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5 Vladimir Sofronitzky / 블라디미르 소프로니츠키
01 Scriabin Prelude in C, Op. 11 No. 1 /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작품 11-1
02 Scriabin Sonata No. 3 in f#, Op. 23: I. Drammatico / 스크리아빈 소나타 3번
03 Scriabin Sonata No. 3 in f#, Op. 23: II. Allegretto
04 Scriabin Sonata No. 3 in f#, Op. 23: III. Andante
05 Scriabin Sonata No. 3 in f#, Op. 23: IV. Presto con brio
06 Scriabin Sonata No. 2 in g#, Op. 19: I. Andante / 스크리아빈 소나타 2번 1악장
07 Scriabin Poeme in D, Op. 32 No. 2 / 스크리아빈 시곡 작품 32-2
08 Scriabin Poeme in C, Op. 44 No. 1 / 스크리아빈 시곡 작품 44-1
09 Scriabin Ironies, Op. 56 No. 2 / 스크리아빈 아이러니 작품 56-2
10 Scriabin Desir, Op. 57 No. 1 / 스크리아빈 욕망 작품 57-1
11 Scriabin Polonaise in b flat, Op. 21 / 스크리아빈 폴로네즈 작품 21
12 Scriabin Etude in F#, Op. 42 No. 4 / 스크리아빈 에튀드 작품 42-4
13 Scriabin Etude in Db, Op. 42 No. 6 / 스크리아빈 에튀드 작품 42-6
14 Scriabin Waltz in Ab, Op. 38 / 스크리아빈 왈츠 작품 38
15 Scriabin Prelude in G, Op. 11 No. 3 /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작품 11-3
16 Scriabin Prelude in b, Op. 11 No. 6 /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작품 11-6
17 Scriabin Prelude in A, Op. 11 No. 7 /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작품 11-7
18 Scriabin Prelude in f#, Op. 11 No. 8 /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작품 11-8
19 Scriabin Prelude in B, Op. 11 No. 11 /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작품 11-11
20 Scriabin Prelude in g#, Op. 11 No. 12 /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작품 11-12
21 Scriabin Prelude in Gb, Op. 11 No. 13 /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작품 11-13
22 Scriabin Prelude in Ab, Op. 11 No. 17 /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작품 11-17
23 Scriabin Prelude in c, Op. 11 No. 2 /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작품 11-2
CD6 Vladimir Sofronitzky / 블라디미르 소프로니츠키
01 Scriabin Prelude in C, Op. 13 No. 1 /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작품 13-1
02 Scriabin Prelude in a, Op. 11 No. 2 /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작품 11-2
03 Scriabin Prelude in G, Op. 13 No. 3 /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작품 13-3
04 Scriabin Prelude in e, Op. 11 No. 4 /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작품 11-4
05 Scriabin Prelude in D, Op. 11 No. 5 /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작품 11-5
06 Scriabin Prelude in b, Op. 13 No. 6 /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작품 13-6
07 Scriabin Prelude in A, Op. 15 No. 1 /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작품 15-1
08 Scriabin Prelude for the left hand in c#, Op. 9 No. 1 / 스크리아빈 왼손을 위한 프렐류드 작품 9-1
09 Scriabin Prelude in E, Op. 11 No. 9 /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작품 11-9
10 Scriabin Prelude in c#, Op. 11 No. 10 /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작품 11-10
11 Scriabin Prelude in c#, Op. 22 No. 2 /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작품 22-2
12 Scriabin Prelude in g#, Op. 16 No. 2 /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작품 16-2
