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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piano bachelor, piano music lover, CD collector and classical music information's translator. Also KakaoTalk character Tube mania! Naver Blog: http://blog.naver.com/snowseol Youtube Channel: https://www.youtube.com/channel/UCDPYLTc4mK7dOXYTQEOiPew?view_as=subscriber

2020년 2월 28일 금요일

Jean-Paul Gasparian Recital at the Fondation Louis Vuitton in Paris (17 May 2019)


장-폴 가스파리앙 - 2019년 5월 17일 파리 루이 비통 재단 강당
New Generation Piano Recital / 신세대 피아노 리사이틀

Program
Debussy Images, Book II / 드뷔시 영상 2집
I. Clothes a travers les feuilles / 잎새를 흐르는 종
II. Et la descend sur le temple qui fut / 달은 황폐한 절에 걸려
III. Poissons d'or / 금빛 고기

Tristan Murail: La Mandragore (The Mandrake) / 트리스탕 뮈레유 <만드라고라> (맨드레이크)

Messiaen: Vingt Regards sur l'Enfant-Jésus (extraits) / 메시앙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시선> 발췌
XI. Première Communion de la Vierge / 성모 마리아의 첫 성찬식
X. Regard de l'Esprit de Joie / 기쁨의 성령의 시선

Chopin Polonaise-Fantaisie in Ab, Op. 61 / 쇼팽 <환상 폴로네즈>

Chopin Nocturne No. 13 in c, Op. 48 No. 1 / 쇼팽 녹턴 13번

Chopin Ballade No. 4 in f, Op. 52 / 쇼팽 발라드 4번

Chopin Nocturne No. 8 in Db, Op. 27 No. 2 / 쇼팽 녹턴 8번

Chopin Polonaise No. 6 in Ab, Op. 53 "Heroic" / 쇼팽 폴로네즈 6번 <영웅>

Encores
Debussy Estampes: II. Soirée dans Grenade / 드뷔시 판화 중 2번 <그라나다의 황혼>
Debussy Estampes: III. Jardin sous la pluie / 드뷔시 판화 중 3번 <비오는 정원>
Rachmaninov Prelude in D, Op. 23 No. 4 / 라흐마니노프 전주곡 작품 23-4
Chopin Waltz No. 14 in e, Op. posth. / 쇼팽 왈츠 14번
Rachmaninov Sonata No. 2 in b flat, Op. 36: II. Non allegro /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2번 2악장
Rachmaninov Sonata No. 2 in b flat, Op. 36: III. L'istesso tempo - Allegro molto /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2번 3악장

프랑스 연주자라 그런지 드뷔시를 잘 한다. 그런데 쇼팽은 음반을 들어보니 좀 약했다. 뮈레유의 작품은 악보를 들고 나와서 연주한다. 현대 음악이니까 악보를 보고 칠 수도 있는 것. 맨드레이크가 뭔지 찾아보니 가지과의 식물. 동영상으로 쇼팽을 감상해보니 괜찮은데 그건 내가 프렌치 쇼팽을 좋아하는 기분 탓도 있을 것. 발라드 4번은 마지막을 향해 잘 전개해나가고 있었는데 막바지에 악보를 까먹어서 얼른 건너뛰었다. 음반 두 장 내고 프로로 활동하는 것 같은데 2020 쇼팽 콩쿠르에 나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가스파리앙이 연주한 쇼팽의 곡들은 모두 자신의 음반에 수록된 곡들 중에서 나왔다.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2번 2악장을 듣는데 요즘의 상황 때문인지 슬프다.

2020년 2월 20일 목요일

Seong-Jin Cho & Manfred Honeck - Live in Pittsburgh (19 January 2020)


https://pittsburghsymphony.org/production/62259/bolero

https://www.youtube.com/watch?v=cQ4eyDRty70

Seong-Jin Cho Interview with WQED's Jim Cunningham / WQED-FM 진행자 짐 커닝햄과의 인터뷰
Q: Seong-Jin Cho. Welcome to Pittsburgh! We are thrilled to meet you to have you here making your debut with Franz Liszt's Second Piano Concerto by Manfred Honeck with orchestra this weekend. Delighted to have you. How's it been so far the first few days here at Pittsburgh?

조성진 씨. 피츠버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번 주말에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만프레드 호넥의 지휘로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2번 데뷔를 가지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피츠버그에 오신지 며칠 지났는데 어떠세요?

A: It's my first time to be here and first of all I heard so many good things about Pittsburgh Symphony Orchestra from my friends like Matthias Goerne who is a good friend of Manfred. So I was really looking forward to visiting Pittsburgh and playing with the Symphony Orchestra.

여기 처음 왔는데 무엇보다도 만프레드의 좋은 친구 분인 마티아스 괴르네 같은 제 친구들로부터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대해서 여러 가지 좋은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피츠버그를 방문하여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것을 굉장히 고대하고 있었죠.

Q: Tell me about the Liszt Second Concerto. This is the quintessential romantic piece.

리스트 협주곡 2번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이 곡은 낭만파 작품의 정수거든요.

A: The Second Concerto... there's some very special moments like... there's some kind of chamber music like moments which... there's a beautiful cello solo and horn solo, so it's more imaginative than the First Concerto and so there's so much... so many beautiful moments, so it's my first time, it's going to be my first time playing this concerto with the orchestra, so... and I'm very happy to make my Liszt Concerto, my Second Concerto debut in Pittsburgh with Manfred [Honeck]. I often think this concerto is like a Strauss's music, Richard Strauss's music, like symphonic poem. It's very free, the structurewise and I think there's everything inside this music, like virtuosic moments and the lyrical moments, intimate moments, so I really love this concerto.

협주곡 2번에는... 아주 특별한 순간들이 있는데... 실내악 같은 순간들이 있는데... 아름다운 첼로 솔로와 호른 독주가 있어서, 협주곡 1번보다 더 상상력이 풍부하고 정말 많이... 정말 많은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는데, 이 협주곡을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고... 그래서 제 리스트 협주곡, 제 (리스트) 협주곡 2번 데뷔를 만프레드 호넥의 지휘로 피츠버그에서 가지게 되어서 정말 기뻐요. 저는 이 협주곡이 슈트라우스의 음악,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음악, 교향시와 같다고 생각해요. 구조적으로 정말 자유로우면서도 이 음악의 내면에는 기교적 순간, 서정적 순간, 친밀한 순간 같은 모든 것이 있다고 생각하므로 이 협주곡을 정말 사랑해요.

Q: And the roaring virtuoso spots where we really hear you to advantage, that's fun. You've got some technical virtuosity to show off there.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당신이 잘 하는 엄청난 기교가 나오는 곳들을 듣는데 재밌네요. 거기에서 기술적인 기교를 보여주셨군요.

A: Maybe for a listener it's fun, but for us it's really difficult, especially like the end of the piece is really difficult to play technically.

듣는 사람에게는 재밌을 수도 있지만, 우리(연주자들)한테는 실제로 어려운데, 특히 이 곡의 끝은 기술적으로 연주하기가 정말 어렵거든요.

Q: How did you do it? You're not... you're not Polish. You knew the style the judges wanted to hear and you won the audiences' hearts. You made them crazy with your Chopin in Warsaw.

어떻게 하신 거죠? 당신은... 당신은 폴란드인이 아닌데요. 당신은 심사위원들이 듣고 싶어 했던 스타일을 알았고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바르샤바에서 당신의 쇼팽으로 그들을 열광케 했죠.

A: Hahahaha... well... I just tried my best to understand Chopin's music. I think the essential thing about Chopin's music is nostalgia. He left his country, Poland when he was 20 or 21 and he never went back to Poland, so he always had some kind of nostalgia feeling. When he was in Paris, he always missed his country and, like, if you listen to his mazurkas or even some waltzes, you can feel it's a kind of nostalgia feeling.

