Łazienki Park
아침을 먹고 방에서 잠깐 쉬다가 11시 30분에 나갔는데도 쌀쌀해서 가방에 비상용으로 넣어둔 목도리를 맸다. 폴란드는 과일 맛이 우리나라에 비해 싱겁다. 그래서 주스도 싱거웠나보다. 호텔에서 와지엔키 공원까지 걸리는 시간은 18분. 힐링하면서 산책도 할 겸 구글 지도를 보면서 찾아갔다. 막상 가보니 딱히 볼 게 없었다. 경찰들이 간격을 두고 서 있었다. 표지판에 뱀을 죽이지 말라는 표시가 있었는데, 뱀 나올까봐 벤치에 오래 앉아있지도 못했다. 그래서 지나가다가 본 분수대로 가서 잠시 머물다가 호텔로 돌아와서 밀린 일기를 정리했다. 와지엔키는 욕탕이란 의미로 건물 내에 훌륭한 욕탕이 여러 개 있어서 붙여진 이름.
가족들에게 10월 3일 한국시간으로 저녁 5시에 쇼팽 콩쿠르가 시작되는데 우승 후보가 나오니까 6시부터라도 보라고 말했다. 우승자가 1라운드 첫째 날에 정해질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1라운드에서 에튀드 10번 연주하는 사람 중에서 우승자가 나올 거라고 말하면서 2005년 라파우 블레하치, 2010년 율리아나 아브제예바, 2015년 조성진의 연주를 찾아서 유튜브 링크를 보냈다. 라파우 블레하치가 에튀드 10번 연주한 걸 알고 있었는데 조성진도 이걸 연주하네? 그러다가 율리아나 아브제예바도 겨울바람 말고 어떤 에튀드를 연주했는지 생각나지 않아서 찾아보니 10번 연주한 걸 알게 되어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우승자들의 에튀드 연주를 들어보면 연습곡처럼 들리지 않는다. 마치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평범한 난이도의 곡을 연주하는 것처럼 들린다.
화이자 2차 접종 완료 후 딱 2주일 지난 시점에 출국했는데, 호텔로 가서 며칠 동안 동영상이나 보면서 자가 격리하고 있을 내 자신을 생각했다. 식충이처럼 방, 레스토랑, 편의점을 왕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동적으로 변했다. 몇 군데 찾아서 발품팔고 다녔다. 외출을 자제하려고 했던 이유는 코로나19 때문이었다. 호텔 입구인 회전문에서 조식 시간을 발견했는데 늦어도 9시 되기 전에는 먹었다. 지금은 적응되었지만 며칠 동안 한국의 방바닥이 그리웠다.
Gala Opening Concert of the 18th Chopin Competition
아침에 과식해서 점심 건너뛰고 저녁 먹고 7시 넘어서 공연장으로 향했다. 구글 지도를 보면서 제대로 갔는데 가다가 공사판에서 길이 막혔다. 그래서 되돌아가는데 자갈밭에서 넘어져서 오른손과 양쪽 무릎이 까였다. 길치인데다가 깜깜해서 길을 잃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그러다가 탈이 났다. 점심 때 외출하면서 얇은 여름용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갈아입으려다가 그대로 갔다. 넘어진 정도면 차라리 나은데 오른쪽 무릎에 구멍이 났다. 일단 홀로 가서 화장실을 찾아 흙 묻은 부분을 씻었다. 다른 옷이 아니라 차라리 다행이고 액땜으로 생각하려고...