13 Scriabin Prelude in F#, Op. 16 No. 5 /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작품 16-5
14 Scriabin Prelude in e flat, Op. 16 No. 4 /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작품 16-4
15 Scriabin Prelude in Db, Op. 11 No. 15 /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작품 11-15
16 Scriabin Prelude in b flat, Op. 11 No. 16 /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작품 11-16
17 Scriabin Prelude in Eb, Op. 11 No. 19 /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작품 11-19
18 Scriabin Prelude in Bb, Op. 11 No. 21 /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작품 11-21
19 Scriabin Prelude in g, Op. 11 No. 22 /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작품 11-22
20 Scriabin Prelude in d, Op. 11 No. 24 /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작품 11-24
21 Scriabin Poeme in C Op. 52 No. 1 / 스크리아빈 시곡 작품 52-1
22 Scriabin Poeme, Op. 59 No. 1 / 스크리아빈 시곡 작품 59-1
23 Scriabin Poeme aile, Op. 51 No. 3 / 스크리아빈 <가벼운 시> 작품 51-3
24 Scriabin Poeme languide, Op. 52 No. 3 / 스크리아빈 <나른한 시> 작품 52-3
25 Scriabin Masque, Op. 63 No. 1 / 스크리아빈 <가면> 작품 63-1
26 Scriabin Poeme satanique, Op. 36 / 스크리아빈 <악마적 시곡> 작품 36
27 Scriabin Sonata No. 9, Op. 68 'Black Mass' / 스크리아빈 소나타 9번 <흑미사>
28 Scriabin Poeme, Op. 69 No. 1 / 스크리아빈 시곡 작품 69-1
29 Scriabin Poeme, Op. 69 No. 2 / 스크리아빈 시곡 작품 69-2
30 Scriabin Flammes sombres, Op. 73 No. 2 / 스크리아빈 <어두운 불꽃> 작품 73-2
31 Scriabin Guirlandes Op. 73 No. 1 / 스크리아빈 <화환> 작품 73-1
32 Scriabin Sonata No. 10, Op. 70 / 스크리아빈 소나타 10번
33 Scriabin Fragilite, Op. 51 No. 1 / 스크리아빈 <연약함> 작품 51-1
34 Scriabin Feuillet d'album in Eb, Op. 45 No. 1 / 스크리아빈 <앨범 조각> 작품 45-1
35 Scriabin Etude in c#, Op. 42 No. 5 / 스크리아빈 에튀드 작품 42-5
36 Scriabin Mazurka in F#, Op. 40 No. 2 / 스크리아빈 마주르카 작품 40-2
37 Scriabin Etude in d#, Op. 8 No. 12 / 스크리아빈 에튀드 작품 8-12
Vladimir Sofronitzky (1901-61) / 블라디미르 소프로니츠키
Principal Teachers: Alexander Michalowski, Leonid Nikolayev / 알렉산더 미하워프스키, 레오니드 니콜라예프 사사
Prize:
1921 - Anton Rubinstein Prize / 안톤 루빈스타인 상 수상
'He played like a god - he looked like a god' (Neuhaus). 'The memory of Sofronitzky, his art, his suffering image, his restlessness during life, his humble death, belong to all of us forever [...] a pure romantic [...] yearning to the infinite, indifferent to the sea of life and completely helpless in it' (Maria Yudina). 'The greatest piano player in the world' (Emil Gilels). Vovochka Sofronitzky, the youngest of six, affirmed Alexander Blok's belief that 'the artist's role was to serve as intermediary between this and "other words," and [to] reveal the purpose of man on earth' (Petri Liukkonen, 2002). In him the vastly imaginative and intuitive, 'the fever of the heart, the cold of the mind,' held splendid, random court. 'I would proceed to the concert as if going on a blind date, anticipating something completely unknown, mysterious and wonderful, in other words, a miracle [...] He approached the piano, and the magic began' (Stanislav Neuhaus, "Recollections, letters, materials", Moscow 1988).
