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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piano bachelor, piano music lover, CD collector and classical music information's translator. Also KakaoTalk character Tube mania! Naver Blog: http://blog.naver.com/snowseol Youtube Channel: https://www.youtube.com/channel/UCDPYLTc4mK7dOXYTQEOiPew?view_as=subscriber

2018년 4월 25일 수요일

Melodiya / Eliso Virsaladze - Russian Piano School, Vol. 18



제 아무리 훌륭한 음악가라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란 힘든 일이다. 피아니스트들의 경우, 솔로 연주에 치중하여 실내악 등 앙상블 연주에 소홀하게 되기도 하고 또 학교에서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이 되었을 때 연주와 티칭을 적절하게 병행하여 두 가지 모두 좋은 결과를 얻었던 사람은 드물다.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나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니키타 마갈로프 등의 이름이 떠오르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교육자라기보다 명연주자로서의 이미지로 남아있는 게 사실이다. 현재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이자 피아니스트인 엘리소 비르살라제는 이런 “이중생활”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음악가 중 한 명이다. 20대 초반부터 명연주가로 이름을 떨쳤고 선생님으로서 1990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자였던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등을 길러냈다. 또 실내악 연주자로 첼리스트 나탈리아 구트만 등과 팀을 이루어 해외 연주 등에도 힘을 쏟는 등 비르살라제는 지금 모스크바에서 가장 바쁜 음악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중의 호응도도 무척 높아서 “엘리소 비르살라제 콘서트 시리즈”의 티켓은 항상 매진 사태를 빚는다.

엘리소 콘스탄티노프나 비르살라제는 1942년 그루지야(현재 조지아) 공화국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태어났다. 그루지야는 예로부터 음악인들이 많이 배출된 곳으로 유명한데 그녀의 첫 선생이자 친할머니가 되는 아나스타샤 비르살라제는 명교수 에시포바를 사사했으며 제자로 드미트리 바쉬키로프, 레프 블라센코 등을 길러내기도 한 교수였다. 비르살라제는 트빌리시 음악원을 졸업한 후 모스크바 음악원 아스피란트(박사) 과정을 야코프 자크 교수의 밑에서 끝마쳤고 이미 트빌리시 음악원 재학 시절에 전 소비에트 연방 콩쿠르,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또한 그녀의 위상을 밖으로 알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66년 츠비카우에서 열린 슈만 콩쿠르에서의 우승이었다.

비르살라제의 예술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템페라멘트”(인간의 선천적인 기질 혹은 체질이란 뜻으로 여기서는 타고난 음악적 소양, 즉 “끼”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라는 말이다. 그녀의 연주를 듣고 있자면, 날카로우면서도 무서운 집중도를 가진 자신만의 음악적 템페라멘트와 스승인 야코프 자크(제2회 바르샤바 쇼팽 콩쿠르 우승자)에게서 이어받은 냉철하고 분석적인 요소가 너무도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그 템페라멘트 안에는 그루지야 인으로서의 낙천적, 즉흥적 기질이 다분히 스며들어 있는데 그녀가 슈만 연주에 탁월한 기량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가 아닐까 한다. 실제로 무대에서 들은 비르살라제의 슈만은 뛰어난 통찰력을 가진 작품 분석과 동시에 예상할 수 없는 즉흥적인 프레이즈와 인토네이션에 의해 깊이 기억되는 연주였다.

또한 비르살라제는 항상 자기 절제와 훈련에 여념 없는 성실한 음악인이다. 그녀의 또 다른 주요 레퍼토리는 모차르트가 있는데 이런 모차르트 연주는 피아니스트 자신의 인성과 기질을 음악적 성향에 완벽히 조화시키지 않으면 불가능할 정도로 자연스럽고 유창한, 한 마디로 속이 깊은 것이었다. 학교(모스크바 음악원) 내에서 마주쳤을 때의 비르살라제는 매우 겸손하고 상냥한 인상으로, 연주 시 무대에서 보이는 엄숙하고 위엄 있는 매너와는 달라 뜻밖이었는데 그 내면에는 외유내강의 치열한 음악적 삶이 숨어있었음을 후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쇼팽의 작품들 역시 비르살라제의 프로그램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들이다. 야코프 자크에게서 영향 받은 그녀의 쇼팽은 한 마디로 “하드보일드 적”이라고 하겠다. 유약하고 장식이 많이 가미된 해석과는 거리가 먼 냉철함과 무서움마저 감도는 그런 연주이다.

