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도노호의 제7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일기 12 - 1982년 6월 25일
My Second Round
This cold that I have had for about 5 days now is a real drag, and in full swing today. My performance is at 10.30, and the weather is very hot. The program is ages long, very energetic and requires a lot of stamina. All in all, not a great prospect.
내가 지금 5일 정도 앓고 있었던 이 감기는 정말 고역이며, 오늘 최고조다. 내 연주는 10시 30분이며 날씨는 매우 덥다. 이 프로그램은 오래되었고, 매우 정력적이며, 많은 체력을 필요로 한다. 대체로 매우 유망하지 않다.
I have played now, and it went pretty well, particularly Petrushka. As soon as I got back to the hotel, I went to bed and slept all afternoon. Feeling much better now.
나는 지금 연주했고, 페트루슈카가 특히 잘 되었다.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누워 오후 내내 잤다. 지금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The program was: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다.
Tchaikovsky Sonata 2 (1st movement) – compulsory for all pianists. / 차이코프스키 그랜드 소나타 2악장 - 모든 피아니스트들에게 지정곡이다.
Liszt Sonata in B minor / 리스트 소나타
Tippett Sonata 2 / 티펫 소나타 2번
Prokofiev Sonata 6 / 프로코피에프 소나타 6번
Alexander Flierkovsky Prelude and Fugue in G minor / 알렉산더 플리에르코프스키 전주곡과 푸가 g단조
Stravinsky Petrushka. / 스트라빈스키 <페트루슈카에 의한 3개의 악장>
They got me to cut my Prokofiev Sonata 6 down to one movement, so I went for the finale.
그들은 프로코피에프 소나타 6번을 한 악장으로 줄였으므로, 나는 마지막 4악장을 선택했다.
The compulsory "work from your own country" was in my case Tippett Sonata 2. When tempo 1 returns as the top of the final page with a climactic ff C major chord (with a D in it), the audience applauded quite enthusiastically. When it became apparent that it was not finished yet, they went quiet very suddenly, amidst lots of "shushing". There were a few embarrassed attempts to applaud every time there was a further C Major chord until the final one. When I got to the end, there was no applause at all. I had to actually stand up and invite them to clap, after which there was much laughter.
지정곡인 “참가자의 출신 국가 작품”은 내 경우 티펫 소나타 2번이었다. 절정의 포르티시모(매우 세게) C장조 화음(도미솔)이 있는 마지막 페이지 위에 있는 템포 프리모(처음 빠르기로)로 돌아올 때, 청중은 매우 열광적으로 박수를 보냈다. 곡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많은 “쉬잇” 소리 속에서 그들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마지막 화음이 나올 때까지 C장조 화음이 있을 때마다 박수갈채를 보내는 몇 가지 당황스러운 시도들이 있었다. 내가 끝에 이르렀을 때에는 박수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실제로 일어나서 그들에게 박수를 권해야만 했고, 그 후에는 많은 웃음이 나왔다.
The compulsory Soviet commissioned work was a choice between a piece by the chairman of the competition – Otar Taktakishvili – and someone who is not on the jury and, as far as I know, has nothing to do with the competition – Alexander Flierkovsky. I chose the latter piece entirely because I thought everyone else would choose the other one, thinking that it would give them an advantage. I was right – almost everyone has opted for the Taktakishvili. Whether having played Flierkovsky will prove to be a disadvantage I wouldn't know yet. It shows how stupid competitions are if it does.
소련 지정 작품은 콩쿠르 심사위원장인 오타르 탁타키쉬빌리 그리고 내가 아는 한 심사위원이 아니며 콩쿠르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심사위원이 아닌 알렉산더 플리에르코프스키의 곡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었다. 나는 후자의 곡을 전적으로 선택했는데 이 곡이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이점을 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들이 다른 곡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옳았다. - 거의 모든 사람이 탁타키쉬빌리를 선택했다. 플리에르코프스키가 연주되었는지 여부는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단점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콩쿠르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보여준다.
