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6일 일요일
DVD / Alfred Brendel Plays & Introduces Schubert's Late Piano Works 1-3
알프레드 브렌델이 해설하고 직접 연주하는 슈베르트 후기 피아노 작품집
우리 시대의 진정한 슈베르티안(Schubertian)! 2008년 은퇴를 공식 발표한 알프레드 브렌델의 최초로 출시되는 기념비적인 DVD! 알프레드 브렌델은 1970년대 중반에 독일의 브레멘에서 무려 열세 편에 달하는 TV영상물을 제작하는데 참여했다. 이들 방송기록은 슈베르트 피아노 작품의 정수인 9개의 후기 소나타와 <방랑자 환상곡>, <즉흥곡> 전곡, <악흥의 순간>, 세 곡으로 이루어진 유작 <피아노 소품>으로 구성되었다. 이처럼 방대한 소개는 전례 없는 것인데, 특히 알프레드 브렌델 본인의 상세한 곡 해설과 더불어 본인의 슈베르트에 대한 생각, 곡의 조사와 분석, 폭넓은 개관으로 그의 끝없는 슈베르트에 대한 탐구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기념비적인 방송기록이다.
알프레드 브렌델은 유고슬라비아 출신으로 18세에 부조니 콩쿠르에서 4위에 입상하며 전문 피아니스트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전 세계를 무대로 연주하며 뉴욕, 런던, 파리, 빈, 베를린, 암스테르담, 유럽과 미국의 주요 페스티벌에 단골 출연했다. 1983년 옥스퍼드 대학교를 비롯하여 명예학위도 여럿 갖고 있다. 1989년에 영국에서 명예기사 작위를 받았고, 1993년 3월에는 로열 필하모니 협회에서 금메달을 받았다.
알프레드 브렌델은 1931년 비젠베르크에서 태어나 6세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자그레브와 그라츠 음악원을 거쳐 에트빈 피셔에게 사사하였고 1948년(17세) 첫 리사이틀에서 호평을 받으며 데뷔했다. 다음 해인 1949년에 부조니 콩쿠르에서 4위에 입상한 이후부터 본격적인 연주 활동을 시작하여 빈을 중심으로 유럽 각지에서 활약하였다. 1963년에는 미국에서도 성공적으로 데뷔하였고 매년 남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극동 등을 들러 연주 여행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는 뛰어난 기교와 아름다운 음색의 소유자로 슈베르트, 리스트, 쇤베르크, 베베른 등의 작품 연주에서 탁월한 솜씨를 보이며 현존하는 피아니스트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망한 연주 활동 사이에 교육에도 관심이 많아 런던과 빈에서 마스터클래스를 가르쳤다. 2008년에 피아니스트로서 은퇴한 후 현재는 런던에 살고 있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일 뿐만 아니라 에세이와 시를 발표한 작가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카를 한저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들로는 <바로 나>(마르틴 마이어아의 대담, 2001), <거울에 비친 상과 검은 유령>(2003), <마지막 화음이 끝난 뒤>(질의와 응답, 2010)가 있다.
Brendel and Schubert / 브렌델과 슈베르트
Relatively early in his career Alfred Brendel recorded the complete piano works of Beethoven on a very popular label and established himself, whether he liked it or not, as a Beethoven "specialist". Beethoven has remained central to his career - to his life - but Brendel has never been a specialist. In his early days he played Prokofiev (his first recording was of the Fifth Concerto), Mussorgsky (Pictures at an Exhibition), Stravinsky (Petrushka Suite), Liszt's Hungarian Rhapsodies, Schoenberg's Piano Concerto, Chopin's Polonaises and much else besides. Since then he has concentrated more and more exclusively on the great Germanic repertoire: Beethoven, of course, whose complete sonatas and concertos he has recorded several times, Mozart, Haydn, Schumann - and Schubert, whom he has championed, as both player and writer, throughout his career.
알프레드 브렌델은 자신의 경력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매우 유명한 레이블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작품 전곡을 녹음함으로써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 자리매김되었다. 그 자신이 이를 좋아했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베토벤은 이후로도 계속 이 피아니스트의 경력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했으나, 브렌델은 이 작곡가에만 머무르지는 않았다. 경력 초기에는 프로코피에프와 무소르크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 모음곡>,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쇤베르크의 <피아노 협주곡>, 쇼팽의 <폴로네즈> 등을 녹음했으며, 그 이후에는 점점 더 위대한 독일-오스트리아 레퍼토리에 집중했다. 소나타와 협주곡 전곡을 몇 차례에 걸쳐 녹음한 베토벤은 물론이고 모차르트, 하이든, 슈만, 슈베르트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슈베르트는 브렌델이 전 경력에 걸쳐 피아니스트로서 뿐만 아니라 저술가로서도 옹호한 작곡가이다.
Schubert is for Brendel the composer, of all composers, who moves the listener most directly. Yet his earliest approaches to the Schubertian universe, as a performer, were by his own confession both conventional and timid: the "Wanderer" Fantasy, the Impromptus and the Moments musicaux - wonderful works, but the Schubert that everybody knew. It was when he gave a Schubert recital in the Brahms-Saal in Vienna, presenting works which even then were hardly played, including the C minor and B major Sonatas, that Brendel the committed Schubertian could be said truly to have arrived. There followed, in the mid-1970s, a series of thirteen television films, made in Bremen and including nine sonatas, the "Wanderer" Fantasy, all the Impromptus, the Moments musicaux and the three posthumous "Klavierstucke". Such exposure was unprecedented.
브렌델이 보기에 슈베르트는 모든 작곡가 가운데서도 듣는 이의 마음을 가장 직접적으로 움직이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훗날 자신이 고백한 바에 따르면, 초기에 연주자로서 그가 슈베르트의 세계에 대해 취했던 접근방식은 진부하고도 소심한 것이었다. 즉흥곡이나 <방랑자 환상곡>, <악흥의 순간> 같은 곡은 대단한 작품이지만, 동시에 누구나 아는 곡이기도 하다. 브렌델이 진정한 슈베르티안으로 거듭났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은, 그가 빈의 브람스 홀에서 슈베르트 독주회를 열어 <소나타 19번 c단조>나 <소나타 9번 B장조> 등 당시만 해도 거의 연주되지 않고 있던 작품들을 소개했을 때였다. 이어 1970년대 중반에는 13편에 달하는 TV 영상물을 브레멘에서 제작하는데 참여했다. 이들 영상물은 9개의 소나타와 <방랑자 환상곡>, <즉흥곡> 전곡, <악흥의 순간>, 3곡으로 이루어진 유작 <피아노 소품>으로 구성되었다. 이처럼 방대한 소개는 전례 없는 것이었다.
Like all great pianists in this repertoire, he has not confined himself to the works for solo piano but has a profound, first-hand knowledge of Schubert's incomparable songs (his lieder partner have included Hermann Prey, Dietrich Fischer-Dieskau and Matthias Goerne), the chamber music and the symphonies - and it shows. While acknowledging the vocal origins of much of Schubert's piano writing (whose idiomatic pianistic sophistication he will defend to the death) he has likewise striven to emphasize not only the symphonic aspect of Schubert's unique and courageous structures but the specifically orchestral character of his piano textures.
이 레퍼토리에서 명연을 남긴 다른 위대한 피아니스트들과 마찬가지로, 브렌델 역시 독주 피아노곡에만 매달리지 않고 슈베르트의 비할 데 없는 아름다운 가곡들(그는 헤르만 프라이와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마티아스 괴르네 등을 반주했다.)과 실내악곡, 교향곡에도 심오한 이해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를 실제로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그는 슈베르트의 피아노 서법(브렌델은 이 작곡가 특유의 복잡한 피아노 서법을 지칠 줄 모르고 옹호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중 상당수는 성악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슈베르트의 독특하고도 대담한 구성이 보여주는 교향악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그의 피아노 텍스처가 보여주는 명백하게 관현악적인 성격도 강조하려고 노력했다.
Although he has many times cited feelings as "the Alpha and Omega of music", Brendel is a tireless, searching thinker in music. To that extent, and to the extent that he is a lover of ideas, he is an intellectual performer. He is not, however, a "scholarly" or didactic one. Nor is he in any sense a dry musicologist, sworn to historical correctness at all costs. He is more concerned with the spirit - and the idea - than with the letter of the composer's score, perhaps particularly the letter of Schubert's score. As he surmises, Schubert may never have heard another pianist play his music and thus lacked certain vital practical perspectives. Brendel's scrupulous study of manuscripts, sketches etc. is not, however, "scholastic" in an academic sense but simply (and sometimes not so simply) a means of getting to know the composer better, understanding how his mind works, what his aims where, how they were refined. His consideration of every note, his analyses, his range of perspectives, are almost intimidating yet, as with all great artists, his searching is knowingly endless; his interpretations have never ossified into monumental "truths". They remain, at the very least, stimulating and committed hypotheses.
비록 여러 차례에 걸쳐 “음악의 알파와 오메가”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으나, 브렌델은 정력적이고도 엄격한 사색가였다. 또한 그만큼 의미를 중시하는 인물이자 그만큼 지적인 연주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학구적”이거나 교육자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또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역사적 정확성을 기하겠노라 서약한 무미건조한 음악학자도 결코 아니었다. 그는 작곡가의 악보에 적힌 지시보다는 악상 그 자체나 감정을 더 중시했으며, 슈베르트의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그가 추측했듯이 슈베르트는 아마도 다른 피아니스트가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을 것이며, 따라서 작곡에서 불가결한 실제적 관점을 어느 정도는 결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고본이나 스케치 등에 기초한 브렌델의 꼼꼼한 연구는 “학구적”인 수준은 아니며 단순히(때로는 그저 단순하지만은 않다.) 작곡가를 좀 더 잘 알기 위한, 즉 슈베르트의 의도가 어떤 식으로 작용했으며 목표는 무엇이고 그것이 어떤 식으로 다듬어졌는가를 알기 위한 수단이었다. 모든 음표에 대한 브렌델의 조사와 분석, 폭넓은 개관은 지나칠 정도로 세부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위대한 예술가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그의 탐구는 끝이 없었다. 그의 해석은 결코 기념비적인 진실로 고착되는 일이 없었으며, 어디까지나 고무적이고 헌신적인 가설로 남았다.
No one has done more than Brendel to accentuate the complexity and dramatic intensity of Schubert's musical and psychological personality or to elucidate the originality and compelling logic that characterize this composer. We are all in his debt.