그렇다고 시적인 쇼팽 특유의 정감이나 뉘앙스가 부족하다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어떤 쇼팽 전문가에게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작곡가 특유의 들뜸과 흥분 등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소나타 제3번은 비르살라제가 가장 즐겨 연주하는 레퍼토리 중 하나로, 방대하고 통일시키기 어려운 네 개의 악장을 한데 묶어버리는 훌륭한 솜씨를 보여준다. 1악장의 제2주제나 스케르초의 트리오 부분 등 자칫 잘못하면 딱딱해지고 인공적이 되기 쉬운 곳들을 뛰어난 균형 감각을 갖고 요리하며, 과도해질 수 있는 쇼팽의 감상성을 적절히 조절하는 모습 역시 멋지다. 또한 발라드 제3번이나 “영웅” 폴로네즈에서 들을 수 있는 남성적인 표현, 녹턴 내림 라장조, “이별”의 왈츠의 밝고 따뜻하면서도 동시에 싱싱함은 한 연주자에게서 나온 해석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의 폭넓은 표정이 아닐 수 없다. 그 밖에 마주르카, 왈츠 등에서는 호로비츠 등의 신경질적이고 병약한 쇼팽이 아닌 건강하고 맑은 음색과 표정이 또 다른 신선한 감각을 주기도 한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이 음반에서는 많이 실리지 않았으나 비르살라제는 특히 쇼팽의 마주르카(특히 후기 작품)의 해석이 필자에게 인상적이었는데, 앞으로 그녀의 슈만 연주 등 더 많은 레코딩들이 소개되기를 기다려본다.

★ 필자 : 김주영 (피아니스트)
서울 출생. 서울 음대 기악과 졸업. 러시아 모스크바 음악원 아스피란트(박사) 과정 졸업.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사무엘 파인베르크의 제자인 지나이다 이그나체바 교수를 사사. 유학 중 모스크바 프로코피에프 콩쿠르, 파리 인터내셔널 그랜드 콩쿠르 등에서 입상.

Track
01 Chopin Sonata No. 3 in b, Op. 58: 1. Allegro maestoso / 쇼팽 소나타 3번
02 Chopin Sonata No. 3 in b, Op. 58: 2. Scherzo. Molto vivace
03 Chopin Sonata No. 3 in b, Op. 58: 3. Largo
04 Chopin Sonata No. 3 in b, Op. 58: 4. Finale. Presto, non tanto
05 Chopin Ballade No. 3 in Ab, Op. 47
06 Chopin Mazurka No. 21 in c#, Op. 30 No. 4 / 쇼팽 마주르카 21번
07 Chopin Mazurka No. 23 in D, Op. 33 No. 2 / 쇼팽 마주르카 23번
08 Chopin Waltz No. 2 in Ab, Op. 34 No. 1 / 쇼팽 왈츠 2번
09 Chopin Waltz No. 9 in Ab, Op. 69 No. 1 / 쇼팽 왈츠 9번
10 Chopin Polonaise-Fantaisie No. 7 in Ab, Op. 61 / 쇼팽 폴로네즈 7번 <환상 폴로네즈>
11 Chopin Nocturne No. 8 in Db, Op. 27 No. 2 / 쇼팽 녹턴 8번
12 Chopin Polonaise No. 6 in Ab, Op. 53 'Heroic' / 쇼팽 폴로네즈 6번 <영웅>

The Romanticism of Eliso Konstantinovna Virsaladze (born 1942) / 엘리소 콘스탄티노프나 비르살라제의 낭만주의
Eliso Virsaladze was born in Tbilisi on 14 September 1942 - her fellow Georgian, Aram Khachaturian, had been born in the same city thirty-nine years earlier - and is fully aware of the inestimable advantages of having a musical family.

