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e12hZly09Ns&list=OLAK5uy_nnhz2Ll8CEjAAY7luiYtyhQdMEm9zEeMQ
https://www.youtube.com/watch?v=bkVVhkIXs2E
2019 차이코프스키 국제음악콩쿠르 우승자 알렉상드르 캉토로프는 세계 유수 국제 콩쿠르 최다 우승자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인 아버지, 장-자크 캉토로프의 재능을 이어 받아서 뛰어난 테크닉과 풍부한 감정을 표현한 연주로 이미 10대에 두 장의 음반을 발매하여 전 세계 음악 관계자들로부터 극찬을 받은 천재 피아니스트이다. 브람스 랩소디 1번, 버르토크 랩소디 그리고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까지 화려한 테크닉과 섬세한 감성으로 완성된 본 음반에서 캉토로프는 20대 초반의 연주자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빼어난 연주를 들려준다.
Track
01 Brahms Rhapsody in b, Op. 79 No. 1 / 브람스 랩소디 1번 작품 79-1
02 Brahms Piano Sonata No. 2 in f#, Op. 2: I. Allegro non troppo, ma energico /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2번
03 Brahms Piano Sonata No. 2 in f#, Op. 2: II. Andante con espressione
04 Brahms Piano Sonata No. 2 in f#, Op. 2: III. Scherzo. Allegro - Trio. Poco piu moderato
05 Brahms Piano Sonata No. 2 in f#, Op. 2: IV. Finale. Sostenuto - Allegro non troppo e rubato - Molto sostenuto
06 Bartok Rhapsody, Op. 1 (Sz. 26) / 버르토크 랩소디 1번
07 Liszt Hungarian Rhapsody in a, S. 244 No. 11 / 리스트 헝가리 랩소디 11번
When Franz Liszt wrote that 'virtuosity is not an outgrowth, but an indispensable element of music', he was merely confirming what was already normal in the 19th century: pianists, violinists and other soloists tried to win admiration or even to provoke astonishment by means of a technique that was ever more complex. In this way they could compete with opera singers, who had long relied on pieces that showed off their abilities and gained the acclaim of their audiences. On the harpsichord and then the piano, however, the limitations of the instrument had hitherto constrained the performers' virtuosity. Rapid progress in piano building at the beginning of the 19th century (an extended keyboard, greater power and especially the 'double escapement' action) and also in playing technique encouraged the composition of works that remained the exclusive confines of a select few. Concerts by the Genoese violinist Niccolò Paganini in Vienna in 1828 and then in Paris in 1831 caused a shock wave. In the audience the young Franz Liszt sat fascinated, regarding what he was witnessing as an encouragement to exploit his extraordinary piano technique in his music and to become the Paganini of the piano, writing devilishly difficult compositions.
프란츠 리스트가 ‘거장적 기교는 결과물이 아니라 음악의 필수 요소’라고 썼을 때, 그는 19세기 음악활동에서 일반적이었던 것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및 기타 독주자들은 점점 더 복잡한 연주 기법을 통해 감탄과 놀라움을 불러일으키려고 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자신의 기량을 과시하여 청중의 찬사를 얻은 곡들(청중의 환호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알고 있는 노래들)에 오랫동안 의존해온 오페라 가수들과 경쟁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프시코드와 이어서 나온 피아노에서, 악기의 한계는 지금까지 연주자의 기교에 달려있었다. 19세기 초 피아노 제작(확장된 건반, 더 큰 힘, 특히 해머가 현을 때리고 되돌아오는 기술인 ‘이중 이스케이프먼트’ 액션)과 연주 기법의 급속한 발전도 일부 소수의 독점 예약으로 남아있는 작품들의 구성에 기여했다. 제노아의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가 1828년 비엔나에 이어 1831년 파리에서 가진 연주회들도 충격파를 일으켰다. 청중 속에 앉아있었던 젊은 프란츠 리스트는 자신의 음악에서 탁월한 피아노 테크닉을 활용하여 피아노계의 파가니니가 되어 악마처럼 어려운 작품들을 써서 이단아가 되길 바랐다.