그 누구도 브렌델만큼 복잡하고도 극적인 강렬함을 지닌 슈베르트의 음악적 혹은 심리적 성격을 두드러지게 보여주거나 이 작곡가를 특징짓는 독창성과 매력적인 논리를 명료하게 드러내지 못했다. 우리 모두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8vvAyjdH9E
DVD 1
<방랑자 환상곡>은 많은 슈베르트 애호가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슈베르트의 피아노곡 가운데 최후의 대작이다. 처음 들어보면 이 작품은 “너무 베토벤적”이거나, “너무 리스트적” 혹은 “너무 웅대”, “너무 기교적”으로 여겨질 것이다. 여기서 “너무”만 지우고 보면 확실히 다 맞는 표현들이다. 비록 이 곡이 작곡된 1822년은 리스트가 불과 열한 살이었고 막 빈으로 옮겨와 베토벤의 제자인 체르니에게 배우기 시작했을 무렵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베토벤은 일종의 일반화된 유형을 제공하기는 했으나 이와 유사한 작품을 쓴 적은 한 번도 없다. 웅대하고 자신감에 넘치는 화려한 기교가 동원되기는 했으나, 이 곡은 일종의 실험이었고 그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단일 주제를 놓고 작업한 작곡가가 슈베르트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 곡은 거의 완벽할 정도로 단일한 악상(슈베르트의 가곡 <방랑자>에서 끌어온 것으로, 이 때문에 이와 같은 별명이 붙었다.)에 기초한 최초의 다악장 작품이다. 그러나 가곡의 경우와는 달리, 여기서는 리듬이 시종일관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는 요소가 된다. 휴지 없이 연달아 연주되는 이 작품의 네 섹션은 빈틈없이 통제된 대규모 형식(진정으로 기념비적인 구조라 할 만하다.)으로 이루어진 놀라운 시도이자, 이전에는 피아노라는 악기로 시도된 바 없는 음향과 다양한 색채를 총망라하는 일대 축전이라 할 수 있다. 리스트가 이 곡을 사랑했으며 강한 영향을 받았던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방랑자 환상곡>이 가장 공식적이고 영웅적인 모습의 슈베르트를 제시한다면, <소나타 14번 a단조 D. 784>는 가장 솔직하고도 거리낌 없는 상태를 보여준다. 비록 즐거움과 극도의 부드러움이 어느 정도 상쇄하고는 있으나, 거친 악상은 너무나 직접적으로 다가와 거의 육체적인 고통마저 느껴질 정도이다. <방랑자 환상곡>보다 몇 달 뒤에 작곡된 이 곡 역시 양식보다는 정서적인 측면에서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번에는 리스트가 아니라 후기 낭만파 가운데 가장 슈베르트적인 인물이었던 말러를 예고하고 있다. 물론 말러의 작품처럼 길지는 않으며, 오히려 눈에 띌 정도로 간결하다. 그러나 이 간결함에도 불구하고, 이 곡에는 관현악적인, 심지어 교향악적인 측면이 있다. 미친 듯이 돌진하는 3악장 피날레(피아니스트라면 누구나 이 악장의 마지막 옥타브 진행을 두려워한다.)에 이르기 전에는 그리 기교적인 모습을 과시하지 않으나, 극도로 정제된 음조와 정밀한 짜임새를 구사해야 하기 때문에 시종일관 연주하기 까다롭다. 그리고 그게 옳다. 가슴을 쥐어뜯는 듯한 2악장 안단테를 제외하면 말이다. 이 작품에는 편안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가감 없는 솔직한 표현에서는 무자비함마저 느껴질 정도이다. 그러나 이 곡으로 인해 우리는 슈베르트의 내면세계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미완성으로 끝난 <소나타 15번 C장조 D. 840>은 1825년에 착수되었으며, 같은 조성으로 작곡된 <교향곡 9번>과 작곡 시기가 어느 정도 겹친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지 못하더라도 이 곡에서 “교향악적인” 인상을 쉽사리 받을 수 있을 것이며, 웅장함과 집중력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1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같은 C장조로 되어 있는 <방랑자 환상곡>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슈베르트는 단일주제 양식을 취하고 있으며, 이 주제는 비상할 정도의 미묘함으로 다양하게 변모한다. 지극히 슈베르트적이며 미증유의 풍요로움을 보여주는 이 두 악장짜리 소나타는 슈베르트의 초인적인 마지막 시기로 가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Wanderer" Fantasy in C major, D. 760 / 방랑자 환상곡
I. Allegro con fuoco ma non troppo
II. Adagio
III. Presto
IV. Allegro
Franz Schubert was thirty-one when he died in 1828. He owed his fame as a song composer to the singer Johann Michael Vogl. His friends were men of letters, painters, musicians and civil servants. He played for them while they danced. Few people knew about his great instrumental works or even suspected their importance. Apart from his piano duets most of these instrumental works were unpublished. In the course of the 19th century they were gradually made accessible in the form of a complete edition. Until very recently most people's picture of Schubert was like that of Rudolf Hans Bartsch's "Schwammerl": a pudgy, hearty, slightly drunken Schubert, sometimes wistful but always good-natured. Berte's operetta "Lilac Time", in which Schubert and three sisters appear on stage, merrily performing arrangements of his melodies, offered an equally silly portrait of Schubert. Richard Tauber embodied this image in the sound film. Since then we've got to know Schubert's complex personality much better and also discovered that he's one of the greatest instrumental composers. Thanks to the work-list drawn up by Otto Erich Deutsch we can now find out more about the chronology of the works and about Schubert's development as a composer. The opus numbers of his works are confusing. They reflect the order in which they were published, not the order in which they were written. Schubert's instrumental music can be divided into two periods. The first ends in 1819. It includes 6 symphonies and 15 sonatas, of which 11 were left incomplete. There followed a gap of three years when Schubert took an active but fruitless interest in the Singspiel while continuing to produce a constant flood of lieder. Apart from the sketches for a symphony in E minor, the C minor String Quartet movement is the only instrumental work from then. It already anticipates the style of Schubert's mature period, which begins in 1822 and ends with Schubert's death. I'm playing the keyboard works from this second period. With the exception of a few occasional works such as virtuoso pieces for violin and flute prepared for the concert hall it includes instrumental works of a mastery still unattainable by Schubert during his earlier period. I certainly don't want to underestimate the delights of the early symphonies, the Trout Quintet and the little A major Sonata. Apart from Mozart and Mendelssohn, there was scarcely another composer so young who produced works of comparable significance. And yet Schubert still creates the impression here of someone familiarizing himself with large-scale form in an almost playful way. A glance at the "Unfinished" and at the "Wanderer" Fantasy, both of which date from autumn 1822, opens up entirely new perspectives. The fact that Schubert's syphilis frist made itself felt at this time could be mere chance. I certainly don't want to replace one set of prejudices with another. But it's conceivable that under the impact of his illness Schubert summoned up all his strength for one sudden desperate effort, as if he realized for the first time that there are limits to our lives. Even today one occasionally reads that Schubert's treatment of the piano added nothing to Beethoven's. But even a brief glance at the "Wanderer" Fantasy and the sonatas of the following years teaches us otherwise. In the "Wanderer" Fantasy the piano is transformed into an orchestra in a quite unprecedented way. Not only the colours of certain instruments and groups are suggested, so is the power of the tutti.
프란츠 슈베르트는 1828년 31살의 나이로 죽었습니다. 그는 가수 요한 미하엘 포글의 도움으로 가곡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의 친구들은 공무원, 화가, 문학가들이었습니다. 그는 친구들이 춤출 때 연주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위대한 기악 작품들에 대해서 거의 몰랐거나 심지어 그 중요성을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피아노 2중주를 제외하고는 이들 기악곡 대부분은 출판되지 않았습니다. 19세기 동안에 그 작품들은 점차적으로 전집의 형태로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근까지도 사람들이 지닌 슈베르트에 대한 이미지는 루돌프 한스 바르치의 <스펀지>처럼 통통하고, 쾌활하고 다소 취한 모습의 슈베르트였으며 가끔 생각에 잠기지만 항상 온화한 사람이었습니다. 베르테의 오페레타 <라일락 핀 시절>에서는 슈베르트와 세 명의 누이가 등장해 그가 쓴 선율이 편곡된 형태로 즐겁게 연주된 가운데 슈베르트가 바보 같은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리하르트 타우버는 발성영화에 이런 이미지를 담았습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슈베르트의 복잡한 성격을 훨씬 더 잘 알게 되었고, 그가 위대한 기악 작곡가들 중 한 명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오토 에리히 도이치가 작성한 작품 목록 덕분에 우리는 각 작품들의 창작 순서와 작곡가로서 슈베르트의 발전과정을 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슈베르트의 작품 번호는 혼란스럽습니다. 작품번호는 작곡된 순서가 아니라 출판된 순서를 나타냅니다. 슈베르트의 기악 음악은 두 시기로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 첫 시기는 1819년까지입니다. 이 시기는 15개의 소나타와 6개의 교향곡을 포함하고 그 중에서 11개는 미완성입니다. 슈베르트는 봇물처럼 가곡을 작곡하는 와중에 징슈필(독일어로 서로 주고받는 대사에 서정적인 노래가 곁든 민속적인 오페라) 분야에 관심을 돌려 활발하지만 실익 없는 활동을 하느라 3년의 공백 기간을 보냈습니다. 그 이후로는 교향곡 7번 e단조에 대한 스케치를 제외하면 현악4중주 12번 c단조 악장만이 그가 쓴 유일한 기악 작품입니다. 이미 이 작품들은 슈베르트의 성숙기 스타일을 예견케 합니다. 그 시기는 1822년에 시작해 슈베르트의 죽음과 함께 끝나게 됩니다. 저는 이 두 번째 시기의 건반 작품들을 연주합니다. 이 시기는 연주회를 위해 준비했던 바이올린과 플루트를 위한 기교적인 곡처럼 예외적인 몇몇 작품과 더불어 슈베르트가 초기 시기에는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숙달된 모습을 보여주는 기악 작품을 포함합니다. 저는 초기 교향곡들, 피아노 5중주 <송어>, 그리고 A장조 소나타 13번을 과소평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모차르트와 멘델스존을 제외하고는 이에 필적할 만한 중요한 작품을 그토록 젊은 나이에 만들어낸 작곡가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시기의 슈베르트는 대규모 형식을 아주 편안한 방식으로 작곡하는 사람이라는 친숙한 인상을 여전히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1822년 가을에 작곡된 <미완성 교향곡>과 <방랑자 환상곡>을 살펴보면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 눈을 뜨게 됩니다. 이 시기에 슈베르트가 매독을 자각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확실히 일련의 편견들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병의 충격 때문에 슈베르트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듯이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온 힘을 모았습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가끔 슈베르트의 피아노 기법은 베토벤에서 나아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주장을 접하곤 합니다. 그러나 <방랑자 환상곡>과 그 후의 소나타들을 잠시만 봐도 우리는 다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방랑자 환상곡>에서 피아노는 전례가 없는 형식으로 오케스트라로 변형됩니다. 특정 악기들과 그룹의 음색뿐 아니라 전체 연주의 힘도 역시 암시되고 있습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First we hear a swelling string tremolando and then the entry of the whole orchestra, all the winds. Anyone who tries to play the "Wanderer" Fantasy and Beethoven's "Hammerklavier" on a piano of the period will notice how much more Schubert was dependent on the pianos of the future. Pieces like the "Wanderer" Fantasy made it necessary to build more robust pianos with an extended dynamic range. The "Wanderer" Fantasy is the prototype of the virtuoso piano piece. Pianistically, it goes to the very limits of what is possible, and it certainly exceeded Schubert's own abilities as a pianist. "The Devil may play the piece!" he is supposed to have said when he tried to play it to his friends. The fact that this Fantasy was the first of his major piano pieces to catch on was due to its bravura demands and also to Franz Liszt; as perhaps the only piece among all his transcriptions, Liszt tried in places to make it easier to play. It also owes its status to its unconventional form - it was thought that Beethoven had defined sonata from once and for all. The "Wanderer" Fantasy is not called a fantasy because it was supposed to sound like an improvisation. On the contrary, it's strictly through-composed. But it conformed to none of the usual formal categories. The four parts of sonata form - exposition, development section, recapitulation and coda - and the four movements of a sonata are superimposed, just as was to be the case 30 years later with Liszt's B minor Sonata. In place of the development section there's an Adagio that takes its theme from the song "The Wanderer".
처음에는 점차 증가하는 현악 트레몰로가, 그 다음에는 모든 관악기가 들려옵니다. 이 시기의 피아노로 베토벤의 <함머클라비어>와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을 연주하려고 시도하는 누구라도 슈베르트가 얼마나 더 미래의 피아노에 의존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방랑자 환상곡>과 같은 작품에 확장된 다이내믹의 폭 때문에 더욱 튼튼한 피아노를 필요로 하게 됩니다. <방랑자 환상곡>은 기교가 중시되는 피아노곡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피아노에서 보면 그것은 가능성의 한계에 이르게 하고 슈베르트 자신의 피아니스트로서의 능력을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그는 친구들에게 이 곡을 들려줄 때 “이 작품을 연주하는 사람은 악마일지도 몰라!”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 환상곡이 그의 장조 피아노곡 가운데 처음으로 인기를 끌었던 것은 엄청나게 화려한 기교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며, 이 곡은 아마도 리스트가 자신의 모든 편곡 가운데 원곡보다 연주하기 더 쉽게 만들었던 유일한 작품일 것입니다. 또한 이 곡의 명성은 자유로운 형식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때 베토벤은 소나타 형식을 단호히 거부했다고 여겨집니다. <방랑자 환상곡>이 환상곡이라 불리는 이유는 즉흥적으로 들린다는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반대로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엄격하게 창작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일반적인 형식 범주 가운데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소나타 형식을 이루는 네 부분 - 즉 제시부와 전개부(발전부), 재현부, 코다와 더불어 소나타를 구성하는 네 악장은 30년 뒤에 리스트가 b단조 소나타에서 그랬듯이 악상에 끼워 맞춰진 것입니다. 전개부 가운데 가곡 <방랑자>에서 주제를 따온 아다지오(느리게)가 있습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At this point, the beautiful words by the poet Schmidt von Lübeck read: "The sun seems so cold here, the blossom is withered, life is old, and what they say is empty words: I am a stranger everywhere." Instead of the recapitulation there's a scherzo, and by way of a coda we have a fugal showpiece. The monothematic design of the piece also had a great influence on Liszt. "Monothematic" is actually overstating the case. It would be more accurate to call it a "fantasy on a motif" because, strictly speaking, it's just a brief motif, a thrice-repeated chord of note that binds together all the main themes. The first chord is rhythmically lengthened. We heard it at the beginning of the Wanderer's theme in the slow movement.
이 시점에서 시인 슈미트 폰 뤼벡이 쓴 아름다운 시는 말합니다. - “여기 태양은 너무도 차가운 듯이 보인다. 꽃은 시들었고 인생은 늙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허무한 말들일 뿐, 나는 어디서나 낯선 사람이다.” 재현부 대신 스케르초가 있고 종결부(코다)에는 푸가의 걸작이 있습니다. 이 작품의 단일 주제 형식은 리스트에게 아주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사실 “단일 주제”라는 말은 과장된 것입니다. “하나의 동기로 이루어진 환상곡”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엄격히 말해 그것은 단지 하나의 짧은 동기 즉, 모든 주요 주제를 한데 묶는 세 번 반복된 화음 또는 음표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화음은 리드미컬하게 연장되어 있습니다. 느린 2악장에서 등장하는 <방랑자> 주제의 첫머리에서 이를 들을 수 있습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e beginning of the piece.
또한 이 곡의 맨 첫머리와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e beginning of the scherzo.
스케르초의 시작 부분,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And the beginning of the finale.
그리고 피날레 첫머리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ypical of Schubert are remote keys and the impression that important themes face each other across extreme distances. This is also true of their character. The depressive theme of the Adagio is thus as remote as possible from the joyful enthusiasm of the other movements. No less typical of Schubert is the juxtaposition of C major in the main movement and C sharp minor in the Adagio. Schubert had a passion for chromatic neighbouring tonalities. Untypical of Schubert seems to be the lack of what Schumann called his "heavenly length". Schubert, too, could be concentrated when it seemed appropriate. If he tended not to be concise chiefly in his late instrumental works there were good reasons for this.