엘리소 비르살라제는 1942년 9월 1일 트빌리시에서 태어났는데 - 같은 그루지야 출신인 아람 하차투리안은 39년 일찍 같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 음악적인 집안에서 태어나는 것의 헤아릴 수 없는 장점을 충분히 알고 있다.

Lessons with Babushka from Tbilisi to Moscow / 트빌리시부터 모스크바까지 할머니에게서 배우다
A key role in Eliso Virsaladze's upbringing was played by her grandmother, Anastasia Virsaladze, who taught at the Tbilisi Conservatory and who, in turn, had been numbered among the finest pupils of the great St Petersburg teacher, Anna Nikolayevna Yesipova. (Yesipova's own pupils included Sergei Prokofiev.) Her career was allowed to unfold at its own natural pace, without undue pressure or haste. "I never thought I'd become a pianist. I simply played because I love music."

엘리소 비르살라제의 교육에서 중요한 역할은 친할머니 아나스타샤 비르살라제였는데, 트빌리시 음악원 교수였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훌륭한 교육자 안나 니콜라예프나 예시포바의 가장 훌륭한 학생들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예시포바의 제자들 중에는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가 포함되었다.) 그녀의 경력은 과도한 압력이나 서두름 없이 자연스러운 속도로 펼쳐질 수 있었다. “나는 피아니스트가 될 줄은 몰랐다.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단지 연주했을 뿐이었다.”

She entered her grandmother's class at the Tbilisi Conservatory and graduated in 1955, before beginning a research assistantship under Yakov Zak at the Moscow Conservatory the following year. Even while still a student, she had already begun to take part in international competitions and won three prizes - a silver medal in Vienna in 1959, a third prize in the Second Tchaikovsky Competition in 1962 and the first prize in the 1966 Schumann Competition in the composer's home town of Zwickau.

그녀는 트빌리시 음악원에서 할머니를 사사하고 1955년 졸업했으며, 이듬해에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야코프 자크 밑에서 연구 조교를 시작했다. 그녀는 학생일 적에 이미 국제 콩쿠르에 참가하기 시작했고 3개 대회에서 입상했다. - 1959년 비엔나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페스티벌 은메달, 1962년 제2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3위, 1966년 츠비카우에서 열린 제4회 슈만 콩쿠르 1위.

Sensitivity and Empathy / 감수성과 이해심
Eliso Virsaladze was still only twenty when Yakov Flier, one of Moscow's leading authorities, described her, both flatteringly and accurately, as a pianist who "has a perfect understanding of the style of the works that she is performing and who is able to recreate their musical content with unusual authority, conviction, naturalness and genuine artistic taste. Her playing is astonishingly harmonious, one senses genuine poetry." She was, in short, a romantic at heart, recalling Horowitz's famous remark that "all music is basically romantic!" In an age of high technology, it is reassuring to find musicians expressing themselves in this way both through their music and in conversation. And it is all the more comforting to find that, in Virsaladze's case, training and public performances have done nothing to impair this ideal, that no sacrifices have been made on the altar of routine, and that not only does she pursue that ideal with undiminished commitment but that she has since acquired an additional and ultimate mastery.

모스크바의 주요한 권위자들 중의 한 명인 야코프 플리에르가 그녀를 돋보이게 하면서 정확하게 “그녀는 연주하는 작품들의 스타일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으며 특별한 권위, 신념, 자연스러움, 진정한 예술적인 취향으로 작품들의 음악적인 콘텐츠(내용)를 재창조할 수 있다. 그녀의 연주는 놀랍도록 조화로우며 진정한 시를 느끼는” 피아니스트로 표현했을 때 엘리소 비르살라제는 불과 20세였다. 요컨대 그녀는 마음속으로는 로맨틱한데, “모든 음악은 기본적으로 로맨틱하다!”는 호로비츠의 유명한 발언을 상기시킨다. 첨단기술 시대에, 음악과 대화를 통해 이런 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음악가를 찾는 것이 든든하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훨씬 더 위안인데, 비르살라제의 경우 훈련과 공개 연주는 이런 이상을 손상시키는 일을 전혀 하지 않았고, 일상의 제단에는 희생이 없었으며, 그녀는 전과 다름없는 전념으로 그런 이상을 추구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로 추가로 궁극적인 지배도 습득해왔다.

