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medici.tv/en/documentaries/frederic-chopin-story-of-his-life-through-his-letters/
편지로 들여다본 쇼팽의 인생
Alexander Lakwski / 알렉산데르 라스코프스키
Piotr Paleczny / 표트르 팔레치니
[Chopin Nocturne No. 13 in c, Op. 48 No. 1]
[쇼팽 녹턴 13번]
[Robert McFerrin: Chopin Prelude in A, Op. 28 No. 7]
[로버트 맥퍼린 - 쇼팽 전주곡 7번]
In 1940, in a famous interview, radio listeners in Britain heard the Polish pianist Ignaz Friedman explain how Frédéric Chopin, almost a century after his death, has still not been granted his proper place in the history of music. Despite, in 1849, the year of his death, his work already having a fundamental role in Western musical tradition, the dominant school of criticism denied him the status of great composer, because Chopin had given himself over almost completely to the piano, and had not established himself in the symphonic or operatic fields. He was a very controversial figure. A lot of the information about his life appeared to add to a general sense of confusion.
1940년의 유명한 인터뷰에서 영국의 라디오 청취자들은 폴란드 피아니스트 이그나츠 프리드만이 어떻게 쇼팽이 사망한 지 거의 1세기가 지난 지금도 음악사에서 적절한 위치를 부여받지 못했는지 설명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가 사망한 해인 1849년에 그의 작품들이 이미 서구 음악 전통에서 근본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음에도, 주요한 비평가들은 위대한 작곡가로서의 그의 지위를 부정했는데, 쇼팽은 피아노에 거의 전념했고 교향곡이나 오페라 분야에서 자신을 확립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는 굉장히 논란이 많은 인물이었는데요. 그의 삶에 대한 많은 정보가 전반적인 혼란을 가중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Chopin Ballade No. 4 in f, Op. 52]
[쇼팽 발라드 4번]
Frédéric Chopin: Impossible. You do well to call this contribution of mine “impossible”. You would never have been able to force anything out of me... in my own day. I never spoke willingly about my music, and even less about my character. I never had many friends. I was able to express my sentiments only... by translating them into musical notes.
프레데릭 쇼팽 : 불가능하다. 당신은 나의 이 공헌을 “불가능”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다. 당신은 내 시대에... 아무것도 강요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내 음악에 대해 자발적으로 이야기한 적이 없고, 내 성격에 대해서는 더더욱 말하지 않았다. 나는 친구가 많지 않았다. 감정을 음들로 옮김으로써...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Ivo Pogorelich: Chopin Mazurka in Ab, Op. 59 No. 2 from Chopin Competition in Warsaw 1980]
[이보 포고렐리치 - 쇼팽 마주르카 작품 59-2 (1980 바르샤바 쇼팽 콩쿠르)]
Ivo Pogorelich: I came here, first of all... to propose a new restoration of the interpretation of Chopin’s music.
이보 포고렐리치 : 쇼팽의 음악에 대한 해석의 새로운 복원을 제안하기 위해... 우선 여기(바르샤바)에 왔어요.
Krystian Zimerman: Chopin is everything, it’s simple, life in all its manifestations.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 쇼팽은 모든 것으로, 단순하나 삶의 모든 표현입니다.
Daniel Barenboim: For me, if I may say so, as an instrumentalist, as pianist, the wonderful thing about Chopin is that when you play Chopin you have a different relationship with this beast, the piano, because it is the only instrument with which you don’t have physical contact. For me, it is an unique sensual pleasure to play Chopin. The act of playing the piano is a much more intimate act with Chopin.
다니엘 바렌보임 : 기악 연주자이자 피아니스트인 제게 쇼팽의 멋진 점은 쇼팽을 연주할 때 이 야수, 피아노와 다른 관계를 맺는다는 것으로, 신체적인 접촉이 없죠. 제게 쇼팽 연주는 독특한 감각적 즐거움입니다. 피아노를 치는 행위는 쇼팽과의 훨씬 더 친밀한 것이죠.
Martha Argerich: For me, Chopin is very difficult. Perhaps because I take him very seriously and because it is like an impossible love, because you never know what will happen. It’s nothing to do with skill, this is true of any composer, but especially Chopin. I find that.
마르타 아르헤리치 : 제게 쇼팽은 되게 까다로워요. 어쩌면 제가 그를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므로, 불가능한 사랑과도 같으므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일 거예요. 재주와는 관련이 없는데, 이것은 모든 작곡가, 특히 쇼팽에게 해당하죠. 저는 그걸 찾아요.
Andrzej Jasinski: He spent half his life in France. So therefore I find a French element in his music as well, French elegance and esprit, but the most important thing is the Slavic lyricism, and, what is even more important, the Polish spirit.
안제이 야신스키 : 그는 인생의 절반을 프랑스에서 보냈어요. 그래서 저는 그의 음악에서도 프랑스적인 요소와 프랑스적인 에스프리를 발견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슬라브 특유의 서정성,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폴란드 정신입니다.
[Chopin Ballade No. 4 in f, Op. 52]
[쇼팽 발라드 4번]
Frédéric Chopin: In the summer of 1831 I decided to travel to Paris where I arrived in September. My heart suffered more than ever for the destiny of my country. But what bothered more than anything was the absence of my loved ones... my doubts about their fate. I was in the city of the world’s greatest composers, I understood what deficiencies I still had to compensate for to become perfect. I was living amongst thoroughbred artists, Liszt, Rossini, Cherubini, Bellini... they all came to Paris, and I also began to understand what deficiencies they had to compensate for.
