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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8일 수요일

Melodiya / Samuil Feinberg - Russian Piano School, Vol. 3



19세기 후반 모스크바 음악원의 피아노 악파는 두 개의 큰 지류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두 지류는 모두 베토벤에서 발원하여 그의 제자 체르니를 경유하는 흐름이었다. 그중의 하나는 체르니의 가장 뛰어난 제자였던 테오도르 레셰티츠키의 문하에서 배운 바실리 사포노프의 피아노 클래스로 요제프 레빈, 레오니드 니콜라예프, 또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스크리아빈과 메트너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악파는 체르니의 제자였던 안톤 도르에게 배운 파벨 파브스트의 피아노 클래스로 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였던 세르게이 리아푸노프와 명 피아니스트이자 탁월한 교사였던 알렉산더 골덴바이저 등이 이에 속한다.

그 외 체르니에게서 배운 명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질로티의 클래스도 이 음악원의 전통을 말해주는 유명한 것이었으나 앞의 두 악파만큼 주도적이지는 못했다.

가장 뛰어난 표현력을 지닌 피아니스트 중의 한 사람으로, 또 탁월한 피아노 교수로 20세기 전반의 러시아 피아노 음악계를 이끌었던 거장 사무일 파인베르크는 1890년 5월 26일 오데사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그가 네 살이 되던 해에 모스크바로 이주했는데, 그의 첫 스승이었던 옌센(A. F. Jensen)은 그에게 피아노뿐만 아니라 작곡 공부까지도 함께 하기를 권했다. 재능이 비상했던 파인베르크는 얼마 후에는 모스크바 필하모닉 협회의 골덴바이저 피아노 클래스에 입학이 허가되었고 1903년부터는 그의 문하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1년 후에는 다시 모스크바 음악원의 골덴바이저의 마스터클래스로 옮겨서 본격적으로 그의 지도를 받았다. 파인베르크의 음악에 대한 생각과 접근 태도는 헨델, 모차르트, 프랑크의 피아노곡과, 바로 그 무렵에 작곡이 완료되었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을 연주했던 1911년의 그의 졸업 연주회 프로그램에서도 잘 나타나 있듯이 대단히 아카데믹한 것이었는데, 그는 그 연주회의 공식 프로그램이 모두 끝난 그날 늦게 바흐의 두 권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모두를 연주했다고 한다. 그는 피아니스트로서 대단히 순수한 정열을 지닌 사람이어서 스크리아빈의 10개의 피아노 소나타와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보리스 시보르와 더불어) 이틀 밤 동안에 모두 연주한 일도 있었고, 현대음악의 발전에도 관심이 많아 프로코피에프의 제3번 피아노 협주곡을 러시아 청중들에게 최초로 소개하기도 했다. 프로코피에프는 어느 날 미야스코프스키에게 그 당시에는 전혀 연주되지 않던 그의 피아노 소나타 제5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만약 파인베르크가 이 곡을 연주한다면 그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처럼 피아니스트로 큰 명망을 얻은 파인베르크는 그의 나이 32세 때인 1922년에는 모교인 모스크바 음악원의 피아노과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1962년 그가 사망할 때까지 약 40년간을 재직하면서 많은 훌륭한 제자들을 육성해내기도 했다. 파인베르크의 바흐에 대한 열정은 평생을 두고 계속되었고, 1929년에는 바흐의 프로그램만으로 독일 전역을 연주여행하기도 했다. 또 1938년에는 브뤼셀의 이자이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초대되어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에밀 폰 자우어, 로베르 카사드쉬, 발터 기제킹 등과 한 자리에 앉기도 했다. 파인베르크의 마지막 공개 연주회는 1956년 4월 3일에 있었지만 스튜디오에서의 레코딩은 거의 마지막 순간인 1962년 9월까지도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불과 한 달 후인 1962년 10월 22일 72세를 일기로 예술가로서, 또 교사로서의 긴 생애를 마감했다.

연주자로서 파인베르크의 레퍼토리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에서부터 베토벤의 32개의 피아노 소나타와 협주곡 제4, 5번, 또 차이코프스키, 메트너, 미야스코프스키, 스크리아빈, 프로코피에프 등 러시아 작곡가들의 피아노곡들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다양했는데, 그의 연주기풍은 아카데믹하면서도 또한 매우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것이었다. 파인베르크의 레가토는 부드럽지만 풍부한 양감을 지니고 있었고, 그의 핑거링은 지극히 맑고 섬세하면서도 빈틈없는 울림을 만들어냈다. 또 그의 연주는 항상 전체를 조망하는 놀라운 조형감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 전개는 언제나 내적 긴장감과 정열을 잃지 않았다.

바흐 연주가로서의 파인베르크의 업적은 에트빈 피셔의 그것과 비교될 수 있는 거의 선구적인 것이었다. 그는 러시아 피아니스트로는 최초로 연주회 프로그램에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전체를 끌어들였던 피아니스트였고, 또 이 위대한 음악을 파인베르크보다 먼저 녹음했던 사람 또한 에트빈 피셔 이외에는 없었다. 파인베르크의 평균율은 피셔의 깊고 내면적인 연주와 리히터나 굴드의 기능적이고 개성적인 연주의 중간에 위치한 명연으로 전체적인 조화와 균형감이 탁월하고 음악적 흐름이 유창하며 형식적인 아름다움도 빼어나다.

