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piano bachelor, piano music lover, CD collector and classical music information's translator. Also KakaoTalk character Tube 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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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의 후기 작품들을 연주한 피아니스트 게오르기스 오소킨스의 데뷔 앨범이다. 오소킨스는 라트비아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19세에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국제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유명 피아니스트이자 교수인 세르게이 바바얀은 그를 “진정한 쇼팽주의자로서 보기 드문 자질을 가지고 있다.”라고 평가했으며, 드미트리 바쉬키로프는 “이 젊은 예술가는 특출한 재능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깊은 직관력, 미사여구에 대한 강한 센스 그리고 흠집 없는 기교에 근거한 음악적 본질을 연주한다.
Track
01 Berceuse in Db, Op. 57 / 자장가
02 Piano Sonata No. 3 in b, Op. 58: I. Allegro maestoso / 피아노 소나타 3번
03 Piano Sonata No. 3 in b, Op. 58: II. Scherzo. Molto vivace
04 Piano Sonata No. 3 in b, Op. 58: III. Largo
05 Piano Sonata No. 3 in b, Op. 58: IV. Finale. Presto non tanto
06 Mazurkas, Op. 59 No. 1 in a / 3개의 마주르카 작품 59
07 Mazurkas, Op. 59 No. 2 in Ab
08 Mazurkas, Op. 59 No. 3 in f#
09 Barcarolle in F#, Op. 60 / 뱃노래
10 Polonaise-fantaisie in Ab, Op. 61 / 환상 폴로네즈
11 Souvenir de Paganini in A, Op. posth. / 파가니니의 추억
"This young musician is exceptionally talented." - Dmitri Bashkirov
“이 젊은 예술가는 특출한 재능이 있다.” - 드미트리 바쉬키로프
"I was deeply impressed by his performance. He has a very rare gift of a true Chopinist." - Sergei Babayan
“나는 그의 연주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진정한 쇼팽주의자로서 보기 드문 자질을 가지고 있다.” - 세르게이 바바얀
Critics have called you "exceptional", "unpredictable", and "original". Do you identify with these adjectives?
비평가들은 당신을 “특출한”, “예측할 수 없는”, “독창적인” 사람으로 불렀습니다. 이 형용사들이 와 닿으시나요?
I do agree with the word "unpredictable". For me it is a compliment, because every time I play, I try to play differently. I think this is overtly the right approach, especially while interpreting Chopin's music. Chopin himself played like that when he performed. One of his students even remembered that Chopin told him to play exactly like him, but the master's interpretation changed every time he performed.
저는 “예측할 수 없는”이라는 단어에 동의합니다. 제게 그건 칭찬인데, 연주할 때마다 다르게 하려고 하기 때문이죠. 특히 쇼팽의 음악을 해석할 때, 이것이 명백히 올바른 접근이라고 생각해요. 쇼팽은 자신이 연주했을 때 그렇게 했거든요. 심지어 그의 제자들 중 한 명은 쇼팽이 자신과 같이 연주하라고 말했지만, 그가 연주할 때마다 거장의 해석이 바뀌었다는 것을 기억했죠.
How do you find a balance between having your own voice and being true to the composer's intentions?
자신의 목소리를 갖는 것과 작곡가의 의도에 충실해지는 것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찾을 수 있나요?
It is very difficult and subjective for every musician, not only pianist. I believe that when we play, we naturally express ourselves. We play through the prism of our personality, so naturally every interpretation is different. As a pianist you build your own concept of a particular piece and then present your interpretation to the audience. Some might say that I show my personality too much, but especially with Chopin, who is so close to my heart, it is important to share my vision. For me there are no compromises here.
피아니스트뿐만 아니라 모든 음악가에게 매우 어렵고 주관적입니다. 저는 우리가 연주할 때 자연스럽게 자신을 표현한다고 믿어요. 우리는 개성의 프리즘을 통해(각자 개성적으로) 연주하므로 자연스럽게 모든 해석이 다릅니다. 피아니스트로서 당신은 특정 곡에 대한 자신만의 개념을 구축한 다음 청중에게 당신의 해석을 보여주죠. 개성을 너무 많이 보여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특히 제 마음에 가까울 정도인 쇼팽으로 제 비전을 공유하는 게 중요해요. 제게 여기에는 타협이 없어요.
What do you admire about his music?
그의 음악에 대해 감탄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I feel an emotional connection to his music. It is very special to me, though I cannot say I like every single piece. I think that no pianist who wants to be honest would say that he or she likes all works of a particular composer. In terms of Chopin, his pieces are so individual, so special and unique. What I love about Chopin is that there is so much symbolism in his music, even more than in Bach, whom Chopin admired. By the way, it was Bach, not his own works, that he practiced before his performances. For example, Chopin often used the symbol of a cross, which is very important in the development of "Polonaise-Fantasie [in A-flat major, Op. 61]", but he also built his own systems of symbols, not so visible and obvious. His language overall is difficult and complex, and his compositions, especially late ones, are extremely well structured, like Beethoven's. He never has problems with structure (unlike Schumann or Liszt, for example, who did have such problems). In what I call "architecture" or "tectonics," he was simply a genius. His every piece is like gold, is so perfect. This is unique. His language is very interesting in developing the tonality and musical motifs. And then the melody connection is just wonderful. On top of that there is so much freedom in his music. It is all breathtaking.
저는 그의 음악에 대한 감정적인 관계를 느낍니다. 제가 모든 곡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제게는 매우 특별하죠. 피아니스트가 솔직해진다면 특정 작곡가의 모든 작품들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쇼팽의 관점에서 볼 때, 그의 곡들은 매우 개성적이고 매우 특별하며 독특해요. 제가 쇼팽에 대해 사랑하는 점은, 쇼팽의 음악에는 그가 존경했던 바흐보다 훨씬 더 많은 상징성이 있다는 거예요. 여담이지만 그는 공연하기 전에 자신의 작품들이 아닌 바흐를 연주했죠. 예를 들어 쇼팽은 <환상 폴로네즈> 전개에 매우 중요한 십자가의 상징을 자주 사용했지만,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분명하지 않은 자신의 상징체계도 구축했죠. 그의 언어는 전반적으로 어렵고 복잡하며 특히 그의 후기 작품들은 베토벤처럼 매우 잘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는 구조에 문제가 없었어요. (예를 들어 그러한 문제가 있었던 슈만이나 리스트와는 달리.) 제가 “건축” 또는 “구조”라고 부르는 것에서 그는 그야말로 천재였죠. 그의 모든 곡은 금처럼 정말 완벽해요. 이건 독특한데요. 그의 언어는 음색과 음악적 모티프들의 발전에 있어 매우 흥미롭거든요. 그리고 멜로디 연결이 정말 훌륭해요. 게다가 그의 음악에는 정말 자유가 많아요. 모두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워요.
What is the thought behind your choice of this particular program on your debut CD?
데뷔 음반에서 이 특정 프로그램을 선택한 의도는 무엇인가요?
I love Chopin's late works. Every piece is so saturated and the language and every concept so individual. Performing these masterpieces takes a lot of emotional energy and concentration. While playing, I make so many discoveries because such complicated music material has different layers that you need to "decrypt".
쇼팽의 후기 작품들을 사랑하니까요. 모든 곡이 매우 강렬하며 언어와 모든 개념이 매우 개성적입니다. 이 걸작들을 연주하려면 많은 감정적 에너지와 집중이 필요해요. 연주하는 동안 저는 정말 많은 것을 발견했는데, 그런 복잡한 음악 소재에는 당신이 “해독”해야 하는 다양한 층들이 있기 때문이죠.
Is it important that all compositions come from subsequent opuses?
모든 곡들이 후속 작품들에서 나오는 것이 중요한가요?
Yes, for me it was a completely new experience - basically I took a period of the composer's oeuvre and tried to form a separate world with inner logic and dramatic development. I was stunned with my discovery that, just as in Beethoven's last three piano sonatas, which are strongly connected, Chopin also forms some allusive chains between these opuses despite different genres. I perceive this recording as a one lonely path from the first enigmatic bars of "Berceuse" till the last significant chord of "Polonaise-Fantasie". And "Souvenir de Paganini" is just such a marvelous and adorable piece, which, unfairly, is performed quite seldom.
네, 제게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는데, 기본적으로 작곡 시기를 분석하여 내면의 논리와 극적인 발전을 가진 별개의 세계를 형성하려고 노력했죠. 강하게 연결된 베토벤의 3개의 후기 피아노 소나타(30~32번)와 마찬가지로, 쇼팽도 다른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들 사이에 암시적인 사슬을 형성한다는 걸 발견하고 놀랐어요. 저는 이 녹음을 <자장가>의 수수께끼 같은 첫 번째 마디에서 <환상 폴로네즈>의 마지막 중요한 화음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외로운 경로로 인식해요. 그리고 <파가니니의 추억>은 굉장히 멋진 사랑스러운 곡이지만, 거의 연주되지 않아서 유감이네요.
You also spent a lot of time studying Chopin's life and his era. What did you find inspiring about the composer's life?
당신도 쇼팽의 인생과 그의 시대를 공부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요. 작곡가의 삶에서 어떤 영감을 얻으셨나요?
There are several things that I found fascinating. I think he reached a high level of maturity, not only as a composer but also as a human being, enormously early. Through his life experiences, he was already an old man in his early twenties. And at that age, his compositions were so difficult and his music language so sophisticated. He lived quite a tragic life; he left his country at a terrible time, and this had a tremendous influence on his music. Every pianist needs to be aware of this. You also have to know Poland, the Polish people, and Polish folklore to understand what Chopin wanted to convey in his music. Then we need to remember that while writing this wonderful music, he was ill. He must have been very strong in spirit. I admire him for that.
제가 매력을 발견한 몇 가지가 있는데요. 그가 작곡가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아주 일찍부터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고 생각해요. 그는 인생 경험을 거치면서 이미 20대 초반의 노인이었어요. 그리고 그 나이에 그의 작품들은 매우 까다로웠으며 그의 음악 언어는 매우 정교했죠. 그는 비극적인 삶을 살았는데, 끔찍한 시기에 조국을 떠났으며, 이것은 그의 음악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죠. 모든 피아니스트는 이걸 알고 있어야 합니다. 쇼팽이 자신의 음악에서 무엇을 전달하려고 했는지 이해하려면 폴란드, 폴란드인, 폴란드 전통 문화도 알아야 하고요. 그런 다음 우리는 이 멋진 음악을 쓰는 동안 그가 아팠다는 걸 기억해야 하죠. 그는 강한 정신을 지니고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그를 존경합니다.
Did you ever imagine you would get so far in the 17th International F. Chopin Competition?
제17회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지금까지 진출할 것이라고 상상한 적이 있었나요?
While playing during the different stages, the word "competition" did not exist in my mind. Every time I played, I tried to feel the energy of the concert hall, and I played for the audience. It was just as if I was playing the first, second and third recital. An atmosphere of competitiveness is the most evil thing for art, as Glenn Gould said. So I completely abstracted myself from the competition. While playing, I was far away. For me the most important stage was the first one, in October [2015]. Playing in the legendary concert hall, in front of the most admired musicians and pianists in the jury, was quite nerve-wracking. I knew that if they accepted my way of interpreting Chopin at that point, I could go very far.
다른 무대들에서 연주하는 동안 “경쟁”이라는 단어는 제 마음에 없었어요. 연주할 때마다 콘서트홀의 에너지를 느끼면서 청중을 위해 연주했죠. 마치 제가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리사이틀을 연주하는 것 같았어요. 글렌 굴드가 말했듯이, 경쟁적인 분위기는 예술에 있어 최악입니다. 그래서 저는 경쟁에서 완전히 추상적이었죠. 연주하는 동안 멀리 떨어져 있었어요. 제게 가장 중요한 무대는 2015년 10월의 1라운드였어요. 전설적인 콘서트홀에서 심사위원단에 있는 가장 존경받는 음악가들과 피아니스트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은 매우 긴장되었는데요. 그 시점에서 그들이 제가 쇼팽을 해석하는 방식을 받아들인다면, 저는 아주 멀리 갈 수 있다는 걸 알았죠.
Tell us more about your bench. Are you playing on it everywhere you go?
당신의 피아노 의자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어딜 가든지 이 의자에 앉아서 연주하시나요?
Yes, this bench is very special and it truly forms a part of my body when I'm on stage. I kindly asked Mr. Paolo Fazioli to make it and he made this piece of art. The main point is not that it's quite low or easily transportable but that it's very light with soft material of the seat. This combination together with specific use of the body allows me to get special sound that I'm searching for. Now, I cannot imagine performing on a different piano bench.
네, 이 의자는 매우 특별하며 제가 무대에 있을 때 진정으로 제 몸의 일부가 됩니다. 파올로 파치올리(파치올리 피아노사의 창설자) 씨에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는데 이 예술품을 만들어주셨죠. 중요한 점은 매우 낮거나 쉽게 운반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부드러운 시트 소재로 매우 가볍다는 것입니다. 신체의 특정한 사용과 함께 이 조합을 통해 제가 찾고 있는 특별한 소리를 얻을 수 있게 해줘요. 지금은 다른 피아노 의자에 앉아서 연주하는 걸 상상할 수 없네요.
You come from a family full of professional musicians. Did you ever want to be someone else?
당신은 전문 음악가 집안 출신인데요. 다른 직업을 가지고 싶었던 적이 있었나요?
I really had no choice, but not in a negative way. I basically grew up under a piano. My parents and my brother always played on grand piano that we had in our small apartment. My mother was the one who taught me how to practice wisely. She really supports me with brother when we are on tour. Father is my teacher for a long time already and the lessons with him or just deep discussion about the art are always full of new discoveries causing new ideas. Music was my life from early childhood, and it was natural for me to become a pianist. At the age of four or five, I started to play, and it came very easily. What is important is that I started to play in public early. These were small concerts, but I instantly felt comfortable on stage. I can't say that I am not nervous, but because I started performing at an early age, I feel comfortable. This whole process of becoming a musician was very natural for me. I have also composed some small pieces for movies and documentaries, and some just for myself. I think that every pianist should compose and should be able to improvise. Last year I also started conducting. It influences the way you play. I think that a musician should be able to do everything and develop all aspects of music. Listening to some pieces for choir, for example, helped me understand Chopin better, and the vocal nature of his music in particular.
실제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부정적인 방식은 아니었어요. 저는 기본적으로 피아노와 함께 성장했는데요. 부모님과 형은 항상 우리가 사는 작은 아파트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를 연주했죠. 제게 현명하게 연습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신 분은 어머니였어요. 어머니는 실제로 형과 함께 투어를 다닐 때 저를 지원해주시죠. 아버지는 이미 오랫동안 저의 선생님이며 아버지와의 레슨이나 예술에 대한 깊은 토론은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일으키는 새로운 발견으로 가득 차 있어요. 음악은 어린 시절부터 제 삶이었으며, 피아니스트가 된 것은 당연했죠. 4~5세에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되게 쉬웠어요. 중요한 건 제가 일찍 공개 연주를 시작했다는 것이죠. 작은 연주회들이었지만, 즉시 무대에서 편안함을 느꼈어요. 긴장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릴 때부터 연주를 시작했기 때문에 편하게 느껴져요. 음악가가 되는 이 모든 과정은 제게 매우 자연스러웠죠. 저는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위한 곡들도 작곡했는데, 일부는 제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저는 모든 피아니스트가 작곡을 하고 즉흥 연주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년에는 지휘도 시작했어요. 당신이 연주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죠. 음악가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음악의 모든 면을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몇몇 합창곡들을 듣는 것은 제게 쇼팽, 특히 그의 음악의 성악적인 특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줬어요.
Tell us something about your interests and inspirations.
당신의 관심사와 영감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My inspirations come from different genres of art. I like literature, visual arts and movies. I build my own conception for every musical piece through the use of my imagination, which I feel with my fantasies inspired by books and great paintings. I adore such artists like Bruegel, Bosch or Delacroix. Nature also inspires me, it is mirror of God.
제 영감은 다양한 장르의 예술에서 비롯됩니다. 저는 문학, 시각 예술, 영화를 좋아해요. 제 상상력을 발휘하여 모든 음악 작품에 대한 제 자신의 개념을 구축하는데, 책과 위대한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제 환상으로 느낍니다. 저는 대 피터르 브뤼헐, 히에로니무스 보스, 외젠 들라크루아 같은 화가들을 좋아해요. 자연도 제게 영감을 주는데, 신의 거울입니다.
Everyone has good days and bad days, and you need to learn how to make adjustments - mentally, physically and emotionally. I agree with a saying that the pianist's stage is the loneliest place on earth. You are in your own world, with your imagination, with no help, no compass. And I believe it must be so. If I wanted to draw a bigger picture, everything I do with music comes with life experience and how I understand the world. Unfortunately, sometimes for the feelings expressed with your art you have to pay a very high price in life.
누구나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지만, 조절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요. 피아니스트의 무대는 지구상에서 가장 외로운 곳이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당신은 자신의 상상력을 가지고, 도움 없이, 나침반 없이 당신 자신의 세계에 있죠. 그리고 저는 그게 틀림없다고 믿어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제가 음악으로 하는 모든 것에는 삶의 경험과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지가 딸려 있습니다. 불행히도 때때로 당신의 예술로 표현되는 감정에 대해 당신은 인생에서 매우 높은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Bożena U. Zaremba, editor, Chopin Notes / 보제나 U. 자렘바, 쇼팽 노트 편집자
Chopin Society of Atlanta / 애틀랜타 쇼팽 협회
Georgijs Osokins caused a sensation at the 17th International Chopin Piano Competition in 2015 when he was dubbed by critics as "Exceptional and unpredictable". He was too much a "revolutionary" to be one of the prize winners; however, being a finalist proved enough. After the competition the audience favourite was so much in demand that just five days after the competition he was invited to perform in Poznan, Gdansk, Szczecin, Lublin, Krakow and Katowice, followed by monthly invitation for concerts in Poland through next November. Even before the finals, he walked away with opportunities often reserved just for prize winners, as invitations from three continents started pouring in for a solo recital at the prestigious "Chopin and his Europe" festival in Warsaw and for his first Japan tour, as well as invitations from three continents for concerts and recordings. These include a performance at the NOSPR Concert Hall in Katowice, the Tokyo Metropolitan Theatre Hall, Berlin Konzerthaus and recitals in Switzerland, Germany, the United States, Russia, Austria, and the United Kingdom. Born into a family of predominantly pianists, Georgijs Osokins began his studies with his father, Professor Sergejs Osokins, a prominent teacher and pianist in Latvia, and he was occasionally tutored by Mikhail Voskresensky, Sergei Babayan, Georg Friedrich Schenck, Bernd Goetzke and Dmitri Bashkirov.
게오르기스 오소킨스는 2015년 제17회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비평가들에 의해 “특출하고 예측할 수 없는” 연주로 돌풍을 일으켰다. 입상자가 되기에는 너무나도 “혁명적”이었지만, 파이널리스트로 충분히 증명되었다. 청중의 인기를 얻어 콩쿠르가 끝난 후 5일 만에 포즈난, 그단스크, 슈체친, 루블린, 크라쿠프, 카토비체에 연주 초청을 받았으며, 이어서 이듬해 11월까지 폴란드에서의 콘서트를 위한 월간 초청을 받았다. 결선 이전부터 그는 콘서트와 레코딩뿐만 아니라 저명한 바르샤바 <쇼팽과 그의 유럽> 페스티벌과 첫 일본 투어에서의 독주회를 위한 3대륙 초청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종종 입상자들만을 위한 기회를 손쉽게 챙겨서 떠났다. 여기에는 카토비체 NOSPR(폴란드 라디오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 콘서트홀, 도쿄국립극장 강당,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연주, 스위스, 독일, 미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영국 리사이틀이 포함된다. 주로 피아니스트로 구성된 집안에서 태어난 게오르기스 오소킨스는 그의 아버지이자 라트비아에서 저명한 교육자 겸 피아니스트인 세르게이스 오소킨스 교수를 사사했으며, 때로는 미하일 보스크레젠스키, 세르게이 바바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쉥크, 베른트 괴츠케, 드미트리 바쉬키로프의 지도를 받았다.
