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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7일 화요일

Melodiya / Alexander Goldenweiser - Russian Piano School, Vol. 1



알렉산더 골덴바이저는 러시아 피아노 악파의 전설적인 명교수이자 연주자이다. 젊은 시절 질로티에게 피아노, 아렌스키에게 작곡을 배운 후 50여 년간 모스크바 음악원에 재직하며 파인베르그, 니콜라예바, 베르만, 긴스부르크 등 명 연주자들을 배출하였다. 교습가로서의 명성에 비하여 그의 연주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철저한 악보 분석과 작곡가의 의도에 충실한 연주로 섬세하고 서정적 영감이 깃들어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세기 러시아 피아노 음악의 전통을 이끌어온 가장 중요한 두 명의 음악가는 알렉산더 골덴바이저와 겐리프 네이가우스이다. 그러나 네이가우스가 혈통상으로나 교육과정에 있어서나 다분히 독일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던 인물이었던데 비해 골덴바이저는 더욱 순수하게 러시아적인 전통을 대표하는 대가이자 교육자였다. 그의 이름은 네이가우스와 마찬가지로 피아노 음악사에 비르투오소로 또 53년간의 교수 활동을 통하여 수많은 러시아 피아니스트들을 육성해냈던 교사로서도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피아니스트는 음악예술의 가장 원숙한 시대에 태어나 살 수 있었던 행운을 누림으로써 그들의 예술을 더욱 값진 것으로 할 수 있었다.

알렉산더 골덴바이저는 1875년 3월 10일 몰다비아의 키시뇨프에서 태어나서 베를린에 장벽이 건설되었던 해인 1961년 11월 26일 모스크바에서 타계했다. 그의 음악적 경력은 실로 화려한데, 그는 파벨 파브스트와 라흐마니노프의 사촌이기도 했던 명 피아니스트 질로티에게서 피아노를 배웠으며, 이 두 대가들로부터 베토벤에서 리스트와 체르니를 거쳐 발전되어온 서구 피아노 음악의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었다.

그는 최초에 바실리 푸로쿠닌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는데, 기초적인 학습을 완벽히 마친 후 1878년까지 차이코프스키가 가르쳤던 명문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했다.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골덴바이저는 역사적인 명교수들과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던 동창생들에 둘러싸여 수업을 받으면서 그는 음악적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젊은 시절을 보냈다. 명교수 파브스트와 질로티 밑에서 배운 피아노 교실에서의 그의 동창생들 가운데는 후일 작곡가 및 피아니스트로 크게 명성을 떨쳤던 스크리아빈과 라흐마니노프, 또 니콜라이 메트너 등이 있었고, 또 작곡 교실에서의 그의 스승은 이폴리노프-이바노프와 한때 이 음악원에서 차이코프스키에 배웠던 아렌스키, 타네예프 등이었다.

골덴바이저는 모스크바 음악원을 졸업하고(피아노 1895년, 작곡 1987년) 모교에서 오랜 교수 활동을 하기 전에 처음 2년간을 모스크바의 니콜라이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가르쳤다. 그 후 53년간이란 긴 세월 동안 모스크바 음악원에 재직하며 200명이 넘은 훌륭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이는 아마도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나 비교될만한 위대한 업적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의 제자 중에는 후일 소비에트 러시아를 대표할만한 대 피아니스트들도 수없이 배출되었는데, 사무일 파인베르크, 타티아나 니콜라예바, 드미트리 바쉬키로프, 라자르 베르만과 후에 작곡가로 명성을 떨친 드미트리 카발레프스키가 바로 그 사람들이다.

골덴바이저는 53년간의 재직 기간 중에 1922~24년간과 1939~42년간의 두 차례에 걸쳐 유서 깊은 이 학교의 교장을 지냈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에도 정열적으로 연주 활동과 교수 활동을 계속하다가 1961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11월 26일 86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이 음반에 수록된 작곡가 가운데 차이코프스키와 보로딘만이 골덴바이저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고 나머지는 모두 그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다. 아렌스키는 모스크바 음악원 작곡교실의 그의 은사였으며 라흐마니노프와 메트너는 그와 음악원 동창생들이다.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의 작곡가는 바로 피아니스트 자신이다. 그러나 최초의 두 사람도 간접적으로는 이 위대한 피아니스트와 떼놓을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레퍼토리는 아마도 가장 이상적인 연주를 펼칠 수 있는 최상의 레퍼토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프랑스적인 면의 도움도 받았지만 근본적으로는 안톤 루빈스타인의 독일적 전통에 의해서 부양된 차이코프스키는 역대 러시아 작곡가 가운데서는 가장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또 가장 성공한 작곡가였다. 비록 병적으로 심한 무대 공포증 때문에 연주회의 무대를 피하기는 했어도 차이코프스키는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을 위해 그가 작곡했던 극도로 난해한 B단조 피아노 협주곡을 완벽하게 칠 수 있을 만큼 완전히 주목할 만한 피아니스트로서의 기교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는 피아노곡을 많이 쓰지는 않아서 12곡의 피아노 소곡으로 이루어진 “사계”와 한 곡의 소나타, 그리고 Op. 51과 Op. 72의 피아노곡집을 포함한 몇몇 소품들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여기에 들어있는 그의 두 피아노 작품집 Op. 51과 Op. 72는 우아한 살롱음악에 대한 그의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당시의 러시아 상류사회에서 살롱은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프랑스나 정직한 농부처럼 착실한 독일의 그것과는 달리 19세기의 지적이고 예술적인, 심지어 정치적인 생활까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4곡의 소곡들은 당시의 러시아적 풍토에서 배양된 두 가지 감정적인 상태, 즉 시적인 생동감과 감상적인 회상이 교차하는 아름다움과 그와는 또 다른 정열의 민감함과 성적 결빙이나 내적인 투쟁이 쌓아올린 극적인 면이 공존하는 미묘함을 지니고 있다.

