninth Sonata, it seems as if the name was simply given to it without an affirmative vote from the composer! These two sonatas reflect in full measure Scriabin's conception of truth. The 'authentic evil' (Scriabin) rules in the ninth Sonata. I must explain: evil, which negates the ever-increasing good. The seventh Sonata is related to the earlier work Promethe: 'The universe is in flames, the spirit achieves the peak of existence.' Here are daring, determination, and knowledge, and they overcome indolence. The connection between these two Sonatas is unmistakable. Therefore the performance as a unified cycle, a kind of dualism, is effective.

우리는 이제 스크리아빈이 진리를 높이는 창조자라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후기 소나타인 9번과 7번의 해석에 대해 지금까지 언급된 모든 내용이 매우 중요합니다. 전자인 9번 소나타(1913)는 <백미사>로, 후자인 7번 소나타(1913)는 <흑미사>로 알려져 있죠. 그러나 스크리아빈은 때로는 <백미사 소나타>만 말했지만, 이 이름은 원본에서 정당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9번 소나타에 대해서 말하자면, 작곡가로부터의 찬성표 없이 단순히 그 이름이 주어진 것 같네요! 이 두 개의 소나타는 스크리아빈의 진리의 개념을 최대한도로 반영합니다. ‘악마적인 힘’(스크리아빈)이 9번 소나타를 지배하죠. 저는 끊임없이 증가하는 선을 부정하는 악을 설명해야겠네요. 7번 소나타는 초기작인 <프로메테우스>(불의 시)와 관련이 있습니다. ‘우주는 화염에 휩싸여 있으며, 영혼은 존재의 정점을 달성한다.’ 여기 대담함, 투지, 지식이 있으며 그것들은 나태함을 극복하죠. 이 두 개의 소나타 사이의 연결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종의 이원론인 통합된 전곡으로서의 연주가 효과적입니다.

The inclusion of the Fantasy in B minor, Op. 28 (1900/1901) in the sonata-cycle is legitimate. It is not only a work on a large scale, but also (and this is important) a certain turning point in Scriabin's creative course. The Op. 28 is the last work of the first stage. There are certain indications that the musical basis of the Fantasy came from the years of his youth. One may therefore imagine that Scriabin was bidding farewell to those years with this work.

소나타 전집 음반에 수록된 환상곡(1900/1901)은 틀림없는데요. 이 곡은 대규모 작품일 뿐만 아니라 스크리아빈의 창조적인 과정에서 전환점이 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환상곡은 첫 단계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환상곡에 대한 음악적인 기반은 어린 시절부터 나온 것이라는 확실한 암시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크리아빈이 이 작품으로 그 해에 대한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고 상상할 수 있죠.

In connection with the Sonata No. 8, Op. 66 (1913), it should be mentioned that Scriabin planned to write an opera even as he was composing his Symphony No. 1 (1899). But this plan changed shape very soon, and Scriabin now had an idea for a certain work of fantasy, that would correspond in full measure to his conception of the role of art in life. This work should confirm the decisive power of art to ennoble and to transform the world and humanity. It would naturally be a corner-stone of the striving to create the 'mysterism', a complicated and super-synthetic project.

소나타 8번(1913)과 관련하여 스크리아빈이 자신의 교향곡 1번(1899)을 작곡할 때조차도 오페라를 쓸 계획이었다는 것이 언급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곧 형태가 바뀌었고 스크리아빈은 이제 환상곡의 특정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졌는데, 그것은 인생에서 예술의 역할에 대한 그의 개념에 완전히 일치할 것입니다. 이 작품은 세계와 인류를 고귀하게 변화시키는 예술의 결정적인 힘을 확인해야 합니다. 복잡하고 대단히 종합적인 ‘신비주의’를 창조하려는 노력의 주춧돌이 자연스럽게 될 것입니다.

Time went on, and the idea remained lodged in the composer's mind somewhat to his discomfort, but its realization was still a long way off. Finally he decided to compose a preparatory plot (a text of his form 'Worlds of Fire'), and produced the first musical sketches. He worked at the same time on the eighth sonata, the most enigmatical and difficult work in the entire cycle, and markedly different from the later sonatas (nos. 9 and 10). The sonata lacks a culmination, it has no extensive annotations, only two important markings ('tragique' and 'doux languissant') to indicate the character of the music. But in the end appears something quite new in the 'spider's web' of Scriabin's polyphony: Not struggle, but rather total reconciliation. It only remains to be added that the eighth Sonata is the only one that Scriabin himself never performed. All of the foregoing suggest the possibility that the Sonata No. 8 was the beginning of the next whorl of Scriabin's evolutionary spiral. It was perhaps the harbinger of Scriabin's 'next morning', a future that was not to be, as it turned out.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아이디어는 작곡가의 마음속에 다소 불편함을 주었지만, 그 실현은 아직 멀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미리 준비한 플롯(그의 <불의 세계> 형식 텍스트)을 작곡하기로 결정했으며, 최초의 음악 스케치를 만들었죠. 그는 동시에 소나타 전곡에서 가장 불가사의하고 어려운 작품인 8번 소나타에 몰두했으며, 이후의 소나타들(9번과 10번)과는 크게 다릅니다. 이 소나타는 절정이 약한데, 음악의 특성을 나타내는 두 가지 중요한 표시들(‘비통하게’와 ‘부드럽고 나른하게’)만 악보에 사용됩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스크리아빈의 폴리포니(다성 음악)의 ‘거미줄’에서 꽤 새로운 것이 나타나죠. - 투쟁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화해죠. 스크리아빈 자신이 연주하지 않았던 것은 8번 소나타뿐이라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모든 것은 소나타 8번이 스크리아빈의 진화하는 소용돌이의 다음 소용돌이의 시작이었다는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나올 때가 아니었던 미래인 스크리아빈의 ‘다음날 아침’의 선구자였을 것입니다.