하하하하... 음... 그저 쇼팽의 음악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저는 쇼팽의 음악에서 본질적인 것이 노스탤지어(향수)라고 생각해요. 그는 20세인가 21세인가에 조국 폴란드를 떠났고 다신 폴란드로 돌아가지 못했으므로, 항상 일종의 향수를 간직하고 있었거든요. 파리에 있을 때 항상 조국을 그리워했는데, 마주르카나 왈츠 같은 걸 듣는다면, 노스탤지어를 느낄 수 있어요.

Q: What's your take on the classical music scene today? How is it doing? Are we hanging in there? Are we growing? Are we getting better? What's your feeling about it? We want everyone in their 20s to be loving classical music the way you are.

오늘날 클래식 음악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떤가요? 우리가 꿋꿋이 버티고 있나요? 우리가 성장하고 있나요? 우리가 더 나아지고 있나요? 당신의 생각은 어떠세요? 우리는 20대의 모든 젊은이가 지금의 당신처럼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길 바랍니다.

A: My role as a musician... I don't know, I can't, but I'm just trying to bring these young audience to my concert. I always try my best and try to play better and better. My aim is just playing better than yesterday.

음악가로서의 제 역할은... 모르겠지만, 이 젊은 청중이 제 콘서트에 오도록 하는 중입니다. 저는 항상 최선을 다하여 점점 더 나은 연주를 하려고 노력해요. 제 목표는 어제보다 더 나은 연주를 하는 것입니다.

Q: Seong-Jin Cho, thank you so much for spending a few minutes talking about the Liszt this weekend. All the best to you. I hope it's the first of many visits back to Pittsburgh and the Pittsburgh Symphony. We look forward to seeing you this weekend.

조성진 씨, 이번 주말에 리스트에 대해 몇 분 동안 얘기를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길 바랍니다. 피츠버그와 피츠버그 심포니를 처음 방문한 사람들이 많길 바랍니다. 이번 주말에 당신을 보는 것을 고대합니다.

A: Thank you so much!

정말 고맙습니다!


2020년 1월 19일 14시 30분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 시 하인즈 공연예술 홀 콘서트
Seong-Jin Cho, piano / 조성진, 피아노
Pittsburgh Symphony Orchestra /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
Manfred Honeck, conductor / 만프레드 호넥 지휘
WQED 중계


Program Notes by Dr. Richard E. Rodda
Bartók Concerto for Orchestra, Sz. 116 (1943) / 버르토크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I. Introduzione. Andante non troppo - Allegro vivace
II. Presentando le coppie. Allegro scherzando
III. Elegia. Andante non troppo
IV. Intermezzo interrotto. Allegretto
V. Finale. Presto

Béla Bartók was born in Nagyszentmiklós, Hungary on March 25, 1881, and died in New York City on September 26, 1945. He composed his "Concerto for Orchestra" in 1943, and it was premiered by the Boston Symphony and conductor Serge Koussevitsky on December 1, 1944. The Pittsburgh Symphony first performed the work in January 1946 with music director Fritz Reiner, and most recently performed it in May 2015 with conductor Michael Francis. The score calls for piccolo, three flutes, three oboes, English horn, three clarinets, bass clarinet, three bassoons, contrabassoon, four horns, three trumpets, three trombones, tuba, timpani, percussion, two harps and strings. Approximate duration: 35 minutes.

벨라 버르토크는 1881년 3월 25일 헝가리 나지첸트미클로스에서 출생하였으며, 1945년 9월 26일 뉴욕에서 사망했다. 그는 1943년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을 작곡했으며, 1944년 12월 1일 세르게이 쿠세비츠키의 지휘로 보스턴 심포니에 의해 초연되었다. 피츠버그 심포니는 1946년 1월 음악 감독 프란츠 라이너의 지휘로 이 작품을 처음 연주했으며, 가장 최근인 2015년 5월에는 마이클 프란시스의 지휘로 연주했다. 악보는 피콜로, 플루트 3대, 오보에 3대, 잉글리시 호른, 클라리넷 3대, 베이스 클라리넷, 바순 3대, 콘트라바순, 호른 4대, 트럼펫 3대, 트롬본 3대, 튜바, 팀파니, 퍼커션, 하프 2대, 현악기들로 구성된다. 연주 시간은 약 35분이다.

Béla Bartók came to America in October 1940, sick of body and afflicted of spirit. He had been frail all of his life, and the leukemia that was to cause his death five years later had already begun to erode his health. Adding to the trial of his medical condition was the war raging in Europe, a painful source of torment to one of Bartók's ardent Hungarian patriotism. Upon leaving his homeland, he not only relinquished the native country so dear to him, but also forfeited the secure financial and professional positions he had earned in Budapest. Compromise in the face of Hitler's brutal inhumanity, however, was never a possibility for a man of Bartók's adamantine convictions. "He who stays on when he could leave may be said to acquiesce tacitly in everything that is happening here," he wrote on the eve of his departure. "This journey [to America] is like plunging into the unknown from what is known, but unbearable." Filled with apprehension, he made the difficult overland trip to Lisbon, then sailed on to New York.

벨라 버르토크는 1940년 10월에 심신이 미약한 상태로 미국으로 왔다. 그는 평생 허약했으며, 5년 후 그의 죽음을 초래하게 되는 백혈병은 이미 건강을 약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의 건강 상태에 대한 시련에 추가된 것은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전쟁으로, 버르토크의 열렬한 헝가리 애국심 중 하나에 대한 아픔의 쓰라린 근원이었다. 그는 고국을 떠나면서 자신에게 귀중한 국적을 포기했을 뿐만 아니라 부다페스트에서 얻은 안전한 재정적, 직업적 위치를 상실했다. 그러나 히틀러의 잔인한 비인간성에 대한 타협은 버르토크의 단호한 신념을 가진 사람에게 일어날 가능성이 없었다. 그는 출국 전날에 다음과 같이 썼다. “자신이 떠날 수 있을 때까지 머무르는 자는 여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미국으로의] 이번 여정은 알려져 있지만 참을 수 없는 것에서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빠져드는 것과 같다.” 그는 걱정으로 가득 찬 채, 리스본으로의 어려운 육로 여행을 하고 나서 뉴욕으로 향하는 배를 탔다.

Sad to say, Bartók's misgivings were justified. His financial support from Hungary was, of course, cut off, and money worries aggravated his delicate physical condition. He held a modest post as a folk music researcher at Columbia University for a number of months, but that ended when funding from a grant ran out. His health declined enough to make public appearances impossible after 1943. His chief disappointment, however, was the almost total neglect of his compositions by the musical community. At the end of 1942 he lamented, "The quasi boycott of my works by the leading orchestras continues; no performances either of old works or new ones. It is a shame — not for me, of course." It is to the credit of ASCAP (American Society of Composers, Authors and Publishers) that the organization provided money for the hospital care that enabled Bartók to continue composing to the end of his life.

딱하게도 버르토크의 불안감은 현실로 나타났다. 헝가리의 재정적 지원은 물론 중단되었고 금전적인 걱정은 그의 허약한 몸 상태를 악화시켰다. 그는 몇 달 동안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민속음악 연구원으로 평범한 직책을 맡았지만, 보조로 받은 재정 지원이 부족해지자 끝났다. 그의 건강은 1943년 이후 공개적인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로 악화되었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실망은 음악계가 그의 작품들을 거의 무시한 것이었다. 1942년 말에 그는 다음과 같이 (신세를) 한탄했다. “주요한 오케스트라들이 내 작품들을 보이콧하는 것이 계속되는데, 오래된 작품이나 새로운 작품이나 공연이 없어. 물론 너무하지만 - 난 됐어.” 버르토크가 평생 동안 계속 작곡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병원 치료비를 지원했던 기관인 ASCAP(미국 작곡가 · 작사가 · 출판인 협회) 덕택이다.

