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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piano bachelor, piano music lover, CD collector and classical music information's translator. Also KakaoTalk character Tube mania! Naver Blog: http://blog.naver.com/snowseol Youtube Channel: https://www.youtube.com/channel/UCDPYLTc4mK7dOXYTQEOiPew?view_as=subscriber

2025년 1월 22일 수요일

DVD / The Game of Their Lives 2002


https://www.youtube.com/watch?v=Cga_q9vShFQ

https://www.youtube.com/watch?v=etnkic31NBo&t=1156s

https://www.youtube.com/watch?v=rbN8S_OVWro

https://namu.wiki/w/%EC%B2%9C%EB%A6%AC%EB%A7%88%EC%B6%95%EA%B5%AC%EB%8B%A8

https://namu.wiki/w/%EB%B0%95%EB%91%90%EC%9D%B5

https://namu.wiki/w/%EB%B0%95%EC%8A%B9%EC%A7%84(%EB%B6%81%ED%95%9C)


천리마축구단 : 일생일대의 승부

월드컵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사건! 붉은 악마가 응원전에 사용했던 AGAIN 1966!!!

서구인이 최초로 북한 당국의 허가를 받아 1966년 런던 월드컵에서 8강에 올랐던 북한 축구팀의 활약과 현재를 담은 작품

개봉 당시 극장 좌석의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며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받은 작품!

영국의 촉망 받는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프로듀서인 대니얼 고든의 연출


Rye-hyun Myung / 명례현 (당시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Chan-myung Ri / 리찬명 (당시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1번)

Zoong-sun Lim / 림중선 (당시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수비수, 5번)

Seung-hwi Im / 림승휘 (당시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좌측 수비형 미드필더, 6번)

Do-Ik Pak / 박두익 (당시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공격수, 7번)

Seung-zin Pak / 박승진 (당시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우측 수비형 미드필더, 8번)

Yang Song-guk / 양성국 (당시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좌측 윙어, 15번)

Bong-zin Han / 한봉진 (당시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우측 윙어, 11번)

Geoffrey “Geoff” Sleight / 제프 슬레이트 (당시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David Edward Charles Lacey (Football Journalist) / 데이비드 레이시 (영국 축구 기자)

Martin Polley (Sports Historian) / 마틴 폴리 (영국 스포츠 역사학자)

Charles Amer (Middlesbrough FC Director 1966) / 찰스 에이머 (미들즈브러 축구클럽 회장)

Denis Barry (Middlesbrough fan) / 데니스 배리 (미들즈브러 축구팬)

Rob Lewis (Middlesbrough fan) / 로브 루이스 (미들즈브러 축구팬)

Bernard Gent (World Cup Press Liaison Officer 1966) / 버나드 켄트 (당시 월드컵 홍보 담당)

Sandro Mazzola / 산드로 마촐라 (당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14번)

Gianni Rivera / 잔니 리베라 (당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19번)

George Johnstone (Ball Boy) / 조지 존스톤 (당시 월드컵 볼 보이)

Hyo-Sob Ri (student 1966) / 리효섭 (당시 학생)

Father Paul Nicholson (Loyola Hall in Liverpool) / 폴 니콜슨 (당시 리버풀 로욜라 홀 신부)


<천리마축구단>은 1966년 영국 월드컵 당시 8강 진출 신화를 이룩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북한 축구 대표팀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이탈리아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박두익을 비롯하여 당시 북한 최고의 스트라이커 박승진, 골키퍼 리찬명 등의 과거, 현재 모습과 북한 선수들과 영국의 미들즈브러 주민과의 우정에 관한 추억담을 조명하고 있다. 이 작품은 영국의 TV 연출 출신 대니얼 고든의 스크린 데뷔작으로 2004년 시애틀영화제 다큐멘터리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각종 영화제에 초청받은 바 있다.


In 1966 North Korea created the greatest shock in World Cup history.


1966년, 북한은 월드컵 신화를 창조했다. (1966년, 북한은 월드컵 역사상 가장 큰 파란을 일으켰다.)


Pak Do Ik. He scores. North Korea have taken the lead with five minutes of the first half left. What a sensation. Italy a goal down to North Korea, who ever would have believed it. They are absolutely overwhelmed.


박두익, 전반 종료 5분 전 북한의 선취 골! 충격입니다! 축구 강국 이탈리아가 북한에 한 골 먹히다니!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박두익 선수, 골인입니다. 전반 종료 5분을 남겨두고 북한이 리드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우승 후보인 이탈리아를 앞서가는 북한, 기적입니다.)


Nothing has been heard from the team since they returned home.


그들은 북한 귀환 이후 세상의 이목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그 뒤로 영웅들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Do Ik Pak: I took part in the eighth World Cup and wore Number 7. My name is Pak Do lk


박두익 : 제가 제8차 세계축구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던, 등 번호 7번을 단 박두익입니다.


Pak Do lk 7


7번 박두익


Rye-hyun Myung: Right Wing. He was fast. He created chances to score.


명례현 : 라이트 윙. 속도가 아주 빨랐고. 공격에서 골을 넣을 수 있는 기회들을 많이 만들어줬다.


Han Bong Jin 11


11번 한봉진


Rye-hyun Myung: Pak Sung Jin. Right Half. Scored one goal in each of the Chile and Portugal games.


명례현 : 박승진. 라이트 하프. 칠레하고 할 때 한 골 넣었고, 그다음에 포르투갈하고 할 때도 한 골 넣었고.


Seung-zin Pak: Everyone did well.


박승진 : 다 잘 했는데, 뭘...


Pak Sung Jin 8


8번 박승진


Rye-hyun Myung: Left half. Im Song Hwi. He was good in midfield.


명례현 : 레프트 하프. 림승휘. 중장거리 연락(패스)을 아주 잘 합니다.


Im Song Hwi 6


6번 림승휘


Rye-hyun Myung: Left Wing. He had several good chances against Italy.


명례현 : 레프트 윙, 레프트 윙. 이탈리아, 저... 이탈리아하고 할 때... (잘 뛰었지...)


Yang Song Guk 15


15번 양성국


Rye-hyun Myung: Goalkeeper Ri Chan Myong. He is our country's treasured goalkeeper.


명례현 : 골키퍼 리찬명. 찬명이는 어렸을 때부터 문지기로서 우리나라에서 제일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Ri Chan Myong 1


1번 리찬명


Myong Rye Hyun: Head Coach


감독 명례현


Rye-hyun Myung: This is my old lady who has lost all her teeth. That's why she's become ugly now!


명례현 : 여 우리 여편네인데, 노친네입니다. 예 이빨이 다 빠져놔서 허물 떼게 되었단 말입니다. (여기 내 여편네인데, 노친네. 이빨이 다 뽑혀서 보기 흉해졌습니다.)


Rim Jung Son 5


5번 림중선


The Game of Their Lives


천리마축구단 : 일생일대의 승부 (운명의 게임 : 월드컵 8강의 신화, 북한 축구)


In 1966, these North Korean Footballers travelled to England for the Eighth World Cup as 1000 to 1 outsiders. So little was known about them that they might as well have been flying in from the moon. Yet they would take the World Cup by storm, and for a brief period, become the darlings of the nation. Today, North Korea remains an enigma, as alien as it was in 1966.


1966년 제8회 잉글랜드 월드컵에 철저히 베일에 싸인 미지의 팀이 출전한다. 이들의 존재는 외계인만큼이나 낯설었다. 그러나 이들은 파란을 일으켰고, 단 며칠 만에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때나 지금이나 북한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1966년, 제8회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파란을 일으킨 주인공들이 여기 다시 모였다. 당시 이들에 대한 사전 정보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이 작은 전사들은 예상을 뛰어넘는 화려한 플레이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오늘날 북한의 축구는 그때와 다름없이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다.)


After 4 years of negotiations, a Western film crew was granted unprecedented official access to North Korea.


우린 4년의 협상 끝에 서구인으로서는 최초로 북한에서의 영화 촬영을 허락받았다. (4년간의 설득 끝에 서방 언론으로서는 최초로 당시 선수들과 접촉할 수 있었다.)


Korea has been split since the end of the Second World War, the division between North and South is the Cold War's final frontier. To the North of the border,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population 22 million, has been ruled by its own unique brand of communism for over 50 years. The father of North Korea is Kim Il Sung, known as the 'Great Leader'. He became head of state in 1948 and led the country through the Korean War. Kim Il Sung is so revered that despite his death in 1994, he remains head of state. North Korea is now ruled by his son Kim Jong Il, known as the 'Dear Leader'. Every North Korean wears a lapel badge depicting either the Great Leader or the Dear Leader.


2차 대전 후 남북으로 대치한 한국은 마지막 남은 냉전의 최전선이다. 인구 2천 2백만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50년 넘게 ‘북한식’ 공산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위대한 수령’이라 불리는 북한의 국부 김일성은 1948년 정권 장악 후 한국 전쟁을 일으켰고 1994년 사망 후 현재까지도 주석으로 추앙받고 있다. 현재 북한은 그의 아들 김정일이 통치하며 모든 북한 주민은 가슴에 김일성 부자 배지를 달고 다닌다.


[Music]


In 1966, the World Cup became the biggest sporting event ever, with records crowds and unprecedented worldwide television coverage. For such a public spectacle at the height of the Cold War, North Korea's involvement was to prove difficult at every turn. 16 years earlier, Korea had plunged into civil war. The savage and brutal conflict, which lasted for three years, was a clash between the communist North and the capitalist South. The North was supported by China and the Soviet Union, the South by America and the United Nations. Hostilities ended with Korea still split and an estimated four million people killed. A peace treaty has never been signed. The War left North Korea completely isolated from the West. This is the first time that anyone has been given permission to enter North Korea to interview the football players about their experiences at the 8th World Cup.


1966년 월드컵은 최초로 전 세계에 TV 중계된 사상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였다. 그러나 냉전이 고조된 시기인 만큼 북한의 출전은 많은 난관에 부딪혔다. 1950년, 한국은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렀다. 처참했던 그 전쟁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냉전 이데올로기의 충돌이었다. 공산주의 북한은 중공과 소련의 지원을, 자본주의 남한은 미국과 UN의 지원을 받았다. 휴전 협정으로 중단된 이 전쟁으로 인해 4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나라는 분단됐으며 북한은 서방 세계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게 됐다. 당시 출전 선수들을 인터뷰할 수 있도록 북한이 이방인의 입국을 허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Yanggakdo Stadium, Pyongyang


평양 양각도 경기장


Wolmido v Mount Ryongak: Friendly game


월미도 대 용각산 친선경기


Zoong-sun Lim: My name is Rim Jung Son. I was Number 5, a defender, for the 8th World Cup in 1966. My Father was a football player in the past. I grew up seeing him play all the time. It was natural for me to play football throughout my youth. Of course, my father wanted me to be a footballer... and I played through primary and secondary school... and further education. In 1957, I started training as a professional football player. That's how I was brought up as a player.


림중선 : 나는 림중선이라고 합니다. 그 66년도 8차 세계축구선수권대회 때 방어수, 5번을 달고 활동했습니다. 축구는, 그, 아버지가 옛날에 축구 선수였잖아, 그러니까 축구인 가정에 태어나서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아주 좋아했으며 아버지는 아들을 장차 유능한 축구 선수로 키우기 위해서 모든 심혈을 다 기울여서, (역습! 역습!) 말하자면 어려서부터 축구를 시작했다는 거. 그래서 인민학교 시절, 중학교 시절, 학생 선수로서 하고, 그다음에 고급 중학교를 졸업하고 전문 축구를 했습니다. 그래서 1957년부터 전문 축구 교육을 받으면서 축구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Out of the 16 places at the World Cup finals, only one was available to all of Africa, Asia and Oceania. Indignant at this discrimination, all African nations withdrew their teams from the qualification process South Korea, who had competed in the 1954 World Cup, also pulled out. Just two countries, North Korea and Australia, were left to compete for that one available place at the World Cup Finals. The North Koreans had been training solidly for ten months and had played many internationals in preparation, including a tour of the Soviet Union and Eastern Europe. They were a tight knit and disciplined unit. Myong Rye Hyun was Korea's head coach and was to see the team through their extraordinary World Cup Adventure.


당시 월드컵 16강 출전 티켓이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3대륙에 딱 한 장 배정되자 모든 아프리카 국가들은 차별에 항의해 팀을 철수시켰고 1954년 출전했던 남한 또한 출전을 거부하여 북한과 호주만이 본선 티켓을 놓고 겨루게 됐다. 북한은 10개월간 충실하게 훈련을 거듭하고 동구권을 돌며 국제 경험을 쌓는 등 대표팀을 빈틈없이 정비했고 명례현 감독은 월드컵의 대장정에 오를 전략을 짰다. (당시 16장의 본선 진출권 중 아프리카와 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대륙에 배분된 건 단 한 장씩뿐이었다. 이런 치욕적인 피파의 행태에 분노한 아프리카 대륙은 월드컵을 보이콧했다. 54년 월드컵 본선에 처음 출전했던 한국은 이번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예선 탈락의 고배를 들었다. 이제 본선 티켓 한 장을 두고 북한과 호주가 맞붙게 된다. 10개월간의 지옥 훈련을 마친 북한 선수들은 이미 소련과 동구권 지역을 돌며 많은 국제 대회들을 경험한 바 있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북한 대표팀. 월드컵이란 대모험을 앞둔 북한 대표팀의 사령탑은 명례현 감독이 맡고 있었다.)


Rye-hyun Myung: To compete with the West.. we believed we had to be mentally determined... Physically fit, fast and full of energy. Our Great Leader stressed that to be an excellent footballer... you must run fast and kick accurately.


명례현 : 기본은 우리가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참고했는가? 해서 구라파 선수들하고 하려면은 투지, 완력 첫째 이것이 있어야 되겠다. 해서 또 위대한 수령님께서 축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잘 달리는 것이며 다음으로 잘 차는 것과 기묘한 전술이라는 걸 말씀드렸단 말입니다.


Speed and energy were the dominant themes in North Korean society at the time. At the end of the Korean war, the North lay completely flattened. Reconstruction of any sort would be an immense task. The development of Kim Il Sung's socialist vision at lightening speed was named 'Chollima', after the winged horse of Korean mythology. Reflecting the energy around them, North Korea's footballers played a fast paced Chollima style of football.


