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13일 수요일
Brilliant Classics / Legendary Russian Pianists CD10 Igor Zhukov & Dmitri Bashkirov
CD10 Igor Zhukov & Dmitri Bashkirov / 이고르 주코프, 드미트리 바쉬키로프
01 Brahms Piano Concerto No. 2 in Bb, Op. 83: I. Allegro non troppo /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02 Brahms Piano Concerto No. 2 in Bb, Op. 83: II. Allegro appassionato
03 Brahms Piano Concerto No. 2 in Bb, Op. 83: III. Andante
04 Brahms Piano Concerto No. 2 in Bb, Op. 83: IV. Allegretto grazioso
Igor Zhukov, piano / 이고르 주코프, 피아노
USSR State Symphony Orchestra / 소련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Gennady Rozhdestvensky, conductor / 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 지휘
05 Mozart Piano Concerto No. 24 in c, K. 491: I. Allegro /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
06 Mozart Piano Concerto No. 24 in c, K. 491: II. Larghetto
07 Mozart Piano Concerto No. 24 in c, K. 491: III. Allegretto
Dmitri Bashkirov, piano / 드미트리 바쉬키로프, 피아노
USSR State TV & Radio Symphony Orchestra / 소련 국립 TV-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Alexander Gauk, conductor / 알렉산더 가우크 지휘
Igor Zhukov (1936-2018) / 이고르 주코프
Principal Teachers: Emil Gilels, Heinrich Neuhaus / 에밀 길렐스, 하인리히 네이가우스 사사
Prize:
1957 - Marguerite Long-Jacques Thibaud Competition, 2nd / 마르그리트 롱-자크 티보 콩쿠르 2위
Famous for his steely attack and iron-foundry chords - 'colossal, straight-from-the-shoulder technique [...] full, saturated, all-Russian sonority' (Bryce Morrison, "Gramophone", February 1994) - Zhukov was born in Gorky (Nizhny-Novgorod). During the war he was evacuated with his parents to Kirov (Vyatka), north-eastern Russia. He graduated from the Moscow Conservatory in 1960. In his youth he cut his teeth on virtuoso chargers like Liszt's "Carnival of Pest" (following in the footsteps of Sofronitzky, Gilels and Berman), but in the early 1990s recorded an album of Beethoven, Schubert and Prokofiev (Ninth Sonata) showing different sympathies.
‘대담하면서도 솔직한 테크닉으로 [...] 충분히 가득 찬 모든 러시아적인 울려 퍼지는’(1994년 2월 <그라모폰>에서 브라이스 모리슨) 강철 같은 판단과 강하고 굳센 화음들로 유명한 주코프는 고르키(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태어났다. 전쟁 동안 그는 부모님과 함께 러시아 북동부 키로프(비아트카)로 함께 대피했다. 1960년에는 모스크바 음악원을 졸업했다. 젊은 시절에 그는 (소프로니츠키, 길렐스, 베르만의 발자취를 따라) 리스트 헝가리 랩소디 9번 <페스트의 사육제>처럼 비르투오소 군마들의 첫 경험을 했지만, 1990년대 초에는 베토벤, 슈베르트, 프로코피에프(소나타 9번)로 음반을 발매하여 다양한 애호를 나타냈다.
For Melodiya he taped various Russian rarities including the Rimsky-Korsakov Concerto, Balakirev's First, Medtner's First (a gloves-off encounter), and the original uncut version of Tchaikovsky's Second (with Rozhdestvensky). In 1974 he recorded a version of the Tchaikovsky B flat minor under Kitaenko adopting tempi slower than those followed by the majority of his compatriots (led by Horowitz and Gilels). His solo discography includes the Chopin Preludes together with an admired Scriabin sonata cycle.
멜로디야 레이블에서 그는 림스키코르사코프 협주곡, 발라키레프 협주곡 1번, 메트너 협주곡 1번(거친 만남),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2번의 무삭제 원본(로제스트벤스키 지휘) 등 다양한 러시아 희귀 작품들을 녹음했다. 1974년에는 그의 다수 동료들(호로비츠와 길렐스)이 따른 것보다 느린 템포를 채택하여 키타옌코의 지휘로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1번의 한 버전을 녹음했다. 그의 독주 디스코그래피에는 스크리아빈 소나타 전곡과 함께 쇼팽 전주곡이 포함되어 있다.
