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0일 수요일

Snowman's Warsaw Diary Day 22 (19 October 2021)


XVIII Chopin Competition Final Stage Day 2

Warsaw Philharmonic Concert Hall / 바르샤바 필하모닉 콘서트홀

Warsaw Philharmonic Orchestra /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Andrzej Boreyko, conductor / 안드레이 보레이코 지휘


전날 기침 때문에 콜록거리다가 잠들었다. 결선이 저녁에 시작하니 아침 8시에 깼다. 아침은 10시가 거의 다 되어 먹었다. 빨래를 정리했는데 구멍 난 양말들을 꼬맸다. 그런데 가위가 없으니 치아로 실을 끊었다. 전에 오프닝 콘서트 가다가 넘어져서 무릎에 구멍 난 바지도 바느질로 때웠다. 넘어지면 주변의 다른 사람들한테 무슨 일이 생기는 것 때문에 되게 트라우마였는데 이번에는 나한테 생겼다. <안 싸우면 다행이야>를 보고 나서 좀 쉬다가 3시 30분에 외출했다. 호텔에서 가까운 베트남 식당으로 가서 포를 먹으려다가 메뉴판 보고 불편해서 나왔다. 공연장을 향해서 걸어가다가 일식집을 발견했다. 사실 전에 봤던 곳이었는데 몇 번 지나쳤다. 그래서 밖에서 가격표 보는데 점원이 서성거리는 사람들 보고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뭘 먹을까 하다가 우동을 먹었다. 어차피 기침 때문에 따뜻한 음식을 먹고 싶었다. 물은 기본으로 주더라고. 생각보다 우동의 양이 적었다. 4시 30분에는 피에로기에서 햄버거랑 제로 콜라를 먹었다. 모처럼 먹고 싶었던 햄버거는 생각보다 맛이 없었다. 폴란드 음식과는 친해지기가 힘들다. 괜히 먹었네... 배가 너무 부르다. 바르샤바에는 일식집이 흔하다. 한식당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고. 4시 50분에 홀에 도착하니 어떤 할아버지가 심사위원들에 대한 스캔들(Scandal/Jury)이라고 하면서 표트르 알렉세비치, 니콜라이 호지아이노프, 하야토 스미노가 떨어진 걸 항의하는 종이를 들고 바깥에 서 있었다. 내가 볼 때 셋 다 떨어질 만했는데? 그래서 직원들과 잠시 실랑이가 있었다. 1m 떨어진 옆에는 아시아계 여성이 파이널 티켓을 원한다고 종이에 썼다. 누군가가 양도해주길 바랐던 것. 3층 홀에서 쇼팽 인형을 더 샀는데, 새로운 접이식 우산이 보여서 하나 샀다. 아주 예쁘진 않은데 검은 바탕에 하얗게 악보가 그려진 우산이라서.






18:00

05 J J Jun Li Bui (Canada) / J J 준 리 부이 (캐나다) - Kawai Shigeru EX

2004년 6월 10일 → 17세


Piano Concerto No. 1 in E minor, Op. 11

I. Allegro maestoso

II. Romance. Larghetto

III. Rondo. Vivace


21세기 3개 대회 파이널리스트 중에서 가장 앞선 번호가 우승했는데 2010년에는 참가번호 10번 안에 드는 사람 3명 모두 입상했다. 그래서도 입상권으로 생각해왔다. 2015년에 궁금했던 건 가와이 피아노를 고른 사람들이 과연 결선에서 스타인웨이로 바꿀지 여부였다. 하지만 모두 탈락하여 어떤 피아노를 선택했는지는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다. 이번에는 결선에 가와이가 3명이나 진출. 둘째 날에는 2015년의 악장으로 바뀌었는데, 2010년에는 잉골프 분더가 연주할 때 임시로 나왔다. 1~2악장은 좋았는데 3악장에서 절정이 지나면서 약해졌다. 오케스트라 반주가 끝나갈 때 박수. 난 늦게 쳐도 사람들이 빠르게 칠 줄 알았으나 아니다. 그래도 당 타이 손의 제자라 입상은 할 것 같기도 하고. 커피를 안 마셨더니 또다시 졸리다...