이 음반에는 바흐의 코랄 “높은 곳에 계신 하느님께 영광을”(Allein Gott in der Hoh sei Ehr)의 3개의 다른 판(version)을 사용한 4개의 녹음이 수록되어 있다. BWV 662의 라이프치히 판은 4성부 코랄 전주곡으로 강림절 코랄인 “주께서 이제 오시도다”(Nun Komm, der Heiden Heiland)의 여러 판들과 함께 피아노 편곡판으로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데, 느리게 움직이는 베이스 라인과 소프라노 파트의 풍부한 장식음을 단 코랄 선율의 인상적인 노래가 계속된다.

1952년에 녹음된 제1판(Track 3)과 파인베르크가 죽기 불과 한 달 전에 녹음된 1962년의 제2판(Track 4)은 이 피아니스트의 전혀 다른 면을 조감해주고 있는데, 노래의 로맨틱한 장식이 강조된 자연스러운 1952년의 녹음에 비해 나중의 녹음은 거의 초월적인 정신세계를 들려주고 있다.

BWV 711의 코랄은 요한 베른하르트 바흐의 작품이라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 곡은 2성부의 독특한 톤을 지닌 코랄로 페달의 사용이 전혀 없이 연주된다. 꾸밈음이 전혀 없는 소프라노의 강렬한 노래와 짧은 음들로 이루어진 베이스의 재빠른 움직임으로 이루어진 이 곡을 파인베르크는 화려하고 현란하게 더욱이 옥타브를 높여서 연주해내고 있다.

트리오 소나타 C장조 BWV 529의 제2악장 라르고는 주조인 C장조의 관계단조인 A단조로 되어 있는데, 현란하게 장식된 소프라노와 알토 사이의 뜨거운 대화와 지나칠 정도로 확고한 베이스 파트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곡은 원래 바흐가 페달 하프시코드(오르가니스트의 연습용 악기로서 페달이 있는 하프시코드)를 위해 작곡한 6곡의 소나타에 포함된 것인데, 그의 장남 프리데만이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것이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K. 282는 그의 최초의 6곡의 소나타 중의 한 곡으로 1774년 잘츠부르크에서 작곡된 것이다. 이 곡은 일반적인 템포의 패턴으로부터 탈피한 최초의 곡으로 느리고 인상적인 아다지오 서주로 시작한다. 이어지는 제2악장은 미뉴에트이고, 마지막 악장 알레그로는 독특하게 이 소나타에서 유일한 소나타 형식의 악장이다.

K. 576의 소나타는 모차르트의 19개의 피아노 소나타 중에서 마지막 작품으로 음악 애호가였던 프러시아의 왕녀를 위해 위촉받은 일련의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완성된 것으로 1789년의 작품이다. 모차르트의 관심은 이제 그의 마지막 협주곡과 교향곡, 그리고 오페라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프러시아의 수도로 가던 중 대바흐에게 경의를 표시하기 위해서 라이프치히에 멈춰 섰는데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이 연주하는 바흐의 모테트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이 소나타의 제1악장에 남아있다. 이 곡의 아다지오는 보다 서정적인 품격을 지닌 것으로 그 인상적인 첫 부분은 얼마 후에 작곡될 매혹적인 클라리넷 5중주의 제2악장의 첫머리로 옮아간다.

제3악장은 론도 형식과 소나타 형식이 복합된 론도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다.

또 함께 수록된 환상곡과 푸가 K. 394나 K. 500의 변주곡도 모차르트 음악의 가장 순수한 특징을 지닌 곡들이다.