The traditional forms that had been in fashion during the Classical period were still in use and being modified. The concerto, for example, developed from a dialogue between soloist and orchestra into a showpiece designed to highlight the soloist (frequently the composer himself) to the detriment of the orchestra, which is often relegated to a simple accompanimental role. Other forms acquired a special status, such as the sonata which, to quote Charles Rosen, became 'the vehicle of the sublime' through which 'the highest musical ambitions [could] be realized'. New forms appeared – ones that did not involve rigorous formal schemes – and permitted composers (and often performers) to allow their imagination free rein. One of these was the étude, which distanced itself from its pedagogical origins; others were the prelude, the fantasia (often based on a popular theme) and the rhapsody, whose improvisatory character and 'pot-pourri' nature seem to correspond perfectly with the Romantic spirit, more concerned with arousing poetic feelings than to create a strict formal structure.
고전주의 시대에 유행했던 전통적인 형식은 여전히 사용 중이며 수정 중이었다. (고전 시대의 전통적인 형식은 각색을 통해 살아남았다.) 예를 들어 협주곡은 독주자와 오케스트라 사이의 대화에서 종종 단순한 반주자 역할로 강등되는 오케스트라를 해치도록 (종종 작곡가 자신인) 독주자를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표작으로 발전했다. 다른 형식들은 찰스 로젠의 말을 인용한다면, ‘최고의 음악적 야망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을 통해 ‘숭고한 매개체’가 된 소나타 같은 특별한 지휘를 얻었다. 엄격한 형식적 구조와는 거리가 먼 새로운 형식들이 등장하여 작곡가들(과 종종 연주자들)이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런 형식들 중의 하나는 에튀드로, 그 교육적 기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 다른 것들은 전주곡, (종종 인기 있는 주제를 기반으로 한) 환상곡, 즉흥적인 성격을 지닌 랩소디였으며, ‘메들리’(접속곡) 성격은 엄격한 형식적 구조를 창조하기보다는 시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더 관심이 있는 낭만주의 정신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처럼 보였다.
For the nineteen "Hungarian Rhapsodies" that he composed in two periods, 1846–53 and 1882–85, Liszt drew on his Hungarian roots (of which he was very fond) and used what he believed to be Hungarian folk (i.e. 'gypsy') themes: 'I wanted to create a sort of national epic of Gypsy music… With the word 'rhapsody' we wished to point out the fantastically epic element that we believe we have recognized in it… It's true that these fragments tell no story; but ears that know how to hear will notice the expression of certain states of mind that summarize the national ideal.' In fact these themes were not in the least authentic, but were by middle-class Hungarian composers whose pieces had been taken up by travelling gypsy bands. Not until Bela Bartók and Zoltán Kodály would works inspired by the country's genuine folk music be written.
1846~1853년과 1882~1885년의 두 기간에 걸쳐 작곡한 19개의 <헝가리 랩소디>에서 리스트는 (그가 매우 애착을 느꼈던) 헝가리의 뿌리를 기억하여 헝가리 민속(즉 ‘집시’) 음악에서 파생되었다고 생각하는 주제들을 사용했다. - ‘나는 집시 음악의 국민 서사시를 만들고 싶었다... 랩소디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우리가 그 안에서 인식한 환상적으로 서사시적인 요소(작품)를 나타내고 싶었다... 이 단편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듣는 방법을 이해하는 귀는 국가적 이상이 응축된 특정 마음 상태의 표현을 알아차릴 것이다.’ 사실 이 주제들은 결코 진품이 아니었지만, 중산층 헝가리 작곡가들이 떠돌이 집시 악단들에게서 이어받은 곡들이다. 벨라 버르토크와 졸탄 코다이가 이 나라의 진정한 민속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을 쓸 때까지는 아니었다. (벨라 버르토크와 졸탄 코다이만이 이 사람들의 실제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곡들을 썼다.)
"Hungarian Rhapsody No. 11", in A minor, was probably composed in 1847 and is dedicated to Baron "Fery Orczy", a conductor and minor composer. After a delicate first section that evokes the cimbalom (a traditional Hungarian instrument), the second section has the feeling of the famous "verbunkos", a military recruitment dance, before a rapid conclusion in the style of a "csárdás" with plenty of panache.
<헝가리 랩소디 11번> a단조는 1847년경에 작곡되었으며, 지휘자이자 덜 알려진 작곡가인 “페리 오르치” 남작에게 헌정되었다. 침발롬(헝가리 전통 악기)을 연상시키는 섬세한 첫 번째 섹션이 끝난 후, 두 번째 섹션은 군대 모집 춤곡으로 유명한 “베르분코스”의 느낌을 가지고 있으며, 이어서 매우 위풍당당한 “차르다시” 풍으로 빨리 끝난다.
