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7일 수요일

Peter Donohoe's 1982 Tchaikovsky Competition Diary 20 (12 July)


https://www.youtube.com/watch?v=Q45Q-ftUa1M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396&v=ExvGb0_GdkI
https://www.youtube.com/watch?v=IYAEZq1bAdE
https://www.youtube.com/watch?v=tqpEHPrjbB4
https://www.peter-donohoe.com/en/music

피터 도노호의 제7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일기 20 - 1982년 7월 12일
Postlude. There are many, many TV, radio and press interviews in the pipeline, but one newspaper interview took place today at Heathrow Airport within minutes of landing. I will not say which paper it was, but one of the questions was, "can you tell me who else has won this competition, other than yourself and Tchaikovsky?"

완결. 많은 TV, 라디오, 언론 인터뷰가 한창 진행 중이지만, 오늘 히스로 공항에서 한 신문 인터뷰가 상륙 후 몇 분 만에 이루어졌다. 어떤 신문인지는 말하지 않을 것이지만, 질문 중 하나는 다음과 같았다. “당신과 차이코프스키 외에 누가 이 콩쿠르에서 입상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Here another scan of the brochure: note Barry Douglas on the page next to my entry!

여기 책자의 또 다른 스캔이 있다. - 내 옆에 있는 배리 더글러스를 주목하라!


여기까지 도노호 선생님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동안 기록하신 일기장을 들여다보았다.

결선에서 배정된 연습실을 잘못 들어갔다가 심사위원이 제자의 협주곡을 레슨해주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고 이후 이름을 밝히지 않았는데, 파이널리스트 중에서 구소련 참가자들 중의 한 명이었다는 힌트로 누군지 찾아봤다. 모두 찾지는 못했고 칼레 란달루(에스토니아)의 스승이 심사위원 레프 블라센코. 한편 소련은 아니지만 마리아 로웨나 아리에타(필리핀)의 스승은 심사위원 예프게니 말리닌.

배리 더글러스가 1982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는 사실은 나카무라 히로코의 저서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그 숨겨진 이야기> 154~155쪽에서 먼저 보고 나서 알게 되었다.

1차 예선을 듣고 기대했던 사람들이 그 기대를 저버리고 무너져가는 한편, 2차 예선에 와서 마치 다른 사람처럼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었다. 영국의 배리 더글러스도 그런 전형적인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사실 저번 대회, 즉 1982년 제7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도 나왔었는데, 그걸 난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지금 그때의 내 메모를 들쳐보니 “마치 카우보이가 말에 타고 있는 것처럼 상반신을 뒤로 젖히고 연주. 덩치가 크다, 몸 전체에 신경이 다 퍼져 있긴 할까, 뭘 연주해도 조잡하고 거칠며 더없이 밋밋하다. 베토벤 ‘열정 소나타’가 그렇게 지루하고 길게 느껴진 적은 없다. 차이코프스키가 아끼는 소품 ‘가을 노래’(이건 구슬프고 절절한 로맨틱한 곡이거늘)를 뭐 이런 무신경한 큰 소리로 친단 말인가. 그것도 표정이 너무 지나치고 부자연스럽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웃고 말 정도였다”라고, 뭐 호된 평이다. 당연한 결과지만, 그는 그때는 1차 예선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4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기술적 여유와 성숙도를 보여줬다. 특히 2차 예선에서 프로그램 마지막(그날 밤 마지막 순서이기도 했다) 곡으로 쳤던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명연주였다. 1차 예선에서 들었던 바타고프의 바흐를 나는 “복잡하게 겹쳐지는 소리의 층을, 그 정도 청정함과 구성력을 갖고 분간해서 치는 참가자는 달리 없다”라고 말했는데, 배리 더글러스가 연주한 무소르그스키도 음악이나 개성은 다르지만, 바타고프가 들려준 바흐에 필적하는 것이었다. 강당에는 콩쿠르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박수갈채가 일고, 그 상태는 심사위원들이 퇴장한 뒤에도 15분 남짓 계속되었다. 이때 그의 연주는 1차 예선뿐 아니라 본선에서 보여준 위축되고 평범한 협주곡 연주보다도 훨씬 열정적인 연주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배리 더글러스는 이 무소르그스키로 우승을 손에 넣은 것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2차 예선 결과는 16일 밤에 발표됐다. 본선 진출자 12명은 평균 25점 만점 성적순으로 위에서부터 뽑게 된다. 1차 예선에서는 4번째, 20.22점을 주었던 배리 더글러스는 여기에서 단숨에 톱으로 뛰어올랐다. 22.95점이었다. (후략)

202쪽을 보면 배리 더글러스가 재도전하여 우승하기까지의 과정이 나온다.