‘그는 신처럼 연주했다. - 그는 신처럼 보였다(네이가우스).’ ‘소프로니츠키에 대한 기억, 그의 예술, 그의 고통 받는 이미지, 평생 동안의 불안함, 그의 초라한 죽음 모두 우리에게 영원히 속해 있다. [...] 순수한 낭만적인 [...] 인생의 바다에 한없이 무관심한 동경과 그것에 완전히 나약하다(마리아 유디나).’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피아노 연주자(에밀 길렐스).’ 여섯 아이들 중 막내인 보보흐카(블라디미르의 애칭) 소프로니츠키는 상징주의 시인 알렉산더 블록의 ‘시인의 역할이란 현재와 다른 세상을 연결하는 중재자이며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을 밝히는 데 있다’는 믿음을 입증했다(페트리 리우코넨, 2002). 그에게서 광대하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직관적인 ‘가슴의 열기, 마음의 추위’는 매우 인상적인 무작위의 환심을 사게 했다. ‘나는 무언가 완전히 알려지지 않은, 신비스럽고 놀라운, 즉 기적을 예상하면서 서로 모르는 남녀의 데이트에 가는 것처럼 콘서트를 진행할 것이었다. [...] 그가 피아노에 다가가면 마법이 시작되었다(스타니슬라프 네이가우스 <추억, 편지, 소재>, 모스크바 1988).’
Scriabin's pianist-daughter Elena (Lialia) came into his life in 1917, and they married three years later: an 'inspired, transparently beautiful' union, recalled Yudina. Following a sojourn in Paris, the 'new Babylon of contemporary art', then home to several members of the Scriabin family, as well as Glazunov, Prokofiev (a good friend) and Medtner, Sofronitzky returned to Leningrad in 1930, becoming a professor at the Conservatory in 1939. The highlight of the decade was a series of 12 Historical Recitals in the 1937-38 season that traversed landmarks of the repertory from Buxtehude to Shostakovich.
스크리아빈의 딸이자 피아니스트인 엘레나(리알리아)는 1917년에 소프로니츠키를 만난 지 3년 후에 결혼했는데, ‘영감을 받은 투명하고 아름다운’ 결합이라고 유디나가 회상했다. 파리에 머물면서 <현대 미술의 새로운 바빌론>에 이어 글라주노프, 프로코피에프(좋은 친구), 메트너뿐만 아니라 스크리아빈의 여러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왔는데, 소프로니츠키는 1930년에 레닌그라드로 돌아와서 1939년에 음악원 교수가 되었다. 10년 동안의 하이라이트는 북스테후데부터 쇼스타코비치까지의 레퍼토리를 총망라하는, 1937~38 시즌에 그가 개최했던 12번의 전설적인 연주회였다.
During the siege of Leningrad he committed himself (along with Yudina, Gilels and other) to civic, morale-boosting duties, playing the piano at the Pushkin Theatre in sub-zero conditions, his hands gloved but for the fingertips. Evacuated to Moscow in the spring of 1942, Sofronitzky pursued rarified ideals and exclusive music, leaving it to others to play politics and the KGB and rise the ranks. In the autumn of 1949, commemorating the centenary of Chopin's death, he gave five recitals in the Great Hall of the Conservatory, followed in 1953 by a Schubert 125th anniversary concert in the Tchaikovsky Hall. Taking leave of larger concert rooms during the mid-fifties, he favoured intimate venues for his odysseys. The Scriabin Museum in particular, housing the composer's Bechstein, became like a second home. A heart condition dogged his life, but it was liver cancer that finally claimed him.
레닌그라드가 히틀러의 독일군에 포위되면서 그는 (유디나, 길렐스 등과 마찬가지로) 시민의 사기를 높이는 임무에 헌신하여 영하 3도까지 떨어진 푸시킨 극장에서 손가락이 뚫린 장갑을 끼고 피아노를 연주했다. 1942년 봄에 극도로 지친 몸을 요양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거처를 옮긴 소프로니츠키는 희박해진 이상과 폐쇄적인 음악을 추구하여 다른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것, KGB(구소련의 국가안보위원회), 출세하는 것을 떠나갔다. 1949년 가을에는 쇼팽의 타계 100주기를 기념하여 모스크바 음악원 대강당에서 연이어 5회의 쇼팽 리사이틀을 가졌으며, 1953년에는 차이코프스키 홀에서 슈베르트 타계 125주기 기념 콘서트를 가졌다. 50대 중반에는 대형 콘서트홀들을 떠나 자신의 오디세이(경험이 가득한 긴 여정)를 위한 친밀한 공연장들을 선호했다. 특히 작곡가의 베히슈타인 피아노가 있는 스크리아빈 박물관은 제2의 집처럼 되었다. 심장 상태가 그를 오랫동안 괴롭혔지만, 결국 간암이라고 주장되었다.