Three Romantics / 낭만파 작곡가 3인방
Eilso Virsaladze's first great love was Mozart, followed by Schumann, a passion that was inspired by her experiences in Zwickau. She had now found her true metier. The Romantic piano's three greatest exponents, Schumann, Chopin and Liszt, were together responsible for a creative, ecstatic and wistful sense of division within the artist's soul, producing a kind of necessary schizophrenia in the name of music. Schumann drew a distinction within his own breast between the gentle, dreamy Eusebius and the impetuous Florestan, and it is clear from her playing that the Georgian pianist shares these same two attributes. Behind it all is a markedly independent, idiosyncratic personality. She admits that even as a child she always wanted to do everything her own way: "It didn't matter whether it was right of wrong - but it had to be me. I expect it's part of my character." This independence also meant a certain isolation, since artists of her calibre are unsuited to the brouhaha of aggressive publicity campaigns, with the result that they are rarely pursued by the media. But listeners who value individuality more than glamour will certainly get their money's worth with Eliso Virsaladze.

엘리소 비르살라제의 첫 번째 위대한 사랑은 모차르트였고, 츠비카우에서의 콩쿠르 참가 경험으로 영감 받은 열정인 슈만으로 이어졌다. 그녀는 이제 그녀의 진정한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면서 하는) 일을 찾았다. 낭만파 피아노의 가장 뛰어난 세 명의 주자인 슈만, 쇼팽, 리스트는 음악의 이름에 있어서 필요한 정신분열의 일종을 만들면서 예술가의 영혼 내에서 창의적이고 황홀하며 아쉬워하는 분할의 감각에 공동 책임이 있었다. 슈만은 부드럽고 몽환적인 에우제비우스와 충동적인 플로레스탄 사이에서 자신의 가슴을 구별했으며, 조지아 피아니스트가 이 같은 두 가지 속성을 공유한다는 것은 그녀의 연주에서 분명하다. 그것의 뒤에 있는 모든 것은 현저하게 독립적인, 색다른 성격이다. 그녀는 심지어 어린 시절에도 항상 모든 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하고 싶어 했다고 고백한다. - “그것이 옳은지 틀린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 하지만 그게 나야. 그것이 내 성격의 일부라고 기대한다.” 이 독립성은 확실한 고립을 의미하기도 했는데, 그녀 같은 자질을 가진 예술가들이 공격적인 광고 캠페인의 난리법석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인데, 그 결과 그들은 언론에 의해 거의 조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화려함보다 개성을 소중히 여기는 청취자들은 확실히 엘리소 비르살라제의 연주회에 돈 들여서 볼 가치를 느끼게 될 것이다.

Classical Form / 고전적인 형식
Chopin's dramatic range, from virile pride to tenderness and "morbidezza", was bound to exert a magnetic attraction on a pianist like Virsaladze. Among the Polish composer's three sonatas, it is the third - written in 1844, five years before his death - that is his final, mature word on the subject. Completed in 1839, his Second Sonata in B flat minor, with its famous Funeral March, had found him adopting an astonishingly free approach to a form that Beethoven had invested with canonical status. By 1844 he seems more restrained, a restraint which, in the context of what we know of his life at this time, might almost be that of a broken man. He literally clings to an existing formal structure, obeying its dictates even more than Beethoven. But form as a straitjacket is one thing, musical drive and melodic invention are quite another.