안톤 아렌스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배웠고 1889년에서 1895년까지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를 지냈다. 그 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와서 발라키레프의 뒤를 이어 제국교회의 음악감독을 지냈다. 또 그는 옛 음악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이런 취향은 “잊힌 리듬에 관한 연구”라는 향수에 찬 악곡집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 수록된 제4곡 “사리”는 인디언의 언어로, 3/4박자와 6/8박자로 은밀하게 교체되는 리듬이 왼손의 B단조 아르페지오로 나타나고 그 위에 슬라브적인 감상적 색조가 혼합된 것을 의미한다.

라흐마니노프의 뱃노래는 “살롱품의 작품집” Op. 10에 들어있는 곡 중의 하나로 1894년에 작곡되었다. 이 곡은 이 시기에 작곡된 그의 일련의 피아노 작품 가운데서도 “비가”라고 불릴 만큼 풍부한 효과를 지닌 음악으로, 부드럽고 유려한 리듬이 전곡을 지배하고 중간부에는 수면에 빛나는 어스름하고 인상적인 광선의 효과가 곡의 이미지를 구축해준다. 양식적으로는 리스트의 스타일이 차용된 것으로 오른손이 오스티나토 셋잇단음표로 움직이며 빛의 효과를 자아낼 때 테너의 풍부한 칸틸레나가 왼손에 실려 유창한 아름다움을 이룬다.

그의 라흐마니노프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조곡 제2번은 골덴바이저에게 헌정된 곡인데, 이 음반에서는 러시아의 또 한 명의 명 피아니스트 그리고리 긴즈부르크와 연탄으로 연주하고 있다.

그밖에도 이 음반에는 러시아 5인조 중의 한 사람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점으로 활동했던 대작곡가 보로딘의 마주르카와 골덴바이저와 동시대인인 니콜라이 메트너의 노벨라 C단조, 또 골덴바이저 자신의 작품인 “카바르디노-발카르스키” 중 “노래와 춤” 등이 수록되어 있다.

Track
01 Tchaikovsky Romance in F, Op. 51 No. 5 / 차이코프스키 <로망스>
02 Tchaikovsky Meditation in D, Op. 72 No. 5 / 차이코프스키 <명상>
03 Tchaikovsky Valse sentimentale in f, Op. 51 No. 6 / 차이코프스키 <감상적인 왈츠>
04 Tchaikovsky Dialogue in B, Op. 72 No. 8 / 차이코프스키 <대화>
05 Arensky Sari, Op. 2 No. 4 from 'Forgotten Rhythms' / 아렌스키 <잊힌 리듬에 관한 연구> 중 <사리>
06 Borodin Mazurka in C from 'Petite Suite' / 보로딘 <작은 모음곡> 중 마주르카
07 Rachmaninov Barcarolle in g, Op. 10 No. 3 / 라흐마니노프 <뱃노래>
08 Medtner Novella in c, Op. 17 No. 2 / 메트너 <노벨라>
09 Goldenweiser Song & Dance from 'Kabardino-Balkarsky Songs & Dances' / 골덴바이저 <카바르디노-발카르스키> 중 <노래와 춤>
10 Rachmaninov Suite No. 2 for 2 Pianos, Op. 17: 1. Introduction. Alla marcia (with Grigori Ginsburg, piano) / 라흐마니노프 2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2번 중 1곡 서주 (그리고리 긴즈부르크와 협연)
11 Rachmaninov Suite No. 2 for 2 Pianos, Op. 17: 2. Waltz. Presto / 라흐마니노프 2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2번 중 2곡 왈츠
12 Rachmaninov Suite No. 2 for 2 Pianos, Op. 17: 3. Romance. Andantino / 라흐마니노프 2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2번 중 3곡 로망스
13 Rachmaninov Suite No. 2 for 2 Pianos, Op. 17: 4. Tarantella. Presto / 라흐마니노프 2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2번 중 4곡 타란텔라