슈베르트 작품의 전형적 특징은 서로 멀리 떨어진 조성의 혼재와 주요 주제가 아주 먼 거리에서 서로를 대면한다는 인상입니다. 이들의 성격 역시 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다지오(느리게)의 침울한 테마는 다른 악장들의 기쁨의 열정으로부터 가능한 한 동떨어져 있습니다. 주 악장에서 C장조를, 그리고 아다지오에서 c#단조를 배열한 것 역시 슈베르트의 전형적인 모습 중 하나입니다. 슈베르트는 반음으로 인접한 조성을 선호했습니다. 다만 이 작품에 슈만이 “천국적인 길이”(교향곡 <그레이트>를 두고 한 말)라고 부른 요소가 없는 것은 전형적인 슈베르트의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슈베르트 역시 적절하다고 판단하면 집중할 줄도 알았습니다. 만약 슈베르트의 후기 기악 작품에서 간략화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면 이 점이 좋은 이유가 될 것입니다.
Sonata in A minor, D. 784 (Op. 143) / 소나타 14번
I. Allegro giusto
II. Andante
III. Allegro vivace
Only today has it become clear to us that Schubert is one of the greatest sonata composers. Between the last two wars it was Artur Schnabel and Eduard Erdmann who pioneered this understanding. Otherwise people thought of Schubert's sonatas as relative failures, always assuming they knew them at all. The sonatas were said to be too long, too episodic, too songlike of too lyrical. People looked for Beethovenian qualities in them, instead of admiring the fact that they don't imitate Beethoven. Beethoven forces his music into the sturdiest compositional framework, allowing the character of the emotions to emerge all the more unmistakably. Schubert places far more trust in the immediacy of the emotion. Formal constraints aren't allowed to become too great a burden. This means that economy is of no particular importance: the magic of the moment is more powerful than any contextual constraint. The three-movement Sonata in A minor, Op. 143, is the first of Schubert's later sonatas. It was written in 1823, only a few months after the "Wanderer" Fantasy. A further group of four sonatas followed between 1824 and 1826. Then came the unfinished C major Sonata, the great four-movement Sonata in A minor, Op. 42, and the D major Sonata, Op. 53. Finally there are the three sonatas in C minor, A major and B flat major that date from 1828, the year of Schubert's death. I'd like to list some of the general characteristics of these sonatas. The opening movement is always cast in sonata form and generally covers a wide emotional area. The tempo tends to be moderate rather than quick. In the works of 1824 and 1825 the second subject is a variant of the main theme.
오늘날 슈베르트가 최고의 소나타 작곡가들 중 한 명이라는 것은 분명해졌습니다. 지난 두 차례의 세계대전 사이에서 이런 이해를 앞장서서 이끈 사람들이 아르투르 슈나벨과 에두아르트 에르트만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항상 그들이 슈베르트 소나타를 전부 알고 있다고 가정하면서 상대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소나타는 너무 길고 너무 단편적이며 너무 서정적인 노래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슈베르트 소나타가 베토벤을 모방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감탄하는 대신에 베토벤적인 성격을 찾았습니다. 베토벤은 가장 튼튼한 작품의 뼈대에 그의 음악을 넣어서 감정들의 특징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슈베르트는 감정의 직접성에 대해 훨씬 더 신뢰하고 있습니다. 형식적인 제약 조건은 너무 큰 부담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자제가 특별히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마법적인 순간은 어떤 맥락적인 제약보다 강력합니다. 3악장으로 구성된 소나타 14번은 슈베르트의 후반부 소나타 중 첫 번째 곡입니다. <방랑자 환상곡> 이후 불과 몇 달 만인 1823년에 작곡되었습니다. 1824년부터 1826년까지 4개의 소나타 그룹이 뒤따랐습니다. 그런 다음 완성되지 않은 소나타 15번 C장조, 대규모 4악장으로 구성된 소나타 16번 a단조, 소나타 17번 D장조가 나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슈베르트가 죽은 해인 1828년에는 소나타 19번 c단조, 20번 C장조, 21번 B플랫 장조의 세 소나타가 있습니다. 저는 이 소나타들의 일반적인 특징 가운데 일부를 열거하고 싶습니다. 1악장은 항상 소나타 형식이며 일반적으로 폭넓은 감정을 담아냅니다. 템포는 빠르다기보다는 중간 정도의 빠르기입니다. 1824년과 1825년의 작품들에서 제2주제는 제1주제의 변형입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Introduction and recapitulation are as good as identical. In my view a repeat of the exposition is necessary only in the D major Sonata, Op. 53. In the other three cases - the sonatas in C major, A major and B flat major - I'd consider it positively detrimental as the material is expounded here at great length and I'm not convinced by the passages leading back to the beginning. Repeat signs are not always orders. It can't be proved that they always rest on considerations of proportion. I don't for a moment begrudge pianists the pleasure of playing the exposition of a Schubert sonata over and over again at home. But in the concert hall they'd do well not to place unnecessary strain on their own powers or on the concentration of the audience. The literal recapitulations are followed by important codas that act as a focus for the essence of the whole work. The second movement is usually an Andante. It strides or floats past us like some idealized dance. This dancelike character is missing from the Adagios of the "Wanderer" Fantasy and the C minor Sonata and also from the Con moto of the D major Sonata, which is often misinterpreted as an Adagio. If it's not a set of variations, the second movement is in three or five sections: A-B-A or A-B-A-B-A. The contrasting episode is always more animated, and in the works from the final years it's sometimes positively feverish. This agitation generally leaves its mark on the recapitulation of A. The third movement is scherzo of a quick menuetto with a landler as the trio. Only the B flat major Sonata eschews the Viennese character of the trio. There's no scherzo or menuetto in the Op. 143 Sonata. The final movement is graceful, effervescent or macabre. Macabre finales are a speciality of Schubert. The final movement of this A minor Sonata is our first example of a dance of death. It's followed by those of the Quartets in D minor, G and the C minor Sonata. The final movements often reveal Hungarian or Spanish influence. The Rondos of the last three sonatas also include elements of sonata form. As in the opening movements, there are extended literal repeats. Stylistically, the last three sonatas have broken almost completely free from Austrian local colour. The three-movement A minor Sonata makes up for the absence of a scherzo by including a wonderful landler in its finale.
서주와 재현부는 동일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보기에 제시부의 반복은 소나타 17번 D장조에서만 필요합니다. 다른 3개의 경우 - 소나타 20번 C장조, 소나타 13번 A장조, 소나타 21번 B플랫 장조 - 거대한 길이로 여기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므로 긍정적인 타격이 크다고 생각하며 처음으로 돌아가는 패시지에 확신하지 않습니다. 도돌이표는 항상 지시 사항인 것은 아닙니다. 도돌이표가 항상 연주 시간을 고려하여 건너뛰는 것이 증명될 수 없습니다. 저는 피아니스트들이 집에서 몇 번이고 슈베르트 소나타의 제시부를 연주하는 즐거움을 당장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연주회에서 그들은 자신의 힘이나 청중에 대한 집중에 불필요한 부담을 주지 않도록 잘 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제시부 다음에는 작품 전체의 본질에 초점을 둔 중요한 코다가 이어집니다. 2악장은 보통 안단테(느리게)입니다. 이상화된 춤처럼 성큼성큼 걷거나 미끄러지듯 걷습니다. 이 춤곡 같은 특징은 <방랑자 환상곡>과 소나타 19번 c단조의 2악장 아다지오(느리게), 종종 아다지오로 잘못 해석되는 소나타 17번 D장조 2악장 콘모토(활기차게)에서도 빠져있습니다. 변주곡이 아니라면, 2악장은 A-B-A의 세 부분 또는 A-B-A-B-A의 다섯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대조되는 에피소드는 항상 보다 생동감이 넘치며, 말년의 작품들에서는 때때로 분명히 몹시 흥분합니다. 이러한 불안은 일반적으로 A주제의 재현부에 흔적을 남깁니다. 3악장은 트리오로 랜틀러(18세기 말경 오스트리아, 독일 남부, 스위스에서 유행했던 3/4박자의 민속춤)와 함께 빠른 미뉴에트가 있는 스케르초입니다. 소나타 21번 B플랫 장조만이 비엔나 풍의 트리오 성격을 피합니다. 소나타 14번에는 스케르초나 미뉴에트가 없습니다. 마지막 악장은 우아하거나 활기차거나 으스스합니다. 죽음의 마지막 악장들은 슈베르트의 특징입니다. 이 소나타 14번 a단조의 마지막 악장은 죽음의 무도에 대한 우리의 첫 번째 예인데 현악4중주 14번 a단조 <죽음과 소녀>와 현악4중주 15번 G장조, 피아노 소나타 19번 c단조로 이어집니다. 마지막 악장들은 종종 헝가리나 스페인의 영향을 나타냅니다. 마지막 3개의 소나타들(19번, 20번, 21번)의 론도 악장들도 소나타 형식의 요소들을 포함하는데, 1악장에서와 마찬가지로 확장된 일반적인 반복이 있습니다. 양식적으로 마지막 3개의 소나타들은 오스트리아의 지역색에서 거의 완전하게 벗어납니다. 3악장으로 구성된 소나타 14번 a단조는 마지막 악장에 멋진 랜틀러를 포함시켜 스케르초가 없는 것을 보완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ree times the landler interrupts the movement's demonic momentum. The middle movement reverses this trend. Within its calmly breathing flow a ghost-like voice can repeatedly be heard whispering.
랜틀러는 이 악장의 악마 같은 가속도를 세 번 방해합니다. 중간의 2악장은 이러한 흐름을 뒤집는데, 침착하게 호흡하는 흐름 속에서 유령 같은 목소리가 속삭이는 것을 반복적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e first movement of this truly tragic work contains passages in which, paralyzed by horror, we listen to silence.
참으로 비극적인 이 작품의 1악장은 우리가 침묵을 듣는 공포에 의해 마비된 패시지들을 포함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e fateful basic motif, short-long...that dominates the opening movement leaves its mark on the two other movements as well. This whole sonata is highly orchestral in its approach to sonority. The advances in pianism found in the "Wanderer" Fantasy are also to be found here: tremolandos and rapid octaves but with no bravura ambitions. It's not exuberance that dominates here but deadly seriousness.
운명적인 기본 모티프, 짧고 긴...1악장을 지배하는 것은 2개의 다른 악장들에도 그 흔적을 남깁니다. 이 소나타 전체는 울려 퍼지는 것에 대한 접근 방식에서 매우 관현악적입니다. <방랑자 환상곡>에서 발견된 피아니즘의 진보는 여기에서도 발견되는데, 트레몰로와 빠른 옥타브가 있지만 화려한 기교에 대한 야망은 없습니다. 여기를 지배하는 것은 활기 넘치는 것이 아니라 극도로 진지한 것입니다.
Sonata in C major, D. 840 / 소나타 15번
I. Moderato
II. Andante
III. Menuetto & Trio
IV. Allegro
Schubert's piano writing is not just vocal and songlike in its inspiration, it derives at least as much from orchestral ideas. This emerges from the sonatas written between 1823 and 1826. The opening movement of the unfinished C major Sonata of April 1825 looks very much like the piano reduction of a symphony. In a piano reduction, the notes are there merely as a guide. The player has to probe deep behind the notes and lay bare a third dimension in sound. He also has to leave far behind him all that is typically pianistic. This may be one of the reasons why Schubert's keyboard writing was long regarded as unpianistic. Such a reproach seems old-fashioned now that pieces such as Brahms' B flat major Concerto and Stravinsky's "Petrushka" have established themselves in the repertory. Faced with such latent orchestral and chamber works we must ask ourselves if these pieces have failed to achieve their purpose. Was it by mistake that they ended up as piano pieces? We can answer this question by comparing the original version of the "Wanderer" Fantasy with Liszt's arrangement for piano and orchestra. Liszt did little more than identify the work's latent orchestral sonorities. He brought what was hidden to the surface. This is precisely why a good performance of the original is more convincing. Where Schubert conjures up an orchestra, a chamber ensemble or a lieder recitalist on the piano, he does so with pianistic means. The way he uses these resources is one of the charms of these works. The pedal plays an important role in overcoming overtly pianistic elements. Anton Rubinstein was right when he said of Schubert's piano music that the pedal is the soul of the piano. Unfortunately, Schubert's notation is often misunderstood. There are two ways of writing down the notes. One of these ways shows how long a note should sound, the other how long the finger should or can hold down the key. The first way is called "musical" notation, the second "technical" notation. The two may be identical, but they don't have to be. After all, the pedal can sustain the note after the finger has left the key. Schubert's notation is technical. It shows how long the key should be held down, not always how long the note should be sustained, musically necessary though that is. As Schubert's own pedal markings are economical in the extreme the player has to decide where the pedal must come to the aid of the notation. Let me play you a passage from the second movement of the C major Sonata.