My Liszt Sonata is controversial – it always had been and always will be – because I try to stick to the score as faithfully as possible, which doesn't seem to be fashionable. I thought I could sense that the jury was divided from the looks on their faces. So maybe I screwed up by choosing it. [iii]
내 리스트 소나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 항상 있었고 항상 있을 것이다. - 나는 가능하면 충실하게 악보에 있는 것을 고수하기 때문에 유행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나는 심사위원이 그들의 얼굴에 보이는 외모에서 분리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쩌면 내가 그것을 골라서 망쳐버렸을지도 모른다. [iii]
Petrushka however went as well as it could possibly have done. I actually elicited a glimpse of a genuinely enthusiastic response from the jury members. And the audience……. Words fail me! I actually lost it offstage after this performance because the audience reaction was so wonderful – and I do not get tearful easily.
하지만 페트루슈카가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사실 심사위원단의 진정 열렬한 반응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청중……. (내 기분을) 말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다! 청중의 반응이 정말 좋았으므로 실제로 이 연주 후 무대 밖에서 미쳤다. - 그리고 나는 쉽게 울먹이지 않는다.
My cold has finally gone. That was the most inconvenient and long-winded cold I have had for years – probably because of the lack of vitamins in the food. I feel much better, stronger and positive now – mainly because of this wonderful audience.
마침내 감기가 나았다. 내가 수년 동안 걸렸던 가장 불편하고 오래 지속된 감기였다. - 아마도 음식에 비타민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지금 훨씬 더 강하고 긍정적으로 느껴진다. - 주로 이 훌륭한 청중 때문이지.
[iii] I now know from many sources that at least one of the jury really hated my Liszt Sonata. So many Moscow audience members still mention it even now – 30 years later. I heard from one person who must remain nameless, that during the final jury meeting on the night of 8-9 July, Evgeny Malinin (Ivo Pogorelich's teacher when he was a student in Moscow, and later, after this competition, the teacher of Barry Douglas) was particularly determined that I should not win first prize and was banging on the table and saying 'you cannot play the Liszt Sonata that way'. Actually my performance on CD of eight years later was very similar to the competition performance, and won the Grand Prix du Disque, so one can play it that way, and I still do. So we will just have to agree to differ.
[iii] 나는 현재 각 방면에서 심사위원 중 적어도 한 명이 내 리스트 소나타 연주를 싫어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모스크바 청중이 이 점을 언급한다. 나는 7월 8~9일 밤에 최종 심사위원 회의 동안 이름을 밝히지 않는 한 사람, 에프게니 말리닌(이보 포고렐리치가 모스크바에서 학생이었을 때의 스승으로 나중에 이 콩쿠르 이후 배리 더글러스의 스승)으로부터 특히 내가 1등상을 차지해서는 안 된다고 정했으며 탁자 위를 쾅 치며 ‘리스트 소나타를 그런 식으로 연주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실제로 8년 후의 음반에서 발매된 내 연주는 콩쿠르 연주와 매우 유사했으며, 그랑프리 뒤 디스크를 받았으므로 그런 식으로 연주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견해 차이를 인정할 것이다.
However, I also gathered later that the Stravinsky – along with Rachmaninov Concerto 3 in the finals – did meet with approval from the jury.
그러나 나는 스트라빈스키 연주도 결선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과 마찬가지로 심사위원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Interestingly, on the many occasions (2 or 3 times a season) on which I returned to Moscow to give concerts, the audience would shout for the Danse Russe from the Stravinsky. I had to play it as an encore after virtually every Moscow recital program for more than ten years. When I finally did the piece after other encores, the audience would always applaud during the first line – it was like my equivalent of Sinatra's 'My Way' at the end of a show, and I certainly never thought a piece of Stravinsky could be in that position. It didn't seem to matter whether I played it well or not – and sometimes I didn't. How extraordinary the Moscow audience is.
흥미롭게도 내가 모스크바로 돌아와서 콘서트를 가지기 위한 여러 경우에(한 시즌에 두세 번) 청중은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에 의한 3개의 악장> 중 1번 <러시아의 춤>을 외치곤 했다. 나는 10년 이상 거의 모든 모스크바 리사이틀 프로그램이 끝난 후 이 곡을 앙코르로 연주해야만 했다. 마침내 다른 앙코르곡들을 연주한 후 첫 줄에서 항상 청중이 찬사를 보내곤 했다. - 그것은 쇼의 끝에서 시내트라의 노래 <마이 웨이>에 상응하는 것 같았으며, 나는 확실히 스트라빈스키의 곡이 그 위치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잘 연주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 그리고 때로는 연주하지 않았다. 모스크바 청중이 얼마나 남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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