당시 북한의 슬로건은 속도와 노력 경쟁이었다. 전후 완전히 폐허가 된 북한에선 국가 재건이 가장 시급한 사안이었다. 따라서 북한에선 김일성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광속으로 건설하자는 ‘천리마 운동’이 전개됐다. 되돌아보면 북한 축구도 천리마 스타일의 속도전이었다. (당시 북한 월드컵 대표팀의 구호는 스피드와 에너지였다. 한국 전쟁 이후 폐허가 돼버린 북한. 그들에게 가장 절실했던 것은 국가의 재건이었다. 김일성 주석은 사회주의를 기반으로 한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천리마 운동을 지시한 바 있었다. 천리마 운동의 정신은 당시 북한 대표팀의 빠른 플레이에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Rye-hyun Myung: People in North Korea... were working all day and all night. As sportsmen, we could only train morning and afternoon. But we did so intensively. In this way, we could follow the Chollima movement like everyone else. The football supporters said to us: “As sportsmen on the football ground do well... and we will take care of the North Korean economy.”


명례현 : 그것 때문에 지금 전체 인민들은 정말 저녁과 아침, 밤 없이 이렇게 일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 체육이라는 거는 오전과 오후 이렇게 두 때 훈련할 수 있는데 이것을 강도를 높여가지고 훈련량을 많이 하야만이 조국 인민들이 천리마 시대에 발맞춰서 우리가 나갈 수 있다는 거. 축구 애호가들은 우리들한테 얘기하는 거, 당신네들은 선수권 대회 가서 경기만 잘 하라. 우리가 경제 건설은 우리가 다 맡아 해주겠다.


At the 8th World cup. Chollima was to take North Korea's western opponents by surprise.


천리마 축구는 서방 축구팀을 경악시켰다. (66년 월드컵에서 북한은 천리마 같은 기량으로 서방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North Korea v Australia


1965년 11월 21일 & 24일 북한 대 호주


Having fought on opposite sides in the Korean War, North Korea and Australia did not recognise each other so the play-off was switched to a neutral venue, Cambodia. Uniquely the home and away legs would be played three days apart in the same country. No-one, especially the supremely confident Australians, gave North Korea a chance. Yet this was Australia's first full international for seven years and their preparation had been decidedly low key. Only one of their players was born in Australia, the majority, like Englishman Geoff Sleight, were in fact British.


한국 전쟁의 적대국으로서 북한과 호주가 서로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자 예선전은 제3국 캄보디아에서 열렸고 유례없이 한 나라에서 사흘에 걸쳐 경기를 치르게 됐다. 그때 북한의 승리를 점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호주로선 7년 만의 첫 국제 경기였고 아무런 준비도 돼 있지 않았다. 호주 태생의 선수는 단 한 명에 불과했고 대부분이 ‘제프 슬레이트’처럼 영국인이었다. (한국 전쟁에서 남한을 지원했던 호주. 따라서 북한과 호주의 플레이오프전은 중립지인 캄보디아에서 펼쳐지게 된다. 홈 경기와 어웨이 경기로 치러져야 할 이 예선전은 이렇게 프놈펜에서만 열렸다. 당시 호주 대표팀은 승리에 대한 확신과 자신에 차 있었다. 7년 만에 국제 대회를 준비했던 당시 호주의 축구 대표팀은 선수 대부분이 호주 출신이 아니었다. 제프 슬레이트를 비롯하여 영국 이주민으로 국가대표팀이 구성돼 있던 것이다.)


Geoff Sleight: We went to Cairns in northern Queensland because it was considered to be a similar climate to that of Cambodia. And we played two friendly games, one against Northern Queensland Amateur Select Team who we managed to beat 17:0. And one against a team from lngham who we managed to beat 26:0. So we went off to play against North Korea feeling pretty good. It was really an opportunity to get back to England to play in the World Cup Finals.


제프 슬레이트 : 우리는 캄보디아와 기후가 비슷한 북퀸즐랜드에서 아마추어팀들과 두 번의 친선경기를 갖고 각각 17 대 0, 26 대 0으로 완파해버린 후 자신감에 차서 예선전에 임했죠. 영국 본선 진출은 따 놓은 당상이라 생각했어요. (우리는 훈련을 위해 ‘퀸즐랜드’ 북쪽에 위치한 ‘케른’으로 갔습니다. 그곳 기후가 캄보디아와 비슷하거든요. 그리고 그곳의 한 아마추어팀과 친선경기를 가졌습니다. 우린 무려 17 대 0으로 그들을 제압했죠. 그리고 또 다른 팀[잉검]과도 연습경기를 했는데 그땐 26 대 0이란 말도 안 되는 점수 차로 이겼습니다. 우린 자신감이 대단했죠. 북한을 쉽게 누르고 본선에 진출하리란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Zoong-sun Lim: We had no idea about the Australian team. We arrived in Phnom Penh on 13 November... and the Australians arrived on 15 November.


림중선 : 오스트레일리아 팀에 대해서는 전혀 파악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프놈펜에 11월 13일 날 도착했고 오스트레일리아 팀은 15일 날 도착했습니다.


Geoff Sleight: At the time, the Cambodians were just putting the finishing touches to a brand new stadium holding 55,000 people. And we were allowed to train on that pitch every day. They were on the field as we arrived for training each day. But we were under the impression that they were people who were in the North Korean Army, that they were regimented. They'd have to do as they were told to do. To us, we were liberated, we were free thinking and we though our way was the best. I recall that we didn't train very much. We didn't determine any strategy or use any tactics. We would play full scale practice games against each other. We realised later that we had the second session after the North Koreans and they used to sit in the stand and watch us play these practice games.


제프 슬레이트 : 당시 캄보디아는 새 경기장을 막 개장한 터라 우린 거기서 매일 연습할 수 있었죠. 북한 선수들도 매일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의 첫인상은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엄격하게 훈련된 군인 같았죠. 우린 우리의 자유스러움이 우월하다고 생각했어요. 훈련도 별로 안 했고 전략 전술도 없었고 그냥 팀을 나눠 연습 게임을 했는데 나중에야 북한 팀이 우리 경기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단 걸 알게 됐죠. (당시 캄보디아는 5만 5천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타디움 건설을 막 마쳤을 때였습니다. 우린 그곳에서 매일 훈련을 했지요. 북한 선수들도 새로 완공된 경기장에서 연습을 했습니다. 우린 그때 북한 선수들을 보면서 군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너무 조직적이었거든요. 명령에 복종하는 군인 같았습니다. 반면, 우린 너무 자유분방했죠. 우린 우리 방식이 최고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훈련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또 제대로 된 전략과 전술도 없었죠. 그저 연습경기를 했을 뿐이니까요. 북한 선수들은 벤치에 앉아 우리의 연습경기를 관전하고 있었습니다.)


Zoong-sun Lim: We were impressed by Australia's technical skills. Their individual skills were especially good. However, we could see they had a weakness. They lacked teamwork, and they lacked speed... even though they were technically proficient. So we could see a way to compete with the Australian team.


림중선 : 오스트레일리아 팀은 기술적으로 우세했다는 거. 특히 개인 기술들이 아주 좋았다는 거. 그러나 일련의 약점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포착했습니다. 그것은 기술은 좋아도 집단력이 없고, 또 기술은 좋아도 속도 경기를 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부족점을 우리가 간파하고 여기에 대응해서 우리가 새로운 전술을 짜 가지고 오스트레일리아하고 대결할 수 있었습니다.


To ensure fairness, Cambodia's ruler Norodom Sihanouk ordered the stadium to be divided in two. Half would support the Australians, and halfthe North Koreans.


캄보디아 국왕은 공정성을 위해 관중석을 반으로 나누어 한쪽은 호주, 한쪽은 북한을 응원하게 했다. (공정한 게임을 위해 캄보디아의 노로돔 시하누크 국왕은 스타디움을 반으로 갈랐다. 그리고 한쪽은 호주로, 다른 한쪽은 북한을 응원하도록 했다.)


Geoff Sleight: They put the biggest player in their team marking me. Now I'm only a little guy. I kicked that fullback when the ball was there, when the ball wasn't there. I kicked him, I elbowed him. I tried everything. Couldn't hurt him, couldn't out psyche him, couldn't scare him, couldn't do anything. And I think on reflection they were all the same. They were army guys, they were tougher than we were. I was glad we were only playing them at football. The beat us 6-1 and the second game we lost 3-1.


제프 슬레이트 : 젤 덩치 좋은 선수가 찰거머리처럼 날 마크하길래 공이 있건 없건 그를 차고, 때리고 별짓 다 했지만, 그는 겁내지도 당황하지도 떨어지지도 않았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 모두 그랬어요. 마치 전쟁터에 나온 군인들 같았어요. 우린 6 대 1, 3 대 1로 지고 말았어요. (저를 마크하기 위해 가장 덩치 큰 선수가 나섰습니다. 지금은 제가 볼품없는 늙은이지만, 그땐 달랐죠. 팔꿈치로 밀고, 발로 찼지만, 북한 수비수는 꼼짝도 않더군요. 별짓을 다 했지만, 북한 수비수는 꼼짝도 않더군요. 북한 선수들은 군인 같았죠. 1차전은 6 대 1로, 2차전은 3 대 1로 우리가 졌죠.)


Zoong-sun Lim: We won the game with a great result. Our minds were already running to England.


림중선 : 우리는 그렇게 큰 사명을 가지고 승리를 거두어서... 마음은 벌써 영국으로 줄달음치고 있었습니다.


Foreign Office, s.w.1, 3 December 1965


1965년 12월 3일 영국 외무성


Martin Polley: As soon as the North Koreans qualified the British Foreign office realised that they had a problem on their hands as the UK didn't recognise North Korea. They clearly didn't want them here. They viewed them as an embarrassment. One of the foreign office officials wrote 'The North Koreans have thoughtlessly beaten the Australians and so will be giving us a headache'. They were worried that it would set a precedent for recognising other countries where sovereignty was in dispute and the main one they were worried about was East Germany. They toyed with the idea of refusing visas to the North Korean players which would have been in line with a policy towards other countries where they didn't recognise sovereignty. But they realised early on that this might lead FlFA to move the World Cup to another country. And they realised that this would cause major problems for British sports lovers, for all the organisation that had gone on. And so they had to try and work out a compromise that would let the Koreans in but not imply recognition of the People's Democratic Republic of Korea.


마틴 폴리 : 북한이 본선에 오르자 영국 외무성은 골치가 아파졌죠. 북한의 주권을 인정할 수 없는 데다 북한 팀을 말썽꾼으로 여겼거든요. 호주를 우격다짐으로 이기고 올라온 북한 팀이 괜히 물의만 일으킬 거라 생각했고 북한 때문에 동독 같은 다른 공산국가까지 주권국으로 인정하는 선례가 될까 봐 걱정했죠. 외무성은 북한의 주권 문제를 빌미로 북한 팀의 비자 발급을 거부할 작정이었지만 그랬다가 피파가 월드컵 개최지를 변경해버리면 자국의 스포츠 팬들이 광분할 게 뻔하기 때문에 한발 물러서서 북한 팀의 입국은 허용하되 주권은 인정하지 않는 타협안을 찾아야 했죠. (북한의 본선 진출이 확정되자, 영국의 외무부는 당황했습니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지 않았으니까요. 북한이 영국에 오는 것을 꺼렸습니다. 수치라고 생각했죠. 심지어 외무부의 한 공무원은 “왜 하필 북한은 호주를 이겨서 우릴 골치 아프게 만드는 거야!”라고까지 했죠. 동독을 염두에 둔 영국 정부는 비수교국의 참가로 인해 야기될 여러 문제를 간과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북한 대표 선수들을 적대국을 위해 싸웠다는 이유로 비자 발급을 거부할까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피파는 월드컵 개최지를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다는 위험 부담이 있었죠. 또한 영국 축구팬들의 반발을 살 수도 있었기에 일단 북한 선수단의 입국을 허락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국가로 인정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Zoong-sun Lim: When we were on the plane... We thought about our Great Leader's teaching... to glorify our homeland.


림중선 : 우리들은 그 비행기 안에서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 그런 전법들을 싸 와서 꼭 조국의 영예를 빛내 이행해야 됐다는 거.


Martin Polley: At the time, NATO had guidelines for all member countries, that if they had sporting contacts or other cultural contacts with East Germans, that they should call them East Germans and not the German Democratic Republic. That they should not allow them to fly flags, that they should not allow them to have any specific anthems playing. And the Foreign Office was very worried that if they let the North Koreans in, calling themselves the DPRK, with flags with anthems, with all the rest of that paraphernalia, that they would have to extend the same courtesy to the East Germans in future.


마틴 폴리 : 당시 나토 회원국이 동독과 문화 체육 교류를 할 경우엔 ‘독일민주주의공화국’ 대신 ‘동독’이란 명칭을 쓰고 동독의 국기 게양, 국가 연주를 금하게 돼 있었는데 만일 북한이 영국에서 국명을 버젓이 사용하고 국기를 휘날리고 국가를 연주하는 날엔 동독에 대한 규제들이 무너질 판이었죠. (당시 나토, 즉 북대서양조약기구는 회원국에게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합니다. 스포츠를 비롯한 문화 행사를 하는 경우, 동독을 정식 명칭인 ‘독일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그냥 동독이라고만 불러야 한다는 것이었죠. 또한 동독의 국기를 게양한다거나 동독의 국가를 연주하는 것도 금지시켰습니다. 그래서 영국 외무부는 북한에게 동독에 준하는 예우를 하기로 했습니다.)


Uruguay in Group One


우루과이 1조 (1조에는 우루과이)


Second Argentine in Group Two


아르헨티나 2조 (2조에는 아르헨티나)


And Chile in Group Four


칠레 4조


The first into Group Two, West Germany.


2조 1순위... 서독 (또, 2조에 서독)


Next Hungary, Group Three.


헝가리 3조 (그리고 헝가리는 3조)


USSR in Group Four.


소련 4조


First to come is France in Group one,


1조 1순위 프랑스 (프랑스는 1조)


the second is Spain,


2순위 스페인 (스페인 2조)


the third is Portugal


3순위 포르투갈 (3조에 포르투갈)


and the fourth is Italy, in Group Four.


4순위 이탈리아 4조 (그리고 4조에 이탈리아)


Mexico, Switzerland, Bulgaria...


마지막으로 멕시코, 스위스, 불가리아...


Martin Polley: Interestingly the Foreign Office came up with their minimum demands and their maximum demands. It negotiated on those grounds. Now on the name there didn't seem to be much problems, people very quickly accepted North Korea as the name.