It was at this nadir in his fortunes that the commission for the "Concerto for Orchestra" was presented to Bartók. Phillip Ramey related the circumstances: "By early 1943, things had gotten so bad that two old friends of Bartók, [violinist] Joseph Szigeti and [conductor] Fritz Reiner, suggested to Sergei Koussevitzky [music director of the Boston Symphony] that he commission an orchestral work in memory of his wife, Natalie. Koussevitzky agreed and, one spring day, while Bartók was in a New York hospital undergoing tests, he appeared unexpectedly and startled the composer by offering him a commission for $1,000 on behalf of the Koussevitzky Foundation. Bartók, as fastidious as ever, would initially only accept half of that amount because he feared that his precarious health might prevent him from fulfilling Koussevitzky's request." The commission and an ASCAP-sponsored stay at a sanatorium in Saranac Lake in upstate New York fortified Bartók's strength enough so that he could work on this new orchestral piece "practically night and day," as he wrote to Szigeti. Upon its premiere, the "Concerto for Orchestra" was an instant success. It was accepted immediately into the standard repertory and led to a surge of interest in Bartók's other works. He died less than a year after this work, the last he completed for orchestra, was first heard, not realizing that he would soon be universally acclaimed as one of the greatest composers of the 20th century.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위촉이 버르토크에게 간 것은 그의 운명에 있어서 최악의 순간이었다. 미국 작곡가 필립 레이미는 상황을 다음과 같이 연관시킨다. “1943년 초, 버르토크의 두 옛 친구 요셉 시게티(바이올리니스트)와 프리츠 라이너(지휘자)는 세르게이 쿠세비츠키(보스턴 심포니의 음악 감독)에게 그의 아내 나탈리를 추모하는 오케스트라 작품 위촉을 제안했다. 쿠세비츠키는 동의했고, 어느 봄날에 버르토크가 뉴욕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있는 동안 쿠세비츠키가 예기치 않게 나타났으며, 쿠세비츠키 재단을 대신하여 1천 달러의 위촉 비용을 버르토크에게 제공하여 작곡가를 놀라게 했다. 그 어느 때보다 까탈스러웠던 버르토크는 자신의 위태로운 건강으로 인해 쿠세비츠키의 요청을 이행하지 못할 것이었으므로 처음에는 그 비용의 절반만 받아들였다.” 위촉과 더불어 ASCAP의 후원으로 뉴욕 북부에 있는 사라낙 레이크 마을에 있는 요양소에 체류했던 버르토크가 시게티에게 썼듯이 “실제로 계속” 이 새로운 관현악곡에 착수할 수 있도록 힘을 충분히 강화했다.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은 초연되었을 때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표준 레퍼토리로 즉시 받아들여져 버르토크의 다른 작품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20세기 최고의 작곡가들 중 한 명으로 널리 인정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오케스트라를 위해 마지막으로 완성한 이 작품이 초연된 지 1년도 안 되어 죽었다.

"The title of this symphony-like work is explained by its tendency to treat single instruments or instrument groups in a 'concertant' or soloistic manner," wrote the composer to clarify the appellation of the score. Concerning the overall structure of the "Concerto"'s five movements, he noted, "The general mood of the work represents, apart from the jesting second movement, a gradual transition from the sternness of the first movement and the lugubrious death-song of the third, to the life-assertion of the last one." The first and last movements, Bartók continued, "are in more or less regular sonata form," while "the second consists of a chain of independent short sections by wind instruments introduced in five pairs (bassoons, oboes, clarinets, flutes and muted trumpets). A kind of 'trio' — a short chorale for brass instruments and snare drum — follows, after which the five sections are recapitulated in a more elaborate instrumentation…. The form of the fourth movement — 'Interrupted Intermezzo' — could be rendered by the symbols 'A B A — interruption — B A.'" The interruption to which Bartók referred is a parody of the German march theme from the first movement of Shostakovich's Symphony No. 7 "Leningrad," which was in turn a mocking phrase based on a song from Lehár's The Merry Widow, a favorite of Adolf Hitler.

작곡가는 악보의 호칭을 명확히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썼다. “이 교향곡 같은 작품의 제목은 ‘콘체르탄트’(협주곡 형식의) 또는 독주 방식으로 단일 악기 또는 악기 그룹을 다루는 경향으로 설명될 수 있다.”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의 전체 5악장 구조에 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익살스러운 2악장을 제외하고 작품의 일반적인 분위기는 1악장의 엄숙함과 3악장의 침울한 죽음의 노래부터 마지막 5악장의 생명 확언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인 전환을 나타낸다.” 버르토크는 다음과 같이 계속한다. “1악장과 5악장은 거의 보통의 소나타 형식이다.” 반면에 “2악장은 5개의 쌍으로 도입된 관악기들(바순, 오보에, 클라리넷, 플루트, 약음기를 단 트럼펫)에 의해 독립적인 짧은 섹션들로 구성된다. 금관악기와 스네어드럼(뒷면에 쇠 울림줄을 댄 작은 북)을 위한 짧은 코랄인 일종의 ‘트리오’가 이어지며, 이후 5개의 섹션은 보다 정교한 기악 편성으로 다시 요약된다…. 4악장의 ‘중단된 간주곡’ 형식은 ‘A B A - 중단 - B A’ 기호로 표현될 수 있다.” 버르토크가 언급한 중단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1악장에 나오는 독일 행진곡 주제의 패러디인데, 결국 이것은 아돌프 히틀러가 좋아하는 레하르 <유쾌한 미망인>에 나오는 노래에 의한 조롱하는 프레이즈였다.

Intermission

Liszt Piano Concerto No. 2 in A, S. 125 (1839, 1849) /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2번
- Adagio sostenuto assai
- Allegro agitato assai
- Allegro moderato
- Allegro deciso
- Marziale un poco meno Allegro
- Allegro animato

Franzt Liszt was born in Doborján, Hungary (now Raiding, Austria) on October 22, 1811, and died in Bayreuth, Germany on July 31, 1886. He sketched scores for both of his piano concertos in 1839, but did not complete the Second Piano Concerto until 1849, and it was not ultimately premiered until January 7, 1857, with Hans von Brosart as soloist and Liszt himself conducting. The Pittsburgh Symphony first performed the concerto with soloist Herman Kortheuer and conductor Frederic Archer in January 1897, and most recently performed it with soloist Yefim Bronfman and music director Manfred Honeck in June 2015. The score calls for piccolo, three flutes, two oboes, two clarinets, two bassoons, two horns, two trumpets, three trombones, tuba, timpani, cymbals and strings. Approximate duration: 22 minutes.

프란츠 리스트는 헝가리 도보르얀(오늘날 오스트리아 라이딩)에서 1811년 10월 22일에 출생하였으며, 1886년 7월 31일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사망했다. 1839년에 2개의 피아노 협주곡에 대한 악보를 스케치했지만, 1849년까지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완성하지 못했으며, 결국 1857년 1월 7일 한스 폰 브로자르트(리스트의 제자)가 리스트 자신의 지휘로 초연했다. 피츠버그 심포니는 이 곡을 1897년 1월에 프레데릭 아르허의 지휘로 헤르만 코르트호이어와 협연했으며, 가장 최근인 2015년 6월에는 음악 감독 만프레드 호넥의 지휘로 예핌 브론프만과 협연했다. 악보는 피콜로, 플루트 3대, 오보에 2대, 클라리넷 2대, 바순 2대, 호른 2대, 트럼펫 2대, 트롬본 3대, 튜바, 팀파니, 심벌즈, 현악기들로 구성된다. 연주 시간은 약 22분이다.

