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Warsaw to Incheon
짐 정리하느라 새벽 4시에 자서 8시 기상! 9시 30분에 마지막 조식을 먹었다. 614호를 나갈 때 슬리퍼 두 켤레는 놓고 왔다. 이미 다 지불했으므로 11시 넘어서 체크아웃할 때 카드로 결제할 게 없었다. 내 기억으로 전날 쇼팽 생가에서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넘어질 뻔했는데 다음날 바가지요금이... 호텔에서 짐을 꾸려서 나오는데 어떤 택시기사가 타라고 했다. 호텔 안에서 우버 앱을 쓸까 아니면 밖에서 쓸까 생각하다가 나왔더니만... 망설이다가 탔는데 호텔 안에서 미리 신청하고 나왔으면 거절하면서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중간에 즈워티냐고 물어봐서 나는 즈워티와 달러 둘 중의 하나를 의미하는 줄 알고 즈워티라고 했다. 그런데 요금이 점점 올라가서 50즈워티를 넘어가고 있었다. 쇼팽 공항에 도착하니 99.50즈워티. 그런데 카드기가 없었고 현금으로 내라고 했다. 차라리 카드였으면 바가지 썼네~ 이러고 말았을 것. 정말 돈이 없다고 하니깐 근처의 호텔로 가더니 기계에서 100즈워티를 뽑으라고 했다. 내 캐리어가 볼모로 잡혀있는 바람에 군말 없이 순순히 응했다. 차를 돌리는 순간 이상한 데로 데려가는 줄 알았다. 짐이 없었으면 두 장의 50즈워티 중 한 장만 주고 튀었을지도. 그러게 동생이 우버 타라고 하지 않았냐고 그랬다. 불쌍한 할아버지 도와줬나보다 생각해야지 별수 없다. 결국 1만 원 조금 넘는 택시비를 3만 원에 바가지 썼다. 동생이 몸 안 다친 걸 다행으로 생각하라면서 미친놈이라고 했다. 내가 외국인이라는 점을 노린 것. 내릴 때 100즈워티를 줬는데 미터기에는 105즈워티를 초과했다. 돈을 주니깐 캐리어 내려주면서 유유히 떠났다. 소매치기랑 바가지요금을 안 당하려고 했는데 마지막 날에 똥 밟았다. 어차피 쇼팽 콩쿠르 아니면 올 일 없는 폴란드에 정떨어져 하니까 바가지에 연연하지 말라고 하더라... 어느 나라든지 바가지요금은 있는 거니까. 여권이나 카드 잃어버리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려고... 기억을 더듬어보니 10월 2일 오프닝 콘서트에서도 공사판에서 한 번 넘어진 게 아니라 3층 홀로 올라가는 계단에서도 발을 헛디뎌서 넘어질 뻔했다. 2019년에 나랑 블로그 이웃 끊긴 조성진 열성팬인 번역본 도둑이 나한테 쌓인 게 많아서 독이 올랐던 시기.