18:40

06 Alexander Gadjiev (Italy/Slovenia) / 알렉산더 가지예프 (이탈리아/슬로베니아) - Kawai Shigeru EX

1994년 12월 23일 → 26세


Piano Concerto No. 2 in F minor, Op. 21

I. Maestoso

II. Larghetto

III. Allegro vivace


스타인웨이로 바꿀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가와이. 고무줄처럼 음의 길이를 늘였다 줄였다 한다. 밀고 당기는 것에 굉장히 능한 것 같다. 가장 잘하는 것처럼 보이나 글쎄... 나한테 가슴으로 와 닿지 않는다. 해외 피아니스트라 그런지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심이 별로 없는 편이지만 묵묵하게 가지예프를 챙기고 있었다. 사실 2005년과 2010년 우승자들이 각각 1985년생이라서 2015년과 2021년 우승자들은 1994년생으로 짝지어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하마마쓰 콩쿠르 1위라고 해도 그동안 말아먹은 대회 개수가 내가 아는 것만 해도 6개. 내가 이번 대회 우승자로 편들려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 나간 경우 어떻게든 재도전으로라도 단독 3위를 받아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만큼 차이코프스키 콩쿠르가 만만치 않다. 아무리 러시아 편향인 대회라고 해도 쇼팽 콩쿠르와 동급으로도 보는 이유 중 하나는 참가자들의 수준이 엄청 높다는 소리! 네링 떨어졌다고 가지예프로 갈아타기도 힘들다. 내가 아무리 외국인 편을 들어도 그렇지... 1위 없는 2위는 가능하겠지만. 단지 협주곡 2번이라 힘들다는 게 아니라 이중 국적이라는 것도 내가 편들기 힘든 이유 중 하나. 태어나서 성장한 곳과 국적이 이탈리아라고 해도 사실상 러시아-슬로베니아 혈통. 이탈리아 단독 국적으로 나와도 이미 우승해본 나라라서. 이러면 본인이 깨야 하는데... 2번 협주곡을 들어보니 바이올린 활로 바이올린을 스치듯이 켤 때 활이 바이올린에 부딪히면서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그런 소리가 나는 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레슨 시간에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은 오케스트레이션이 취약해서 단원들이 싫어한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쇼팽은 그쪽에 약했다. 물론 한편으로는 피아노 연주를 극대화시키는 효과도 있고. 직관하면서 쇼팽의 폴란드 시절에 소홀했던 내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그동안 쇼팽 콩쿠르를 지켜보면서 결선에서만 폴란드 시절을 생각하다시피 했다. 프랑스로 가면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들을 쓰지 않았으니까. 실내악 일부와 피아노 독주곡에만 전념했다. 2010년에 느낀 게 있다면 결선에서 1번 아니면 2번이라서 쇼팽이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남기지 않은 게 유감! 그러다가 쇼팽이 남긴 몇몇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들에 위안 삼았다.



19:20 Intermission


2층에 있는 화장실에 다녀온 다음 가방에 있는 커피를 꺼내서 마셨다. 그런데 일본 피아니스트 게이고 무카와랑 닮은 사람을 또 봤다. 며칠 전에도 봤는데 마스크를 써가지고... 하지만 눈매와 체형으로 볼 때 사실상 맞는 듯.