마틴 폴리 : 외무성은 크고 작은 요구사항을 현장에서 협상했죠. 국명을 ‘북한’으로 하는 덴 큰 문제가 없었어요. (영국 외무부는 그들의 요구사항을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협상을 했지요. 그래서 북조선 인민공화국이 아닌 북한이란 명칭을 사용하게 됐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빨리 북한이란 국명을 받아들였죠.)


And the last, North Korea in Group Four.


마지막으로 북한 4조 (그리고 마지막 4조는 ‘북한’)


Martin Polley: The flag flying was the most problematic issue. Dennis Howell, the Minister for Sport was very keen on a festival atmosphere and didn't want other countries minimising their chance to fly their flags, and in this case Howell won out and all flags were flown. And the Foreign Office just had to say to the South Koreans this doesn't mean we now recognise North Korea. Now on the anthems the Foreign Office view held and they did manage to minimise the playing of anthems. They came up with the model that the only anthems played would be before the opening match, England against Uruguay and before the final, which they assumed would not involved North Korea. In fact the North Korean anthem was not played at all so in that case the Foreign Office view managed to minimise the display of symbols of nationhood. And all the while they managed more or less to keep it out of the press. There was a little bit of speculation about the diplomatic overtones to this. But they managed to keep the actual negotiations, the horse dealing that was going on, out of the press.


마틴 폴리 : 문제는 국기 게양이었죠. 체육장관 데니스 하월은 축제 분위기를 위해 어느 나라 국기든 소홀히 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결국 참가국 국기가 전부 휘날리게 되자 외무성은 남한 측에 양해를 구해야 했어요. 국가 연주만큼은 외무성의 뜻이 받아들여져 개막전과 결승전에서만 국가를 연주하도록 운영 규칙을 바꿨죠. 북한이 결승에 진출할 리는 없으니까 결국 북한 국가는 울리지 않았고 이로써 외무성도 면목을 세울 수 있게 됐어요. 또한 외무성은 이런 껄끄러운 일들이 외교적인 쟁점으로 부각되는 것을 우려해 물밑에서 진행된 협상들이 언론에 노출되지 않게 조심했죠. (하지만 국기가 문제였습니다. 당시 체육부 장관이었던 데니스 하월은 월드컵을 축제 분위기에서 치르고 싶었죠. 그래서 국기 게양을 금지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의 뜻이 받아들여져 북한의 공화국기가 영국 땅에 펄럭일 수 있게 됐습니다. 영국정부는 한국정부에게 이것이 북한을 정식 국가로 인정한다는 뜻이 아님을 분명히 전달했죠. 또 국가 연주도 문제였는데 영국 외무부는 궁여지책으로 개막전과 결승전에서만 국가를 연주한다는 계획을 세웠죠. 북한이 결승까지 오르진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으니까요. 결국 북한 국가는 한 번도 연주되지 않았고, 이로써 국가를 상징하는 것들이 겉으로 많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언론이 북한의 기사를 다루지 않도록 손을 썼죠.)


Elizabeth II, Queen of the United Kingdom: It now gives me great pleasure to declare open the Eighth World Football Championship.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제8회 월드컵 챔피언십 개막을 선포합니다. (지금부터 제8회 월드컵 대회가 개막됨을 선포하는 바입니다.)


Zoong-sun Lim: We never imagined we'd see our national flat flying in England. So when we saw our flag in the English sky... as professional players, we felt so proud... of ourselves and of our country.


림중선 : 영국 땅에 공화국 깃발이 날리는, 그렇지만 우리가 축구를 잘해서 공화국 깃발이 영국 땅에 날린다는 것은, 우리 축구 하는, 축구 전문가로서, 선수로서 더없는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Pak Do Ik's apartment

Sports Street, Pyongyang


박두익의 아파트

평양 스포츠 거리


Due to his exploits at the Eighth World Cup in England, Pak Do lk is the most famous North Korean footballer outside of his country.


잉글랜드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박두익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보여준 눈부신 활약으로 박두익 선수는 해외에서 가장 유명한 북한 축구 선수가 되었다.)


Do Ik Pak: Right after the war, I worked in a print factory as a labourer. While I was labouring, I started playing football. In 1957, I was selected to play for the Pyongyang team. That was when I turned professional. I was already 20 years old. (Middlesbrough, England.) In 1959, I was selected for the National Squad.


박두익 : 그다음에 전쟁이 끝난 직후에는 내가 공장에 다녔습니다. 그리고 공장은 인쇄공장에서 노동 생활을 했습니다. 그 노동하면서 볼을 차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1957년에 평양시 최우수 선수단에 갔습니다. 그때부터 전문 선수로 이제 볼 차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스무 살 됐겠습니다. 지금 나이가 많이 들어서 이제 볼을 시작했... 차기 시작했습니다. (미들즈브러, 잉글랜드) 1959년도에 정확히 망라돼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나의 축구 생활의 첫 시작이라고 이제 얘기할 수 있습니다.


Pak Do lk later became National Team Manager.


박두익은 나중에 국가대표팀 감독이 됐다. (후에 그는 대표팀 감독직을 맡게 됐다.)


North Korea were drawn on Group 4, along with Italy, Chile and the Soviet Union.


북한은 이탈리아, 칠레, 소련과 함께 4조에 배정됐다. (이탈리아, 칠레, 소련과 함께 4조에 편성된 북한 대표팀.)


David Lacey: We know the Soviet Union had a good side. And Italy of course are always in contention. It looked a pretty strong group. Of course nobody had really thought seriously about the North Koreans, they were just there to make up the numbers.


데이비드 레이시 : 소련 팀도 강했고 이탈리아야 뭐... 막강 우승 후보였죠. 세 팀이 워낙 강해서 북한의 존재는 전혀 주목받지 못했어요. (소련은 강호였습니다. 이탈리아는 말할 것도 없고요. 4조는 강팀이 모인 그룹이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는 별 관심도 없었고 그저 조 하나를 채우기 위한 존재에 불과했죠.)


Chan-myung Ri: We composed this song ourselves and took it to England. The title is: “The Chollima Football Team”.


리찬명 : 지어서 우리들이 보길 해가지고 영국에 가서 계속 경기장이랑 내왕할 때 부르던 노래 부르갔습니다이. 제목은 “천리마축구단”.


“Carrying our nation's honour on our shoulders.

We are the glorious Chollima football team.

We can beat anyone, even the strongest team.

We will show others who we are.

That's right.

Fight and win!

Let's raise our national flag to fly in the sky in celebration.”


“조국의 영예를 두 어깨에 걸머진

우리는 영광스런 천리마축구단

그 어떤 강적도 단매에 엎어

조선 사람 본때를 보여주리라!

그렇다 싸워라 싸워 이기자!

남홍색 공화국기 하늘 높이 휘날리자!”


The North Korean delegation numbered 74, which included the squad, coaching staff, medical team, chefs and four man documentary crew. The base for their three group games would be Middlesbrough, an industrial working class city in the North East of England.


북한 대표단은 74명. 선수와 코칭 스탭 외에 의료진, 요리사, 촬영팀이 동행했다. 4조의 1차 리그는 영국 북동부의 공업 도시 미들즈브러에서 열렸다. (북한 대표팀은 총 74명이었다. 선수와 코칭 스탭, 의료진, 조리사, 그리고 4명의 경기 기록팀이 그들이었다. 북한이 치를 3번의 본선 경기는 잉글랜드 북동 지방인 미들즈브러에서 펼쳐진다.)


Do Ik Pak: We knew that Britain had participated in the Korean War. In other words, we were the enemy.


박두익 : 인민들에게 고통과 정말 그 잃은 거 졌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말해지게 되면 조선 전쟁 참전국이라는 거. 거, 우리는 적대국이다.


With the Korean War still fresh in the minds of the British, perceptions of the Korean team as an aggressive, hard-line, Communist enemy were widespread. Yet the Mayor of Middlesborough, John Boothby, embraced the Koreans and in a clear message to the town went out of his way to make his guests feel welcome.


한국전을 기억하는 영국인들에게 북한 팀은 공격적이고 경직된 빨갱이로 인식돼있었다. 허나 미들즈브러의 존 부스비 시장은 솔선수범하여 북한 팀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한국 전쟁에 대한 기억이 채 가시지 않은 영국 국민은 북한은 공격적인 공산주의 국가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미들즈브러의 시장이었던 존 부스비는 따뜻한 마음으로 북한 대표팀을 맞아주자고 시민을 설득했다.)


Charles Amer: They came here with a reputation. Probably it was misguided. But by the same token you had to do something to try and overcome people's thinking in the area. As Ambassadors of their country, you couldn't have had better people.


찰스 에이머 : 악명이 높았어요. 편견이 심했죠. 편견 때문에 각오를 더욱 다졌을 거예요. 그들은 북한을 알린 훌륭한 외교관이었어요. (좋은 사람들인 것 같았는데... 잘못 알려졌던 거죠. 전 이곳 사람들을 설득하기 시작했죠. 북한 대표팀은 민간 외교관으로서 훌륭한 역할을 수행했지요.)


The Koreans stayed at a newly opened hotel adjacent to the airport and trained on the pitches belonging to the local petrochemical plant.


북한 팀은 공항 근처 새로 문 연 호텔에 묵었고 한 화학 공장의 부설 운동장에서 훈련했다. (북한 대표팀은 공항 근처의 신축 호텔에 여장을 풀었고 지역 화학 공장의 경기장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Denis Barry: Nobody knew anything about them. Nobody knew anything about the society or anything like that. So they were an unknown quantity. And just to see International Football. So they were an unknown quantity. And just to see International Football in the North East was tremendous. There was a real sort of buzz.


데니스 배리 : 그들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었어요. 완전히 미지의 팀이었죠. 우린 그저 이런 공장 도시에서 국제 경기를 본다는 게 황홀할 뿐이었어요. (아무도 그들에 대해 몰랐죠. 북한의 사회나 문화 그 어떤 것도 말입니다. 뭐랄까... 미지수 같은 존재였지요. 그래서 미들즈브러는 북한에 대한 호기심으로 발칵 뒤집혔습니다.)


North Korea v USSR


북한 대 소련


Tremendous atmosphere here at Ayresome Park. The rank on the right there, the Russians. In all white strip tonight. And on the left of course, the team that everyone wants to know about, the North Koreans. The Koreans have played in Russia. They've played against Spartak and indeed... beat them 2-0.


열기에 휩싸인 에어섬 파크! 흰색 유니폼을 입은 소련 팀과 나란히 궁금증만 증폭시켜온 북한 팀이 입장합니다. 소련 원정에서 스파르타크팀을 2 대 0으로 꺾었던 북한 팀. (이곳 에어섬 파크의 열기는 매우 뜨겁습니다. 화면 오른쪽에는 흰 유니폼을 입은 소련 대표팀이, 그리고 왼쪽에는 미지의 국가, 북한에서 온 대표팀이 자리하게 되겠습니다. 북한은 이미 소련에서 경기를 치른 바 있죠. 상대 팀 스파르타크는 북한에 2 대 0으로 무릎을 꿇었다고 합니다.)


The North Koreans' average height was just 5'5'. The Soviets, having seen their domestic teams lose to the speedy Koreans, knew they had to make full use of their significant physical advantage.


북한 팀의 평균 신장은 165cm였지만 그들의 위력적인 속도전을 익히 알고 있는 소련 팀은 유리한 체격 조건을 최대한 활용해야 했다. (당시 북한 팀의 평균 신장은 165cm. 소련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스피드가 떨어졌다. 북한은 작지만 빠른 신체 조건을 최대한 이용해야 했다.)


Oh and a very nasty piece of kicking there by the Russian.


소련 선수들, 더티한 반칙입니다! (북한 10번 선수, 태클에 넘어지고 맙니다.)


David Lacey: The Russians came in for severe criticism because they'd been a bit physical with the Koreans. They all seemed to be twice as tall and twice as heavy and they bounced the little men around Ayresome Park. And I think from that point, the Ayresome Park supporters rather got behind Korea, had a bit of sympathy for them.


데이비드 레이시 : 소련 팀의 육탄전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죠. 덩치가 두 배나 큰 떡대들이 조그만 사람들을 마구 괴롭혔거든요. 그때부터 관중들은 북한을 응원하게 됐죠. (당시 소련 대표팀은 신체적인 조건에서 북한 선수를 훨씬 앞질렀습니다. 신장도 그렇고 덩치도 북한 선수를 압도했지요. 그래서 동정심 때문인지 축구팬들은 일방적으로 북한을 응원했습니다.)


Do Ik Pak: They played wildly, and we were unable to deal with that.


박두익 : 그다음에 완력적으로 나오고 거기에 우리가 지금 눌려서 경기를 잘 못 했습니다.


Not tough enough!


‘그들은 거칠지 않았다!’


A certain amount of needle now developing and fists are being thrown at this particular moment. The score, 3:0 and I can't believe that either of these two teams are going to do very well at all.


이 순간 야유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3 대 0. 소련 팀 전력이 월등해 보이진 않는군요. (깡마른 몸매의 북한 대표팀 그러나 열심히 싸우고 있습니다. 스코어는 3 대 0. 강호 소련은 북한을 맞아 어렵게 1승을 올립니다.)


“Russians look ponderous in beating North Korea” - David Lacey


“러시아가 북한을 이기는 것은 힘들어 보인다.” - 데이비드 레이시


David Lacey: It was what everybody had expected. And we made cooing noises about how determined and enthusiastic the North Koreans were. But really wrote them off with that game.


데이비드 레이시 : 결과는 예상대로였고 우린 북한 팀의 열성과 결연함엔 감탄했지만, 탈락을 기정사실화했죠. (예상대로였습니다. 하지만 관중들은 체력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뛴 북한 선수들에게 뜨거운 환호를 보냈지요.)


“Korea go down bravely to disappointing Russia.” - David Miller


“코리아는 기대에 못 미치는 러시아에 용감하게 굴복했다.” - 데이비드 밀러


Do Ik Pak: Although we were defeated 3:0 we gained confidence. We took this confidence into the Chile and Italy games.


박두익 : 신심을 잃은 게 아니고 비록 0 대 3으로 우리가 졌지마는, 앞으로 경기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이런 신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다음부터 칠레, 이탈리아 이렇게 경기를 진행했습니다.