Alexander Borisovich Goldenweiser (1875-1961) / 알렉산더 보리소비치 골덴바이저
Goldenweiser had the good fortune of living to a ripe old age. Born in Kishinyov, Moldavia, on 10 March (old style 26 February) 1875, he died in Moscow on 26 November 1961, the year the Berlin Wall was built. His life was a truly fulfilled one. He carved his name into musical history not only as a virtuoso, but also as a teacher (active for 53 years), earning a reputation as the "maker of Russian pianists". His artistic credentials were impressive indeed. A pupil of Pavel Pabst and Alexander Siloti (Rachmaninov's cousin), he inherited a tradition which had been forged by Beethoven and passed on to Franz Liszt and Karl Czerny. Having received his first piano lessons from Vassili Prokunin, he was well-equipped to enter the Moscow Conservatory, where Tchaikovsky had taught until 1878. Among his fellow-students were the budding pianist-composers Scriabin and Rachmaninov, and at a later stage, Nikolai Medtner. Apart from his chosen instrument, Goldenweiser studied composition with Ippolitov-Ivanov, Arensky and Taneyev, who had all been pupils of Tchaikovsky. Following graduation (piano in 1895, composition in 1897), he first taught piano for two years at Moscow's Nikolai Institute before beginning his long association with the Conservatory. His 200 pupils - an intake matched only by Rimsky-Korsakov - included the pianists Samuil Feinberg, Tatiana Nikolayeva, Dmitri Bashkirov and Lazar Berman as well as the composer Dmitri Kabalevsky. Goldenweiser was director of the Conservatory for two periods (1922-24, 1939-42).

골덴바이저는 음악예술의 가장 원숙한 시대에 태어나 살 수 있었던 행운을 누렸다. 1875년 3월 10일(구력으로는 2월 26일) 몰다비아의 키시네프에서 태어나서 베를린에 장벽이 건설되었던 해인 1961년 11월 26일 모스크바에서 타계했다. 그의 인생은 실로 충실했다. 그는 거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교육자로서(53년간 활동) “러시아 피아니스트 제조기”라는 명성을 얻으면서 그의 이름을 음악사에 새겼다. 그의 음악적 경력은 실로 화려했다. 그는 파벨 파브스트와 라흐마니노프의 사촌이기도 했던 명 피아니스트 질로티에게서 피아노를 배웠으며, 이 두 대가들로부터 베토벤에서 리스트와 체르니를 거쳐 발전되어온 서구 피아노 음악의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었다. 그는 최초에 바실리 푸로쿠닌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는데, 기초적인 학습을 완벽히 마친 후 1878년까지 차이코프스키가 가르쳤던 명문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했다. 명교수 파브스트와 질로티 밑에서 배운 피아노 교실에서의 그의 동창생들 가운데는 후일 작곡가 및 피아니스트로 크게 명성을 떨쳤던 스크리아빈과 라흐마니노프, 또 니콜라이 메트너 등이 있었다. 또 작곡 교실에서의 그의 스승은 이폴리노프-이바노프와 한때 이 음악원에서 차이코프스키에 배웠던 아렌스키, 타네예프 등이었다. 골덴바이저는 모스크바 음악원을 졸업하고(1895년 피아노, 1987년 작곡) 모교에서 오랜 교수 활동을 하기 전에 처음 2년간을 모스크바의 니콜라이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가르쳤다. 그 후 53년간이란 긴 세월 동안 모스크바 음악원에 재직하며 200명이 넘은 훌륭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이는 아마도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나 비교될만한 위대한 업적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의 제자 중에는 후일 소비에트 러시아를 대표할만한 대 피아니스트들도 수없이 배출되었는데, 사무일 파인베르크, 타티아나 니콜라예바, 드미트리 바쉬키로프, 라자르 베르만과 후에 작곡가로 명성을 떨친 드미트리 카발레프스키가 바로 그 사람들이다. 골덴바이저는 53년간의 재직 기간 중에 1922~24년간과 1939~42년간의 두 차례에 걸쳐 유서 깊은 이 학교의 교장을 지냈다.

The present CD brings together outstanding examples of Russian piano music, starting with Tchaikovsky. Partly of French extraction and brought up in the German (i.e. Leipzig) tradition of Anton Rubinstein, he became the first Russian composer to win universal recognition, and the most successful ever.

현재의 음반은 차이코프스키를 시작으로 러시아 피아노 음악의 뛰어난 예를 보여준다. 부분적으로는 프랑스적인 면의 도움도 받았지만 근본적으로는 안톤 루빈스타인의 독일적 전통(즉 라이프치히)에 의해서 부양된 차이코프스키는 역대 러시아 작곡가 가운데서는 가장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또 가장 성공한 작곡가였다.

Although he shunned the concert platform (because of pathological stage fright), his pianistic skills were quite remarkable, enabling him to play the extremely difficult B minor Concerto for Nikolai Rubinstein, brother of his St Petersburg teacher and director of the Moscow Conservatory. However, he did not compose much music for "solo piano". Apart from the popular cycle "The Seasons" (more correctly titled "The Months"), a sonata and a number of individual pieces, he produced several collections, including the important cycles Op. 51 and 72. The items chosen from the two cycles reveal his mastery of elegant salon music, but the word "salon" as understood by the Russian upper classes denoted a centre of 19th-century intellectual, artistic or even "political life" rather than the fashionable Paris salon with its undercurrent of eroticism or the rather staid German equivalent with its Biedermeier atmosphere. The four pieces reflect two emotional states widely cultivated in Russia at the time: poetic animation and melancholy retrospection, both susceptible of a passionate or even dramatic build-up into erotic frenzy or inner struggle.