19:50

07 Martín García García (Spain) / 마르틴 가르시아 가르시아 (스페인) - Fazioli F278

1996년 12월 3일 → 24세


Piano Concerto No. 2 in F minor, Op. 21

I. Maestoso

II. Larghetto

III. Allegro vivace


성적에 상관없이 즐기면서 연주하다 보니 어쩌다 결선에 진출한 경우? 결선에서도 파치올리 그대로 연주했는데 생각보다 소리가 좋았다. 코로나19라는 변수로 인해 콩쿠르 생활을 연장하게 되었는데, 2021 클리블랜드 콩쿠르 우승 특전 중 하나가 쇼팽 콩쿠르 독주 3회 및 협연 1회가 된 모양새? 히히히~ 내가 생각하는 청중상 후보! 역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3악장 막바지에서 소리가 약해져서 기어들어가는 것 같은 부분도 있었는데 남자라 그런지 회복하더라고. 그동안 즐거웠는데 앞으로 흥해라! 결선 둘째 날은 즐거웠다. 그동안 폴란드 관중 앞에서 우승 기념 갈라 콘서트처럼 연주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기왕 여기까지 올라온 것 입상한다면 더 좋을 것 같다. 2번 협주곡을 고른 이유는 노래하려고? 2악장과 3악장에서 입으로 노래하는 소리가 들린다. 지난 대회 결선에서의 게오르기스 오소킨스처럼 협연하다가 망치는 것 아닌가 했는데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그러진 않았다. 스페인이 올해 루빈스타인 콩쿠르에서 처음 우승했는데 과연 쇼팽 콩쿠르에서도 최초의 입상자가 나올 것인가? 미스터치가 나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넘어가면서 무대에 선 것 자체를 즐기는 모습. 1라운드에서 며칠 우울했던 적이 있었는데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 대회를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줬다. 몇몇 청중이 기립 박수! 나도 크게 열심히 박수 쳐주고. 돌이켜보니 이번 대회에서 (비록 결선을 앞두고 떨어졌지만) 루빈스타인 콩쿠르 1위인 시몬 네링, (결선에 진출한) 하마마쓰 콩쿠르 1위인 알렉산더 가지예프, 클리블랜드 콩쿠르 1위인 마르틴 가르시아 가르시아까지 몇몇 중상위권 대회의 우승자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연주가 시작될 때는 카메라가 관중석 가운데에서 앞뒤로 미끄러지듯이 이동한다. 그러면서 무대를 줌인!



20:30

08 Eva Gevorgyan (Russia/Armenia) / 에바 게보르기안 (러시아/아르메니아) - Steinway & Sons 479

2004년 4월 15일 → 17세


Piano Concerto No. 1 in E minor, Op. 11

I. Allegro maestoso

II. Romance. Larghetto

III. Rondo. Vivace


이번에도 머리를 땋고 등장. 이번에도 마지막 참가자가 되니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무르익는다. 쇼팽 콩쿠르에서는 준결선까지 아무리 잘 해도 결선에서 삽질하면 입상하지 못하는 변수가 있다. 결선에 진출했다고 입상이 보장된 건 아니니까. 1악장 막바지에 힘이 좀 빠진 모습. 연주는 좋은데 3악장에서도 절정에서 힘이 빠져서 좀 힘든 모습을 보여줬다. 여성 참가자들의 문제가 아무래도 피아노가 남성적인 악기다 보니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고 치는 사람이 별로 없더라고. 나는 쇼팽 콩쿠르에서 여성보다는 남성을 더 보는 편이랄까? 아무리 쇼팽이 여성적이라고 해도 내가 생각하는 쇼팽은 남성에 가깝다. 아무래도 나이가 어리다 보니 잘 해야 4~6위권. 연주가 끝나고 박수를 치려고 하는데 지휘자가 타이밍을 살짝 늦춰서 사람들이 박수를 치려다가 멈칫하기도 했다. 일부러 마지막 연주를 그렇게 장식하려고 한 것 같기도.



빨간 드레스를 입고 띠를 두른 미스 폴란드(?) 같은 아가씨들이 홀 내부에서 초콜릿 바구니를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선사해서 나도 하나 꺼내먹었다. 폴란드 국기가 빨간색과 하얀색으로 구성. 9시 30분에 끝나서 호텔로 돌아가니 10시가 되었다. 이번에도 G로 시작하는 성에 속하는 참가자들이 내 귀를 즐겁게 해줬다. 결선에서 네링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건 나한테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네링이 입상하든 못하든 결선에 반드시 진출하여 내가 오페라 극장 예매 실패한 걸 두고두고 평생의 한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결국 시상식이 열리는 첫 번째 갈라 콘서트에 대한 미련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가장 공들였는데 허망함을 남겼다. 안타깝게도 지난 대회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도 입상하지 못하고 우승 후보로 거론되다가 끝나버렸다. 어쩔 수 없이 편들게 만들어놓고 쥐구멍을 다시 한 번 선사했다. 가지예프와의 협주곡 2번 대결이 궁금했으나 아쉽게 무산되었다. 이제 마지막 날을 향해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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