Seung-zin Pak: I was Number 8 in the 1966 World Cup. My name is Pak Sung Jin. I started playing when I was young. A football team played next to my house. This inspired me to play.


박승진 : 내가 1966년도 세계선수권 대회에 참여했던 8번 박승진입니다. 내가 축구 시작한 건 쪼끔 어렸을 때부턴데, 그거는 우리 집 옆에 그 기관차체육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국제 경기를 보고 나도 볼을 차서 저렇게 해야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우선 그 마을 기숙사에서 축구를 시작했습니다.


Pak Sung Jin was North Korea's top scorer in the Eighth World Cup. He had one of the most powerful shots of the tournament.


박승진은 북한 제일의 스트라이커로서 월드컵에서 멋진 슛을 보여줬다. (제8회 월드컵에서 북한에 가장 많은 골을 안긴 박승진 선수. 그의 슛은 힘에 넘쳤다.)


Bong-zin Han: Pak Sung Jin was very fit and had especially strong legs. He tied elastic string round them and stretched his legs. He did this every day, a thousand times each leg.


한봉진 : 또 특히 박승진 동무는 이 하체 힘, 하체가 힘이 셉니다. 고무줄에다가 여기 뒤에 매고 이렇게 한 다리로 하는 걸 이걸 하루에도 천 번씩, 오른발 1,000번, 왼발 1,000번씩 이 고무줄을 가지고 이런 훈련을 해서 이 하체 힘을 단련시켰습니다.


Rye-hyun Myung: : We are here today with the players who took part in the eighth World Cup... to show respect for our Great Leader, Kim Il Sung. To be in front of his statue reminds us of his support for football... and the love he has shown for us.


명례현 : 오늘 우리 8차 세계선수권 대회에 갔던 동무들이 위대한 수령 김일성 원수님의 동상 앞에 이렇게 찾아오게 됩니다. 지난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체육 부문에 주신 이 사랑에 대해서 대를 이어서 많은 것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Let us pay our respects to our Great Leader, Kim Il Sung.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추모하여 삼가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Rye-hyun Myung: When we heard of his death, we were all so sad. Not only the sportsmen and women... but the whole country. This place was flooded with people's tears.


명례현 : 위대한 수령님께서 현재 우리가 뜻밖에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와 여인 체육인들은 물론이고... 전체 인민들이 슬픔에 잠겨서 이 앞에가 정말 물바다로 이렇게 됐댔습니다.


Zoong-sun Lim: Before we left our homeland, he invited us to see him on 10 June 1966. That day, he embraced us lovingly and said: “European and South American nations dominate international football. As representatives of the Asian, African and Oceanian region... as coloured people, I urge you to win one or two matches.” Standing in front of him now takes me back to that day. I wish he was still alive. I really wish... I wish he was alive and with us today.


림중선 : 우리가 조국을 떠나기에 앞서 1966년 6월 10일이라고 기억됩니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을 떠나는 우리 대표단을 친히 불러주시어 사랑의 한 품을 안아주시고 정말 우리가 이제까지 유럽이나 남아메리카 팀들이 이제 독점하고 있던 세계선수권대회 본선 경기에 그 아시아, 아프리카, 대양주(오세아니아)를 대표해서 우리 유색 인종이 처음으로 참가한다고 하시면서 이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영광스럽다고 하시면서 정말 가서 한두 팀이라도 이기고 돌아오라는 광명적인 그런 교시를 주셨습니다. 정말 이렇듯 오늘 위대한 수령님 동상 앞에 서고 보니 30여 년 전 일이 감회 깊게 돌이켜보게 됩니다. 지금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살아계셨더라면...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정말...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감명에 북받쳐서 말할 수 없습니다.


Juche Tower


주체탑


Despite losing to the Soviet Union, North Korea's players looked to the country's guiding philosophy, 'Juche', for inspiration. 'Juche' remains at the core of North Korean society. Its main message is that one is responsible for one's own destiny.


비록 소련에 졌지만, 선수들은 ‘주체사상’으로 정신을 재무장했다. “자기 운명은 자기가 책임진다.” 이것이 ‘주체사상’의 주된 메시지다.


North Korea v Chile


북한 대 칠레


The Koreans looking full of confidence. They wept after their defeat by Russia, but they are quite convinced they are going to qualify.


소련에 진 후 울 때와는 달리 아주 자신감에 차 있군요. (오늘 북한 선수 얼굴엔 전의가 가득합니다. 오늘만은 승리를 놓칠 수 없다는 각오입니다.)


Chile had hosted the previous World Cup and finished third. But they too had lost their opening group match, 2:0 to Italy. For Middlesbrough fans, whose team had just been relegated to Division Three, it seemed natural to rally behind the North Korea, the underdog. Against Chile, the Koreans would now be fully adopted as the home side.


제7회 월드컵에서 3위를 했던 칠레도 첫날 이탈리아에 2 대 0으로 패했다. 미들즈브러 축구팀은 엄청난 약팀이었기 때문에 미들즈브러 팬들은 당연히 같은 약팀인 북한을 응원했다. 칠레에 맞선 북한을 마치 홈팀 대하듯 했다. (4년 전 7회 월드컵에서 개최국이었던 칠레는 3위를 차지했었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서는 이탈리아와의 첫 경기를 2 대 0으로 내줬던 칠레. 미들즈브러 시민들은 상대적으로 약체인 북한을 응원한다. 일방적인 영국 국민의 응원을 등에 업은 북한.)


The crowd support for Korea enormous. They are certainly looking a little more menacing already. And this one's got a very good chance here, if he's got a left foot.


관중들의 성원이 대단합니다. 초반부터 위협적인데요. 찬스를 살릴 것이냐! 왼발 슛!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을 받고 있는 북한, 오늘은 북한도 만만치 않습니다. 네, 지금 좋은 찬스입니다. 왼발로 슛!)


David Lacey: Against Chile you first saw the signs of how Korea might do a little bit better than we thought. Because they were learning all the time. They weren't a bit dispirited by the game against Russia. And they actually went out and produced a bit of football.


데이비드 레이시 : 칠레전에서 그들의 진가가 조금씩 드러났죠. 그들은 패배에 굴하지 않고 계속 발전하면서 축구의 진수를 보여줬어요. (칠레를 맞아 북한은 생각한 것보다 더 잘 싸워줬습니다. 소련전에서 패배하여 의기소침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배운 것도 많았죠.)


And Korea looking very much at home at the moment.


홈구장을 뛰듯 여유 있는 북한 팀! (잘 싸우고 있는 북한 팀입니다.)


Chan-myung Ri: Unfortunately, we gave away a penalty from which they scored.


리찬명 : 결국 11m 벌칙(페널티킥)으로 우리 먼저 하나를 실점 당했습니다.


And now brought down. And it's a penalty. Ri Chan Myong on the line. That's number one for Chile... after 26 minutes.


칠레의 페널티킥! 골키퍼 리찬명. 26분 만에 칠레의 첫 득점! (네, 선수들 넘어집니다! 북한, 반칙을 범하고 맙니다. 리찬명 선수죠. 경기 시작 26분, 칠레가 선취점을 올립니다.)


Second Half


후반전


David Lacey: It was raining very hard. But nothing seemed to affect the Koreans. I think they'd have been the same if they'd been playing in heavy mud or an ice pitch. They always reminded me of a team of clockwork mice. Collectively wound up at the start of the game, and just ran around at the same pace until the final whistle.


데이비드 레이시 : 비가 쏟아졌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어요. 진흙탕이나 눈밭이라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그들은 태엽 인형처럼 시종일관 일사불란하게 지치지도 않고 그라운드를 달렸죠. (폭우가 무섭게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북한 선수들은 거칠 것이 없었죠. 진흙탕에서 싸우든 얼음판에서 경기를 하든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종료 휘슬이 울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흐트러짐이 없었죠.)


Still the score 1:0 in Chile's favour.


여전히 스코어는 1 대 0. (칠레가 1 대 0으로 앞서갑니다.)


If North Korea lost this game, they would be out of the tournament. As the final whistle approached, the Middlesbrough crowd knew that their team faced elimination.


이번에도 지면 곧바로 탈락이었다. 미들즈브러 관중들은 ‘홈팀’이 질까 봐 점점 초조해졌다. (북한이 이번 경기마저 내준다면 탈락이었다. 경기 종료 시각이 다가오자 미들즈브러 팬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The crowd willing them on, shouting 'Have a go!'.


관중들이 힘내라고 외칩니다! (관중들이 외칩니다. “한 골 넣어!”)


Zoong-sun Lim: It was 1:0, with five minutes to go. If we didn't score a goal... the memory of North Korea in the World Cup would disappear forever.


림중선 : 5분 남았을 때 우리는 0 대 1로 진 상태로 경기를 진행했습니다. 2분만 더 흘려보냈다면 영영 월드컵 경기에서 조선이라는 것은 끝이 났을 거라...


The crowd are so anxious for this team to do well. If they scored, I'm sure this place would explode. The crowd almost willing it and it's a goal. Korea have scored their first goal of the world cup tournament. Pak Sung Jin, Number 8 the scorer.


이들이 득점하면 경기장이 난리 나겠는데요. 힘차게 뻗는 슛, 골인! 북한의 월드컵 본선 첫 골이 터졌습니다! 8번 박승진의 득점포! (미들즈브러 관중들. 북한에 대한 응원이 대단합니다. 네, 슛 찬스! 북한 골인! 북한의 월드컵 첫 골이 터졌습니다. 등 번호 8번의 박승진 선수!)


Seung-zin Pak: Before the goal, I saw the crowd waving our flags and shouting, “Korea!” That lifted our spirits. I also thought about our Great Leader who was waiting for us.


박승진 : 그때 생각하기에 관람자들 보니까 공화국기를 흔들면서 꼬레 꼬레 응원하고 미들즈브러 전체가 다 우리를 응원했습니다. 그 힘을 써 하는 것이 아닌가. 저 위에서 위대한 수령님이 얼마나 우릴 기다리고 있을까? 기다릴 것인가?


“Pak Sung Jin’s Tonic for Happy Korea” - Cliff Mitchell


“조국에 바친 행복한 슛” (박승진, 북한을 살리다!) - 클리프 미첼


Zoong-sun Lim: I felt in my heart... I had a light from the darkness.


림중선 : 그때 감정은... 정말 암흑세계에서 광명을 본...


The crowd absolutely delirious. They've waited two matches for this moment and they willed North Korea into that goal. They've never cheered Middlesbrough like this for years here.


관중들, 열렬히 환호하고 있습니다! 간절히 기다리던 북한의 귀중한 한 골입니다! 미들즈브러가 온통 열광하고 있습니다! (관중들 기뻐서 어쩔 줄 모릅니다. 소련전에 이어 칠레전에도 변함없는 응원을 보내준 영국 국민에게 골로 보답하는 북한 선수들! 미들즈브러는 열광의 도가니가 됐습니다.)


Chan-myung Ri: The police were there to make sure no-one came onto the pitch.


리찬명 : 그... 영국 경찰이 우리 신변 안전을 위해서 삥 둘러싸고 누구도 못 들어오게 했는데...


And the navy has come to wish them well.


행운을 비는 해군 병사! (영국 해군도 북한 편이군요.)


Chan-myung Ri: This showed how much the English people loved us... especially those from Middlesbrough.


리찬명 : 이걸 보고 우리가 영국, 특히 그 미들즈브러 인민들이 우릴 얼마나 지지하고 성원했는가 하는 걸 지금 눈물겹게 지금 회상하게 됩니다.


Zoong-sun Lim: It still remains a riddle to me... the people of Middlesbrough supported us all the way through. I still don't know the reason why.


림중선 : 지금도 그 의문스러운 거는, 어떻게 돼서 그... 경기장에 들어온 미들즈브러 시민들이 우리를 그렇게 열광적으로 응원했는가... 이게 아직도 제 자신이 수수께끼처럼 풀리지 않는, 그런 심정이... 감정입니다.


Denis Barry: They played good football. They were all small, that was a novelty in itself. It was like watching a team of jockeys playing. But they moved the ball around really well. I think they took people by surprise. And they were very positive in their approach. They played attacking football. There was nothing defensive about their approach to the game. And the crowd got behind him form the way that they saw them play.


데니스 배리 : 그토록 작은 체구로 정말 훌륭하게 싸웠어요. 몸집은 작았지만, 볼은 기막히게 잘 다뤘죠. 그들의 공격적 플레이는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게임에 임하는 자세가 아주 적극적이었어요. 관중들은 그들의 플레이에 반해버렸어요. (축구를 잘했죠. 다들 키가 작았지만, 그것이 무기였죠. 마치 기수를 보는 듯했습니다. 드리블 실력은 현란하기까지 했지요. 그 점에 많은 사람이 매료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작은 북한 선수들의 공격적인 플레이에 미들즈브러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지요.)


Seung-zin Pak: After the game, the Mayor of Middlesbrough came to see us... and I shook his hand. He said, “Tremendous stuff – I have never seen such an exciting game. Asian football is invigorating.” He said, “Who is Number 8? I want to shake his hand.”


박승진 : 경기 끝난 다음에 미들즈브러 시장이 포치에 나왔습니다. 포치에, 포치에 나와서 오늘 같은 축구를 첨 봤다는 거. 그 미들즈브러 시장이 한쪽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거 같대는 거. 아시아 축구 보니께 힘을 낸다는 거. 하면서 8번 누군가? 코레아 박승진을 만나자! 해서 악수 거기서 내가 거기서 하고 기랬습니다.


Rob Lewis: I got an autographic book. A World Cup Willy, autograph book. I remember going to the Airport hotel where the Koreans were staying. And I was introduced to all of the players. And I sat on Pak Do lk s knee, which was a highlight. One thing that stands out they were wearing very blue track suits. They were very smart. They were always polite, very happy people. And I remember at the time there was lots of other children trying to get autographs. And I've got all their autographs and I've kept that safe over the thirty odd years and I'll just always keep it safe.


로브 루이스 : 우린 월드컵 선수들의 사인을 모았죠. 난 북한 팀 숙소인 공항 호텔까지 가서 박두익 선수 무릎에도 앉아봤어요. 파란 셔츠가 멋지더군요. 다들 똑똑하고 예의 바르고 행복해 보였죠. 사인받으려는 애들이 많았는데 난 운 좋게 모두의 사인을 받았고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소중히 간직할 거예요. (전 월드컵 출전 선수들의 서명을 모은 사인집을 갖고 있습니다. 전 북한 선수들이 묵었던 공항 근처 호텔에 가서 그분들을 만났어요. 박두익 선수가 절 무릎에 앉혔는데 그때 기분은 정말 최고였죠. 선명한 파란색의 운동복을 입고 있었는데, 작지만 재치 있고 예의 바르며 성격 좋은 선수들이었습니다. 저 말고도 많은 꼬마들이 북한 선수들의 사인을 받겠다고 몰려왔죠. 지금도 금고에 그 사인이 있어요.)