Track
01 Bach/Feinberg: Largo from Sonata No. 5 in C, BWV 529/2 / 바흐 오르간 소나타 5번 2악장 (파인베르크 편곡)
02 Bach/Feinberg Chorale-Prelude: Allein Gott in der Hoh sei Ehr, BWV 711 / 바흐 코랄 프렐류드 <높은 곳에 계신 하느님께 영광을> BWV 711 (파인베르크 편곡)
03 Bach/Feinberg Chorale-Prelude: Allein Gott in der Hoh sei Ehr, BWV 662 from 'Leipzig' Chorales (1. Version 1952) / 바흐 코랄 프렐류드 <라이프치히 코랄> 1952년 버전 <높은 곳에 계신 하느님께 영광을> BWV 662 (파인베르크 편곡)
04 Bach/Feinberg Chorale-Prelude: Allein Gott in der Hoh sei Ehr, BWV 662 from 'Leipzig' Chorales (2. Version 1962) / 바흐 코랄 프렐류드 <라이프치히 코랄> 1962년 버전 <높은 곳에 계신 하느님께 영광을> BWV 662 (파인베르크 편곡)
05 Bach/Feinberg Chorale-Prelude: Wer nur den lieben Gott lasst walten, BWV 647 from 'Schubler' Chorales / 바흐 코랄 프렐류드 <쉬블러 코랄> 중 <주의 손길 받아들이는 자> BWV 647
06 Bach/Feinberg Chorale-Prelude: Allein Gott in der Hoh sei Ehr, BWV 663 from 'Leipzig' Chorales / 바흐 코랄 프렐류드 <라이프치히 코랄> 중 <높은 곳에 계신 하느님께 영광을> BWV 663 (파인베르크 편곡)
07 Mozart Sonata in Eb, K. 282: 1. Adagio / 모차르트 소나타 4번
08 Mozart Sonata in Eb, K. 282: 2. Menuetto
09 Mozart Sonata in Eb, K. 282: 3. Allegro
10 Mozart Sonata in D, K. 576: 1. Allegro / 모차르트 소나타 18번
11 Mozart Sonata in D, K. 576: 2. Adagio
12 Mozart Sonata in D, K. 576: 3. Allegretto
13 Mozart Fantasia & Fugue in C, K. 394 / 모차르트 환상곡과 푸가 K. 394
14 Mozart 12 Variations on an Allegretto in Bb, K. 500 / 모차르트 알레그레토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K. 500

Samuil Yevgenyevich Feinberg (1890-1962) / 사무일 예프게니에비치 파인베르크
During the last half of the 19th century there were two major schools of piano-playing at the Moscow Conservatory, both of which could be traced back to Beethoven via Karl Czerny (1791-1857). The first was founded by Vassili Safonov (1852-1918), who had studied with Czerny's master pupil, Theodor Leschetizky (1830-1915). Safonov was the teacher of the pianists Josef Lhevinne and Leonid Nikolayev and of the composer-pianists Scriabin and Medtner. The standard-bearer of the second school was Pavel Pabst (1854-97). Trained by Czerny's pupil Anton Door (1833-1919), he counted the composer-pianist Sergei Liapunov and the "pianist-maker" Alexander Goldenweiser among his proteges. One of Goldenweiser's early brilliant pupils was Samuil Feinberg. Another line of pianistic "ancestry" was also traceable to Czerny via Siloti and Liszt.

19세기 후반 모스크바 음악원의 피아노 악파는 두 개의 큰 지류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두 지류는 모두 베토벤에서 발원하여 그의 제자 체르니(1791~1857)를 경유하는 흐름이었다. 그중의 하나는 체르니의 가장 뛰어난 제자였던 테오도르 레셰티츠키의 문하에서 배운 바실리 사포노프(1852~1918)의 피아노 클래스로 요제프 레빈, 레오니드 니콜라예프, 또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스크리아빈과 메트너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악파는 체르니의 제자였던 안톤 도르(1833~1919)에게 배운 파벨 파브스트(1854~97)의 피아노 클래스로 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였던 세르게이 리아푸노프와 명 피아니스트이자 탁월한 교사였던 알렉산더 골덴바이저 등이 이에 속한다. 골덴바이저의 초기의 뛰어난 제자들 중의 한 명이 사무일 파인베르크였다. 또 다른 피아니스트의 “계보”에 속한 질로티와 리스트도 체르니를 통한다.

Of Ukrainian stock like Richter and Gilels, Feinberg was born in Odessa on 26 May (old style 14 May) 1890. Four years later his family moved to Moscow. His first teacher, Alexander F. Jensen, encouraged him to study composition as well as piano. As a result, he showed such promise that Goldenweiser admitted him to his piano class at the Moscow Philharmonic Society and, one year later, to his master class at the Conservatory (the examinations took place in 1911). Feinberg's aesthetic approach can be gauged from his graduation programme, which featured works by Handel, Mozart and Franck, and the just completed Piano Concerto No.3 by Rachmaninov. Having finished his official programme, he went on to play both sets of J. S. Bach's Well-tempered Clavier later in the day. As a pianist he acquired a reputation for sheer stamina, repeatedly playing all of Scriabin's ten sonatas and - together with Boris Sibor - Beethoven's complete violin sonatas on two evenings. He also did much to promote contemporary music, introducing Prokofiev's third concerto to the Russian public. Prokofiev once told Myaskovsky, referring to his Sonata No.5, which had not yet been performed at the time: "If Feinberg plays it, success can be taken for granted."