"Franz Liszt was one of the most brilliant and provocative figures in music history. As a pianist, conductor, composer, teacher, writer and personality — for with Liszt, being a colorful personality was itself a profession — his immediate influence upon European music can hardly be exaggerated. His life was a veritable pagan wilderness wherein flourished luxuriant legends of love affairs, illegitimate children, encounters with great figures of the period, and hairbreadth escapes from a variety of romantic murders. Unlike Wagner and Berlioz, Liszt never wrote the story of his life, for, as he casually remarked, he was too busy living it." If it were not for the fact that Liszt's life had been so thoroughly documented by his contemporaries, we might think that the preceding description by Abraham Veinus was based on some profligate fictional character out of E.T.A. Hoffmann. Not so. By all accounts, Liszt led the most sensational life ever granted to a musician. In his youth and early manhood, he received the sort of wild and unbuttoned adulation that today is seen only at the appearances of a select handful of rock stars. He was the first musical artist in history with enough nerve to keep an entire program to himself rather than providing the grab-bag of orchestral, vocal and instrumental pieces scattered across an evening's entertainment that was the typical early-19th-century concert. He dubbed those solo concerts "musical soliloquies" at first, and later called them by the now-familiar term, "recitals." ("How can one recite at the piano? Preposterous!" fumed one British writer.)

“프란츠 리스트는 음악사에서 가장 화려하고 도발적인 인물 중 하나였다. 피아니스트, 지휘자, 작곡가, 교육자, 작가, 유명한 인물로서 - 리스트에게 화려한 유명인이 되는 것은 그 자체로 직업이었는데 - 유럽 음악에 대한 그의 직접적인 영향은 과장될 수 없다. 그의 인생은 진정한 이단아의 광야였는데, 여기에서 풍성한 연애의 전설들, 사생아들, 그 시대 위대한 인물들과의 만남, 로맨틱한 불쾌한 일들을 가까스로 모면하는 것이 번성했다. 바그너, 베를리오즈와는 달리 리스트는 자신의 인생을 담은 이야기를 한 번도 쓰지 않았는데, 자신이 무심코 언급했듯이, 그렇게 살기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리스트의 생애가 그의 동시대인들에 의해 그렇게 철저히 기록되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우리는 아브라함 베이너스가 전술한 설명이 에른스트 테오도어 빌헬름 호프만의 몇몇 허구의 가상 인물에 근거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 (하지만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리스트는 음악가에게 주어진 가장 선풍적인 삶을 이끌었다. 청장년 시절에 그는 오늘날 소수의 락스타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일종의 거칠고 격식을 차리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그는 일반적인 19세기 초반 콘서트였던 저녁 오락물에 흩어져있는 관현악곡, 성악곡, 기악곡을 여러 가지 섞어놓은 것을 제공하는 대신 전체 프로그램을 스스로 유지하기에 충분한 신경을 가진 역사상 최초의 음악 아티스트였다. 그는 처음에 이 독주회들에 “음악적 독백”이란 별명을 붙였으며, 나중에는 현재 친숙한 용어인 “리사이틀”로 불렀다. (“피아노에서 어떻게 낭독할 수 있지? 말도 안 돼!” 한 영국인 작가가 씩씩거렸다.)

By 1848 Liszt had made his fortune, secured his fame, and decided that he had been touring long enough, so he gave up performing, appearing in public during the last four decades of his life only for an occasional benefit concert. Amid the variegated patchwork of duchies, kingdoms and city-states that constituted pre-Bismarck Germany, he chose to settle in the small but sophisticated city of Weimar, where Sebastian Bach held a job early in his career. Once installed at Weimar, Liszt took over the musical establishment there and elevated it into one of the most important centers of European artistic culture. He stirred up interest in such neglected composers as Schubert, and encouraged such younger ones as Saint-Saëns, Wagner and Grieg by performing their works. He also gave much of his energy to his own original compositions, and created many of the pieces for which he is known today — the symphonies, piano concertos, symphonic poems and choral works. Liszt had composed before he moved to Weimar, of course — his total output numbers between 1,400 and 1,500 separate works — but the early pieces were mainly piano solos for use at his own recitals. His later works are not only indispensable components of the Romantic musical era in their own right, but were also an important influence on other composers in their form, harmony and poetic content.

1948년까지 리스트는 돈을 많이 벌고, 명성을 확보했으며, 오랫동안 여행하기로 결정했으므로 연주를 포기하고 마지막 40년 동안 간헐적인 자선 연주회에만 공개 출연했다. 비스마르크 후작 이전의 독일을 구성했던 공작, 왕국, 도시 국가의 다양한 패치워크(여러 조각들) 속에서, 그는 바흐가 경력 초기에 직업을 가졌던, 작지만 세련된 도시 바이마르에 정착하기로 했다. 바이마르에 살면서 리스트는 음악 시설을 인수하여 유럽 예술 문화의 가장 중요한 중심지들 중의 하나로 승격시켰다. 그는 슈베르트 같은 소외된 작곡가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슈베르트, 바그너, 그리그 같은 젊은 작곡가들에게 이런 작곡가들의 작품들을 연주하도록 장려했다. 그는 자신의 독창적인 작곡에도 많은 에너지를 쏟았으며, 오늘날 알려진 많은 곡들을 만들었다. - 교향곡, 피아노 협주곡, 교향시, 합창 작품들. 리스트는 물론 바이마르로 이주하기 전에도 작곡했다. - 그가 작곡한 곡들은 총 1,400~1,500개의 분리된 작품들이지만 - 초기 작품들은 주로 자신의 리사이틀에서 사용하기 위한 피아노 독주곡들이었다. 그의 후기 작품들은 낭만주의 음악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일 뿐만 아니라 다른 작곡가들에게 그 형식, 화성, 시적인 내용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As if composing, conducting and performing were insufficient, Liszt was also one of the most sought-after piano teachers of the 19th century. He was popular with students not just because he possessed an awesome technique that was (and remains) the model of every serious pianist. Liszt was also a direct link to that nearly deified figure, the glorious Beethoven, who had, so the story went, actually kissed the young prodigy on the forehead with his own lips. Furthermore, Liszt was a pupil of Carl Czerny, the most eminent student of Beethoven. To make this already unassailable combination of technique and tradition absolutely irresistible, Liszt brought to it an all-encompassing view of man and his world that enabled the mere tones of the piano to surpass themselves and open unspeakable realms of transcendent delight. One friend once remarked about the composer's wide variety of interests, "One could never know in which mental stall Liszt would find his next hobby horse." He was a truly remarkable man, one of the most important figures in terms of his cumulative influence on the art in all of 19th-century music.

작곡, 지휘, 연주로도 모자라 리스트는 19세기의 가장 인기 있는 피아노 교육자들 중의 한 명이기도 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는데, 모든 진지한 피아니스트의 모델이었던 멋진 테크닉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스트는 거의 신격화된 인물, 바로 그 이야기가 나왔던 영광스러운 베토벤과 직접 연결되어 있기도 했는데, 실제로 베토벤은 어린 신동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리스트는 베토벤의 가장 유명한 학생인 카를 체르니의 제자이기도 했다. 리스트는 이미 테크닉과 전통의 완벽한 조합을 절대적으로 견딜 수 없게 만들기 위해 피아노의 단순한 음색이 그 자체를 능가하게 하면서 초월적 즐거움의 말할 수 없는 영역을 열 수 있게 해주는, 인간과 자신의 세계에 대한 포괄적인 견해를 가져왔다. 한 친구는 작곡가의 폭넓은 다양한 관심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적이 있었다. “리스트가 어떤 미친 마구간에서 그가 다음으로 좋아하는 화제를 찾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19세기 모든 음악의 예술에 대한 자신의 누적된 영향력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진정으로 주목할 만한 사람이었다.