비록 (병적으로 심한 무대 공포증 때문에) 연주회의 무대를 피하기는 했어도 차이코프스키는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차이코프스키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스승인 안톤 루빈스타인의 동생이자 모스크바 음악원 교장)을 위해 그가 작곡했던 극도로 난해한 B단조 피아노 협주곡을 완벽하게 칠 수 있을 만큼 완전히 주목할 만한 피아니스트로서의 기교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는 피아노곡을 많이 쓰지는 않아서 12곡의 피아노 소곡으로 이루어진 “사계”(더 정확한 제목은 “열두 달”)와 한 곡의 소나타, 그리고 Op. 51과 Op. 72의 피아노곡집을 포함한 몇몇 소품들이 남아있을 뿐이다. 여기에 들어있는 그의 두 피아노 작품집 Op. 51과 Op. 72는 우아한 살롱음악에 대한 그의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지만, 그 당시의 러시아 상류사회에서 “살롱”은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프랑스나 정직한 농부처럼 착실한 독일의 그것과는 달리 19세기의 지적이고 예술적인, 심지어 “정치적인 생활”까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4개의 소곡들은 당시의 러시아적 풍토에서 배양된 두 가지 감정적인 상태, 즉 시적인 생동감과 감상적인 회상이 교차하는 아름다움과 그와는 또 다른 정열의 민감함과 성적 결빙이나 내적인 투쟁이 쌓아올린 극적인 면이 공존하는 미묘함을 지니고 있다.

The Six Pieces, Op. 51, dating from 1882, include two waltzes, among them a "Valse sentimentale" in the poignant key of F minor that had been used earlier in the Fourth Symphony. Russians have a passion for wallowing in self-pity, and the "heart-rending" romance exemplified by this piece illustrates the peculiar manner in which they savour the anguish of a broken heart. Another example is the composer's most popular piano romance, Op. 5, written in the same key and intended for the singer Desiree Artot, with whom he had a brief love affair. "Meditation" from Op. 72 was subjected to all kinds of arrangements (for varying instrumental combinations) and simplified for domestic performances a short time after it had been published. This is hardly surprising, for in this piece Tchaikovsky depicts a magical dream-world suffused with gentle melancholy. It was one of his last compositions, written in 1893, the year of his death. His retrospective mood is even more apparent in the appropriately titled "Dialogue", where two people seem to reveal their innermost feelings to one another as in a passionate operatic duet. The piano writing is almost orchestral in texture and betrays the composer's remarkable contrapuntal skill.

1882년에서 거슬러 올라가는 6개의 소품들(Op. 51)은 교향곡 4번에서 일찍이 사용했던 슬픈 f단조의 <감상적인 왈츠>가 있는 2개의 왈츠를 포함한다. 러시아인들은 자기 연민에 빠져드는 것에 열정을 갖고 있으며, 이 작품이 보여준 “가슴이 미어지는” 로맨스는 상처받은 마음의 괴로움을 맛볼 수 있는 독특한 방식을 보여준다. 또 다른 예는 작곡가의 가장 인기 있는 피아노 로맨스인 Op. 5로 같은 f단조이며 그와 잠시 연애했던 가수 데지레 아르토를 위해 만들었다. <명상> Op. 72는 (다양한 악기 결합의) 모든 종류의 편곡 대상이었고 출판된 후 잠시 후 국내 공연을 위해 간소화되었다. 이 작품에서 차이코프스키는 부드러운 우울함으로 가득 찬 꿈의 세계를 묘사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죽음을 맞이한 1893년에 쓰인 그의 마지막 작품들 중 하나였다. 그의 회고적인 분위기는 열정적인 오페라 듀엣에서처럼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가장 깊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처럼 적절하게 표제가 붙은 <대화>에서 훨씬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피아노곡은 거의 오케스트라 같은 질감이고 작곡가의 놀라운 대위법적인 솜씨를 드러낸다.

Generous support from Nadezhda von Meek, a wealthy widow whom the homosexual composer addressed rather vaguely as "my dear friend", enabled Tchaikovsky to relinquish his professorship in 1878 and devote himself entirely to music, touring western and southern Europe in a climate of financial security. Even so he continued to serve the Conservatory in an advisory capacity.

동성애 작곡가가 “내 친애하는 친구”라는 말로 막연하게 언급한 부유한 과부였던 나데즈다 폰 메크 부인의 후원 덕분에 차이코프스키는 1878년에 교수직을 포기하고 재정적인 안전의 분위기 속에서 서유럽과 남부 유럽을 여행하며 음악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고문(顧問) 역할로 음악원에 계속 봉사했다.