리히터와 길렐스처럼 우크라이나 출신인 그는 1890년 5월 26일(구력으로는 5월 14일) 오데사에서 태어났다. 4년 후 그의 가족은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그의 첫 스승이었던 알렉산더 F. 옌센은 그에게 피아노뿐만 아니라 작곡 공부까지도 함께 하기를 권했다. 그 결과, 파인베르크는 얼마 후에는 모스크바 필하모닉 협회의 골덴바이저 피아노 클래스 입학이 허가되었고, 1년 후에는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골덴바이저의 마스터클래스(1911년 졸업 시험)로 옮겼다. 파인베르크의 음악에 대한 탐미적 접근은 헨델, 모차르트, 프랑크의 작품들과, 바로 그 무렵에 작곡이 완료되었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을 연주했던 그의 졸업 연주회 프로그램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는 그 연주회의 공식 프로그램이 모두 끝난 그날 늦게 바흐의 두 권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모두를 연주했다. 그는 피아니스트로서 대단히 순수한 정열을 지닌 사람이어서 스크리아빈 10개의 피아노 소나타와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보리스 시보르와 더불어) 이틀 밤 동안에 모두 연주한 일도 있었고, 현대음악의 발전에도 관심이 많아 프로코피에프의 제3번 피아노 협주곡을 러시아 청중들에게 최초로 소개하기도 했다. 프로코피에프는 어느 날 미야스코프스키에게 그 당시에는 전혀 연주되지 않던 그의 피아노 소나타 제5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만약 파인베르크가 이 곡을 연주한다면 그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Feinberg's fascination with Bach lasted a lifetime. Works by the cantor of St Thomas figured on the programme he assembled for his tour of Germany in 1929 (on that occasion he also made recordings for the Deutsche Grammophon label). He enjoyed such prestige that in 1938 he was chosen to serve on the jury of the Brussels Ysaye Competition alongside Artur Rubinstein, Emil von Sauer, Robert Casadesus and Walter Gieseking. Feinberg gave his final public concert on 3 April 1956, but continued to make appearances in the recording studio until September 1962. The Bach transcriptions heard on this CD are the last pieces he recorded. He died in Moscow on 22 October 1962.

파인베르크의 바흐에 대한 열정은 평생을 두고 계속되었다. 1929년에는 바흐의 프로그램(성 토마스 교회의 성가대장에 의한 작품들)만으로 독일 전역을 연주여행(그런 경우에 도이체 그라모폰 레이블에서 녹음)하기도 했다. 또 1938년에는 브뤼셀의 이자이 콩쿠르(현재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초대되어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에밀 폰 자우어, 로베르 카사드쉬, 발터 기제킹 등과 한 자리에 앉기도 했다. 파인베르크의 마지막 공개 연주회는 1956년 4월 3일에 있었지만 스튜디오에서의 레코딩은 거의 마지막 순간인 1962년 9월까지도 계속되었다. 이 음반에 수록된 바흐 편곡집이 그가 녹음한 마지막 곡들이다. 그는 1962년 10월 22일 모스크바에서 생애를 마감했다.

Sophisticated and well-educated, Feinberg was also a composer of note. His output includes three piano concertos (1931, 1944, 1947, the second concerto earning him the Soviet State Award), twelve piano sonatas (he played No.6 with great success at the Vienna Festival of Contemporary Music in 1925), two fantasias and two suites as well as romances, organ transcriptions and numerous arrangements of folk songs, among them "25 Chuvash Songs". Feinberg left an intriguing account of his experiences as a teacher and concert artist in "Pianism kak iskusstvo" (Pianism as an Art), published in Moscow in 1965.

섬세하고 교양 있는 파인베르크는 중요한 작곡가이기도 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3개의 피아노 협주곡(1931, 1944, 1947, 두 번째 협주곡은 소비에트 연방상 수상), 12개의 피아노 소나타(1925년 비엔나 현대음악제에서 소나타 6번을 연주하여 대성공), 2개의 환상곡과 2개의 모음곡, 로망스, 오르간 편곡집, <25개의 추바시 노래들> 같은 민속음악의 다수 편곡이 포함된다. (추바시 족은 러시아 볼가 강 중류 연안에 사는 터키어계 소수 민족이다.) 파인베르크는 1965년 모스크바에서 출판된 <예술로서의 피아니즘>에서 교육자이자 콘서트 아티스트로서의 그의 경험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남겼다.

The Lutheran chorale was central to the life and work of Johann Sebastian Bach. While lying on his deathbed, the blind cantor still found the strength to dictate his chorale prelude "Vor deinen Thron", BWV 668, indicating that he was ready to meet his Maker. The 17 chorale settings which he had copied and revised for printing in Leipzig just before his death were later added to this "valedictory chorale". As though taking stock of his life, Bach assembled works from various creative periods, many of them even going back to his second Weimar period. It is interesting to note that apart from the Advent chorale "Nun komm, der Heiden Heiland", the great chorale of peace and thanksgiving, "Allein Gott in der Hoh sei Ehr", occurs most frequently. It is a translation of "Gloria in excelsis Deo" from the Latin Mass, undertaken by Nicolaus Decius. The chorale became associated with a major event of world history, the end of the Thirty Years' War, when it was intoned from the balcony of the Osnabruck Town Hall after the much-longed-for peace had been proclaimed at last.