슈베르트의 피아노곡은 목소리와 노래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적어도 그것과 동일한 관현악적인 아이디어에서 얻은 것입니다. 이것은 1823년과 1826년 사이에 작곡된 소나타들에 나타납니다. 1825년 4월에 미완성된 소나타 15번 C장조의 1악장은 교향곡의 피아노 축소판과 매우 유사합니다. 피아노 축소판의 경우 음들은 단지 안내자의 역할을 합니다. 연주자는 음들에 숨겨진 의도를 깊이 조사하여 생동감 있는 소리를 드러내야 합니다. 그 역시 전형적으로 화려한 피아노 연주를 모두 앞질러야 합니다. 이것은 슈베르트의 피아노곡이 화려하지 않다고 여겨졌던 이유들 중의 하나일 지도 모릅니다.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B플랫 장조와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 같은 작품들이 레퍼토리에 자리 잡게 됨에 따라 그러한 비난은 고루하게 보입니다. 그러한 잠재된 관현악 및 실내악 작품들을 보면서 우리는 이 작품들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관현악 및 실내악 작품들이 결국 피아노곡들이 된 것은 실수였을까요? 우리는 <방랑자 환상곡>의 원곡과 리스트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편곡을 비교함으로써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습니다. 리스트는 <방랑자 환상곡>의 잠재된 관현악적인 소리를 찾는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표면에 숨겨진 것을 가져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원곡의 좋은 연주가 더 확실한 이유입니다. 슈베르트가 오케스트라, 실내악 앙상블, 또는 피아노로 반주하는 가곡 독창자를 연상시키는 곳에서는 피아노에 적합한 수단으로 작곡합니다. 그가 이런 수단을 사용하는 방식은 이 작품들의 매력 중의 하나입니다. 페달은 분명히 피아노에 적합한 요소들을 극복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프란츠 리스트의 제자였던) 안톤 루빈스타인이 슈베르트의 피아노 음악에서 페달은 피아노의 영혼이라고 말했던 것이 옳았습니다. 불행하게도 슈베르트의 표기는 종종 오해됩니다. 음들을 표기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 방식들 중의 하나는 음이 얼마나 오랫동안 울려야 하는지, 다른 하나는 손가락이 얼마나 오랫동안 건반을 누르거나 누를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첫 번째 방식은 “음악적인” 표기법, 두 번째 방식은 “기술적인” 표기법입니다. 이 두 가지 방식이 동일할지도 모르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결국 페달은 손가락이 건반에서 떠난 후에 음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슈베르트의 표기법은 기술적입니다. 음악적으로 필요하지만, 건반이 얼마나 오랫동안 눌러져야 하는지를 보여주며, 음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어야 하는지 항상 나타내지는 않습니다. 슈베르트 자신의 페달 표시가 매우 적으므로 연주자는 페달이 어디에 표기되어야 하는지 결정해야 합니다. 제가 소나타 15번 C장조의 한 패시지를 여러분에게 연주해드리겠습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If played literally, without the necessary harmonic pedal, this passage would sound grotesque rather than grandiose and it would lose its orchestral fullness.
필수적인 하모닉 페달 없이 그대로 연주한다면, 이 패시지는 웅장하기보다는 우스꽝스럽게 들릴 것이며 그 관현악적인 풍부함을 잃을 것입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With Schubert, there are many bass notes that must continue to sound in the pedal. Even on those occasions where in latent string writing we can imagine the bass notes as pizzicato, the pedal must intervene. Here's the start of the slow movement of the B flat major Sonata with no pedal:
슈베르트의 곡에는 페달에서 계속해서 소리 내야 하는 베이스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피치카토(바이올린이나 비올라, 첼로 등의 찰현악기에서 활을 사용하지 않고 현을 손가락으로 퉁겨 연주하는 주법)로 베이스음들을 상상할 수 있는 잠재된 현악 작품에도 페달이 개입해야 합니다. 여기 페달이 없는 소나타 21번 B플랫 장조의 느린 2악장의 첫머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Although not unattractive, this sound would constitute a misunderstanding. On the piano, the pianissimo cantilena of the two violins or voice parts acquires its gentle gleam only through the pedal: its reverberation means that the accompanying notes add to the colour of the vocal lines.
매력적이지는 않지만, 이 소리는 잘못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피아노에서 2대의 바이올린이나 성악 파트의 피아니시모(매우 여리게) 칸틸레나(성악이나 기악에 사용되는 서정적인 선율, 또는 그러한 주법)는 페달을 통해서만 부드러운 빛을 얻습니다. - 그 잔향은 반주하는 음들이 성악 선율들의 색채에 추가된다는 의미입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Without this reverberation this vocal line would remain weak and would break down into individual notes. Even if Schubert hadn't left us one of his rare pedal markings here, we'd know that the pedal has to sustain the harmonies a bar at a time. The fact that staccato notes should not always be short with Schubert emerges from those passages where he places staccato dots over the notes while also asking for a legato, as at the beginning of the second movement of the D major Sonata or in the second subject of the first of the Op. 142 Impromptus. Some of the shortness and lightness of touch is retained in spite of the pedal.
이 잔향이 없다면 이 성악 선율은 약하게 남아 개별 음들로 나눠집니다. 슈베르트가 여기에 페달 표시들을 거의 남기지 않았지만, 우리는 페달이 따로따로 한 마디씩 화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슈베르트의 작품에서 스타카토로 연주하는 음들이 항상 짧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소나타 17번 D장조 2악장이나 즉흥곡 작품 142의 1번 중 제2주제에서처럼, 슈베르트가 레가토(음과 음 사이를 이어서 연주)를 요구하는 반면에 음들에 스타카토 점들을 배치하는 패시지들에서 나타납니다. 페달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짧고 가벼운 터치가 지속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e first movement of the C major Sonata again shows Schubert's fondness for chromatically neighbouring keys. That the second subject is introduced in B minor in a piece in C major, while the development section again culminates in B minor and the recapitulation starts in B major - even if only apparently - all this reveals a rare boldness even by Schubert's standards. Neither the scherzo nor the finale of this sonata was completed. There has been no shortage of attempts to complete them. For my own part, I don't regret that they were left unfinished. The material of the fourth movement at least is not worthy of the first two movements. Like the "Unfinished" Symphony in B minor the C major Sonata is in my view adequately rounded off with its Andante. The Andante of the B minor Symphony leaves the listener transported whereas the Andante of the C major Sonata leaves us in a state of utter melancholy.
소나타 15번 C장조 1악장은 슈베르트가 반음으로 인접한 조성을 선호한다는 것을 다시 보여줍니다. C장조인 곡에서 제2주제가 b단조로 도입되고 발전부가 b단조로 다시 절정에 이르며 재현부가 B장조로 시작한다는 것은 - 분명히 유일하지만 - 전부 슈베르트의 기준에서조차도 드문 대담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소나타는 스케르초 악장도 마지막 악장도 미완성입니다. 이 악장들을 완성하려는 시도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이 악장들이 미완성으로 남았다는 것에 대해 유감스럽지 않습니다. 적어도 네 번째 악장의 소재는 첫 두 악장들의 가치가 없습니다. 교향곡 8번 b단조 <미완성>처럼 소나타 15번 C장조는 제 생각에 안단테(느리게)로 충분히 마무리됩니다. 교향곡 8번 b단조의 2악장 안단테는 청취자를 황홀하게 만들지만, 소나타 15번 C장조의 2악장 안단테는 우리를 완전히 우울한 상태로 만듭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is chord with which the phrase dies away before the final tutti is arguably the most pallid major chord ever written. No minor chord could be as depressing, no dissonance as searing. There's no trace here of the warmth of death and the sweet allure of the other world that characterizes Schubert's music from "Erlkonig" to the late works whenever a lyrical major unfolds within a minor world. The Andante of the B minor Symphony had still opened up the transcendental world referred to in the song "Der Wanderer": "Wherever you are not, there happiness is to be found."
마지막 전체 연주가 나오기 전에 서서히 사라지는 이 화음은 틀림없이 지금까지 쓰인 가장 창백한 장3화음입니다. 단3화음이 우울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불협화음이 격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서정적인 장조가 단조 세계로 펼쳐질 때마다 <마왕>에서 후기 작품들에 이르기까지 슈베르트의 음악을 특징짓는 죽음의 온기와 다른 세계의 달콤한 매력에 대한 흔적이 여기에 없습니다. 교향곡 8번 b단조 <미완성>은 여전히 가곡 <방랑자>에 언급된 초월적인 세계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 “네가 없는 곳, 거기에 행복이 있다.” (슈미트 폰 뤼벡의 시 <방랑자>에서 발췌)
https://www.youtube.com/watch?v=ke8NEmrAr4U
DVD 2
이 DVD에는 슈베르트 생전에 출판된 세 개의 소나타 가운데 두 편이 실려 있다. 서로 전혀 다른 영적 세계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두 곡은 많은 공통점을 보여준다. 둘 다 1825년에 작곡되었으며 대규모의 4악장제를 취하고 있다. 당대의 “규칙”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도 같다(슈베르트는 사후 100여 년에 걸쳐 학자인 척하는 인물들로부터 대규모의 형식, 특히 “소나타” 형식을 다루는데 “무능력”하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또 두 곡 모두 작곡가가 극도로 큰 규모에서도 하이든마저 질투심을 느낄 정도로 최소한의 것에서 최대한을 이끌어낼 수 있는 능률의 대가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서사의 대가라는 사실도 증명한다. 이 곡을 듣노라면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왜, 어떻게, 그리고 누구에게 일어날지까지 알고 싶어진다(슈베르트의 주제는 모차르트의 경우만큼이나 대단히 “성격적”이다.). 그리고 이런 면은 화성적인 연관성에서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다. 그의 주제는 오로지 혹은 주로 (일반적인 구성 요소인) 선율과 화성, 리듬으로만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느낌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마도 <소나타 16번 a단조> 첫머리를 여는 (그리고 지배하는) 주제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것이 순수한 선율과는 정반대라는 사실이다. 선율을 뒷받침하는 짜임새나 (희미하게 암시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화성의 징후 같은 것도 없으며, 최소한의 선율을 수반하는 견고한 화성 진행이 있을 뿐이다. 단순한 악상에서 이끌어낸, 엄청난 길이의 이 놀라운 악장은 매번 음을 다르게 배치하고 (화성적, 구조적, 심리적, 감정적인 면에서) 다른 맥락 속에 둠으로써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슈베르트의 “지루한 반복”을 트집 잡는 이들은 주제가 어떤 맥락에서 등장하는지를 의식하지 않고 듣는 것이다. 슈베르트의 곡에서는 문맥이 내용을 규정하는데도 말이다. 그의 소나타는 확실한 구조를 지니고 있음에도 “구조물”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 악장에서 비정통적인 재현부는, (극의 발전이 이 지점에 이르면 전통적인 재현을 취할 경우 재앙으로 화하게 된다는) 필연적인 느낌을 지니고 있어 현학가의 골치를 아프게 하는 적절한 예가 되고 있다. 이어지는 2악장 안단테는 꿈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교묘하고도 감동적인 일군의 변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또한 슈베르트의 모든 소나타 가운데 유일한 변주곡 악장이기도 하다. 상쾌한 3악장 스케르초는 전통적인 미뉴에트에 (거의) 작별을 고하는 그의 첫 번째 스케르초이며, 무궁동 풍으로 진행하는 4악장 피날레는 이 위대하고도 일관되게 독창적인 소나타에 숨 막힐 정도로 흥분되는 대미를 장식한다.
위대한 작품이라는 점에선 마찬가지이나 그 밖의 면에서는 판이한 <소나타 17번 D장조>는 슈베르트의 작품 가운데 유일무이한 곡이다. 화려한 기교의 대향연과 활달함, 즐거움, 유머가 두드러지는 반면 서정적인 면은 다소 덜하며, 우울한 느낌이나 단조 악구는 거의 찾을 수 없는 대신 이따금 화려한 색채가 재빨리 만개했다 사라지곤 한다. 이 곡은 작곡가에 대한 모든 통상적인 이미지와 모순되지만, 그럼에도 시종일관 슈베르트답다.
Sonata in A minor, D. 845 (Op. 42) / 소나타 16번
I. Moderato
II. Andante poco mosso
III. Scherzo. Allegro vivace - Trio. Un poco più lento
IV. Rondo. Allegro vivace
"Schubert's music recalls the delightful contours of the Austrian countryside." This is not sentence of mine. I'm quoting it only so that you can share my anger at it. Schubert's music is said to be cosy, pleasant, sentimental and gently rounded - this prejudice is easily refuted by the great A minor Sonata, Op. 42. Of course, Schubert could be all this, too - although I rarely find him to be sentimental. But how many more essential facets could his music assume? Like all really great composers Schubert cannot be pigeon-holed in terms of his character. Even his dynamic performance markings refute the notion of a gentle lyricist. It's not just his piano works that contain a vast range of markings from pianississimo - in other words, ppp - to fortississimo - that is, fff - that go beyond anything previously known. Even songs such as "Der Doppelganger" reveal Schubert's urge to express himself in extremes, from a mere whisper to a scream. Schubert's A minor Sonata, Op. 42, was completed early in 1825. It was the first of his sonatas to appear in print. Only two other sonatas were published during his lifetime: the D major Sonata, Op. 53, and the G major Sonata, Op. 78. If we add the "Wanderer" Fantasy, the six Moments musicaux and the first two Impromptus from his Op. 90, we have a complete list of all the works for piano two hands that Schubert himself lived to see published. Two main themes are contrasted in this sonata's opening movement. The opening theme is the more dominant, a point that no longer goes without saying as it did with Beethoven. These two themes inhabit very different worlds even though they enter in the same key. The first is narrational, freely declamatory, hesitant, whispered, entreating.