Four years later, a composer who had followed a similar path was appointed professor of harmony there: Anton Arensky. Trained in St Petersburg by Rimsky-Korsakov, he first took up a post in Moscow after passing his examinations in 1882. Named professor in 1889, he stayed there until 1895. Subsequently, he returned to St Petersburg, succeeding Balakirev as director of the prestigious Imperial Chapel. While an outsider among Russian composers, Arensky greatly influenced the piano music of his country, chiefly through his pupils, Rachmaninov, Scriabin and Medtner, in whom he instilled both the spirit of the "Russian Five" (epitomized by Rimsky-Korsakov) and the more lyrical and romantic style of his idol, Tchaikovsky. (Strictly speaking, Scriabin should not be included here because he fell out with Arensky, staying away from his lessons and leaving the Conservatory without a degree in composition.) Arensky was keenly interested in the music of the past. He was born in Novgorod, one of Russia's oldest towns (even though its name means "new town"). In his piano writing, this nostalgic attitude finds expression in "studies in forgotten rhythms". With a few exceptions, the six meters of Hellenic and Balkan prosody he employed are only listed in specialist dictionaries today: logaoedic, paeon, ionic, sari, Alcaic and Sapphic strophe. The Indian-sounding word "sari" denotes a rhythm with intriguing alternations of three-four and six-eight time over sustained left-hand arpeggios in the key of B miner, tinged with Slavic melancholy.

4년 후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유사한 길을 걸었던 작곡가가 화성학 교수로 임명되었는데, 그가 바로 안톤 아렌스키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배웠던 그는 1882년에 그의 시험에 합격한 후 모스크바에서 첫 번째 자리를 차지했다. 1889년에서 1895년까지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를 지냈다. 그 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와서 발라키레프의 뒤를 이어 제국교회의 음악감독을 지냈다. 러시아 작곡가들 사이에서 아웃사이더인 동안, 아렌스키는 주로 (림스키코르사코프로 요약되는) <러시아 5인조>의 정신과 그의 우상인 차이코프스키의 보다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스타일 모두 고취시켰던 그의 제자들인 라흐마니노프, 스크리아빈, 메트너를 통하여 자국의 피아노 음악에 큰 영향을 주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스크리아빈은 아렌스키와 사이가 틀어졌기 때문에 여기에 포함되어서는 안 되며, 그의 수업에서 벗어나 음악원에서 작곡 학위 없이 떠났기 때문이다.) 아렌스키는 옛 음악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들 중의 하나인 노브고로드(이름은 “신도시”를 의미)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런 취향은 <잊힌 리듬에 관한 연구>라는 향수에 찬 악곡집에 잘 나타나 있다.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 그가 고용했던 그리스와 발칸의 운율 체계 중 6가지는 오늘날 전문가 사전에 나와 있다. - 산문시체, (장음절 하나와 단음절 셋으로 된) 4음절의 운각(韻脚), (인도 여성들이 입는) 사리, 고대 그리스의 시인 알카이오스, 사포(Sappho)의 시의 한 연. 여기에 수록된 제4곡 <사리>는 인디언의 언어로, 3/4박자와 6/8박자로 은밀하게 교체되는 리듬이 왼손의 b단조 아르페지오로 나타나고 그 위에 슬라브적인 감상적 색조가 혼합된 것을 의미한다.

Having been let down by the strong-willed Scriabin, Arensky found his teaching methods brilliantly confirmed by Sergei Rachmaninov (born a year after Scriabin), who followed his teacher's precepts as a composer and (after abandoning teaching) as a concert pianist. Rachmaninov's "Marceaux de Salon", Op. 10, were written in 1894. By that time, he had composed his first piano concerto, an opera ("Aleko", based on Pushkin and premiered shortly before the death of Tchaikovsky, who had been instrumental in bringing about its first performance) and his first "hit tune", the ever-popular C sharp minor Prelude from "Morceaux de fantaisie", Op. 3. These "fantasy pieces" were followed by items avowedly written for the salon. The highly effective "Barcarolle", which recalls the "Elegy" from the aforementioned cycle in its piano writing, features a gently swaying rhythm in the outer parts, which is supplemented by impressionistic light effects on the water surface in the middle section (leggiero semiquavers). A typical feature (borrowed from Liszt) is the rich tenor cantilena given to the left hand while the right imitates the rippling motion of the water with ostinato triplet figures.

확고한 스크리아빈에 실망당한 아렌스키는 (스크리아빈보다 1년 늦게 태어난)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에 의해 그의 가르치는 방식이 훌륭하게 확인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라흐마니노프는 작곡가이자 (가르침을 그만 둔 후에)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그의 스승의 교훈을 따랐다. 라흐마니노프의 <살롱품의 작품집> Op. 10은 1894년에 작곡되었다. 당시에 그는 그의 첫 피아노 협주곡, 오페라(1893년 푸쉬킨의 시 <집시>를 바탕으로 작곡했는데, 이 작품은 차이코프스키에게까지 인정을 받아 차이코프스키의 죽음 직전에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되기까지 했던 <알레코>), <환상 소품집> Op. 3 중에서 그의 첫 “히트곡”으로 항상 인기 있는 프렐류드 Op. 3 No. 2 <모스크바의 종>을 작곡했다. 이 <환상 소품집>은 살롱을 위해 공공연히 쓰인 곡들이 나온다. <살롱풍의 작품집> Op. 10 No. 3 <뱃노래>는 이 시기에 작곡된 그의 일련의 피아노 작품 가운데서도 “비가”라고 불릴 만큼 풍부한 효과를 지닌 음악으로, 부드럽고 유려한 리듬이 전곡을 지배하고 중간부(가벼운 16분음표들)에는 수면에 빛나는 어스름하고 인상적인 광선의 효과가 곡의 이미지를 구축해준다. 양식적으로는 리스트의 스타일이 차용된 것으로 오른손이 오스티나토(고집스럽게 반복되는 음형) 셋잇단음표로 움직이며 빛의 효과를 자아낼 때 테너의 풍부한 칸틸레나(서정적인 선율)가 왼손에 실려 유창한 아름다움을 이룬다.