Osokins's successes include winning the top prize in both the 9th International Moscow Frederick Chopin Competition for Young Pianists (2014) and the 9th Alexander Scriabin International Competition in Paris (2009) and receiving the Latvian Ministry of Culture Award. In March 2016 Georgijs Osokins received the Latvian Grand Music Award which is the highest honor in the music industry of Latvia. Since his public debut with the Latvian National Symphony Orchestra at the age of 10, he has appeared with the Amadeus Chamber Orchestra, Tokyo New City Orchestra, Sinfonietta Cracovia, the Lviv Symphony Orchestra and the Liepaja Symphony Amber Orchestra and Warsaw Philharmonic Orchestra.
게오르기스 오소킨스는 2014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9회 쇼팽 청소년 국제피아노콩쿠르 1위 없는 공동 2위 및 2009년 파리에서 열린 제9회 스크리아빈 국제피아노콩쿠르 1위에 입상했으며 라트비아 문화부 장관상을 받았다. 2016년 3월에는 라트비아 음악 산업에서 최고 영예인 라트비아 음악 대상을 받았다. 10세에 라트비아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공개 데뷔한 이후 아마데우스 실내 오케스트라, 도쿄 뉴 시티 오케스트라, 신포니에타 크라코비아, 리비우 심포니 오케스트라, 리예파야 심포니 앰버 오케스트라,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Text by Madame Nakako Watanabe (General Intendant of Tokyo New City Orchestra) / 도쿄 뉴 시티 오케스트라 총감독 나카코 와타나베 글
지금은 별로 기억나지 않는 2015 쇼팽 콩쿠르. 마지막 트랙은 오소킨스가 쇼팽 콩쿠르에서 연주했던 곡으로 거기에서 이 곡을 처음 들어봤던 걸로... 이 음반을 고음질로 구하지 못했는데 한동안 찾다가 8월 9일에 알게 되었다. 하지만 7월 10일에 올라왔던 자료라서 받아지다 말았다. 어떻게 구할까 며칠 동안 고민하다가 토렌트 사이트에서 그날 올라온 댓글들에 있는 사용자들에게 쪽지를 보냈다. 한 30통 보냈나? 그렇게 해서 여기저기 도움을 받아 고음질을 품에 안았다. 도움 주신 분들한테는 오소킨스의 다른 음반들을 공유해줬다. 유튜브에서 안 듣고 있었는데 계속 안 구해지니 항복하고 그렇게라도 들어야 할 것 같았다. 결국 맘에 들어서 고음질로 가져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바쉬키로프가 오소킨스의 쇼팽을 높이 평가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오소킨스가 재도전하는데 음반 듣고 나서 쇼팽 콩쿠르 결선까지 또 들어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쇼팽 콩쿠르는 이미 파이널리스트였으면 또 나왔을 때 봐가지고 2차까지만 기회를 줬기에...... 이 포스팅은 내지가 구해진 관계로 지우고 다시 작성했다. 입상 경력은 잘못 나와 있어서 살짝 고쳤다.
Chopin: The Women Behind the Music / 쇼팽의 음악 뒤에 있는 여성들
Documentary about the life of the great pianist and composer Chopin and the story of the women whose voices inspired his music.
위대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쇼팽의 삶에 대한 다큐멘터리와 그의 음악에 영감을 준 목소리를 가진 여성들의 이야기.
It is undeniable that Chopin revolutionized the nature of music composed for the piano both technically and emotionally. What is less well known is that the actual musical instrument that provided his greatest source of inspiration was the female voice.
쇼팽이 기술적으로나 감정적으로 피아노로 작곡된 음악의 본질에 혁명을 일으켰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그의 가장 큰 영감의 근원을 제공한 실제 악기가 여성의 목소리였다는 것이다.
To mark the 200th anniversary of Chopin's birth, this film follows young pianist James Rhodes on a journey to Warsaw, Paris and London to discover the real women who had such a powerful influence on the composer.
쇼팽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 필름은 작곡가에 대한 영향력이 큰 여성들을 찾기 위해 바르샤바, 파리, 런던으로 향하는 여행에서 젊은 피아니스트 제임스 로즈를 따른다.
Exploring the events of Chopin's life, Rhodes encounters the singers who enchanted the composer with their voices: Konstancja, a young soprano and the object of his teenage affections; Delfina, the sexually notorious Polish Parisian emigre countess; fellow composer and opera singer Pauline Viardot; and, during the final few months of his life, the Swedish operatic superstar Jenny Lind.
쇼팽의 인생의 사건들을 탐험하면서 로즈는 그들의 목소리로 쇼팽을 매료시킨 가수들과 만난다. 여기에는 젊은 소프라노이자 쇼팽이 10대에 영향을 받은 대상인 콘스탄차, 성적으로 악명 높은 파리 이민자인 델피나, 동료 작곡가이자 오페라 가수인 폴린느 비아르도, 쇼팽의 말년에 영향을 준 스웨덴 오페라 슈퍼스타 예니 린트가 포함된다.
Threaded through the narrative of the film is a selection of Chopin's piano music performed by Rhodes, while rising young opera singer Natalya Romaniw performs some of the signature arias that thrilled Chopin.
필름의 이야기 진행을 관통하는 것은 로즈가 연주하는 쇼팽의 피아노 음악의 일부이며, 떠오르는 젊은 오페라 가수인 나탈리아 로마니우는 쇼팽을 황홀하게 만들었던 상징적인 아리아들의 일부를 노래한다.
Featuring contributions from Chopin experts including the interpreters Emanuel Ax and Garrick Ohlsson, his biographer Adam Zamoyski and piano guru Jeremy Siepmann.
피아니스트 에마누엘 액스와 개릭 올슨, 쇼팽의 전기 작가인 아담 자모이스키, 피아노 전문가 제레미 시프만을 포함하는 쇼팽 전문가들의 공헌을 소개한다.
English Subtitles / 영어 자막
[BGM: Chopin Nocturne in b flat, Op. 9 No. 1 / 쇼팽 녹턴 1번]
Gentle Melodic Music. This is the unmistakable sound of Frederic Chopin. A shy and private man, his music speaks of raw emotion and his sublime compositions for the piano inspire profound passion in both players and listeners. Chopin wrote over 250 compositions for the piano and drew from the instrument an intense singing quality. The inspiration for his music was not only the keyboard, but also the human voice, in particular, the female voice. As we celebrate Chopin's 200th anniversary, we follow a young pianist as he sets out to discover who put the song into Chopin.
부드러운 멜로디의 음악. 이것은 프레데릭 쇼팽의 틀림없는 소리. 수줍어하고 은밀한 남자, 그의 음악은 생생한 감정을 말하고 그의 피아노를 위한 숭고한 작품들은 연주자와 청취자 모두에게 깊은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쇼팽은 250개 이상의 피아노곡들을 썼고 악기에서 강렬한 고급 노래를 끌어냈다. 그의 음악에 대한 영감은 건반뿐만 아니라 인간의 목소리, 특히 여성의 목소리였다. 우리는 쇼팽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젊은 피아니스트를 따라 쇼팽(의 음악)에 누가 노래를 넣었는지 찾기 위해 젊은 피아니스트가 여행을 시작하는 것처럼 그를 따른다.
Chopin: The Women behind the Music / 쇼팽의 음악 뒤에 있는 여성들
[BGM: Chopin Ballade No. 4 in f, Op. 52 (performed by James Rhodes) / 쇼팽 발라드 4번 (제임스 로즈 연주)]
James Rhodes: Do I identify with Chopin as a man? On some level, yeah, of course I do. It seems like the most arrogant thing in the world to say that I identify with Chopin as a man, but if I look at the emotions within him, then hell, yeah. I mean, the kind of malaise that he said, the awkwardness.
제임스 로즈 : 제가 쇼팽을 남자로 여길 수 있을까요? 어느 정도는, 그래요, 물론 저는 그렇게 여겨요. 쇼팽이 남자로 확인된다고 말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제가 그 사람 안에서 감정을 본다면 지옥, 그렇습니다. 제 말은, 그가 말한 불안감, 다루기 어려움의 일종이에요.
James Rhodes studied the piano as a teenager, but never went to music college. He went to work in the city, but in his late 20s, he couldn't resist his desire to play any longer. Now 34, he's a full-time concert pianist with a recording contract and with a youthful and growing following.
제임스 로즈는 10대일 때 피아노를 공부했지만 음대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시에서 일하러 갔지만, 20대 후반에 그는 더 이상 연주하고 싶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34세인 그는 음반 계약을 맺고 있는 젊고 뒤이어 커가는 전업 콘서트 피아니스트이다.
James Rhodes: I'm obsessed with music. I live for the piano. I am not entirely comfortable with people or in the outside world. The only big difference I would say is that I have maybe a thousandth of the genius that he actually had.
제임스 로즈 : 저는 음악에 사로잡혀 있지요. 저는 피아노를 위해 살아요. 저는 사람들이나 외부 세계에 완전히 만족하지 않습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큰 차이점은 그가 실제로 갖고 있는 천재성의 1000분의 1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Chopin's genius was to create a whole new language for the piano, a language that was heavily influenced by his passion for singing, opera singing.
쇼팽의 천재성은 노래에 대한 열정, 오페라 노래에 크게 영향을 받은 언어인 피아노의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만드는 것이었다.
[BGM: Aria from Rossini's opera "The Barber of Seville" (The Royal Opera House 2005) / 로시니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에 나오는 아리아 (2005년 로열 오페라 하우스 공연)]
Chopin was obsessed with the popular, vocally athletic Italian opera of the day known as "bel canto", the opera of Bellni, Donizetti and Rossini.
쇼팽은 벨리니, 도니제티, 로시니의 오페라에 나오는 “벨칸토” 창법처럼 오늘날 인기 있는, 탄탄한 목소리의 이탈리아 오페라에 사로잡혀 있었다.
Jeremy Siepmann (Pianist, teacher & biographer of Chopin): Now, bel canto, literally "beautiful singing", the bel canto ethos, as you might say.....was obviously nourished and to a certain extent formed by what he heard as a child in Warsaw. But I think it was so much a part of his whole aesthetic background that had he not heard it, he would have invented it.
제레미 시프만 (피아니스트, 교육자, 쇼팽 전기 작가 : 현재, 벨칸토는 말 그대로 “아름다운 노래”인데, 당신이 말할 수 있듯이 벨칸토 정신은.....분명히 키워졌고 어느 정도는 바르샤바에서 그가 어린 시절에 들었던 것에 의해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그가 듣지 못했던 그의 전체적인 미적 배경의 상단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는 그것을 발명했을 것입니다.
[BGM: Sings aria in Italian. / 이탈리아어로 아리아를 부른다.]
Adam Zamoyski (Chopin Biographer): To Chopin, the voice was the ultimate musical instrument. It was the ultimate art form. And he was, I think, fascinated by any woman who could really sing.
아담 자모이스키 (쇼팽 전기 작가) : 쇼팽에게 목소리는 궁극적인 악기였습니다. 궁극적인 예술 형태였죠. 그리고 제 생각에 그는 진정으로 노래할 수 있는 여성에게 매력을 느꼈습니다.
[BGM: Chopin Nocturne in b flat, Op. 9 No. 1 / 쇼팽 녹턴 1번]
Who were these singers that were so important to Chopin? What influence did they have on his music? As a Chopin-besotted pianist, James is keen to answer these questions and has enlisted the help of rising star, 23-years-old Welsh opera singer, Natalya Romaniw.
쇼팽에게 그렇게 중요한 이들 가수들은 누구였을까? 그들은 그의 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쇼팽에 취한 피아니스트처럼, 제임스는 이 질문들에 답하기를 열망하며 23세의 떠오르는 스타인 웨일스의 오페라 가수 나탈리아 로마니우의 도움을 받았다.
James Rhodes: OK. Right, come on. All right. OK. Are you ready?
제임스 로즈 : 오케이, 좋아요, 어서 해보자고요. 좋아요. 오케이. 준비됐나요?
[BGM: Chopin Nocturne in b flat, Op. 9 No. 1 (performed by James Rhodes) / 쇼팽 녹턴 1번 (제임스 로즈 연주)]
[She sings melody. / 그녀가 쇼팽 녹턴 1번의 멜로디를 노래한다.]
James Rhodes: Wow!
제임스 로즈 : 와우!
Natalya Romaniw: That's really got a lot of legato line in it for the voice.
나탈리아 로마니우 : 목소리를 내는 데 정말 많은 레가토(부드럽게 연결) 라인이 있네요.
James Rhodes: It's operatic, isn't it?
제임스 로즈 : 오페라 같지 않나요?
Natalya Romaniw: Yeah.
나탈리아 로마니우 : 맞아요.
BGM: Chopin Etude in a, Op. 25 No. 4 / 쇼팽 에튀드 작품 25-4]
James is undertaking a journey which he hopes will help him to discover the real women whose voices can still be heard inside Chopin's music. The journey begins in Warsaw, the city where Chopin grew up, the city he always thought of as home and which is now celebrating his 200th anniversary as the nation's great cultural hero. Chopin was born in 1810 and grew up in Warsaw where his father was a teacher at a time when Poland was peaceful and the city was enjoying a cultural renaissance. This was an era when piano makers, encouraged by composers like Beethoven, were rapidly modernising the piano, transforming it into a stronger, more resonant and increasingly popular and affordable instrument for the educated classes. In this environment, it was no surprise that Chopin was taught by his mother to play the piano. What was extraordinary was that by the age of seven, he was already composing on the instrument, and by the age of eight, he was being feted in the press as a musical genius. Zofia Chechlinska is a leading academic from Warsaw's Chopin Institute and an expert on Chopin's early life.
제임스는 그가 쇼팽의 음악 속에서 여전히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진정한 여성들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는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쇼팽이 자란 도시, 그가 항상 집으로 생각하고 현재 국가의 위대한 문화 영웅의 탄생 200주년을 축하하고 있는 도시인 바르샤바에서 시작된다. 쇼팽은 1810년에 태어나 폴란드가 평화로우며 도시가 문화적 르네상스를 누리고 있는 시기에 아버지가 선생님이었던 바르샤바에서 자랐다. 베토벤과 같은 작곡가가 장려한 피아노 제작자가 피아노를 빠르게 현대화하여 교실 수업을 위해 더욱 강력하고 대중적이며 합리적인 가격의 악기로 변모시킨 시대였다. 이 환경에서, 쇼팽이 피아노를 연주하기 위해 그의 어머니에 의해 가르쳐졌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비범한 사실은 7세 때 이미 악기로 작곡하고 있었고, 8세 때 언론계에서 음악 천재로 불렸다는 것이다. 조피아 헤흘린스카는 바르샤바의 쇼팽 협회에서 수석 학자이며 쇼팽의 초기 생애에 대한 전문가이다.
Zofia Chechlinska (Professor, Chopin Institute in Warsaw): He was surrounded by music. He was quite young. He was 10, 11, 12 when he started to go to the opera. He loved opera. There are many evidences that he loved opera. And he loved singing. There was contact with Angelica Catalani who performed here in Warsaw.
조피아 헤흘린스카 (교수, 바르샤바 쇼팽 협회) : 그는 음악으로 둘러싸여있었죠. 그는 매우 어렸어요. 그가 오페라를 보러 가기 시작했을 때 10, 11, 12세였죠. 그는 오페라를 좋아했어요. 그가 오페라를 좋아한다는 많은 증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노래하는 것을 사랑했죠. 바르샤바에서 여기에서 공연한 안젤리카 카탈라니와의 접촉이 있었습니다.
Angelica Catalani, one of the great divas of the early 19th century, had an astonishing voice famed for its power and range.
안젤리카 카탈라니는 19세기 초의 위대한 디바 중 하나였으며, 그 힘과 범위로 유명한 놀라운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다.
Zofia Chechlinska: Chopin met her in one of the Warsaw salons where he performed. She said that he was wonderful and then she gave him a watch. It is in Chopin's Museum here with the caption, "To Frederic Chopin, 10 years old, pianist."
조피아 헤흘린스카 : 쇼팽은 바르샤바 살롱에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그가 멋졌다고 말했고 그녀는 그에게 시계를 주었습니다. 쇼팽 박물관에 “10세의 피아니스트 쇼팽에게”라는 (설명을 붙인) 캡션이 있습니다.
James Rhodes: Fantastic.
제임스 로즈 : 굉장하네요.
Zofia Chechlinska: Yes, yes.
조피아 헤흘린스카 : 네, 그렇죠.
Chopin's father Mikolaj taught in the main academy for the gentry in Warsaw, a post that provided his son with access to the city's educated and aristocratic society, a world in which the opera house played a pivotal role. Marita Alban Juarez, an expert on Chopin's Warsaw, took James to visit the reconstructed apartment where he lived with his parents.
쇼팽의 아버지 미콜라이(또는 미하우, 니콜라스)는 바르샤바에 있는 상류층을 위한 아카데미에서 가르쳤는데, 그의 아들에게 교양 있고 귀족적인 사교계, 즉 오페라 하우스가 중추적 역할을 한 세계에 대한 접근을 제공했던 지위였다. 쇼팽의 바르샤바 시절에 대한 전문가인 마리타 알반 후아레스는 쇼팽이 그의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재건축된 아파트에 제임스가 방문하게 했다.
Marita Alban Juarez: The living room.
마리타 알반 후아레스 : 거실이에요.
James Rhodes: Wow! So this is exactly where he was... he spent his teenage years. Because at 17, he was writing his piano concertos already.
제임스 로즈 : 와우! 그래서 이곳은 정확히 그가 있었던... 그가 10대를 보냈던 곳이네요. 17세 때부터 그는 이미 피아노 협주곡을 썼죠.
Marita Alban Juarez: Yes.
마리타 알반 후아레스 : 그렇죠.
James Rhodes: The 2nd Piano Concerto he wrote.
제임스 로즈 : 그가 썼던 피아노 협주곡 2번이네요.
Marita Alban Juarez: You know, in this room they had the first rehearsal for the piano concerto.
마리타 알반 후아레스 : 아시다시피 이 방에서 그들은 피아노 협주곡에 대한 첫 리허설을 가졌죠.
James Rhodes: Really?
제임스 로즈 : 정말요?
Marita Alban Juarez: And of course, his piano.
마리타 알반 후아레스 : 그리고 물론, 그의 피아노로요.
James Rhodes: Yes, look, this is the 2nd Concerto. The slow movement.
제임스 로즈 : 네, 보세요, 이건 2번 협주곡이에요. 느린 악장(2악장)이네요.
Marita Alban Juarez: Yes, this is the concerto. And this is Chopin's handwriting here. Until the last moment, he was correcting everything.
마리타 알반 후아레스 : 네, 이건 협주곡이에요. 그리고 여기 쇼팽이 손으로 쓴 흔적이 있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모든 것을 수정하고 있었죠.