프레데릭 쇼팽 : 1831년 여름, 나는 9월에 도착한 파리로 여행하기로 했다. 조국의 운명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부재... 그들의 운명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곡가들의 도시에 있었고, 완벽해지기 위해 내가 아직 보완해야 할 결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했다. 나는 순종 예술가들인 리스트, 로시니, 케루비니, 벨리니 사이에 있었는데... 그들 모두 파리에 왔고, 나는 또한 그들이 보완해야 할 결점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Jacqueline Risset: When Chopin arrived to Paris in 1831 you could say that Paris was perhaps the most brilliant city in Europe. The city was seen as an extraordinary world, of great variety as well... a bit disquieting in its depths, utterly brilliant at its intellectual and artistic levels.
자클린 리세 : 1831년 쇼팽이 파리에 도착했을 때 파리는 아마도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였을 것입니다. 이 도시는 매우 다채로운 비범한 세계로 여겨졌는데... 깊숙한 곳에서는 약간 불안하고, 지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수준에서 완전히 빛나는 곳이었죠.
[Alessandra Ammara: Chopin Barcarolle in F#, Op. 60]
[알레산드라 아마라 - 쇼팽 뱃노래]
Tadeusz Owczuk: Chopin was born here in Żelazowa Wola, obviously. Here in Żelazowa Wola he spent just the first eight months of his life. Frédéric Chopin spent half his life in Warsaw. He was just born and spent the first few months of his life here. Naturally when he lived in Warsaw he often came back here to the country, on holiday, in summer, at Christmas. We know that Chopin spent his last holiday here in August 1830, but, in general, his childhood, his infancy were spent in Warsaw. Warsaw is truly Chopin’s city.
타데우쉬 오브추크 : 쇼팽은 분명히 여기 젤라조바 볼라에서 태어났습니다. 여기 젤라조바 볼라에서 그는 인생의 첫 8개월을 보냈죠. 프레데릭 쇼팽은 인생의 절반을 바르샤바에서 보냈습니다. 그는 막 태어나 처음 몇 달을 이곳에서 보냈는데요. 자연스럽게 그가 바르샤바에 살았을 때 종종 휴가, 여름, 성탄절에 이 마을로 돌아왔죠. 우리는 쇼팽이 1830년 8월 이곳에서 마지막 휴가를 보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어린 시절과 유아기는 바르샤바에서 보냈습니다. 바르샤바는 진정한 쇼팽의 도시입니다.
Zbigniew Skowron: Chopin’s first contact with music took place in his family. His mother, Justyna Chopin, played the piano and his father, Nicholas Chopin, played the flute, so Chopin would have heard this music at home, in the family, from a very young age. What is very interesting is his education as a pianist. He certainly had his first lessons with Wojciech Adalbert Zywny, but then, with Józef Elsner, he studied composition and musical theory. As regards Chopin as a pianist he was a self-taught phenomenon. He learned on his own, we can say.
즈비그니에프 스코브론 : 쇼팽의 음악과의 첫 접촉은 그의 가족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어머니인 유스티나 쇼팽은 피아노를 연주했고 아버지인 니콜라스 쇼팽은 플루트를 연주했기 때문에 쇼팽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가족 안에서 이 음악을 들었을 것입니다. 매우 흥미로운 것은 피아니스트로서의 그의 교육입니다. 그는 확실히 보이체흐 아달베르트 지브니에게 첫 레슨을 받았지만, 그다음에는 유제프 엘스네르와 함께 작곡과 음악 이론을 공부했죠. 피아니스트와 관련하여 쇼팽은 독학한 신동이었는데요. 그는 스스로 익혔다고 말할 수 있죠.
[Charles Rosen: Chopin Rondo in c, Op. 1]
[찰스 로젠 - 쇼팽 론도 1번]
[Charles Rosen: Chopin Piano Concerto No. 2 in f, Op. 21 - II. Larghetto]
[찰스 로젠 -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
In 1826 Chopin finishes his studies at high school. His father gives him the opportunity to delicate himself exclusively to the piano. But 1827 is a tragic year. On 10 April his sister Emilia dies at the age of 14. The immense pain force the family to change houses. From the house in Krakowskie, number 413, today the rectory of Warsaw University, they moved to number 1, the Saski Palace. The new house has more space and Chopin has his own studio where he can place his piano.
1826년 쇼팽은 고등학교에서 학업을 마칩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피아노에만 전념할 기회를 줍니다. 그러나 1827년은 비극적인 해입니다. 4월 10일 그의 여동생 에밀리아가 14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엄청난 고통으로 인해 가족은 집을 바꾸게 됩니다. 오늘날 바르샤바 대학교의 교구 목사관이 있는 크라코프스키에 413번지에서 사스키 궁전 1번지로 이사했죠. 새집에는 더 많은 공간이 있었고, 쇼팽은 피아노를 놓을 수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Alexander Lonquich: A good example in the period of his youth is the start of the Concerto in E minor, the piano opening... which... which has this great characteristic rhythm which is like a polonaise in a way, this opening, and then immediately afterwards... a sweetness that is almost sickly.
알렉산더 론퀴히 : 그의 젊은 시절의 좋은 예는 피아노 협주곡 1번에서 피아노가 시작하는 부분으로... 어떤 면에서는 폴로네즈 같은 이 위대한 특징적인 리듬을 가지고 있으며, 이 오프닝, 그리고 직후에... 거의 아플 정도의 달콤함이 나옵니다.