오프닝 콘서트를 가보려고 했던 이유는 콩쿠르가 열리기 전에 바르샤바 필하모닉 콘서트홀의 공기가 어떤지 느껴보고 싶어서였다.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연주도 또 보고 싶었고. 하지만 절친 넬손 프레이레가 아파서 이번 대회 심사위원에서 빠지게 되자 무슨 의리인 건지(?) 아르헤리치도 빠졌다. 둘이 2010년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나란히 나오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그림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아르헤리치는 올해 80세.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우승자 3명이 나왔는데 율리아나가 말하길 대회 당시에 바르샤바의 길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율리아나는 우승한 것에 대해 말이 많았다. 애초에 예선 명단에도 없었는데 남편과 중국인 심사위원 후총이 주최 측에 항의해서 1라운드에 들어간 거라는 소리를 DC인사이드에서 봤다. 후총은 알고 보면 율리아나의 스승인데 심사를 하면 안 되는 것임에도 했다. 당시에 1라운드 인원이 80명도 아니고 81명인 게 의아했다. 3명이 기권하면서 78명이 되었지만. 단지 마스터클래스 받은 경력이 아니었던 모양. 후총이 율리아나의 연주를 듣고 몇 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소리라고 전율했다는 얘기가 있다. 나중에 사람들이 후총에 대해 무리하게 우승시켜서 제자의 앞길을 망쳤다고 욕했다. (후총은 2020년 12월 영국에서 코로나 델타 변이 바이러스로 사망했다.) 이후 2016년 초에 큰 대회 우승자들의 유태계 여부를 조사하다가 율리아나가 기어이 우승한 이유가 유태계 밀어주기란 걸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결선에서 1위로 투표한 아르헤리치도 어쩔 수 없는 유태인이란 걸 깨달았다. 그럼에도 나한테 가장 기억에 남고 애착이 가는 대회는 쇼팽 탄생 200주년에 열렸던 2010년이다. 한국인 대다수에게는 조성진이 우승한 2015년이겠지만.
밤 8시 공연인데 호텔에서 걸어가면 12분 걸린다. 3일 동안 고생했더니 길 찾는 시간을 전보다 단축했다. 티켓을 보여주니 사인을 해준다. Chopin Courier 뉴스레터 1호도 나눠줬다. 처음에는 프로그램 북인 줄 알았는데 프로그램은 없고 조성진의 인터뷰가 있었다. 시간상 번역하지는 못한다. 2층 발코니석에서 봤는데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이번 대회 심사위원인 디나 요페, 드미트리 알렉세예프, 보이체흐 시비타와, 아키코 에비가 보였다.
Schumann Piano Quintet in Eb, Op. 44 / 슈만 피아노 퀸텟
I. Sostenuto assai - Allegro ma non troppo
II. Scherzo. Molto vivace
III. Andante cantabile
IV. Finale. Vivace
... Yulianna Avdeeva, 2010 winner (replaced Martha Argerich, 1965 winner) / 율리아나 아브제예바, 2010년 1위 (1965년 1위 마르타 아르헤리치 대체)
... Belcea Quartet / 벨체아 콰르텟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공연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되자 직원들이 홀 입구를 잠갔다. 실내악을 들어보니 홀의 울림이 좋았다. 율리아나는 어둡고 무거운 음악을 잘 하는 게 특징. 마치 시련을 겪었던 것처럼 깊은 심연을 표현하기도 하고. 대학교 3학년 피아노 문헌 시간에 슈만 피아노 소나타 1번을 율리아나의 연주로 감상했는데 좋았던 기억이 있다. 2010년에 우승하고 나서 언제 내 맘에라도 들까 생각했는데 다행히 2020년이 되기 전에 연주가 많이 나아졌다. 믿을 구석이라곤 유태인들의 끝이 어딘지 모르겠는 잠재력이었다. 연주가 끝나자 문이 열리고 미처 들어오지 못했던 사람들이 들어왔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폰을 껐는데 진동 모드로 켜놓고 연주가 끝나는 사이사이에 사진을 찍을 걸 그랬나보다. 그래서 공연 사진은 쇼팽 협회 페이스북에서 몇 장 가져왔다.