Sofronitzky's career orbited around concerts, recording and teaching. According to his daughter Viviana, 'he taught mostly at home because he hated going to the Conservatory: "If you have to go to the Conservatory," he used to say, "you need to have some petty lies to hand."' 'It was very difficult to get into his class. Most of his students, however, were not "commercially successful". He wasn't interested in sportive "competition" types, preferring more musical individuals, even if less technically advanced. What mattered was their sensitivity, not how "good" or "not so good" they were.' Typically, the musicians he valued embraced Samuil Feinberg, Lev Oborin and Goldenweiser. At the height of the Cold War he admired Glenn Gould and latterly Van Cliburn, whom he met privately during the first Tchaikovsky Competition in 1958. There was time, too, for aspirants like Lazar Berman and Dmitri Bashkirov.
소프로니츠키의 경력은 콘서트, 녹음, 교육을 순환했다. 그의 딸 비비아나에 의하면, ‘그는 음악원에 가는 걸 싫어해서 집에서 주로 가르쳤는데, “음악원에 가야 한다면, 사소한 거짓말이라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의 클래스에 들기는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제자들 대부분이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기술적으로 덜 발전했지만, 보다 음악적인 사람들을 선호하면서 스포츠적인 “콩쿠르” 유형에는 관심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얼마나 “좋았는지” 또는 “그리 좋지 않은지”가 아닌, 그들의 감성이었다.’ 일반적으로 그가 소중하게 여긴 음악가들은 사무일 파인베르크, 레프 오보린, 알렉산더 골덴바이저를 받아들였다. 냉전의 절정기에 그는 글렌 굴드, 나중에는 1958년 제1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가 열리는 동안 사적으로 만났던 밴 클라이번에 찬사를 보냈다. 라자르 베르만과 드미트리 바쉬키로프처럼 포부가 큰 사람들을 위했던 적도 있었다.
'In teaching,' according to his second wife (she'd been one of his pupils), 'he would point out what was not only bad [the Russian way] but also good. He was never upset if his students played to other teachers [many teachers in Russia think of it as betrayal] - "you can learn in any place, only play well". When he wanted a change of perspective or emphasis, he would do so through positive association, singling out the quality or dimension he wanted for a passage or idea, and then letting it fall into place naturally, without pushing. "What a singing melody!" - and the melody would sing. "What an expressive bass-line!" - and the bass would express.'
(그의 제자들 중의 하나였던) 두 번째 부인에 따르면, ‘교육에서 그는 나쁜 것[러시아적인 방식]뿐만 아니라 좋은 것도 지적했을 것이다. 그는 제자들이 [러시아의 많은 교육자들이 배신으로 생각하는] 다른 선생님들 앞에서 연주했다고 해도 결코 화내지 않았다. - “어느 곳에서든지 배우면서 잘 연주할 수 있다.” 관점이나 중점을 바꾸고 싶을 때, 그는 자신이 소절이나 악상에 대해서 원하는 자질이나 차원을 선정한 다음 밀어 넣지 않고 자연스럽게 앞뒤가 맞게 하면서 긍정적인 연관성을 통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정말 끝내주는 노래하는 멜로디!” - 그러면 멜로디가 노래했을 것이다. “정말 표현이 풍부한 베이스 라인!” - 그러면 베이스가 표현했을 것이다.’
