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zzAE35w0xAo
Program
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 바흐
English Suite No. 2 in a, BWV 807 / 영국 모음곡 2번
I. Prélude
II. Allemande
III. Courante
IV. Sarabande
V. Bourrée
VI. Gigue
English Suite No. 3 in g, BWV 808 / 영국 모음곡 3번
I. Prélude
II. Allemande
III. Courante
IV. Sarabande
V. Gavotte I & II (ou Musette)
VI. Gigue
Domenico Scarlatti (1785-1757) / 스카를라티 소나타 발췌
Sonata in d, K. 1
Sonata in E, K. 20
Sonata in e, K. 98
Sonata in C, K. 159
Sonata in g, K. 450
Sonata in C, K. 487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 베토벤
Sonata No. 11 in Bb, Op. 22 / 소나타 11번
I. Allegro con brio
II. Adagio con molto espressione
III. Minuet - Trio
IV. Rondo. Allegretto
Bagatelle in a, WoO 59 "Fur Elise" / 바가텔 <엘리제를 위하여>
The Art of Ivo Pogorelich - Written by Pierre Jasmin / 이보 포고렐리치의 예술 - 피에르 자스맹의 글
This DVD brings together performances given in 1986 and 1987 by Ivo Pogorelich, then 28 years old, playing Bach in the Villa Caldogno near Vicenza, Scarlatti and Beethoven in Eckartsau Castle in Lower Austria.
이 DVD는 1986년과 1987년에 28세가 된 이보 포고렐리치의 연주를 모은 것으로, 비첸차 근처의 빌라 칼도뇨에서 바흐, 오스트리아 남부의 에카르차우 궁전에서 스카를라티와 베토벤을 연주한다.
Born in Belgrade in 1958, Pogorelich left his family at the age of 11 to study at the Central School of Music in Moscow. In the spring of 1980, after completing his diploma at the Moscow Conservatory, he was the last of sixty or so contestants to arrive in Montreal for the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 In the draw to determine the order in which they would play, No. 1 fell to him, at which he produced his broadest smile and the laconic comment: "Of course!" The rest is history: a quasi-hysterical public, an enthralled jury, the special prize for interpretation of a contemporary work learnt in a week and, "of course", the first prize awarded unanimously.
1958년 베오그라드에서 태어난 포고렐리치는 11세에 가족을 떠나 모스크바 중앙음악학교에서 공부했다. 1980년 봄,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학업을 마친 그는 국제음악콩쿠르에 참가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도착한 60여 명의 참가자들 중에 가장 마지막이었다. 연주 순서를 결정하는 추첨에서 1번이 떨어지자 그는 크게 웃으면서 간단히 말했다. - “네, 좋아요!” 나머지는 역사이다. - 청중을 열광시킨 것에 준했으며, 심사위원들을 사로잡았고, 일주일 내로 익힌 현대 작품에 대한 최우수 연주 특별상을 받았으며, “물론” 만장일치 1위였다.
Three days later, in New York, he was besieged with fabulous offers from the four most important impresarios in the United States. One who was already managing Mikhail Baryshnikov predicted he would become, with his help, a legend of the magnitude of Nureyev and Callas. They shook hands on it and agreed to meet again in three months time in Warsaw, at the International Chopin Competition.
3일 후, 뉴욕에서 그는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4명의 기획자들로부터 엄청난 제안들이 빗발쳤다. 이미 미하일 바리쉬니코프(소련 출신의 미국 발레 무용수이자 배우)를 관리했던 사람은 그가 자신의 도움으로 루돌프 누레예프(러시아-영국-오스트리아 발레 댄서)와 마리아 칼라스(소프라노)에 견줄 만한 전설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들은 그것에 대한 합의의 악수를 나누면서 바르샤바의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세 달 만에 다시 만날 것에 동의했다.
It was the occasion of a famous scandal: a Soviet cabal eliminated the competitor from Yugoslavia before the final round, and Martha Argerich resigned from the jury at once, protesting the flagrant injustice. Pogorelich's career was well and truly launched, more so than if he had won first prize. A contract with Deutsche Grammophone followed, his recordings sold like hot cakes and the most prestigious venues welcomed the new star, who adopted London as his principal residence, with country homes in Zagreb and Dubrovnik.
그것은 유명한 스캔들의 계기였다. - 그를 못마땅해 한 소비에트 도당은 결선이 되기 전에 유고슬라비아 참가자를 제거했으며,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심사위원직을 사퇴하여 악의적인 불의에 항의했다. 포고렐리치의 경력은 훌륭하게 진정으로 시작되었는데, 그가 우승했다면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도이체 그라모폰과의 계약에 이어 그의 음반이 불티나게 팔렸으며 가장 저명한 공연장들이 새로운 스타를 환영했는데, 그는 자그레브와 두브로브니크에 있는 고향집과 함께 주 거주지로 런던을 채택했다.