Around the same time a young German composer, Johannes Brahms, was making his entry onto the musical scene with his first major piano work, the Sonata in F sharp minor, Op. 2. Although it is referred to as his 'second sonata', it was finished before the 'first', in November 1852 (in fact the highly self-critical composer had written other sonatas at around the same time, and then destroyed them). Brahms played it to Robert and Clara Schumann in Düsseldorf in the autumn of 1853 – and this was his introduction into their life. Schumann's commentary in his diary on 1st October is revealing: 'Visit from Brahms. A genius.' Later, Schumann would write a famous article, 'Neue Bahnen' (New Paths), published in the "Neue Zeit schrift für Musik", in which he sang the praises of 'a young blood, at whose cradle graces and heroes kept watch'.
거의 같은 시기에 젊은 독일 작곡가인 요하네스 브람스는 첫 번째 주요 작품인 피아노 소나타 올림f단조 작품 2로 음악계에 진출했다. ‘두 번째 소나타’로 불리지만, 1852년 11월에 ‘첫 번째 소나타’보다 먼저 완성되었다. (사실 극도로 자기 비판적인 작곡가 브람스는 이 시기의 다른 소나타들을 썼다가 없앴다.) 브람스는 1853년 가을 뒤셀도르프에서 로베르트와 클라라 슈만 부부 앞에서 이 곡을 연주하여, 그들의 삶에 들어왔다. 10월 1일 슈만이 일기에 쓴 논평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여준다. - ‘브람스 방문. 천재.’ 나중에 슈만은 <신음악잡지>에 실린 유명한 기사인 ‘새로운 길’을 썼는데, 여기에서 그는 ‘요람에서부터 미의 여신들과 영웅들의 보호를 받은 젊은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In choosing the sonata genre, Brahms strongly asserted his intention of mastering Classical forms and of keeping his distance from virtuoso music which was more popular but, in his opinion, less profound. Virtuosity is by no means lacking in the work, however, starting with the double octaves in the opening salvo, which are reminiscent of Liszt. On the other hand, the rhythmic vitality of the second theme is already typically Brahmsian. In itself this powerful movement, marked "Allegro non troppo, ma energico", shows that Brahms had attained a mastery of structure. In the second movement, "Andante con espressione", it would appear – according to a friend of the composer's – that he 'based the melody… on the words of an old German song, "Mir ist leide, daß der Winter Beide, Wald und auch die Haide, hat gemachet fahl" (I am sorrowful that winter has turned pale both forest and heath)'. Its opulent harmonic structure and its lyricism are reminiscent of Mendelssohn's "Songs without Words". The highly-strung scherzo, "Allegro", takes up the theme of the preceding movement in a 6/8 metre – proof that even at the beginning of his career Brahms wanted to create unity within the larger musical forms – before we reach the trio, "Poco più moderato", which is almost Schubertian, with a siciliano rhythm. The solemn finale, "Allegro non troppo e rubato", is in sonata form and brilliantly concludes a work that proclaims the emergence of an exceptionally talented composer.
소나타 장르를 선택할 때, 브람스는 고전주의 형식들을 습득하여 더 인기 있지만 그한테는 덜 심오한 거장 음악과의 거리를 유지하려는 의도를 강조했다. 그러나 리스트를 연상시키는 개시 사격에 있는 이중 옥타브에서 시작하는 이 작품은 거장적 기교가 결코 부족하지 않다. 반면에 제2주제의 활력 넘치는 리듬은 이미 전형적으로 브람시안(고전의 전통을 계승하자는 브람스의 음악정신)이다. 그 자체로 “알레그로 논 트로포, 마 에네르지코”(너무 빠르지 않게, 그러나 힘차게)라고 표시된 이 강력한 1악장은 브람스가 구조를 완전히 익혔음(이미 형식의 대가임)을 보여준다. 2악장 “안단테 콘 에스프레시오네”(느리게 노래하듯이 감정 표현을 가지고)에서는 - 작곡가의 친구 알베르트 디트리히(Albert Dietrich)에 의하면 - 그가 ‘옛 독일 노래 가사(안타깝다. 겨울은 숲과 들을 헐벗게 만들었구나.)의... 선율을 기초로 한’ 것으로 보인다. 화려한 화성적 구조와 그 서정성(풍부한 화성과 서정적 분위기)은 멘델스존의 <무언가>를 연상케 한다. 아주 예민한(신경질적인) 스케르초인 3악장 “알레그로”(빠르게)는 6/8박자로, 이전 악장(2악장)의 주제를 다룬다. - 경력 초기에도 브람스가 더 큰 음악 형식들 안에서 통일성을 추구했음을 보여준다. - 이어서 시칠리아노 리듬을 지닌, 거의 슈베르티안인(슈베르트에 가까운) 트리오 “포코 피우 모데라토”(조금 더 빠르게)가 나온다. 엄숙한 피날레인 4악장 “알레그로 논 트로포 에 루바토”(너무 빠르지 않게, 템포를 자유롭게)는 소나타 형식을 따르며, 뛰어난 재능을 지닌 작곡가의 출연을 예고하는 작품을 화려하게 마무리한다.