[Alexander Lonquich: Chopin Piano Concerto No. 1 in e, Op. 11 - I. Allegro maestoso]
[알렉산더 론퀴히 -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1악장]
Martha Argerich: I’ve just come from playing the 1st Concerto now, after not playing it for ten years, a special pleasure, and very difficult for me.
마르타 아르헤리치 : 협주곡 1번을 연주한 지 10년이 된 지 얼마 되지 않는 제게는 특별히 기쁘면서도 매우 어려워요.
[Martha Argerich: Chopin Piano Concerto No. 1 in e, Op. 11 - I. Allegro maestoso]
[마르타 아르헤리치 -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1악장]
[Lang Lang, Orchestre dell Accademia di Santa Cecilia & Christoph Eschenbach: Chopin Piano Concerto No. 1 in e, Op. 11 - I. Allegro maestoso from the rehearsal]
[랑랑,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오케스트라,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지휘 -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1악장 리허설]
Daniel Barenboim: Chopin’s French pieces are very difficult to accompany. When you conduct obviously you have at your disposition a dynamic apparatus with a lot of variety, but playing the piano you have the physical contact with the sound that you don’t have when you conduct.
다니엘 바렌보임 : 쇼팽의 프랑스 시절의 곡들은 반주하기 매우 어려워요. 지휘할 때는 당신의 성향에 매우 다양한 다이내믹한 편성을 지니고 있지만, 피아노를 연주할 때는 지휘할 때 갖지 못한 소리와 물리적인 접촉을 하게 되죠.
[Daniel Barenboim: Chopin Piano Concerto No. 1 in e, Op. 11 - III. Rondo. Vivace]
[다니엘 바렌보임 -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3악장]
[Charles Rosen: Chopin Etude in c#, Op. 25 No. 7]
[찰스 로젠 - 쇼팽 연습곡 작품 25-7]
[Vladimir Ashkenazy & European Union Youth Orchestra: Chopin Piano Sonata No. 2 in b flat, Op. 35 - III. Marche funèbre rehearsal]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및 유럽연합 청소년 오케스트라 - 쇼팽 피아노 소나타 2번 3악장 <장송 행진곡> 편곡 리허설]
Andrzej Jasinski: Each of Chopin’s sounds corresponds to a word in language, to syllables. In fact, if you compare the spoken language to the melody, you find many affinities. I’m referring to the relationship with bel canto, this Spanish singing that is always elegant and soft. Elegance, temperament and speaking with every sound to express what is found in the depths of our hearts.
안제이 야신스키 : 쇼팽의 각 소리는 언어의 단어, 음절에 해당합니다. 실제로 구어를 멜로디에 비유하면 많은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죠. 항상 우아하고 부드러운 이 스페인 노래인 벨칸토(매끄럽고 부드러운 창법을 중시하던 19세기 오페라 스타일)와의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아함, 기질, 모든 소리로 말하는 것은 우리 마음의 깊은 곳에서 발견되는 것을 표현하죠.
Daniel Barenboim: There’s another very important aspect in Chopin’s music and that is the rhythm. The rhythm is always a sign of a certain pride in music. With Chopin there is always a sense of pride, there is a very important rhythmical backbone, not just in the Polonaise. You just have to remember or watch the video of Rubinstein to feel this explicitly.
다니엘 바렌보임 : 쇼팽의 음악에는 또 다른 매우 중요한 측면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리듬입니다. 리듬은 항상 음악에 대한 자부심의 표시입니다. 쇼팽의 음악에는 항상 폴로네즈뿐만 아니라 매우 중요한 리듬의 근간이 있는 자부심이 있는데요. 이것을 명시적으로 느끼려면 루빈스타인의 동영상을 기억하거나 시청해야 합니다.
[Arthur Rubinstein & Warsaw Philharmonic Orchestra: Chopin Piano Concerto No. 2 in f, Op. 21 - III. Allegro vivace]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및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3악장]
Daniel Barenboim: The pride, the rhythm in Chopin never becomes military or fascist, as often happens in other music... I don’t know why... perhaps... perhaps because of Poland’s unique history. It was always being threatened either by the Russians or the Germans. And so its pride is a defensive pride.
다니엘 바렌보임 : 쇼팽의 음악에서 리듬인 긍지는 다른 음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군대나 파시스트가 되지 않아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어쩌면 폴란드의 독특한 역사 때문일 거예요. 항상 러시아나 독일의 위협을 받고 있었죠. 그리고 그 긍지는 방어적인 자존심입니다.
Frédéric Chopin: Since the years when I lived in the Duchy of Warsaw... I was the favourite of the aristocrats of my country and the Russian nobles... the occupiers... who employed me as a sort of child prodigy at the regime’s events. Then, one day, my land became a fetid tinderbox. 2 November 1830... unhappily, I left it behind. Two hearts would not have been enough to contain the pain... if I had thought it were for ever.
프레데릭 쇼팽 : 바르샤바 공국에 살던 시절부터... 우리나라의 귀족들과 러시아 귀족들이 나를 가장 좋아했는데... 정권 행사에서 나를 일종의 신동으로 고용한... 점유자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땅은 악취 나는 부싯돌 상자가 되었다. 1830년 11월 2일... 불행히도, 나는 그것을 놓아둔 채 잊고 왔다. 내가 영원하다고 생각했다면... 두 개의 심장으로는 고통을 감출 수 없었을 텐데.