루터교 코랄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인생과 작품의 중심이었다. 임종으로 누워있는 동안, 앞이 안 보이는 성가대장은 여전히 그의 창조주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준비를 나타내는 그의 코랄 프렐류드 <당신의 보좌 앞에 내가 가오니> BWV 668을 지시할 힘이 아직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사망 직전에 라이프치히에서 인쇄하기 위해 복사하고 수정했던 17개의 코랄은 나중에 이 “고별 코랄”에 추가되었다. 바흐는 그의 인생의 자산을 얻는 것처럼 여러 창조적인 시기의 작품들을 모았는데, 그중 많은 것들이 제2의 바이마르 시절로 회귀하고 있었다. 재림절(기독교에서 크리스마스 전의 4주간을 가리킴) 코랄 <주께서 이제 오시도다> 외에 평화와 추수감사를 위한 위대한 코랄 <높은 곳에 계신 하느님께 영광을>이 가장 자주 불린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것은 니콜라우스 데키우스가 착수한 라틴어 미사 <저 높은 곳에 영광이 있을지어다>의 번역이다. 코랄은 오랫동안 갈망된 평화가 마침내 선포된 후에 오스나브뤼크 타운 홀의 발코니에서 암살당했던 30년 전쟁(독일 내 천주교와 개신교 간 종교분쟁이 급기야 온 유럽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30년 동안 지속된 전쟁, 1618~1648)의 끝인 세계사의 주요 사건과 관련 있게 되었다.

Feinberg recorded three different settings of this chorale within a space of ten years, two of them (one of which he recorded twice) belonging to the aforementioned Leipzig collection. The four-part prelude "Allein Gott in der Hoh sei Ehr", BWV 662 (recorded in 1962), bears a certain resemblance to the setting of the Advent Chorale, "Nun komm, der Heiden Heiland", BWV 659, partly known through transcriptions for piano. It also features a continuous, slow-moving bass line (anticipating the "walking bass" in jazz music), a cantus firmus in the soprano and a richly ornamented chorale melody. A comparison of track 3 and 4 shows that they were recorded at different stages in the performer's life. After recording track 4, Feinberg had only a few more days to live. The more spontaneous earlier reading lays greater emphasis on romantic embellishment of the cantus whereas the later account is almost transcendent in its spirituality.

파인베르크는 10년 동안 있었던 공간 내에서 이 코랄에 대한 세 가지 다른 버전을 기록했는데, 그 중 두 곡(그가 두 번 기록했던 것 중의 하나)은 라이프치히 컬렉션에 속한다. (1962년에 기록된) 4성부 프렐류드 <높은 곳에 계신 하느님께 영광을> BWV 662는 재림절 코랄의 설정에 어떤 유사성을 낳으며, <주께서 이제 오시도다> BWV 659는 부분적으로 피아노 편곡집을 통하여 알려져 있다. 또한 지속적으로 느리게 움직이는 (재즈 음악에서 피아노에 의한 블루스의 베이스 리듬인 “워킹 베이스”를 연상케 하는) 베이스 선율, 소프라노의 정(定)선율, 풍부한 장식음을 단 코랄 멜로디가 특징이다. 1952년에 녹음된 제1판(Track 3)과 파인베르크가 죽기 불과 한 달 전에 녹음된 1962년의 제2판(Track 4)은 이 피아니스트의 전혀 다른 면을 조감해주고 있다. 4번 트랙을 녹음한 후 파인베르크는 얼마 살지도 못했다. 노래의 로맨틱한 장식이 강조된 자연스러운 1952년의 녹음에 비해 나중의 녹음은 거의 초월적인 정신세계를 들려주고 있다.

The second movement (Largo) of the Trio Sonata in C major, BWV 529, written in the relative minor key of A minor, is a fervent dialogue between embroidered soprano and alto parts over a steady bass line. The works lends itself well to a piano transcription as Bach originally wrote these Six Sonatas (after 1727) for pedal harpsichord, inscribing them to his oldest son, Friedemann (the dedicatee of the "Orgelbuchlein" of 1708-1723).

트리오 소나타 C장조 BWV 529의 제2악장 라르고는 주조인 C장조의 관계단조인 A단조로 되어 있는데, 현란하게 장식된 소프라노와 알토 사이의 뜨거운 대화와 지나칠 정도로 확고한 베이스 선율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곡은 원래 바흐가 페달 하프시코드(오르가니스트의 연습용 악기로서 페달이 있는 하프시코드)를 위해 작곡한 6곡의 소나타에 포함된 것인데, 그의 장남 프리데만(1708~1723년 <오르간 소곡집>을 헌정 받은 사람)이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것이다.

Some scholars ascribe the chorale prelude, BWV 711, another setting of "Allein Gott in der Hoh sei Ehr", to Bach's second cousin Johann Bernhard Bach (1676-1749, the teacher of Johann Gottfried Walther). This "bicinium" (two-verse song) is a two-part tonal fabric to be played "manualiter" (i.e. without pedal) and featuring an unadorned cantus firmus, a continuous bass line consisting of small note-values and sudden leaps. Feinberg brings it all of with dazzling bravura, even playing at the octave for prolonged stretches.