12시가 넘어 쇼팽 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여권과 여정표 내고 항공권을 끊으려고 하자 맞은편에 있는 마리오트 호텔(Marriott Hotel)로 가서 코비드 테스트를 받으라고 했다. 12시 30분에 마리오트 호텔에 도착하여 검사실로 들어가서 여권을 제출하자 한국의 경우 어떤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찾아보고 가격표를 보여주면서 800즈워티를 내라고 했다. 면봉 같은 것으로 양쪽 코를 쑤셨다. 3시 40분 비행기인데 2시까지 결과를 기다리라고 했다. 비행기 타려면 2시간 전에는 가야 한다. 24만 원이라니... 난 정말 코비드 테스트를 받아야 하는 줄 모르고 있었다. 검사 비용이 저렴하려면 아마도 전날 와서 해야 할지도. 전날 와도 문제는 결과가 하루 걸린다. 결과를 종이로 보여줘야 표를 끊어준다. 다행히 1시 20분에 음성(Negative)으로 나왔다. 처음에는 기쁘게 말하는데 뭐가 부정적이라는 건지 의아해서 영어사전을 찾아봤다. 폴란드에서 남들 마스크 벗고 다닌다고 나도 야외에서 그러고 다녔으면 자유에 대한 대가를 치를 뻔했다. 공항으로 가서 종이를 보여주고 표를 끊었다. 2시 20분이 지나 검색대로 갔는데 물, 로션, 폼클렌징 등 액체를 다 버렸다. 캐리어에 넣어야 하는데 자리가 없어서 가방과 에코백에 넣었더니 용량 초과라서 다 버려야 했다. 물은 전날 편의점에서 샀는데 별로 안 마셨고 로션은 오래된 거라 버려도 상관없는데 폼클렌징 하나는 새것이라고 하소연하니깐 뒤에 있는 여자가 웃더라~ 덕분에 가방이 가벼워져서 이건 괜찮은데 바가지 맞은 건 며칠 갈 듯. 바가지 하나 가지고 일반화하지 않으려 애썼다. 2시 50분 게이트에 도착했다.
비행기 안에서 폴란드 아기가 계속 울었다. 아무래도 10시간 비행이 힘들었을 듯. 바가지 당한 건 기내에서 게임 하면서 풀었다. 그런데 자꾸 게임 하니깐 머리가 어지럽다. 4시 50분에 기내식이 나왔다. 돼지고기와 닭고기 중 돼지고기를 선택하고 콜라와 물을 마셨다. 졸려서 폴란드 시간으로 10시에 잤다. 바가지요금 사건은 하루 이틀 지나니 생각나도 그냥 그런 사소한 것이 되어버렸다.
한국 시간으로 8시 되기 전에 아침 식사. 조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옆좌석에 기내식이 차려져 있었다. 폴란드행 비행기는 다시 타고 싶지 않다. 다음에 쇼팽 콩쿠르 보러 간다면 입상자 갈라 콘서트나 갈 듯. 그런데 대통령이 우승자에게 시상하는 첫 번째 갈라는 2분 만에 매진이라 판매 당일 새벽부터 쇼팽 박물관 매표소 앞에서 줄 서서 오프라인으로 직접 사는 게 가장 안전하다. 비행기에서 제대로 못 잤다. 잠깐씩 졸았을 뿐 밤샌 거나 마찬가지. 폴란드 시간으로는 새벽이라 그런가 보다. 비행기 착륙 9시 40분이 임박해서 유심칩을 갈려고 하는데 한 칸 건너 앉은 사람이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줬다. 바르샤바로 갔던 첫날은 유심칩을 어떻게 갈아야 하는지 헤맸는데 이번에는 기억을 더듬어서 성공! 검색대로 가면서 셋째 날 갈라 콘서트도 유튜브로 생중계되었는지 보니 다행히 있었다. 한국 시간으로 10월 24일 자정이 다 되어서 봤다. 너무 졸려서 결국 다음날에 마저 봤다.
인천공항에서 검역을 받아야 하니 줄을 섰는데, 내 바로 앞의 사람이 시설 격리 동의서를 들고 있었다. 무슨 사정으로 인해 예방 접종을 안 한 듯. 내가 며칠 동안 기침 증상이 있었다고 말해서 조사를 받았다. 바르샤바 감기가 독하므로 한국에서 약을 미리 지어가서 예방 차원에서 먹었다고 얘기했다. 폴란드로 간 목적은 쇼팽 콩쿠르 관람이었다고 말했고 현지에서 코로나19 걸린 사람과 접촉한 적도 없었고 직업은 회사원이며 바르샤바 말고 어디를 돌아다녔는지 물어봐서 10월 22일 오후 소하체프에 들렀다고 말했다. 10시 30분쯤 체온을 쟀는데 열의 온도가 초과해서 집에 가지 못했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집에 바로 갈 수 있었다. 점심은 제공해주겠다고 했다. 잠시 대기했는데 인솔자한테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이후 인솔자와 함께 캐리어를 찾으러 갔다. 11시 40분에 버스 타고 어디론가 가야만 했다. 자가 격리 숙소로 들어갔는데 여기에서 한쪽 콧구멍과 목구멍에서 검체를 채취했다. 폴란드에서 면봉으로 쑤시는 건 애교 수준이고 여기서는 고통스러웠다. 체온은 36.3도로 나왔다. 검체 채취 결과는 6시간 이내에 나온다고 했다. 12시 30분에 너무 졸려서 침대에서 뻗었다.