James Rhodes: Yeah, amazing. Every note he thought about. I'm getting shivers just thinking this is the room it was done in. This is the room. Incredible.
제임스 로즈 : 네, 놀라워요. 그가 생각했던 모든 음들이요. 저는 방금 이것이 그가 작곡했던 방이라고 생각하면서 (기쁨에) 떨고 있네요. 이것은 방입니다. 놀랍네요.
[BGM: Chopin Piano Concerto in f, Op. 21: II. Larghetto / 쇼팽 피아노 협주곡 2악장]
James Rhodes: God. It's an amazing view!
제임스 로즈 : 하느님 맙소사, 놀라운 전망이네요!
Marita Alban Juarez: This is the gate of the university.
마리타 알반 후아레스 : 이것은 대학교 정문입니다.
James Rhodes: Right opposite?
제임스 로즈 : 바로 맞은편이요?
Marita Alban Juarez: Yes, it was the university campus.
마리타 알반 후아레스 : 네, 대학교 캠퍼스였어요.
James Rhodes: This is amazing. I can't believe Chopin himself would have looked out over here to see his friends coming over.
제임스 로즈 : 놀랍네요. 저는 쇼팽이 그의 친구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려고 여기를 들여다보았을 것이라고 믿을 수 없어요.
Marita Alban Juarez: Come on!
마리타 알반 후아레스 : 자! 오너라!
James Rhodes: Yes. And look at the girls coming out of the university.
제임스 로즈 : 그래. 그리고 대학에서 나오는 소녀들을 보세요.
At least one movement from one of the concertos that Chopin wrote and played in this apartment was inspired by a girl he might well have watched from this window. He wrote in a letter to a friend... "Because, perhaps to my misery, I already have my perfect one whom I have, without saying a word, served faithfully for a year now, of whom I dream and in whose memory the adagio of my concerto has been written." The girl he was writing about was Konstancja Gladkowska. She was 19, the same age as Chopin, and an opera singer at the Warsaw Conservatoire.
쇼팽이 이 아파트에서 작곡하고 연주한 협주곡 중 하나에서 적어도 한 악장은 그가 이 창에서 잘 보았을 것 같은 소녀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그는 친구에게 편지에 썼다... “아마도 내 불행 때문에, 나는 이미 내 완벽한 사람을 가지고 있어,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지금 1년 동안 내가 꿈꾸고 내가 쓴 협주곡의 아다지오(느린 부분)의 기억 속에 있는 사람에게 충실하게 봉사했어.” 그가 쓰고 있었던 소녀는 콘스탄차 그와드코프스카였다. 그녀는 쇼팽과 같은 나이인 19세였으며 바르샤바 음악원의 오페라 가수였다.
Zofia Chechlinska: She sang at the first concert Chopin gave, public concert. He said that was beautiful. Also when Chopin was already leaving Warsaw, she wrote that, "You go abroad, you will be famous, you will be well-known, you will make a career. But nobody will love you as we love you here."
조피아 헤흘린스카 : 그녀는 쇼팽이 가졌던 첫 공개 연주회에서 노래를 불렀어요. 그는 아름답다고 말했죠. 또한 쇼팽이 이미 바르샤바를 떠날 때, 그녀는 이렇게 썼죠. “해외로 나가면 유명해지고, 잘 알려질 것이며, 경력을 쌓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아무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것입니다.”
Marita Alban Juarez: He was sometimes working as an accompanist also. It happened, of course, in the conservatoire.
마리타 알반 후아레스 : 그는 때로는 반주자로서도 일하고 있었죠. 물론 음악원 내에서 일어난 거였죠.
James Rhodes: Is that how he met Konstancja?
제임스 로즈 : 그게 그가 콘스탄차를 만나게 된 거였나요?
Marita Alban Juarez: Yes, he met Konstancja during a recital. He fell in love and, you know... It was very, very sad moment for him because I think Konstancja didn't love him.
마리타 알반 후아레스 : 네, 그는 리사이틀 동안 콘스탄차를 만났습니다. 그는 사랑에 빠졌고, 아시다시피... 그에게는 매우, 매우 슬픈 순간이었는데, 왜냐 하면 저는 콘스탄차가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James Rhodes: OK.
제임스 로즈 : 오케이.
Marita Alban Juarez: He wasn't... He wasn't happy in his romances.
마리타 알반 후아레스 : 그는... 그는 그의 로맨스 속에서 행복하지 않았어요.
James Rhodes: Yeah. No musicians are happy in their romances, I don't think.
제임스 로즈 : 네. 저는 로맨스가 행복하지 않은 뮤지션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Much of the music that Chopin heard Konstancja sing was by Rossini. Natalya Romaniw has recently performed in a Rossini opera called "La Scala di Seta" about a girl who marries in secret and whose husband visits her at night with the help of a "Scala di Seta" - a ladder of silk.
쇼팽이 콘스탄차가 노래하는 것을 많이 들었던 음악은 로시니의 노래들이었다. 나탈리아 로마니우는 최근 <비단 사다리>라고 불리는 로시니의 오페라에서 공연해왔는데, 이 오페라는 비밀리에 결혼한 소녀와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비단 사다리(스칼라 디 세타)의 도움으로 밤에 방문한다는 내용이다.
Natalya Romaniw: We'll just play around with it.
나탈리아 로마니우 : 우리는 단지 그걸 가지고 놀 거예요.
James Rhodes: This is what Chopin would have heard when he went to the opera of hanging out with his singer friends?
제임스 로즈 : 이건 쇼팽이 성악 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오페라를 보러 갔을 때 들었을까요?
Natalya Romaniw: That's right! Yeah.
나탈리아 로마니우 : 맞아요! 네.
James Rhodes: So I'll come in at the start of the bar.
제임스 로즈 : 그래서 저는 마디의 시작에 들어올게요.
[He plays intro. / 그가 시작 부분을 연주한다.]
James Rhodes: That's too slow?
제임스 로즈 : 너무 느려요?
Natalya Romaniw: Yeah.
나탈리아 로마니우 : 네.
[She sings Rhythm. / 그녀가 리듬을 노래한다.]
Natalya Romaniw: OK...
나탈리아 로마니우 : 오케이...
[Plays more up-tempo / 더 빠른 속도로 친다.]
Giulia's Aria from Rossini's opera "La Scala di Seta" / 로시니 오페라 <비단 사다리> 중 줄리아의 아리아 발췌
# Quanto pena un'alma amante / 얼마나 괴로움이 사랑하는 영혼을 단결시키는지(?)
Quanto costa un vero amar / 진정한 사랑은 얼마입니까(?)
Quanto pena un'alma amante / 얼마나 괴로움이 사랑하는 영혼을 단결시키는지(?)
Quanto costa un vero amar / 진정한 사랑은 얼마입니까(?)
Confusa incerta mi sento vacillar / 혼란스러운 불확실함을 저는 우연히 발견한 느낌입니다(?)
Vacillar / 바칠라르 (불안정해요)
Confusa incerta mi sento vacillar / 혼란스러운 불확실함을 저는 우연히 발견한 느낌입니다(?)
Vacillar / 바칠라르
Va-ci-la-a-a / 바-칠-라-아-아
Vacillar-lar, vacillar! # / 바칠라르-라르, 바칠라르!
[They both lauph. / 그들 모두 웃는다.]
James Rhodes: So much fun. I love the piece. It's like two pages of an ending. It's just one massive ending.
제임스 로즈 : 정말 재밌네요. 저는 이 곡을 좋아해요. 엔딩의 두 페이지와 같아요. 그건 단지 하나의 거대한 결말이네요.
Natalya Romaniw: The chords are quite basic, but...
나탈리아 로마니우 : 화음이 매우 기초적이지만...
James Rhodes: Yeah, exactly.
제임스 로즈 : 네, 정확히요.
[Plays piece again. / 곡을 다시 친다.]
James Rhodes: I can really see how... You imagine in Warsaw or in Paris, a young Chopin with a beautiful singer with an amazing voice, sitting, just the two of them, with the candle on, singing the most beautiful Italian arias. It's incredibly intimate.
제임스 로즈 : 저는 정말로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바르샤바나 파리에서 놀라운 목소리를 가진 아름다운 가수와 함께 있는 젊은 쇼팽을 상상할 수 있는데, 그 중 두 명은 촛불을 켜고 가장 아름다운 이탈리아 아리아를 부르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친밀해요.
Natalya Romaniw: Yeah.
나탈리아 로마니우 : 네.
Jeremy Siepmann: I think his love of bel canto sprung actually more from his love of the voice, the capability of the voice and the immediacy of the voice. The voice, after all, is not only the most faithful and immediate servant of our musical impulse. The voice is the means by which we express throughout our lives almost all of our inner life.
제레미 시프만 : 저는 벨칸토 창법에 대한 그의 사랑이 실제로 그의 목소리에 대한 사랑, 목소리의 능력, 목소리의 직접성에서 더 많이 튀어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목소리는 우리의 음악적 충동의 가장 충실하고 즉각적인 시종일 뿐만 아니라, 목소리는 우리 삶의 거의 모든 내면의 삶을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James' trip to Warsaw coincided with the Chopin International Festival and he met up with one of the great Chopin pianists, Garrick Ohlsson, to discover how he feels bel canto opera fed into the young composer's music.
제임스의 바르샤바 방문은 쇼팽 국제 페스티벌과 일치했으며 그는 위대한 쇼팽 스페셜리스트들 중 한 명인 개릭 올슨과 만났는데 그가 젊은 작곡가의 음악에 반영된 벨칸토 오페라를 어떻게 느끼는지 발견하기 위해서였다.
Garrick Ohlsson: Italian opera was the rage in Warsaw, as it was all over Europe. And he had this... He was imbued with this bel canto idea right from the very start, his earliest pieces, that he had the idea of the melody and how to accompany it and how to configure it. I think it was present from the start. It was part of his musical blood and musical essence.
개릭 올슨 : 이탈리아 오페라는 유럽 전역처럼 바르샤바에서 분노였죠. 그리고 그는 이것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는 멜로디와 그것을 반주하는 방법과 그것을 구성하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으므로, 아주 초기부터, 이 벨칸토 아이디어에 젖어있었죠. 저는 그것이 처음부터 존재했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그의 음악적 혈통과 음악적 요소의 일부였습니다.
James Rhodes: Is there anything you do to get that singing tone?
제임스 로즈 : 그 노래하는 음색을 내기 위해 당신이 하는 일이 있나요?
Garrick Ohlsson: On the piano, the problem is all you have for a pianist to do is...
개릭 올슨 : 피아노에서 문제는 당신이 해야 할 피아니스트를 위해 가진 모든 것은...
[Plays notes. / 음을 친다.]
Garrick Ohlsson: You have the attack, whatever that is. Then the piano does.....that.
개릭 올슨 : 당신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공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피아노는.....그것을 하죠.
[Plays long note. / 긴 음을 친다.]
Garrick Ohlsson: The only thing you can control is the release. You have several complex mechanisms. You've got a pedal which will release greater combinations of overtones, but if you want to take a great singing Nocturne, such as the D flat Opus 27, No. 2, if you play it without anything except just the pedal and the tune...
개릭 올슨 :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놓아주는 것입니다. 당신은 여러 가지 복잡한 메커니즘(방법)을 가지고 있죠. 배음(倍音 : 어떤 음을 치면 친 음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그 위로 다른 음들이 숨겨져서 들리는 ‘자연현상’)의 더 좋은 조합을 놓아줄 페달이 있지만, 녹턴 내림D장조 Op. 27 No. 2처럼 멋진 녹턴을 노래하고 싶다면, 당신이 그것을 페달과 곡만 제외하고 아무것도 없이 연주한다면...
[He plays piece. / 그가 곡을 친다.]
Garrick Ohlsson: It's very pretty, but it's naked.
개릭 올슨 : 예쁘지만 벌거벗었죠.
James Rhodes: Yeah.
제임스 로즈 : 네.
Garrick Ohlsson: But Chopin's piano was developing at the time, so, because of the possibility of gathering sounds on the pedal, he took this figure and spread it over more than two octaves. Which already sets up an aura of sound.
개릭 올슨 : 그러나 쇼팽의 피아노는 그 당시 개발 중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페달에서 소리를 모으는 가능성 때문에, 그는 이 수치를 잡았고 그것을 두 옥타브(15도 음정) 이상 퍼뜨렸죠. 이미 소리의 분위기를 조성하죠.
James Rhodes: Absolutely.
제임스 로즈 : 그렇고말고요.
Garrick Ohlsson: An envelope. A beautiful cushion, a texture. And of course, incredibly clever, he was more than clever, a true genius, he understood even how to emphasize certain notes within the texture.
개릭 올슨 : 포장이죠. 아름다운 쿠션, 짜임새죠. 그리고 물론, 엄청나게 똑똑한 그는 똑똑한 천재 이상이었고, 짜임새 안에서 특정 음들을 강조하는 방법조차도 이해했어요.
[He plays piece. / 그가 곡을 친다.]
Garrick Ohlsson: We've had this... We've had plenty of the D Flat which is the bass. But we've had a disproportionate amount of this F, which is one octave below the note where the tune starts. So when you...
개릭 올슨 : 우리는 이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베이스인 D플랫 음을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F음의 불균형한 양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곡이 시작되는 음의 한 옥타브 아래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Plays piece. / 곡을 친다.]
Garrick Ohlsson: The ear is already... That F becomes a manifestation of the harmony, but suddenly, it's made glamorous. It's clothed and the overtones... It's up there above everything else.
개릭 올슨 : 귀는 이미... 저 F음이 조화의 표현이 되지만, 갑자기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옷을 입었고 배음이... 그 밖의 다른 모든 것 위에 있습니다.
James Rhodes: It's like the singer joining the music.
제임스 로즈 : 음악에 동참하는 가수 같네요.
Garrick Ohlsson: So, in that way, yes, he did capture the bel canto kind of melody.
Halina Goldberg (Professor of the School of the Music at Indiana University): Very early on, once his talent became apparent, he was anointed to become the Polish national opera composer. So, not only opera was the place to go and the place to be seen, not only was it the place where you could learn a lot as a musician, as a pianist, but it was also the place where he was to hone his skills for the future as the great Polish composer, opera composer.
할리나 골드베르크 (인디애나 대학교 음악학교 교수) : 아주 초기에 그의 재능이 분명해지자 그는 폴란드 국립 오페라 작곡가가 되기 위해 (종교 의식에서 머리에) 성유[성수]를 바르게 되었죠. 그래서 오페라는 가야 할 장소이자 보이는 곳이었을 뿐만 아니라, 음악가이자 피아니스트로서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장소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폴란드 작곡가이자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미래를 위해 그의 재주를 연마할 곳이기도 했죠.
[BGM: Chopin Etude in c, Op. 10 No. 12 "Revolutionary" / 쇼팽 에튀드 작품 10-12 <혁명>]
But Chopin wasn't ready to write an opera. On the 2nd of November, 1830, at the age of 20, he left Warsaw for Vienna on an educational expedition. He had no idea that he was never to return home again. Four weeks later, Poland exploded into a brief, bloody and doomed revolt against Russian rule and Chopin's study tour was transformed into exile. Throughout his life, Chopin retained strong links with Warsaw, but he never felt able to return. Instead, he filled his music with Poland, particularly in his Polonaises, his short, intimate mazurkas, and this, his stirring Revolutionary Study.
그러나 쇼팽은 오페라를 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1830년 11월 2일, 20세에 교육 원정에서 비엔나를 향해 바르샤바를 떠났다. 그는 결코 다시 집에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4주 후 폴란드는 러시아의 지배에 맞서 짧고 피 묻은 운명의 반란으로 폭발했고 쇼팽의 유학 생활은 유배 생활로 바뀌었다. 그의 인생 전반에 걸쳐, 쇼팽은 바르샤바와 강한 유대 관계를 유지했지만, 그는 돌아올 수 있다고 결코 느끼지 못했다. 그 대신, 그는 그의 음악을 폴란드, 특히 그의 폴로네즈, 그의 짧고 친밀한 마주르카, 그리고 이것을 그의 감동적인 혁명 에튀드로 채웠다.
[Dramatic Piano Music / 극적인 피아노 음악]
Adam Zamoyski (Chopin Biographer): Once he had reached Vienna, revolution broke out in Poland in Warsaw, so he was stuck there. His travelling companion, Titus, his best friend, went back to Poland to fight against the Russians. And Chopin sat around in Vienna, not really knowing what to do. Italy was a bit of a no-go area because there were revolutions breaking out there. Finally, he decided to travel to Paris which, although there had been a revolution there in 1830, had quietened down a bit.
아담 자모이스키 (쇼팽 전기 작가) : 그가 비엔나에 도착하자 바르샤바의 폴란드에서 혁명이 일어나서 거기에 갇혔습니다. 그의 여행 동반자,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인 티투스는 러시아와 싸우기 위해 폴란드로 돌아갔죠. 쇼팽은 비엔나에 앉아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어요. 이탈리아는 혁명이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곳이었죠. 마침내 그는 파리로 여행하기로 결정했는데, 1830년에 혁명이 있었음에도 조금 조용해졌습니다.
On the second leg of his journey, James is taking the train to Paris to explore the world in which the young Polish musician found himself. Chopin shied away from offering any literal interpretations of his music. He gave little or no information in the titles of his work and yet many of his compositions seem imbued with a deep sense of loss and longing, sentiments often attributed to a lifelong homesickness.
그의 여행의 두 번째 다리에서, 제임스는 젊은 폴란드 음악가가 그 자신을 발견한 세계를 탐험하기 위해 파리행 기차를 타고 있다. 쇼팽은 그의 음악에 대한 어떠한 문자적 해석도 제공하지 않았다. 그는 작품의 제목에 정보를 거의 또는 전혀 제공하지 않았지만 작품들의 많은 부분에 깊은 상실감과 갈망, 종종 평생 향수병에 기인한 정서가 스며들었다.
[BGM: Chopin Etude in g#, Op. 25 No. 6 / 쇼팽 에튀드 작품 25-6]
Homesick or not, when Chopin arrived in Paris aged 21, he was filled with excitement. He took rooms in the heart of the city and wrote letters home describing the wealth, the filth, the noise and the restaurant prices. "You can eat the most hearty dinner for 32 sous in a restaurant with mirrors, gliding and gas lighting, and the next, you can eat lunch where they will give you just enough for a bird to eat and charge three times as much." If Chopin's passion for Konstancja in Warsaw had been all in the mind, clearly by the time he arrived in Paris, he was no longer quite so sexually innocent. An encounter with a girl called Theresa in Austria had left him with some unpleasant side-effects. He wrote to one of his friends back in Poland... "The memory of Theresa forbids me to taste forbidden fruit, but I already know several lady vocalists and lady vocalists here are even more anxious for duets than those in the Tyrol." But what really excited the young composer about being in Paris was the opera and the opportunity to hear the world's greatest singers.