Brahms Piano Sonata No. 2 in f#, Op. 2: I. Allegro non troppo, ma energico (1st theme) /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2번 1악장 제1주제
Brahms Piano Sonata No. 2 in f#, Op. 2: I. Allegro non troppo, ma energico (2nd theme) /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2번 1악장 제2주제
Brahms Piano Sonata No. 2 in f#, Op. 2: II. Andante con espressione /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2번 2악장
Brahms Piano Sonata No. 2 in f#, Op. 2: III. Scherzo. Allegro /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2번 3악장 스케르초
Brahms Piano Sonata No. 2 in f#, Op. 2: III. Trio. Poco più moderato /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2번 3악장 트리오
Brahms Piano Sonata No. 2 in f#, Op. 2: IV. Finale. Sostenuto - Allegro non troppo e rubato - Molto sostenuto /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2번 4악장
In a letter from March 1855, Schumann returned to his new protégé's sonata: 'Your Second Sonata, my friend, has brought me very close to you. This is something wholly new for me: I live in your music.' To thank the Schumanns, Brahms dedicated the work to Clara, as a 'discreet sign' of his 'admiration and gratitude', but she seems never to have played the piece. Strangely, Brahms withdrew the piece from his own repertoire, and it had to wait until February 1882 for its first public performance in Vienna, given by Hans von Bülow. As the sonata had been composed when he was under the influence of highly Romantic works by Jean Paul and E.T.A. Hoffmann, might the ever-reserved Brahms have felt that it revealed too much about himself?
1855년 3월의 편지에서, 슈만은 새로운 제자의 소나타를 다시 언급했다. ‘내 친구인 당신의 두 번째 소나타가 저를 당신과 훨씬 더 가까워지게 했습니다. 이건 제게 완전히 새로운(상당히 낯선) 것입니다. - 저는 당신의 음악에 들어가 살고 있습니다.’ 슈만 부부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브람스는 이 작품을 자신의 ‘존경과 감사’에 대한 ‘분명한 표시’로 클라라에게 헌정했지만, 그녀는 이 곡을 (공개로) 연주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상하게도 브람스는 자신의 레퍼토리에 이 곡을 포함시키지 않았으므로, 1882년 2월 한스 폰 뷜로프가 빈에서 초연하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 소나타가 장 파울과 에른스트 테오도어 아마데우스 호프만이 쓴 최고 낭만주의 작품들의 영향을 받았을 때 작곡되었듯이, 항상 내성적인 브람스는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이 드러냈다고 느꼈을까? (아마도 항상 신중한 브람스는 장 폴과 호프만의 최고 낭만주의 작품의 영향을 받은 이 소나타가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이 드러낸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In 1879, when he was firmly established as a composer, Brahms returned to solo piano music with the two Rhapsodies, Op. 79, his first truly important works for the instrument since the Third Sonata, Op. 5 (1853). The Rhapsodies seem to mark a return to the 'young and tempestuous' Brahms, as one of his friends, the surgeon and amateur violinist Theodor Billroth, put it. They have nothing in common with Liszt's "Hungarian Rhapsodies", however, although both composers showed an interest in Hungarian folk music (or what they believed it to be) and, far from showing any improvisatory or pot-pourri character, they have a clear formal structure. Brahms asked the dedicatee, his friend and fellow composer Elisabeth von Herzogenberg, if she could think of 'a title that would be better than "Two Rhapsodies for the Pianoforte"?' She replied that although 'the closed form of the two pieces almost appears to contradict the concept of the rhapsody', such words had 'lost their characteristics through usage' and concluded: 'Thus welcome, you in my heart nameless ones, in the foggy garb of the rhapsody!' They are among the best-known of Brahms's piano works, and he often played them in concert. Originally called 'Capriccio', the first of them, "Agitato" in B minor, is the longer and more virtuosic of the two, and the less introspective.