J.S. Bach Concerto for 4 pianos in a, BWV 1065 / 바흐 4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BWV 1065
I. Allegro
II. Largo
III. Allegro
... Yulianna Avdeeva, 2010 winner / 율리아나 아브제예바, 2010년 1위
... Philippe Giusiano, 1995 winner (replaced Martha Argerich) / 필리프 주시아노, 1995년 1위 없는 공동 2위 (마르타 아르헤리치 대체)
... Kevin Kenner, 1990 winner / 케빈 케너, 1990년 1위 없는 2위
... Dang Thai Son, 1980 winner / 당 타이 손, 1980년 1위
... Krzysztof Firlus, double bass / 크시쉬토프 피를루스, 더블베이스
... Belcea Quartet / 벨체아 콰르텟
... Simply Quartet / 심플리 콰르텟
바흐 협주곡은 원래 조성진도 하는 걸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케빈 케너가 들어갔다. 며칠 전에 유튜브로 예습했는데 10분이 조금 넘고 베르비에 페스티벌을 통해 들었던 곡. 피아노 2대를 위한 공연은 봤지만 4대는 주로 음반으로 접했고 실제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
Intermission
인터미션에는 크시쉬토프 야브원스키, 표트르 팔레치니, 영화 <쇼팽의 푸른 노트>에서 쇼팽 역할을 맡았던 야누쉬 올레이니차크 등 다른 심사위원들이 보였다. 쉬는 시간이 지나고 내 옆자리뿐만 아니라 몇몇 자리가 조금 비었다. 티켓팅하는 와중에 건반이 잘 보이는 자리를 찍었던 건데 옆에 앉았던 사람이 가니깐 가만히 있어도 잘 보이는 걸 살짝 기울여서 봤다.
Beethoven Piano Concerto No. 3 in c, Op. 37 /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I. Allegro con brio
II. Largo
III. Rondo. Allegro - Presto
... Seong-Jin Cho, 2015 winner / 조성진, 2015년 1위
... Warsaw Philharmonic Orchestra /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Andrzej Boreyko, conductor / 안드레이 보레이코 지휘
조성진이 차기 대회 개막 무대에 설 거란 생각은 막연히 하고 있었다. 물론 차기 대회를 본다면 방구석 1열이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2015년 대회 이전에는 조성진 팬들과 이웃인 경우가 되게 드물었는데 우승한 이후 서서히 내 블로그에 꼬였고 이번에 쇼팽 콩쿠르 후기를 처음 달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보면 된다. 콩쿠르와 입상자 갈라 콘서트는 몰라도 오프닝 콘서트까지는 확실한 계획에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해외에서 조성진의 공연을 보게 되었다. 조성진은 본인의 단점을 밝히지 않으려 하지만, 나는 그게 뭔지 한 가지는 알고 있었다. 나만 조성진의 소리가 약하다고 느끼는 줄 알았는데 다른 이웃님도 그러셨다. 그게 내가 조성진의 연주에 크게 끌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고. 9월에 있었던 앙코르 콘서트를 보니 전보다 힘이 좋아졌다. 좋게 말하면 힘과 표현이 균형을 이룬 연주겠지만 나한테는 약하게 들리더라고. 3악장이 흘러가는데 어디선가 폰 소리가 들렸다.
Schumann Waldszenen, Op. 82: III. Einsame Blumen (encore 1) / 슈만 <숲의 정경> 중 3번 <고독한 꽃>
Chopin Waltz No. 1 in Eb, Op. 18 "Grande Valse Brillante" (encore 2) / 쇼팽 왈츠 1번 <화려한 대왈츠>
... Seong-Jin Cho, 2015 winner / 조성진, 2015년 1위
앙코르로 쇼팽 왈츠 1번 하나만 생각했는데 뜻밖에 슈만을 먼저 들었다. 페달을 별로 쓰지 않는 소리. 살짝살짝 밟는 것 같았다. 콩쿠르 프로그램 북을 팔고 있었는데 빈손으로 와서 사지 못했다.