The Sonata No. 4, Op. 30 (1903) can rightly be regarded as the crowning piece of the entire cycle. Scriabin appears here in his full and proud eminence, and the foundations of his philosophical concepts are brought together in this sonata. He is seen from this time on as a known composer with his own ideology. The programme of the fourth Sonata seems to be Prometheus' essence, out of which develop all the cosmic conceptions that followed. Scriabin wrote, 'The work of people should be the creation and life of all nature and of the entire cosmos. The universe must be the expression and the realization of a unified musical state of being, and if you agree, be the music of life itself.'

소나타 4번(1903)은 당연히 전곡에서 가장 중요한 곡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스크리아빈은 여기에서 그의 충만하고 자랑스러운 명성을 나타내며, 그의 철학적 개념의 토대가 이 소나타에 모입니다. 그는 이때부터 자신의 이데올로기로 알려진 작곡가로 간주됩니다. 4번 소나타의 프로그램은 프로메테우스의 본질인 것으로 보이며, 그 중 우주의 개념을 발전시킵니다. 스크리아빈은 ‘사람들의 일은 모든 자연과 우주 전체의 창조와 생명이어야 한다. 우주는 존재의 통합된 음악적 상태의 표현과 실현이어야 하며, 동의한다면 인생 자체의 음악이 되어야 한다,’고 썼죠.

Igor Shukov was born in 1936 in Gorki, a city known today as Nizhny Novgorod. He has however lived in Moscow since his early childhood. He studied piano in the Moscow Conservatory with Emil Gilels, and also with the legendary Heinrich Neuhaus. In 1957, he won a prize in the Marguerite Long Piano Competition in Paris. He has since then been much sought after as a soloist by orchestras around the world. Many critics, as well as music lovers, consider him one of the great pianists of his generation. They find his affinity above all else for Russian works for piano to be exemplary. He was the first to record the complete set of Alexander Scriabin's piano sonatas. These recordings have attracted considerable international attention, and are regarded as a milestone in the history of the interpretation of the composer.

이고르 주코프는 1936년 고르키(오늘날 니즈니노브고로드로 알려진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어린 시절부터 모스크바에서 살았다. 그는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에밀 길렐스를 사사했으며, 전설적인 하인리히 네이가우스도 사사했다. 1957년에는 파리에서 열린 제7회 롱-티보 국제음악콩쿠르에서 준우승했다. 이후 그는 전 세계의 오케스트라들로부터 독주자로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많은 비평가들뿐만 아니라 음악 애호가들도 그와 동세대의 위대한 피아니스트들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러시아의 피아노 작품들이 모범적이라고 생각한 것보다 더 친근감을 느낀다. 그는 알렉산더 스크리아빈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최초로 녹음했다. 이 녹음들은 상당한 주목을 받았으며 작곡가에 대한 해석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간주된다.

Igor Shukov has also made a name as a conductor. He founded the New Moscow Chamber Orchestra in 1983 and conducted it until 1994. He disbanded the orchestra that year in order to devote himself to the piano with renewed vigour. The pianist, whose repertoire ranges from Jean Philippe Rameau to Alban Berg, made a splendid comeback at the Herkulessaal in Munich. In the Suddeutsche Zeitung, the recital was hailed as a 'miracle' (Klaus Bennert). Since then, Shokov has appeared as guest pianist at musical events in many well-known location.

이고르 주코프는 지휘자로서도 유명해졌다. 그는 1983년에 새로운 모스크바 실내 오케스트라를 창단하여 1994년까지 지휘했다. 그는 그 해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어 피아노에 몰두하기 위해 오케스트라를 해산시켰다. 장 필리프 라모에서 알반 베르크에 이르는 레퍼토리를 가진 피아니스트는 뮌헨의 헤라클레스 홀에서 화려하게 복귀했다. 쥐트도이체 차이퉁에서 이 리사이틀은 ‘기적’(클라우스 벤네르트)으로 표현되었다. 이후 주코프는 잘 알려진 여러 장소에서 음악 행사의 게스트 피아니스트로 출연해왔다.

It is the aim of the authorized Igor Shukov Edition from 'telos music records' to document a representative portion of his different activities on the concert stage and in the recording studio.

콘서트 무대와 녹음 스튜디오에서 그의 다양한 활동들의 대표적인 부분을 기록하는 것이 텔로스 음반사에 지정된 <이고르 주코프 에디션>의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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