향수병이든 아니든, 쇼팽이 21세에 파리에 도착했을 때, 그는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도시의 중심부에 있는 방을 샀고 재산, 오물, 소음, 식당 가격을 설명하는 내용의 편지를 집에 썼다. “거울, 활공, 가스 조명이 있는 식당에서 32수(프랑스 돈 단위)로 가장 따뜻한 저녁 식사를 먹을 수 있으며, 다음으로 먹을 수 있는 조류를 그들이 줄 곳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으며 세 배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바르샤바에 있는 콘스탄차에 대한 쇼팽의 열정이 모두 파리에 도착할 때까지 분명히 마음속에 있었다면, 그는 더 이상 성적으로 결백하지 않았다. 오스트리아에서 테레사라는 소녀와의 만남으로 인해 불쾌한 부작용이 생겼다. 그는 폴란드에 있는 그의 친구 중 한 명에게 편지를 썼다... “테레사의 기억은 금단의 열매를 맛보지 못하게 하지만, 나는 이미 여러 여성 가수들을 알고 있으며 여기 있는 여성 가수들은 티롤에 있는 사람들보다 듀엣에 더 관심이 있다네.” 그러나 젊은 작곡가가 파리에 있다는 사실에 정말 흥분한 것은 오페라와 세계 최고의 가수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Adam Zamoyski: Paris in the 1830s and 1840s was the cultural capital of the western world. This had various implications for Chopin. For one thing, he could hear the best orchestras in the world which were based there. Some of the best musicians were based there, but also he could hear all those who were bound to come through Paris.
아담 자모이스키 : 1830년대와 1830년대의 파리는 서유럽 세계의 문화 수도였어요. 이것은 쇼팽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우선, 그는 거기에 기반을 둔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최고의 음악가들 중 일부는 파리에 있었지만, 파리를 맴도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죠.
Nicolas Dufetel (Great Researcher, National Library of France): When he arrived, he wrote, "She is here, he sings there. She... I've heard her singing and all at the same place at the same moment, at the same time." It was really a paradise for him to be in Paris at this time.
니콜라스 뒤프텔 (프랑스 국립 박물관 객원 연구원) : 그가 파리에 도착했을 때,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그녀가 여기에 있고, 그가 거기에서 노래합니다. 그녀... 저는 동시에 그녀의 노래와 모든 것을 같은 순간에 동시에 들었어요.” 이번에는 파리에 있는 것이 그에게 정말 낙원이었죠.
Dr. Benjamin Walton (Faculty of Music, Cambridge University): There's the premiere at the opera of Meyerbeer's "Robert Le Diable", which is an opera that is almost forgotten now. In the 19th century, it was the most performed opera of any work.
벤저민 월튼 박사 (캠브리지 음대 교수진) : 현재 거의 잊힌 오페라인 마이어베어의 <악마 로베르>라는 오페라의 초연이 있었어요. 19세기에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많이 공연된 오페라였죠.
The main singer that he liked Robert was the soprano Cindi-Damoreau. And he was incredibly taken with her voice.
그가 오페라 <악마 로베르>에서 주로 좋아했던 가수는 소프라노 신디-다모로였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목소리를 믿을 수 없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Dr. Benjamin Walton: She was famous for being able to sing chromatic scales as if she were playing them on the piano. And at a time when it's clear that lots of singers, even some of the most renowned singers, were not always particularly precise, people loved the fact, Chopin included loved the fact that her performance sounded almost like an instrument playing.
벤저민 월튼 박사 : 그녀는 마치 피아노에서 연주하는 것처럼 반음계를 노래할 수 있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가수들, 심지어 가장 유명한 가수들조차도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었음에도,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아주 좋아했고, 쇼팽은 자신의 연주가 거의 악기 연주처럼 들렸다는 사실을 좋아했죠.
Nicolas Dufetel : It's not that he discovered opera in Paris, but he discovered the best singers. He discovered the best pieces because he could hear Rossini, Bellini "e tutti quanti". Really, he could have an access, a direct access to the core of the inspiration of his own music.
니콜라스 뒤프텔 : 파리에서 오페라를 발견한 것은 아니지만 최고의 가수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로시니, 벨리니 “모두”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최고의 곡들을 발견했죠. 실제로, 그는 자신의 음악의 영감의 핵심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접근 권한을 가질 수 있었어요.
The big question is, why didn't Chopin, the brilliant young composer, write for the opera, an art form that he clearly adored?
큰 질문은, 왜 영리한 젊은 작곡가 쇼팽은 그가 분명히 좋아하는 예술 형식인 오페라를 쓰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Halina Goldberg (Professor of the School of the Music at Indiana University): It's very clear that little by little, he recognises that the circumstances have changed. First of all, the fall of the November uprising meant that even in Poland, national opera could not be performed. The fact that he did settle in Paris and did not return to Poland meant that he would be writing a Polish language opera in France.....which was meaningless and futile. But perhaps also his inclination, his natural inclination towards the piano. This was the medium he was the most comfortable in. So...I think in some way what he did is he channelled opera-like narratives into his larger works. They become miniature operas.
할리나 골드베르크 (인디애나 대학교 음악학교 교수) : 조금씩 상황이 변했다고 그가 인식한다는 것이 매우 분명합니다. 우선, 11월 봉기의 붕괴는 폴란드에서도 자국 오페라가 공연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가 파리에 정착하여 폴란드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가 프랑스에서 폴란드어로 오페라를 쓸 것임을 의미했는데....의미 없고 쓸데없는 거였죠. 그러나 아마도 그의 성향, 피아노에 대한 자연스러운 성향일 수도 있어요. 이것은 그가 가장 편안하다고 여겼던 수단이었죠. 그래서...저는 어떤 방식으로 그가 했던 것이 그의 오페라 같은 이야기 진행들을 그의 더 큰 작품들로 돌렸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들은 소형 오페라가 됩니다.
[BGM: Chopin Fantasy in f, Op. 49 (performed by James Rhodes on the Pleyel Piano) / 쇼팽 환상곡 (제임스 로즈의 플레이엘 피아노 연주)]
When Chopin arrived in Paris aged 21, he had already composed a substantial body of extraordinary music. Within a year, he was a fashioinable celebrity, not just for his composition, but also for his mesmerising and uniquely delicate style of playing.
쇼팽이 21세에 파리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상당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1년 만에, 그는 자신의 작곡뿐만 아니라 그의 매혹적인 독특하고 섬세한 연주 스타일로 유명세를 타는 사람이었다.
Nicolas Dufetel: It was a wonderful atmosphere because Chopin played and some say he played at midnight, for instance, the Nocturnes. Can you imagine the Nocturnes at midnight? It was an enchantment. Really, it was an enchantment because it was private. The music was for yourself and the people in the salon were very happy. They were very confident in being the only ones to hear, it was a privilege.
니콜라스 뒤프텔 : 쇼팽이 연주했기 때문에 멋진 분위기였고 일부는 예를 들어 녹턴을 그가 자정에 연주했다고 말합니다. 자정에 녹턴을 상상할 수 있나요? 그건 매혹적이에요. 실제로 은밀했기 때문에 마법이었죠. 음악은 당신 자신을 위한 것이었고 살롱에 있는 사람들은 매우 행복했어요. 그들은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라는 것에 자신감이 있었는데, 그건 특권이었죠.
[Plays lively, dramatic piece / 활기 넘치는, 극적인 곡을 친다.]
The poet Theophile Gautier wrote... "Chopin stands for a melancholic elegance. A dreamy charm. A female sensitivity. Touched with his fingers, the keys seem to be brushed by an angel's wing."
시인 테오필 고티에는 다음과 같이 썼다... “쇼팽은 우울함의 우아함을 상징한다. 꿈꾸는 매력. 여성적인 감수성. 그의 손가락들에 끌려서, 조성들은 천사의 날개에 의해 닦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James Rhodes: Thank you.
제임스 로즈 : 감사합니다.
Instead of writing for the opera house, Chopin's theatre was the salon, the intimate, sophisticated world in which the aristocracy and the artistic community intermingled. It was for this audience that throughout the 1830s and '40s he produced a prolific range of concise, poetic piano music. Mazurkas, waltzes, atmospheric nocturnes and electrifying studies. Occasionally, he also found time to compose songs, usually as gifts for society ladies. One of these ladies was a young Polish countess.
오페라 하우스를 위한 곡을 쓰는 대신 쇼팽의 극장은 귀족과 예술적 공동체가 뒤섞인 친밀하고 정교한 세계의 살롱이었다. 1830년대와 40년대에 걸쳐 그는 간결하고 시적인 피아노 음악을 다양하게 만들어냈다. 마주르카, 왈츠, 분위기 있는 녹턴과 열광시키는 에튀드. 때때로, 그는 또한 노래를 작곡하는 시간을 발견했는데, 보통 사교계 여성을 위한 선물로 사용되었다. 이 숙녀들 중 한 명은 젊은 폴란드인 백작부인이었다.
[BGM: Chopin 17 Polish Songs, Op. 74 No. 12 Moja pieszczotka (My Darling) / 쇼팽 폴란드 가곡 12번 <사랑스런 그대>]
sung by Natalya Romaniw and accompanied by James Rhodes / 나탈리아 로마니우 노래 및 제임스 로즈 반주
# Moja pieszczotka / 사랑스런 그대
Gdy w wesolej chwili / 밝은 순간에
Pocznie szczebiotac i kwilic i gruchac... / 그녀는 훌쩍이고 통곡하며 울 것입니다...
Her name was Delfina Potocka. She was not only Polish, she was beautiful, wealthy and clearly a wonderful singer. She was one of the very first of Chopin's Parisian friends and remained close to him right up to his death. This lake at Enghien a few miles north of Paris, has often been associated with a possible romance between them.
그녀의 이름은 델피나 포토츠카였다. 그녀는 폴란드인일 뿐만 아니라 아름답고 부유했으며 분명히 훌륭한 가수였다. 그녀는 쇼팽의 파리 시절 매우 초기의 친구들 중 한 명이었으며 그의 죽음 직전까지 그와 가까이 남아있었다. 파리에서 북쪽으로 몇 마일 떨어진 앙기엔에 있는 호수는 종종 그들 사이의 가능한 로맨스와 관련이 있어왔다.
# Nie smiem przerywac / 저는 웃음을 멈추지 않아요
Nie smiem, nie smiem odpowiadac / 저는 웃지 않아요, 저는 대답하지 않아요
I tylko chcialbym sluchac! / 그리고 전 그냥 듣고 싶어요!
I tylko chcialbym sluchac! # / 그리고 전 그냥 듣고 싶어요!
Marie-Paule Rambeau (Chopin biographer): (Translated from French) During that period, she was leading a very liberated lifestyle. Separated from her husband, and having scandalous affairs with famous people.
마리-폴르 랑보 (쇼팽 전기 작가) : (프랑스어 번역) 그 기간 동안, 그녀는 매우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했죠. 그녀의 남편과 별거했고, 유명한 사람들과의 스캔들 사건들이 있었죠.
The nature of the relationship between Chopin and Potocka has been the source of endless speculation and gossip. One of the most intriguing rumours is that during the summer of 1836, Chopin stayed in a villa that Delfina had rented by this lake. A year later, Chopin was passing Enghien with a Polish friend, who described in his diary how Chopin had "turned my attention to the wide lake and on its edge, the little villa in which he had spent the previous summer. His face became suffused with the pleasantness of the memory. It must have been a very happy period of his life." The story was revived again as recently as the 1940s, when a mysterious bundle of semi-pornographic letters, alleged correspondence between Chopin and Potocka, was discovered by one of Potocka's descendants. The letters horrified scholars, mostly because of what was seen as the un-Chopin-like bedroom language. The letters were dismissed as forgeries, but then tragically, the relative committed suicide, and the letters disappeared. However, the debate about their authenticity still rumbles on.
쇼팽과 포토츠카 사이의 관계의 본질은 끊임없는 추측과 소문의 근원이었다. 가장 흥미로운 소문들 중의 하나는 1836년 여름 동안, 델피나가 이 호수를 임대했던 빌라에 쇼팽이 머물렀다는 것이다. 1년 후, 쇼팽은 폴란드 친구와 앙기엔을 통과하고 있었는데, 그 폴란드 친구는 그의 일기에서 쇼팽이 어떤지 표현했다. “쇼팽은 넓은 호수와 가장자리, 그가 작년 여름을 보냈던 작은 빌라에 내 관심을 돌렸다. 그의 얼굴은 추억에 대한 즐거움으로 뒤덮였다. 그의 인생에서 매우 행복한 시기였음이 틀림없다.” 이 이야기는 신비에 싸인 반-포르노 편지 묶음이 포토츠카의 후손들 중 한 명에 의해 발견된 쇼팽과 포토츠카 사이의 편지라고 주장되었던 1940년대만큼 최근에 되살려졌다. 편지들은 대부분 학자들을 소름끼치게 했는데, 대부분 쇼팽 같지 않은 침대 언어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편지들은 위조로 일축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친족이 자살했으며, 편지들이 사라졌다. 그러나 그들의 진위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계속된다.
# Calowac, calowac, calowac... # / 키스, 키스, 키스...
Marie-Paule Rambeau (Chopin biographer): (Translated from French) What interests me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Chopin and Delfina is not the possibility of a love affair between them. In my opinion, it's quite likely that it never happened. On the contrary, what I'm much more interested to know is that she put words on one of the last nocturnes of Chopin, which she played in front of him and which he found, and I quote his words "ca se chantait bien", it sang itself well. I think that the fact they shared the same musical ideas is so much more interesting than the love affair.
마리-폴르 랑보 (쇼팽 전기 작가) : (프랑스어 번역) 제게 쇼팽과 델피나 사이의 관계에 대해 흥미를 끄는 것은 그들 사이의 연애의 가능성이 아닙니다. 제 생각에는, 그것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꽤 높아요. 반대로, 제가 훨씬 더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그녀가 그 앞에서 연주했고 그가 발견했던 쇼팽의 마지막 녹턴들 중 하나에 단어를 넣었다는 것이고, 저는 “그 자체를 잘 노래했다”는 그의 단어들을 인용하죠. 저는 그들이 같은 음악적 아이디어를 공유했다는 사실이 연애보다 훨씬 더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Marie-Paule Rambeau's reluctance to accept the idea of a Chopin-Potocka love affair is based on a simple lack of evidence. The shortage of information about this or other parts of Chopin's romantic life has generated a long-running debate about his sexuality.
마리-폴르 랑보의 쇼팽-포토츠카 연애 사건에 대한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것을 꺼리는 것은 단순히 증거 부족에 근거한다. 쇼팽의 낭만적인 인생의 이 부분이나 다른 부분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그의 성적 매력에 대한 장기적인 논쟁이 생겨났다.
[BGM: Chopin Prelude in E, Op. 28 No. 9 / 쇼팽 프렐류드 9번]
How can a man who wrote such passionate music have had such an apparently limited life? We'll never know whether he slept with Delfina of any of the other singers in his life, but there's no doubting the attraction they had for him.
그런 열정적인 음악을 쓴 사람이 어떻게 분명히 제한된 인생이었을까? 그의 인생에서 다른 가수들 중 한 명인 델피나와 함께 잤는지는 결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그에게 가졌던 매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Jeremy Siepmann: Much is made of the importance to Chopin of singers in his life. Relatively few of the singers that he mentions and admires are men. The vast bulk of them are women. And I think there was something about the women's voice and also the woman's singing as a means of Chopin being able to approach that woman. Because Chopin was basically quite shy. In fact, he was basically VERY shy. And I think in a strange way, women singing... Can I be so coarse as to say...turned him on?
제레미 시프만 : 쇼팽에게 그의 인생에서 가수의 중요성이 많이 있습니다. 그가 언급하고 존경하는 가수들 중 남성은 비교적 소수입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여성입니다. 그리고 저는 여성의 목소리와 쇼팽이 그 여성에게 접근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여성의 노래에 대해 뭔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쇼팽은 기본적으로 꽤 수줍음을 많이 탔기 때문이죠. 사실, 그는 근본적으로 매우 수줍어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성들이 노래하는 것을 놀라운 방법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그를 흥분시켰다고...그렇게 말할 정도로 거칠 수 있을까요?
[BGM: Chopin Piano Concerto in f, Op. 21: II. Larghetto (performed by James Rhodes on the Playel Piano) / 쇼팽 피아노 협주곡 2악장 (제임스 로즈의 플레이엘 피아노 연주)]
The best evidence of Chopin's friendship with Delfina Potocka lies in the music which he dedicated to her including his great F minor piano concerto. The slow movement may have been inspired by Constancja back in Warsaw, but when the concerto was eventually published in Paris, it was Delfina's name that graced the finished work's cover. Because of his reputation in the salons, Chopin was in great demand as a piano teacher. And this became his principal source of income.
델피나 포토츠카와 쇼팽의 우정의 가장 좋은 증거는 그의 훌륭한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포함하여 그가 그녀에게 헌정한 음악에 있다. 느린 2악장은 콘스탄차에 의해 바르샤바에서 다시 영감을 받은 것일 수도 잇지만, 협주곡이 결국 파리에서 출판되었을 때, 완성된 작품의 표지를 장식한 것은 델피나의 이름이었다. 쇼팽은 살롱에서의 명성 때문에, 피아노 교사로서의 수요가 늘어났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주요 수입원이 되었다.
Adam Zamoyski: In Paris, it was...music had become the ultimate...form of art for not just the moneyed rich, at the head of whom stood the great bankers such as the Rothschilds, but also the highest aristocracy, who all went their daughters for lessons to Chopin at unimaginable prices.
아담 자모이스키 : 파리에서...음악은 궁극적으로...로스차일드 가문 같은 위대한 은행가들을 앞세우면서 돈 많은 부자를 위한 최고의 예술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장 높은 귀족들은 그들의 딸들을 상상할 수 없는 가격에 쇼팽에게 레슨 보냈죠.
Dr. Benjamin Walton (Faculty of Music, Cambridge University): He seems to have made very good money from that. And good enough money that after a year or so of teaching piano, he could start teaching piano in his own apartments, once he'd moved to the "rue de la Chaussee d'Antin", which was one of the most fashionable roads to be on in Paris at the time.
벤저민 월튼 박사 (캠브리지 음대 교수진) : 그는 그걸로 아주 돈을 잘 벌었을 것 같습니다. 피아노를 가르치는데 1년 정도 걸린 후에 그는 당시 파리에 있는 가장 세련된 거리들 중 하나인 <루 드 라 쇼세 당탱>으로 옮긴 후 자신의 아파트에서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할 수 있었죠.
[Chopin Etude in a, Op. 25 No. 4 / 쇼팽 에튀드 작품 25-4]
Chopin seldom talked about the composition of his music. But there are many highly revealing accounts of his approach to playing and teaching the piano.
쇼팽은 그의 작곡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피아노를 연주하고 가르치는 것에 대한 그의 접근법에 대해 드러내는 설명들이 많이 있다.
Jeremy Siepmann: Yes, Chopin did encourage his pupils to sing with the fingers. He introduced a new kind of technique, in which the fingers were not surrogate hammers, but in which the hand and the arm and the elbow and everything came into play as a kind of choreography. A choreography of the entire arm. He treated the hand as a cast of characters, just as he treated the scale as a cast of characters. And his favourite singing finger was the third - this long finger. And how did that sing best? Because he used it as the centre of a kind of stroking mechanism. And with Chopin, I've adapted this into my own teaching, I liken it to the stroking of a lion's mane. He did not come down from it above, he didn't go... He kept saying in his teaching all the time, "Facilement, facilement!" - "Easily, easily!" Well, he wrote... His etudes are simply about as difficult as music gets. They are unbelievably difficult. And his motto was "souplesse evant tout" - "suppleness before everything". And one astounding thing about these incredibly difficult Chopin etudes is that the testimony of his pupils repeatedly says that he made it easy, that what they had thought was insurmountably challenging, became natural and easy. Now this is really something. I would love to have had lessons with him. Who wouldn't?