남성적인 자랑스러움부터 부드러움과 섬세함까지 쇼팽의 극적인 범위는 비르살라제 같은 피아니스트에게 마음을 끄는 매력을 발휘하게 만들었다. 폴란드 작곡가의 3개의 소나타 중에서 죽기 5년 전인 1844년에 쓴 것은 제3번이다. - 그것은 주제에 대한 그의 마지막 성숙한 말이다. 1839년에 완성된 유명한 3악장 장송곡이 있는 그의 소나타 제2번은 그가 베토벤이 캐논의 상태를 띠게 했던 형식에 대한 놀랄 만큼 자유로운 접근을 채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1844년에 그는 더 차분해졌는데,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당시 그의 인생에 대해서 아는 구속 상태는 그가 거의 실의에 빠진 사람이라는 것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는 문자 그대로 베토벤보다 더 많은 것을 지시하면서 기존 형식 체계에 집착하고 있다. 그러나 구속이 되는 것으로서의 형식은 한 가지로, 음악적인 주도와 멜로디 창조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The first subject of the opening Allegro maestoso is stylistically reminiscent of the composer's two concertos, while the second subject breathes the "dolcezza" of Italian arias. The development section, too, is predominantly lyrical in tone, with the cantabile second subject audibly privileged in the recapitulation. The Trio of the scurrying Scherzo recalls the world of Robert Schumann. With its sombre introduction, the Largo inhabits a twilight realm between funeral march and nocturne, and stands in impressive contrast to the radiant luminosity of the brilliant Rondo-Finale, with its magnificently extended coda.

1악장 알레그로 마에스토소(빠르고 장엄하게) 제시부의 제1주제는 작곡가의 2개의 협주곡의 스타일을 연상케 하는 반면, 제2주제는 이탈리아 아리아의 “돌체차”(소리의 아름다움)를 호흡한다. 재현부에서 특별하게 들리도록 하는 칸타빌레(노래하듯이) 제2주제와 함께, 발전부도 대부분 서정적인 음색이다. 급히 달리는 2악장 스케르초 중간에 나오는 트리오는 로베르트 슈만의 세계를 연상케 한다. 침울한 도입부를 가진 3악장 라르고(느리게)는 장송 행진곡과 녹턴 사이의 황혼 영역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확장된 코다와 함께 빛나는 4악장 론도-피날레의 환한 빛과의 인상적인 대조를 이룬다.

Chopin Sonata No. 3 in b, Op. 58: I. Allegro maestoso (first theme) / 쇼팽 소나타 3번 1악장 제1주제

Chopin Sonata No. 3 in b, Op. 58: I. Allegro maestoso (second theme) / 쇼팽 소나타 3번 1악장 제2주제

Chopin Sonata No. 3 in b, Op. 58: I. Allegro maestoso (the development) / 쇼팽 소나타 3번 1악장 발전부

Chopin Sonata No. 3 in b, Op. 58: II. Scherzo. Molto vivace (Opening) / 쇼팽 소나타 3번 2악장 오프닝

Chopin Sonata No. 3 in b, Op. 58: II. Scherzo. Molto vivace (Trio) / 쇼팽 소나타 3번 2악장 트리오

Chopin Sonata No. 3 in b, Op. 58: III. Largo / 쇼팽 소나타 3번 3악장 (빨간 네모는 장송 행진곡 같은 부분)

Patriotic Forms / 민족주의 형식
Chopin's four ballades represent something of an exception within his overall oeuvre. All were inspired by literary sources in the form of Lithuanian ballades by the leading Polish poet Adam Mickiewicz, with whom the composer was on friendly terms in Paris. There is no mistaking their patriotic tone and in places a certain wistful nostalgia for a bygone world (or, more specifically, for the composer's Polish homeland, now groaning under a tsarist yoke). The Third Ballade is comparatively lyrical in character, with its 6/8 metre treated in three different ways - first with a regular pulse, then as a gently rocking rhythm and finally with a momentum reminiscent of a horse's cantering gait. It was inspired by the poem "Undine" about a legendary water-sprite, an inspiration that may also help to explain the rippling semiquaver figures.