Liszt sketched his two piano concertos in 1839, but they lay unfinished until he went to Weimar. He completed the Second Concerto, in A major, in the summer of 1849, but he did not get around to having it performed for more than seven years. Liszt required of a concerto that it be "clear in sense, brilliant in expression, and grand in style." In other words, it had to be a knockout. While it was inevitable that this Concerto would have a high percentage of finger-churning display, it was not automatic that it should also be of high musical quality — but it is.

리스트는 1839년에 자신의 두 피아노 협주곡을 스케치했지만, 바이마르에 갈 때까지 미완성으로 남아있었다. 그는 1849년 여름에 두 번째 협주곡을 완성했지만, 7년 넘게 연주되지 않았다. 리스트는 협주곡에 “분명한 의미, 화려한 표현, 웅장한 스타일”이 되도록 요구했다. 다시 말해, 그것은 뿅 가게 만드는 것이어야만 했다. 이 협주곡이 손가락을 휘몰아치는 역량을 많이 발휘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지만, 고급 음악이 되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 자동으로 따라왔다.

The procedure on which Liszt built this Concerto and other of his orchestral works is called "thematic transformation," or, to use the rather more jolly phrase of American critic William Foster Apthorp, "The Life and Adventures of a Melody." Never bothered that he was ignoring the Classical models of form, Liszt concocted his own new structures around this transformation technique. ("Music is never stationary," he pronounced. "Successive forms and styles can only be like so many resting places — like tents pitched and taken down again on the road to the Ideal.") Basically, the "thematic transformation" process consisted of inventing a theme that could be used to create a wide variety of moods, tempos, orchestrations and rhythms to suggest whatever emotional states were required by the different sections of the piece.

리스트가 이 협주곡과 다른 관현악 작품들을 지은 것에 관계되는 절차는 “주제의 변형”으로 불리거나 혹은 미국 평론가 윌리엄 포스터 앱소프는 “멜로디의 삶과 모험”이라는 보다 유쾌한 문구를 사용한다. 자신이 고전주의 형식의 모델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을 신경 쓰지 않았던 리스트는 이 변형 기술을 중심으로 자신의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음악은 정지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성공적인 형식과 양식은 이상적인 곳으로 가는 길에 내던지고 다시 치우는 텐트처럼 아주 많은 안식처와 같아야 한다.”) 기본적으로 “주제 변형” 과정은 곡의 다양한 섹션들에 필요한 감정적 상태를 무엇이든지 암시하기 위해 다양한 분위기, 템포, 오케스트레이션, 리듬을 만드는데 사용될 수 있는 주제를 만드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There are at least six such sections in Liszt's Second Piano Concerto. The composer provided no description for these, but wrote music of such extroversion that it is not difficult for imaginative listeners to provide their own expressive progression: languor, storm, love, strife, resolve and battle is only one possible sequence. The melody on which this Concerto is based is presented immediately at the beginning by the clarinet and courses through each section of the work. It can most easily be identified by the little half-step sigh at the end of the first phrase.

리스트의 두 번째 협주곡에는 적어도 6개의 섹션이 있다. 작곡가는 이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았지만, 상상력이 풍부한 청취자들이 그들의 표현적 진보를 제공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외향적인 음악을 썼다. - 권태, 폭풍, 사랑, 투쟁, 결의, 전투는 단 하나의 가능한 순서이다. 이 협주곡의 기초가 되는 멜로디는 클라리넷의 시작 및 작품의 각 섹션을 통한 과정들에서 즉시 나타난다. 첫 프레이즈의 끝에서 작은 반음 진행의 한숨으로 가장 쉽게 확인될 수 있다.

Schubert Moment Musical in f, D. 780 No. 3 (encore) / 슈베르트 <악흥의 한때> 3번

Ravel Boléro / 라벨 볼레로

Maurice Ravel was born in Ciboure, France on March 7, 1875, and died in Paris on December 28, 1937. "Boléro" was written as a ballet in 1928, and premiered in the same year at the Paris Opéra with the Ida Rubinstein Dance Company conducted by Walter Straram. The Pittsburgh Symphony first performed "Boléro" at the Syria Mosque under the direction of Carlos Chavez, founder of the Mexican Symphonic Orchestra, on November 11, 1937. Most recently, Yan Pascal Tortelier led a performance of "Boléro" in March 2017. The score calls for piccolo, two flutes, two oboes, oboe d'amore (alto oboe), English horn, E-flat clarinet, two B-flat clarinets, bass clarinet, three saxophones, two bassoons, contrabassoon, four horns, four trumpets, three trombones, tuba, timpani, snare drum, cymbals, gong, celesta, harp, and strings. Performance time: approximately 13 minutes.

모리스 라벨은 1875년 3월 7일 프랑스 시부르에서 출생하였으며, 1937년 12월 28일 파리에서 사망했다. <볼레로>는 1928년 발레곡으로 만들어졌으며, 같은 해에 월터 스트라람의 지휘로 이다 루빈스타인 무용단과 함께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피츠버그 심포니는 1937년 11월 11일 멕시코 심포니 오케스트라 창립자인 카를로스 차베스의 지휘로 시리아 모스크에서 <볼레로>를 처음 연주했다. 가장 최근인 2017년 3월에는 얀 파스칼 토르틀리에가 <볼레로> 연주를 이끌었다. 악보는 피콜로, 플루트 2대, 오보에 2대, 알토 오보에, 잉글리시 호른, E 플랫 클라리넷, B 플랫 클라리넷 2대, 베이스 클라리넷, 색소폰 3대, 바순 2대, 콘트라바순, 호른 4대, 트럼펫 4대, 트롬본 3대, 튜바, 팀파니, 스네어드럼, 심벌즈, 징, 첼레스타, 하프, 현악기들로 구성된다. 연주 시간은 약 13분이다.

"Ravel's 'Boléro' I submit as the most insolent monstrosity ever perpetrated in the history of music," fumed the critic Edward Robinson in 1932. He was hardly the only music lover disparaging the piece when it was new — the composer himself informed his colleague Arthur Honegger, "I have written only one masterpiece. That is the 'Boléro'. Unfortunately, it contains no music." When told that a woman at the Paris premiere had pointed in his direction and cried out, "He is mad," Ravel smiled, and said that she truly understood the work.

“나는 라벨의 ‘볼레로’를 음악사에서 저질러진 가장 무자비한 괴물로 말한다.” 1932년에 평론가 에드워드 로빈슨이 이렇게 씩씩거렸다. 그가 이 곡이 새로 나왔을 때 폄하하는 유일한 음악 애호가는 아니었다. - 작곡가는 자신의 동료 아르튀르 오네게르에게 다음과 같이 알렸다. “나는 유일한 걸작을 썼다네. 그건 ‘볼레로’야. 유감스럽게도 음악은 없어.” 파리 초연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지휘를 가리켜 “저 사람 미쳤어”라고 외치는 것을 들었을 때, 라벨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가 진정으로 이 작품을 이해했다고 말했다.

Despite critical misgivings, however, the public, always the ultimate arbiter, made "Boléro" one of the most popular pieces of concert music written in the 20th century. Within weeks of its American premiere, it carried Ravel's name and music to more ears than had any of his other works of the preceding four decades: virtually every major American orchestra scheduled "Boléro" for immediate performance; six recordings appeared simultaneously; the melody was arranged for jazz bands and just about every conceivable instrument and ensemble, including solo harmonica; it appeared in a Broadway revue and a cabaret; it served as background music for the 1934 film of the same name starring Carole Lombard and George Raft, as well as another Hollywood effort of more recent vintage in which Dudley Moore pursued a beautiful fantasy on a beach in Mexico. Even the city fathers of Ravel's hometown were moved to name the street on which he was born in his honor. Soon after the Paris orchestral premiere in 1930, Ravel was in Monte Carlo with the conductor Paul Paray. When they walked past the Casino, Paray suggested, "Let's go in and play." Ravel replied, "No. I have played, and I don't play any more. I have won." Indeed he had.