제레미 시프만 : 그렇습니다, 쇼팽은 그의 제자들이 손가락으로 노래하도록 장려했습니다. 그는 손가락이 망치를 대신할 수는 없지만 손과 팔, 팔꿈치와 모든 것이 일종의 안무로 작용하는 새로운 종류의 테크닉을 선보였습니다. 팔 전체의 안무였죠. 그는 캐릭터의 등장인물처럼 스케일을 다루었듯이 손을 캐릭터의 등장인물로 취급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가장 좋아하는 노래하는 손가락은 세 번째의 긴 손가락이었죠.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가장 잘 노래했을까요? 왜냐하면 그는 그것을 일종의 획기적인 메커니즘(방법)의 중심으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쇼팽과 함께, 저는 이것을 제 자신의 가르침에 적용시켰습니다. 저는 그것을 사자 갈기를 쓰다듬는 것에 비유했죠. 그는 위에서 내려오지 않았고, 가지 않았어요... 그는 항상 가르침에서 “쉽게, 쉽게!”라고 계속 말했죠. 음, 그는 썼어요... 그의 연습곡들은 단순히 음악만큼 힘들지 않다고요. 그것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워요. 그리고 그의 모토(좌우명)는 “모든 것 이전에 유연함”이었죠. 그리고 이 엄청나게 어려운 쇼팽 연습곡들이 그의 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그것을 쉽게 만들었다고 하는 것에 대한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그들이 어쩔 수 없이 도전적이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자연스럽고 쉬워졌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것은 정말 대단합니다. 저는 그와 정말 레슨을 가지고 싶어요. 누가 그러지 않았을까요?
[BGM: Chopin Etude in c, Op. 25 No. 12 (performed by James Rhodes) / 쇼팽 에튀드 작품 25-12 (제임스 로즈 연주)]
In 1836, six years after arriving in Paris, Chopin met a female novelist called George Sand. Sand, at 33, was six years older than him. A famous bohemian, a political radical, she often dressed in men's clothes and most notoriously, smoked cigars in public. Sand fell passionately in love with Chopin and gradually, over the next two years, he was seduced.
1836년 파리에 도착한 지 6년 후 쇼팽은 조르쥬 상이라는 여성 소설가를 만났다. 33세의 조르쥬 상은 그보다 6세 연상. 유명한 보헤미안이자 정치적 급진주의자인 그녀는 종종 남장을 하고 악명 높게 공개적으로 담배를 피웠다. 조르쥬 상은 쇼팽과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졌고 점차 다음 2년 이상 그는 유혹받았다.
Jeremy Siepmann: The most bewildering of the relationships and the dominant relationship of Chopin's life was his relationship with the unbelievably scandalous, highly sexed, extravagant, megalomaniacal George Sand.
제레미 시프만 : 가장 혼란스러운 관계들이었는데, 쇼팽의 인생의 지배적인 관계는 믿을 수 없게 스캔들을 담았고, 매우 성욕이 있고 사치스러우며 과대망상적인 조르쥬 상과의 관계였습니다.
To avoid the gossip that their relationship was beginning to attract, they decided to spend the winter of 1838 together on the then remote island of Majorca, accompanied by Sand's two young children. That winter on Majorca, the 28-years-old Chopin became seriously ill and was diagnosed with tuberculosis. From this point on, his life was dominated by the progression of the disease. Because of the locals' fear of being infected by him, Chopin, Sand and the children were forced to leave the house they were renting and they ended up in rooms in a deserted monastery at Valldemossa. Chopin wrote to a friend with his typically waspish humour, "I have been as sick as a dog these last two weeks. I caught cold in spite of 18 degrees of heat, roses, oranges, palms, figs and three of the most famous doctors on the island. One sniffed at what I spat up. A second tapped where I spat from. The third poked about and listened to how I spat it. One said that I had died, the second that I am dying, the third that I shall die." Despite his illness, during his time on Majorca, Chopin completed one of his greatest collections of work - the Preludes. 24 short poetic masterpieces for piano. Eventually, Chopin had to be taken off the island and after a long period of recovery in Marseilles, they arrived at Nohant in June 1839, Sand's family home in the heart of rural France. Chopin and Sand spent the next eight years together and the long summers at Nohant gave the frail Chopin a suitably quiet and restorative atmosphere in which to compose.
그들의 관계가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소문을 피하기 위해, 그들은 1838년의 겨울을 그 먼 곳의 마요르카 섬에서 조르쥬 상의 두 어린 아이들과 함께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 겨울 마요르카에서, 28세의 쇼팽은 중병에 걸렸고 결핵으로 진단받았다. 이 시점에서 그의 인생은 질병의 진행에 의해 지배되었다. 주민들이 그에게 감염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쇼팽과 조르쥬 상과 그녀의 아이들은 그들이 빌린 집을 떠나야만 했고, 그들은 결국 발데모사의 버려진 수도원에 있는 방 신세를 지게 되었다. 쇼팽은 그의 전형적인 유머 감각으로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지난 2주 동안 나는 개처럼 아팠다네. 18도의 열, 장미, 오렌지, 야자수, 무화과, 섬에서 가장 유명한 세 명의 의사들이 있음에도 감기에 걸렸지. 처음에는 내가 뱉어낸 것에서 냄새가 났어. 두 번째는 내가 뱉어낸 것에서 박자를 맞췄지. 세 번째는 쑥 내밀고 내가 어떻게 뱉어냈는지를 들었지. 첫 번째는 내가 죽었다고 말했고, 두 번째는 내가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으며, 세 번째는 내가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네.” 그의 병에도 불구하고, 마요르카에 있는 동안, 쇼팽은 그의 가장 위대한 작품 모음들 중의 하나인 프렐류드를 완성했다. 피아노를 위한 24개의 짧은 시적인 걸작들이다. 결국, 쇼팽은 이 섬에서 벗어나야만 했고 마르세유에서 오랜 기간 회복된 후, 그들은 1839년 프랑스 농촌의 중심지에 있는 조르쥬 상의 저택이 있는 노앙에 도착했다. 쇼팽과 조르쥬 상은 다음 8년을 함께 보냈고 노앙의 긴 여름은 쇼팽에게 작곡하기에 적절히 조용하고 원기를 회복시키는 분위기를 제공했다.
Adam Zamoyski: She created conditions for him to work in, to be happy in. It's difficult to know who else could have given him that kind of stability and that kind of security other than her.
아담 자모이스키 : 그녀는 그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 밖의 다른 사람이 그에게 안정감과 그런 종류의 안보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녀 외에는 알기 어려웠습니다.
It was at Nohant that Chopin formed a close musical friendship with a protegee of Sand's - a young singer and composer called Pauline Viardot.
쇼팽이 폴린느 비아르도라는 젊은 가수이자 작곡가로 조르쥬 상의 후배와 밀접한 음악적 우정을 맺은 것은 노앙에서였다.
Barbara Kendall-Davies (Biographer of Pauline Viardot): He loved Pauline being there. He always said that she had such "joie de vivre", such elan, that when she was around, however depressed or lacking in inspiration he might have been, she could always renew his creative spirit. She just seemed that sort of person. She would walk into a room and suddenly you'd feel a light had been turned on. He felt that she was a really kindred spirit. That right from the word go, they understood each other musically.
바버라 캔덜-데이비스 (폴린느 비아르도의 전기 작가) : 그는 거기에 있는 폴린느를 사랑했습니다. 그는 그녀가 주변에 있었을 때 항상 그녀는 엘랑(애정 고백) 같은, “삶의 환희” 같은 것을 가졌다고 말했지만, 그가 우울했거나 영감을 얻지 못했을지라도 항상 그의 창조 정신을 새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런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녀는 방 안으로 들어갔을 것이고 당신은 갑자기 불이 켜졌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는 그녀가 정말 친밀한 영혼이라고 느꼈습니다. 그 단어에서 바로, 그들은 음악적으로 서로를 이해했죠.
[BGM: Pauline Viardot - 'Plainte d'Amour' set to Chopin's Mazurka in f#, Op. 6 No. 1 / 폴린느 비아르도 - 쇼팽 마주르카 작품 6-1 편곡 <사랑의 불만>]
sung by Natalya Romaniw and accompanied by James Rhodes / 나탈리아 로마니우 노래 및 제임스 로즈 반주
One of the most rewarding aspects of their friendship was the way they fed one another's musical composition. This song is a setting of one of Chopin's mazurkas, his short Polish-style pieces. Arranged and set to words by Pauline.
그들의 우정의 가장 보람 있는 면들 중의 하나는 서로의 음악적인 작품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방식이었다. 이 노래는 쇼팽의 짧은 폴란드 풍 곡들인 마주르카 중 하나의 조화이다. 폴린느가 편곡하고 가사를 넣었다.
# Ah, soudain la nuit s'acheve / Ah, suddenly the night is over / 아, 갑자기 밤이 끝나네
Et s'enfuit l'espoir / And hope flies away / 그리고 희망이 날아가 버리네
A-a-a-a-h / 아-아-아-아-아
Helas / Alas! / 아아! 슬프도다!
A-a-a-a-h / 아-아-아-아-아
Chere ame, sans toi j'expire / Dear soul, without you I die / 친애하는 영혼이여, 당신 없이 나는 죽는다네
Pourquois taire ma doleur? / Why silence my sorrow? / 왜 내 슬픔을 침묵시키는 거지?
Mes levres veulent sourire / My lips want to smile / 내 입술은 웃고 싶어 한다네
Mes yeux dises mon malheur / My eyes speak my misfortune / 내 눈은 내 불행을 말한다네
Helas! Loin de toi j'expire / Alas! Far from you I die / 아아! 슬프도다! 당신과 떨어져서 나는 죽는다네
Pourquois taire ma doleur? / Why silence my sorrow? / 왜 내 슬픔을 침묵시키는 거지?
Mes levres veulent / 내 입술은 원한다네
Helas! La mort / Alas! Death / 아아! 슬프도다! 죽음
La mort est dans mon coeur. # / Death is in my heart. / 죽음은 내 마음에 있다네.
James Rhodes: It must have been fun for them to collaborate.
제임스 로즈 : 협연하는 것은 재미있는 것임이 틀림없네요.
Barbara Kendall-Davies: Oh, yes. She used to, at first, with a bit of trepidation, show him what she was composing. And she wrote to George Sand, saying that she'd written a song called "le Rosaeu et le Chene" and she wanted to show it to Chopin but she was a bit afraid in case he didn't think it was good enough. Well, he obviously did, because he played it for her in 1842.
바버라 캔덜-데이비스 : 오, 그래요. 그녀는 처음에 약간 떨면서 그녀가 작곡하고 있었던 것을 그에게 보여주곤 했죠. 그리고 그녀는 <떡갈나무와 갈대>(‘갈대와 떡갈나무’라고 반대로 말했음)라는 노래를 썼다고 말하면서 조르쥬 상에게 편지를 썼으며, 그녀는 쇼팽에게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그가 충분히 좋다고 생각하지 않을 경우를 약간 두려워했어요. 음, 그는 1842년에 그녀를 위해 그것을 연주했기 때문에 분명히 했죠.
[BGM: Pauline Viardot - "Le chene et le roseau" (The Oak and the reed) / 폴린느 비아르도 <떡갈나무와 갈대>]
sung by Natalya Romaniw and accompanied by James Rhodes / 나탈리아 로마니우 노래 및 제임스 로즈 반주
# Le chene, un jour, dit au roseau / 떡갈나무가 어느 날 갈대에게 말했다네
Vous avez bien sujet d'accuser la nature... # / 자네는 자연 현상에 대해 인정해야 한다네...
At the National Library of France, Nicolas Dufetel was keen to show James some graphic evidence of this collaboration between Chopin and Viardot.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 니콜라스 뒤프텔은 제임스에게 쇼팽과 비아르도의 협연에 대한 생생한 증거를 보여주고 싶어 했다.
Nicolas Dufetel: They sang at a concert in the Salon Playel a melody by Pauline Viardot, "Le Chene et le Roseau". There is a manuscript here in the Bibliotheque Nationale with Chopin's corrections. So he helped her for the composition and for the interpretation. Do you want to see?
니콜라스 뒤프텔 : 그들은 살롱 플레이엘에서 가진 콘서트에서 폴린느 비아르도에 의한 멜로디 <떡갈나무와 갈대>를 노래했죠. 여기 원고가 쇼팽의 수정본들과 함께 국립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답니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위해 작곡과 해석을 도왔죠. 보고 싶나요?
James Rhodes: I'd love to see. And it has his writing on it?
제임스 로즈 : 정말 보고 싶네요. 그럼 그가 쓴 것이 있나요?
Nicolas Dufetel: Yes. With a pencil.
니콜라스 뒤프텔 : 그럼요. 연필로요.
James Rhodes: So I can't touch it, obviously.
제임스 로즈 : 그럼 저는 그걸 확실히 만질 수 없는 거네요.
Nicolas Dufetel: Sorry. This is "Le Chene et le Roseau". This manuscript could be the one used for the concert so it was in Chopin's hands. You see his own writing. So you see the handwriting, very...because it has to be used. And Chopin is quite shaky because it was certainly written on the piano. So you can imagine Pauline Viardot standing up...
니콜라스 뒤프텔 : 미안해요. 이건 <떡갈나무와 갈대>에요. 이 원고는 콘서트에 사용된 것이므로 쇼팽의 손에 있었습니다. 당신은 그 자신이 쓴 것을 봅니다. 그래서 당신은 필기를 봅니다, 매우...왜냐하면 그것은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쇼팽은 확실히 피아노에서 썼기 때문에 꽤 불안정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폴린느 비아르도가 일어서는 것을 상상할 수 있어요...
James Rhodes: I do the same thing, I write on the piano, how to play.
제임스 로즈 : 저는 똑같은 것을 하는데, 피아노에서 연주하는 방법을 적습니다.
Nicolas Dufetel: Chopin is the same, of course.
니콜라스 뒤프텔 : 물론, 쇼팽은 같아요.
[BGM: Chopin Polonaise-Fantasy in Ab, Op. 61 (performed by James Rhodes) / 쇼팽 <환상 폴로네즈> (제임스 로즈 연주)]
During the long summers at Nohant Chopin composed not just exquisite miniatures but longer scale works - his fantasies, ballades, the famous B-flat-minor sonata. One of the last works to be completed there was the challenging, dreamlike Polonaise-Fantaisie. Much of Chopin's composition was born out of his extraordinary powers of improvisation which never failed to dazzle an audience. A guest at George Sand's salon commented, "The other day I heard Chopin improvise. It is marvellous to hear him compose in this way. His inspiration is so immediate and complete that he plays without hesitation, as though it had to be thus. But when it comes to writing it down and recapturing the original thought in all its details, he spends days of nervous strain and almost frightening desperation. He alters and retouches the same phrases incessantly and walks up and down like a madman." Chopin and George Sand lived side by side for eight years both at Nohant and at apartments here at the Square d'Orleans. But in 1847 their by now uneasy relationship collapsed in bitterness when Chopin sided with Sand's daughter in a family row.
노앙의 긴 여름 동안 쇼팽은 미묘한 소품들이 아니라 보다 긴 스케일의 작품들인 환상곡들, 발라드, 유명한 소나타 2번을 작곡했다. 그곳에서 완성된 마지막 작품 중 하나는 도전적이고 꿈같은 환상 폴로네즈였다. 쇼팽의 작품 중 많은 부분이 청중에게 인상을 주지 못했던 그의 놀라운 즉흥적인 힘에서 태어났다. 조르쥬 상의 살롱에서 한 손님이 견해를 밝혔다. “다른 날 나는 쇼팽이 즉흥적이라고 들었다. 그가 이런 식으로 작곡하는 것을 듣는 것은 놀랍다. 그의 영감은 매우 즉각적이고 완전하며 마치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처럼 망설임 없이 연주한다. 그러나 그것을 적어두고 모든 세부 사항에서 원래의 생각을 다시 얻는 것에 관해서는, 그는 신경질적인 긴장과 거의 무서운 절망을 보낸다. 그는 변함없이 같은 프레이즈를 바꾸고 수정하며 광인처럼 위아래로 걸어간다.” 쇼팽과 조르쥬 상은 노앙에 있는 저택과 오를레앙 광장에 있는 아파트 모두에서 8년간 나란히 살았다. 그러나 1847년에 쇼팽이 가족 중에서 조르쥬 상의 딸 편을 들었을 때 그들의 불안한 관계는 씁쓸하게 무너졌다.
In June 1848, the year after his separation from Sand, alone, short of money and in deteriorating health, things got even worse for Chopin when Paris descended into chaos. Troops fired on a demonstrating crowd, sparking a new revolution. The French King Louis Philippe was overthrown and when he fled to England, the French aristocracy followed swiftly behind fearing another reign of terror. Chopin had no choice but to follow his clients to London. London was where he met the last of the great singers in his life. Her name was Jenny Lind, one of the most famous divas of the 19th century. Lind was born in the backstreets of Stockholm, a devout Protestant, disciplined and driven, who went on to conquer the European opera stage whilst still a teenager and then triumph on a grand tour of America organised by PT Barnum, where she was seen by over a million people and paid today's equivalent of more than $5 million. By the time they met, Chopin had all but finished composing. But his friendship with Lind reveals the effect a great voice could still have on the composer.
조르쥬 상과 결별하여 홀로 된지 1년 후인 1848년 6월, 돈이 부족해졌으며 파리가 서서히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을 때 건강 악화로 쇼팽에게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다. 군대는 시위 군중에게 발포하여 새로운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 루이 필립 왕이 실각되었고 영국으로 도망쳤을 때 프랑스 귀족은 또 다시 공포의 지배를 두려워하면서 신속히 따라갔다. 쇼팽은 그의 의뢰인들을 따라 런던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런던은 그의 생애에서 최후의 위대한 가수들을 만난 곳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예니 린트(제니 린드)로, 19세기의 가장 유명한 디바 중 한 명이었다. 린트는 스톡홀름의 뒷거리에 있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10대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훈련받고 주도적으로 유럽의 오페라 무대를 정복하고 이후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Phineas Taylor Barnum)이 주최한 미국 그랜드 투어에서 크게 성공했는데, 미국에서 그녀는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모았고 오늘날 5백만 달러가 넘는 돈을 벌었다. 그들이 만났을 때, 쇼팽은 작곡을 거의 끝낸 상태였다. 그러나 린트와의 우정은 훌륭한 목소리가 여전히 작곡가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보여준다.
James and Natalya travel to Brussels to meet a Scandinavian couple, Cecilia and Jens Jorgensen. The Jorgensens have spent the last seven years exploring the relationship between Chopin and Lind. They both had careers in business but since retiring have been caught up like so many before them in the mysteries and uncertainty surrounding Chopin's life. Cecilia became intrigued when she read of Chopin's encounter with her fellow Swede Jenny Lind. Since then, she and Jens have been working as researcher-cum-detectives, trying to uncover what happened between these two great musicians.
제임스와 나탈리아는 브뤼셀로 가서 스칸디나비아 부부인 세실리아와 옌스 요르헨센을 만난다. 요르헨센 부부는 지난 7년 동안 쇼팽과 린트의 관계를 탐구해왔다. 그들은 둘 다 사업에서 경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은퇴 이후 쇼팽의 인생을 둘러싼 불가사의와 불확실성 속에서 그들 이전의 많은 사람들처럼 따라잡았다. 세실리아는 그녀와 같은 스웨덴 사람인 예니 린트와 쇼팽이 만난 대목을 읽었을 때 흥미로워졌다. 그 이후로, 그녀와 옌스는 이 위대한 음악가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밝히기 위해 연구원 겸 탐정으로 일하고 있다.
Jens Jorgensen: There's a lot of mystery around Chopin, isn't there?