“슈베르트의 음악은 오스트리아 전원의 기분 좋은 윤곽을 생각나게 한다.” 이것은 제 문구가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과 이 말에 대한 제 분노를 나눌 수 있도록 인용하고 있습니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아늑하고 즐겁고 감상적이며 부드럽게 속삭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편견은 위대한 소나타 16번 a단조에 의해 반박됩니다. 물론 저는 그가 감상적인 것이 드물다는 것을 알지만, 슈베르트도 이 모든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이 얼마나 더 많은 필수 요소들을 가질 수 있을까요? 진정 위대한 모든 작곡가들처럼 슈베르트도 그의 특징에 대해 알 수 없습니다. 그의 다이내믹한 연주에 대한 표시들조차도 다정한 작사가의 생각을 반박합니다. 이전에 알려진 것 이상으로 뛰어난, 피아니시시모(ppp)에서 포르티티시모(ppp)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위의 표시들이 포함된 것은 그의 피아노 작품들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림자>(도플갱어) 같은 노래들조차도 단순한 속삭임에서부터 비명에 이르기까지 극단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려는 슈베르트의 충동을 드러냅니다. 슈베르트 소나타 16번은 1825년 초에 완성되었습니다. 그의 소나타 중에서 처음 출판되었습니다. 그 외에는 평생 동안 2개의 다른 소나타(17번 D장조와 18번 G장조)만이 출판되었습니다. 우리가 <방랑자 환상곡>, 6개의 <악흥의 한때>, 즉흥곡 작품 90 중에서 첫 두 곡을 추가하면, 우리는 슈베르트 자신이 살아서 출판된 것을 보게 되는 2개의 손을 위한 피아노 작품 전집 목록을 가지게 됩니다. 이 소나타의 1악장에서는 두 개의 주요 테마가 대조됩니다. 첫머리의 테마는 베토벤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말할 필요도 없이 보다 지배적입니다. 이 두 개의 주제는 같은 조성으로 들어가더라도 매우 다른 세계에 존재합니다. 제1주제는 이야기 형식으로 자유롭게 열변을 토하고 우유부단하며 속삭이고 간청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As so often with Schubert, soloist and chorus alternate in the opening theme. The soloist begins.
슈베르트와 마찬가지로 독주자와 합창단이 첫머리의 테마에서 번갈아 나옵니다. 독주자가 시작하면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e chorus answers.
합창단이 대답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e second theme, conversely, enters with searing implacability and certainty.
제2주제는 반대로 대담하고 확실하게 들어갑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A kind of second subject is derived from a minor variant of the second theme.
비슷한 두 번째 주제가 제2주제의 단조 변주에서 파생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In the coda the sense of pathos acquires a note of catastrophic grandeur.
코다에서 연민을 자아내는 감각은 대단원의 웅장한 음을 얻습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e second movement is one of Schubert's most magnificent sets of variations. Its theme is that of a graceful dance. It almost seems to float. I simply can't believe that the first variation is four bars shorter than the theme and all the other variations. Such a deviation from the norm is completely unthinkable is variation form, especially in the first variation after the theme. Paul Badura-Skoda was the first to draw attention to this error on the part of Schubert or his engraver. In this way he has shamed generations of performers and editors who failed to spot this mistake. How is it that Schubert did not correct this error? And why did he ignore a number of other, less serious mistakes? In the case of the first edition of the "Wanderer" Fantasy, too, one wonders if Schubert took the trouble to read a set of proofs or even if he had a chance to do so. At least the text of the "Wanderer" Fantasy has been re-established in modern editions on the basis of the autograph score. The autograph of Op. 42, conversely, is unfortunately no longer extant. And so it remains the performer's relatively straightforward task to complete the missing bars in the Andante in an appropriate way. I shan't play you my own completion just now but will leave you to see if you can identify it while listening to it. The final variation in the Andante anticipates the final song from the cycle "Die schone Mullerin", the song "Des Baches Wiegenlied". It already combines the hunting horns, the gently flowing brook and the atmosphere of rapt dissolution. The scherzo does everything it can to confuse the listener. Bizzare and disjointed, it goes from one extreme to another. The Trio, by contrast, is at peace with itself: it's a landler from another world. The final movement darts past, demonic and shadowy, but then there are moments of desperate passion with gypsy colouring. The delightful contours of the Austrian countryside appear briefly in the second subject-group but are swiftly thrust aside. Anyone who, following the wild frenzy of the final stretta, with its accelerando at the end, still believes in the cosy Schubert is beyond help.
2악장은 슈베르트의 가장 아름다운 변주곡들 중의 하나입니다. 그 테마는 우아한 춤곡입니다. 거의 떠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첫 번째 변주가 테마와 다른 변주들보다 더 짧은 네 마디라는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이런 표준에서의 일탈은 완전히 상상할 수 없는데, 특히 테마 이후 첫 번째 변주에서 변주 형식입니다. 파울 바두라-스코다는 슈베르트 또는 그의 편집인의 일부에 대한 이 오류에 관심을 처음 표명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그는 이 실수를 발견하지 못한 연주자들과 편집자들의 세대를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슈베르트는 어떻게 이런 오류를 수정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그는 왜 많은 다른 것, 덜 심각한 실수들을 무시했을까요? <방랑자 환상곡> 초판의 경우에도 슈베르트가 일련의 증거들을 해석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는지 혹은 그렇게 할 기회가 있었는지 여부가 궁금합니다. 적어도 <방랑자 환상곡> 악보는 자필 서명한 악보에 기초하여 현대판에서 다시 확립되었습니다. 반대로 소나타 16번의 자필 악보는 불행하게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2악장 안단테에서 빠진 마디들을 적절한 방법으로 완성하는 것은 연주자의 상대적으로 간단한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저는 지금 제가 완성한 것을 연주하지 않겠지만, 듣는 동안 발견할 수 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2악장 안단테에서 마지막 변주는 슈베르트의 연가곡 <아름다운 물레방앗간의 아가씨>에 나오는 마지막 곡인 <시냇물의 자장가>를 기대합니다. 이미 사냥용 뿔피리, 부드럽게 흐르는 시냇물, 완전히 몰입하여 녹는 분위기를 결합합니다. 3악장 스케르초는 청취자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합니다. 기괴하고 혼란스러우며 극단에서 극단으로 흐릅니다. (3악장에서 스케르초와는) 대조적으로 트리오는 그 자체로 편안한데, 또 다른 세계의 랜틀러(18세기 말경 오스트리아, 독일 남부, 스위스에서 유행했던 3/4박자의 민속춤)입니다. 마지막 4악장 론도는 악마처럼 어둡게 지나서 달려가지만, 집시의 색깔을 곁들인 필사적인 열정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전원의 기분 좋은 윤곽은 두 번째 주제 그룹에 짧게 나타나지만, 즉시 떠밀립니다. 누구든지 마지막 스트레타(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빠른 템포로 연주되는 악곡의 종결부)의 광란을 따라가면서 결국 아첼레란도(점점 빠르게)와 함께 여전히 은밀한 슈베르트가 도와줄 수 없다고 믿습니다.
Sonata in D major, D. 850 (Op. 53) / 소나타 17번
I. Allegro vivace
II. Con moto
III. Scherzo. Allegro vivace
IV. Rondo. Allegretto moderato
Schubert's admiration for Beethoven bordered on idolatry. As he lay dying, his friends responded to his wishes and brought him books by Fenimore Cooper - the author of the "Leather-Stocking Tales". Less well known is the fact that he asked them to play him something: Beethoven's C sharp minor Quartet, Op. 131. It had been published the previous year but hadn't yet been played. Perhaps it was Schubert's last great pleasure to hear this work. Later, when he became delirious, he's said to have demanded: "Take me away from here under the earth! Beethoven does not lie here!" For all his admiration, Schubert wasn't cowed by Beethoven's greatness. He admired Beethoven too much to have dared challenge him with his own weapons. Like Beethoven, he wrote sonatas, quartets and symphonies but he wrote them in his own way. The difference between their musical natures is something he must have felt clearly. If Beethoven was an architect Schubert composed like a sleepwalker. In Beethoven's sonatas we never lose our sense of orientation. These works justify themselves at every moment. Schubert's sonatas "happen". There's something disarmingly naive about these pieces. I don't mean that they are primitive or even amateurish. Naivety and sophistication are as closely related in this music as they are in Haydn's. I would warn you not to confuse naivety with simplicity. Schubert's music is often anything but simple. To demand simplicity as the chief virtue from anyone playing Schubert is to simplify him unduly. Anyone who does so debases great music. Perhaps this element of randomness is one of the reasons why younger musicians are so fond of these works and why audiences have recently been much more uninhibited in their response. Mahler's symphonies - the second great discovery of the post-war period - are a parallel case. Neither composer offsets chaos with any self-contained musical order. No charming or grim reason guided what happens. They could often have gone off in another direction. We don't feel to be in control of the situation but rather its victim. From many of us, this reflects our experiences of a world whose problems, mounting catastrophically, seem to defy any solution. The young Mahler played one of Schubert's A minor sonatas at his final exam in Vienna. The second subject-group of the finale of the D major Sonata may also have left its mark on Mahler's Fourth Symphony.
베토벤에 대한 슈베르트의 존경은 거의 우상 숭배와 같았습니다. 그가 죽어가고 있을 때 그의 친구들은 그의 소망에 응답하여 <가죽스타킹 이야기>의 저자인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가 쓴 책들을 가져왔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그가 친구들에게 베토벤 현악4중주 14번 c#단조 연주를 요청했다는 것입니다. 베토벤 현악4중주 14번은 그 전년도에 출판되었지만 아직 연주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 작품을 듣는 것은 슈베르트의 마지막 큰 즐거움이었을 것입니다. 나중에 그가 의식이 혼미해졌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요구했습니다. - “나를 여기에서 땅속으로 데려가라! 베토벤을 여기에서 거짓말하지 않아!” 슈베르트는 베토벤을 존경했지만, 그의 위대함에 겁먹지 않았습니다. 그는 베토벤이 자신의 무기로 그에게 감히 도전했다고 감탄했습니다. 베토벤과 마찬가지로 그는 소나타, 4중주, 교향곡을 썼지만 자신의 방식으로 작곡했습니다. 그들의 음악적 본성의 차이가 분명히 느껴졌을 것입니다. 베토벤이 건축가였다면 슈베르트는 몽유병자처럼 작곡한 경우입니다. 베토벤의 소나타에서 우리는 결코 우리의 방향 감각을 잃지 않는데, 매 순간 그 자체를 정당화합니다. 슈베르트의 소나타는 “생기는” 것인데, 무척 천진난만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저는 슈베르트 소나타가 원시적이거나 심지어는 아마추어 같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천진난만함과 세련미가 하이든에 있는 것만큼 이 음악에서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천진난만함과 단순함을 혼동하지 말라고 경고했을 것입니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흔히 단순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슈베르트를 연주하는 사람의 주된 덕목으로 단순함을 요구하는 것은 그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렇게 하면 위대한 음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임의적인 성질의 요소는 보다 젊은 음악가들이 이 작품들을 좋아하고 청중들이 최근에 그들의 반응에서 훨씬 더 제약받지 않은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두 번째 위대한 발견인 말러의 교향곡들은 아주 유사한 경우입니다. 어떤 매력이나 끔찍한 이유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안내하지 않는데, 종종 또 다른 방향으로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상황을 통제하는 대신 그 희생자가 되는 것을 느낍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것은 비극으로 커져가는 문제들이 해결책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반영합니다. 젊은 말러는 비엔나에서의 마지막 시험에서 슈베르트의 a단조 소나타들 중 한 곡을 연주했습니다. 소나타 17번 D장조 피날레(4악장)의 두 번째 주제 그룹 역시 말러의 교향곡 4번에서 그 흔적을 남겼을지도 모릅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e D major Sonata was written in Gastein in August 1825. It's dedicated to a professional pianist, Schubert's friend, von Bocklet, and it's aimed entirely at a virtuoso. Enthusiasm and zest for life find expression here - as in the "Wanderer" Fantasy and the "Great" C major Symphony - in tempestuously repeated chords and repeated notes.
소나타 17번 D장조는 1825년 8월 가슈타인에서 작곡되었는데, 전문 피아니스트로 슈베르트의 친구인 카를 마리아 폰 보클레트에게 헌정되었으며, 전적으로 비르투오소(거장)를 목표로 합니다. 인생에 대한 열정이 여기서 - <방랑자 환상곡>과 교향곡 9번 <그레이트>에서와 같이 - 격렬하게 반복된 화음과 반복음에서 표현을 찾습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e repeat of the exposition is absolutely necessary in this tightly organized movement. The harmonic surprise at the start of the development section acquires all the greater weight in consequence. The tone colour of the fanfare theme that enters here recalls the last piece from Schumann's "Papillons". The great second movement is headed "Con moto" - that is, animated. Schubert deleted the word "Andante" before this marking - there's nothing graceful or dancelike about this movement, unlike Schubert's other Andantes. It combines the gestural language of a spirited narrator with the sound of a male-voice choir.
제시부의 반복은 이 단단히 조직된 악장에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발전부가 시작하는 부분에서 화성적인 놀라움은 결과적으로 보다 큰 무게를 모두 얻습니다. 여기에 들어가는 팡파르 테마의 음색은 슈만 <나비>의 마지막 곡을 떠오르게 합니다. 위대한 2악장은 “콘모토”, 즉 활기찬 것입니다. 슈베르트는 이 표시가 나오기 전에 “안단테”라는 단어를 삭제했습니다. - 슈베르트의 다른 안단테 악장들과는 달리 이 악장에는 우아하거나 춤곡 같은 것이 없습니다. 2악장은 활발한 내레이터의 몸짓언어를 남성 합창단의 소리와 결합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is glee-club sound led directly to Thomas Koschat, the once famous choral composer from Carinthia. He's said to have been in despair because he'd wandered from C major to F major and couldn't find his way back again. Schubert certainly can't be accused of a lack of modulation. The harmonic procedures in this movement must have taken his friends' breath away. The Scherzo reminds us that the mysterious "Gastein" Symphony was also written at this time. This is the most symphonic Scherzo of all the sonatas and the most difficult for the pianist. The final Rondo is remarkably childlike. The theme at the beginning is the only one in any Schubert sonata that could have been written by someone else.