그러나 비판적인 의혹이 있었음에도, 항상 궁극적인 결정자인 대중은 <볼레로>를 20세기에 작곡된 가장 인기 있는 콘서트 음악 중 하나로 만들었다. 미국 초연 후 몇 주 안에 라벨의 음악을 이전의 40년간 만들어진 자신의 다른 작품들보다 더 많이 들리게 했다. - 미국의 거의 모든 주요 오케스트라가 즉시 <볼레로> 연주 일정을 잡았다. - 6개의 녹음이 동시에 나타났다. - 멜로디는 하모니카 독주를 포함하여 재즈 밴드, 거의 모든 상상할 수 있는 악기와 앙상블을 위해 편곡되었다. - 브로드웨이 시사 풍자극과 카바레에 등장했다. - 캐럴 롬바드와 조지 래프트 주연의 동명 영화 <볼레로>(1943)에서의 배경음악뿐만 아니라, 더들리 무어가 멕시코의 해변에서 아름다운 환상을 추구했던 영화 <10>(1979)에서 가장 최근의 빈티지에 대한 할리우드의 시도로도 쓰였다. 라벨의 고향에 있는 시 행정 담당자들조차도 그를 위해 출생지에 있는 거리의 이름을 바꿨다. 1930년에 파리 오케스트라 초연 직후, 라벨은 지휘자 폴 파레와 함께 몬테카를로에 있었다. 카지노를 지나가면서 파레는 “들어가서 연주하자”고 제안했다. 라벨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이미) 연주했고, 더 이상 연주하지 않거든요. 제가 이겼군요.” 실제로 그가 이겼다.

Ravel originated what he once called his "danse lascive" at the suggestion of Ida Rubinstein, the famed ballerina who also inspired works from Debussy, Honegger and Stravinsky. Rubinstein's balletic interpretation of "Boléro", set in a rustic Spanish tavern, portrayed a voluptuous dancer whose stomps and whirls atop a table incite the men in the bar to mounting fervor. With growing intensity, they join in her dance until, in a brilliant coup de théâtre, knives are drawn and violence flares on stage at the moment near the end where the music modulates, breathtakingly, from the key of C to the key of E. So viscerally stirring was the combination of the powerful music and the ballerina's suggestive dancing at the premiere that a near-riot ensued between audience and performers, and Miss Rubinstein narrowly escaped injury. The usually reserved Pitts Sanborn reported that the American premiere, conducted by Arturo Toscanini at Carnegie Hall on November 14, 1929, had a similar effect on its hearers: "If it had been the custom to repeat a number at a symphonic concert, 'Boléro' would surely have been encored, even at the risk of mass wreckage of the nerves."

라벨은 드뷔시, 오네게르, 스트라빈스키의 작품들에도 영감을 주었던 유명한 발레리나 이다 루빈스타인의 제안으로 자신이 한때 “외설적인 춤”으로 불렀던 것을 고안했다. 스페인 시골의 한 선술집에서 시작된 <볼레로>에 대한 이다 루빈스타인의 발레리나처럼 우아한 해석은 테이블 위에서 발을 쿵쿵거리며 빙그르르 돌면서 술집에 있는 남자들을 열광적으로 불러들이는 관능적인 무용수를 묘사했다. 강도가 높아짐에 따라, 그들은 화려하게 급전환하여 음악이 C조에서 E조로 기막히게 조바꿈하는 끝나가는 순간에, 무대에서 칼이 뽑히고 폭력이 심해질 때까지 그녀의 춤에 합류한다. 따라서 청중과 공연자들 사이에서 거의 폭동을 일으켜서 이다 루빈스타인이 가까스로 부상을 모면한 초연에서 강력한 음악과 발레리나의 도발적인 춤의 결합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보통 (자기의 감정이나 의견 등에 대해) 말을 잘 하지 않는 음악 평론가 피츠 샌본은 1929년 11월 14일 카네기홀에서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지휘한 미국 초연이 그 청중에 비슷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했다. “교향악 콘서트에서 곡목을 반복하는 것이 관례라면, ‘볼레로’는 신경이 많이 망가질 위험이 있을 때에도 반드시 앙코르로 연주되었을 것이다.”

Of the musical nature of this magnificent study in hypnotic rhythm and orchestral sonority, Ravel wrote in 1931 to the critic M.D. Calvocoressi, "I am particularly desirous that there should be no misunderstanding about this work. It constitutes an experiment in a very special and limited direction, and should not be suspected of aiming at achieving anything different from or anything more than it actually does achieve. Before its first performance, I issued a warning to the effect that what I had written was a piece lasting about seventeen minutes and consisting wholly of 'orchestral tissue without music' — of one long, very gradual crescendo. There are no contrasts, there is practically no invention except the plan and the manner of execution. The themes are altogether impersonal … folktunes of the usual Spanish-Arabian kind, and (whatever may have been said to the contrary) the orchestral writing is simple and straightforward throughout, without the slightest attempt at virtuosity…. I have carried out exactly what I intended, and it is for listeners to take it or leave it." Take it, listeners have.

최면을 거는 듯한 리듬과 오케스트라 울림을 다룬 이 성대한 연구의 음악적 특성에 대해 라벨은 1931년 비평가 미셸-디미트리 칼보코레시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저는 이 작품에 대한 오해가 없어야 한다는 것을 특히 바랍니다. 이 곡은 매우 특별하고 제한된 방향으로 실험을 구성하며, 실제로 달성하는 것과 다른 형식이나 뭔가를 달성하는 것을 겨냥하여 의심받아서는 안 됩니다. 첫 공연 전에, 저는 제가 쓴 것이 약 17분 동안 지속되면서도 전적으로 ‘음악이 없는 오케스트라 조직’으로 구성된 곡이라는 효과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 하나의 길면서도 정말 서서히 일어나는 크레셴도가 있죠. 대비되는 부분이 없으며, 계획과 실행 방식을 제외하고는 실제로 만들어진 게 없습니다. 주제가 모두 인간미라곤 없고 … 일종의 평범한 스페인-아라비아 민속음악이며, (전혀 대비되는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관현악 작곡은 기교면에서 최소한의 시도도 없이 전체적으로 정말 간단해요…. 저는 제가 의도한 것을 정확히 수행했으며, 받아들이든 말든 청취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잘 들으세요.

리처드 E. 로다 박사 글 / 눈사람 번역




2020년 조성진의 여섯 번째 공연. 프로그램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전체를 다 들었다. 2부에서 3분 47초~24분 15초, 26분 24초~28분 8초를 편집했다. 언제 연주한 것을 중계한 것인지 정확한 날짜를 찾다가 프로그램 노트를 알게 되었다. 번역을 안 하려다가 음반 내지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임했다. 음반 내지보다는 번역이 더 어려웠는데 프로그램 노트에는 저자의 의견이 일부 반영되기도 한다. 내 자신이 좀 부끄러웠는데 버르토크의 음악만 들을 줄 알았지 비애를 모르고 있었다니...... 내용이 너무 난이도 상급 수준인데 나는 이 정도 수준의 깊이를 굳이 바라지 않는다. 솔직히 굳이 취하고 싶은 정보는 아니었지만 곡에 대한 정보를 알아나가는 차원에서. 번역하면서 프로그램 노트를 정리하신 박사님에게서 많이 배웠지만 너무 어렵게 글을 쓰셨다. 음악 공부의 가방끈이 짧아서 그런지 이런 고급 정보에는 한계를 느끼곤 한다. (내가 번역에 애먹은 이유는 음반 내지 번역을 안 한지 한 달이 넘었으므로 감이 떨어져서 그런 것도 있다.) 새해 벽두부터 조성진의 리뷰뿐만 아니라 인터뷰도 번역하지 않는다고 큰소리쳤는데 그래도 인터뷰는 번역하는 변덕을 부렸다. 어떤 작품에 대해 연주자마다 제각각 다른 견해를 들여다보는 걸 즐기다 보니 나도 모르게 고분고분 모드가 되었다. 푸힛!