Sofronitzky never heard Scriabin. But he was identified in popular culture as the foremost (to some minds only) Scriabin artist of his day (and since). In 1920, ahead of Feinberg (whom certain others preferred), he was the first to pioneer all-Scriabin programmes. He never set out to be a definitive voice, however, and would have been the first to agree that many ways can lead to understanding and communication. The rhythmic, dynamic, climactic, textural, structural, colouristic, spiritual and emotional charge that he brought to Scriabin, and the contradictions and denials that he introduced, he extended to every composer. 'He had a vision for the future of music. Provide a chair on stage. The musician, like an actor, will sit down and think. Music will sound' (Valentina Duschinova). 'Look, it's so easy to create beauty,' said Sofronitzky. 'You only need to be devoted.'
소프로니츠키는 스크리아빈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대중문화에서 (일부 사람들의 관점에서만) 그의 시대(그리고 그 이후)의 가장 중요한 스크리아빈 아티스트로 밝혀졌다. 1920년에는 (다른 사람들이 선호했던) 파인베르크보다 앞서 처음으로 스크리아빈으로만 구성된 프로그램을 개척했다. 그는 최고의 목소리로 시작하지 못했지만, 많은 방식이 이해와 의사소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에 먼저 동의했을 것이다. 그가 스크리아빈에 가져왔던 리듬, 다이내믹, 절정, 조직, 구조, 색채, 영적이고 감정적인 부과는 모든 작곡가에게 확장되었다. ‘그는 음악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 무대에 의자를 제공하라. 음악가는 배우와 마찬가지로 앉아서 생각할 것이다. 음악이 울릴 것이다(스크리아빈의 제자이자 나중에 아내가 된 발렌티나 두쉬노바).’ 소프로니츠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봐, 아름다움을 만드는 건 정말 쉬워. 몰두하기만 하면 돼.’
Scriabin Poemes / 스크리아빈 시곡들
'Flowers out of whose depths a firefly shakes his light' (Vasily Safonov, from "The Witch of Atlas" by Percy Bysshe Shelley).
‘반딧불이 빛을 흔드는 깊이를 벗어난 꽃들(바실리 사포노프가 퍼시 비시 셸리의 시 <아틀라스의 마녀>에서 인용).’
Scriabin Preludes / 스크리아빈 전주곡들
'A glittering world in a tiny space,' the diary of 'a musical Faberge' (Simon Nicholls).
‘작은 공간에서 빛나는 세계’, ‘음악의 파베르제(러시아 제국 보석세공사)’의 일기(시몬 니콜스).
Scriabin Prelude for left hand in c#, Op. 9 No. 1 (1894) / 스크리아빈 왼손을 위한 프렐류드 작품 9-1
The first Scriabin piece Sofronitzky chanced upon, as an eight-year-old in a music shop in Warsaw. A 'great' composer, he told his elder sister, Natalia - 'Scriabinov' [sic].
소프로니츠키가 8세에 바르샤바의 음악 상점에서 우연히 발견했던 첫 스크리아빈 작품. 그는 누나 나탈리아에게 ‘위대한’ 작곡가라고 말했다. - [문자 그대로] ‘스크리아비노프(스크리아빈적인).’
Scriabin 24 Preludes, Op. 11 / 스크리아빈 24개 전주곡
The Op. 11 set spans the years from Scriabin's entry into the Moscow Conservatory to his travels and concert tours around Europe. Overtly homaging Chopin and Schumann, though not without a personal stamp, they acknowledge the Chopin key-plan, grouped into four books of six each. The octave-and-chord "appassionato" of No. 20 closes in the minor, "pianissimo" - which Sofronitzky, following the manuscript, preferred to sweeten into the major.
작품 11 세트는 스크리아빈이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한 것부터 여행과 유럽 콘서트 투어에 이르기까지 수년이 걸린다. 개인적인 흔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작품은 쇼팽과 슈만을 공공연하게 예찬하면서 쇼팽의 조성 순서를 따르며 각각 여섯 곡씩 네 권으로 나눈다. 전주곡 20번의 옥타브-화음 “아파시오나토”(열정적으로)는 단조의 “피아니시모”(매우 여리게)로 끝나는데, 소프로니츠키는 원고를 따라가면서 장조로 감미롭게 하는 것을 선호했다.