Bernard Gent: Well the day after, they had this reception given by the Mayor in Middlesbrough. And it was a very pleasant sort of evening, you know and at the end of it I think as a thank you, in a way, the Koreans wanted to have a sing-song, or they wanted to sing a friendship song. I think they called it 'Warm Friendship'. They proved that not only were they good on the field but they were good off the field as well.


버나드 겐트 : 시장이 그들을 만찬에 초대했어요. 아주 즐거운 저녁이었죠. 그들은 감사의 표시로 우정의 노래를 부르고 싶어 했어요. ‘따뜻한 우정’이란 노래였죠. 그들은 훌륭한 선수이자 신사임을 보여줬죠. (칠레전 다음 날, 미들즈브러 시장이 주관하는 리셉션이 열렸습니다. 아주 즐거운 밤이었죠. 그리고 연회가 끝나갈 무렵 북한 선수들은 우리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노래를 한 곡 불렀습니다. 제목이 ‘따뜻한 우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북한 선수들은 경기장 밖에서도 아주 좋은 태도를 보였습니다.)


Oh my close friend, let's sing together.

Even though we were born in different places.

Even though time passed, and the landscape changed.

Our friendship will never change.


다정한 동무여 노래를 부르자

우리 서로 태어나 고향을 밟아도

세월은 흐르고 산천은 변해도

우리의 우정은 변할 수 없어라


At the 8th World Cup, a friendship had been allowed to blossom between two peoples whose worlds would otherwise never have collided.


잉글랜드 월드컵으로 인해 이질적인 두 민족 사이에 우정의 꽃이 피어났다. (제8회 잉글랜드 월드컵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념을 초월한 우정이 꽃핀 아름다운 대회였다.)


Panmunjom - border with South Korea


판문점


Panmunjom Border Guard: When I play football, I am the goalkeeper... like the army guards the security of the country. Without a brilliant goalkeeper... the team cannot achieve victory... even through there are 10 others doing their best. That's why I prefer goalkeeping.


국경수비대원 : 축구를 하면 저는 문지기를 합니다. 우리가 나라를, 자기 나라를 지킨 데서 내가 자기, 나라 문을 잘 지켜야지 튼튼하듯이 우리 축구에서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축구에서 문지기를 잘 못 하면 아무리 열한 명이 다 같이 뛰어도 축구에서 이길 수 없고 곧 팀으로서의 가르킴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축구 할 때 전 문지기를 합니다.


We are in Panmunjom. North and South Korea have been divided for more than 50 years. That's why we are suffering. This concrete is the military demarcation line. It is fifty centimetres wide and five centimetres high.


거, 여기가 바로 판문점입니다. 이렇게 조선 민족이 북과 남으로 갈라져서 반세기가 넘도록 민족 분열의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여기 콘크리트 장벽입니다. 콘크리트 분계선. 이 넓이가 50cm인데 높이가 5cm이고.


Panmunjom Border Guard: My boss, Kyung Yang Ho... thinks that if the North and South became a single team... we would do very well. Our two countries are split. It makes development of our sports, politics and social system difficult.


국경수비대원 : 이게 우리 경양호 최고 선행관 동지... 이런 연대에서 유독 북남 공동 선언이 이행해서 우리 조선 사람이 자체로 조국을 통일하고 북남 유일 팀으로 구성하게 되면 우리 이제 세계 8차 축구선수권 대회처럼... 우리나라가 둘로 갈라진 조건에서 발전할 수 있는 체육, 이런 체육기술을 발전하지 못하고 이런 분단의 고통을 많이 겪고 있습니다. 우리 정치적 뿐만 아니라 체육 분야에서도 이렇게 고통이 될 것입니다.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Chan-myung Ri: I was the goalkeeper... Ri Chan Myong in the Eighth World Cup. In 1953, while in middle school I started playing football. Pyongyang was flattened by American bombs. There was nothing left. We had to live in the air raid shelters. We could hardly find a ball to play with. It was a difficult time to train. Even basic survival was difficult. But I desired it.


리찬명 : 그... 제8차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문지기를 담당했던 리찬명입니다. 전쟁은 그랬습니다. 전쟁이 일어날 때는 그랬습니다. 종전되면서 53년도 종전되면서부터 제가 그... 중학교, 인민학교에서부터 중학교 올라가면서부터 이 축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쟁 시기에는 이 미국놈들이 폭격을 해서 이 평양시가 몽땅 잿더미 됐습니다. 거 집이라는 거는 하나도 없고 고저 우리 인민들이 다 그 광부 노릇 하고, 땅속에서 그렇게 생활했습니다. 그리고 저 우리 하도 축구를 사랑하고 그때 형편으로서는... 그런 모든 조건이, 모든 조건이 불리하기 때문에... 훈련하기도 곤란했고... 또 이런 그 모든 생활조건이 다 불리했습니다.


April 25 v Gwangson Steelworks

Women's game


4.25 선수단 대 광선제철소

북한 여성 축구경기


Goalkeeper Ri Chan Myong is Head Coach of April 25th, the Korean People's Army team.


골키퍼 리찬명은 현재 조선인민군 축구팀 감독이다. (골키퍼 리찬명은 4.25 북한 군인 축구팀의 사령탑에 올랐다.)


Chan-myung Ri: Counter attack, that's the best solution.


리찬명 : 우리가 쌈도 말이야, 일어나서 쌈, 아무튼 같이 쌈해줘야디, 계속 떨어지잖아.


His performances in the World Cup would earn him widespread acclaim.


그는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많은 찬사를 받았었다. (월드컵 무대에서의 그의 활약에 전 세계가 주목했다.)


Chan-myung Ri: I am not tall and I have small hands. Therefore, I had to be especially fit... So I could jump the distance. I would practise jumping – so the crossbar came to here. I had quite rough hands. Now I don't play any more, and they are soft again!


리찬명 : 내가 이거 현역 할 때는 그 손이 좀, 키가 작고 손이 잗다라니까 다른 사람보다 이거 힘 운동을 많이 했습니다. 기렇게 하고 키가 잗다라니까 이 점프력 훈련을 많이 하고 기래서 이 골문대에 뜨게 되면 이만큼씩 올라가게. 그렇게 훈련을 많이 했는데 이 손이 상당히 억셌습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현역을 놓고 오랫동안 이탈하니까 보다시피 손이 이렇게 말롱해지고 굳은살이 다 빠졌습니다.


Zoong-sun Lim: Just as animals evolve, his hands have changed from rough to smooth.


림중선 : 그 동물들도 오랜 진화 과정을 거치지 않습니까? (리찬명 웃음) 이 사람 손도 아마 퇴화되는 과정인 것 같다고...


Mass Games Practice

Kim Il Sung Square, Pyongyang


매스게임 연습

평양 김일성광장


The Mass Games are a celebration of the DPRK. It takes over a billion man hours of practice to prepare the Mass Games. The spectacular murals depicting DPRK's achievements... consist of placards held by 20,000 citizens.


북한의 매스게임은 대규모의 국가적 향연이다. 여기엔 엄청난 인원과 시간이 투입된다. 2만 명이 동원되는 카드 섹션을 통해 북한의 업적들이 그림으로 표현된다.


Kim Il Sung, extending the revolutionary struggle to the football pitch, had asked the team to win one or two matches. The final group game against the mighty Italians, was the footballers' last chance to bring honour to their nation. The stage was set for a glorious battle.


김일성은 축구도 혁명투쟁의 연장이라며 한두 게임은 꼭 이기고 오라 했고 북한 팀에겐 대 이탈리아전이 조국을 빛낼 마지막 기회였다. 마침내 영광스러운 전투가 시작됐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혁명과 발전의 일환으로 대표팀에게 월드컵에서의 최소 1승을 주문했다. 지금까지 1무 1패를 기록한 북한은 어떻게 해서든 이탈리아전을 승리로 이끌어 조국에게 1승을 바쳐야 했다.)


North Korea v Italy


북한 대 이탈리아


The Italians had previously won the World Cup twice and arrived in England as one of the tournament favourites. They were a young and glamorous team with household names such as Rivera, Fachetti and Mazzola. In the run up to the World Cup we were on good form.


이탈리아는 월드컵을 2회 석권한 강력한 우승 후보국이었다. 그들은 젊고 당당했으며 리베라, 파케티, 마촐라 같은 스타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이미 줄리메컵을 두 번이나 차지한 바 있는 강호 이탈리아. 이번에도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젊고 화려한 이탈리아 군단에는 리베라, 파케티, 마촐라가 포진해 있었다.)


Sandro Mazzola: After we beat Chile in our first game, we thought: “Well, we're pretty much through.” Then when we lost against Russia, we really started to worry.


산드로 마촐라 : 처음에 우린 기세등등했죠. 첫 게임에서 칠레를 물리치자 다 이긴 기분이었어요. 근데 소련에 패하자 좀 불안해지더군요. (월드컵을 앞두고 우린 컨디션이 최상이었습니다. 첫 경기에서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던 칠레를 무찔렀지요. 하지만 두 번째 게임에서 소련에 지고 나자 슬슬 걱정되기 시작하더군요.)


“Italy Morale Rock Botton” - Cliff Mitchell


“이탈리아가 흔들리다” (이탈리아 사기 밑바닥에 떨어지다) - 클리프 미첼


Gianni Rivera: Strangely, we had the sensation of it being a great day. That probably influenced the situation negatively... rather than calming it. But we were convinced that with only needing a draw... we wouldn't have any problem... against a side which we believed to be, and was, inferior.


잔니 리베라 : 경기 전부터 승리감에 들떠있었죠. 그게 오히려 침착성을 잃게 한 것 같아요. 암튼 비기기만 해도 8강행은 확실한 데다 상대편은 우리보다 한참 열등해 보였죠. (전 왠지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예상과는 반대로 흘러가고 말았지요. 준준결승에 진출하기 위해서 우리 이탈리아는 최소 무승부만 만들면 됐습니다. 상대는 북한이었죠. 우린, “무승부쯤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탈리아보다 한 수 아래인 북한이니까요.)


In Italy, the Korea game was considered a formality and anything less than the quarter finals would be a national disgrace. For North Korea, a draw was not enough they had to win to stay in the tournament.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이탈리아로서는 8강 진출 실패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한편 북한 입장에선 이 경기를 반드시 이겨야 했다. (이탈리아 국민은 북한과의 경기를 준준결승에 가기 위한 하나의 형식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북한은 준준결승 진출을 위해 어떻게든 이탈리아를 눌러야만 했다.)


Zoong-sun Lim: Before the Italian game, our victorious mood was such that... even if we were faced with a huge mountain... we could demolish it and march right through.


림중선 : 승리의 신심이 아주 충만되어 있었다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해서 그때의 경기를 앞두고 우리들의 심정은 그 태산도 허물 것 같은, 이런 분위기였습니다.


Back in North Korea, it was three in the morning. Millions crowded round their radio sets to listen to live commentary from the game.


북한 주민 수백만 명은 새벽 3시 라디오 생중계에 귀 기울였다. (경기는 북한 시간으로 새벽 3시에 시작됐다. 잠을 잊은 북한 주민들은 라디오 중계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Chan-myung Ri: When the match kicked off, Italy made a powerful, attacking start.


리찬명 : 정말 우리를 단숨에 굴복시킬려는 그런... 마음으로 이탈리아가 우릴 공격을 했는데...


This is a good one! What a wonderful save by Ri Chan Myong!


좋은 찬스! 잘 막는 리찬명 선수!


Gianni Rivera: The goal seemed to be jinxed against us – none of our shots went in. This meant for us that the whole game became negative. We weren't able to turn it around. So every minute of the 90 minutes was negative.


잔니 리베라 : 골대에 귀신이 붙은 것 같았죠. 슈팅하는 족족 빗나갔어요. 그러다 점점 판세가 기울어지더니 돌이킬 수 없게 됐죠. 90분 내내 게임이 안 풀렸어요. (뭐랄까, 일종의 징크스 같았죠. 그날 우리 선수가 쏘는 슛마다 이상하게 골로 연결되지 않았거든요. 뭔가 이상한 방향으로 분위기가 흐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었죠. 행운의 여신은 북한 편에만 서 있었습니다. 90분 내내, 계속이요.)


In the 34th minute the Italian captain Bulgarelli was injured in a tackle he made on Pak Sung Jin. He left the field on a stretcher. With no substitutes allowed, Italy were now down to ten men.


34분 경과 후 이탈리아 주장 불가렐리가 박승진에게 태클을 걸다 부상당했다. 그는 결국 실려 나갔고 선수 교체가 허용되지 않아서 필드엔 열 명만 남게 됐다. (경기 시작 34분, 이탈리아의 주장 불가렐리는 박승진에게 태클을 시도하다 부상을 입는다. 그는 들것에 실려 나갔다. 이탈리아는 10명이 11명의 북한 선수를 상대해야 했다.)


Off goes Bulgarelli.


불가렐리가 나가는군요. (불가렐리 경기장을 나갑니다.)


Sandro Mazzola: We missed three chances at the start of the game. We become scared of losing. Then our team-mate was injured, and there were no substitutes back then. So we had to play with ten men. That's no excuse, of course – Italy should beat Korea with ten men. But it was the worry and the insecurity we all felt... which stopped us performing the way we could.


산드로 마촐라 : 초반에 세 번의 기회를 놓치자 슬슬 불안해졌죠. 설상가상으로 주장이 실려 나가서 우린 열 명만 남게 됐어요. 열 명만으로도 우린 충분히 강했지만, 이미 초조와 불안감이 팀의 사기를 갉아먹고 있었죠. (경기 시작부터 우린 세 번의 좋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혹시 패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해왔죠. 게다가 주장까지 부상을 입고 우린 열 명이 뛰어야 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패했죠.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경기 내내 우리를 쫓아다닌 불안감에 결국 발목이 잡히고 만 거죠.)


In the 41st minute North Korea delivered a fatal blow.


경기 41분 만에 북한의 결정골이 터졌다. (경기 시작 41분, 드디어 신화가 창조됐다.)