Great artistry is synonymous with generosity: Pogorelich's humanitarian spirit sent him on an exhausting world tour, starting in 1999, to collect a colossal sum of money to be spent on the reconstruction of a maternity hospital in Bosnia. He organized an international competition in Pasadena (in 1983) and launched an annual music festival at Bad Wörishofen in Germany. He is also active in helping young musicians with fellowships in Croatia.
위대한 예술성은 관용과 동의어이다. - 포고렐리치의 인도주의적 정신은 보스니아의 산부인과 병원 재건에 필요한 엄청난 액수의 돈을 모으기 위해 1999년부터 시작된 소모적인 세계 여행으로 내보냈다. 그는 (1983년에) 캘리포니아 주 패서디나에 (자신의 이름을 딴) 국제 콩쿠르를 조직하였으며 독일 뵈리스호펜에 연간 음악 축제를 시작했다. 그는 크로아티아에서 장학금으로 젊은 연주자들을 돕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The relentless demands he makes on himself were nourished by the constant presence at his side, for nearly 20 years until her early death in 1996, of his wife Aliza Kezeradze. A native of Georgia, she herself was taught by a protégée of Siloti (cousin of Rachmaninov, pupil of Liszt); she was Pogorelich's teacher in Moscow and remained his inspiration. Her forthright criticism acting as a beneficial counterbalance to the sometimes excessive praise of over-zealous admirers, Pogorelich never lost sight of his exclusive goal of practising his art nobly and truthfully.
그가 자신에게 향하는 가차 없는 요구는 그의 아내 알리자 케제라제가 1996년에 일찍 사망할 때까지 거의 20년 동안 그의 편에서 끊임없이 존재하면서 키워졌다. 조지아 출신의 그녀는 질로티(라흐마니노프의 사촌으로 리스트의 제자)의 제자에게서 배웠고, 모스크바에서 포고렐리치의 스승이었으며, 그의 영감으로 남았다. 때때로 지나치게 열광적인 추종자들의 과도한 찬사에 유익하게 균형을 잡아주는 그녀의 솔직한 비판으로 포고렐리치는 자신의 예술을 고귀하고 진정하게 실천하는 것에 대한 고급스러운 목표를 놓치지 않았다.
Nobility and truth inform every moment of the programme offered here. From the start, two of Bach's "English Suites" demonstrate the concentration of a performer concerned with revealing the formidable directional lines of Baroque music and their uniquely dancelike character, thus enhancing their monumental aspect furthermore increased by the surroundings of the Italian palazzo.
고귀함과 진정함은 여기서 제공되는 프로그램의 모든 순간을 알려준다. 처음부터 바흐 <영국 모음곡> 2번과 3번은 바로크 음악의 놀라운 선율과 그 고유한 춤의 특성을 가지는 성격을 드러내는 것과 관련된 연주자의 집중을 보여주므로, 이탈리아 궁전의 주변 환경으로 인해 증대된 기념비적인 면을 더욱 강화시킨다.
Similarly, the marvellously resonant acoustics of the Austrian palace favour the dazzling outpouring of scales and arpeggios in the six Scarlatti sonatas and in the first movement Beethoven's Sonata in B flat major, Op. 22. For this particular movement, Pogorelich's virtuosic execution espouses the young composer's conviction, inspired by the myth of Prometheus. The next three movements put that belief to a severe test, with their Classical rigour demonstrating the Beethovenian will to master a henceforth hostile destiny. The Bagatelle "Für Elise" provides a graceful contrast as postlude.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 궁전의 놀랍게 깊이 울리는 음향은 6개의 스카를라티 소나타와 베토벤 소나타 11번 1악장에서 스케일과 아르페지오의 눈부신 분출에 유리하다. 이 특별한 악장을 위해 포고렐리치의 고도의 기교를 보여주는 연주는 프로메테우스의 신화에 영감을 받은 젊은 작곡가의 신념을 지지한다. 베토벤 소나타 11번에서 다음 3개의 악장들은 이로부터 적대적인 운명을 깨치려는 베토베니안(베토벤의) 의지를 입증하는 고전파의 엄격함으로 그 믿음을 힘든 시험에 처하게 한다. 바가텔 <엘리제를 위하여>는 후주곡처럼 우아한 대조를 제공한다.
