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18일 월요일

Snowman's Warsaw Diary Day 21 (18 October 2021)


XVIII Chopin Competition Final Stage Day 1

Warsaw Philharmonic Concert Hall / 바르샤바 필하모닉 콘서트홀

Warsaw Philharmonic Orchestra /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Andrzej Boreyko, conductor / 안드레이 보레이코 지휘


전날 여기저기 돌아다녔더니 피곤해서 7시에 깼으나 더 자고 9시 넘어서 식사! 방에서 잠시 쉬면서 <뭉쳐야 찬다> 시즌 1 동영상들을 마저 봤다. 몇몇 장면들을 건너뛰면서 설렁설렁 다 보니 마지막 회는 시상식이었는데 어차피 유튜브로 본 적이 있어서 대충 보다가 지웠다. 또 기침 기운이 있어서 약 먹고 쉬다가 2시 30분이 지나서 외출했다. 어디로 갈까 하다가 전에 먹었던 한식당(야헤 코레아)에서 불고기를 시켜먹었다. 폴란드 입맛이라 썩 맛있진 않은데 김치 반찬이 되게 맛있었던 기억이 나서 또 먹고 싶었다. 폴란드는 내 입맛과 맞지 않아서... 기내식부터 폴란드 음식이랑 틀어졌다는... 불고기 맛은 괜찮았다. 김치 말고 다른 반찬도 좋았다. 호텔에서는 걸어서 6분이고 공연장과는 12분 거리. 37즈워티로 식당에서 비싼 축에 속한다. 한식당을 다른 데로 가자니 멀고 여기가 가장 가까워서. 테이블이 실내에 6개이고 의자는 12개. 실내에 손님이 꽉 차면 밖에 있는 테이블에서 먹어야 한다. 폴란드는 바깥에도 테이블을 차려놓은 곳들이 많다. 바깥에 테이블 없는 가게들은 별로 없다시피 한데, 알고 보니 유럽은 야외에도 테이블 차려놓은 가게가 많다고 하더라고. 여긴 배달도 하는데 장사가 꽤 잘 되는 모양. 전에 음식 나오기까지 20분 걸려서 공연장 늦을까봐 똥줄 탔다. 폴란드는 우리나라처럼 빠른 게 아니라 느긋한 나라인 것 같아서. 물을 안 주니까 방에서 먹던 음료수와 물을 싸왔다. 감기약도 먹어야 하니까. 구글 지도를 안 보고 걸어오니 3시 40분이 지나 공연장 도착. 너무 일찍 왔는데 결선 티켓 사려는 사람들이 20명 넘게 매표소 앞에서 대기했다. 바깥에 있다가 쌀쌀해서 홀로 들어왔는데 1층에서 사람들이 브라보를 외친다. 누군가 했더니 하오 라오. 어떤 폴란드 여사님은 같이 기념사진도 찍으시고. 며칠 전에도 봤지만 일본인 관광객들은 기모노 입고 오기도 한다. 5시 20분이 넘어서 입장했는데, 3층 홀 앞의 매장에서 한국인들을 봤다. 아시아 관객 중에는 어쩌다 중국인들이 보이고 일본인들이 대다수라 한국인들을 보는 건 되게 드문 편.





18:00

01 Kamil Pacholec (Poland) / 카밀 파홀레츠 (폴란드) - Steinway & Sons 479

1998년 11월 11일 → 22세


Piano Concerto No. 1 in E minor, Op. 11

I. Allegro maestoso

II. Romance. Larghetto

III. Rondo. Vivace


1라운드 첫째 날에도 내가 여기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는데 막상 결선을 보니까 신기하다. 실제로 보면 날것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져온다. 2020년부터 연주회를 안 다니다 보니 이런 감각이 무뎌졌다. 바이올린 수석은 그대로인 줄 알았더니 젊은 여성으로 바뀌었다. 홀에서 직접 들으니까 이전에 유튜브에서 듣던 소리와는 다르다. 피아노 연주가 딱히 특별하진 않았다. 처음이라 그런지 뻑뻑한 느낌. 오케스트라 박수가 끝나갈 때 박수. 분명히 결선 시작하기 한 시간 전에 밖에 나가서 커피를 마셨는데도 졸린 건 뭐지? 가만히 생각해보니 커피가 아니라 그냥 초콜릿 맛이 나는 음료수였네... 난 며칠 전에 그걸 커피로 착각하고 편의점에서 샀던 거고.



18:40

02 Hao Rao (China) / 하오 라오 (중국) - Steinway & Sons 479

2004년 2월 4일 → 17세


Piano Concerto No. 1 in E minor, Op. 11

I. Allegro maestoso

II. Romance. Larghetto

III. Rondo. Vivace


지난번에 여성 진행자가 소개할 때 하오 자오로 들렸는데 남자가 소개해도 마찬가지. 중국식으로는 Zhao, 폴란드식으로는 Rzao? 꼭 스펠링이 이럴 것 같은... 히히히~ 대충 폴란드어에 대한 느낌이 있거든. 다른 외국어도 마찬가지. 어떤 분이 나한테 언어 감각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흐흐흐~ 가장 먼저 연주한 폴란드보단 표현에 있어서 더 낫게 들리지만 베이징 청소년 쇼팽 콩쿠르 5위면 글쎄... 입상이 힘들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나이가 어려서 잘 해야 4~6위. 이번에도 벨소리가 난다. 3악장에서는 중간에 못 치고 넘어간 부분도 들린다. 박수를 친 타이밍은 3악장 피아노 파트의 마지막 음과 오케스트라 파트의 마지막 음 사이.