2층에서 보면 심사위원처럼 들릴 수도 있다고 이웃님이 조언했는데, 다음날 열리는 콩쿠르는 1층에서 본다. 전체 티켓 구매한 사람들은 지정석이 1층이니까. 어쨌든 이렇게 2층에서 한 번 봤으면 하는 작은 소원을 이뤘다. 유럽에 와보니 다음에는 독일로 가볼까 이런 생각도 해보고... 나도 비행기 공포증 때문에 유럽에서만 활동하는 그리고리 소콜로프의 연주를 직접 들은 귀가 되고 싶다.
집에 가서 무릎을 보니 상처가 생각보다 심했다. 밴드가 긴 것만 있어서 한 5군데는 붙였다. 내가 넘어져서 무릎 까지고 상처 난 이유는 다음 날 이메일을 살펴보다가 알았다. 호사다마가 예견된 것이긴 했는데 날 그리도 저주했나보다. 나랑 이웃 끊긴 사람이 얌체 유튜버가 아니라고 해명하면서 내가 자꾸 뭐라고 하니깐 조성진 포스팅하는 것 역겹다, 유튜브에 돈 벌 목적으로 올리는 것 잘 아니깐 조성진 올리지 마라, 영원히 사라져라, 잘 살다가 잘 죽어라 등 협박성 경고를 날렸다. 유튜브 하는 이유가 돈 벌 목적이라는 건 인정했다. 나랑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다고 해서 나도 그러고 싶지 않다고 했다. 지난 2019년에 조성진 리뷰 좀 번역해달라는 부탁 하나에 너무 격앙되어 톡 쏘아붙였다. 이후 나 보고 이제 퍼가지 않을 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는데 쇼팽 콩쿠르 후기 보러 올 수도 있다는 말에 우리나라 응원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너무 뒤끝이 지나쳤고 부드럽게 말하지 않았다. 내 속마음은 저 사람이 한참 나중에라도 나한테 복사해간 글들을 삭제해줬으면 좋겠다는 거였는데, 그걸 직접 말하지 않고 비공개로 처리하는 선에서 엄청나게 봐준 거다~ 그렇게 내 블로그에 있는 정보가 갖고 싶으면 본인 컴퓨터에 개인적인 용도로 저장해놓고 보면 된다~ 이러면서 끙끙 앓고 씩씩거리고 있었다. 나랑 이웃으로 있었던 세월이 3년이 넘었던 것도 있었기에 미련쟁이라고 여겼는데, 내 글에 전혀 관심 없고 자꾸 번역본 도둑 어쩌고저쩌고 하니까 보게 되었다고도 얘기했다. (물론 난 그 말 안 믿는다. 겉으로 심통 부리려는 것이려니...) 쇼팽 콩쿠르가 다가온다는 기쁨과 함께 근심도 있었다. 지난 대회에서 네링 응원한다고 트집 잡은 조성진 팬이 있어서 이번에도 마가 꼈다고 여겼을 정도. 쇼팽 콩쿠르 후기 보러 올 수도 있다는 말에 대회가 시작되는 10월 3일이 다가오면서 불안감에 시달리고 미리 걱정되었는데, 내가 넘어진 얘기하면 본인한테 자꾸 뭐라 그러더니 완전 쌤통이라고 여기겠지~ 이런 생각도 했다. 시간이 약이라 올해가 지나고 블로그를 그만 두면 해결될 일이긴 하다. 나한테 퍼간 글들에 대해서는 그 사람도 쇼팽 콩쿠르 보느라 바쁠 테니 2021년 11월 말까지 지우라고 얘기했다. 나한테 적반하장으로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반말하면서 폭언했지만, 정중하게 부탁하면서 비공개 말고 삭제로 하면 그 부분은 없던 일로 하고 용서해주겠다고 했다. 얌체 유튜버와 동일 인물이 아닌 건 믿어주겠지만(반신반의에 가까움), 쇼팽 콩쿠르 후기 보러 올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겼으므로 그 부분은 믿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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