[Daniel Barenboim: Chopin Waltz No. 6 in Db, Op. 64 No. 1 "Minute Waltz"]
[다니엘 바렌보임 - 쇼팽 왈츠 6번 <강아지 왈츠>]
Daniel Barenboim: A few months ago I played a Chopin recital in Vienna, and after the recital this man appeared and he said something to me that I will never forget because only something like him could say it... He said, “I’m the Polish Ambassador in Vienna, and I just wanted to tell you that today I was proud of being Polish.” Do you understand what I mean? No German will come after a Wagner recital or a Beethoven sonata, or the Italian ambassador after The Requiem, and say “Today I am proud of being German or Italian...” There is something in this music that really... belongs to them.
다니엘 바렌보임 : 몇 달 전 비엔나에서 쇼팽 리사이틀을 연주했는데, 리사이틀 후에 이 남자가 나타나서 제게 그와 같은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절대 잊지 못할 말을 해줬어요... 그는 이렇게 말했죠. “저는 빈 주재 폴란드 대사인데, 오늘 당신이 폴란드인이 된 것이 자랑스럽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제 말을 이해하시나요? 어떤 독일인도 바그너 리사이틀이나 베토벤 소나타 연주 또는 이탈리아 대사가 레퀴엠 공연을 따라가서 이렇게 말하진 않을 거예요. “오늘 저는 독일인이거나 이탈리아인이 된 것이 자랑스러워요...” 이 음악에는 정말로... 그들에게 속한 무언가가 있어요.
[Roberto Prosseda: Chopin Etude in c, Op. 10 No. 12 "Revolutionary"]
[로베르토 프로세다 - 쇼팽 연습곡 작품 10-12 <혁명>]
Alexander Lonquich: Chopin makes us cry... or he himself cries in secret and simply doesn’t tell us why he’s crying. There’s something that remains a secret that is really to do with his tenderness, his rage.
알렉산더 론퀴히 : 쇼팽은 우리를 울게 한다거나... 그 자신이 비밀리에 울고 단순히 그가 우는 이유를 우리에게 말하지 않아요. 그의 부드러움, 그의 분노와 관련하여 여전히 비밀로 남아 있는 것이 있죠.
[Chopin Ballade No. 4 in f, Op. 52]
[쇼팽 발라드 4번]
Frédéric Chopin: In 1831 I was in Stuttgart... I received news from my war-torn country. I wrote it all down in a diary. I had reached the paradox of asking God himself to give me some proof of his existence or to confess he was really Russian. I was helpless. I was... like a corpse... a frozen carcass with empty hands who was only capable of pouring out his grief on to the keys.
프레데릭 쇼팽 : 1831년 슈투트가르트에 있었는데... 전쟁으로 폐허가 된 조국의 소식을 접했다. 일기장에 다 썼다. 나는 신에게 자신의 존재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거나 그가 진짜 러시아인임을 고백해야 한다는 역설에 이르렀다. 난 무력했다. 난... 시체 같았다... 건반에 슬픔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었던 빈손의 얼어붙은 시체 같았다.
The jury of the Frédéric Chopi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has decided on 19 March of this year that the titles and prizes of the winners are as follows... the first prize of 30,000 zlotys goes to Adam Harasiewicz, Poland.
1955년 3월 19일, 프레데릭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심사위원단은 다음과 같은 입상자들의 순위와 상금을 결정했는데... 3만 즈워티의 1등상은 폴란드의 아담 하라셰비치입니다.
[Adam Harasiewicz: Chopin Mazurka in c#, Op. 63 No. 3]
[아담 하라셰비치 - 쇼팽 마주르카 작품 63-3]
Adam Harasiewicz: All I remember is the day I started playing, the sky was like that of Rio de Janeiro, really beautiful and blue. What has changed, I would say, is that technically there has been an incredible development. Now many pianists are technically much quicker, but the atmosphere of Chopin does not seem to be as important as it was 50 years ago.
아담 하라셰비치 : 제가 기억하는 모든 것은 제가 연주를 시작한 날, 하늘이 리우데자네이루처럼 정말 아름답고 푸르렀다는 것입니다. 달라진 점은 기술적으로 놀라운 발전이 있었다는 것이죠. 이제 많은 피아니스트가 기술적으로 훨씬 빨라졌지만, 쇼팽의 분위기는 50년 전만큼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Vladimir Ashkenazy: Chopin Polonaise No. 6 in Ab, Op. 53 "Heroic"]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 쇼팽 폴로네즈 6번 <영웅>]
[Martha Argerich: Chopin Polonaise No. 6 in Ab, Op. 53 "Heroic"]
[마르타 아르헤리치 - 쇼팽 폴로네즈 6번 <영웅>]
Martha Argerich: I studied with this Chinese pianist who is a friend of mine, Fou Ts’ong, who had lived in Poland and he had also won the Mazurka Prize in ’55, I think, and who was a wonderful interpreter of Chopin. And I went to him, and I played for him and he told me many things. Right, fine. When someone is interested in playing a composer, especially in this competition, they need to have a bit of... no?
마르타 아르헤리치 : 저는 제 친구이자 폴란드에서 살았던 이 중국인 피아니스트 후총과 함께 공부했는데, 그는 1955년 마주르카 특별상 수상자로 제 생각에 쇼팽의 멋진 해석자였죠. 그리고 저는 그에게 갔고 그를 위해 연주했으며 그는 제가 많은 것을 알려줬어요. 좋아요. 특히 이번 대회에서 누군가가 한 작곡가를 연주하는 데에 관심이 있다면, 그들은 약간 무언가를 가져야 하지... 않나요?