쇼팽의 4개의 발라드는 그의 전체적인 작품 전반에서 예외적인 것을 나타낸다. 이 모든 것은 작곡가가 파리에서 가깝게 지냈던 유명한 폴란드 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치의 리투아니아 발라드 형식으로 된 문학 작품들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그들의 민족주의적인 음색과 곳곳에서 지나간 세계(또는, 더 특별히, 작곡가의 폴란드의 고향, 현재 제정 러시아의 멍에에 신음하는)에 대한 확실히 아쉬워하는 향수임에 틀림없다. 발라드 3번은 비교적 서정적인 성격인데, 6/8박자가 세 가지 다른 방식으로 처리된다. - 첫 번째는 규칙적인 맥박으로, 그러고 나서 부드럽게 흔들리는 리듬, 마지막으로 말의 걸음걸이를 연상시키는 추진력으로. 이 곡은 전설적인 물의 요정에 대한 시 <물의 요정>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이 영감은 잔물결을 일으키는 16분음표 음형을 설명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Chopin Ballade No. 3 - a regular pulse / 쇼팽 발라드 3번에서 규칙적인 맥박

Chopin Ballade No. 3 - a gently rocking rhythm / 쇼팽 발라드 3번에서 부드럽게 흔들리는 리듬 (빨간 네모부터)

Chopin Ballade No. 3 - a momentum reminiscent of a horse's cantering gait / 쇼팽 발라드 3번에서 말의 걸음걸이를 연상시키는 추진력

It was against this selfsame background, albeit with no sense of retrogressive nostalgia, that Chopin wrote his sixteen polonaises, all of them tributes to national pride. Among them, the Op. 61 Polonaise-Fantasie of 1846 is doubly exceptional: not only does it find Chopin combining two structural principles in the guise of sonata form and the rhapsodically free fantasia, it was also his last great work for the concert piano. Here, too, the pain of his final years is never far from the surface. The Polonaise in A flat major, Op. 53 of 1842 is far more martial in tone, hence its German sobriquet, "Ritterpolonaise". According to George Sand, the consumptive composer would lie awake at their country retreat at Nohant and be visited by feverish visions of Polish horseman, to which he would then give musical expression the following day.

쇼팽이 모두 국가의 자부심을 입증하는 16개의 폴로네즈를 썼다는 것은 비록 역행적인 향수에 대한 감각이 없었다고 해도 이런 유사한 배경에 대항하는 것이었다. 폴로네즈 전곡 중에서 1846년에 작곡된 <환상 폴로네즈>는 갑절로 뛰어나다. - 쇼팽이 소나타 형식과 서사시처럼 자유로운 환상곡을 가장하여 두 개의 구조적인 원리를 결합하는 것이 발견될 뿐만 아니라 콘서트 피아노를 위한 그의 최후의 뛰어난 작품이기도 했다. 여기에서도 그의 만년의 고통은 결코 표면에서 멀지 않다. 1842년의 <영웅 폴로네즈>는 음색이 훨씬 더 호전적인데, 이런 이유로 독일식 별명이 “기사 폴로네즈”이다. 조르쥬 상에 의하면, 폐결핵 환자인 작곡가는 노앙에서 눈을 뜨고 누워있었을 것이고 다음날 그가 바로 음악적인 표현을 할 수 있는 폴란드 마부의 열정적인 환상에 의해 방문되었을 것이다.

With their even more powerful reminiscences of Polish folk music, Chopin's sixty or so mazurkas are, as it were, miniature versions of these nationally coloured large-scale forms. Chopin was still only ten when he wrote the first of them, while the last of them - his Op. 68 No. 4 - is the final word of a composer already marked by the hand of death. Four mazurkas make up the Op. 30 set, which dates from 1836/37 and which was dedicated to one of Chopin's pupils, the Polish princess, Marcelina Czartoryska, who, like her teacher, had emigrated to Paris. In No. 4 in C sharp minor, the parallel thirds evoke a mood of sweetness and nostalgia typical of Slav melancholia. The four Op. 33 Mazurkas date from 1837/38.