1879년 작곡가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을 때, 브람스는 2개의 랩소디 작품 79와 함께 피아노 솔로 음악으로 돌아왔는데, 이는 세 번째 소나타(1853) 이후 처음으로 이 악기에 대해 정말 중요한 작품이다. 이 2개의 랩소디는 그의 친구 중 한 명인, 외과 의사이자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인 테오도어 빌로트가 말했듯이, ‘젊고 격렬한(하늘을 찌르는)’ 브람스의 귀환을 기념하는 것 같다. 이 곡들은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와는 공통점이 없지만, 두 작곡가 모두 헝가리 민속 음악(또는 그들이 생각했던 음악)에 관심을 보였음에도, 즉흥적이거나 메들리 성격을 보여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명확한 형식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브람스는 헌정자이자 자신의 친구이기도 한 동료 작곡가 엘리자베트 폰 헤르초겐베르크에게 “피아노포르테를 위한 2개의 랩소디”보다 더 나은 제목을 생각할 수 있는지(더 좋은 제목을 알고 있는지) 질문했다. 그녀는 ‘두 곡의 닫힌 형식이 랩소디의 개념과 거의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단어들은 ‘사용에 있어서 그 특성을 잃었다’고 대답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그러므로 환영한다, 내 마음에 이름 없는 자들, 랩소디의 안개가 자욱한 옷차림으로! (랩소디의 안개 속에서 내 마음에 이름 없는 당신!)’ 브람스의 피아노 작품들 중 잘 알려진 것들 중의 하나이며, 그는 콘서트에서 이 곡들을 자주 연주했다. 원래 ‘카프리치오’라고 불렸던 1번 b단조 “아지타토”(격하게)는 둘 중 더 길고 더 거장적 기교를 요구하며 덜 내성적이다.
Born when Liszt was beginning the last phase of his career, Béla Bartók planned for a while to make a career as a concert pianist. Although he eventually chose to prioritize composition, he continued to perform in public, playing his own music and that of his contemporaries as well as the classics that he admired – Beethoven, for example. As a good Hungarian, he was interested in the music of Liszt, though he did not care for the excessively virtuoso pieces that he had the opportunity to play during his studies. Bartók preferred the profundity of less familiar works such as the "Années de pèlerinage" or the "Harmonies poétiques et religieuses", and through them he came to regard Liszt as the great musical innovator of the nineteenth century.
리스트가 경력의 마지막 단계로 접어들 때 태어난 벨라 버르토크는 한동안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될 생각을 가지고 연주했다. 결국 작곡을 우선순위로 정했지만, 그는 자신의 음악과 동시대의 음악뿐만 아니라 그가 존경했던 고전음악, 예를 들면 베토벤을 계속해서 대중 앞에서 연주했다. 진정한 헝가리인으로서 그는 리스트의 음악에 관심이 있었지만, 학생 시절에 연주할 기회가 있었던, 과도하게 거장적인 곡들에는 관심이 없었다. 버르토크는 <순례의 연보>나 <시적이고 종교적인 선율> 같은 덜 알려진 작품들의 심오함(깊이)을 선호했으며, 이를 통해 리스트를 19세기의 위대한 음악 혁신가로 보게 되었다.
In this way Bartók developed a musical language in which we can hear not only the technical boldness and the 'national' form of Liszt's Hungarian rhapsodies but also his own style. This approach, in which modernity continues in the footsteps of a nineteenth-century composer, can be compared with that of Karol Szymanowski in Poland, after Chopin. And thus the Rhapsody, Op. 1/Sz. 26, was born. If its virtuoso aspect brings Liszt to mind, it is to Brahms that we turn in terms of colour. The work is dedicated to Emma Gruber, the future wife of Zoltán Kodály, and has quite complicated origins: it was originally written for piano solo in late 1904, and there is also a version for piano and orchestra, and one for two pianos. In addition, a shortened version was published in 1907. By then Bartók had already decided to devote himself seriously to the study of Hungarian folk music, which he collected in the field together with his friend Kodály. This work was thus composed at a pivotal moment in his life.