19:20 Intermission


화장실 갔더니 줄이 길다. 8칸뿐이라 늦게 서면 곤란하다.


19:50

03 Kyohei Sorita (Japan) / 교헤이 소리타 (일본) - Steinway & Sons 479

1994년 9월 1일 → 27세


Piano Concerto No. 1 in E minor, Op. 11

I. Allegro maestoso

II. Romance. Larghetto

III. Rondo. Vivace


결선을 보는 내내 신기하다. 내가 여기에 앉아서 보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앞서 연주한 두 명에 비해 소리의 균형 면에서 좋다.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차분하고 안정된 연주. 피아노 파트가 끝나자마자 박수를 터뜨리는 건 일본인들인지? 일본인 관객들 보면 자국 참가자의 연주가 끝나고 기립 박수도 잘 치던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몇몇 일본인들이 자기네 참가자가 되게 잘한 것처럼 빨리 박수치도록 유도한 것 같다.



20:30

04 Leonora Armellini (Italy) / 레오노라 아르멜리니 (이탈리아) - Fazioli F278

1992년 6월 25일 → 29세


Piano Concerto No. 1 in E minor, Op. 11

I. Allegro maestoso

II. Romance. Larghetto

III. Rondo. Vivace


파이널리스트 중에서 가장 앞선 번호인데, 21세기 우승자들의 공식이지만 재수생에 나이도 20대 후반이고 이미 우승해본 나라 중 하나인 이탈리아. 폴리니 옹이 우승하신지 61년 묵었다. 계속 스타인웨이였다가 파치올리 등장! 실제로 9시 넘어서 시작했다. 네 번째 참가자가 나오니 오케스트라 반주가 무르익었다. 3악장은 내가 집중해서 보는 절정이 있는데 호흡이 굉장히 길다. 내가 호흡이 뭘 그리도 긴지 아는 게 많으신 분한테 얘기하니 쇼팽은 젊음이라서! 이 클라이맥스로 들어가기 전에 팔이 어떤지 유심히 관찰해봤다. 그러고 나서 팔에 힘이 들어갔다는 걸 감지했는데 그 느낌이 맞았다. 피아니시모던데... 그것도 조금씩 커지는 다이내믹조차 아니었다. 2010년 결선에서 3악장 연주할 때 힘 빠져서 소리가 기어들어간 율리아나가 떠올랐다. 예선에서는 맨 처음 나와서 점점 순위가 밀리다가 탈락할 줄 알았다. 하지만 연주 여행을 많이 다닌 내공이 있어서인지 1라운드부터 무대를 즐기면서 피아노를 잘 요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건 내가 5년 전에 2010년 대회 참가자들을 공부해봐서 아는 기분 탓도 있다. 히히히! 2010년에는 가와이로 연주했고 3라운드에서 탈락했지만 이번에는 재도전하여 결선까지 올라왔다. 3악장 절정까지는 잘 하고 있었는데... 이후가 좀 아쉽다. 파치올리 피아노의 음색도 그렇고. 박수는 오케스트라 반주가 끝나갈 때 터졌다. 연주가 끝나고 나서 무대에 한 번 더 나와서 인사. 직관하면서도 2010년 대회에 더 애착이 가는데 당시의 참가자들을 여기에서 만난 게 한편으로는 반가웠다. 이번에도 가슴으로 2010년의 무대를 바라볼 줄 알았는데 중간에 잠시 생각났을 뿐 2021년의 무대에 집중했다.



첫째 날은 1번 협주곡의 밤이었다. 밖으로 나오니 가랑비가 오는데 우산이 없어서 겉옷에 있는 모자를 쓰고 왔다. 9시 40분에 끝나서 호텔로 돌아오니 10시. 동생한테 며칠 전에 먹은 김치찌개가 생각보다 맛없었고 그쪽 입맛에 맞춘 것 같다고 얘기하니, 우리나라는 조미료 써서 그럴 거라면서 미원이나 다시다 넣으면 웬만하면 우리나라 입맛이 된다고 하더라고. 결선이 열리기 전까지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시몬 네링에 대한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쇼팽 콩쿠르에 다시 나온 게 자의 반 타의 반인 것 같다. <피아노의 숲> 만화책을 보면 폴란드가 자국 우승자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 줄 아느냐는 대사가 있다. 그 대목을 보면서 전 세계에서 쇼팽 콩쿠르 우승이 가장 간절한 나라는 일본 아닌가 생각했는데 한편으로는 공감되기도. 네링이 어린 시절부터 콩쿠르 여기저기 나가면서 늘 잘 되었던 것도 아니라고 말했지만, 이번에는 정말 다른 때보다도 상실감이 클 것 같다. 네링이 과거의 몇몇 대회들에서 우승까지 닿지 못했던 재수생들의 한을 풀어줬으면 했다. 다신 나오기 힘들 재수생 최초 우승이라는 역사적 순간을 볼지도 모른다는 꿈에 부풀어 바르샤바로 날아왔는데... 이렇게 쇼팽 콩쿠르에서 재수생의 우승이 허락되지 않았다. 네링이 말아먹은 대회의 개수도 11개로 워낙 많았고. 그게 자꾸 걸리더니만 결국 이렇게 되었다. 보통 큰 대회, 특히 3대 콩쿠르 우승자들은 말아먹은 대회 개수의 상한선이 3개. 네링의 좌절과 함께 이번 대회에서 입상 경력이 뛰어난 참가자들이 몇 안 되는 걸 틈타(?) 네링을 앞세워 우승하려고 했던 폴란드의 눈물을 느꼈다. 네링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쉬움은 결선을 쭉 지켜보면서 차차 걷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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