This video recording brings us into the intimacy of an art which is not so remote from the ancient Far Eastern tradition of martial arts, such as T'ai Chi (shadowboxing, or fighting against oneself). We are witnessing a combat between the huge Steinway and the athlete, soberly dressed the better to acquit himself in the difficult task before him. This magical confrontation illustrates moreover the insolent strength of youth, enlisting every impartial listener on the side of the player, who "sculpts the time" of every work, thanks to a prodigious technique that allows him to exercise power, speed and refinement all at the same time.
이 비디오 녹화는 우리에게 태극권(권투에서 혼자 하는 연습인 섀도복싱 또는 자기 자신에 맞서 싸우는 것) 같은 고대 극동의 전통 무술이 아닌 예술에 대한 친밀감으로 우리를 이끈다. 우리는 거대한 스타인웨이와 그 앞에 놓인 어려운 과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단정하게 옷을 입은 선수 사이의 전투를 목격하고 있다. 이 마성의 대결은 그에게 권력, 스피드, 동시에 세련미를 모두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놀라운 테크닉 덕분에 모든 작품의 “시간을 조각하는” 연주자의 편에서 모든 공정한 청취자를 요청하면서 젊은이의 굳건한 힘도 보여준다.
At the source of his incomparable technique, a stupendous mastery of rhythm enables extraordinary precision of the fingers, part of an hypnotic ballet of the hands, wrists and arms (to which an intelligent and effective use of the pedals should be added). Everything proceeds from an imperious decisiveness, intolerant of hesitation. The viewer is distracted by neither an audience nor by excessive film-editing. The camera does full justice to the working of the hands, which exhibit a logic of surgical efficiency, without one wrong note, while the body remains rigorously upright, the feet firmly planted on the floor, the chest open to the full width of the keyboard. Only an occasional frown betrays the emotive tension that has the pianist in its grip.
그의 비교할 수 없는 테크닉의 원천에서 엄청난 리듬 장악은 (페달의 현명하고 효과적인 사용이 더해져야 하는) 손과 손목과 팔에 최면을 거는 듯한 발레의 일부인 손가락의 뛰어난 정밀도를 가능하게 한다. 모든 것이 주저함이 없는 도도한 단호함에서 나온다. 시청자는 청중이나 과도한 필름 편집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카메라는 손이 움직이는 것을 충분히 보여주는데, 신체가 엄격하게 수직으로 유지되고 발이 바닥에 단단히 놓이며 가슴이 건반의 전체 너비에 열린 동안에 잘못된 음이 없이 외과적인 효율성의 논리를 보여준다. 가끔씩 삐걱거리는 소리만 이 피아니스트를 장악하는 민감한 긴장감을 저버린다.
E-motion (A bombast of emotion put on high display to elicit sympathy, to garner attention, or to prove how hard life really is for you) is shaped primarily by rhythm, defined here with such discipline that, paradoxically, it generates a sovereign freedom close to the ideal expressed by the film-maker Andrei Tchaikovsky, that other "sculptor in time", to whom we gladly leave the last word: "Freedom means learning to be exigent towards yourself and generous towards others. It is the reward of ceaseless spiritual labour. [...] Art expresses man's need for harmony and his determination to fight against himself, within his own individuality, in order to arrive at the desired equilibrium of the material and the spiritual."
이-모션(동정심을 불러일으키거나, 주의를 끌거나, 인생이 얼마나 힘든 것이지를 증명하기 위해 높은 감각을 표현하는 감정의 폭탄)은 주로 리듬에 의해 형성되며, 역설적이게도 영화 제작자인 안드레이 차이코프스키가 표현한 이상에 가까운 주권적 자유를 일으키는데, 우리가 기꺼이 다음과 같은 마지막 말을 남겨두는 누구에게 다른 “시간의 조각가”이다. “자유란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타인에 대한 관대함을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끊임없는 영적 노동의 보상이다. [...] 예술은 인간의 조화에 대한 필요성,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에 대해 원하는 균형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의 개성 안에서 자신에 맞서 싸울 결심을 표현한다.”
이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전체를 볼 수 있다. DVD를 받아서 재생했는데 바흐에서 끊겼다. 결국 지웠고 기존의 일부 동영상은 가지고 있다. 음반에는 바흐 영국 모음곡 3번이 없지만 그걸로 만족하려고~ 포고렐리치에 대해서 몰랐던 것들을 몇 가지 알게 되었는데, 포고렐리치의 다른 다큐멘터리 DVD에서 나온 말에 의하면 스승인 알리자 케제라제는 자신의 음악을 알아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1980 Chopin Competition
1980년 10월 2~19일 개최. 36개국 149명 참가.