BWV 711의 코랄 프렐류드는 바흐의 육촌인 요한 베른하르트 바흐(1676-1749, 요한 고트프리트 발터의 스승)의 작품이라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 곡은 2성부의 독특한 톤을 지닌 코랄로 페달의 사용이 전혀 없이 연주된다. 꾸밈음이 전혀 없는 소프라노의 강렬한 노래와 짧은 음들로 이루어진 베이스의 재빠른 움직임으로 이루어진 이 곡을 파인베르크는 화려하고 현란하게 더욱이 옥타브를 높여서 연주해내고 있다.

Bach's "Sechs Chorale von verschiedener Art", a collection of six chorales dating from 1746-50, are known as "Schubler-Chorale" because they were first published by Schubler in Zella, Thuringia. From this set Feinberg did not select the first piece, "Wachet auf, ruft uns die Stimme", as favoured by most Bach performers, but the much less arresting third item, "Wer nur den lieben Gott lasst walten", a transcription of the duet (for soprano and alto) from Cantata No. 93, "Er kennt die rechten Freudenstunden". In the original version for organ, the cantus firmus was in the bass whereas Feinberg gave it to the tenor. This chorale had a special meaning for Bach, for it symbolized man's faith in God. He included it in the "Orgelbuchein" for his eldest son and in the "Notenbuchlein" for his second wife.

바흐의 <6개의 코랄 모음곡>은 1746~50년의 6개 합창곡 모음으로 쉬블러가 튀링겐 주 첼라에서 처음 출판했기 때문에 <쉬블러 코랄>로 알려져 있다. 이 세트에서 파인베르크는 대부분의 바흐 연주자들이 선호하는 첫 곡 <눈을 떠라, 부르는 소리가 들리도다>가 아닌, 훨씬 덜 매력적인 세 번째 곡 <주의 손길 받아들이는 자>를 골랐는데, 칸타타 93번 <하느님은 올바른 기쁨의 시간이 무엇인지 아시네>에 있는 (소프라노와 알토를 위한) 듀엣의 편곡이다. 오르간을 위한 원곡 버전에서 정선율은 베이스에 있었지만 파인베르크는 그것을 테너에 배치했다. 이 코랄은 바흐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신에 대한 인간의 믿음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을 그의 장남 프리데만을 위한 <오르간 소품집>과 그의 두 번째 아내 안나 막다레나 바흐를 위한 <음악 수첩>에 포함시켰다.

In BWV 663, the chorale "Allein Gott in der Hoh sei Ehr" from the late Leipzig set is assigned to the tenor (as in the original). As in BWV 711, Bach opts for a triple rhythmic pattern (three-two time) which lends the whole a cheerful, merry note.

BWV 663에서 마지막 라이프치히 세트에 있는 <높은 곳에 계신 하느님께 영광을>은 (원본과 동일하게) 테너에 지정된다. 바흐는 BWV 711과 마찬가지로 3박자 리듬 패턴(3/2박자)을 선택하여 전체적으로 쾌활하고 기쁜 음을 전한다.

Wolfgang Amadeus Mozart would not have become the genius we know without the encouragement of his astute father, Leopold, or the youngest of J. S. Bach's famous sons, Johann Christian (known as "the English Bach") persuaded the eight-year-old boy, while he was visiting London, to write his first (still unnumbered) symphonies. Another member of the Bach family, Carl Philipp Emanuel (active in Berlin and later in Hamburg), was a major source of inspiration in the writing of keyboard sonatas. Even though Mozart was an accomplished violinist, his favourite instrument was the piano, which served him well in his capacity as a virtuoso and as a composer. Not surprisingly, the piano concerto figured prominently in his output throughout his all too brief life. Apart from a large body of chamber music involving the piano and a number of songs, he composed 19 keyboard sonatas which represent an important connecting link between C.P.E. Bach's and Haydn's contributions to the form and the masterpieces created later by Beethoven and Schubert. The two piano sonatas recorded here were written at crucial stages in Mozart's life.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그의 기민한 아버지 레오폴트의 장려가 없었거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막내아들 (“영국의 바흐”로 알려져 있는) 요한 크리스티안이 런던을 방문했던 동안 8세 소년에게 그의 (아직 번호가 없는) 첫 교향곡들을 쓰도록 설득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아는 천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바흐 가문의 또 다른 일원인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베를린에서 활동하다간 나중에 함부르크에서 활동)은 키보드 소나타 작곡에서 중요한 영감을 불러 일으켰다. 모차르트는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지만, 그가 가장 좋아하는 악기는 거장으로서 작곡가로서 역할을 잘 수행했던 피아노였다. 놀랍지 않게도 피아노 협주곡은 너무 짧은 인생을 통해 그의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피아노와 많은 가곡을 포함하는 방대한 실내악 외에도 그는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와 하이든의 형식에 대한 기여와 나중에 베토벤과 슈베르트가 창조한 걸작들 사이의 중요한 연결 고리를 나타내는 19개의 건반 소나타를 작곡했다. 여기에 녹음된 피아노 소나타 2곡은 모차르트의 인생에서 중요한 단계에 쓰였다.