폴란드 민속음악의 더 강력한 추억과 함께, 쇼팽의 60개가 되지 않는 마주르카는 이를테면 이 국가적으로 채색된 대규모 형식의 미니어처 버전이다. 쇼팽이 마주르카 첫 곡을 쓸 때에는 불과 10세였고, 마지막 곡을 쓰는 동안 - 그의 마주르카 Op. 68 No. 4는 - 작곡가가 죽어가는 손으로 이미 표시했던 마지막 말이다. 4개의 마주르카 Op. 30 세트는 1836~37년에 쓰인 것으로, 쇼팽의 제자들 중의 한 명인 폴란드 공주 마르첼리나 차르토리스카로, 그녀의 스승(쇼팽)처럼 파리로 이주했다. 마주르카 Op. 30 No. 4에서 병행 3도는 전형적인 슬라브적인 우울함의 달콤함과 향수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4개의 마주르카 Op. 33 세트는 1837~38년에 쓰였다.

Chopin Mazurka in c#, Op. 30 No. 4 / 쇼팽 마주르카 21번에서 슬라브적인 우수를 자아내는 오른손의 3도 음정 병행

Salon Forms / 살롱 형식
Chopin's father was of pure French stock, so that the composer's move to Paris in 1831 may be thought of as merely confirming his existing Francophilia. Although it was largely the Polish cast of his compositions, with their exotically coloured and politically highly charged strains, that ensured his entree into the salons of a city generally regarded as the capital of the 19th century, there was already a kind of homogenised European sound at this time, a sound embodied, not least, by the waltz, which set the whole of Europe dancing and swirling to its triple-time rhythms, flourishing not only on the banks of the Danube but also on those of the Seine. Among the composer's twenty waltzes (including those not published until after his death), the first of the three "Valses brilliantes", Op. 34 still pays lip-service to the current practice of the society dance with its opening fanfares followed by a series of separate episodes. The most important of Chopin's waltzes to be published after his death is also in A flat major. In spite of its high opus number - Op. 69 No. 1 - it dates back to 1835, when the composer had renewed his acquaintance with Maria Wodzinska, the sister of some of his boyhood friends, and had fallen in love with her. Wodzinska entitled her copy "L'adieu".

쇼팽의 아버지는 순수한 프랑스 혈통이었기 때문에 1831년 파리로 이주한 작곡가가 자신의 친 프랑스적 태도를 확인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19세기의 수도로 여겨졌던 도시의 살롱 진출을 보장했던 이국적인 색깔과 정치적으로 매우 높은 금전적인 부담감과 함께 그의 작품들에는 크게 폴란드적인 양식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이미 통일된 유럽 사운드의 일종이 있었으며, 유럽 전체가 춤을 추면서 3박자 리듬으로 소용돌이치는 왈츠에 의해 특히 구현된 사운드는 다뉴브 강 유역뿐만 아니라 세느 강 유역에서도 번성한다. 작곡가의 20개가 되지 않는 왈츠들(사후까지 출판되지 않았던 것들을 포함) 중에서 3개의 <화려한 왈츠> Op. 34 중 1번은 여전히 분리된 일련의 에피소드로 이어지는 오프닝 팡파르를 가진 사교댄스의 현재 관행에 립 서비스(입에 발린 말)를 한다. 사후에 출판되는 쇼팽의 왈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유작인 내림A장조인 왈츠도 있다. 오푸스 넘버가 높은 것임에도 - 왈츠 Op. 69 No. 1은 - 작곡가가 그의 소년 시절 친구들 중 한 명의 여동생인 마리아 보진스카와의 친분을 다시 확인하고 그녀와 사랑에 빠졌던 183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진스카는 그녀에게 헌정된 악보에 “이별”의 왈츠라고 제목 붙였다.