Pak Do lk. He SCORES! Korea have taken the lead. Italy a goal down to North Korea. Who ever would have believed it. They are absolutely overwhelmed.


박두익. 골인! 이탈리아가 북한에 밀리다니.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저말 놀라울 뿐입니다! (박두익 선수! 골인입니다! 선취점을 올린 북한 팀! 이탈리아에 1 대 0으로 리드합니다. 그 누가 상상이나 했습니까? 북한이 예상을 뒤엎고 득점을 올렸습니다.)


Do Ik Pak: I moved so I could use my right foot which is always more accurate.


박두익 : 후반 43분 만에 훈련할 때도 대체 차넣기, 오른발 차기는 아마 백발백중. 명중률이 내가 비교적 높았습니다.


Seung-zin Pak: I kicked the ball straight back into the net. I was so happy, I wanted to repeat Pak Do lk's motion.


박승진 : 내가 차고 내 골대를 다시 넘어댔는데 그 누가 알간? 내가 그 두익 동포가 넣을 적에 너무나도 기쁘고 기래서 이렇게 넣구나! 두익이가. 박두익 선수가 이렇게 넣구나! 나도 다시 한번 차 넣어 봤다는 거.


Sandro Mazzola: The first reaction was one of anger of helplessness... of wanting to react – we did react, but in the wrong way. We didn't think clearly, we were taking risks. We were all playing as individuals instead of just playing calmly... and letting our quality come through. Perhaps we were too young to think of that.


산드로 마촐라 : 그때 기분은 분함과 당혹감, 반격하고픈 마음이 간절했죠. 근데 뜻대로 풀리질 않더군요. 우린 이미 냉정함을 잃은 상태라 팀워크는 깨지고 선수들은 제각각 놀고 기술을 전혀 살리지 못했죠. 그때 우린 너무 어렸던 것 같아요. (북한에 골을 허용하고 처음엔 무척 화가 났습니다. 그러다 무기력함이 느껴졌죠. 그리고 실점을 만회하기 위해 열심히 뛰었지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우리에겐 부족한 점이 있었어요. 차분하게 경기를 진행하지 못했고, 다들 제각각이었죠. 우리가 너무 어리고 미숙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North Korea 1-0 Italy

Half Time


북한 1 : 0 이탈리아

하프타임


Rye-hyun Myung: In the dressing room at halftime, the players were full of resolve. We knew what the Great Leader expected from us.


명례현 : 그 휴게실, 전반전 끝나고 나왔을 때는 선수 자체들도 우리가 조국을 떠날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두 팀만은 이기라는 그... 우리가 과업을 받았단 말입니다. 이것을 길이 관철하... 관철하라는 거...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Chan-myung Ri: Behind me was the goal, which was small. But behind the goal was our nation. If I conceded a goal, the reputation of North Korea would fall. We would have failed in the task set us by the Great Leader. Therefore, I guarded the goal with my life.


리찬명 : 내가 지키는 골문이, 저 골문이 비록 작은 골문이지만, 나는 그때 이게 내 뒤에는 우리 조국이 있고 또 우리 조국의 인민들이 날 지켜보고 있다는 거. 내가 골을 먹으면 우리 조국의 명예가 추락되고 우리 수령님께서 그 우리들에게 주신 그런 과업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이런 것으로 해서 정말 죽어도 나는 이 문을 사수해야 한다는, 그런 높은 자책감으로 해서 골문을 지켰습니다.


And who would be anywhere else tonight in this World Cup Competition but here at Ayresome Park. Extraordinary things afoot. And this stadium has never heard support like this for years and years. And they're away here now, an attack. Pak Do lk. And this man has an excellent chance of scoring if he can get his left foot. It's just wide. And the Italians in all sorts of disarray. This is Rivera and this could be very dangerous. Good save by Ri Chan Myong.


오늘 밤 이곳에서 대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열띤 응원의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메웁니다. 다시 박두익의 공격! 계속 득점 찬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선수들 우왕좌왕합니다. 리베라 선수로 위험해집니다. 리찬명 선수가 잘 막았습니다. (전 세계의 시선이 이곳 미들즈브러의 에어섬 파크 경기장에 몰려있습니다. 이변이 일어날 수 있을지... 에어섬 스타디움의 2만 관중은 경기장이 떠나갈 듯 환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자, 북한, 다시 한번 전의를 가다듬습니다. 박두익 선수! 좋은 찬스! 득점 기회입니다. 아, 너무 벗어나는군요. 우왕좌왕하는 이탈리아 대표 선수들, 리베라 선수의 좋은 기회! 아! 하지만 멋지게 막아내는 북한의 골키퍼 리찬명!)


Chan-myung Ri: It was an intriguing battle.


리찬명 : 힘겨운 전투였습니다.


Every one of these Koreans playing to their utmost.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북한 팀! (오늘 북한 선수 모두 최선을 다합니다.)


Zoong-sun Lim: Our defenders were under enormous pressure... but we reminded ourselves that we could win.


림중선 : 우리 그러다나니께 우리 방어수들이 부담이 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승리의 신심을 가지고...


And Ayresome Park in uproar. And they've won. Good heavens, they've won. North Korea have beaten Italy. What is going on here. They are delighted. This is fantastic. And North Korea will be in the quarter finals. And the crowd rising to them. And they are in tears. They are weeping tears of joy.


떠나갈 듯한 함성! 맙소사, 이겼습니다! 북한이 이탈리아를 꺾다니 이게 웬일입니까! 대단합니다! 북한이 8강에 올랐습니다! 관중들의 기립박수! 다들 기쁨의 눈물을 글썽입니다! (열광의 도가니가 되어버린 에어섬 경기장. 북한이 승리했습니다. 북한의 1승! 이탈리아가 북한에 무릎을 꿇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조화입니까? 기적입니다! 이로써 대망의 8강에 진출하는 북한. 관중 모두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눈물을 흘리는 북한 선수들!)


George Johnstone: In the dressing room, the Koreans kept opening the door and inviting us in to celebrate with them. Because they were celebrating on lemonade, there was no, there didn't seem to be any alcohol present whatsoever. And they were just jumping up and down. Talking and jibbering away in their own language. Just highly, highly delighted. I've never seen so many people in one enclosed place. Everybody from North Korea must have been in there. Well next door was deadly silent.


조지 존스톤 : 선수들은 탈의실에 몰려든 축하객들과 함께 아주 건전하게 레모네이드로 축배를 들었죠. 그들은 알 수 없는 말을 떠들며 얼싸안고 난리였어요. 탈의실은 발 디딜 틈 없었죠. 북한 사람이 다 모인 것 같더군요. 옆방은 죽은 듯 조용했죠. (당시 승리의 감격에 겨워 있던 북한 선수들은 술이 아닌 레모네이드로 축배를 들며 라커룸의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우리에게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깡충깡충 신이 나서 뛰더군요. 그리고 알 수 없는 말로 얘기를 나누는데 무척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 좁은 방에 어찌나 많은 사람이 모였던지! 반면 이탈리아 탈의실은 조용했죠.)


Gianni Rivera: There was nothing to say, so the best thing in that situation was silence... because at that moment, we were all responsible. From the coach to the last player, we all felt responsible... for having created something so negative... which then actually proved to be negative for Italian football.


잔니 리베라 : 그 상황에선 침묵이 최선이었어요. 모두 할 말을 잃었죠. 감독 이하 선수 전원이 책임을 통감했어요. 뭔가 부정적인 상황을 초래해서 이탈리아 축구에 먹칠했으니까요. (다들 할 말을 잃었죠.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냥 침묵을 지킬 뿐이었죠. 우리 모두가 패배의 원인이었습니다. 감독부터 후보선수까지, 모두요. 모두 죄책감을 느꼈죠. 처음부터 꼬이기 시작한 경기가 끝까지 풀리지 않았습니다.)


Sandro Mazzola: I think a lot of us cried in the locker room that day.


산드로 마촐라 : 라커룸에서 우린 통곡했어요. (그날 탈의실에서 많은 선수가 울었습니다.)


“Disaster, Triumph, Drama – And a Fairy Story!” - Cliff Mitchell


“승리의 드라마를 만든 북한” - 클리프 미첼


Blackest page in Italian soccer


이탈리아 대표팀 수모를 당하다


Italians go home


이탈리아 집에 가다


North Korea's victory was unquestionably the greatest shock in World Cup History. Italy would win the European championships two years later and would be runners up at the next World Cup. But right now the wealthiest players on the planet returned home to ridicule and a hail of rotten tomatoes from their supporters.


북한의 승리는 월드컵 사상 최대의 쇼크였다. 이탈리아는 2년 뒤 유럽 챔피언십에서 우승. 다음 월드컵에 진출하게 되지만, 당장은 자존심을 짓밟힌 패잔병으로 귀국해 썩은 토마토 세례를 받아야 했다. (북한의 8강 진출은 지금도 월드컵 역사상 가장 큰 충격으로 기억된다. 이탈리아는 2년 뒤 유러피언 챔피언십에서 우승컵을 거머쥐었고 다음 월드컵에서는 2위를 차지한다. 하지만 당시 8강 문턱에서 주저앉은 이탈리아 대표단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훌리건들의 썩은 토마토 세례였다.)


Italian Team Pelted


이탈리아 대표팀 토마토 세례를 당하다


Sandro Mazzola: It was a disaster! Now we can laugh about it but back then, what was awful... was arriving at the airport with everyone waiting for us. Some tried to get out one way... others another way – it was very ugly. There were various exits from the airport... but people were throwing tomatoes eggs, they threw all sorts. I was lucky – I managed to get out without them seeing me! I was quick!


산드로 마촐라 : 끔찍했죠. 이젠 웃으며 얘기할 수 있지만... 공항에 도착하니 성난 군중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몰래 빠져나가려다 들켜서 망신만 당한 선수들도 있었죠. 출구가 여러 개 있었는데 어디서나 토마토가 날아왔어요. 난 용케 몰래 빠져나왔죠. 발이 빨랐거든요. (난리였습니다!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그땐 심각했지요. 공항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우리가 나갈 길목마다 다들 지키고 서 있었죠. 그렇게 많은 출입구를 다 막고 서 있더라고요. 사람들은 토마토며 계란이며 손에 잡히는 대로 마구 던져댔습니다. 전 다행히도 토마토 세례를 피해 집에 왔죠. 제가 빠르잖아요!)


To this day, any disaster in Italian football is referred to as 'another Korea'.


그 후 이탈리아 축구계엔 ‘코리안 악몽’이란 말이 생겼다. (지금도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때의 패배를 잊지 못하고 있다.)


Zoong-sun Lim: Firstly, our Great Leader... had instructed us to win one or two matches. We felt we had achieved this task. We felt proud of our achievement. Secondly, I could imagine how happy the people of our nation would feel.


림중선 : 첫째, 위대한 수령님께서 떠나보낼 때 한두 팀이라도 이겨보라는, 그런 광명적인 과업을 수행했다는... 이런 정말 긍지와 기쁨을 간직할 수 있었으며, (둘째,) 조국 인민들이 얼마나 이 시각에 기뻐하겠는가? 이걸 먼저 생각했습니다. 


Hyo Sob Ri: Our sporting heroes fulfilled our nation's wishes. People poured on to the streets to celebrate and cry... even though it was the middle of the night.


리효섭 : 체육 영웅들이 인민들의 소원을 풀어줬다는 거. 그래서 승리 소식을 듣고 전체 인민들이 밤에 뛰쳐나와서 울면서 하늘을 울렸다는 거.


As for myself, I was a train driver. There was no radio on the train, so I couldn't hear the news live. But when I heard we had won, I would work harder than ever... because of the excitement. It was so good, I cried.


나 자신은 철도에서 기관차를 몰았다는 거. 그래서 비록 차 타고 가는 시간에는 그걸 지금 라디오라든가 이런 중계방송하는 걸 듣지 못했지마는, 갔다 와서는 그걸 듣고 이겼다고, 그걸 우리 선수들이 이겼다고 그러면은 그날 일은 200~300% 문제없이 했다는 거. 너무 반가워서 우린 울었다는 거. 울었다는 거.


Hyo Sob Ri: It was historic. We fulfilled the miracle of Asia's dream.


리효섭 : 그래서 아시아의 체육의 기적이 우리나라에 천거되었다는 거.


Rye-hyun Myung: If we analyse why Italy lost the game... firstly, they lost the mental battle. Secondly, after they conceded a goal to us, they tried to hurry to score. That meant they played individually, not as a team. Teamwork triumphed over technical superiority.


명례현 : 왜 그럼 우리한테 졌는가? 이거 볼 때 첫째로 정신사상력(조직력)에서 졌습니다. 우리한테. 정신사상력에서. 그다음에 두 번째는 걔네들이 뜻밖에도 한 점 실점하다나니까, 조급한 나머지 집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개인 경기를 했단 말입니다. 이게 말하자면 기술 만능이 우리 집단력 앞에 깨져나갔단 말입니다.


North Korea had become the fist Asian side to make it to the quarter finals of the World Cup. They now had to move their base away from Middlesbrough to Liverpool, where they would play Portugal. Liverpool, like Middlesbrough, was a working class city, world famous for being the home of the Beatles. In a strange twist, the atheist North Koreans found themselves staying at Loyola Hall, a Roman Catholic retreat.


북한은 8강에 진출한 최초의 아시아 팀이 됐다. 이제 그들은 리버풀에서 포르투갈과 맞붙어야 했다. 리버풀도 가난한 공업 도시였는데 비틀즈의 고향으로 유명했다. (북한은 월드컵 사상 아시아 국가로서는 처음 준준결승에 진출한다. 8강전의 첫 시합인 포르투갈과의 경기를 위해 그들은 리버풀로 몸을 옮긴다. 리버풀은 미들즈브러와 같이 중산층 노동자의 도시로서 비틀즈의 고향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종교를 금기시하는 북한 팀은 아이러니하게도 가톨릭 재단의 ‘로욜라 홀’에 묵게 됐다.


Father Paul Nicholson: The Italians were booked in to come because this is a roman catholic centre I suppose it was the natural place for them to think of coming to stay when they were here. When they got knocked out, the North Koreans hadn't got anywhere booked. I don't know if they hadn't been expecting to get through, but they certainly didn't have anywhere. So we got frantic contact from them saying could they possibly stay here instead. At the time, this place would have mainly been used by priests and nuns and perhaps a few particularly religious lay people. You certainly wouldn't have expected a communist football team to be here at all.