As pianist of the Zhukov Piano Trio (1963-80), and as conductor (and harpsichordist) of New Moscow Chamber Orchestra until his retirement in 1994, he championed not only 'historic-themed' repertory but also a range of composers from the Baroque to the 20th century. This interest in esoteric directions manifested itself early in his career, evinced by a 1963 recording of Adnan Saygun's First Concerto with the State Symphony Orchestra of Cinematography. In 1977 he recorded Janis Ivanov's Concerto with Vassily Sinaisky. Anticipating Demidenko, he has long been keen on taking responsibility (in the manner of Glenn Gould) for his own production, sound balancing and audio editing. 'I'm the best pianist among recording engineers,' he quips, 'and the best recording engineer among pianists.'
주코프 피아노 트리오(1963~80년)의 피아니스트이자 1994년 은퇴할 때까지 뉴 모스크바 실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그리고 하프시코드 연주자)로서 그는 ‘역사적인 주제의’ 레퍼토리뿐만 아니라 바로크부터 20세기에 이르는 범위의 작곡가들도 옹호했다. 심오한 방향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1963년 아드난 사이군 피아노 협주곡 1번 녹음(시네마토그래피 연방 심포니 오케스트라)으로 피력되어 그의 경력 초기에 그 자체를 나타냈다. 1977년에는 바실리 시나이스키의 지휘로 야니스 이바노프 협주곡을 녹음했다. 데미덴코를 기대하는 그는 오랫동안 (글렌 굴드의 방식으로) 자신의 제작, 소리의 균형 유지, 오디오 편집에 대해 책임지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나는 레코딩 엔지니어들 중에서 최고의 피아니스트이고, 피아니스트들 사이에서 최고의 레코딩 엔지니어이다.’
Brahms Piano Concerto No. 2 in Bb, Op. 83 (1878-81) /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This extraordinary amalgam of symphony, concerto, sonata and chamber piece defines the epic piano concerto. Here you find other people's ideas and half-ventured structures taken to their logical conclusion. Its four movements, including a 'tragic' scherzo in D minor placed second (intended originally for the Violin Concerto), and no cadenzas (but vastly difficult piano writing), add up to an Olympian marathon not for the faint of heart. Even so the Andante offers time for repose and intimacy, and interplay of orchestral instruments - the accompanimental can be treasured from the opening horn call onwards. 'Civilization', says Malcolm MacDonald, 'can be an ambivalent concept. In its best sense it denotes something like Brahms' B flat Piano Concerto' (1990). Brahms teased his friends. 'A tiny, tiny piano concerto with a tiny, tiny wisp of a scherzo.' 'A few small piano pieces.' 'Too harmless.'
교향곡, 협주곡, 소나타, 실내악곡의 이 특별한 결합은 서사시적인 피아노 협주곡을 정의한다. 여기서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와 반쯤 모험한 구조가 논리적인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을 발견한다. (원래 바이올린 협주곡을 위해 만들었던) d단조의 ‘비극적인’ 스케르초를 포함하는 4개의 악장들, (대단히 어려운 피아노 작곡을 제외하고) 카덴차가 없는 것은 겁쟁이를 위한 것이 아닌 올림픽 마라톤에 추가된다. 그럼에도 3악장 안단테(느리게)는 휴식과 친밀감, 오케스트라 악기들의 상호작용을 위한 시간을 제공하는데, 반주는 호른이 부르는 것으로 시작하는 1악장부터 소중하게 여겨질 수 있다. 맬컴 맥도널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명은 양면적인 개념일 수 있다. 가장 최선의 의미에서 그것은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1990).’ 브람스는 그의 친구들을 놀렸다. ‘작고 작은 스케르초 한 가닥을 가진 작고 작은 피아노 협주곡.’ ‘작은 피아노곡 몇 개.’ ‘너무 단순하다.’
Dmitri Bashkirov (b. 1931) / 드미트리 바쉬키로프
Principal Teachers: Anastasia Virsaladze, Alexander Goldenweiser / 아나스타샤 비르살라제, 알렉산더 골덴바이저 사사
Prizes:
1955 - Marguerite Long-Jacques Thibaud Competition, joint 2nd with Bernard Ringeissen / 마르그리트 롱-자크 티보 콩쿠르에서 베르나르 링게상과 1위 없는 공동 2위
1970 - Robert Schumann Prize / 로베르트 슈만 상
Born in Tiflis, Georgia, of a Russian father and Jewish mother, Bashkirov trained initially in the Esipova/Petersburg tradition before passing on to Goldenweiser, whose assistant he became - 'a great musician, unbelievably clever, educated, and analytical in his thinking [...] on close terms with Tolstoy, Rachmaninoff and Medtner. He was like a bridge from the old Russian tradition to our own time. [But] in many ways I was an anti-Goldenweiser pupil, because my style and temperament belonged much more to the school of Neuhaus, whereas [echoing Richter] Goldenweiser was very orthodox, very precise, not very artistic, and without fantasy or temperament' ("IPQ", Summer 1999).