옌스 요르헨센 : 쇼팽 주변에는 많은 수수께끼가 있는데 그렇지 않나요?
James Rhoses: Almost a mythical quality.
제임스 로즈 : 거의 신화급이죠.
Cecilia Jorgensen: You are a bit like Chopin, do you know that? he writes... He's got a lot of humour and he's very good at observing situations...
세실리아 요르헨센 : 당신은 쇼팽과 조금 비슷한데, 그거 아나요? 그는 다음과 같이 씁니다... 그는 유머 감각이 뛰어나고 상황을 잘 관찰합니다.
James Rhoses: Extremely good looking(!)
제임스 로즈 : 매우 좋아 보이네요(!)
Cecilia Jorgensen: I was going to add that point.
세실리아 요르헨센 : 저는 그 지점을 추가하려고 했어요.
James Rhoses: I should cough more.
제임스 로즈 : 더 기침해야 합니다.
Jens Jorgensen: It's a good start.
옌스 요르헨센 : 좋은 시작입니다.
James Rhoses: What fascinates me is, we're talking about the last few months of his life. What was it that got you to sit up and think, "Wow! There's something really new here, something really intriguing?" And you spent, what, eight years now?
제임스 로즈 : 저를 매료시키는 것은 그의 인생의 마지막 몇 개월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앉아서 생각하는 게 뭐였죠? “와우! 여기 정말 새로운 뭔가가 있는데, 정말 흥미로운 것인가?” 그리고 당신은 지금 8년이나 지냈나요?
Cecilia Jorgensen: Today nobody else has ever spoken about Chopin generally and no other scholars, so it's new information. There is clear evidence, of course, that Chopin and Jenny Lind had a very special relationship that went far beyond mere acquaintance.
세실리아 요르헨센 : 오늘날 다른 누구도 쇼팽에 대해 일반적으로 말한 적이 없으며 다른 학자들과 이야기한 적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정보입니다. 물론 쇼팽과 예니 린트는 단순한 친분 관계를 넘어서는 매우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습니다.
James Rhodes: OK.
제임스 로즈 : 오케이.
Cecilia Jorgensen: We can hear from his letters that they had a close relationship. There is a letter from Jenny Lind to a friend from 9th November 1849, that's nine days after his funeral, and in that she talks about her loss of Chopin and that she feels numb by this loss. After his death, she wrote music to his mazurkas.
세실리아 요르헨센 : 우리는 편지에서 친밀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니 린트가 그의 장례식을 마친 후 9일이 지난 1849년 11월 9일에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가 있는데, 그녀는 쇼팽의 상실로 인해 무감각하다고 느낍니다. 그의 죽음 후에, 그녀는 그의 마주르카들에 대한 음악을 썼죠.
Jens Jorgensen: Her own arrangement. For voice and piano.
옌스 요르헨센 : 그녀 자신의 편곡. 목소리와 피아노를 위한 것이죠.
Cecilia Jorgensen: For voice and piano. And it's "Faithful Love Will Never Die".
세실리아 요르헨센 : 목소리와 피아노를 위한 것. 그리고 그것은 <진실한 사랑은 결코 죽지 않는다>였죠.
So how did the ailing Polish composer and this young Swedish singer meet?
그렇다면 병든 폴란드 작곡가와 이 젊은 스웨덴 가수는 어떻게 만났을까?
[BGM: Chopin Sonata No. 3 in b, Op. 58: IV. Finale. Presto non tanto - Agitato (performed by James Rhodes on the Steinway Piano) / 쇼팽 소나타 3번 4악장 (제임스 로즈의 스타인웨이 피아노 연주)]
In April 1848 Chopin arrived in London where he took an apartment in fashionable Mayfair, probably paid for with the help of wealthy British patrons.
1848년 4월 쇼팽은 런던에 도착하여 유복한 메이페어의 아파트를 빌려 부유한 영국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지불했다.
Dr. Rachel Cowgill (Professor of Musicology, Liverpool Hope University): There was a glut of musicians who poured over from the Continent in 1848 largely to escape the violence and the infighting that was going on in Paris, particularly. So you get pianists such as Talberg, Kalkbrenner, Chopin, obviously, Berlioz comes over as well, he sees this as a place that offers him refuge.
레이첼 카우길 박사 (리버풀 홉 대학교 음악학 교수) : 특히 파리에서 벌어지고 있던 폭력과 내전을 피하기 위해 1848년에 대륙을 떠돌아다니는 음악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탈베르크, 칼크브렌너, 쇼팽과 같은 피아니스트들이 생겨났는데, 물론 베를리오즈도 이곳을 그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장소라고 생각했죠.
Jens Jorgensen: This is 48 Dover Street, where Chopin stayed... shortly after his arrival.
옌스 요르헨센 : 여기는 쇼팽이 도착 후 잠시 머물렀던...도버가 48번지입니다.
Cecilia Jorgensen: We know that he came here about a week after his arrival in London and we know that from the piano firm Broadwood, from their records, that they delivered a piano on that day, the 27th April, it's quite interesting.
세실리아 요르헨센 : 우리는 그가 런던에 도착한지 약 일주일 후에 여기에 온 것을 알고 있으며, 우리는 피아노 회사 브로드우드의 기록에 따르면, 그날 피아노를 전달한 것은 4월 27일이라고 알고 있는데, 매우 흥미롭네요.
James Rhodes: So it was up there somewhere.
제임스 로즈 : 그래서 그것은 어딘가에 있었죠.
Jens Jorgensen: Well, probably the modern building.
옌스 요르헨센 : 음, 아마도 현대 건물인 것 같네요.
Cecilia Jorgensen: Chopin writes that, "I finally have a room in which I can breathe and play."
세실리아 요르헨센 : 쇼팽은 “나는 마침내 내가 숨 쉬고 연주할 수 있는 방이 있다”고 썼죠.
Dr. Rachel Cowgill: At the point at which Chopin came to London and tried to establish himself in 1848, he was a very sick man. He certainly was by the end of several months of trekking round London society, being introduced to the 'ton', the fashionable crowds.
레이첼 카우길 박사 : 쇼팽이 런던에 와서 1848년에 자신을 확립하려고 할 때 그는 매우 아팠습니다. 그는 확실히 세련된 군중인 ‘톤’(유행의 첨단을 걷는 사람들)에 소개되어 런던을 돌아다니며 몇 개월 동안 트레킹(이동)을 마쳤습니다.
Dr. Rachel Cowgill: Probably the most prestigious appearance that Chopin whilst in London was his presentation to Queen Victoria and Prince Albert at Stafford House. This was at a gathering hosted by the Duchess of Sutherland and Stafford House was a very, very beautiful - still is - it's now known as Lancaster House. A very, very beautiful setting for a concert, a stone's throw from St. James' Palace and Chopin was presented to the Queen and the Prince Consort. His sense was that he was politely welcomed.
레이첼 카우길 박사 : 아마도 런던에서 쇼팽이 스태포드 하우스에서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왕자 앞에서 연주한 것은 가장 유명한 출현일 것입니다. 이것은 서덜랜드 공작부인이 주최한 모임이었으며 스태포드 하우스는 매우, 매우 아름다웠어요. - 지금도요. - 지금은 랭커스터 하우스로 알려져 있죠. 세인트제임스 궁전과 아주 가까운 거리인 연주회를 하기에 매우, 매우 아름다운 장소였고 쇼팽은 여왕과 여왕의 부군에게 소개되었습니다. 그의 뜻은 그가 정중하게 환영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By 1848 Jenny Lind was London't most celebrated singer. She was earning huge fees and her performances were the hottest ticket in town.
1848년 예니 린트는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가수였다. 그녀는 엄청난 보수를 받았고 그녀의 공연은 도시에서 가장 인기 있는 티켓이었다.
Rupert Christiansen (Opera critic & historian): Fascinating, this whole phenomenon of Lindmania and how quickly the merchandising and the marketing started. She was on the cover of chocolate boxes, there was a tulip named after her, there was a pub in Hastings called the Jenny Lind, which she would not have approved of. I'm sure she didn't approve of public houses.
루퍼트 크리스티안센 (오페라 비평가 겸 사학자) : 매혹적인 이 모든 린드매니아 현상, 관련 상품 판매와 마케팅이 얼마나 빨리 시작되었는지는 매혹적입니다. 그녀는 초콜릿 상자 표지를 장식했고, 그녀의 이름을 딴 튤립이 있었으며, 헤이스팅스에서는 그녀가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는 “제니 린드”라고 불리는 퍼브(술을 비롯한 여러 음료와 흔히 음식도 파는 대중적인 술집)가 있었죠. 저는 그녀가 술집들을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해요.
Dr. Rachel Cowgill: Queen Victoria loved the opera and she loved prima donnas, she loved sings. Perhaps most significantly, Jenny Lind. So when Jenny Lind finally came to London and took up an engagement at Her Majesty's Theatre, she was captivated and I think she attended every single one of Jenny Lind's performances that season.
레이첼 카우길 박사 : 빅토리아 여왕은 오페라를 사랑했고 프리마돈나(오페라단의 주역 여성 가수)들을 사랑했으며, 노래하는 것을 사랑했어요.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예니 린트였을 것입니다. 예니 린트가 마침내 런던에 왔을 때 “여왕 폐하의 극장”에서 계약하면서, 그녀(여왕)는 사로잡혔으며 그녀가 그 시즌에 예니 린트의 모든 공연을 참관했다고 생각합니다.
On May 11th 1848, Chopin heard Jenny Lind sing for the first time at Her Majesty's Theatre in a performance of Bellini's opera "La Sonnambula".
1848년 5월 11일, 쇼팽은 벨리니의 오페라 <몽유병 여인> 공연에서 예니 린트가 “여왕 폐하의 극장”에서 노래하는 것을 처음으로 들었다.
Ed Gardener, Music Director of English National Opera, is working with Natalya on the most famous number from Sonnambula, an aria indelibly associated with Jenny Lind and her distinctive style of singing.
잉글랜드 국립 오페라단의 음악 감독인 에드 가드너는 예니 린트와 그녀의 독특한 노래 스타일과 관련되어 지워지지 않는 아리아로 <몽유병 여인>의 가장 유명한 넘버를 나탈리아와 함께 작업하고 있다.
Ed Gardener: Where does it come in the piece and what is the character feeling when she comes to sing it?
에드 가드너 : 그 곡은 어디에서 왔으며 그녀가 그것을 부르러 올 때의 느낌은 어떤가요?
Natalya Romaniw: It comes quite near the end and she's sleepwalking, so she's being quite honest, I would imagine. She doesn't know that anyone's listening to her.
나탈리아 로마니우 : 그것은 거의 끝이 오고 그녀는 몽유병 중이기 때문에 그녀는 매우 정직하다고 저는 상상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누군가가 그녀의 말을 듣고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Ed Gardener: So it's private, in a way.
에드 가드너 : 그래서 그것은 은밀한 것입니다.
Natalya Romaniw: Very intimate.
나탈리아 로마니우 : 매우 친밀하죠.
Ed Gardener: That private, that kind of chambery colour, I guess, is something which I think is a real fingerprint of the piece and something I think Chopin said about Jenny Lind's singing, that it has a sort of finesse in its piano about it.
에드 가드너 : 제가 생각하는, 그 은밀한, 그런 종류의 방 같은 색깔은 그 곡의 실제 지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자 쇼팽이 예니 린트의 노래에 대해서 피아노에 관한 일종의 기교가 있다고 말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Natalya Romaniw: Yes.
나탈리아 로마니우 : 네.
Ed Gardener: An evenness but a finesse as well.
에드 가드너 : 침착하지만 기교도 마찬가지였죠.
Rupert Christiansen: Amina in La Sonnambula by Bellini was probably her most famous role. La Sonnambula, The Sleepwalker. It just sort of fitted her personality in the most wonderful way. It's about a very pure village girl in Switzerland who is thought to have been seen in a gentleman's bedroom. And her honour is impugned and scandal threatens.
루퍼트 크리스티안센 : 벨리니의 오페라 <몽유병 여인>에 나오는 아미나는 아마도 그녀의 가장 유명한 역할이었을 것입니다. 라 소남불라, 몽유병 여인. 그것은 가장 훌륭한 방식으로 그녀의 개성을 적합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것은 신사의 침실에서 본 것으로 생각되는 스위스의 매우 순수한 마을 소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녀의 명예가 훼손되고 스캔들이 위협하죠.
[She sings in Italian / 그녀가 이탈리아어로 노래 부른다.]
[Bellini - Ah! non credea mirarti (from "La Sonnambula") / 벨리니 오페라 <몽유병 여인> 중 아미나의 아리아 <아! 믿을 수 없어>
sung by Natalya Romaniw and accompanied by Ed Gardener / 나탈리아 로마니우 노래 및 에드 가드너 반주
Ed Gardener: You sing it beautifully.
에드 가드너 : 아름답게 노래하네요.
Rupert Christiansen: It turns out that she's a sleepwalker and, em, everybody's very relieved that, in fact, she turns out to be, em, absolutely the unsullied virgin and of course, this fitted the whole Jenny Lind mythology to a tee apart from the fact that I think the music obviously suited her beautifully.
루퍼트 크리스티안센 : 그녀는 몽유병 환자라는 것이 밝혀졌고, 음, 모두들 매우 안심했습니다. 사실 그녀는 절대 처녀가 아니라고 밝혀졌는데, 음, 물론 이것은 제 생각에 음악이 분명히 그녀에게 아름답게 어울렸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예니 린트의 신화 전체에 딱 맞아떨어졌죠.
Ed Gardener: Why does he write these breaks after, "Si presto estinto"? What are those rests for?
에드 가드너 : 왜 그는 아미나의 아리아 <네가 이렇게 빨리 시들 줄이야> 후에 이 휴지(쉬는 것)들을 쓸까요? 그것들은 무엇을 위해 쉬고 있을까요?
Natalya Romaniw: Em... Emotion.
나탈리아 로마니우 : 음... 감정이요.
Ed Gardener: Yeah. That's it, because you can't carry the phrase on.
에드 가드너 : 네. 그건 바로, 당신이 그 프레이즈를 옮길 수 없기 때문이죠.
Natalya Romaniw: No, yeah.
나탈리아 로마니우 : 아니, 그래요.
Ed Gardener: We need to hear them. It can't feel too comfortable in the way that you sing it. Shall we try it again?
에드 가드너 : 우리는 그것들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이 그것을 노래하는 방식에 너무 편안함을 느낄 수 없습니다. 우리 다시 시도할까요?
Natalya Romaniw: Yes.
나탈리아 로마니우 : 그래요.
[He plays piano. / 그가 피아노를 친다.]
[She sings in Italian / 그녀가 이탈리아어로 노래 부른다.]
Ah,non credea mirarti / Oh, I didn't believe to see you / 오 나는 너희들을 볼지 몰랐다
si presto estinto, o fiore; / so quickly extinct, o flowers; / 너희들이 그렇게도 빨리 시드는 것을, 꽃들이여
passasti al par d'amore, / you have passed away like love / 너희들은 죽어버렸구나 마치 사랑처럼
che un giorno sol(o) duro. / that one day only lasted. / 단 하루 동안 지속된 그 사랑.
Rupert Christiansen: 'It was one of those voices like Maria Callas', which was instantly recognisable. Of course, there are no recordings of it,' so we don't actually know what it sounded like, but Chopin said it reminded him of the northern lights and other people said that it reminded them of the smell of pine trees. There was something very, very... fresh, something very, very cool, something very, very pure about it.
루퍼트 크리스티안센 : ‘그것은 마리아 칼라스 같은 목소리 중 하나였으며 즉시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우리는 실제로 그래서 우리는 실제로 어떤 소리가 나는지 알지 못하지만, 쇼팽은 그에게 북극광을 상기시키고 다른 사람들은 소나무의 냄새를 상기시킨다고 말했습니다. 매우, 매우... 신선하고 뭔가 매우, 매우 차가운 뭔가가 있었고 그것에 대해 매우, 매우 순수한 것이 있었죠.
[She sings in Italian / 그녀가 이탈리아어로 노래 부른다.]
In a letter back to Warsaw, Chopin was unusually effusive about Lind. "She is enormously effective in Sonnambula. She sings with extreme purity and conviction and her piano notes are steady and even as a hair." The night after Chopin heard Jenny singing "La Sonnambula", he was invited to a small supper party with her at the Belgravia home of their mutual friend, a Mrs. Grote.
바르샤바에 보낸 편지에서 쇼팽은 린트에 대해서 유별나게 과장스러웠다. “그녀는 벨리니의 오페라 <몽유병 여인>에서 엄청난 효과가 있습니다. 그녀는 극도의 순결과 신념으로 노래하며 그녀의 여린 음들은 머리카락처럼 가늘게 꾸준합니다.” 쇼팽은 예니가 <몽유병 여인>을 부르는 것을 들은 후 밤에, 그녀와 함께 그들의 친한 친구인 그로트 여사의 벨그라비아에 있는 집에서 열리는 작은 저녁 파티에 초대되었다.
Natalya Romaniw : So what happened in Mrs. Grote's house that evening?
나탈리아 로마니우 : 그날 그로트 여사의 집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Cecilia Jorgensen (Co-author - "Chopin and Swedish Nightingale"): (Laghter) A very leading question! But what we know is that they played together, they were sitting at the piano, both of them, from 9.00 till 1.00 in the night. That's four hours. We know that Mrs. Grote arranged for Chopin, she invited him to a dinner and when he got there, the only other guest was Jenny Lind.
세실리아 요르헨센 (<쇼팽과 스웨덴의 나이팅게일>의 공동 저자) : (다들 웃음) 매우 중요한 질문이네요!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은 그들 모두 9시부터 1시까지 밤에 피아노 앞에 앉아서 함께 연주했다는 것이죠. 4시간이네요. 우리가 아는 것은 그로트 여사가 쇼팽에게 주선했는데 그녀는 그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고 그가 거기에 도착했을 때 유일한 다른 손님은 예니 린트였다는 것이죠.
James Rhodes: You think she was playing a matchmaker?
제임스 로즈 : 당신은 그녀가 중매쟁이였다고 생각하나요?
Cecilia Jorgensen: Yeah and I think Jenny Lind must have expressed a wish to see him.
세실리아 요르헨센 : 네, 그리고 저는 예니 린트가 그를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표현한 것 같다고 생각해요.
Jens Jorgensen: She's not a matchmaker, but it is to make these two great musical personalities to meet because clearly Chopin was impressed by Jenny Lind's performance.
옌스 요르헨센 : 그녀는 중매쟁이가 아니었지만, 쇼팽이 예니 린트의 공연에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이 두 위대한 음악적인 인물들이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James Rhodes: Do we know what they played or...?
제임스 로즈 : 그들이 협연한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나요 아니면...?
Cecilia Jorgensen: No, we can only... She usually played "Swedish thing" as he talks about it because they do meet soon after again, where he says, "She played me Swedish things till midnight."
세실리아 요르헨센 : 아니, 우리는 할 수도 있어요... 그녀는 보통 “스웨덴의 것”을 불렀는데 그들은 그가 “그녀는 나를 위해 자정까지 스웨덴의 것을 연주했다”고 말하는 곳에서 곧 다시 만날 것이기 때문에 그가 그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처럼요.
sung by sung by Natalya Romaniw and accompanied by James Rhodes / 나탈리아 로마니우 노래 및 제임스 로즈 반주
Adam Zamoyski: 'Chopin alludes to the fact that she had taken, as it were, the music of Scandinavia, the melodies of her country, and translated them into something else.' He thought he perceived in her, something very akin to what he was doing and it was an extraordinary musical experience for him, 'which was saying quite a lot because not much was exciting him by then. He was pretty jaded, pretty depressed, so the fact that Jenny Lind made such an impression says a lot about...about her and how he understood her.'