His first set of sonatas (K. 279-284) comprises six pieces, of which Nos 1 to 5 were written in Salzburg in 1774. In his E flat major Sonata, K. 282, Mozart breaks away from the established tempo pattern for the first time. The work opens with an expressive Adagio, followed by a minuet with a similar head motive. Whereas sonata form is normally associated with the first movement, Mozart here uses it in the finale, a spirited Allegro, which contains the usual three sections: exposition, development and recapitulation (restatement of the exposition with harmonic modifications).

첫 번째 소나타 세트(K. 279-284)는 6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774년에 잘츠부르크에서 1번부터 5번까지 쓰였다. 그의 내림E장조 소나타 K. 282는 일반적인 템포의 패턴으로부터 탈피한 최초의 곡이다. 이 작품은 느리고 인상적인 아다지오 서주로 시작하고, 이어지는 2악장은 유사한 특징을 가진 미뉴에트이다. 보통 소나타 형식은 1악장에 있지만, 모차르트는 여기에서 그것을 박진감 넘치는 마지막 3악장 알레그로(빠르게)에 사용하는데, 독특하게 이 소나타에서 유일한 소나타 형식의 악장이다. - 소나타 형식은 보통 제시부, 발전부, 재현부(화성의 변화와 함께 제시부의 수정)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When Mozart settled in Vienna in 1781, he entertained great hopes about his favourite instrument. "Surely, this is piano country ...", he wrote to his father. His final Sonata in D major, K. 576, was composed in 1789 for a music-loving Prussian princess. While Mozart was visiting Berlin, her father, King Frederick William II, commissioned him to write six "easy sonatas" lest his daughter ruin her delicate fingers. The Prussian ruler, himself an able cellist, also requested a number of other works. Yet Mozart, who always "had several irons in the fire", partly because of overflowing inspiration, partly because of persistent financial worries, finished only one of the keyboard sonatas commissioned. It seems that he was no longer interested in the genre, concentrating his energies instead on his last concertos, symphonies and operas (perhaps he was aware that his days were numbered). On his way to the Prussian capital, Mozart had stopped in Leipzig to pay homage to Bach in the church of St Thomas (where the great cantor was not yet entombed at the time). While listening to a motet performed by the St Thomas choir, he exclaimed: At last, here is someone to learn from. The Bach experience is reflected in the last sonata. Echoes of the cantor are unmistakable in the first movement, with its emphasis on contrapuntal writing. The Adagio is in a more lyrical vein, looking ahead to the enchanting Clarinet Quintet, K. 581, which is to follow somewhat later. In the finale, Mozart combines rondo and sonata forms, lending the movement more weight than usual. Aged 33, he is no longer content to close on a note of frothy lustiness.

모차르트가 1781년 비엔나에 정착했을 때, 그는 좋아하는 악기에 대한 큰 기대를 즐겼다. “분명히, 여기는 피아노의 나라입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K. 576의 소나타는 모차르트의 19개의 피아노 소나타 중에서 마지막 작품으로 음악 애호가였던 프러시아(프로이센)의 왕녀를 위해 위촉받아 쓴 1789년의 작품이다. 모차르트가 베를린을 방문하는 동안, 그녀의 아버지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는 그의 딸이 섬세한 손가락을 망치지 않도록 6개의 “쉬운 소나타들”을 쓸 것을 그에게 의뢰했다. 유능한 첼리스트였던 프러시아 통치자는 여러 가지 다른 작품들도 요청했다. 그러나 항상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에 손댔던” 모차르트는 부분적으로는 넘쳐흐르는 영감 때문에, 부분적으로는 악착같은 재정적인 문제로 인해, 의뢰받은 건반 소나타들 중 하나만 끝마쳤다. 모차르트의 관심은 이제 (아마도 살아있을 때 번호가 매겨졌음을 알고 있었을) 그의 마지막 협주곡과 교향곡, 그리고 오페라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 같다. 모차르트는 프러시아의 수도로 가던 중 바흐에게 경의를 표시하기 위해서 라이프치히의 (위대한 성가대장이 당시에 아직 안치되지 않았던) 성 토마스 교회에 멈춰 섰다.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이 연주하는 바흐의 모테트를 듣는 동안 그는 다음과 같이 외쳤다. - 마침내 여기에서 배울 누군가가 있다. 바흐에 대한 경험은 마지막 소나타에 반영되어 있다. 성가대장에 대한 기억은 대위법적 작곡에 중점을 둔 1악장에 남아있다. 2악장 아다지오(느리게)는 보다 서정적인 품격을 지닌 것으로 그 인상적인 첫 부분은 얼마 후에 작곡될 매혹적인 클라리넷 5중주 K. 581의 제2악장 첫머리로 옮아간다. 3악장은 론도 형식과 소나타 형식이 복합된 론도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다. 33세에 그는 더 이상 실속 없는 튼튼한 음에 만족하지 않는다.