폴 니콜슨 : 원래는 이탈리아 팀이 묵으려고 예약해놓은 방이었죠. 근데 뜻밖에 북한이 이겨버렸고 미처 숙소를 구해놓지 못한 북한 팀이 대신 자기들을 묵게 해달라고 사정하더군요. 당시 이곳엔 주로 성직자들이 묵었고 간혹 평신도가 머물긴 했어도 공산국가 축구팀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죠.


Outwardly, the Koreans appeared relaxed. They had become the darlings of the nation and had set the tournament alight. But, despite appearances, they were far from comfortable in their new surroundings. They were given single rooms, a custom entirely alien to a communist team who normally slept in dormitories.


그들은 한층 여유 있어 보였다. 8강에도 올랐고 국민 영웅도 됐다. 허나 그들의 새로운 환경은 결코 편치 않았다. 특히 싱글룸은 합숙 생활에 익숙한 그들에겐 너무 낯선 문화였다.


Do Ik Pak: Over the desk were many strange objects, pictures and things. Looking at them made it difficult to stay there. By insisting stubbornly, I was allowed to share a room with Han Bong Jin.


박두익 : 근데 그... 식탁 자리가 아마 공부하는 책상이죠. 책상 밑에 그 뭘 깔아놓은 게 많았습니다. 그림도 있고 뭐 이렇게 해서 지치고 들여다보면서 머물려니까 머물기 힘듭니다. 우리가 들였던 방에는, 우리는 대체로 나하고 한봉진이하고 두 개, 우리는 거, 떼로 써서 둘이 있게 해놨다, 그래서 둘이 있었습니다.


Paul Nicholson: As a Catholic house we have Crucifixes, crosses, in each of the rooms, they all had to be taken down. That wasn't judged to be suitable.


폴 니콜슨 : 방마다 걸린 예수상과 십자가를 그들을 위해 전부 떼어냈어요.


Despite the best intentions of their new hosts, the religious imagery throughout Loyola Hall remained a problem to the players. 


숙소 측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엄숙한 종교적 분위기는 선수들에게 여전히 불편했다.


Do Ik Pak: At night, when I looked outside, I could see a chapel. Inside was a statue of Jesus on the cross... with scary nails in his palms. In the middle of the night, this chapel was lit by a spotlight. It was the first time we had seen such things. They caused us to worry and fear, and we couldn't sleep well.


박두익 : 근데 밤에 이제 창문으로 내다보게 되면, 그 벽돌 후부로 이렇게 집을 지어놓고 그 안에 그 이제 그... 예수... 이렇게 아이를 부둥켜안고 있는 것도 있고 그다음에 그... 여기 그 손 다 이렇게 끊고 십자가에 이렇게 매달려 있는 것도 있고 이거 깜깜한데 거기만 그렇게 빛이 다 나니까, 그래서 우리는 처음 보는 일이고 이렇게 해서 좀... 말하자면 무서움증이 좀 나기도 하고... 이렇게 해서 잠자기가 몹시 불편하고, 참 힘든 게 있었습니다.


Ryongsong Cigarette Factory in Pyongyang


평양 룡성 담배공장


Paper Rollers v Tobacconists


종이공장 대 담배공장 (담배 제조자 대 담배 판매원 경기)


Yang Song-guk: I took part in the Eighth World Cup. I am number 15, Yang Song Guk. In our generation, everyone recognises my face. Younger generations recognise me by my name, Yang Song Guk... hero of the Eighth World Cup.


양성국 : 제8차 세계축구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선수 15번 양성국입니다. 고저... 선생님들도 여긴 다 압니다. 알고... 이제 지금 젊은 사람들은 이름만 들으면, “양성국 8차 선수권 대회의 영웅이다, 골 넣었다” 하면서 다 이렇게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We are proud to have Yang Song Guk here as our manager. With your help, we have won a National cup every year. We are proud of you.


북한 담배공장 공장장 : 그래서 그 양성국 있지 않습니까? 우리 때에는 축구 선수가 돼서, 축구 영웅으로 등장한 선생님이 우리 노동자 팀의 감독으로 왔으니까, 그래서부터 선생님이 그 훈련서 강한 요구성, 그걸로 인해서 매 노동자 전국 축전에서 1등 먹으니까, 진짜 선생님을 감독으로 가지고 있는 긍지를 더 가지고 있습니다.


Yang Song-guk: Thank you.


양성국 : 고맙습니다.


Yang Song Guk had been drafted into the team against Italy and provided North Korea with a cutting edge on their left side. Against Portugal he was to be even more prominent.


양성국은 이탈리아전에 투입돼 왼쪽 측면을 철통 수비했으며 포르투갈전에서 더욱 눈부신 활약을 펼친다. (대 이탈리아전에 투입된 양성국 선수는 그라운드를 누비며 상대의 혼을 빼는 현란한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그의 플레이는 포르투갈전에서도 다시 한번 빛을 발한다.)


North Korea v Portugal


북한 대 포르투갈


This was the biggest game in the history of Asian football. North Korea faced a colossal task. Portugal had won all three of their group games, scoring nine goals in the process. They had knocked the holders, Brazil, out of the tournament. And in their ranks was Eusebio, who alongside Pele was regarded as the best player in the world. The North Koreans could again rely on massive local support, including around three thousand fans who travelled the 150 miles from Middlesbrough.


아시아 축구사에 길이 남을 이 경기에서 북한은 골리앗과 맞붙었다. 포르투갈은 1차 리그에서 3승 무패 9득점을 기록했고 세계 최강 브라질을 탈락시켰으며 축구 황제 펠레에 비견되는 에우제비우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북한은 관중들의 열띤 응원을 받았다. 그중엔 미들즈브러에서 따라온 3천여 명의 팬도 있었다. (아시아 축구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가 펼쳐진다. 북한의 승리에 대한 투지는 극에 달했다. 지금까지 세 경기에서 9득점 하며 전 경기를 승리로 이끈 포르투갈. 전 대회 우승국인 브라질도 그들이 제물이었다. 포르투갈의 화려한 선수진에는 당대 최고의 플에이어라 일컬어지던 에우제비우도 있었다. 리버풀 역시 북한에게 뜨거운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250km 떨어진 미들즈브러에서 달려온 팬도 있었다.)


Denis Barry: We decided to try and get tickets and go across and see them play Portugal. We devised this banner 'Pak Do lk – Crown Prince of the Orient' and that stuck and we took that with us. We must have dressed the car up. We did have the banner, we had the scarves and it was the middle of summer. And you know being teenagers, great opportunity to go out for the day and support your local team - in this case it was North Korea as opposed to Middlesbrough.


데니스 배리 : 우린 북한을 응원하러 달려갔죠. ‘동양의 황태자, 박두익’이라 쓴 배너도 만들고 응원 문구로 차를 도배하고 그 무더운 한여름에 스카프까지 했어요. 우린 피 끓는 10대였고 ‘우리 팀’을 응원하기 위해 먼 길도 마다하지 않았죠. (우린 북한 경기를 보기로 하고 힘들게 티켓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박두익 – 동양의 왕자님’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도 하나 만들었죠. 그걸 목에 두르고 열렬히 응원했습니다. 그리고 차에도 스티커를 붙였죠. 찌는 듯한 더위에도 불구하고 박두익 선수의 이름을 적은 스카프를 목에 둘렀습니다. 당시 북한 팀은 제 홈팀과 다름없었죠.)


Carrying the nation's honour on our shoulders.

We are the glorious Chollima football team.

We can beat anyone, even the strongest team.

We can beat anyone, even the strongest team...


조국의 영예를 두 어깨에 걸머진

우리는 영광스런 천리마축구단

그 어떤 강적도 단매에 엎어

조선 사람 본때를 보여주리라!

그렇다 싸워라 싸워 이기자!

남홍색 공화국기 하늘 높이 휘날리자!


The tournament was now at the knockout stage. After this game, North Korea would either head to Wembley for the semi-finals, or be on their way home.


북한 팀의 운명이 걸린 게임이었다. 4강에 올라 웸블리로 가게 될 것인가 아니면 고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인가. (당시 경기 방식은 토너먼트였다. 이번 경기에서 이기는 팀은 무조건 4강전에 직행하는 것이고 지는 팀은 짐을 싸야 했다.)


David Lacey: I think having beaten Italy, people had to give them some sort of chance. But the way Portugal were playing after that tremendous group with Hungary and Brazil. People though well they will probably give a good account of themselves and be beaten by a couple of goals. Nobody expected the Quarter final to have ended up as it did.


데이비드 레이시 : 그들이 이탈리아를 꺾긴 했지만, 포르투갈은 브라질을 물리친 팀이잖아요. 북한이 전력을 다한다 해도 2-0 정도로 패할 것 같았죠. 경기가 그렇게 풀릴 줄 누가 알았겠어요? (이탈리아를 무찌른 북한은 컨디션이 최상이었습니다. 하지만 포르투갈 역시 헝가리와 브라질이 속한 죽음의 조에서 당당히 살아온 팀이었죠. 그리고 전문가들은 한두 골 정도 터지리라 예상했지만,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Koreans getting a lot of support from the crowd. This is Hwi... Ohhhhhh and it's a goal. Right in the first minute. Pak Sung Jin the goal scorer. And what a start to this match. Augusto. A good shot and a good save. Very good save indeed. And you can see the difficulty the goalkeeper has there. He's just a bit stretched to get up to it. He's not very tall, he's about 5ft 7'. But certainly the North Koreans may not be very tall, but they're quick, they're very, very nippy and they can jump as well. This is Jin, Ohh and the goalkeeper misjudged that completely. And it's number two. And the crowd going mad. They're shouting 'Easy, Easy!' We want three', is the cry now! Ik... Now Guk...He must score, he must score. Three Nil. Easy' yells the crowd and the Portuguese just aren't in this match.


북한 팬이 엄청나게 늘었군요. 림승휘... 세상에! 골인! 경기 시작 1분 만에 첫 골! 박승진의 득점포! 아우구스투... 잘 막았습니다! 어려운 볼을 가볍게 막아냈군요. 그는 170cm밖에 안 돼요. 북한 팀은 작지만 날렵하고 점프력이 뛰어나죠. 골키퍼의 판단 미스. 다시 골인! 관중들이 환호를 보냅니다! ‘한 골 더!’를 외치는 관중들! 두익! 성국! 골인이냐, 골인이냐! 3 대 0! 망연자실해진 포르투갈 팀! (일방적인 응원 세례를 퍼붓고 있는 리버풀 관중들. 슛! 네, 골인입니다. 경기 시작과 동시에 박승진 선수가 골을 넣었습니다. 아우구스투. 좋은 슛 막는 북한! 대단한 수비였습니다. 호수비를 보이고 있는 북한의 골키퍼. 170cm의 신장에 놀라운 점프력을 갖고 있습니다. 북한 선수 모두 단신입니다만, 매우 빠르고 민첩하며 탄력이 아주 좋습니다. 리동운 선수의 슛! 골키퍼 막지 못합니다. 경기장이 떠나갈 듯 환호를 보내는 관중들. 세 번째 골을 외치고 있습니다. 이번엔 양성국. 좋은 슈팅 기회! 골인!! 3 대 0! 북한이 강호 포르투갈을 쉽게 주무르며 3점을 득점합니다.)


Do Ik Pak: We scored one, then two, then three goals, and the crowd went mad.


박두익 : 우리가 한 골 넣고 두 골 넣고 세 골 넣고 이럴 적에 전체 그 관중들이 우리를 정말 열광적으로 이제 응원했습니다. 


Denis Barry: We were exhausted jumping up and down. As much by shock and surprise as anything else. It was just like Italy all over again, except they scored more goals. And what happened to Portugal was the same as what happened to Italy. They just seriously under estimated them.


데니스 배리 : 우린 경악과 흥분으로 펄쩍펄쩍 뛰었어요. 이탈리아전보다 더 많은 골을 넣었죠. 포르투갈도 똑같은 실수를 한 겁니다. 북한을 너무 얕봤죠. (우린 미친 듯이 소리 지르며 방방 뛰었죠. 북한의 플레이에 모두 넋이 나갔습니다. 물론 나중에 북한이 실점했지만요. 암튼 포르투갈은 북한을 과소평가했어요.)


David Lacey: I was doing the quarter final between Hungary and the Soviet Union. And we didn't have instant radio then or scores being flashed up on screens but news filtered through. Oh Korea one up, well yes, then two up, three up and you think hang on I'm at the wrong game aren't I.


데이비드 레이시 : 난 헝가리-소련전을 취재하고 있었어요. 그땐 소형 라디오도 생중계 스크린도 없었지만, 소식은 빨랐죠. 북한 한 골? 두 골? 세 골?! 아이고, 거길 보러 갈걸! (전 헝가리와 소련의 준준결승을 취재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랄 소식이 들려왔어요. 북한이 한 골 넣었다! 두 번째 골도 성공이다! 그리고 세 번째 골! 전 순간, “아니, 왜 내가 그 경기를 취재 못 한 거지?”라고 생각했죠.)


Denis Barry: You knew at the back of your mind that it wasn't going to last. So you enjoyed it while you could. You just knew, you know your footballing part of your brain took over and thought, well this can't be right. They're winning 3-0 and we only been playing 20 minutes.


데니스 배리 : 행운이 계속될 것 같진 않았지만 우린 그 순간을 최대한 즐겼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거예요. 경기 20분 만에 3 대 0이라니! (저는 너무 혼란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일단 경기를 즐겼죠. 세상에 경기 시작 20분 만에 북한이 포르투갈을 3 대 0으로 앞서가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Yang Song-guk: After I scored the third goal, it was 3-0 and we had a feeling of victory.


양성국 : 기래서 제가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세 번째 골을 넣고 우리가 3 대 0으로 이겼을 때 순간적이나마 좀 이 승리에 도취했다고 생각합니다.


Three, Nil. And that must be the most astonishing score line in the competition so far. Well there is no question about it that these boys are turning form upside down. They look more the favourites than Portugal do. The crowd now calling for four and believe me that is possible.


3 대 0!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놀라운 기록입니다! 입장이 바뀌어 버렸군요. 북한 팀이 더 스타 같아요. 넷째 골을 원하는 관중! 가능할 것 같습니다. (3 대 0! 이번 대회 최고의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전문가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어버리는 북한 선수들, 놀랍습니다! 관중들은 북한의 4번째 골을 외칩니다. 불가능한 일도 아니죠.)