1시가 되기 전에 점심을 가져다줘서 먹으려고 하는데 지역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그래서 폴란드에서 코비드 테스트 받은 다음 한국에 입국했고 기침 증상 때문에 조사받았다고 말했다. 체온이 초과한 원인으로 추측되는 상황도 설명해줬다. 일요일에 입국했으니 일주일 내로 다음 일요일 오후 1시까지 보건소로 오라고 했다.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가면 안 되냐고 물어보니 그래도 된다고 했다. 그러다가 약간 식은 상태로 점심을 먹었다. 2시 10분에 음성이라고 문자가 왔다. 숙소를 떠나면서 담당자에게 내가 비행기에서 화장실을 두 번이나 갔는데도 큰 게 안 나왔고 검역을 거쳐 기침 증상으로 조사를 받은 이후 화장실을 가게 되는 바람에 타이밍이 안 맞아서 이렇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화장실이 엄청 급한 것도 아니었다. 조사받을 때는 37.3도를 초과했을 거라고 담당자가 알려줬다. 그때 몇 도인지 물어보지 않아서...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돌아왔다. 경찰이 먼저 스티커가 붙어 있는지 여권 검사를 한다. 이어서 3시가 넘어 지하철을 타려고 하는데 여권을 또 검사한다. 자가 격리 면제자는 캐리어에 띠를 붙여준다. 3시 30분이 가까워서야 지하철을 탔고 중간에 버스로 갈아타려다가 표가 다 나가는 변수가 있어서 지하철로 쭉 환승했다. 한 달 만에 귀국하니 오히려 낯설었다. 마음은 폴란드에 가 있고... 한국에 온 게 실감 나지 않았다.
쇼팽 콩쿠르 티켓팅을 도와준 동생이 몇 년 전에 유럽을 다녀왔기 때문에 이런저런 조언을 구해봤다. 동생이 준 여행 책자도 도움이 되었다. 코비드 테스트 비용을 계기로 독일행은 당분간 접어야 했다. 난 코로나19를 뚫고서라도 그리고리 소콜로프를 보러 갈 생각이 있었는데! 유럽에서만 활동하는 유대계 러시아 피아니스트인데 독일에선 다들 배불러서 자리가 널널하다고 해서... 올해 나이가 71세에 비행기 공포증이 있어서 유럽에서만 활동한다. 젊었을 때는 미국도 가고 일본도 갔지만. 관광 목적이 아니라 연주자 투어를 열흘 정도 쫓아다니려는 것. 소콜로프의 연주를 직접 들은 귀가 되는 게 소원! 이 얘기를 동생한테 하니깐 자기처럼 해외 병 도진 거라네... 소콜로프의 홈페이지로 가서 스케줄을 찾아보니 내년 2월에 스페인 투어, 3월과 5월에 독일 투어 일정이 잡혀있더라고.