이 남성 합창단의 소리는 한때 (오스트리아 남부의) 케른텐 주 출신의 유명한 합창 작곡가였던 토마스 코샤트에게 직접 이어졌습니다. 그는 C장조에서 F장조로 방황했기 때문에 절망에 빠졌다고 말했으며 다시 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슈베르트는 물론 전조(조바꿈)의 부족으로 비난받을 수는 없습니다. 이 악장에서 화성법은 그의 친구들을 깜짝 놀라게 했을 것입니다. 3악장 스케르초는 우리에게 신비한 <가슈타인> 교향곡 역시 이때 작곡되었다는 것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것은 가장 교향적인 스케르초이며 피아니스트에게 가장 어렵습니다. 마지막 4악장 론도는 눈에 띄게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첫머리의 테마는 다른 누군가가 작곡했을지도 모르는 있는 어떤 슈베르트 소나타에서 유일한 것입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Schumann even thought it was a satire of the style of the salon composers Pleyel and Vanhal. He spoke of grimaces used to frighten children. Certainly the second subject-group in G minor has a vague similarity with Schumann's "Knecht Ruprecht" from his "Album fur die Jugend".
슈만은 심지어 살롱 작곡가인 이그나스 플레이엘과 요한 밥티스트 반할의 스타일에 대한 풍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아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찡그린 표정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확실히 g단조에서 두 번째 주제 그룹은 슈만의 <어린이를 위한 앨범> 12곡 <(산타클로스를 따라다니는)소년 루프레히트>와 막연하게 유사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And here is Schumann.
그리고 여기 슈만입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Is this one of the most naive movements that Schubert ever wrote? Sometimes the childlike qualities of this Rondo remind me of a portrait of a child painted by a grown-up. It reminds me of those intellectual poets of German Romanticism who felt the need to write poems in a populist tone.
이것은 슈베르트가 쓴 가장 천진난만한 악장들 중 하나인가요? 때때로 이 론도의 어린애 같은 성질은 어른이 그린 아이의 초상화를 떠오르게 합니다. 제게 대중영합주의자의 톤으로 시를 쓸 필요가 있다고 느꼈던 독일 낭만주의의 지적인 시인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eEYS9QUuxc
DVD 3
1826년에 작곡된 <소나타 18번 G장조>는 슈베르트의 생전에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출판된 소나타였다. (그는 모든 위대한 작곡가 가운데 작품이 가장 드물게 연주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교향곡이 상업적으로 공연되는 것을 단 한 번도 듣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가운데 가장 위대한 마지막 두 교향곡의 경우에는 어떤 형태로도 연주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 또한 그 가운데 가장 여유롭고 광대하며, 일부 연주에서는 가장 긴 곡이기도 한 이 작품은 슈만이 만들어낸 “천국적인 길이”라는 표현에 대한 완벽한 예시이기도 하다. 쉽지는 않으나 기교에만 치우치지도 않는 이 작품은 평온한 분위기가 지배적이며 심오한 서정성과 (장조와 단조 사이에 생겨나는 긴장감을 시적으로 탐구하는) 풍부한 화성 대조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예기치 않은 타오르는 번민을 격정적으로 분출함으로써 이따금 활기를 띠기도 한다. 모두 모데라토(보통 빠르기로) 템포로 지정되어 있는 네 악장은 서로를 완벽하게 보완해 줌으로써 설득력 있고 대단히 만족스러운 총체를 이룬다. 그러나 이 작품은 원래는 한 편의 소나타가 아니라 네 개의 분리된 작품으로 출판되었으며, 각 악장에는 “환상곡”, “안단테”, “미뉴에트”, “알레그레토”라는 제목이 붙었다. 상당히 부적절한 “환상 소나타”라는 별명은 바로 이 때문에 생긴 것이다. 비록 슈베르트가 지어낸 제목은 아니었으나, 그는 이 명칭을 거부하지 않았다.
아마 그는 “이름 따위가 무슨 상관인가?”라고 말했을 것이다. 제목 문제로 시시콜콜히 다투는 것보다는 팔기 좋은 형태로 만들어서(그 당시 “소나타”라는 용어는 가정용 수요를 유인하는데 적당치 않았다.) 출판할 수 있게 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D. 899>로 묶인 네 개의 놀라운 작품을 “즉흥곡”으로 이름 지은 것 역시 작곡가의 의도가 아니었으나, 두 번째 연작을 출판업자에게 건넬 때는 그 스스로 같은 명칭을 제안했으며, 각 곡에 “5번”부터 “8번”까지 번호를 매겨놓기까지 했다. 그러나 따로 연주하는데 부적절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각 곡은 성격뿐만 아니라 특히 조성 관계를 감안해 배열한 슈베르트의 조치는 이들 작품이 한 묶음의 잡동사니 살롱용 소품이 아니라 영감에 차 있고 대가다운 것임을 말해준다. 주의 깊게 구성된 세트의 일부임을 감안하고 들으면, 각 곡은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아울러 이어서 들을 경우 “즉흥곡”이란 용어가 처음부터 무의미했음을 분명히 깨닫게 된다. 이 용어는 형식도, 성격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그리 대단치는 않으며 대부분의 경우 10분 안팎 정도 길이에 연주하는데 엄청난 기교를 요구하지는 않는 소품이라는 사실 정도만 짐작케 할 뿐이다. 형식적인 면에서 슈베르트의 “즉흥곡”은 변주곡에서 미뉴에트(혹은 스케르초)-트리오 형식, 코다가 딸린 3부 형식, 론도와 소나타 형식의 혼합 등 다방면에 걸쳐 있으며, 이들 가운데 일부는 독특한 형식을 보여주기는 하나 역시 자유로운 즉흥연주와는 거리가 멀다. 역설적이게도, 전 즉흥곡 가운데 가장 유명하며 숭고한 서정이 돋보이는 <즉흥곡 G플랫 장조, D. 899>는 한 세기도 더 전에 출판되었을 당시에는 “G장조”로 표기되었다. 이러는 편이 더 쉽고 따라서 더 잘 팔리리라는 계산에서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읽기는 더 쉬우나 연주하기는 더 어렵다. 그리고 이 조성을 취할 경우, 총체적인 고려 아래 구성된 슈베르트의 영감에 찬 화성 세계가 무너질 뿐만 아니라 곡의 성격 역시 심각하게 훼손되고 만다.
Sonata in G major, D. 894 / 소나타 18번
I. Molto moderato e cantabile
II. Andante
III. Menuetto. Allegro moderato - Trio
IV. Allegretto
It said that Schubert's G major Sonata demands a poet of the keyboard. What is a poet of the keyboard? And why are there no poets of the violin or poets of the baton? It seems that the piano is best suited to evoking the most varied associations because it keeps having to change. The piano is held in ill repute as a percussive instrument. Its timbre is too neutral, it doesn't have the sensual immediacy of the violin or of the human voice. It waits to play a role. The piano is like one of those protean actors who seem to have no face and no identity of their own and who may even hate themselves, but that's why they are able to slip into any character role. There's another much narrower meaning to the term "poetic playing". This type of playing must appeal more to feeling than to reason. One shouldn't feel a work's constraining sense of order. As the pianist Josef Pembaur the Younger once said: "Poetic form must never force itself upon you and must never be too regular in its parts. A department store is unpoetical. A little house in the style of a villa inspires thoughts in a poetical way." A person who is poetical is not sober, dry, ironical, witty or grotesque. Nor is he monumental or heroic. Beethoven's Ninth is not poetical. Too much bravura, too much brilliance and aggression are not poetical, either. "Poetry in execution" is a lack of technique is a witticism ascribed to Busoni. It could just as well have been applied to Pembaur. Poetry in music must be intimate. Schubert's Moments musicaux, Schumann's "Kinderszenen" and "Waldszenen" are poetical. A sonata movement that is described as poetical is really being criticized for not remaining a miniature. This is one of the worst misunderstandings to which Schubert has been exposed right up to the present day. He was regarded as a miniaturist who died too young to master large-scale form. In his sonatas epic breadth was confused with lyrical fluidity. People failed to notice the tremendous dramatic conflicts. The ostensible mentality of a song composer inspired by poetry was transferred to his instrumental music. Schubert's sonatas are not poems that have ended up as instrumental works by mistake. Like every great composer, Schubert - it has to be said - was first and foremost a musician. He didn't write programme music that creates moods. He was a composer who embarked on a series of musical adventures. His boldness is that of his musical material, of the compositional processes. Even today the G major Sonata of 1826 is still known as the "Fantasie" Sonata. This title is not Schubert's. His publisher brought out the work under the title "Fantasie, Andante, Menuetto and Allegretto", as four pieces strung together. Nothing about the form of the sonata's opening movement suggests a fantasy. It corresponds in every way to traditional sonata form. The work's title, "Fantasie", and its dreamlike atmosphere may fire the imagination of listeners who like titles. Clearly, songlike, lyrical elements cannot be the basis of an entire sonata. Schubert has been criticized for relying too much on this - most unjustly, as this type of sonata already existed: Beethoven's "Pastoral" Sonata Op. 28 is but one example among many. Here, too, the main theme of the opening movement is apparently self-contained in a songlike manner.
슈베르트의 소나타 18번 G장조는 건반의 시인이라고 합니다. 건반의 시인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바이올린의 시인이나 지휘의 시인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피아노는 계속 변하기 때문에 가장 다양한 연계를 만드는데 가장 적합하다고 보입니다. 피아노는 타악기로서 좋지 않은 평판이 있습니다. 그 음색은 너무 중립적이며, 바이올린이나 인간의 목소리의 감각적인 직접성이 없습니다. 역할을 맡기를 기다립니다. 피아노는 얼굴이 없고 자신의 정체성이 없으며 자신을 싫어할지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다방면의 배우들 중의 한 명과 같지만, 그것이 캐릭터 역할에 빠질 수 있는 이유입니다. “시적인 연주”라는 용어에 대한 또 다른 보다 좁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유형의 연주는 판단보다 느낌에 더 호소해야 합니다. 작품의 제한적인 질서 의식을 느끼지 말아야 합니다. 피아니스트 요제프 펨바우어 2세가 한때 말했듯이 “시적인 형식은 결코 당신에게 그 자체를 강요해서는 안 되며 절대로 너무 규칙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백화점은 산문적입니다. 빌라 스타일의 작은 집은 시적인 생각들을 불러일으킵니다.” 시적인 사람은 냉정하지 않거나, 건조하지 않거나, 역설적이지 않거나, 재치 있지 않거나, 괴기스럽지 않습니다. 기념비적이거나 영웅적이지도 않습니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은 시적이지 않습니다. 너무 고도의 예술적인 기교에다가 너무 화려하며 공격적인 것들 역시 시적인 것이 아닙니다. “연주에서 시적인 것”은 부조니의 재치 있는 표현에 의하면 테크닉이 부족한 것입니다. 펨바우어에게도 적용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음악에서 시적인 것은 친밀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슈베르트의 <악흥의 한때>, 슈만의 <어린이의 정경>과 <숲의 정경>이 시적입니다. 시적으로 묘사된 소나타 악장은 미니어처로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비판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슈베르트가 바로 현재까지 노출된 최악의 오해 중 하나입니다. 그는 너무 일찍 죽어서 대규모 형식을 마스터할 수 없었던 미니어처 화가로 여겨집니다. 그의 소나타에서 폭넓은 서사시는 서정적인 우아함과 혼동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엄청난 극적인 갈등을 보지 못했습니다. 시에서 영감을 받은 가곡 작곡가의 표면적 사고방식은 그의 기악 음악으로 옮겨졌습니다. 슈베르트의 소나타들은 실수로 기악 작품들로 끝낸 시들이 아닙니다. 모든 위대한 작곡가들처럼 슈베르트는 - 말해져야 한다면 - 무엇보다도 더 음악가였습니다. 그는 분위기를 만드는 프로그램 음악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련의 음악적 모험을 시작한 작곡가였습니다. 그는 음악적인 소재와 작곡 과정에서 대담합니다. 오늘날에도 1826년의 소나타 18번 G장조는 여전히 <환상> 소나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제목은 슈베르트가 붙인 것이 아닙니다. 그의 출판사 편집자는 “환상곡, 안단테, 미뉴에트, 알레그레토”라는 제목으로 4개의 곡을 한데 묶었습니다. 소나타 1악장의 형식에 대한 어떤 것도 환상곡을 암시하지 않습니다. 모든 면에서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과 일치합니다. 작품의 제목인 <환상>과 그 꿈같은 분위기는 제목이 마음에 드는 청취자들의 상상력에 불을 지필 수도 있습니다. 분명히 노래처럼 서정적인 요소들은 전체 소나타의 기초가 될 수 없습니다. 슈베르트는 이것에 너무 많이 의존하여 비판받았는데, 가장 부당하게도 이런 유형의 소나타가 이미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 베토벤의 소나타 15번 <전원>이 많은 것들 가운데 한 예입니다. 여기서도 1악장의 메인 테마는 분명히 노래 같은 방식으로 자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I said that the theme was apparently self-contained. But we can hear that its ending is by no means final. One senses that it has to continue. The theme leads necessarily to the next musical idea. The same is true of Schubert's G major Sonata. Here is its opening.