Portugal's main hopes now lay at the feet of their star player, the Mozambique-born striker Eusebio.


포르투갈은 이제 모잠비크 출신 스타 스트라이커 에우제비우에게 모든 희망을 걸었다. (포르투갈 4강 진출의 마지막 희망은 모잠비크 태생의 스트라이커인 에우제비우였다.)


Eusebio going through. Eusebio. 3:1


에우제비우 돌파합니다. 에우제비우의 슛, 3 대 1! (에우제비우 골인! 3 대 1!)


Zoong-sun Lim: Eusebio took the ball from the net and running back... placed it in the centre circle. He boosted his team's morale and made them positive. It completely turned them around.


림중선 : 유세비오가 자기 눈에, 자기 눈에 세 번째 골이 난 데에는 자기가 공격순데 뒤에 들어가서 그 공을 안고 나와서 중앙선에 놓고 자기네 선수들한테 그 무엇인가 호소를 했단 말이에요. 이거는 좋은 반공격으로 넘어왔다는 거.


One wonders whether if these North Koreans were more experienced in International Competition, whether they would try and sit on this lead, but it is obviously not their style.


북한이 국제 경험이 좀 더 많았더라면 리드를 뺏기지 않는 데 주력할 텐데요. (국제 경기 경험이 부족해서일까요. 포르투갈에 득점을 허용합니다. 하지만 리드를 빼앗길 수 없는 북한!)


David Lacey: Most teams in the world if they'd been in that situation, they'd have tightened everything up, slowed everything down. Made Portugal do the work. As it was, Korea I thought lost a bit of discipline in that game. They started committing panicky fouls, didn't they. Gave away penalties. And really played into Eusebio's hands or to Eusebio's feet.


데이비드 레이시 : 경험 많은 팀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더 바짝 긴장하며 최대한 시간을 끌었을 텐데 북한은 점점 흐트러졌죠. 허둥대다 반칙을 범하고 페널티킥을 주며 에우제비우의 페이스에 말려들고 있었어요. (보통 그 정도로 선전해서 8강에 올랐으면 더욱 고삐를 죄던지, 아니면 긴장이 풀려 상대 팀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는 게 보통이죠. 당시 북한은 기강이 점점 해이해졌어요. 계속 파울을 했으며, 페널티킥을 허용했죠. 에우제비우의 손과 발에 북한이 압도당하기 시작했습니다.)


Eusebio!


에우제비우!


Zoong-sun Lim: Against the strong Portuguese attack... we lacked the strength and energy to match them. Furthermore, due to a lack of experience... we didn't know how to hold on to our lead. In other words, we didn't know how to manage the time efficiently.


림중선 : 포르투갈의 총 반공격에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육체적 준비, 말하자면, 기력이 약간 떨어지는 이런 분위기였고 그다음에 우리가 그 세 알을 먼저 넣고 그 승리를 유지하기 위한 이런 경험이 풍부하지 못했다는 거. 말하자면, 시간을 보내는 경기를 잘 할 줄 몰랐다는 거.


North Korea 3-2 Portugal

Second Half


북한 3 : 2 포르투갈

후반


There's the score then. If the North Koreans could just tighten up their defence they might well be through to the semi-finals. Its Eusebio. Well that's the man we thought could win this match for Portugal. Eusebio. Kyong going with him. So this penalty could put Portugal in the lead. Four goals to three all four to Eusebio.


북한이 수비만 강화하면 4강도 가능합니다. 에우제비우! 역시 포르투갈의 구세주 에우제비우입니다. 따라붙는 북한! 이 페널티킥이 성공하면 역전됩니다. 에우제비우 혼자 4점을 따냅니다! (또다시 실점하는 북한 대표팀. 4강 진출은 불가능한 것일까요? 에우제비우! 과연 고국에 승리를 바칠 것인가! 에우제비우! 달려갑니다.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면 포르투갈이 역전합니다. 4 대 3! 역시 에우제비우 선수입니다.)


Chan-myung Ri: Eusebio was an outstanding player... especially good at middle and long range shooting. He was strong, powerful and flexible. I wasn't a good enough goalkeeper to save his shots. I conceded five goals.


리찬명 : 그... 지금 내가 기억하고 있는 거는... 포르투갈, 그 포르투갈의 유세비오 선수가 차넣기가 좋다는 거. 중장거리 차넣기가 좋고, 아주 강하고, 위력 있습니다. 그리고 활동력이 좋고, 거기에 맞게 내 기술이 안 받침되지(뒷받침되지) 못하다니까 결과적으론 다섯 알씩이나 이 실점을 주게 됐는데, 그건... 내가 잘못해서 기랬다고 생각합니다.


Myong who has had a very good game in goal. That's one obviously for Torres. There it is.


골문을 잘 막아온 찬명! 토레스의 찬스! 골인! (리찬명 골키퍼 모습이죠. 토레스 선수의 슈팅! 역시 골인!)


Zoong-sun Lim: Leading 3-0, then defeated 5-3 it was very disappointing.


림중선 : 먼저 세 알을 넣고 다섯 알을 먹은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아쉬운 감이 없지 않고 아주 컸다는 거.


Well the crowd really saluting these Koreans who've played their hearts out. They are looking a bit dejected and disappointed but they've really done far, far better than anyone could possibly expect.


최선을 다한 북한 팀에게 뜨거운 갈채가 쏟아집니다. 무척 실망한 모습입니다만 다들 기대 이상으로 정말 잘 싸웠습니다. (최선을 다해 싸운 북한 선수에게 박수를 보내는 관중들! 아쉬움이 남습니다만, 아무도 예상치 못한 8강 신화를 엮어낸 북한 선수들!)


Zoong-sun Lim: But we were proud of ourselves for getting to the quarter-final... and we felt like winners for such a glorious victory... rather than losers, even though we lost the game.


림중선 : 그러나 준준결승까지 올라간 이 성과를 놓고 우리는 결코 패배자의 심정이 아니었다는 거. 승리자의 심정이었다는 거.


Oh my close friend, let's sing together.

Even though we were born in different places.

Even though time passed, and the landscape changed.

Our friendship will never change.


다정한 동무여 노래를 부르자

우리 서로 태어나 고향을 밟아도

세월은 흐르고 산천은 변해도

우리의 우정은 변할 수 없어라


For years, rumours circulated in South Korea that the North Korean team had been imprisoned on their return to Pyongyang. This was allegedly due to womanising and excessive drinking at a party to celebrate their victory over Italy. The North Korean players totally refute all these allegations.


대표단이 귀국하자마자 숙청당해 탄광에 끌려갔단 소문이 한동안 남한에 떠돌았다. 이탈리아전 승리에 도취돼 난잡한 파티를 벌였기 때문이라 했다. 본인들은 이런 소문을 전면 부인했다.


Chan-myung Ri: When we arrived in Pyongyang... we were welcomed home like national heroes. We said sorry to the citizens of Pyongyang. We wished we could have done a better job. These are newspapers from North Korea. Our players came back to our country with great honour for our nation... so we all welcomed them. Another headline says that Pak Sung Jin plays like magic... and the goalkeeper plays like a spiritual god.


리찬명 : 또 조국에 도착하니까, 정말 누가 조직도 안 했는데, 우리 평양 시민 전체가 또 저렇게 나서서 우리를 응원했... 환영했습니다. 그걸, 그런... 대통령급에 못지 않는 그런 열렬한 환영을 받았을 때 우리 심정은, “야, 우리가 좀 더 잘했으면 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오히려 이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때 우리나라의 신문에 소개된 자료들입니다. [천리마 조선의 체육인답게 훌륭히 싸워 이겼다 - 우리나라 축구팀 제8차 세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세계적 강자 이탈리아 팀을 타승 / 조선팀은 세계축구선수권대회의 력사에 전설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 - 각국 사회계 우리나라 축구 선수들의 승리를 찬양 / 우리나라 선수들은 이렇게 싸워 이겼다 - 현지에서 보내온 이탈리아, 칠레팀들과의 경기에 대한 상보 (영국 관중들, 공화국기발을 만들어가지고 응원, 우리 선수들이 부르는 <김일성 장군의 노래>에 회창, 우리 선수가 골을 넣자 남조선 관람객들도 춤판을 벌렸다.) / 조국의 영예를 떨치고 돌아온 우리 선수들을 축하한다 - 제8차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하였던 우리나라 축구선수단이 조국에 돌아왔다] 이 선수들 소개하는 자료입니다. 이 박승진 동무, 요술사처럼 재주를 부리는 선수... 이런 제목으로... 영웅적인 문지기... 세계선수권.


Do Ik Pak: If I have a traffic offence... and the traffic warden sees Pak Do lk on my lD, they let me go straight away. We achieved what we did due to the support of our people. So far, I haven't done that much for my country.


박두익 : 이제 저... (교통 위반 딱지를) 띠어봤는데 저... 차 이제 단속을 대도 증명서 보고 박두익이, 증명서 보면 그냥 통과시키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 예, 아마 우리 인민들이 적극적인 그런 지원, 이걸로 해서 성과를 거뒀지만, 아직 뭐... 나라에 크게 도움 준 건 없습니다.


Seung-hwi Im: When I visit a football stadium it reminds me... of the victorious moment of the Eighth World Cup in England. I see a ball, and my leg wants to kick it in a reflex action. I'm physically old, but my mind is lively. I still feel like playing. I wish I could play now as I did back then.


림승휘 : 운동장에 나올 때마다 고저 옛날이 새로워지고, 이 자도 얘기했지마는 운동장에 나와서 남 볼 차는 것 보고 좋아 발이 이렇게 자꾸 놀려대야 되고 마음은 살아서 육체는 좀 노쇠했지마는, 마음은 살아서 자꾸 볼 차고픈 생각이 나고 그때처럼 내... 우리가 못한가 하는 것도 좀 느끼게 됩니다.


Bong-zin Han: Of course I can do it, I'm very good – like this.


한봉진 : 그럼 할 수 있지, 난 잘 하니까. 이렇게.


Chan-myung Ri: Trying to look young. He's the fittest for his age. I don't think I'll make it to 65.


리찬명 : 젖 먹을 나이지 뭐, 젖 먹을 나이. 기래도 제일 정정하지 뭐, 나이에 비해서야 뭐... 우린 예순다섯 살까지 살지도 못하겄다...


Do Ik Pak: We see each other quite often, at birthday parties. We relive our memories. At our birthday parties, we invite friends and family... but especially other members of the “London Club”. The English people took us to their hearts and vice versa. I learned that football is not only about the winning. Wherever we go... playing football can improve diplomatic relations and promote peace.


박두익 : 그 생일 때도 기래 무슨 서로 찾아댕기면서 우리 같은 선수들끼리 무슨 또 따로 모이기도 하고... 그때 일을 추억하는 일도 있고... 또 서로 생일이 되면 다른 사람들도 다 초청하지마는, 또 우리 그때 같은 런던패라고 해 가지고 같이 모여서 이제 그... 그 영국 인민들이 우리에 대한, 우리 선수들에 대한 감정이 아주 좋았다는 거, 우리 역시 인민들에 대한 감정이 아주 좋았다. 그다음에 이 축구가 단지 실무적인 그저 경기 승패나 가르는 경기가 아니라는 거. 우리가 어디 가서 경기해도 다 거 정말 친선을 도모하고 이런 데 근본 거 있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다큐멘터리 제목은 <운명의 게임>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영어 자막을 구하기 위해 러시아 사이트도 뒤져봤더니 나왔다. 북한말을 받아쓰기하는 게 쉽진 않았다. 말을 못 알아듣는 건 아닌데 발음이 불분명한 게 꽤 되니까. 자막은 KBS 일요스페셜에서 방영되었던 것도 괄호로 넣었다. 잘 들리지 않는 부분은 영어 자막을 보고 이런 거구나 보완해나갔다. 영상에서 자꾸 이을용과 닮은 선수가 보이는데 북한 대표팀 주장이었던 신영규 선수로, 경기 시작 전에 이탈리아 주장 자코모 불가렐리와 악수했다. 현 세리에 최우수 미드필더상의 이름은 불가렐리상(Premio Bulgarelli Number 8)으로 2011~2012 시즌부터 생겼다. 이탈리아 선수단이 버스 타고 가는 장면에서는 비에리랑 닮은 얼굴도 보이는데 혹시 파케티? 동영상을 너덧 개 받아서 본 다음 검토하면서 다듬었다. 박두익은 70년대에 북한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는 정보만 나오지 한글로는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 북한 대표팀 감독으로 나왔다는 언급이 없다. 우연히 영어로 검색하다가 알게 되었는데 이때도 아프리카가 단체로 기권했다. 북한은 조별리그에서 한 경기를 덜 치르게 되었는데 잠비아(기권), 캐나다, 소련과 D조에 편성되었고 개최국 캐나다를 3-1로 꺾었으며 소련에는 3-0으로 패했다. 이후 8강에 진출하여 폴란드에 5-0으로 패하면서 올림픽도 8위로 마무리했다. 이때 금메달은 동독, 은메달은 폴란드, 동메달은 소련이었다. 박두익을 포함한 북한의 축구 영웅들은 2002년 10월 26일 미들즈브러에 초대되었다. 박두익은 2002년 남한의 4강 신화 이후 이렇게 말했다. “(월드컵 4강 진출은) 민족의 자랑이지요. 남북이 합쳐 나서면 더 좋은 성적을 거둘 텐데...” 한편 인터뷰에서 많이 등장하고 말도 잘하는 림중선은 인상이 참 좋고 동네 할아버지처럼 친근하게 생겼는데 눈물 흘리면서 수령님을 부르는 대목에서 깼다. 얼마나 사상에 대한 세뇌 교육을 받았으면... 하는 안타까움도 생긴다. (그래서 이 부분은 방송국에서 편집한 듯.) 천리마축구단을 보면서 느낀 건, 월드컵 이후 금의환향하여 20년 넘게 영웅 대접받는 건 남한이나 북한이나 똑같구나 하는 생각... 자꾸 살짝 송대관 같은 미소가 보이는 선수는 누군가 해서 다시 확인해보니 박두익이었다.

댓글 1개:

  1. https://redkorea.wordpress.com/2010/09/09/the-game-of-their-lives-%EC%B2%9C%EB%A6%AC%EB%A7%88-%EC%B6%95%EA%B5%AC%EB%8B%A8-chollima-chookgudan-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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