지하철을 빠져나오니 6시가 넘었다. 부모님이 지하철 밖에서 30분 넘게 기다리고 계셨다. 도착하기 전에 제로콜라가 먹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하필 지하철 내 편의점에 없어서 다른 탄산음료를 먹으면서 집으로 가서 다음 날까지 푹 쉬었다. 이틀 동안 동생이 포장해준 부대찌개를 맛있게 먹었다. 일하면서도 마음이 폴란드에 가 있곤 했다. 아직도 바르샤바 앓이인지 쇼팽 콩쿠르 앓이인지 며칠 동안 진행되었다. 치안은 좋은데 감기 때문에 고생하던 건 별로 안 떠오르는 건지? 폴란드에 대한 정보를 더 찾아보니 국토 대부분이 평지라서 외세의 침략에 노출된 구조! 러시아와도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사이가 안 좋은 러시아는 쇼팽 콩쿠르에서 구소련 시절을 포함하여 가장 많이 우승했다.
다음에 폴란드를 방문한다면 시몬 네링의 고향인 크라쿠프로 가볼까 해서 크라쿠프 여행 후기를 인터넷으로 뒤져봤다. 나치 독일군이 주둔했던 곳이라 오히려 파괴되지 않고 보존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도시로 선정! 그런데 바르샤바에서 3~5시간 걸리는 먼 곳이라 기회가 되면 가고 아니면 못 가고... 네링은 독일계 성인데 크라쿠프를 찾아보면서 네링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혹시 크라쿠프에 남아있었던 독일계 이주민의 후손은 아닐까? 폴란드의 피가 섞였다면, 그래서 쇼팽도 잘 하고 베토벤도 잘 하는 것일까? 네링은 한국에 와서까지 속 터지게 했다. 네링을 응원하지 않았다면 나도 편했을 텐데, 덕분에 쇼팽 콩쿠르 공부를 전보다 더 열심히 했잖아! 이러면서 스스로 달래는 중... 준결선 첫날부터 한국에 온 날까지 열흘 동안 속 터졌다. 그동안 공부한 거고 뭐고 부글부글 악마오리 심통이 더 늘었다. 네링이 준결선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쇼팽 콩쿠르 우승이 정말 쉽지 않다는 것과 함께 지난 대회에서 우승한 조성진이 대단하다는 것도 새삼 느꼈다.
3일 동안 진행된 입상자 갈라 콘서트 빼고 나머지를 거의 다 봤는데 반올림 또는 올림으로 환산하면 오프닝 콘서트 포함 약 70만 원, 25일치 호텔 숙박 비용 약 200만 원 및 호텔 조식 비용 약 42만 원, 폴란드 직항 비행기 왕복 비용 약 110만 원이 들었다. 그 외 7만 원 정도를 50유로로 한국에서 환전한 다음 폴란드 쇼팽 공항 내에서 185.50즈워티로 환전하여 현지에서 다 썼다. 음반, 티셔츠, 에코백 외에 기념 선물 사느라 신용카드 쓴 것도 꽤 된다. 세관 신고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대충 30만 원? 택시비 바가지 포함 약 16만 원, 박물관 입장료 약 3만 원, 기타 점심이나 저녁 식사 비용까지 넉넉하게 포함하여 대충 550만 원은 기본으로 잡아야 한다. 알고 보니 유럽 여행 한 달 하려면 이 정도 경비는 든다고 하더라고.
10월 26일 화요일 점심, 아빠한테 폴란드에서 한식을 먹기도 했는데 폴란드 음식은 맛이 없다고 얘기했다. 아리랑 레스토랑 갔다 온 얘기를 했는데 혹시 북한 식당 아니냐고도 했다. 그래서 사장은 한국인인데 한복 입은 여자들은 전혀 없고 일식도 있다고 답변했다. 직원은 한국인이 아니라 아시아계인데 아리랑이라고 한글로 적힌 앞치마를 착용하고 있었다. 아빠가 식당에서 나랑 거리 두기를 하고 드셨다. 오후에는 약국에서 엄마가 기침약을 대신 사줘서 먹고 많이 나아졌다.