[Ben Kim: Chopin Piano Sonata No. 2 in b flat, Op. 35 - I. Grave - Doppio movimento (from a lesson with Fou Ts’ong)]
[벤 킴 - 쇼팽 피아노 소나타 2번 1악장 (후총과의 레슨)]
[Dina Joffe: Chopin Mazurka in Bb, Op. 7 No. 1]
[디나 요페 - 쇼팽 마주르카 작품 7-1]
Andrzej Jasinski: Why are the mazurkas so difficult? They have to be played simply, but at the same time they are very refined. The rhythm has to be very precise but at the same time elastic and rubato.
안제이 야신스키 : 마주르카는 애 그렇게 까다로운 걸까요? 단순하게 연주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매우 세련되었는데요. 리듬이 매우 정확해야 하지만, 동시에 탄력 있으면서도 루바토를 지니고 있어야 하죠.
[Martha Argerich: Chopin Mazurka in a, Op. 59 No. 1 from Chopin Competition in Warsaw 1965]
[마르타 아르헤리치 - 쇼팽 마주르카 작품 59-1 (바르샤바 쇼팽 콩쿠르 1965)]
Daniel Barenboim: Thank God we live in a country where the word “rubato” is understood. It’s not like in Germany or England where musicians think “rubato” means “free”. There’s a morality in life whether you like it or not. So if something is “rubato”, stolen, you have to give it back at some point, and it’s the same with stolen time. If you take more time for an expressive passage, you need to give it back later so that the structure doesn’t collapse. And there is a definition by Liszt about one of Chopin’s rubato that seems to me to be fair and lovely, and he says... “Imagine a tree that is immobile. Then the wind comes along and play with the leaves, it makes them move about but the tree remains immobile.”
다니엘 바렌보임 : 우리가 “루바토”라는 단어가 이해되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입니다. 음악가들이 “루바토”가 “자유로운”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독일이나 영국과는 다르죠. 좋든 싫든 인생에는 도덕이 있습니다. 따라서 무언가가 “루바토”이고 도난당했다면, 어느 시점에서 다시 돌려주어야 하며 잃어버린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표현적인 소절에 시간이 더 걸리면, 구조가 무너지지 않도록 나중에 돌려줘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 공정하고 사랑스러운 쇼팽의 루바토 중 하나에 대해 리스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 나무들이 보입니까? 바람은 잎을 스치며 지나가고 인생은 그 밑에서 펼쳐지고 전개됩니다.”
Andrzej Jasinski: In the mazurkas we discover, for example, Chopin’s nostalgia that recalls the Polish landscape, that recalls the Polish dances, the Polish songs. The mazurkas are little compositions that we can think of as “memoirs”.
안제이 야신스키 : 예를 들어 마주르카에서 우리는 폴란드 풍경을 회상하고 폴란드 춤과 폴란드 노래를 회상하는 쇼팽의 향수를 발견하는데요. 마주르카는 우리가 “회고록”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소품입니다.
[Dobrzelimiacy]
[도브젤리미아치]
Franciszek Kowalski: There must have been a composer who transformed this country music, who took it as a starting point, and from this emerged the mazurkas... the kujawiak, and so on. And then he added an accompaniment.
프란치셰크 코발스키 : 이 시골 음악을 변형시키고 출발점으로 삼았으며 이것에서 마주르카... 쿠야비아크 등이 나오게 한 작곡가가 있었을 겁니다. 그러고 나서 반주를 덧붙였죠.
Piotr Piszczatowski: But it seems like simple music. What is so special about it?
표트르 피쉬차토프스키 : 그러나 단순한 음악처럼 보이는데요. 뭐가 그렇게 특별한가요?
Zenon Iozikowski: The people in some way regulate their mood which is reflected in the music. The music reflected the periods of life. That’s how the artists viewed it, it was the national thought, the thought of the people. The music encloses the thought, everything, everything can be found in a given component... there’s hope, sadness, there is everything.
제논 이오지코프스키 :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음악에 반영된 기분을 조절합니다. 음악은 삶의 시대를 반영했는데요. 그것이 예술가들이 바라보는 시각, 민족 사상, 민중의 생각이었죠. 음악은 생각, 모든 것, 주어진 구성 요소에서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는데... 희망, 슬픔, 모든 것이 있어요.
Piotr Zgorzelski: What Chopin heard and what he was enthusiastic about, going round the villages and hearing that music and the popularity it enjoyed, was a volcano, an explosion of emotions, of movement, that dragged him along, fascinated him, things that as a city boy he had never seen.
표트르 즈고젤스키 : 쇼팽이 들었던 것, 그가 열광한 것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음악을 들었는데 그 음악이 누리는 인기가 감정과 움직임이 폭발적인 화산 같은 것으로, 그를 끌어당기고 매료시켰으며, 도시 소년으로서 그가 본 적이 없는 것들이었죠.
Janusz Prusinowski: The fundamental difference between written music and that of the oral tradition that is in the heart, lies in the fact that many people, playing the notes, believe it begins and ends there with the notes, everything is in order. It could be a mazurka. Here there is never such a perfect movement. Something always happens like a rubato... a juxtaposition between notes, lengthening, extrapolations, slowing down, expansions, in other words, it’s like a dance. At a certain point, not only do the steps come together but you start flying, and music should be like that too. This is what Chopin had deep in his heart and what made him compose new things that were completely unexpected.