Rachmaninov "Marceaux de Salon", Op. 10 No. 3 "Barcarolle" Opening (ostinato triplet figures by right hand) / 라흐마니노프 <살롱풍의 소품집> 작품 10-3 <뱃노래> 오프닝 (오른손의 오스티나토 셋잇단음표)

Rachmaninov "Marceaux de Salon", Op. 10 No. 3 "Barcarolle" Middle Section (leggiero semiquavers) / 라흐마니노프 <살롱풍의 소품집> 작품 10-3 <뱃노래> 중간부 (가벼운 16분음표들)

Rachmaninov's Suites Op. 5 and Op. 17 are gems of the rather sparse literature for two pianos. They owe a stylistic debt to Arensky, who composed five such suites. In 1893, just before finishing Op. 10, Rachmaninov completed the first suite, which opens with a "Barcarolle", inspired by a poem of the Russian Romantic writer Mikhail Lermontov. The second suite, which followed in 1901, was published without any programmatic titles or literary references. In several places, there are echoes of the Piano Concerto No.2, which the composer had finished shortly before and which was to become his most successful work. Both pieces attest to Rachmaninov's new-found sense of optimism after a severe crisis in which he lost faith in his powers of composition. Around the turn of the century, Rachmaninov frequently performed on two pianos with one-time fellow student Alexander Goldenweiser, both in public and in private. This experience gave rise to the second suite, the first work from his pen to be printed after a five-year break. Not surprisingly. it was dedicated to Goldenweiser (who plays it on this CD).

라흐마니노프 모음곡 1번과 2번은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정말 아름다운 다소 드문 작품이다. 그것들은 그런 5개의 모음곡을 작곡했던 아렌스키에게 스타일상 빚을 지고 있다. 1893년 모음곡 2번 작곡이 끝나기 직전에 라흐마니노프는 모음곡 1번을 완성했는데, 러시아 낭만파 작가인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시 <곤돌라의 노래>에 영감을 받은 <뱃노래>로 시작한다. 1901년에 이어진 모음곡 2번은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제목이나 문학적인 참조 없이 출판되었다. 작곡가가 직전에 완성한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여러 곳에서 울려 퍼지면서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 되었다. 두 작품 모두 라흐마니노프가 그의 작곡 능력에 대한 믿음을 잃었던 극심한 위기 이후 새로이 발견된 낙천주의를 입증한다. 세기의 전환기에, 라흐마니노프는 한때 동기였던 알렉산더 골덴바이저와 2대의 피아노로 빈번히 공적 및 사적으로 연주했다. 이 경험으로 인해 두 번째 모음곡이 생겨났는데, 첫 번째 작품은 5년 동안 휴식을 취한 후에 인쇄된 첫 번째 작품이다. 당연하게도 (이 음반에서 연주하는) 모음곡 2번은 골덴바이저에게 헌정되었다.

곤돌라의 노래 - 미하일 레르몬토프
아, 서늘한 저녁 파도가
노 아래서 부드럽게 찰랑인다
멀리서 들려오는 노랫소리
슬픔과 함께 혹은 기쁨과 함께
옛날의 뱃노래가 들려온다
곤돌라는 물살을 가로지르고
시간은 사랑을 가로지른다
물결이 다시 고요해지면
그때의 격정도 더 이상 솟아오르지 않는다

Brisk, well-sprung march rhythms fading into the distance (as vividly portrayed in the music) are followed by a whirling waltz with two themes, the second of which quotes the medieval four-note Requiem sequence "Dies irae", which dies away amid the jingling of troika bells. The romance is full of delicate romantic filigree work, its melodic arch recalling one of the composer's most successful songs, "Lilacs", written at about the same time in the same key of A flat major. The closing tarantella quotes from a bravura piece for piano six hands (a highly unusual combination) which he had composed ten years earlier for his cousins, the three Skalon sisters (the youngest was his girl friend for a while). The introduction was later used to open the second movement of his Piano Concerto No.2 while the closing pages found their way into the final section of the tarantella. The spirited main theme is Italian in origin (as indicated in the music), but it has never been identified and strikes the listener as being imbued with a typically Russian flavour.