10월 29일 금요일 오후 4시에는 보건소를 다녀왔다. 평일에는 5시까지이고 주말에는 1시까지라서 시간이 임박하게 갔다. 이름, 주민등록번호, 연락처를 적고 직장과 방문한 나라를 물어본 다음 검체 채취를 또 했다. 또 콧구멍과 목구멍을 쑤셨는데 코피 나는 줄... 코로나19 때문에 외국 한 번 나가는 것도 일이라 소콜로프에 대한 고민이 늘었다. 그래도 올해가 아니라 내년의 일이라 다행. 집에 도착하자 대학생 시절에 지하철로 2시간 떨어진 기숙사에서 다녔는데 피로가 쌓여서 주말마다 코피 났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바르샤바에서는 모든 연주가 다 끝나고 12분 떨어진 호텔로 돌아갈 때 졸린 적이 종종 있어서 스타벅스 커피 마시거나 프린스 폴로 초코바 먹으면서 걸어가곤 했다. 이제는 모두 다 추억...
10월 30일 토요일 오전 8시 30분이 지나 보건소에서 코로나19 PCR 검사 결과 음성이라고 문자가 왔다. 외국 한 번 나간 게 가족한테 엄청 민폐였다. 양성이었으면 직장 포함 내가 다녀간 곳들을 여기저기 문자로 돌렸을 것.
XVIII Chopin Competition Third Prize-Winners' Gala Concert
Warsaw Philharmonic Concert Hall / 바르샤바 필하모닉 콘서트홀
Warsaw Philharmonic Orchestra /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Andrzej Boreyko, conductor / 안드레이 보레이코 지휘
Program
Variations brillantes in B flat major, Op. 12 / 화려한 변주곡
... 6위 J J Jun Li Bui (Canada) / J J 준 리 부이 (캐나다) - Kawai Shigeru EX
마지막 날에는 2라운드에서 연주한 곡으로 바꿨다. 가장 무르익은 연주.
Polonaise No. 6 in A flat major, Op. 53 "Heroic" / 영웅 폴로네즈
... 5위 Leonora Armellini (Italy) / 레오노라 아르멜리니 (이탈리아) - Fazioli F278
마찬가지로 마지막 날에 프로그램을 변경했는데, 여성스러움이 가미된 연주였다. 이번이 마지막 참가 기회였는데 10년 만에 재도전하여 성공!
4 Mazurkas, Op. 30 / 4개의 마주르카 작품 30
No. 1 in C minor
No. 2 in B minor
No. 3 in D flat major
No. 4 in C sharp minor
... 공동 4위 Jakub Kuszlik (Poland) / 야쿠브 쿠쉴리크 (폴란드) - Steinway & Sons 479
집으로 와서 더 좋은 컴퓨터로 봐서 그런지 마지막 갈라 연주를 잘 마무리한 것 같은 느낌.
24 Preludes, Op. 28 / 24개 전주곡 발췌
No. 4 in E minor
No. 16 in B flat minor
No. 17 in A flat major
No. 23 in F major
No. 24 in D minor
... 공동 4위 Aimi Kobayashi (Japan) / 아이미 고바야시 (일본) - Steinway & Sons 479
유튜브 채팅창도 봤더니 신봉선이란 댓글이 나왔다. 아이미의 연주도 마지막 날에는 가장 무르익었다. 본선을 앞두고 머리를 더 짧게 자르고 단단히 각오하고 나오더니 기어이 결선까지 또 올라가서 입상했다. 지난 대회에서 입상하지 못했을 때는 피아노를 그만둘까 고민도 했다는데, 쇼팽 콩쿠르 입상자 타이틀이 연주자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Impromptu No. 3 in G flat major, Op. 51 / 즉흥곡 3번
Waltz No. 2 in A flat major, Op. 34 No. 1 / 왈츠 2번
... 3위 Mr Martín García García (Spain) / 마르틴 가르시아 가르시아 (스페인) - Fazioli F278
코로나19라는 변수 때문에 콩쿠르 생활을 연장했던 스페인 연주자... 클리블랜드 콩쿠르 1위에 쇼팽 콩쿠르 3위까지 더해 미국과 유럽에서 연주 여행을 누릴 수 있는 기반을 얻었다. 마지막 연주는 순탄하게 흘러가나 했더니 왈츠 막판에 삽질. 정말 다음 라운드 진출에 상관없이 무대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었는데 결선까지 올라와서 끝내 입상에 성공!