아담 자모이스키 : ‘쇼팽은 자신이 스칸디나비아 음악, 즉 그녀의 나라의 멜로디를 취한 채 다른 것으로 번역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그가 하고 있었던 것과 매우 비슷한 것을 그녀 안에서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를 위한 특별한 음악 경험이었는데, ‘그때까지는 그를 별로 흥분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꽤 많이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꽤 지칠 대로 지쳤고 꽤 우울했기 때문에 예니 린트가 그렇게 인상적이었다는 사실은...그녀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그가 그녀를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대해 많이 말합니다.
[She continues to sing. / 그녀가 계속 노래한다.]
The Jorgensens' research has led them to develop a new theory that Chopin and Lind had some kind of romance in the summer of 1848. Although Jenny was on tour around Britain and Chopin was mostly in Scotland, the Jorgensens are convinced that their letters reveal clues of powerful emotions. "Miss Lind came to my concert! She never sings anywhere but in the opera, but she would have sung for me according to Mrs. Grote... If I were younger, if I were not prostrate under my affections as I am, I might be able to start life again."
요르헨센 부부의 연구는 쇼팽과 린트가 1848년 여름에 어떤 종류의 로맨스를 가졌다는 새로운 이론을 개발하게 만들었다. 예니는 영국을 여행 중이었고 쇼팽은 주로 스코틀랜드에 있었지만 요르헨센 부부는 그들의 편지들이 강력한 감정의 단서를 밝히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미스 린트가 제 콘서트에 왔습니다! 그녀는 오페라를 제외하고 어디서나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지만, 그로트 여사에 따르면 그녀는 저를 위해 노래했을 것입니다...제가 더 젊었다면, 제가 제 애정 아래에서 엎드려 절하지 않았다면, 저는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Jens Jorgensen: Chopin writes already in June in London, "I prostrate under my feelings, I wish I was younger." Now...that...is open for a very clear interpretation of what he's talking about there, so, er, the romance started...already in London, clearly, and continued - there were all sorts of opportunities.
옌스 요르헨센 : 쇼팽은 이미 런던에서 6월에 “나는 내 감정에 엎드려, 내가 더 젊었으면 좋겠다”고 씁니다. 지금...그것...은 그가 말하는 것에 대해 매우 분명한 해석을 하기 위해 열려 있는데, 그래서, 어, 로맨스가 시작했는데...이미 런던에서, 분명하게, 계속되었는데 - 온갖 기회들이 있었죠.
There is no hard evidence of a Chopin-Lind romance, but it's not difficult to understand why there might be speculation. Clearly her voice made a huge impression on Chopin.
쇼팽-린트의 로맨스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왜 추측이 가능한지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분명히 그녀의 목소리는 쇼팽에게 커다란 인상을 주었다.
[BGM: Chopin Prelude in e, Op. 28 No. 4 (performed by James Rhodes on the Steinway Piano) / 쇼팽 프렐류드 4번 (제임스 로즈의 스타인웨이 피아노 연주)]
In November 1848, despite very poor health, Chopin played at a grand Polish ball at London's Guildhall.
1848년 11월에,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쇼팽은 런던의 길드 홀에서 열린 웅대한 폴란드 무도회에서 연주했다.
Dr. Rachel Cowgill: He played at the concert on the way back from, em, Scotland. He was very ill. He'd caught a chill on the way back to London. Em, and he was effectively providing music from an anteroom. He played for about an hour, em, his usual short characteristic pieces and nobody really paid him any attention and certainly we don't get comment in the press. You'd have thought that such an event would have been a great platform for him, that he would have been a great centrepiece, his performance would have been a great centrepiece at this event, but unfortunately, it almost passed without notice and he left, returned to Paris, and that was his last public performance.
레이첼 카우길 박사 : 그는 음, 스코틀랜드에서 돌아오는 길에 콘서트에서 연주했습니다. 그는 매우 아팠죠. 그는 런던으로 돌아오는 길에 감기에 걸렸죠. 음, 그리고 그는 대기실에서 음악을 효과적으로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음, 그의 평소의 짧은 성격 소품들을 약 한 시간 동안 연주했고, 아무도 정말 그에게 어떤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언론에서 논평을 얻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그와 같은 이벤트가 그에게 훌륭한 플랫폼이었을 것이다, 그는 훌륭한 중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의 연주는 이 이벤트에서 훌륭한 중심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지만, 불행히도, 그것은 공지 없이 거의 지나쳤으며 그는 떠났고, 파리로 돌아갔으며, 그것은 그의 마지막 공개 연주였습니다.
[BGM: Chopin Ballade in f, Op. 52 / 쇼팽 발라드 4번]
Although this last performance may have been a dismal event, Chopin's final years as a composer produced some of his most powerful work, some of the great masterpieces of the piano repertoire, including a work about which James is passionate - the fourth Ballade.
이 마지막 연주는 음침한 사건이었지만, 쇼팽의 작곡가로서의 마지막 해는 제임스가 열정을 느끼는 작품인 발라드 4번을 포함하여 피아노 레퍼토리의 위대한 걸작들 중 일부인, 가장 강력한 작품의 일부를 만들었다.
Eduardo Strabioli: There are plenty of wonderful moments here.
에두아르도 스트라비올리 : 여기에는 멋진 순간들이 많이 있어.
Looking at the Ballade with his Italian teacher Eduardo Strabioli, James is exploring how to bring out the bel canto line within the piece.
그의 이탈리아 선생님인 에두아르도 스트라비올리와 함께 발라드를 보면서, 제임스는 곡에 있는 벨칸토 선율을 끌어내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He plays the piano. / 그가 피아노를 친다.]
Eduardo Strabioli: Yeah, but I felt that you cut a couple of times with the long line...
에두아르도 스트라비올리 : 어, 그러나 나는 네가 긴 선율을 몇 번 자른 느낌이 드는데...
James Rhodes: Yeah.
제임스 로즈 : 네.
Eduardo Strabioli: ..which I don't think we need. I mean, because the bel canto is to be easy to follow and somehow this... Of course I know that is important to notice, but not to stop the line. The upper line has to... 'The whole concept of the piece is really taking a line from a song and turning it into this maelstrom of variations and notes.' Be careful not to make accent on the short note. Because I can feel a PA-dam, PUM-peem...PUM-pum, PUM-pum... This happens because we have not the voice.
에두아르도 스트라비올리 : ..우리가 필요하다고 내가 생각하지 않는 것이지. 내 말은, 벨칸토는 쉽게 따라할 수 있고, 어떻게든 이것은... 물론 나는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선율을 멈추게 하지는 않아. 위에 있는 선율은... ‘이 곡의 전체 개념은 노래에서 한 선율을 가져 와서 변주들과 음들의 소용돌이로 바꾸고 있는 것’이어야 해. 짧은 음에서 악센트를 만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돼. 내가 빠담, 빰삠...빰빰, 빰빰...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지. 이것은 우리가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일어나는 거야.
[Eduardo hums with piano / 에두아르도가 여리게 허밍을 한다.]
James Rhodes: 'The theme has a hugely song-like quality. Even though it is the simplest of themes, it is one of the deepest pieces. I don't think he ever exposes himself more than in that piece.'
제임스 로즈 : ‘주제는 엄청나게 노래와 같은 성질입니다. 비록 그것이 가장 단순한 주제이지만, 그것은 가장 깊은 곡들 중 하나입니다. 저는 그 곡에서보다 더 그 자신을 드러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BGM: Chopin Ballade in f, Op. 52 (peformed by Emanuel Ax) / 쇼팽 발라드 4번 (에마누엘 액스 연주)]
Emanuel Ax is one of the world's greatest Chopin interpreters. James met up with him while he was rehearsing at the Barbican in London.
에마누엘 액스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쇼팽 해석자들 중 한 명이다. 제임스는 런던의 바비칸 센터에서 리허설하고 있는 중인 액스를 만났다.
Emanuel Ax: The trick is to slow down here...
에마누엘 액스 : 여기 천천히 하는 것이 속임수지...
He asked him how important he thinks the singing line is throughout the Chopin repertoire.
제임스는 에마누엘 액스에게 노래하는 선율이 쇼팽 레퍼토리 전체에 걸쳐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질문했다.
Emanuel Ax: If you play anything of Chopin very slowly it still sounds good. You know, all the fast Etudes that are meant to be played at an absurd rate of speed, especially if you follow his metronome markings, which are, I think, impossible for any human being, but in fact, if you're just practising, if you just play slowly, it sounds so good. You know? It sounds like a beautiful singing line at a slow tempo. So I think he was always thinking that way.
에마누엘 액스 : 쇼팽을 매우 천천히 연주하면, 여전히 좋게 들립니다. 알다시피 터무니없는 속도로 연주되는 모든 빠른 연습곡들은, 특히 당신이 그의 메트로놈(박절기) 표시를 따른다면, 제 생각에 그것은 어떤 인간에게도 불가능하지만, 사실, 당신이 단지 연습하고 있다면, 당신이 천천히 연주한다면, 매우 좋게 들립니다. 알겠죠? 느린 템포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 것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James Rhodes: And in the fourth Ballade too, of course.
제임스 로즈 : 그리고 물론 발라드 4번에서도 마찬가지죠.
Emanuel Ax: In that piece, in particular, what I've always felt is that he seems to somehow find a way of going from absolutely the most simple and, kind of, not outward music, to something that is completely passionate and then actually goes haywire. You know, so you start with...
에마누엘 액스 : 그 곡에서, 특히, 제가 항상 느꼈던 것은 그가 절대적으로 가장 단순한 것과 일종의 외형 음악이 아닌 것부터 완전히 열정적인 것까지 가는 길을 어떻게든 찾는 것 같다는 것이고, 그러고 나서 실제로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알다시피, 그래서 당신은 시작해야 합니다...
[Plays short excerpt / 짧게 발췌하여 친다.]
Emanuel Ax: Just that. And then the next time you add a little bit... Buh-buh-buh-buh... And the next time you add a little bit of that... And then the next time you start going a little bit mad.....everything actually not in units of four or eight, but always seven, or ten, or something crazy, you know? And then, eventually, comes the coda. Which is literally berserk.
에마누엘 액스 : 바로 그거에요. 그리고 다음에 조금 추가하면... 빠빠빠빠... 그리고 다음에 조금 더 추가하면... 그러고 나서 다음에 조금 미쳐가기 시작하죠...실제로 4 또는 8의 단위가 아닌 모든 것, 그러나 7, 또는 10, 또는 뭔가 미친, 알겠죠? 그러고 나서 결국, 코다(악곡 끝에 결미로서 덧붙인 부분. ‘꼬리’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에서 비롯된 말)로 옵니다. 말 그대로 화나는 것이죠.
James Rhodes: Especially after the calm.
제임스 로즈 : 특히 평온함 뒤에요.
Emanuel Ax: So I think in this piece it really goes from that, to... And the more you can find a way of doing that, I think, the grander the performance becomes. So it's difficult at the beginning, especially, to find a way of playing really, really beautifully, and really simply. I don't know, I haven't found it yet! But that's what I'm looking for!
에마누엘 액스 : 그래서 저는 이 곡에서 실제로 그것이 저것에서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방식을 더 많이 발견할수록, 연주가 더 좋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특히, 정말로, 정말로 아름답게, 정말로 간단하게 연주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어렵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아직 그것을 발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게 제가 찾고 있는 것이죠!
[BGM: Chopin Ballade in f, Op. 52 (peformed by James Rhodes on the Steinway Piano) / 쇼팽 발라드 4번 (제임스 로즈의 스타인웨이 피아노 연주)]
The main thing we can be sure of in Chopin's personal life is that we don't know the whole story. But in his music, although we don't get answers, we do get a sense of the sheer depth of his emotional experience. And it is this that is so relentlessly attractive to artists like James.
우리가 쇼팽의 개인적인 삶에서 확신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전체 이야기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음악에서 우리는 대답을 얻지 못하지만 감정적인 경험에 대한 깊은 감각을 얻는다. 그리고 이것은 제임스와 같은 아티스트들에게 매우 가차 없는 매력이다.
[BGM: Chopin Waltz No. 19 in a, Op. posth. / 쇼팽 왈츠 19번 유작]
In November 1848, in failing health, Chopin returned to Paris to consult his doctors. Intriguingly, Jenny Lind made an unexpected visit to Paris the following spring, as soon as she had completed her contract at Her Majesty's Theatre. This was despite the fact that she disliked Paris, and at the time of her visit the city was in the grip of a severe cholera outbreak. For three weeks, she stayed in a house on the Champs-Elysees and Chopin wrote in a letter that she had visited him, and sung in his apartment. Eventually, fearing for her health, Jenny left the city. She must have been painfully aware that she would probably never see him again. Shortly after her departure, Chopin received a mysterious package containing 25,000 francs to cover his considerable debts. The money may have come from his Scottish piano student, Jane Stirling. But Jenny Lind was famous for her wealth and philanthrophy. Was this perhaps a farewell gift from her? Jenny Lind wasn't the only one of the singers who rallied round. Pauline Viardot was in regular contact and sent reports of his health to George Sand. And his old friend, the beautiful Polish countess Delfina Potocka's name appears regularly in the correspondence of his final months.
1848년 11월,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 쇼팽은 파리로 돌아와 의사와 상담했다. 흥미롭게도 예니 린트는 여왕 폐하의 극장에서 계약을 완료하자마자 다음 봄에 예기치 않은 파리 방문을 했다. 이것은 그녀가 파리를 싫어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한 것이었고, 방문 당시 파리는 심한 콜레라가 돌았다. 3주 동안 그녀는 샹젤리제에 있는 집에 머물렀고 쇼팽은 그녀가 그를 방문하여 그의 아파트에서 노래했던 것을 편지에 썼다. 결국 그녀의 건강을 두려워해서 예니는 도시를 떠났다. 그녀는 아마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 것임을 고통스럽게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녀가 떠난 직후 쇼팽은 상당한 빚을 충당할 수 있는 25,000프랑을 포함하는 신비한 패키지를 받았다. 그 돈은 스코틀랜드의 피아노 제자인 제인 스털링에게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예니 린트는 그녀의 부유함과 자선 사업가로 유명했다. 아마도 그녀의 이별 선물이었을까? 예니 린트는 유일하게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기 위해) 힘을 합친 가수들 중에 없었다. 폴린느 비아르도는 정기적인 접촉을 통해 그의 건강에 대한 보고서들을 조르쥬 상에게 보냈다. 그리고 그의 오랜 친구이자 아름다운 폴란드 백작부인 델피나 포토츠카의 이름이 그의 마지막 달의 서신에서 정기적으로 나타난다.
In September 1849, Chopin's friends rented him a small apartment in Paris' grandest square, the Place Vendome. It was situated in the magnificent building that is now home to the ancient French jewellery house of Chaumet.
1849년 9월, 쇼팽의 친구들은 파리에서 가장 큰 광장인 방돔 광장(플라스 방돔)에 있는 작은 아파트를 빌려주었다. 쇼메의 고대 프랑스 보석상이 있는 웅장한 건물에 위치하고 있다.
James Rhodes: What an incredible place!
제임스 로즈 : 믿을 수 없는 장소네요!
Beatrice de Plinval (Curator, Chaumet Museum): Yes. It's enormous! Yes. There's a view of the Place Vendome.
베아트리스 드 플랭발 (쇼메 박물관장) : 네, 엄청나죠! 네. 방돔 광장의 전망이 있습니다.
According to Beatrice de Plinval, Chopin was accommodated in a small apartment on the ground floor. this grand salon was at the time rented by Delfina Potocka.
베아트리스 드 플랭발에 의하면, 쇼팽은 1층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 수용되었다. 이 그랜드 살롱은 당시 델피나 포토츠카가 대여했다.
Beatrice de Plinval: She wrote that, on the 15th of October 1849, on that day, she is visiting Chopin, and he was...he was terribly...anxieux.
베아트리스 드 플랭발 : 그녀는 1849년 10월 15일에 그날 쇼팽을 방문 중이라고 썼고, 그는...그는 정말 끔찍했습니다...불안했어요.
James Rhodes: Mm.
제임스 로즈 : 음.
Beatrice de Plinval: And he asked her, "I don't...I don't want to leave the life without the song of my piano. Could you manage something for me?" So she decided to move the bed of Chopin where was the piano - it means here.
베아트리스 드 플랭발 :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저는 제 피아노의 노래 없이 인생을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저를 위해 뭔가를 관리해줄 수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쇼팽의 침대를 피아노가 있었던 곳으로 옮기기로 결정했습니다. - 여기를 의미합니다.
James Rhodes: Mm.
제임스 로즈 : 음.
Beatrice de Plinval: And he spent the last three days of his life here. So in a such beautiful room, with that view on the Place Vendome, we have all... We live with Chopin here.
베아트리스 드 플랭발 : 그리고 그는 그의 생애의 마지막 3일을 여기에서 보냈습니다. 그래서 방돔 광장의 전망이 있는 아름다운 방에서, 우리는 모두...우리는 여기에서 쇼팽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James Rhodes: Mm. Yeah.
제임스 로즈 : 음.
Beatrice de Plinval: You feel it.
베아트리스 드 플랭발 : 당신은 그걸 느끼죠.
Natalya Romaniw: Yeah, absolutely.
나탈리아 로마니우 : 네, 절대적으로요.
[BGM: Chopin Fantasy in f, Op. 49 / 쇼팽 환상곡]
On the 15th of October, as this painting describes, Delfina Potocka sang to Chopin as he lay dying on his bed, here in this room. People argue over what she sang and who else was here but what's most fascinating is that Chopin's last request was not so much to hear a piano, or his own music, but the sound of a woman's voice.
10월 15일, 이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델피나 포토츠카는 쇼팽이 여기 이 방에 있는 침대에 누워서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그에게 노래를 불렀다. 사람들은 그녀가 노래했고 여기에 누가 있었는지 논쟁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것은 쇼팽의 마지막 요구가 피아노나 그 자신의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Beatrice de Plinval: It's my little office.
베아트리스 드 플랭발 : 제 작은 사무실입니다.
Beatrice had one more thing to show James and Natayia.
베아트리스에게는 제임스와 나탈리아에게 보여줄 것이 하나 더 있었다.
Beatrice de Plinval: Show me your hand. That's a beautiful hand.
베아트리스 드 플랭발 : 당신의 손을 보여주세요. 아름다운 손이네요.
James Rhodes: Oh, well, thank you!
제임스 로즈 :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Beatrice de Plinval: Mine is here because I have a little problem, which is...voila.
베아트리스 드 플랭발 : 저는 약간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제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자, 보세요.
James Rhodes: Wow.
제임스 로즈 : 와우.
Beatrice de Plinval: Look here. Look here. This is the hand of Chopin.
베아트리스 드 플랭발 : 여기 보세요. 여길 보세요. 이건 쇼팽의 손입니다.
[He gasps. / 그는 숨이 턱 막힌다.]
James Rhodes: Amazing. Can I put mine on top?
제임스 로즈 : 놀랍네요. 제 손을 얹어 봐도 되나요?
Beatrice de Plinval: Yes.
베아트리스 드 플랭발 : 그럼요.
James Rhodes: I'm shaking, can you see? Ama...
제임스 로즈 : 제가 흔들고 있는 게 보이나요? 놀랍...