<서주>에서 (음악에서 생생하게 묘사된 것처럼) 빠르고 활발하게 펼쳐지는 행진 리듬은 2개의 주제가 있는 소용돌이치는 두 번째 곡 <왈츠>로 이어지는데, 두 번째 주제는 중세시대 최후의 심판에서 유래한 선율 4성부 레퀴엠(진혼곡) 시퀀스(동형진행=반복) <진노의 날>(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파가니니의 주제에 의한 랩소디> 변주곡 7번 피아노 선율에서도 인용)을 인용하며 (썰매개가 썰매를 끄는) 트로이카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서 사라진다. 세 번째 곡 <로망스>는 섬세한 낭만적인 줄 세공으로 가득 찼는데, 이 곡의 (이음줄로 연결된) 아치형 선율은 작곡가의 가장 성공적인 가곡들 중 하나로 거의 같은 시기에 작곡된 같은 조성인 내림A장조의 <라일락>을 떠오르게 한다. 마지막 <타란텔라>는 그의 사촌인 3명의 스칼론 자매(가장 어린 사람은 잠시 그의 여자 친구였음)를 위한 6개의 손을 위한 고도의 예술적 기교를 가진 피아노곡에서 인용한다. 6개의 손을 위한 로망스 도입부는 나중에 그의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 시작 부분에 사용된 반면, 마지막 페이지들은 <타란텔라>의 마지막 부분에 들어갔다. 가장 중요한 주제는 (음악에 나와 있듯이) 이탈리아 폴카 댄스에게서 나온 것이지만, 확인된 적이 없고 전형적으로 러시아적인 풍미가 묻어나는 것처럼 청취자를 사로잡는다.

Rachmaninov Suite No. 2: I. Introduction Opening / 라흐마니노프 모음곡 2번 서주 오프닝

Rachmaninov Suite No. 2: II. Waltz (second theme: dies irae) / 라흐마니노프 모음곡 2번 왈츠 제2주제 (진노의 날)

Rachmaninov Suite No. 2: II. Waltz Ending (the jingling of troika bells) / 라흐마니노프 모음곡 2번 왈츠 엔딩 (트로이카의 종소리)

Rachmaninov Suite No. 2: III. Romance Opening (melodic arch) / 라흐마니노프 모음곡 2번 로망스 오프닝 (아치형 선율)

Rachmaninov Lilacs, Op. 21 No. 5 Opening (melodic arch) / 라흐마니노프 가곡 <라일락> 오프닝 (아치형 선율)

Rachmaninov Romance for 6 Hands Opening / 라흐마니노프 6개의 손을 위한 로망스 오프닝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 2 in c, Op. 18: Adagio sostenuto (Opening)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 오프닝

Rachmaninov Romance for 6 Hands Final Section / 라흐마니노프 6개의 손을 위한 로망스 마지막 부분

Rachmaninov Suite No. 2: IV. Tarantella Final Section / 라흐마니노프 모음곡 2번 타란텔라 마지막 부분

Born seven years after Rachmaninov, Nikolai Medtner was the son of a Moscow-based German and his Russian wife. In 1900 he graduated from the Moscow Conservatory with flying colours, prompting his teacher, Professor Safonov, to observe that he ought to have received a medal studded with diamonds instead of the customary gold medal. Medtner went on to study composition with Arensky and Taneyev, Tchaikovsky's master pupil and long-time director of the institution. Before leaving for Western Europe in 1921 (making his home in London in 1935), he was a professor at the Conservatory for several years. In their brooding intensity, his numerous piano works are sometimes reminiscent of Brahms. A decidedly romantic composer, he invariably performed with his eyes shut from 1921 onwards. There is no Russian composer between Scriabin and Prokofiev (not forgetting Feinberg) who added more sonatas to the repertory, but his 14 contributions to the genre are largely ignored today. "Fairy-tales" in various forms are an intriguing feature of his output. The "Novella" is one of these "keyboard stories".

라흐마니노프가 태어난 지 7년 후, 니콜라이 메트너는 모스크바에 기반을 둔 독일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90년에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모스크바 음악원을 졸업했는데, 그의 스승인 바실리 사포노프 교수는 관례적인 금메달 대신에 다이아몬드가 박힌 메달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메트너는 계속 공부하여 아렌스키와 타네예프(차이코프스키의 대학원 제자이자 오랫동안 음악원 교장 역임)로부터 작곡을 배웠다. 1921년 서유럽으로 떠나기 전(1935년 런던 거주), 그는 몇 년 동안 음악원에서 교수를 지냈다. 우울함의 강도에서 그의 수많은 피아노 작품들은 때때로 브람스를 연상케 한다. 확실히 낭만적인 작곡가인 그는 1921년 이후 눈을 감고도(쉽게) 변함없이 연주했다. 스크리아빈과 프로코피에프 사이에(파인베르크를 잊지 말아야 함) 레퍼토리에 더 많은 소나타를 추가했던 러시아 작곡가가 없지만, 메트너의 14가지 장르에 대한 공헌은 오늘날 크게 무시된다. 다양한 형식의 <요정 이야기>는 그의 작품에서 흥미로운 특징이다. <노벨라>는 이 “건반 이야기들” 중 하나이다.

Alexander Borodin was closely associated with St Petersburg all his life. Partly of Armenian stock, he learned to play the cello, but embarked on a scientific career. Overtaxed by his duties as professor of chemistry, vice-chancellor of a school of medicine, devoted family man and philanthropist, he did not compose much for the piano. But as in other fields, what little he wrote proved very enduring. His "Petite Suite" is a jewel of piano music with an exotic flavour and, since the composer was no virtuoso on the keyboard, a work suitable for amateur performers. The underlying story, which is suggestive of Turgenyev, concerns a young girl returning from her first ball and indulging in innocent dreams of passionate love. The dances, which were superintended by a "maitre de plaisir" in the composer's day, include two mazurkas.