유튜브로 들으면서 자막을 받아쓰기한 다음 외국 분한테 다듬는 것을 부탁했다. 내 글들을 허락도 없이 퍼간 사람이 유튜브 영어 자막을 퍼가는 건 괜찮다. 하지만 번역은 본인이 알아서 하라고!!!!! (누군가가 유튜브 댓글로 번역본을 올려줬으니 그걸 보면 된다.) 조성진의 연주에 대한 리뷰가 올해에도 꾸준히 올라오고 있는데 안 들여다보고 있다. 관심이 없다는 의미. 리뷰를 들여다보는 경우가 있다면 그건 앙코르곡이 뭔지 찾는 것 말곤 없다. 프로그램 노트 번역은 3일이 걸렸는데 하루에 한 곡씩 했다. 쉬운 문장이 별로 없어서 하루에 4~5시간 소요했다. 이렇게 공치사를 해야 그 사람은 내가 얼마나 번역에 공을 들이는지 아나보다. 남의 노력을 훔친 사람과는 올해 열리는 쇼팽 콩쿠르 후기를 달릴 수 없게 되었다. 내 블로그를 보면서 공부하는 것까진 좋은데 정보를 취하는 방식이 잘못되었다. 저 사람은 외국 연주자들을 팬질하고 싶고 이제 조성진의 리뷰 번역은 힘들어서 안 하나보다, 이제 음원만 제공하나보다 이렇게 생각하면 간단한데 그 사람은 평론가들의 리뷰에 미련이 있는 사람이라 다른 것 다 안 하고 조성진에 대해서는 음원만 제공해주겠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나보다. 그것에 대해선 평생 이해해줄 테니 오려면 와봐! 신나게 외국인 편을 들어줄 테니. 어차피 내 블로그는 해외 연주자들 위주이고 내 후기 열심히 들여다봐봤자 우리나라 참가자를 응원할 가능성이 0에 수렴하므로 딴 데로 가서 놀면 된다. 외국 연주자들 팬질하면서 어떤 실황이 구해지는지 파악해서 그걸 조성진에 적용해주겠다는 걸로는 만족이 안 되는 사람이니 할 수 없지~ 그 사람이 아무리 내 성향에 대해서 관대하라고 해도 우리나라 참가자를 응원하는 입장이라, 대놓고 외국인 편드는 사람의 블로그에 놀러 와서 지내기는 좀 불편했을 거야...

조성진이 이번에도 영어 문법이 틀렸는데 look forward to ~ing 이렇게 해야 맞다. 전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동사원형으로 써서 내가 알아서 고친 다음 외국 분한테 수정을 부탁했다. 틀리기 쉬운 것들 중 하나. 잘 들리지 않는 단어는 한글 번역을 토대로 어떤 단어인지 알아내기도 했다. 유튜버의 번역은 요한 슈트라우스라고 나와 있는데 이것에 대해서 외국 분이랑 얘기했다. 그분도 교향시라는 대목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옳다고 하셨다. 이게 의아했던 이유는 조성진이 요한 슈트라우스를 언급한 적이 없었거니와 괴르네랑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가곡을 맞춰봤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노트 정리하고 나서 유튜브 자막을 받아 적었는데 외국 분한테 보내서 수정본을 전달받기까지 이틀 소요되었다. 내가 번역하기까지는 1시간 걸렸다. 그분이 내가 보낸 자막이 거의 다 맞았다고 하셨다. 푸히히히히~~ 검토해보니 거의 다 맞았지만 대부분 무식하게 막 받아 적다보니 쉼표, 마침표 쓰는 것에 있어서는 안 맞았다.

2020년 2월 7일 금요일

Hamamatsu Competition Prizewinners' Gala Concert in Tokyo (21 May 2019)




2019년 5월 21일 18시 45분 하마마쓰 콩쿠르 입상자 갈라 콘서트
Kioi Hall in Tokyo / 도쿄 기오이 홀

Program
Bartok: Out of doors, Sz. 81 / 버르토크 <문 밖에서> 발췌
I. With Drums & Pipes
II. Barcarolla
IV. The Night's Music
V. Chase

Dohnányi 4 Rhapsodies, Op. 11 No. 1 in g / 도흐나니 랩소디 작품 11-1

... 6위 Takashi Yasunami / 다카시 야스나미


Debussy Preludes, Book 2 No. 6 General Lavine - eccentric / 드뷔시 전주곡 2권 6번 <괴짜 라빈 장군>

Debussy Preludes, Book 2 No. 12: Feux d'artifice / 드뷔시 전주곡 2권 12번 <불꽃>

Chopin Ballade No. 4 in f, Op. 52 / 쇼팽 발라드 4번

... 5위 Keigo Mukawa / 게이고 무카와


Chopin Sonata No. 2 in b flat, Op. 35 / 쇼팽 소나타 2번
I. Grave - Doppio movimento
II. Scherzo
III. Marche funebre. Lento
IV. Finale. Presto

... 4위 Atsushi Imada / 아쓰시 이마다


Stravinsky 3 Movements from Petrushka / 스트라빈스키 <페트루슈카에 의한 3개의 악장>
I. Danse russe / 러시아의 춤
II. Chez Pétrouchka / 페트루슈카의 방
III. La semaine grasse / 사육제의 시장

... 3위 Lee Hyuk / 이혁


Bach English Suite No. 6 in d, BWV 811 / 바흐 영국 모음곡 6번
I. Prélude / 프렐류드
II. Allemande / 알르망드
III. Courante / 쿠랑트
IV. Sarabande / 사라방드
V. Double / 더블
VI. Gavotte I & II (Musette) / 가보트
VII. Gigue / 지그

Mendelssohn Fantasie f#, Op. 28 "Sonate écossaise" / 멘델스존 환상곡 <스코틀랜드 소나타>
I. Con moto agitato - Andante - Con moto agitato
II. Allegro con moto
III. Presto

... 1위 Can Çakmur / 잔 차크무르




2위 도모하루 우시다는 일정의 사정에 따라 출연하지 않았다. 차크무르의 지난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넣었던 공연으로 차크무르가 유튜브에 자신의 연주를 따로 올려서 받아뒀는데 어떻게 할까 하다가 따로 정리했다. 이혁도 자신의 유튜브 채널이 있다. 이혁의 연주도 있으면 링크를 걸려고 했는데 없다. 차크무르가 지난달에 터키에서 클래식 음반상을 받았는데 파이널리스트 3인 중에서 어떻게든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푸히히~ 결국 디나 우고르스카야의 음반과 공동 수상했다. 성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피아니스트 아나톨 우고르스키의 딸. 하지만 작년 9월에 암으로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슈베르트 음반은 마지막 녹음이 되었다. 차크무르가 기쁨의 소감과 함께 디나를 추모하는 글을 자신의 사이트에 올렸다. 10월이 되면 차크무르를 만나러 바르샤바로 향한다. 쇼팽 콩쿠르에서 받았으면 하는 상이 있다면 협주곡 특별상과 폴로네즈 특별상. (마주르카 특별상은 이번에도 3위가 가져갈 것 같아서.) 나한테서 이혁 프로필이랑 하마마쓰 보고서를 포함하여 몇몇 번역본들을 훔쳐간 사람이 그때가 되면 내 후기가 어떤지 보려고 하는 모양인데(나한테 내 블로그에 올 수도 있다고 말했는데) 난 신나게 유럽을 편들 거니깐 와봤자 의미가 없다. 그 사람도 내가 싸늘해졌다는 걸 느낄 것이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차크무르가 큰 대회에서 우승할 시 분명히 내가 번역한 것들을 퍼갈 게 뻔한 사람이니 차갑게 대할 수밖에. 하마마쓰 콩쿠르 관련 기사라고 제목을 붙여놓고 내 번역본들을 영어 일어 빼고 한글만 쏙 복사해서 올린 사람이니까. 원문의 출처는 밝히면서 번역한 사람의 출처는 밝히지 않았다. 훔쳐간 번역본으로 조회 수라도 올렸나? 내가 검색만 허용하지 않았을 뿐 버젓이 공개로 올린 글들을 얌체같이 본인 블로그에 올리는 짓에 대해 뭐라고 지적하지 않으면 지금도 멈추지 못했을 것. 내가 강제로 멈추게 하니깐 그제야 느꼈나봐... 그 사람의 이웃 커넥션을 보니 다행히 내 블로그 독자는 두세 명 남짓이다. 내 시간과 노력과 정성을 들인 번역본들을 퍼간 사람이 누군지 아는 사람들은 몇 안 될 것 같다. 아무튼 그 사람은 우리나라 참가자들을 응원하면 되고 그런 커뮤니티로 가서 놀면 된다. 난 그렇게 하다간 병난다. 맘이 가는 사람을 쫓든지 해야지 우리나라라고 겉으로 마지못해 편들다가 그런 걸로 괜히 끙끙 앓고 싶지 않다. 나랑 이웃 끊기고 나서 정신을 좀 차린 것 같은데 내가 차크무르에 대해서 챙기는 것들을 넘보지 마!!!!!