Beatrice de Plinval: It's very similar.
베아트리스 드 플랭발 : 매우 유사하네요.
James Rhodes: It's not so different, ah?
제임스 로즈 : 아, 별로 다르지 않아요?
Beatrice de Plinval: Yeah, no so different.
베아트리스 드 플랭발 : 네, 전혀 다르지 않네요.
James Rhodes: Wow.
제임스 로즈 : 와우.
Beatrice de Plinval: Long fingers.
베아트리스 드 플랭발 : 손가락이 기네요.
James Rhodes: Very, yeah. And very skinny.
제임스 로즈 : 매우, 네. 그리고 매우 말랐죠.
Beatrice de Plinval: Yes, that's why... He was...tuberculosis. This is a cast at the end of his life.
베아트리스 드 플랭발 :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그는...결핵이었죠. 이것은 그의 인생의 마지막에 본뜬 것입니다.
James Rhodes: It's almost like a child's hand.
제임스 로즈 : 거의 아이 손 같네요.
Beatrice de Plinval: Yes. Yes, but look how delicate it is.
베아트리스 드 플랭발 : 네. 그렇지만 얼마나 섬세한지 보세요.
James Rhodes: Yeah, and the wrists too, like mine, very small and thin.
제임스 로즈 : 네, 그리고 손목도, 저처럼, 매우 작고 얇아요.
Beatrice de Plinval: Very similar. And you see...
베아트리스 드 플랭발 : 굉장히 유사하죠. 그리고 당신은 알죠...
James Rhodes: Oh, that is just...amazing. Amazing.
제임스 로즈 : 오, 그건 단지...놀라워요. 놀랍네요.
Beatrice de Plinval: Living here myself since 40 years, I have...the emotion. This is the test of the genius.
베아트리스 드 플랭발 : 40년 이래로 이곳에 살면서 저는...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천재의 시험입니다.
James Rhodes: Mm.
제임스 로즈 : 음.
Beatrice de Plinval: When you live on the Place Vendome and when you live in this...salon, and when each day you have the emotion...
베아트리스 드 플랭발 : 당신이 방돔 광장에 살 때, 당신이 이...살롱에 살 때...그리고 매일 당신이 감정을 가질 때...
James Rhodes: Yeah.
제임스 로즈 : 네.
Beatrice de Plinval: ..that's it.
베아트리스 드 플랭발 : ..그게 다입니다.
[She chuckles. / 그녀가 싱긋 웃는다.]
James Rhodes: Very good.
제임스 로즈 : 매우 좋네요.
Beatrice de Plinval: Ahhh. Even you.
베아트리스 드 프랭발 : 아하하. 당신까지요.
Around two o'clock in the morning of October 17th 1849, Chopin died. He was 39 years old.
1849년 10월 17일 아침 2시경 쇼팽은 사망했다. 그는 39세였다.
[BGM: Chopin Sonata No. 2 in b flat, Op. 35: III. Marche funebre. Lento (performed by James Rhodes) / 쇼팽 소나타 2번 3악장 <장송곡> (제임스 로즈 연주)]
Nicolas Dufetel: Chopin was very famous being a teacher, being a pianist, being a composer, but when he died, I mean, it was the true beginning of his...legacy.
니콜라스 뒤프텔 : 쇼팽은 피아니스트가 되고, 작곡가가 되며, 선생님이 되어 매우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었을 때, 그것은 그의...유산의 진정한 시작이었습니다.
Chopin's funeral was an extraordinary and spectacular affair. The facade of this grand church, the Church of the Madeleine, was draped with huge black velvet cloths. In the centre, a large badge, embroidered in silver with the initials FC. The church was packed with up to 3,000 people. French and Polish aristocrats and fashionable society far outnumbered Chopin's friends and fellow musicians. The ceremony began with a momentous orchestral arrangement of Chopin's own B flat minor Sonata. The highlight of this grand ceremony was a full performance of Mozart's Requiem. Among the soloists was Chopin's friend and collaborator Pauline Viardot. The magnificence of Chopin's funeral gives some indication of the strength of his reputation at the time of his death.
쇼팽의 장례식은 특별하고 장관을 이뤘다. 이 대성당, 마들렌 성당의 정면은 거대한 검은 벨벳 천으로 덮여있었다. 중앙에는 은색으로 수를 놓은 이니셜 FC와 함께 은색으로 수를 놓은 큰 배지가 달려 있었다. 성당은 최대 3,000명의 인파로 덮였다. 프랑스와 폴란드 귀족들과 세련된 사교계는 쇼팽의 친구들과 동료 음악가들보다 훨씬 많았다. 이 장례식은 쇼팽 자신의 중요한 소나타 2번의 오케스트라 편곡으로 시작되었다. 이 웅장한 의식의 하이라이트는 모차르트 레퀴엠의 완전한 공연이었다. 솔리스트들 중에는 쇼팽의 친구이자 협연자인 폴린느 비아르도가 있었다. 쇼팽 장례식의 장엄함은 그의 사망 당시 그의 명성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준다.
Adam Zamoyski: The astonishing thing is that he managed to impose his own method and his own will and his own standards and his own way of doing things on the musical world. He turned himself into a kind of...a sort of untouchable, in a way. By the beginning of the 1840s, in Paris, he had a completely unique position. He didn't have to give endless concerts to prove how good he was. He gave pitifully few concerts and was heard by very, very few people, and yet the entire musical world was utterly convinced that he was, er... right up there as possibly the greatest.
아담 자모이스키 : 놀랍게도 그는 자신의 방법, 자신의 의지, 자신의 표준, 음악 세계에서 일을 하는 자신의 방식을 부과하는 것을 관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어떤 면에서는, 일종의...일종의 손길이 닿지 않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1840년대 초 파리에서 그는 완전히 독특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그는 그가 얼마나 훌륭한지를 증명하기 위해 끝없는 콘서트를 선사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는 연주회를 거의 하지 않았으며 극소수의 사람들이 들었지만, 음악계 전체는 그가, 어... 가장 위대한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완전히 확신했습니다.
Halina Goldberg: He ceased to be a human being in the eyes of his audiences, in the eyes of Poles, of the Polish intelligentsia in particular, long before he died. He became an idea. He became a...monument.
할리나 골드베르크 : 죽기 오래 전, 그는 폴란드인의 시각에서, 특히 폴란드 지식인에 대한 청중의 시각에서 인간이 되는 것을 그만 두었습니다. 그는 아이디어가 되었습니다. 그는....기념비가 되었습니다.
After his death, Chopin's heart was removed from his body and taken to Warsaw to be venerated in a special tomb, currently being renovated in time for the grand bicentenary celebrations. This canonisation of Chopin is undoubtedly one of the reasons why the history and the legend of Chopin's life are sometimes hard to unravel. Certainly, the details of Chopin's relationship with all of the singers in his life remain tantalisingly incomplete.
그의 죽음 이후, 쇼팽의 심장은 그의 시체에서 제거되어 바르샤바로 가서 특별 무덤에서 숭배 받았는데, 현재 탄생 200주년 축하 행사에 맞춰 개조되었다. 쇼팽의 이 시성식은 의심할 여지없이 쇼팽의 인생의 역사와 전설이 때로는 풀리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이다. 물론, 쇼팽의 인생에서 가수들과의 모든 관계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여전히 불완전하게 남아있다.
[BGM: Chopin - "The faithful love will never die" (Mazurka Op. 24 No. 3 - arranged for voice by Jenny Lind) / 쇼팽 마주르카 작품 24-3 <진정한 사랑은 결코 죽지 않는다> (예니 린트의 성악 편곡)]
sung by Natalya Romaniw and accompanied by James Rhodes / 나탈리아 로마니우 노래 및 제임스 로즈 반주
What's undeniable is their legacy. Chopin's great achievement was to find not just a new musical language but a new voice for the piano. Through his singing style of composing and playing, he discovered an almost organic human sound within the instrument and it's this echo of the human voice within his music that gives it a power that still mesmerises us today.
부인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유산이다. 쇼팽의 위대한 업적은 새로운 음악적 언어뿐만 아니라 피아노를 위한 새로운 목소리를 찾는 것이었다. 작곡과 연주의 노래하는 스타일을 통해, 그는 악기 내에서 거의 유기적인 인간의 소리를 발견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를 사로잡는 힘을 선사하는 것은 그의 음악 속에서 인간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이다.
[BGM: Chopin Nocturne in b flat, Op. 9 No. 1 (performed by James Rhodes on Bosendorfer Piano) / 쇼팽 녹턴 1번 (제임스 로즈의 뵈젠도르퍼 피아노 연주)]
Although we will never know exactly what the voices of Konstancja Gladkowska, Delfina Potocka, Pauline Viardot or Jenny Lind really sounded like, that singing is immortalised somewhere deep inside Chopin's music.
콘스탄차 그와드코프스카, 델피나 포토츠카, 폴린느 비아르도나 예니 린트의 목소리가 실제로 어떤 소리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더라도, 노래하는 것은 쇼팽의 음악 깊숙한 곳 어디에서나 영원하다.
Chopin's voices - TV Review by Rebecca Franks on the BBC Music Magazine (15 October 2010) / 2010년 10월 15일 BBC 뮤직 매거진에서 레베카 프랭크스의 텔레비전 리뷰
A BBC Four documentary explores the female singers that inspired Chopin, writes Rebecca Franks.
BBC 4채널 다큐멘터리는 쇼팽에게 영감을 주었던 여성 가수들을 탐험한다.
Chopin and the piano. The words will always go together - however much lovers of bad puns try to insist a better match for 'Chopin' is 'Liszt', 'Board' or 'Bag'. But, as a lunchtime recital at St George's Bristol reminded me yesterday, the poet of the piano did on occasion branch out into other musical realms. One of his lifelong loves, after all, wasn't the piano but the human voice.
쇼팽과 피아노. 이 단어들은 항상 함께 갈 것이다. - 나쁜 말장난의 많은 애호가들은 쇼팽에 대한 더 나은 일치는 리스트, 판, 또는 가방이라고 주장하려고 한다. 그러나 세인트 조지 브리스틀에서의 점심 리사이틀이 어제 나를 상기시켰던 것처럼, 피아노의 시인은 때때로 다른 음악 영역으로 분출했다. 어쨌든 그가 평생 사랑했던 것들 중의 하나는 피아노가 아니라 인간의 목소리였다.
One can hear the essence of Italian operatic melody – that entrancing singing style of Bellini and Donizetti – in the long-breathed lines of, for example, the Nocturnes. 'He was the first composer obsessed with the idea of reproducing the bel canto voice at the piano,' says Canadian pianist Louis Lortie in BBC Music Magazine. 'Chopin makes the piano sing like nobody else.' But it wasn't just popular opera tunes of the day that inspired him. The voices of particular singers, particularly female, caught his ear.
예를 들면 녹턴의 긴 호흡 라인에서 벨리니와 도니제티의 노래 스타일을 들려주는 이탈리아 오페라 멜로디의 본질을 들을 수 있다. ‘그는 피아노에서 벨칸토(매끄럽고 부드러운 창법을 중시하던 19세기 오페라 스타일) 목소리를 재현하는 아이디어에 사로잡힌 최초의 작곡가였다. 쇼팽은 다른 사람과는 달리 피아노가 노래하게 만든다’고 캐나다 피아니스트 루이 로르티가 BBC 뮤직 매거진에서 말한다. 그러나 그에게 영감을 준 것은 단지 오늘날의 인기 있는 오페라 곡이 아니었다. 특히 가수들, 특히 여성의 목소리가 그의 귀를 사로잡았다.
One of the first was Konstancja Gładowska, a young soprano for whom the 19-year-old pianist harboured a youthful passion. Later, when Chopin was immersed in the glamorous echelons of Parisian society, the promiscuous Countess Delfina Potocka (dubbed 'The Great Sinner') became one of his students and a muse. On his deathbed, it's reported, she was the person he begged to hear sing. Playing piano duets with the famous mezzo-soprano, and gifted pianist, Pauline Viardot was one of Chopin's great pleasures, while in the final few months of his life, he became besotted with the Swedish nightingale Jenny Lind.
첫 번째 여성 중 하나는 19세의 피아니스트가 젊은 열정을 품고 있었던 젊은 소프라노였다. 나중에 쇼팽이 파리 사회의 매력적인 지위에 몰두했을 때, (별명이 ‘대죄인’인) 난잡한 백작부인 델피나 포토츠카는 그의 제자들 중의 한 명이자 (영감을 주는) 뮤즈가 되었다. 그의 임종 당시, 그녀는 그가 노래를 청원한 사람이었다고 보도되었다. 유명한 메조소프라노이자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와 함께 피아노 듀오를 연주하면서, 폴린느 비아르도는 쇼팽의 커다란 즐거움 중 하나였으며, 그는 생애 마지막 몇 달 동안 스웨덴의 나이팅게일 예니 린트에 푹 빠졌다.
I didn't hear any of Chopin's 19 songs or any of his opera-infused piano music at the aforementioned concert. Instead, on the programme were two of his three works for cello. Yes, for this soulful string instrument Chopin wrote three complete pieces (and let's not forget the G minor Piano Trio either). The early Polonaise Brillante, Op. 3 was, he wrote to his friend Titus Woyciechowski, 'nothing more than a brilliant salon piece, such as pleases ladies.' (No marks for flattery there, Chopin.) The most Parisian of 19th-century interests – the opera house – inspired the Grand Concertant in E, which draws on themes from Meyerbeer's Robert le Diable. But the substantial work of the cello triumvirate is the Sonata in G minor, written in 1845-46 for his friend, the cellist Auguste Franchomme.
나는 쇼팽의 19개 가곡이나 오페라가 스민 피아노 음악을 상기 콘서트에서 듣지 못했다. 그 대신에, 프로그램에서 첼로를 위한 3개의 작품들 중 2개가 있었다. 그렇다, 이 혼이 담긴 현악기를 위해 쇼팽은 3개의 완전한 곡들을 썼다(그리고 피아노 트리오 g단조도 잊지 말자). 초기 폴로네즈 브릴란테는 그가 그의 친구인 티투스 보이체호프스키에게 ‘숙녀 분들을 기쁘게 하는 것처럼 화려한 살롱 작품에 불과하다’고 쓴 것이다. (아첨은 아니지만, 쇼팽.) 19세기 파리인들의 가장 관심사인 오페라 하우스는 마이어베어의 오페라 ‘악마 로베르’의 주제에 의한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협주적 대2중주곡 E장조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3개의 첼로곡 중에서 중요한 작품은 그의 친구인 첼리스트 오귀스트 프랑숌을 위해 1845~46년에 작곡한 첼로 소나타 g단조이다.
So, why did the cello catch Chopin's interest? Perhaps it's because, of all the instruments, the cello is most like the human voice. It can soar to a soprano's high notes and sink to a bass' golden growl. Written after his bitter separation from the novelist George Sand, it seems unsurprising the Cello Sonata is in the dark key of G minor. The Largo seems to speak from the instrument's soul, a study in expressive melancholy. And are there, as some suggest, echoes of Schubert's song-cycle masterpiece charting lost love, Die Winterreise, in the Sonata's first movement?
그래서 첼로가 쇼팽의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모든 악기 중에서 첼로는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비슷하기 때문일 수 있다. 그것은 소프라노의 높은 음들까지 급상승하고 베이스의 빛나는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가라앉을 수 있다. 소설가 조르쥬 상과의 슬픈 이별 후에 썼는데, 첼로 소나타의 어두운 조성인 g단조에 빠져든 것은 당연한 것 같다. 3악장 라르고(느리게)는 우울한 표현의 연구인 악기의 영혼을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슈베르트의 1악장에는 잃어버린 사랑을 기록하는 걸작인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의 메아리들이 어떤 제안처럼 있을까?
A love of the voice is part of what makes Chopin, well, Chopin. But what, then, drew him to the individual female voices with which he became infatuated? It's the subject of pianist James Rhodes's BBC Four documentary, to be broadcast this evening (15 October) at 7.30pm, which sees him visiting Warsaw, Paris and London in search of their stories, and talking to pianists including Emanuel Ax and Garrick Ohlsson. For any Chopin fan, it should be one to watch.
목소리에 대한 사랑은 쇼팽을 만드는 것의 일부이다. 그런데 무엇이 그를 매료된 개별 여성의 목소리로 끌어올렸을까? 그것은 피아니스트 제임스 로즈의 BBC 4채널 다큐멘터리의 주제이며, 10월 15일 저녁 7시 30분에 방영되며 바르샤바, 파리, 런던을 방문하여 그들의 이야기들을 찾고 에마누엘 액스와 개릭 올슨을 포함한 피아니스트들과 얘기한다. 어떤 쇼팽 팬을 위해서든지, 그것은 봐야 할 것이 틀림없다.
Rebecca Franks is online editor and staff writer for BBC Music Magazine.
레베카 프랭크스는 BBC 뮤직 매거진의 온라인 편집자이자 전속작가이다.
Chopin: The Women Behind the Music - TV Review by Sam Wollaston on the Guardian (15 October 2010) / 2015년 10월 15일 가디언 지에서 샘 울러스턴의 쇼팽 다큐멘터리 TV 리뷰만 발췌
Chopin: The Women Behind the Music (BBC4) about the Polish composer's quest to make the piano sing like the opera singers he admired so much, was nice. I liked James Rhodes, the young pianist who retraces Chopin's journeys around Europe and explores his music to gain a better understanding of the man he clearly hero-worships. Identifies with, too – not just the music, but the malaise and the awkwardness.
그가 매우 찬사를 보냈던 오페라 가수들처럼 피아노를 노래하게 만드는 폴란드 작곡가 탐구에 대한 BBC 4채널 다큐멘터리 <쇼팽의 음악 뒤에 있는 여성들>은 훌륭했다. 나는 그가 분명히 영웅으로 숭배하는 사람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유럽을 도는 쇼팽 여행을 되돌아보고 그의 음악을 탐구하는 젊은 피아니스트 제임스 로즈를 좋아했다. 음악이 아니라 불안감과 다루기 어려움으로 여길 수도 있다.
You get a better class of pundit in a show like this, such as Jeremy Siepmann, another pianist, and scholar. "I think in a strange way that women singing ... can I be so coarse as to say ... turned him on," he says, a little embarrassed. Perfectly all right to say that Jeremy.
또 다른 피아니스트이자 학자인 제레미 시프만과 같은 쇼에서 더 나은 수준을 얻는다. “저는 여성들이 노래하는 것을 놀라운 방법으로 생각합니다...제가 그를 흥분시켰다고...그렇게 말할 정도로 거칠 수 있을까요?” 그가 약간 당혹스럽게 말한다. 완벽히 제레미라고 말해도 괜찮다.
If you need this video, you can ask me!
2010년 10월 15일 발매된 90분짜리 BBC 4채널 TV 다큐멘터리! 2015년 3월에 받았던 것인데 어떻게 구했는지는 모른다. 영국의 유태계 피아니스트인 제임스 로즈를 알게 되었던 동영상인데 3년 전에 구글에서 정보를 한 번 찾아보다가 방송 리뷰를 보게 되었다. 음반이나 연주회 리뷰는 알고 있었어도 방송 리뷰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정보가 없어서 잘 모르는 배경음악들은 표시하지 않았다. 10분 번역하는데 동영상을 보면서 영어를 타이핑하고 한글로 옮기느라 2시간 이상 걸렸다. 잘못된 자막이 있는지 살펴봐서 수정하고 오타도 점검했다. BBC에서 제작한 영어 자막이 있는 동영상을 원한다면 댓글로 요청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