Largo in E flat major "Boże coś Polskę" [God Thou Hast Poland] (harmonization of the old version of the song for piano), Op. posth. / 라르고
Rondo à la mazur in F major, Op. 5 / 마주르 풍의 론도
... 공동 2위 Kyohei Sorita (Japan) / 교헤이 소리타 (일본) - Steinway & Sons 479
유튜브를 보니 곡 특성과 상관없이 소리가 다 비슷하다는 지적. 선생님이 레슨 시간에 가르쳐주는 대로 정석에 맞춰서 치는 느낌이랄까? 이번 대회에서 우승자는 특별상이 하나도 없고 4위까지 내려왔는데 일본은 쏙 빼고 줬다. 다른 나라가 2위였으면 특별상을 뭐라도 하나 꿰찼을 것. 이번 대회에 공석인 폴로네즈 특별상이 주어졌을지도 모른다. 유럽이라면 더더욱. 소리타는 결선에서 협주곡 특별상 받을 것 같은 박수를 받아놓고 왜 특별상이 뭐라도 안 주어졌을까? 히히히! 쇼팽 콩쿠르에서 협주곡 특별상은 1위 아니면 잘 해야 2위한테 주어지는 건데 이번 대회에는 3위까지 내려왔다. 렉서스 스폰서에 폴란드 심사위원 백으로 준우승까지 갔지만 결국 특별상 부문 중에서 그 어떤 장르라도 1인자가 되어보지 못한 일본! 2005년 폴란드가 모든 특별상을 독식한 이후 2010년과 2015년의 흐름은 3위 이내면 특별상이 뭐라도 하나 보장되는 거였는데 이런 추세가 2021년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쇼팽 콩쿠르 입상자로서 인기를 누릴지 몰라도 해외에서는 글쎄... 유럽 출신이면 모를까 이런 연주로는 별로 인기를 못 얻을 것 같은데? 뭔가 번뜩이는 맛이 있어야지 그냥 연주가 잔잔하고 무난하다. 다만 폴란드 이전에 러시아에서도 유학한 사람이라 교육자가 된다면 양쪽의 피아니즘을 잘 전수해줄 거라는 한 가지 믿음이 있다. 꽃다발 받고 나서 무대에 등장하여 인사할 때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면서 청중에게 어필한다. 소리타의 콘서트는 공짜로 보게 해준대도 안 간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나도 안 간다!
Polonaise-Fantasy in A flat major, Op. 61 / 환상 폴로네즈
... 공동 2위 Alexander Gadjiev (Italy/Slovenia) / 알렉산더 가지예프 (이탈리아/슬로베니아) - Kawai Shigeru EX
가지예프가 연주하는 환상 폴로네즈를 다신 못 들을 줄 알았는데 여기에서 듣게 되네... 흐흐흐~ 내가 5년을 공들였지! 하지만 아무리 하마마쓰 콩쿠르 1위라고 해도 이탈리아는 이미 우승해본 나라라는 것과 함께 결정적으로 이중 국적이라는 점 때문에 2위까지만 편들 수 있었다. 환상 폴로네즈를 다시 보게 되어 좋았다. 미스터치 나도 격정적으로 표현할 땐 확실히! 꽃다발 받고 나서 한 번 더 무대에 등장하여 인사! 소리타와는 색깔이 확연히 달라도 가지예프는 그래도 준우승할 만했는데 소리타는 의문이 들 수밖에. 난 전혀 막상막하란 생각이 안 드는데? 2위와 3위의 차이도 아닌데? 결선까지 모든 콩쿠르 연주가 끝난 이후 다음날 새벽 2시에 결과 발표할 때 레오노라 아르멜리니랑 같은 이탈리아라서 그런지 아니면 서로 친한 누나 동생 사이인지 서로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축하해줬다.