Charles Richard-Hamelin Recital at Gilmore Keyboard Festival (10 November 2019)



샤를 리샤르-아믈랭 리사이틀 - 2019년 11월 10일 16시 길모어 키보드 페스티벌
Wellspring Theater in Kalamazoo, Michigan / 미시건 주 캘러머주 시 웰스프링 극장
The Gilmore Rising Star Series / 길모어 라이징 스타 시리즈

Program
Rachmaninov Morceaux de Fantaisie, Op. 3 / 라흐마니노프 <환상적 소품>
I. Élégie / 비가
II. Prélude / 전주곡 <모스크바의 종>
III. Mélodie / 멜로디
IV. Polichinelle / 광대
V. Sérénade / 세레나데

Prokofiev Sonata No. 4 in c, Op. 29 / 프로코피에프 소나타 4번
I. Allegro molto sostenuto
II. Andante assai
III. Allegro con brio, ma non leggiere

Intermission

Chopin Nocturne No. 20 in c#, Op. posth. / 쇼팽 녹턴 20번

Chopin Impromptu No. 1 in Ab, Op. 29 / 쇼팽 즉흥곡 1번

Chopin Ballade No. 1 in g, Op. 23 / 쇼팽 발라드 1번

Chopin Andante spianato & Grande Polonaise in Eb, Op. 22 / 쇼팽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대 폴로네즈>

Encore
J.S. Bach/Alfred Cortot Harpsichord Concerto No. 5 in f, BWV 1056: II. Largo (Arioso) / 바흐 하프시코드 협주곡 5번 2악장 아리오소 (알프레드 코르토 편곡)

리샤르-아믈랭의 지난 이야기를 정리하다가 알게 된 연주. 유튜브에서 보고 나서 가지고 있진 않다.

2020년 2월 4일 화요일

Seong-Jin Cho & Radosław Szulc at the Rheingau Festival at the Kurhaus Wiesbaden (29 August 2019)



2019년 8월 29일 20시 비스바덴 쿠르하우스 라인가우 페스티발
Seong-Jin Cho, piano / 조성진, 피아노
Chamber Orchestra of the Bavarian Broadcast (Kammerorchester Des Bayerischen Rundfunks) / 바이에른 방송 실내 오케스트라
Radosław Szulc, violin & musical direction / 라도스와프 슐츠, 바이올린 및 지휘
2020년 2월 2일 21시 Deutschlandfunk 녹음 중계
[46]

Program
Grieg "From Holberg's Time" Suite in olden style, Op. 40 "Holberg Suite" / 그리그 <홀베르그 모음곡>
I. Praeludium / 프렐류드
II. Sarabande / 사라방드
III. Gavotte / 가보트
IV. Air / 아리아
V. Rigaudon / 리고동

Chopin Piano Concerto No. 1 in e, Op. 11 /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I. Allegro maestoso
II. Romance. Larghetto
III. Rondo. Vivace

Chopin Piano Concerto No. 2 in f, Op. 21 /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I. Maestoso
II. Larghetto
III. Allegro vivace

Encores
Brahms 6 Klavierstücke, Op. 118 No. 2 in A: Intermezzo. Andante teneramente / 브람스 6개의 피아노 소품 작품 118-2
Chopin Mazurka in b, Op. 33 No. 4 / 쇼팽 마주르카 작품 33-4


조성진이 라인가우를 재방문했다. 라인가우 페스티발은 다른 연주자들의 녹음을 몇 번 구한 적이 있어서 조성진에 대해서 구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인데 계속 안 구해지다가 이제 구해졌다.

2020년 2월 2일 일요일

Yulianna Avdeeva Recital at Tokyo Opera City Concert Hall (19 February 2019)


https://www.youtube.com/watch?v=7MQPwsAVtks&feature=emb_logo

율리아나 아브제예바 리사이틀 - 2019년 2월 19일 도쿄 오페라 시티 콘서트홀

Program
Chopin 3 Mazurkas, Op. 59 / 쇼팽 3개의 마주르카 작품 59
No. 1 in a
No. 2 in Ab
No. 3 in f#

Chopin Piano Sonata No. 3 in b, Op. 58 / 쇼팽 소나타 3번
I. Allegro maestoso
II. Scherzo. Molto vivace
III. Largo
IV. Finale. Presto non tanto - Agitato

Intermission

Schumann Fantasiestücke, Op. 12 / 슈만 환상소곡집
I. Das Abends / 석양
II. Aufschwung / 비상
III. Warum? / 어찌하여
IV. Grillen / 변덕
V. In der Nacht / 밤에
VI. Fabel / 우화
VII. Traumes-Wirren / 꿈의 얽힘
VIII. Ende vom Lied / 노래의 종말

Schubert Fantasie in C, Op. 15 (D. 760) "Wanderer" /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
I. Allegro con fuoco ma non troppo
II. Adagio
III. Presto
IV. Allegro

Encores
Schubert Moment Musical in f, D. 780 No. 3 / 슈베르트 <악흥의 한때> 3번
Bach English Suite No. 2 in a, BWV 807: V. Bourrée I-II / 바흐 영국 모음곡 2번 중 부레
Chopin Mazurka in f, Op. 7 No. 3 / 쇼팽 마주르카 작품 7-3

율리아나의 쇼팽 터치는 여전히 무겁다. 뭔가 쥐어짜는 것처럼 보여서. 그런데 가슴 깊이 자극한다. 음... 그런 게 유태계 연주자들의 특징? 세 번째 마주르카에서는 루바토가 절묘하다. 율리아나의 프로그램이 예뻐서 꼭 내한하면 보고 싶었는데 결국 오지 않았지만 이렇게 동영상으로라도 보게 되었다. 쇼팽 콩쿠르에서는 2번 소나타를 연주했는데 이번에는 3번을 보게 되었다. 2010년이 지나고 2015년도 지났는데 언제 내 맘에라도 들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2020년이 되기 전에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율리아나가 잘 하는 게 어두운 감정의 표현. 나를 자꾸 심연으로 내몬다.

Google Drive / 2024. 04. Concours International de Piano “Adilia Alieva”

프랑스의 아딜리아 알리예바 국제피아노콩쿠르는 아제르바이잔 피아니스트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대회이다. 2014년까지 가야르에서 열리다가 2016년부터 안마스에서 열린다. 제3회 2002 Gaillard 비르투오시티 특별상 Ekaterina Avdee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