Mozart Piano Sonata in D, K. 576 Opening of 2nd movement /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K. 576 제2악장 오프닝

Mozart Clarinet Quintet in A, K. 581 Opening of 2nd movement / 모차르트 클라리넷 퀸텟 K. 581 제2악장 오프닝

Mozart's preoccupation with Bach and Handel began even earlier. In 1782, he composed his Prelude (Fantasia) and Fugue in C major, K. 394, contrasting an entree which sounds like an improvisation with a strict three-part fugue in the manner of Bach's Well-tempered Clavier and organ works bearing the same title.

바흐와 헨델에 대한 모차르트의 심취는 훨씬 더 일찍 시작되었다. 1782년에 그는 프렐류드(환상곡)와 푸가 C장조 K. 394를 작곡했는데, 바흐의 평균율 및 같은 제목을 가진 오르간 작품들의 방식에서 엄격한 3성 푸가와 함께 즉흥 연주처럼 들리는 앙트레(식당이나 만찬에서 주요리 또는 주요리 앞에 나오는 요리)와 대조된다.

Independent sets of variations are just as numerous in Mozart's output as his sonatas. However, on account of their uncomplicated form, they reflect the composer's improvisational skills to a much higher degree, all the more so as they invariably follow an identical pattern. The first set of variations reduces the note-values to quavers and semiquavers. There follow various displays of pianistic dexterity (such as cross-hand passages), with a subsequent steady build-up of tension, tempo and dynamics culminating in an effective closing section. The music is interspersed with slow episodes or minor-tinged dramatic breaks to provide moments of contemplation. Unlike his other 18 contributions to the medium, which draw on popular tunes (mostly from operas widely performed in his day), his 12 Variations in B flat major, K. 500, are based on an original theme. The listener will notice that this is a fairly intimate work which largely eschews pianistic fireworks.

소나타와 마찬가지로 모차르트의 독창적인 변주곡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복잡하지 않은 형식으로 인해 작곡가의 즉흥 연주 기술을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반영하는데, 더욱더 동일한 패턴을 따르기 때문이다. 첫 번째 변주곡 세트는 8분음표와 16분음표의 음가를 줄인다. 이어지는 꾸준한 긴장 상태의 증가, 템포, 효과적인 마무리 부분으로 끝나는 다이내믹과 함께 피아니스트의 (손이 교차하는 패시지 같은) 손재주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음악은 묵상의 순간들을 제공하기 위해 느린 에피소드나 단조가 혼합된 극적인 휴식이 섞여있다. 유명한 곡들에 의지하는 매개체를 향하는 그의 다른 18개의 기여와는 달리, 그의 12개 변주곡 내림B장조 K. 500은 원래의 주제를 기반으로 한다. 청취자는 이것이 피아니스트의 불꽃놀이를 거의 멀리하는 상당히 친밀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 소나타 형식과 소나타의 차이점
성악의 칸타타와 대비되는 기악곡 양식인 소나타 형식은 소나타나 교향곡, 협주곡 등의 1악장에 주로 쓰인 작곡 양식으로, 제시부-발전부-재현부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제시부에는 조성면에서 대조되는 2개의 주제가 있다. 소나타는 빠르기의 대조를 가진 여러 개의 악장을 가진 기악곡이다. 대부분의 1악장은 소나타 형식, 2악장은 가곡 형식, 3악장은 미뉴에트나 스케르초 형식, 4악장은 론도 형식으로 되어 있다. 마지막 악장은 대부분 론도 형식이다.


바흐와 헨델은 나이가 들면서 모두 시력이 점점 나빠졌는데, 그것은 조명이 약했던 시절에 악보를 보며 일생 동안 작은 음표를 그려 넣으며 작업을 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전에 <조윤범의 파워클래식>에서 바흐와 헨델에 대한 강의를 봤는데, 헨델이 생일이 더 빠르다고 했다. 헨델은 주로 영국에서 활동했고 바흐는 주로 독일에서 활동했는데 둘이 평생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둘이 만났다면 서양 음악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둘이 만날라 치면 엇갈렸다나. 둘이 말년에 앞이 안 보이게 된 이유는 우연히도 같은 돌팔이 의사한테 치료를 받았다고... 한편 베토벤은 모차르트가 사망한지 1년이 지난 후에 비엔나에 갔고 하이든에게 배웠다. 베토벤에게 배운 제자는 체르니인데 수업 시간에 배운 바로는 체르니가 말하길 베토벤이 페달을 많이 썼다고 한다. pdf 파일에서 영어 정보를 복사했는데 두 쪽 분량이 빠져있어서 이미지 파일을 보면서 빠진 내용을 타이핑했다. 결국 pdf 파일은 지웠다. 한글 정보를 몇 개 넣기도 하는데 프로필은 크게 어렵지 않지만 작품 설명으로 넘어가면 영어 정보는 길어지는데 반해 한글 정보가 적어서 번역에 시간이 걸린다. 소나타 형식과 소나타의 차이점에 대한 설명도 보충했는데 시험 문제로 써냈던 서술형 답변이다.

댓글 1개:

  1. http://uploaded.net/file/jldijp0p/from/aa33kn

    http://uploaded.net/file/vaq7ek1q/Mel.RPS03.r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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