저는 그 주제가 분명히 자체가 포함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마무리가 결코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것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주제가 필연적으로 다음 악상으로 이어집니다. 슈베르트 소나타 18번 G장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그 첫머리입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Here, too, it has to continue, here, too, a sense of development is guaranteed. I should add that in both sonatas impassioned storms break out in their development sections. In the second movement of the G major Sonata autograph and first edition differ on one important point. In the autograph the theme and its repeats are ornamented by eight turns. Seven of these are missing from the first printed edition. Should we blame the engraver for so many oversights? Or is it not much more likely that before the work went to press - this was one of the few pieces that Schubert saw into print - Schubert himself removed the turns because he thought them superfluous. These turns make the theme more like that of a minuet, more formal, more conventional. They seem like a throwback to Schubert's earlier music. The unornamented form of the theme strikes me as more inward and songlike. I'll now play you the beginning of the theme with the turns.
여기서도 계속해야 하는데, 여기서도 발전부에 대한 감각이 보장됩니다. 저는 두 개의 소나타에서 정열적인 폭풍이 그 발전부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덧붙여야 합니다. 소나타 18번 G장조 2악장에서 자필 악보와 초판은 한 가지 중요한 점에서 다릅니다. 자필 악보에서 주제와 그 반복은 8개의 돈꾸밈음으로 장식되는데, 그중 7개가 초판 인쇄본에서 누락되었습니다. 우리는 실수가 많다고 편집인을 비난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 작품이 언론에 공개되기 전이었다는 가능성이 더 높을까요? - 이것은 슈베르트가 인쇄된 악보를 들여다봤던 몇 안 되는 작품들 중 하나였습니다. - 슈베르트 자신은 돈꾸밈음들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거했습니다. 이러한 돈꾸밈음들은 주제를 보다 미뉴에트의 주제와 비슷하게, 보다 형식적으로, 보다 관습적으로 만드는데, 슈베르트의 초기 음악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꾸밈음이 없는 형태의 주제는 제게 보다 내면적인 노래 같은 느낌을 줍니다. 저는 이제 돈꾸밈음이 있는 주제의 첫머리를 연주할 것입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And now without the turns.
그리고 이제 돈꾸밈음이 없이 연주할 것입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Only in the first repeat, which is highly decorated, are the turns appropriate. In my own view the engraver forgot one of the two turns in bar 82. If I hadn't looked through the first printed edition I'd never have come across this contradiction between the sources. The scherzo includes one of the most beautiful landlers as a trio. And the very long - but certainly not too long - rondo evaporates into thin air at the end. The way Schubert does this is pure magic.
꾸밈음이 많은 첫 번째 반복에서만 돈꾸밈음이 적절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편집인이 82번째 마디에서 2개의 돈꾸밈음들 중에서 하나를 잊어버렸습니다. 제가 초판 인쇄본을 검토하지 않았다면 자료들 사이의 모순을 우연히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3악장 스케르초(3/4박자로 스케르초 형식은 맞는데 3악장 제목은 미뉴에트)는 트리오로 가장 아름다운 랜틀러 중 하나를 포함합니다. 그리고 매우 길지만 - 물론 너무 길지는 않지만 - 4악장 론도는 마지막에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슈베르트가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순수한 마법입니다.
Impromptus, D. 899 (Op. 90) / 즉흥곡 작품 90
No. 1 in C minor
No. 2 in E flat major
No. 3 in G flat major
No. 4 in A flat major
The view that Schubert makes no more demands on the pianist than Beethoven is inaccurate in many respects. Even in those cases where this view is the least misleading - in the short piano pieces that are less orchestral in character, the Impromptus and Moments musicaux - we notice that Schubert's piano writing can often no longer be derived from strict part-writing. Compared to Beethoven's part-writing it seems painterly and atmospheric. Beethoven, too, occasionally went in for tone-painting but the rigour of the writing, the draughtsmanship and musical architecture remain unaffected. With Schubert it's become porous. His contours often seem to have dissolved into light, dark or colour. And yet colour isn't something fixed, as it was later to be with Liszt, for whom it was a very specific instrumental tone colour. It changes atmospherically within the phrase. Octave doublings come and go.
슈베르트가 베토벤보다 피아니스트로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다는 견해는 여러 면에서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 견해가 작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경우에도 - <즉흥곡>, <악흥의 한때>와 스타일이 같은 덜 관현악적인 짧은 피아노곡들에서 - 우리는 슈베르트의 피아노곡이 더 이상 엄격한 각 성부의 작곡에서 파생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베토벤의 각 성부의 작곡과 비교하면 전형적인 그림 같은 분위기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베토벤도 가끔 음화(音畵 : 표제 음악에서 가사나 이야기를 음악적으로 묘사하는 일)에 열중하지만 엄격한 작곡, 데생 실력, 음악적인 건축은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슈베르트와 함께 음화는 표면이 됩니다. 그의 윤곽은 종종 빛, 어둠 또는 색채에 녹아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색채는 나중에 리스트와 함께 했던 것처럼 매우 특정한 악기의 음색이었던 누군가를 위해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프레이즈 안에서 분위기가 바뀝니다. 옥타브 더블링(병행8도처럼 공허한 것은 아니고 실제 선율은 1개가 맞는데 그 음향을 보강해주기 위해, 조금 더 두꺼운 텍스처를 쓰기 위해, 마치 그림자처럼 옥타브의 선율을 그대로 복사해서 달아준 것)이 왔다 갔다 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In the Impromptu Op. 90 No. 1 the octave doublings underline the harmonic argument when the second theme abandons the key of the beginning. The sound grows darker.
즉흥곡 작품 90-1에서 옥타브 더블링은 제2주제가 첫머리의 조성을 포기할 때 화성적인 논란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소리가 보다 어두워집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In the Rondo from the D major Sonata the upbeats are gently and almost imperceptibly stressed. Sometimes additional octaves pass over the musical landscape like cloud shadows.
소나타 17번 D장조 4악장 론도에서 여린박들은 부드럽고 거의 희미하게 강조됩니다. 때때로 추가된 옥타브들이 두터운 구름처럼 음악적인 풍경을 지나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Wherever the melodic voice is doubled at the start of a Schubertian theme the darker colour is as a rule not maintained. Before the end of the theme or phrase the octaves are resolved into part-writing. In this way the phrase endings sound both brighter and denser.
슈베르트적인 테마의 첫머리에서 멜로디 소리가 두 배로 증가하는 모든 곳에서는 보다 어두운 색이 일반적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테마나 프레이즈 끝에 오는 옥타브는 각 성부의 작곡으로 분석됩니다. 이런 식으로 프레이즈는 보다 밝고 울창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In Schubert's piano writing the difference between octave doublings and parallel octaves is sometimes lost: in other words, we find violations against the rules of strict counterpoint that are found only very rarely with Beethoven. One of these rare examples is Beethoven's Bagatelle Op. 119 No. 1.
슈베르트의 피아노곡에서는 옥타브 더블링과 병행8도의 차이가 때때로 없어집니다. - 다시 말해, 우리는 베토벤에만 드물게 발견되는 엄격한 대위법에 대한 위반을 발견합니다. 이런 드문 예들 중의 하나는 베토벤의 바가텔 작품 119-1입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According to the rules of strict counterpoint this should be:
엄격한 대위법의 규칙에 따르면 이것은 다음과 같아야 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Or:
또는...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Some editors have refused to credit Beethoven with these parallel octaves and corrected them like this:
일부 편집자들은 이 병행8도로 베토벤에 대한 신뢰를 거부했으며 이와 같이 수정했습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With Schubert we also find parallel fifths of a kind that no other composer would have dared to write.
슈베르트로 우리는 다른 작곡가가 감히 쓰지 않았던 종류의 병행5도를 발견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e worst violation of the common decencies of strict counterpoint is the doubling of the leading note, in other words, the note leading up to the neighbouring main note.
엄격한 대위법의 공통적인 유형의 최악의 위반은 이끎음, 즉 이웃하는 으뜸음으로 올라가는 것을 이끄는 음을 더블링하는 것입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Schubert twice permits himself this truly outrageous liberty in the Andante of the Sonata Op. 143.
슈베르트는 소나타 14번 작품 143의 2악장 안단테에서 이 진정한 너무나 충격적인 자유를 자신에게 두 번 허용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If the performer achieves a proper balance between the voices here the result can be altogether delightful. Of course Schubert didn't write like this out of clumsiness. But it would have been interesting to see if Schubert's part-writing had changed after his planned lessons in counterpoint with Simon Sechter. Nothing came of these lessons. Schubert died before he could start them. Schubert treats the parts that fill out the harmonies in the same spirit, listening rather than thinking. Schubert's piano music demands that the player keep reacting anew to the vertical aspect of the writing: each chord must be listened to afresh in terms of its balance. Schubert's piano style also differs from Beethoven's in terms of its orchestral innovations. As far as I know, the string tremolo on the piano in the "Wanderer" Fantasy is new.
연주자가 여기에서 목소리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이루면 그 결과는 매우 즐거울 수 있습니다. 물론 슈베르트는 이와 같이 서투른 태도로 작곡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슈베르트의 각 성부의 작곡이 지몬 제히터와 계획된 대위법 레슨 후에 바뀌었는지 확인한다면 흥미로울 것입니다. 이 레슨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슈베르트는 그가 대위법 레슨을 시작할 수 있기 전에 죽었습니다. 슈베르트는 생각하기보다는 듣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화성을 채우는 파트를 다룹니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음악은 연주자가 작곡의 수직인 면에 계속해서 새로 반응해야 한다고 요구하는데, 각 화음은 그 균형의 측면에서 새롭게 다시 들려야 합니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작풍 역시 베토벤의 그 관현악적인 혁신과는 다릅니다. 제가 보기에 <방랑자 환상곡>에 있는 피아노의 현악 트레몰로는 새로운 것입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But the tremolo can also appear in the form of rapid repeated octaves, as in "Erlkonig" or the first movement of the C major Sonata. Everyone who plays the "Wanderer" Fantasy or the A minor Sonata Op. 143 knows the risk involved in playing rapid octaves of orchestral amplitude. Schubert abandoned this device in the sonatas of his final years. Schubert's keyboard style is also marked of course by its songlike element. Magnificent examples of songlike piano pieces are the first and third of the Op. 90 Impromptus. Of course, Beethoven, too, had already written variations or bagatelles on themes that are songlike in character. But with Schubert vocal line and piano accompaniment merge in a new way on the same instrument. The sensual beauty of the piano writing and emotion don't get in each other's way in the G flat major Impromptu: they belong together. Well before Chopin and Liszt, the second and fourth Impromptus transform studies into poetic piano pieces. Formally speaking, these pieces are exactly symmetrical: A-B-A. In general, it's easy to gain a formal overview of the Impromptus than of many of the sonata movements. It was this that made them as famous as Schubert's songs at quite an early date. Prior to Schubert, the title "Impromptu" is already found in the works of two early Romantics, Marschner and Vorisek. In fact, it does justice to only a single piece, the fourth of the Op. 142 Impromptus, at least if one takes the meaning of the Latin "in promptu" - "in readiness" - as a yardstick for their spontaneity and sense of surprise. In terms of the suddenness and promptness of their musical argument a number of the sonata movements go far beyond the Impromptus.
그러나 트레몰로는 가곡 <마왕>이나 소나타 15번 C장조 1악장에서와 같이 빠르게 반복된 옥타브의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방랑자 환상곡>이나 소나타 14번 a단조 작품 143을 연주하는 모든 사람은 오케스트라만큼 울리는 빠른 옥타브를 연주할 때 발생하는 위험을 알고 있습니다. 슈베르트는 말년의 소나타들에서 이 묘안을 버렸습니다. 슈베르트의 건반음악 스타일도 물론 노래 같은 요소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노래 같은 훌륭한 피아노곡들에는 즉흥곡 작품 90의 1번과 3번이 있습니다. 물론 베토벤도 이미 성격상 노래 같은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나 바가텔을 작곡했습니다. 그러나 슈베르트로는 노래하는 선율과 피아노 반주가 같은 악기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통합됩니다. 피아노곡의 감각적인 아름다움과 감정은 즉흥곡 작품 90-3에서 서로의 방식으로 들어가지 않는데, 세트로 되어 있습니다. 쇼팽과 리스트보다 먼저 즉흥곡을 잘 썼는데, 2번과 4번 즉흥곡은 시적인 피아노곡들로 연습곡들을 변형시킵니다. 형식적으로 말해서, 이 곡들은 정확하게 A-B-A로 대칭적입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소나타 악장들보다 즉흥곡의 형식적인 개요를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꽤 머지않아 즉흥곡을 슈베르트의 가곡들만큼 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슈베르트 이전에 <즉흥곡>이라는 제목이 이미 초기 낭만파, 하인리히 마르슈너(독일 오페라 작곡가), 얀 바츨라프 보리셰크의 작품들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실제로 적어도 라틴어 “인 프롬프투”의 의미(“준비를 갖추고”)를 받아들인다면, 자연스러움과 놀라운 감각에 대한 척도로 받아들인다면, 단 하나의 작품, 즉흥곡 작품 142 중에서 4번만 잘 보여줍니다. 음악적 논란의 갑작스럽고 즉각적인 측면에서 많은 소나타 악장들이 즉흥곡을 능가합니다.