이러한 방식으로 버르토크는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에 있는 기술적 대담함과 ‘국가적’ 형식뿐만 아니라 자신의 스타일도 들을 수 있는 음악 언어를 개발했다. (이를 염두에 두고 버르토크는 리스트의 기술적 대담함과 헝가리 랩소디의 ‘국가적’ 형태를 자신의 스타일과 결합한 음색 언어를 만들어냈다.) 19세기 작곡가의 발자취에서 근대성이 계속되는 이 접근 방식은 쇼팽 이후 폴란드의 카롤 시마노프스키의 것과 비교할 수 있다. 그렇게 랩소디 작품 1이 탄생했다. 그 거장적인 측면이 리스트를 떠오르게 한다면, 우리가 음색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브람스에게 있다. (이것이 바로 버르토크의 랩소디 작품 1이 만들어지는 방식으로, 그의 기교는 리스트를, 음색을 브람스를 나타낸다.) 이 작품은 졸탄 코다이의 미래의 아내가 되는 엠마 그루버에게 헌정되었으며, 매우 복잡한 기원(다소 복잡한 역사)을 가지고 있다. - 원래 1904년 말에는 피아노 솔로를 위해 작곡되었으며,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버전, 2대의 피아노를 위한 버전도 있다. 게다가 단축된 버전이 1907년에 출판되었다. 그때까지 버르토크는 이미 헝가리 민속 음악 연구에 진지하게 전념하기로 결정했으며, 친구 코다이와 함께 현장에서 수집했다. 이 작품은 따라서 그의 인생에서 중추적인(중요한) 순간에 만들어졌다.
The Rhapsody, which he regarded as his first 'mature' work, and later listed as his Op. 1, is in two sections. The first is slow and improvisatory in nature; the second is fast and has the bipartite form of the "csárdás" with its "lassú" and its "friss". In the first section we find gypsy-style improvisations with impassioned repetitions of various motifs and imitations of the sound of the cimbalom. Like Liszt and his "Hungarian Rhapsodies", however, this is a stylized evocation of Hungary (Bartók had not yet started his ethnomusicological work), far removed from authenticity. In this first section, Bartók seems to enjoy the chords just for their colour – a bit like Debussy, whose music he admired. In the second section, the harmonies are simpler and more classical, but there is no lack of bold and original touches, and the rhythmic vitality ensures that the work avoids becoming facile. The Rhapsody is nowadays rarely played and is a long way from what we normally associate with Bartók, with its virtuosity that is a legacy from the nineteenth century and its somewhat bombastic Magyarism. It nevertheless represents the first step on the way to a body of music that would draw even more deeply on his Hungarian origins.
그가 자신의 첫 번째 ‘성숙한’ 작품으로 간주하여 나중에 작품 1이 된 랩소디는 2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본질적으로 느리고 즉흥적인 반면, 두 번째는 (느리고 장중한) “라수”와 (빠르고 역동적인) “프리스”로 구성된 빠른 “차르다시”[헝가리에 많이 사는 집시들의 민속춤곡으로, 완만하고 도입적(導入的)인 역할을 하며, 호소하는 듯한 멜로디를 노래하는 라스와, 빠르고 격정적인 프리스의 두 부분으로 되어 있음]의 2부 형식이다. 첫 번째 섹션에는 다양한 모티프의 열정적인 반복과 함께 침발롬의 소리를 모방한 집시풍의 즉흥 연주가 있다. 그러나 리스트와 그의 <헝가리 랩소디>처럼, 이 곡은 헝가리의 양식화된 연상(버르토크는 아직 그의 민족 음악적인 작품을 시작하지 않았음)으로, 진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이 첫 번째 섹션에서 버르토크는 자신의 음악에 감탄한 드뷔시와 약간 비슷하게 색채만으로 화음들을 즐기는 것 같다. 두 번째 섹션에서는 화성이 더 단순하고 고전적이지만, 대담하고 독창적인 감각이 부족하지 않으며, 활기 넘치는 리듬으로 작품이 안이해지는 것을 방지한다. 이 랩소디는 요즘에는 거의 연주되지 않으며 19세기 유산인 거장적 기교와 다소 과격한(건방진) 마자르주의를 지녔으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버르토크와 연관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이 곡은 그의 헝가리 기원을 더욱 깊이 끌어들일 음악계로 가는 첫 걸음을 나타낸다.