콩쿠르라는 것은 이미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해온 것처럼, 어디까지나 참가자들 가운데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걸로 성립하는 것이다. 배리 더글러스는 이번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안에서는 다른 참가자들에 비교하면 어엿한 연주가로서 성숙한 모습을 보인 피아니스트였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이후 일류 예술가로서 위대한 길을 걷게 되기까지에 이어져갈 것인지는 애당초 성격이 다른 문제라고 생각된다. (중략)

이 아일랜드 출신의 26세 청년은, 요 몇 년간 주요 국제 콩쿠르에 연달아 나갔다. 예선 탈락을 반복하면서도 팔로마 오셰아, 밴 클라이번, 시드니 같은 국제 콩쿠르에는 상위 입상을 이뤄내, 국제 콩쿠르의 ‘프로페셔널 파이널리스트’ 혹은 ‘히치하이커’(자동차 편승 여행자로 남의 차를 얻어 타고 다니며 여행하는 사람), ‘또 만나네’라며 반은 질려하는 반응에도 끝까지 노력했으며, 1982년 제1차 예선 탈락에도 굴하지 않고 그 4년 뒤에 드디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이라는 빅 타이틀에 빛난 것이다.

About Barry Douglas
1978 - 1st BBC Young Musician of the Year Competition in England [Piano Category] Finalist (Top 5) / 잉글랜드 제1회 BBC 올해의 영 뮤지션 콩쿠르 [피아노 부문] 파이널리스트
1980 - 6th Paloma O'Shea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Santander, Spain 2nd prize (1st was not awarded) and Silver Medal / 스페인 산탄데르 제6회 팔로마 오셰아 국제피아노콩쿠르 1위 없는 2위 및 은메달
1981 - 12th Concorso Pianistico Internazionale 'Ettore Pozzoli' in Seregno, Italy 2nd prize (1st was not awarded) ex-aequo with Megumi Umene (Japan) / 이탈리아 세레뇨 제12회 에토레 포졸리 국제피아노콩쿠르 - 메구미 우메네(일본)와 공동 2위
1981 - 6th Van Clibur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Fort Worth, Texas (USA) Semifinalist (Top 12) and Jury Discretionary Scholarship Award / 미국 텍사스 주 포트워스 제6회 밴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 세미파이널리스트 및 심사위원 재량 장학금
1982 - 32nd Concert Artists Guild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 in New York City, USA winner ex-aequo with Sara Faust (USA) / 미국 뉴욕 시티 제32회 콘서트 아티스트 길드 국제음악콩쿠르 - 사라 파우스트(미국)와 공동 우승
1983 - 4th Arthur Rubinstein International Piano Master Competition in Tel Aviv, Israel 4th prize / 이스라엘 텔아비브 제4회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국제피아노마스터콩쿠르 4위
1985 - 7th Van Clibur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Fort Worth, Texas (USA) 3rd prize, Bronze Medal and Special Prize for the Best Performance of Commissioned Work / 미국 텍사스 주 포트워스 제7회 밴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 3위, 동메달 및 지정 작품 최우수 연주 특별상
1986 - 8th Tchaikovsky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 in Moscow, Russia 1st prize and Gold Medal / 러시아 모스크바 제8회 차이코프스키 국제음악콩쿠르 1위 및 금메달

210쪽에는 심사위원 회의 결과 “더글러스의 1위는 확정되었지만, 실제로 그 결과에 도달할 때까지는 40분이나 걸려버렸다”는 얘기가 나온다. 시드니 콩쿠르에서 입상했다는 정보는 나한테 없어서 찍 그었는데 루빈스타인 콩쿠르가 맞지 않나 싶다. 아니면 준결선이라도 진출한 건지는 몰라도 특별상이라도 건졌으면 내가 당연히 입상 기록에 써줬지... 더글러스는 클라이번 콩쿠르도 재도전하여 입상했는데 여기에서 3위로 인정받았다가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한편 122쪽을 보면 1982년 대회에서 결선 진출자가 원래 12명이었는데 13명이 된 사례도 나온다.

