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6일 화요일

Peter Donohoe's 1982 Tchaikovsky Competition Diary 19 (9-11 July)

피터 도노호의 제7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일기 19 - 1982년 7월 9~11일
I placed three phone calls (at 24 hours’ notice as usual) to Elaine, my mother and my agents in London, and had to wait until yesterday to actually tell them what had happened, when the phone calls finally came through. My mother's reaction to me telling her that I had jointly won the Silver, which effectively meant that Vladimir and I had won the competition, was to say, "Oh, right. When are you coming back? I've got a hydrangea that needs moving." [v] The answer to the question was actually that I had to stay on to take part in prize-winners concerts until July 12. This evening will be the first, and there will be one more tomorrow. I was asked to play the first movement of the Tchaikovsky Concerto, whilst Vladimir plays the other two movements – this time conducted by Dmitri Kitaenko, who is great.

나는 런던에 있는 일레인, 나의 어머니, 나의 대리인들에게 (늘 그렇듯이 24시간 공지에) 세 번 전화를 걸었으며, 전화가 마침내 왔을 때, 일어났던 일을 그들에게 실제로 말하기 위해 어제까지 기다려야 했다. 블라디미르와 내가 콩쿠르에서 공동 입상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공동 은메달을 받았다고 어머니에게 말한 것에 대한 반응은 이랬다. “아, 맞다. 언제 돌아오니? 수국을 옮겨야 되는데.” [v] 질문에 대한 대답은 실제로 내가 7월 12일까지 입상자 갈라 콘서트에 참여하기 위해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늘 저녁이 첫 번째이고, 내일 한 번 더 있을 것이다. 나는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1악장을 연주하도록 요청받은 반면, 블라디미르는 다른 2개의 악장을 연주한다. - 이번에는 위대한 드미트리 키타옌코가 지휘했다.

The audience continues to be the most appreciative, passionate and educated I can imagine. I am reminded why I wanted to be a musician in the first place. Thank you to the people of Moscow, and to the organisers of this – the greatest piano competition in the world!!!

청중은 계속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감상을 즐기고 열정적이며 학식 있는 사람이다. 왜 내가 처음에 음악가가 되고 싶었는지 생각난다. 모스크바 시민들과 이 콩쿠르의 주최자들께 감사드린다. -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피아노 콩쿠르!!!

I am now writing late on 11 July. They decided that we must give a third prize-winners concert this evening – this time without orchestra. There doesn't seem to be any thought at all given to the possibility that we might have other commitments. I guess if I said so, they would allow me to leave the country, but of course I having a whale of a time, so it is irrelevant.

나는 7월 11일에 늦게 글을 쓰고 있다. 그들은 오늘 밤 세 번째 입상자 갈라 콘서트를 가져야 한다고 결정했다. - 이번에는 오케스트라 없이. 우리가 다른 약속을 할 가능성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내 생각에 내가 그렇게 말했다면, 그들은 내게 그 나라를 떠나도록 허락할 것이지만, 물론 나는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므로, 그것은 무의미하다.

I played Stravinsky's Petrushka, and there was such a reaction from the audience that I played two encores: George Benjamin's Sonata (1st movement) and Prokofiev Sonata 6 (4th movement). The George Benjamin gave them something to think about, but it is an extraordinary piece, and was a great hit.

나는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를 연주했으며, 청중의 반응에 따라 2개의 앙코르곡들을 연주했다. - 조지 벤저민의 소나타 1악장과 프로코피에프 소나타 6번 4악장. 조지 벤저민의 작품은 청중에게 뭔가 생각 좀 해보라는 곡(그들에게 생소한 곡)이었지만, 특별한 곡이며, 대히트였다.

So, finally it is all over, and I will return to the UK tomorrow (12 July) – I will go home, and celebrate with family and friends and agents, and I will re-plant my mother's hydrangea next week.

그렇게 마침내 모든 것이 끝났으며, 나는 내일(7월 12일) 영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집으로 가서 가족과 친구들, 대리인들과 떠들면서 놀 것이며, 다음 주에 어머니의 수국을 옮겨 심을 것이다.

It has been the most extraordinary and unexpected time, and, as I keep reminding myself, nothing like this will ever happen to me again.

가장 놀라우면서 예기치 않은 시간이었으며, 내 자신을 계속 상기시켜주는 것처럼, 이 같은 일은 내게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If you have been, thank you for reading this.

보시는 분이 있다면, 이것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v] With personal knowledge of my mother, this was more amusing than deflating. It was her way to avoid addressing emotional things and to divert her own attention to everyday things for fear of breaking down. "How terribly Northern", did I hear you say?

[v] 어머니에 대해 개인적으로 아는 바로는, 이것은 바람을 빼는 것보다 더 재미있었다. 감정적인 것들을 얘기하는 것을 피하면서 무너뜨리는 것을 두려워하여 일상생활에 관심을 돌리는 것이 어머니의 방식이었다. “북쪽은 얼마나 끔찍하니?”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었나?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