Jury
Martha Argerich (Argentina) / 마르타 아르헤리치 (아르헨티나) - 3라운드 끝나고 사퇴
Paul Badura-Skoda (Austria) / 파울 바두라-스코다 (오스트리아)
Rodolfo Caporali (Italy) / 로돌포 카포랄리 (이탈리아)
Joseph Colom (Spain) / 호세프 콜롬 (스페인)
Halina Czerny-Stefańska (Poland) / 할리나 체르니-스테판스카 (폴란드)
Sergei Dorensky (USSR) / 세르게이 도렌스키 (소련)
Jan Ekier (Poland) / 얀 에키에르 (폴란드)
Lyuba Encheva (Bulgaria) / 류바 엔체바 (불가리아)
Rudolf Fischer (GDR) / 루돌프 피셔 (동독)
Lidia Grychtołówna (Poland) / 리디아 그리흐토워프나 (폴란드)
Irving Heller (Canada) / 어빙 헬러 (캐나다)
Rex Hobcroft (Australia) / 렉스 홉크로프트 (오스트레일리아)
Ludwig Hoffmann (FRG) / 루트비히 호프만 (서독)
Andrzej Jasiński (Poland) / 안제이 야신스키 (폴란드)
Geneviève Joy (France) / 주느비에브 조이 (프랑스)
Louis Kentner (United Kingdom) / 루이스(러요쉬) 켄트너 (영국) - 1라운드 끝나고 사퇴
Kazimierz Kord (Poland, chair) / 카지미에르츠 코르트 (폴란드, 심사위원장)
Eugene List (USA) / 유진 리스트 (미국)
Nikita Magaloff (Switzerland, deputy chair) / 니키타 마갈로프 (스위스, 부심사위원장)
František Rauch (Czechoslovakia, deputy chair) / 프란티셰크 라우치 (체코슬로바키아, 부심사위원장)
Regina Smendzianka (Poland) / 레기나 스멘지안스카 (폴란드)
Péter Solymos (Hungary) / 페테르 솔리모스 (헝가리)
Zbigniew Śliwiński (Poland) / 즈비그니에프 실리빈스키 (폴란드)
Kazuko Yasukawa (Japan) / 카즈코 야스카와 (일본)
Tadeusz Żmudziński (Poland) / 타데우쉬 즈무진스키 (폴란드)
Prize-winners
1위 Dang Thai Son (Vietnam) / 당 타이 손 (베트남, 마주르카 특별상, 폴로네즈 특별상, 협주곡 특별상) - 아시아 최초 우승
2위 Tatiana Shebanova (USSR) / 타티아나 셰바노바 (러시아, 협주곡 특별상, 폴로네즈 특별상)
3위 Arutyun Papazyan (USSR) / 아루춘 파파지안 (아르메니아)
4위 없는 공동 5위
Akiko Ebi (Japan) / 아키코 에비 (일본)
Ewa Pobłocka (Poland) / 에바 포브워츠카 (폴란드, 마주르카 특별상)
공동 6위
Erik Berchot (France) / 에릭 베르쇼 (프랑스)
Irina Petrova (USSR) / 이리나 페트로바 (러시아), 현재 이리나 추코프스카야 (Irina Chukovskaya)
Polish Radio Prize for the best performance of mazurkas: Dang Thai Son (Vietnam) and Ewa Pobłocka (Poland)
Fryderyk Chopin Society Prize for the best performance of a polonaise: Dang Thai Son (Vietnam) and Tatiana Shebanova (USSR)
Warsaw Philharmonic Prize for the best performance of a concerto: Dang Thai Son (Vietnam) and Tatiana Shebanova (USSR)
Semifinalists (Top 15)
Dan Atanasiu (Romania) / 단 아타나시우 (루마니아)
Bernard D’Ascoli (France) / 베르나르 다스콜리 (프랑스)
Angela Hewitt (Canada) / 안젤라 휴이트 (캐나다)
Hung-Kuan Chen (Taiwan) / 훙-콴 첸 (대만)
Kevin Kenner (USA) / 케빈 케너 (미국)
Alexander Lonquich (FRG) / 알렉산더 론퀴히 (독일)
Ivo Pogorelich (Yugoslavia) / 이보 포고렐리치 (크로아티아)
William Wolfram (USA) / 윌리엄 울프람 (미국)
내지를 번역하다가 소련의 방해로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고 나와 있어서 당시의 심사위원들과 입상자들을 찾아봤는데, 당시의 우승자는 베트남의 당 타이 손이었고 2, 3, 6위가 구소련. 입상자 명단만 봐도 포고렐리치보다 더 잘 된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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