야누쉬 프루시노프스키 : 음악이 쓰인 것과 마음에 있는 구전 전통의 근본적인 차이는 많은 사람이 음들을 연주하면서 음표로 시작하고 끝이 난다고 믿으며 모든 것이 순서대로 되어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마주르카일 수도 있겠죠. 여기만큼 완벽한 움직임은 없어요. 항상 루바토처럼 일어나는 것으로... 음들의 병행, 연장, 추정, 속도 감소, 확장, 즉 춤과 같아요. 어느 순간 발걸음이 모일 뿐만 아니라 날아오르기 시작하며 음악도 그래야 하는데요. 이것이 쇼팽이 마음속 깊이 품고 있던 것이며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것들을 작곡하게 했죠.
[Janusz Prusinowski Trio]
[야누쉬 프루시노프스키 트리오]
[Ka Ling Colleen Lee: Chopin Mazurka in D, Op. 33 No. 2]
[카 링 콜린 리 - 쇼팽 마주르카 작품 33-2]
[Arturo Benedetti Michelangeli: Chopin Mazurka in a, Op. 68 No. 3 (1962)]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 - 쇼팽 마주르카 작품 68-3]
Alexander Lonquich: Chopin, in my opinion, is already living in his memories when he is still in Poland. His music is immediately nostalgic for something that he probably never had. His music becomes poetry right away, immediately. He never remains still, in popular music as well, it all seems a quotation more than anything.
알렉산더 론퀴히 : 제 생각에 쇼팽은 폴란드에 있을 때 이미 추억 속에 살고 있어요. 그의 음악은 어쩌면 그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것에 대한 향수를 즉시 불러일으키죠. 그의 음악은 곧 시가 됩니다. 그는 결코 가만히 남아 있지 않은데, 대중음악에서도 무엇보다 인용구 같아요.
[Alexander Lonquich: Chopin Mazurka in f, Op. 68 No. 4]
[알렉산더 론퀴히 - 쇼팽 마주르카 작품 68-4]
Alexander Lonquich: This passage is very interesting. What do we find in these two bars? Later, Wagner... exactly the same notes... makes this the main motif of Tristan, the Prelude of Tristan, and he touches... he touches this harmonic passage to lead us where? In a world far away from this initial F minor, the major, an artificial paradise... where the reality, alas, is this F minor.
알렉산더 론퀴히 : 이 소절은 매우 흥미로운데요. 이 두 마디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요? 나중에, 바그너는... 정확히 같은 음들을... 이것을 트리스탄의 전주인 트리스탄의 주요 모티브로 삼고, 그는 어루만지는데... 그는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기 위해 이 화성적인 소절을 어루만지는 걸까요? 이 첫 f단조로부터 멀리 떨어진 세계에서 장조는 인공 낙원으로... 현실은 아아, 이 f단조에 있네요.
Frédéric Chopin: Unlike many of my colleagues, I didn’t have an adventurous life and I didn’t travel much. I was a sick man who occasionally got better, rather than a healthy man who sometimes fell sick. Unlike Liszt who had many homelands, I had to make Paris my home, apart from short journeys to Berry, Nohant, Spain, Majorca, where I lived some dramatic moments, but also composed as perhaps in no other period of my life... and in the last years an infernal journey to Britain. It soon entered the public domain that it was reasons of the heart that led me away from Paris. The woman I loved, she to whom more than any other I dedicated myself... George Sand.
프레데릭 쇼팽 : 많은 동료와 달리 나는 모험적인 삶을 살지 않았고 여행을 많이 가지 않았다. 나는 가끔 병에 걸리는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가끔 낫는 병자였다. 연고지가 많았던 리스트와 달리 극적인 순간들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내 인생의 다른 시기에는 없었던 것처럼 작곡했던 곳들인 베리, 노앙, 스페인 마요르카로의 짧은 여행들과... 지난 몇 년 동안 영국으로의 지옥 같은 여행을 제외하고는 파리를 내 집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것은 곧 나를 파리에서 멀어지게 했던 마음의 이유인 공공 영역으로 들어갔다. 내가 사랑했던 여자, 그 누구보다 헌신했던 그녀는... 조르주 상이었다.
[Alessandra Ammara: Chopin Ballade No. 3 in Ab, Op. 47]
[알레산드라 아마라 - 쇼팽 발라드 3번]
Tereza Jamina Czekaj: There are no museums dedicated to Chopin in Paris. The only place where you can see a reconstruction of his era is the Polish Library. Here on the Quai d'Orléans, on the banks of the Seine is where the Polish immigrants came.
테레자 야미나 체카이 : 파리에는 쇼팽 전용 박물관이 없습니다. 그의 시대의 재건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폴란드 도서관이죠. 여기 센 강둑에 있는 케 도를레앙은 폴란드 이민자들이 온 곳입니다.
Jacqueline Risset: There was an extremely brilliant Polish colony, wealthy, intellectual... that was ready to welcome him. And there was one person, Adam Mickiewicz, who was a political hero of the Polish rebellion who was already famous as a poet, and who taught at the Collège de France. And every time he taught at the Collège de France there was an enthusiasm, among this wealthy public that listened to him.
자클린 리세 : 그를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는... 부유하고 지적인 폴란드 식민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폴란드 반란의 정치적 영웅인 아담 미츠키에비치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이미 시인으로 유명했고 콜레주 드 프랑스(1530년 프랑수아 1세가 창설한 고등연구교육기관)에서 가르쳤죠. 그리고 그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가르칠 때마다 그의 말을 듣던 이 부유한 대중들 사이에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Tereza Jamina Czekaj: Here we are in front of the Hotel Lambert, one of the most prestigious private hotels in Paris, and it is also where the group of aristocratic democrats established a sort of Polish government in exile after the collapse of the November Uprising.