Intermission
Piano Concerto No. 1 in E minor, Op. 11 / 피아노 협주곡 1번
I. Allegro maestoso
II. Romance. Larghetto
III. Rondo. Vivace
Encores
Mazurka in B minor, Op. 33 No. 4 / 마주르카 작품 33-4
Waltz No. 5 in A flat major, Op. 42 / 왈츠 5번
... 1위 Bruce Xiaoyu Liu (Canada) / 브루스 샤오위 류 (캐나다) - Fazioli F278
인터뷰에서 브루스는 스키 타다가 오른발이 부러진 후 페달을 잘 못 쓰는 상태에서 연습하다가 자신만의 사운드를 발견했다는 내용을 유튜브 채팅창에서 봤다. 논레가토를 지적하는 댓글들이 많더라고. 마지막 갈라 콘서트의 악장은 남성으로 바뀌었다. 우승자라는 걸 알고 나서 보는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우승자의 협주곡은 이런 소리구나 하는 느낌을 받곤 한다. 2악장에서 버퍼링이 나서 새로 고침을 눌러도 마찬가지로 일부가 잘린 채로 넘어갔다. 첫 번째 갈라 콘서트는 따로 올라와 있는 상태인데, 나중에 따로 편집해서 올려줬으면 좋겠다. 이번 대회에서 파치올리 피아노가 1, 3, 5위를 차지했다. 결국 쇼팽2020 사이트에서 2악장을 다시 봤다.
여기까지 2025년 대회를 직관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아는 대로 얘기했다. 이번 대회는 차라리 1위 없는 2위였으면 했다. 하지만 대회가 열리기 전부터 여러모로 준비하고 있었던 입장이라 우승자가 안 나오면 허탈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난 대회들의 에피소드를 번역해서 정리했으므로 우승자가 나오지 않았던 1990년과 1995년 대회에서 우승자를 기다렸던 사람들의 맘을 알고 있었다. 이중적인 심정이 교차했다. 우승자가 차라리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우승자는 나왔으면 좋겠다... 직관해보니 맘은 그래도 우승자가 안 나오면 되게 아까울 것 같았다. 다음 대회도 직관해야 하나 고민의 기로에 섰다. 막상 나오고 나니 연주는 몰라도 그동안의 입상 경력을 볼 때 도무지 납득가지 않았다는... 어떻게 보면 우승자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깨준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잘 되길 빌어주고 싶다. 이번 대회는 베트남 심사위원 당 타이 손의 승리일까? 지난 대회에서는 3, 4, 5위를 배출했고 이번에는 1, 6위를 배출했다. 캐나다에서 교육자로 활동하면서 주로 캐나다와 미국의 중국계 학생들이 꼬이더라고. 레슨비가 올라가겠다는 말도 나왔다. 아빠가 그랬는데 전 세계에서 베트남을 이겨본 나라가 없다고 했다. 그동안 일기 쓰느라 쥐구멍으로 당장 들어가지 못했다. 네링을 응원하던 입장이라서 그런지 폴란드가 네링이 우승할 것을 대비하여 코로나19라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역대 호화판 밥상을 차려줬다는 걸 깨달았다. 직관해보니 심사위원들에게 오프닝 콘서트부터 입상자 갈라 콘서트까지 모든 연주를 볼 수 있는 혜택이 있었다. 또다시 캐나다 최초의 쇼팽 콩쿠르 우승을 축하드리면서 2021년 10월 눈사람의 바르샤바 일기는 여기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