Although Chopin did not invent the nocturne as a genre (that honour falls to the Irish composer, John Field, who also taught Balakirev's teacher, Alexander Dubuque), it was he who brought it to a new pitch of perfection, creating a uniquely heady mixture of candlelight, perfume and wistful nostalgia. It is hardly surprising that the latent eroticism and emotional thrill of these wonderful pieces, coupled with the nocturnal atmosphere that they evoke, have made a number of them best-sellers among light classics in the German-speaking world. Yet the outbursts of passion that they also contain - generally in their middle section - attest to the intensity of the musical emotions expressed. That there is also a sense of tragedy and despair adds an essential spice to these pieces, recalling the spirit of Wagner's "Tristan", with its close interweaving of love and death. Of Chopin's twenty contributions to the genre, the two Op. 27 Nocturnes - both dedicated to the wife of the Austrian ambassador in Paris, Count Apponyi - are undoubtedly his finest. No. 2 in D flat major is a profoundly bewitching love song and, hardly surprisingly, one of Chopin's most universally popular pieces.

쇼팽은 장르로 야상곡을 만들지 않았지만(그 명예는 발라키레프의 스승인 알렉산더 뒤비크를 가르치기도 했던 아일랜드 작곡가 존 필드의 몫이 된다.), 독특하게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촛불, 향수, 아쉬워하는 향수의 조합을 창조하면서 완벽하게 새로운 정점으로 가져왔던 사람은 그였다. 이 훌륭한 곡들의 잠재적인 에로티시즘과 감정적인 황홀감이 녹턴이 자아내는 야간의 분위기와 결합되어 독일어권에 있는 가벼운 고전음악 사이에서 많은 베스트셀러를 만들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녹턴도 포함하고 있는 열정의 폭발은 - 일반적으로 중간부에서 - 표현된 음악적인 감정의 강도를 입증한다. 비극과 절망감이 있다는 느낌도 사랑과 죽음을 밀접하게 엮어내는 것과 함께 바그너의 “트리스탄”의 정신을 상기시키면서 이 곡들에 필수적인 향신료를 더하는 것이다. 쇼팽의 장르에 대한 20가지 기여 중에서, 2개의 녹턴 Op. 27은 - 모두 파리에 있는 오스트리아 대사 아포니 백작부인에게 헌정되었다. - 의심의 여지없이 그의 최고 작품들이다. 2번은 완전히 황홀한 사랑 노래이며, 쇼팽의 가장 보편적으로 인기 있는 곡들 중 하나라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내가 여기에서 비르살라제가 성격 탓에 소규모 홀에서 주로 연주한다고 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알고 보니 러시아 피아노 스쿨의 마지막 연주자에 대한 정보였다. 큰 무대에서도 활발하게 연주하시는 분을 오해하고 있었네... 조지아 연주자들의 출생지를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는데 트빌리시만 나온다. 조지아 연주자들 중에서 다른 동네 출신은 거의 없나보다. 비르살라제는 클래식 동호회에서 인기가 많았는데 그 이유는 화끈해서라고! 영어 정보에 또 잘못된 내용이 있어서 그 부분은 뺐다. 쇼팽 소나타 악보는 전에 발췌해둔 것이 있어서 대부분 그대로 가져왔다. 쇼팽 발라드 3번은 글에서 말하는 세 가지 특징을 내 느낌으로다가 발췌한 것이다. 쇼팽의 첫사랑 보진스카 얘기가 나와서 위키페디아에서 사진을 더 가져왔는데, 보진스카가 그린 쇼팽의 초상화가 딱 떠올랐기 때문이다.

Maria Wodzińska's 1830s self-portrait / 마리아 보진스카가 1830년에 그린 자화상

Maria Wodzińska's watercolor of Chopin, 1835 / 마리아 보진스카는 그림 실력이 뛰어났는데, 1835년에 쇼팽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Maria Wodzińska, by Stanisław Marszałkiewicz, 1840 / 스타니스와프 마르샤우키에비치가 1840년에 그린 마리아 보진스카의 초상화

댓글 1개:

  1. https://classicalpippo9.com/2017/10/24/russian-pianist-school-vol-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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