테레자 야미나 체카이 : 여기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프라이빗(예약객만을 받는) 호텔 중 하나인 랑베르 호텔 앞에 도착했는데, 11월 봉기(1830년 11월 29일~1831년 10월 21일 일어난 사관학교 혁명으로 폴란드,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러시아 제국의 지배에 대한 무장 반란)가 실패한 후 귀족 민주주의자 무리가 일종의 폴란드 망명 정부를 수립한 곳이기도 합니다.
[Chopin Ballade No. 4 in f, Op. 52]
[쇼팽 발라드 4번]
Frédéric Chopin: George Sand did all she could to meet me. She came to dinner in the Hotel Lambert, wearing red and white... the colours of Poland. She was sure of herself. She spoke to everyone as though she always had something to impart. Every now and then... she would blow cigar smoke in your face... I loved her. It was unbearable. There was no one else like her.
프레데릭 쇼팽 : 조르주 상은 나를 만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녀는 랑베르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폴란드를 상징하는 색깔인... 빨간색과 흰색의 옷을 입고 왔다. 그녀는 자신이 있었다. 그녀는 항상 전할 것이 있는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말했다. 이따금... 그녀는 항상 당신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내뿜을 것이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참을 수 없었다. 그녀 같은 사람은 없었다.
Zbigniew Skowron: I think his contacts with women had a great influence on his music. This began with his first young love, Konstancja Gładkowska... Then we have another woman, Maria Wodzinska... Maria Wodzinska whom Chopin met abroad... and there was the possibility they might have got married, but thanks to Maria Wodzinska’s parents this never came to pass.
즈비그니에프 스코브론 : 제 생각에 여성과의 접촉은 그의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이것은 젊은 시절의 첫사랑인 콘스탄차 그와드코프스카와 함께 시작되었죠... 그러고 나서 우리에게는 또 다른 여성 마리아 보진스카... 쇼팽이 해외에서 만난 마리아 보진스카가 있었는데... 그들은 결혼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마리아 보진스카의 부모님이 반대하여 이루어지지 않았죠.
[Chopin Ballade No. 1 in g, Op. 23]
[쇼팽 발라드 1번]
My downfall
나의 슬픔
Jacqueline Risset: In the 19th century, George Sand was undoubtedly an extraordinary character. She was not at all interested in the aristocracy while Chopin was. I think if you look back at these two characters, Chopin and George Sand, you ask how these two could have had an eight-year relationship?
자클린 리세 : 19세기에 조르주 상은 틀림없이 비범한 인물이었는데요. 쇼팽이 있는 동안 그녀는 귀족에 전혀 관심이 없었죠. 쇼팽과 조르주 상이라는 두 캐릭터를 돌이켜보면, 이 두 사람이 어떻게 8년간의 관계를 맺을 수 있었는지 질문하게 됩니다.
George Sand: I met Chopin through Franz Liszt and Countess Marie d’Agoult. At first Chopin was scared to meet me. He was prejudiced against women who dealt with literature, and with me he was very evasive. I felt confused over the effect this little creature had on me. It wasn’t in my character to be guided by reason when love took possession of me. One evening at the house of a mutual friend at the moment of departure, trying to overcome a final temptation, Chopin, like a bigot, said two or three words that irritated and scandalised me deeply. He said he wanted to avoid certain facts, because they could ruin the memory. Up to that point I had thought it was even lovely that he abstained out of respect for me, out of shyness or to be faithful to another woman. But this way of his of considering extreme amorous intimacy inspired in me total repugnance.
조르주 상 : 나는 프란츠 리스트와 마리 다구 백작 부인을 통해 쇼팽을 만났다. 처음에 쇼팽은 나와의 만남을 두려워했다. 그는 문학을 다루는 여성에 대해 편견을 지니고 있었으며, 나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었다. 나는 이 작은 생물이 내게 미친 영향에 대해 혼란을 느꼈다. 사랑이 나를 사로잡았을 때 이성에게 끌리는 것은 내 성격이 아니었다. 어느 날 저녁, 떠나는 순간 친한 친구의 집에서 마지막 유혹을 이겨내려고 하는 쇼팽이 마치 고집불통처럼 두세 마디의 말을 해서 나를 깊이 화나게 하고 수치스럽게 했다. 그는 어떤 사실들이 기억을 망칠 수 있으므로 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까지는 그가 나를 존중하기 위해, 수줍어하기 때문에, 또는 다른 여자에게 충실하기 위해 멀리하는 것이 사랑스럽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지나친 성관계를 원하는 친밀감을 고려하는 그의 이러한 방식은 내게 완전히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Jean Cortot: Have you ever held Chopin’s hand?
장 코르토 : 쇼팽의 손을 잡아보신 적이 있나요?
No. Come.
아뇨. 오세요.
Jean Cortot: Here.
장 코르토 : 여기 있군요.
It’s a mould. It’s very small.
모형이군요. 매우 작네요.
Jean Cortot: Yes. Look at Liszt’s hand and compare them. The mould of Liszt’s hand.
장 코르토 : 네. 리스트의 손을 보시고 나서 비교해보세요. 리스트의 손에 대한 모형이 있군요.
It’s twice the size!
크기가 두 배군요!
Jean Cortot: Yes.
장 코르토 : 네.
And whose hand is that?
그러면 저건 누구의 손인가요?
Jean Cortot: That’s my father’s.
장 코르토 : 아버지(알프레드 코르토)의 손입니다.