© Jean-Pascal Vachon 2020 / 장-파스칼 바숑 글
In 2019, Alexandre Kantorow became the first French pianist to win the gold medal at the prestigious Tchaikovsky Competition as well as the Grand Prix, awarded only three times before in the competition's history. Hailed by critics as the 'young tsar of the piano' ("Classica") and 'Liszt reincarnated' ("Fanfare"), Kantorow started performing at an early age. At the age of sixteen he was invited to appear with the Sinfonia Varsovia at 'La Folle Journée' in Nantes and Warsaw and since then he has played with numerous orchestras, performing regularly with Valery Gergiev and the Mariinsky Orchestra.
2019년에 알렉상드르 캉토로프는 권위 있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프랑스 피아니스트 최초로 금메달리스트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콩쿠르 역사상 3번만 있었던 대상도 받았다. ‘피아노의 젊은 차르’(클라시카), ‘리스트의 환생’(팡파르) 등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은 캉토로프는 어릴 적부터 연주하기 시작했다. 16세에는 낭트의 <광적인 날들> 페스티벌과 바르샤바에서 신포니아 바르소비아와의 협연에 초청 받았으며 이후 유수의 오케스트라들과 협연해왔다. 그는 마린스키 오케스트라(발레리 게르기에프 지휘)와 정기적으로 협연한다.
Alexandre Kantorow has played at major concert halls such as the Amsterdam Concertgebouw, Konzerthaus Berlin, Philharmonie de Paris and Bozar in Brussels, as well as at prestigious festivals including Verbier, la Roque d'Anthéron and Piano aux Jacobins.
알렉상드르 캉토로프는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우,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파리 필하모니, 브뤼셀 보자르 같은 주요 콘서트홀들뿐만 아니라 베르비에, 라 로크 당테롱, 자코뱅의 피아노 등 저명한 페스티벌들에서 연주했다.
His recital disc 'À la russe' (BIS-2150) has won many awards and distinctions including Choc de l'Année ("Classica"), Diapason découverte (Diapason), Supersonic ("Pizzicato") and CD des Doppelmonats ("PianoNews"). He has also recorded concertos by Liszt (BIS-2100) and Saint-Saëns (Nos 3–5; BIS-2300) – a disc which was awarded both Diapason d'Or de l'Année and Choc de l'Année ("Classica") – and Serebrier (BIS-2423). In 2020, Kantorow won the Victoires de la Musique Classique in two categories: Recording of the Year (for the Saint-Saëns concerto disc) and Instrumental Soloist of the Year.
그의 리사이틀 음반 <러시아 풍으로>는 쇼크 클라시카 올해의 음반 선정, 데쿠베르트 디아파종, 피치카토 슈퍼소닉, 피아노뉴스 격월(두 달에 한 번 선정하는) 음반 등 많을 상들을 받았으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리스트와 생상스의 협주곡들을 녹음하여 둘 다 “올해의 황금 디아파종 상” 및 클라시카 “올해의 쇼크” 상을 받았으며, 세레브리에르의 협주곡도 녹음했다. 2020년 2월에는 프랑스 메츠에서 열린 제27회 빅투아르 드 라 뮈지크 클라시크 2개 부문의 상을 받았는데, (생상스 협주곡 음반으로) 올해의 음반 및 올해의 기악 독주자로 선정되었다.
Alexandre Kantorow has studied with Pierre-Alain Volondat, Igor Lazko, Franck Braley and Rena Shereshevskaya. He is a laureate of the Safran Foundation and Fondation Banque Populaire.
알렉상드르 캉토로프는 피에르-알랭 볼롱다, 이고르 라즈코, 프랑크 브랄레, 레나 셰레셰프스카야를 사사했다. 그는 사프란 재단 및 방크 포퓔레르 재단의 장학생이다.
브람스 소나타 2번에 대한 분석은 관련 논문에서 몇 가지 찾아서 악보 발췌 및 번역을 해결했다. 영어에서 번역이 안 되는 부분은 독어와 불어를 동원하여 절충했다.
https://sanet.st/blogs/delpotromusic/alexandre_kantorow_brahms_bartk__liszt_piano_works.34762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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