결국 이때 2차 예선 결과는 도노호는 당락 선에 아슬아슬한 18점을 받아 12위를, 소련의 동점인 미하일 예르몰라예프와 나눠 가지게 되었다. 본선 진출자는 12명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12위인 두 사람을 더하면 실제로는 13명이 된다. 그래서 아예 11명으로 할지 어떨지 심의가 열려, 정말 위태로운 상황에서 도노호는 본선 진출 자격을 획득한 것이었다.

이때 중재자 역할을 하는 심사위원장, 조지아 작곡가 탁타키쉬빌리가 “뭐 13명 모두 나가게 합시다.” 이 한 마디를 꺼내지 않았다면 도노호가 본선 진출, 즉 옵치니코프와 같은 등수로 최상위 입상이라는 결과는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전에 언급한 에셴바흐의 경우나 이 도노호도 그렇고, 정말 콩쿠르라는 것은 실력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운도 필요로 하는 세계라고 다시 한 번 나는 느꼈다. (크리스토프 에셴바흐에 대한 언급은 119쪽에 나온다.)

About Peter Donohoe
1976 - British Liszt Piano Competition in Guildford in England 3rd prize / 영국 길드포드 리스트 피아노 콩쿠르 3위
1976 - Bartók-Liszt Competition in Budapest, Hungary - Special Prize for the performance Bartók / 헝가리 부다페스트 버르토크-리스트 콩쿠르 버르토크 최우수 연주 특별상
1981 - 7th Leeds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England 6th prize / 잉글랜드 제7회 리즈 국제피아노콩쿠르 6위
1982 - 7th Tchaikovsky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 in Moscow, Russia 2nd prize (1st was not awarded) ex-aequo with Vladimir Ovchinnikov (USSR) / 러시아 모스크바 제7회 차이코프스키 국제음악콩쿠르 - 블라디미르 옵치니코프(러시아)와 1위 없는 공동 2위

About Vladimir Ovchinnikov
1980 - Montreal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 in Canada 2nd prize ex-aequo with Christopher O'Riley (USA) /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음악콩쿠르 - 크리스토퍼 오라일리(미국)와 공동 2위
1982 - 7th Tchaikovsky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 in Moscow, Russia 2nd prize (1st was not awarded) ex-aequo with Peter Donohoe (England) / 러시아 모스크바 제7회 차이코프스키 국제음악콩쿠르 - 피터 도노호(잉글랜드)와 1위 없는 공동 2위
1984 - 35th Viotti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 in Vercelli, Italy 1st prize / 이탈리아 베르첼리 제35회 비오티 국제음악콩쿠르 1위
1987 - 9th Leeds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England 1st prize / 잉글랜드 제9회 리즈 국제피아노콩쿠르 1위

요즘에 열리는 콩쿠르와는 사정이 다르고 30년 이상 된 옛날이야기지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아나가는 것이 흥미로웠다. 물론 공부도 당연히 많이 되었는데 단지 콩쿠르 준비 과정을 알려고 번역했다기보다는 콩쿠르를 준비하면서 어떤 좌충우돌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궁금해서 그런 것도 있었다. 당연히 번역하기 귀찮고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지만 도저히 모든 번역이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이 장문의 글을 다음 내용이 궁금하므로 술술 이어나갔다. 내가 콩쿠르에 대해서 정리하면서 깨달은 게 있는데 보통 1라운드, 2라운드... 이렇게 표현하는 것을 일본에서는 1차 예선, 2차 예선... 이렇게 표현한다. 결선은 본선이라는 단어를 써서 몇 번째 라운드를 말하는 건지 어쩌다 헷갈리기도 한다. 도노호의 홈페이지에 가면 1982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결선 녹음을 들을 수 있다. 유튜브에 나온 다큐멘터리 말미를 보면 러시아 청중이 건물 밖에서 도노호를 외치는 모습이 나온다. 도노호에게는 창문 밖에 보이는 러시아 청중의 환호가 잊을 수 없는 추억일 것 같다. 배리 더글러스의 무소르그스키 연주는 유튜브에 나온 다큐멘터리 중간에서 일부나마 들을 수 있다.

이 일기장을 우리나라 독자든 외국 독자든 재미있게 읽어줬으면 좋겠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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