[Alfred Cortot: Chopin Waltz No. 9 in Ab, Op. 69 No. 1 "L'adieu"]
[알프레드 코르토 - 쇼팽 왈츠 9번 <이별>]
Jean Cortot: The first time my father went into a conservatory he was in a room full of children, and his teacher, 50 years earlier, had had Chopin as a teacher. That drawing, from ’25, by Matisse... they were very close, they were friends... his hands, it’s him!
장 코르토 : 아버지가 처음으로 음악원에 들어갔을 때 아이들로 가득 찬 방에 있었고, 50년 전에 아버지의 선생님은 쇼팽을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마티스가 1925년에 그린 저 그림... 그들은 매우 가까웠고, 친구였는데... 그의 손, 바로 그입니다!
[Charles Rosen: Chopin Piano Concerto No. 2 in f, Op. 21 - III. Allegro vivace]
[찰스 로젠 -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3악장]
[Roberto Prosseda: Chopin Nocturne No. 5 in F#, Op. 15 No. 2]
[로베르토 프로세다 - 쇼팽 녹턴 5번]
Jacqueline Risset: At a certain point someone who loves Chopin says “I don’t love him any more.” Why? Really because he leads you to be moved about things you think you have got over, that are longer part of your world.
자클린 리세 : 어느 순간 쇼팽을 사랑하는 사람이 말합니다. “저는 그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정말로 그가 당신이 이미 넘었다고 생각하는 것들, 즉 세상의 더 긴 부분에 대해 감동하도록 이끌기 때문이죠.
Alexander Lonquich: What does he do, for example, in his last great polonaise which is no longer a polonaise but a kind of polonaise-fantaisie? He takes and dismantles elements of the polonaise in the introduction.
알렉산더 론퀴히 : 예를 들어, 그는 더 이상 폴로네즈가 아니라 일종의 환상 폴로네즈가 된 그의 마지막 위대한 폴로네즈에서 무엇을 할까요? 그는 도입부에서 폴로네즈의 요소들을 취하여 분해합니다.
[Alexander Lonquich: Chopin Polonaise-Fantaisie in Ab, Op. 61]
[알렉산더 론퀴히 - 쇼팽 <환상 폴로네즈>]
Alexander Lonquich: There are lots of possibilities to listen to Chopin and then again this great passage... this rainbow... Who knows what he sees in front of him there? Who knows if it’s Poland? Or the sky of Majorca... or some Italian dream? We might think that Chopin had an interior life that was full of... phobias, of problems... In fact George Sand makes this clear.
알렉산더 론퀴히 : 쇼팽과 이 위대한 소절인... 이 무지개처럼 전개되는 부분을 다시 들을 가능성이 많이 있는데요... 그가 거기에서 자기 앞에서 보이는 것을 누가 알까요? 폴란드인지 누가 알겠나요? 아니면 마요르카의 하늘... 아니면 이탈리아의 꿈? 우리는 쇼팽이 공포증, 문제들로 가득 찬... 내면의 삶을 살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사실 조르주 상은 이것을 분명히 하죠.
George Sand: That poor stiff heart was unaware of its delirium. I saw him again for a moment in March 1848. I took his frozen, trembling hand. I’d have liked to have spoken to him but he fled. It was my turn to say he no longer loved me. But I spared him this pain, and placed everything in the hands of providence and the future.
조르주 상 : 그 가련하고 꽁꽁 언 마음은 그 망상을 알지 못했다. 나는 1848년 3월에 그를 잠시 다시 봤다. 나는 그의 얼어붙은 떨리는 손을 잡았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고 싶었지만 그는 도망쳤다. 그가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차례였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이 고통을 덜어주었고, 모든 것을 섭리와 미래의 손에 맡겼다.
[Chopin Ballade No. 4 in f, Op. 52]
[쇼팽 발라드 4번]
Frédéric Chopin: Too many things have been written about me. What best represents me was written by Solange Sand, George’s daughter. She had understood that my nature could not be traced to that of any other man... and that nothing and nobody would be able to describe it. Some of my letters survived me... the more personal ones were destroyed... burnt... by George. The last thing I wrote... with a pencil... as by body was racked by the pain and tremors of my incessant coughing... was a request... that my body be opened so that there could be no doubt that once buried there remained not a single gram of life. My body was buried in Paris... my heart was taken back to Poland. That is what I wanted.
프레데릭 쇼팽 : 나에 대해 너무 많은 것들이 적혔다. 나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조르주의 딸인 솔랑주 상이 쓴 것이었다. 그녀는 나의 본성이 다른 남자에게서는 나올 수 없으며... 아무것도 아무도 그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내 편지 중 일부는 살아남았는데... 더 많은 개인적인 것들이 조르주에 의해... 없어지고... 불태워졌다. 내가 연필로 쓴... 마지막 편지는... 쉼 없는 기침의 고통과 떨림에 온몸이 쑤시듯이... 부탁했는데... 내 몸이 그렇게 열려서 한 번 묻히면 단 1그램의 생명도 남지 않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 시신은 파리에 묻혔지만... 내 심장은 폴란드로 보내졌다. 바로 내가 원했던 것이다.
[Arturo Benedetti Michelangeli: Chopin Piano Sonata No. 2 in b flat, Op. 35 - III. Marche funèbre (1962)]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 – 쇼팽 피아노 소나타 2번 3악장 <장송 행진곡>]
이 동영상은 메디치 TV에서 유료로 볼 수 있다. 동영상에 나와 있는 자막만 정리했다. 쇼팽과 조르주 상의 사진에서 입이 움직인다. 쇼팽 탄생 200주년에 나온 다큐멘터리라서 그런지 당시의 쇼팽 콩쿠르가 떠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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