조지아 티플리스(트빌리시)에서 태어난 바쉬키로프는 초기에 에시포바/페테르부르크 전통에서 훈련받았으며, 골덴바이저를 사사하면서 그의 조수가 되었다. - ‘톨스토이, 라흐마니노프, 메트너와 가까운 시기에 [...] 위대한 음악가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똑똑하고 교육받았으며 분석적인 생각을 가졌다. 그는 오래된 러시아 전통에서 우리 시대에 이르는 다리와 같았다. [그러나] 여러 방식에서 나는 골덴바이저에 반하는 제자였는데, 내 스타일과 기질이 훨씬 더 네이가우스 스쿨에 속했기 때문이며, 반면에 [리히터를 떠오르게 하는] 골덴바이저는 매우 정교하고 매우 정확하지만 매우 예술적이지 않고 환상이나 기질이 없었다(1999년 여름, IPQ).’
Following early notice in the West, and a professorship at the Moscow Conservatory in 1957, his career was suspended in 1980 when, according to his official biography 'he was refused permission to perform and teach [abroad], being detained there until he was finally allowed to leave the country eight years later'.
서방에서 일찍 주목받았고 1957년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교수를 지내다가 그의 경력은 1980년에 멈췄는데, 그의 공식 전기에 따르면 ‘그는 [해외에서] 연주하고 가르치는 허가가 거절되어 8년 후 나라를 떠날 수 있도록 마침내 허용될 때까지 억류되어 있었다.’
The chances of catching him in concert are infrequent: much of his time is spent either giving masterclasses of teaching between Moscow, Madrid, Salzburg, the International Piano Foundation at Lake Como, Israel and the USA. With interval-breaks often the dividing-line between competency and genius, Bashkirov recitals can be memorable more by halves than wholes. At best - the vocalizing, uninhibited man comfortable among friends rather than the loner on stage - you'll meet with pianism that's magisterial and digitally fine-tuned while dynamically capricious (more loud than quiet overall and often reversing what's written), nor attentive to rhythmic niceties or articulation marks. Tone, left-hand pointing, the weighting of chords, the ringing projection of phrases, voicing, define his aristocracy.
콘서트에서 그를 보게 될 기회는 드문데, 모스크바, 마드리드, 잘츠부르크, 레이크 코모 국제피아노재단, 이스라엘, 미국에서 마스터클래스를 지도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종종 간격을 어기면서 능력과 재능의 구분선에 있는 바쉬키로프 리사이틀은 전체보다 반으로 더 기억에 남을 수 있다. 기껏해야 - 무대에서 외롭기보다는 친구들 사이에서 편안하게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 권위 있고 손가락으로 미세 조정되어 있는 반면 (조용한 전체와 종종 작곡된 것을 반전시키는 것보다 더 크게) 역동적으로 잘 변하거나 미묘한 리듬이나 아티큘레이션 표시들에 신경 쓰지 않는 피아니즘을 만날 것이다. 음색, 왼손의 핵심, 화음의 가중치, 프레이즈의 울림 예상, 소리 내는 것은 그의 고귀함을 분명히 밝힌다.
As artist and teacher, he emphasizes, he has 'no special liking for the word "technique". I always prefer [...] "pianism" instead. Many of our young have brilliant technique, but it is not pianism. For them technique itself is the end. But for me the word "pianism" implies culture of tone and diversity of articulation, intonational subtlety' (1982).
아티스트이자 교육자로서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나는 “테크닉”이라는 단어에 대한 특별한 호감도가 없다. 나는 항상 [...] 대신 “피아니즘”(피아노 연주 기법)을 선호한다. 우리의 많은 젊은이들 중에 화려한 테크닉이 있다고 해서 피아니즘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테크닉 그 자체가 끝이다. 그러나 내게 “피아니즘”이란 단어는 음색의 양식과 아티큘레이션의 다양성인 절묘한 인토네이션[노래나 연주를 정확한 음높이나 음조(音調)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1982).’
Mozart Piano Concerto No. 24 in c, K. 491 (1786) /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
The second of Mozart's pair of Viennese concertos with clarinets, far darker than the first (K. 482), looking forward spiritually to Beethoven ('we will never be able to do anything like that') and Brahms (who provided a cadenza).
모차르트가 클라리넷을 넣어서 작곡한 비엔나 협주곡 중 두 번째 곡으로 첫 번째 곡(클라리넷을 최초로 넣어서 작곡한 협주곡 22번)보다 훨씬 어두운데, 영적으로 (‘우리가 그와 비슷한 것을 할 수 없을 것인’) 베토벤과 (카덴차를 제공했던) 브람스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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