Impromptus, D. 935 (Op. 143) / 즉흥곡 작품 143
No. 1 in F minor
No. 2 in A flat major
No. 3 in B flat major
No. 4 in F minor
The poetic piano piece of the Romantics didn't begin with the works of John Field, Jan Vorisek, Vaclav Tomasek and Heinrich Marschner. Its roots reach back beyond individual Bagatelles by Beethoven and Mozart's A minor Rondo to Couperin, Rameau and Domenico Scarlatti. As a keyboard composer, Schubert was first and foremost a sonata composer. Schumann acknowledged this when he described the wonderful second cycle of Op. 142 Impromptus from the winter of 1827/8 as a crypto-sonata. For him, the first Impromptu was so clearly the first movement of a sonata, so perfectly executed that there could be no doubts on the matter. Nonetheless, I must contradict Schumann. The first Impromptu has no development section. In other words, it's an example of sonata form without a development section. Schubert never used this type of movement for first-movement sonata form, nor did any other Classical or Romantic composer known to me. Similarly, the tonal scheme of the four Impromptus - F minor, A flat major, B flat major, F minor - is one that Schubert would never have used in a sonata. We have to make allowance for the fact that Schumann knew very few of Schubert's sonatas and that a definition of Classical sonata form was only gradually emerging at this time. Schubert was still a young composer when he died in 1828. I don't say this in order to belittle his works. I just want to account for the fact that the ability to write down music as unambiguously as possible for the interpreter was not yet as well developed with Schubert as it was with middle-period and late Beethoven. Schubert had little experience of hearing his instrumental works performed by others. Also, Schubert composed without the help of a keyboard. In the case of his piano music especially, what he heard in his imagination will sometimes have looked rather different from what one actually produces on the piano. Partly - as in his notation of suspensions and triplets - Schubert's handwriting reflects what even then were old-fashioned Baroque habits. In the third of the Op. 142 Impromptus the minor variation is mostly played like this:
시적인 낭만파 피아노곡은 존 필드, 얀 바츨라프 보리셰크, 바츨라프 토마셰크, 하인리히 마르슈너의 작품들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 뿌리는 베토벤의 개성적인 바가텔과 모차르트 론도 a단조 KV 511에서 쿠프랭, 라모, 도메니코 스카를라티까지 기억을 더듬어 돌이켜봅니다. 건반음악 작곡가로서 슈베르트는 다른 무엇보다도 더 소나타 작곡가였습니다. 슈만은 이것을 숨겨진 소나타로 1827/8년 겨울에 즉흥곡 작품 142의 멋진 두 번째 곡을 묘사했을 때 인정했습니다. 그에게 첫 번째 즉흥곡은 소나타의 1악장이라는 게 너무 분명해서 완벽하게 실행되어 그 문제에 대한 의심의 여지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저는 슈만을 반박해야 합니다. 첫 번째 즉흥곡은 발전부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발전부가 없는 소나타 형식의 예입니다. 슈베르트는 1악장 소나타 형식에 대해서는 이런 유형의 악장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다른 고전파나 낭만파 작곡가도 제게 생소합니다. 마찬가지로 네 곡의 즉흥곡의 조성 체계(1번 f단조, 2번 A플랫 장조, 3번 B플랫 장조, 4번 f단조)는 슈베르트가 소나타에서 사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슈만이 슈베르트의 소나타들을 거의 알지 못했으며 고전파 소나타 형식의 정의가 이때 점차적으로 나타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에 대해 고려해야 합니다. 슈베르트가 1828년에 죽었을 때 여전히 젊은 작곡가였습니다. 저는 그의 작품들을 과소평가하기 위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해석자를 위해 가능한 한 분명하게 음악을 작곡하는 능력이 중기와 후기 베토벤과 마찬가지로 잘 개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슈베르트는 다른 사람들이 연주한 기악 작품들을 들은 경험이 거의 없었습니다. 또한 슈베르트는 건반을 사용하지 않고 작곡했습니다. 특히 피아노 음악의 경우, 그가 자신의 상상 속에서 들었던 것은 때때로 실제로 피아노에서 만들어지는 것과는 다소 달라 보일 것입니다. 부분적으로 - 계류음(걸림음이라고도 하는데, 화음은 전체적으로 바뀌었는데 앞선 화음의 협화음 중 하나가 바뀌지 않고 다음 화음까지 지속되는 현상 또는 지속된 음)과 셋잇단음표의 표기에서와 마찬가지로 - 슈베르트의 필적은 그때까지도 구식의 바로크식 습관을 반영합니다. 즉흥곡 작품 142의 3번에서 단조 변주곡은 주로 다음과 같이 연주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is reading takes the text too literally. The dotted notes here should be brought into line with the triplet rhythm.
이 해석은 본문을 너무 그대로 사용합니다. 여기서 점음표들은 셋잇단음표 리듬과 일치되어야 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Another misunderstanding of Schubert's notation has even worse implications for the song "Wasserflut" from "Winterreise".
슈베르트의 표기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연가곡 <겨울 나그네> 중 6번 <넘쳐흐르는 눈물>에 대해서 보다 나쁘게 암시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If - out of undue fidelity to the text - you were to play a polyrhythm of Brahmsian complexity here, not only would the rhythm of the piece be distorted, so too would its style.
텍스트에 대한 지나친 충실함 외에 여기서 브람스적인 복잡한 폴리리듬(대조적 리듬의 동시 사용)을 연주한다면, 곡의 리듬이 왜곡될 뿐만 아니라 그 스타일도 변할 것입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Unfortunately, this method of execution is nowadays accepted out of habit, just as people have forgotten to expect the necessary appoggiaturas in Mozart's operas. Both the autograph score and the first edition of "Winterreise" have been reproduced in facsimile. Anyone who looks closely at "Wasserflut" will have noticed that the rhythm is not subject to artistic or psychological considerations. The final chord of the third bar and the parallel passage to it are notated in a way that precludes any last remaining doubt. That all the semiquavers should be aligned with the triplet rhythm is in this way established unambiguously.
불행하게도 사람들이 꼭 모차르트의 오페라에서 필요한 아포자투라(앞꾸밈음)를 기대하는 것을 잊어버린 것처럼, 이 연주법은 요즘에는 습관에 따라 받아들여집니다. 자필 악보와 <겨울 나그네>의 초판 모두 복제판으로 재현되었습니다. <넘쳐흐르는 눈물>을 면밀히 주시하는 사람은 리듬이 예술적 또는 심리적 고려 대상이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 마디의 마지막 화음과 그 병행 패시지는 마지막 남은 의심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표기됩니다. 모든 16분음표가 셋잇단음표 리듬에 맞춰야 한다는 것은 이런 방식으로 분명하게 설정됩니다.
The first printed edition, which passed through Schubert's hands, similarly reproduces the rhythm as Schubert himself wrote it down.
슈베르트의 손을 거친 초판본은 슈베르트가 직접 쓴 것처럼 리듬을 유사하게 재현합니다.
On the basis of my own experience of Schubert's music and of his autographs and first editions, I tend to the view that with Schubert simple rhythmic solutions are to be preferred to complicated ones. The alignment of dotted rhythms with triplets, especially at flowing speeds, is the rule, polyrhythms are the exception. Even in contentious cases it seems unlikely that Schubert intended to distinguish between these rhythms. Sometimes we shall have to ask ourselves if and where the character of the dotted rhythms demands real precision, as in the Adagio of the C minor Sonata.
슈베르트의 음악, 그의 자필 악보들, 초판 악보들에 대한 제 경험을 토대로, 저는 슈베르트가 복잡한 리듬 해결보다 단순한 리듬 해결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흐르는 속도에서 셋잇단음표에 점음표 리듬을 맞추는 것이 규칙이며, 폴리리듬(대조적 리듬의 동시 사용)은 예외입니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경우에도 슈베르트는 이러한 리듬을 구분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소나타 19번 c단조 2악장 아다지오에서와 같이 점음표의 성격이 실제 정확성을 요구하는지와 어디에서 요구하는지 우리 자신에게 물어봐야 할 것입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Schubert's notation, like Mozart's, was that of a cantabile composer, singer or string player. In his piano music, this means that we have to transfer this cantabile style to a pianistic context. It's the accents that cause the greatest difficulty here. A string player or singer can animate an accent through vibrato, causing it to swell and sustaining it over the entire length of the note. On a piano the note dies away very quickly and so accents often have to be prepared. Sometimes they even shift most of their emphasis to the previous note. The basic rhythm of the "Wanderer" Fantasy:
슈베르트는 모차르트와 마찬가지로 칸타빌레(노래하듯이 부드럽게) 작곡가, 가수 또는 현악기 연주자의 표기였는데, 이것은 우리가 이 칸타빌레 스타일을 피아노에 대한 맥락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가장 큰 어려움을 야기하는 것은 악센트입니다. 현악기 연주자나 가수는 비브라토(기악・성악에서 음을 가늘게 떨어서 내는 기법)를 통해 악센트로 활기 있게 만들어서 음표의 전체 길이 이상을 부풀려서 지속할 수 있습니다. 피아노에서는 음표가 매우 빨리 사라지므로 악센트가 종종 준비되어야 하는데, 때때로 이전 음으로 악센트가 대부분 이동하기도 합니다. <방랑자 환상곡>의 기본 리듬입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rough its frequent repetition this rhythm creates an impression that is wearying and pedantic if the upbeat doesn't come to the rescue.
잦은 반복을 통해 이 리듬은 여린박이 구하지 않는 경우, 피곤하고 현학적인 인상을 남깁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If played as a trochee, the rhythm moves on; as a dactyl it simply marks time. In the first of the Op. 142 Impromptus there are accents which, if unprepared, recall cackling hens.
강약격으로 연주한다면, 이 리듬은 단순히 시간을 표시하는 강약약격으로 넘어갑니다. 즉흥곡 작품 142의 1번에서 악센트가 준비되지 않는다면, 꼬꼬댁 우는 암탉을 떠오르게 합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Fortunately Schubert made his dynamic intentions clear in the preceding passages.
다행스럽게도 슈베르트는 이전의 패시지들에서 그의 다이내믹 의도를 분명히 했습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This Impromptu has a wealth of ideas and sonorities that are virtually unique in the piano repertory. The character of the piece clearly changes five times. The fifth is the longest and the most wonderful. It's a dialogue based on total accord between the partners.
이 즉흥곡에는 피아노 레퍼토리에서 사실상 독특한 아이디어와 음색이 풍부합니다. 곡의 성격이 분명히 다섯 번 바뀝니다. 다섯 번째는 가장 길고 가장 훌륭한데, 협연자들 사이의 총 합의에 기초한 대화입니다.
(Brendel plays. / 브렌델이 연주한다.)
From one mountain peak to another the voice come together to form a melody spun out over great distances. Delicacy and passion - the episode is marked "appassionato" - intimacy and landscape-like depth, clarity of draughtsmanship and atmospheric shimmering, melancholy and happiness combine to create a perfect unity. Even the melody turns out on closer inspection to be indistinguishable from the accompaniment. The second piece is a symmetrically structured lyrical scherzo. The third uses as the theme of its variations a melody from the entr'acte music to "Rosamunde" that had already served as the theme of the A minor Quartet's variations. The last of the Op. 142 Impromptus often resembles an improvisation. It leaps around fantastically with Spanish dance rhythms and at the end stamps on the ground so violently, like Rumpelstiltskin, that his foot becomes stuck.
한 산봉우리에서 다른 산봉우리로 목소리가 함께 모여 먼 거리로 늘어진 멜로디를 형성합니다. 에피소드가 “아파시오나토”(열정적으로)로 표시되는 섬세함과 열정, 친밀감과 풍경 같은 깊이, 맑은 데생 실력, 분위기 있는 무지갯빛, 우울함과 행복이 결합되어 완벽한 통합을 이룹니다. 멜로디조차 더 정밀한 검토를 통해 반주와 구별되지 않습니다. 두 번째 곡은 대칭 구조의 서정적인 스케르초입니다. 세 번째 곡은 현악4중주 13번 a단조의 주제로 이미 사용된 <로자문데>에 막간 음악의 멜로디를 그 변주의 주제로 사용합니다. 즉흥곡 작품 142의 마지막 4번은 종종 즉흥 연주와 흡사한데, 스페인의 댄스 리듬처럼 멋지게 돌면서 도약하며 끝에 너무 격렬하게 발을 구르며 분하게 여겨서 룸펠슈틸츠킨(독일 민화에 나오는 난쟁이)처럼 발이 빠지게 됩니다.
Schubert's portrait from Rudolf Hans Bartsch's "Schwammerl" / 루돌프 한스 바르치의 책 <스펀지>에 나오는 슈베르트 그림
http://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RBR4&fldid=Clns&datanum=228
http://www.hificlub.co.kr/web10/board/brd_comm_view_n10.asp?pid=18794&f_lid=106183&up_pid=&lid=100&level=0&table=brd_10194&cat_gb=&ishtml=n&p_next=9&p_f_lid=106193&p_lid=100&next=9&cond=&s_text=
https://www.youtube.com/watch?v=ES8S4JkiLVA
뤼벡의 시에 대한 번역을 찾다가 다른 내용에 대한 번역까지 알게 되어서 내 번역을 보완할 수 있었다. 동영상 보면서 열심히 자막 받아 적었는데, 내가 이 DVD 원본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라서 영어사전 찾아가면서 구글 번역기로 번역하다가 다음 카페에서 일부라도 봐서 덕분에 시간 절감! 방랑자 환상곡과 3개의 후기 소나타만 자막 해설을 구한 상태인데, 개인적으로 브렌델에게서 간접적으로라도 레슨을 받고자 학생의 마음으로 슈베르트를 공부하게 된 것이다. 방랑자 환상곡은 피아노곡으로만 많이 들어봤고 가곡이 있다는 것은, 거기다가 가곡에 있는 선율을 피아노곡에 차용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이 DVD는 유튜브에서도 전체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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