알렉산더 보로딘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점으로 활동했다. 부분적으로 아르메니아적인 개성을 지닌 그는 첼로를 배웠지만, 과학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화학 교수로 재직하고 의학계의 부총장이었으며 헌신적일 정도로 가정적인 남자이자 자선 사업가였던 그는 피아노곡을 많이 작곡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가 기록한 것은 거의 영구적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의 <작은 모음곡>은 이국적인 풍미를 지닌 피아노 음악의 보석이며, 작곡가는 건반에서 대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마추어 연주자들에게 적합한 작품이었다. 투르게네프를 암시하는 근원적인 이야기는 첫 무도회에서 돌아와서 열정적인 사랑의 순수한 꿈에 탐닉하는 어린 소녀에 관한 것이다. 작곡가의 날에 <즐거움의 주인>이 감독한 춤들에는 2개의 마주르카가 포함된다.

To round off the programme, Goldenweiser treats us to some of his own music. The Caucasus, which 19th-century Tsars saw as the "Russian gateway to the Orient", provides the background. This region has been inhabited by proud, unruly hill tribes from time immemorial. One of them, the Kabardians, once inspired Mili Balakirev to write his famous - or should we say notorious - Oriental fantasy "Islamey", which caused Scriabin to ruin his right hand and which Ravel sought to outdo in terms of fiendish technical demands with his diabolical dwarf "Scarbo" in "Gaspard de la nuit". Just like Balakirev's piece, where a fiery dance encloses a rapturous love song, Goldenweiser's consists of a cantilena and a dance, highlighting the contrast between tender lyricism and uninhibited vigour.

골덴바이저는 프로그램을 마무리하기 위해 그의 음악 중 일부를 우리에게 쏜다. 19세기 차르가 “동방 제국으로 향하는 러시아 관문”으로 보았던 코카서스가 배경을 제공한다. 이 지역은 옛날부터 거센 산악 부족이 살고 있었다. 그들 중 하나인 카바르디안 종족은 밀리 발라키레프가 그의 유명한 - 또는 우리가 악명 높다고 말해야 하는 - 동양풍 환상곡 <이슬라메이>를 쓰는 데에 영감을 주었는데, 스크리아빈이 그의 오른손을 망치게 만들었고 라벨은 <밤의 가스파르> 중 3곡인 <스카르보>(밤에 나오는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요정 혹은 악마)에서 복잡한 기술적 요구를 능가하려고 했다. 불타는 춤이 열렬한 사랑의 노래를 둘러싸는 발라키레프의 작품처럼, 골덴바이저는 부드러운 서정성과 무한한 활력 사이의 대조를 강조하면서 칸틸레나와 춤을 구성한다.


러시안 피아노 스쿨은 개인적으로 러시안 피아니즘을 알고자 하는 초보자들에게 입문용으로 추천하는 음반인데 그것에 대해서는 엄청 고심했다. 워낙 하늘의 별만큼이나 훌륭한 피아니스트들이 많으니까. 러시안 중에서 유명한 사람들만을 모아놓은 건 아니고 나도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연주자들이 몇 명 있다. 물론 나한테도 결코 가벼운 주제는 아닌데 한글 부클릿이 있어서 대강이라도 읽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글 정보가 있다고 해도 영어 정보에 있는 내용이 다 나와 있는 것은 아니라서 번역해서 보충했다. 물론 한글 정보 덕분에 문장 몇 개는 정리하기가 좀 수월하긴 했다. 영어에 없는 정보가 한글에 있기도 해서 그 점이 조금은 아쉽긴 한데 영어 부클릿이라도 다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다. 글자 복사가 되는 pdf 파일에서 영문을 발췌했는데 깨진 글자가 몇 개 있어서 이미지 파일로 된 속지를 보면서 수정했다. 러시안 피아노 스쿨 중에서 가장 먼저 번역한 것은 아니고 한글 정보가 없는 3개를 먼저 번역하고 나서 네 번째로 한 것이다. 번역할 때 문장 해석만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고 배경 지식이 요구되어서 보충할 내용을 조사할 수밖에 없었다. 한글 속지가 있어서 그대로 타이핑하면 되는 줄 알고 신났다가 빠진 내용이 있다는 걸 알고 나서 미친 오리 모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라흐마니노프는 여러 번 반복해도 어느 부분인지 알기 힘들었다. 찾아봐도 정보가 잘 안 나오기도 하고... 따라서 로망스와 타란텔라에서 각각 발췌한 악보와 <진노의 날>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내 추측이다. 다른 포스팅에 있는 악보 발췌도 일일이 밝히지 않아서 그렇지 추측이나 판단에 의한 것들이 있다. 한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 오프닝 선율은 에릭 카르멘(Eric Carmen)의 노래 All by Myself(오로지 나 홀로)에 삽입되었다.

댓글 1개:

  1. http://uploaded.net/file/bdslq77p/Mel.RPS01.rar

    http://uploaded.net/file/skycd4j4/from/aa33kn

    https://yadi.sk/public/?hash=HrUe2hCc8uvNdZq5JUJT2W7XKir%2BGXIk5UzHjVgo41o%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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