Scriabin Preludes, Op. 13 Nos. 1 in C, 3 in G, 6 in b (1895) / 스크리아빈 전주곡 작품 13의 1, 3, 6번
From Bachian maestoso chorale through nocturne to the borderlands of "prelude and etude".
바흐 풍의 마에스트로 코랄부터 녹턴을 거쳐 <전주곡과 연습곡>의 경계.
Scriabin Prelude in A, Op. 15 No. 1 (1895-96) / 스크리아빈 전주곡 작품 15-1
An introspective "andante", preoccupied with a five-note turn and subtle shades of rubato and articulation.
다섯잇단음표의 돈꾸밈음, 루바토의 미묘한 음영, 아티큘레이션으로 가득 찬 내성적인 “안단테”(느리게).
Scriabin Preludes, Op. 16 Nos. 2 in g#, 4 in e flat, 5 in f# (1895-96) / 스크리아빈 전주곡 작품 16의 2, 4, 5번
Aphoristic and finely turned, especially the fourth.
특히 전주곡 4번에서 금언적이면서도 정묘하게 바뀐다.
Scriabin Sonatas / 스크리아빈 소나타들
Scriabin's sonatas, tantalizingly oblique and cross-dimensioned in their brevity and tension, breathe exotic atmospheres, fathered in a hot-house climate of Nietzsche, metaphysics, theosophy, synaesthesia, sensuality, ecstasy, eroticism and 'Messianic follies'.
스크리아빈의 소나타들, 간결성과 긴장 상태에서 애타게 하는 완곡한 교차 단면인 스크리아빈의 소나타들은 니체의 온실 분위기, 형이상학, 신지학(神智學), 공감각, 관능, 황홀감, 에로티시즘(성적 표현), <메시아(구세주)에 대한 시사풍자극>에서 태어난 이국적인 분위기를 호흡한다.
No. 2 in g# (Sonata-Fantasy), Op. 19 - Andante (1892) / 스크리아빈 소나타 2번 <환상 소나타> 1악장 안단테
According to a programme-note (Paris, 1896) the "Andante" first movement, composed in Genoa, evokes 'the quiet of a southern night on the seashore'; and its central development 'the dark agitation of the deep, deep sea'. The E major closing section pictures 'caressing moonlight rising out of night's first darkness'.
프로그램 노트(1896년 파리)에 의하면, 제노바에서 작곡된 1악장 “안단테”(느리게)는 ‘남국의 밤 해변의 정적’을 묘사하며, 중간의 발전부(전개부)는 ‘깊은 바다의 어두운 동요’를 불러일으킨다. E장조로 끝나는 부분(제2주제)은 ‘밤의 첫 어둠에서 떠오르는 애무하는 달빛’을 나타낸다.
No. 3 in f#, Op. 23 (1897-98) / 소나타 3번
Conceived largely in Paris, this dates from between the composer's marriage and his appointment to the Moscow Conservatory.
파리에서 크게 구상되었던 이 곡은 작곡가의 결혼과 모스크바 음악원에의 임명 사이부터 시작된다.
No. 9 in F [Black Mass] Op. 68 (1912-13) / 소나타 9번 <흑미사>
The title, not the composer's, conjures the occult and dark arts - the notion of Satanic 'psychodrama', of Christian ritual satirized and negated. Rasputin's Russia a century ago was uncomfortable place, and Scriabin's friends could be appalling bedfellows, eating human flesh and downing cocktails of vodka, gunpowder and blood.
작곡가가 붙인 제목은 아닌데, 초자연적인 암흑 예술을 불러일으키며, 기독교 의식에 대한 악마적인 ‘사이코드라마’에 대한 짐작을 풍자하면서도 부인했다. 한 세기 전 라스푸틴의 러시아는 불편한 곳이었으며, 스크리아빈의 친구들은 인육을 먹고 보드카, 화약, 피가 섞인 칵테일을 마시면서 끔찍한 잠동무가 될 수 있었다.
No. 10 in C, Op. 70 (1911-13) / 소나타 10번
'A sonata of insects,' imagined its creator. 'Insects are born from the sun [...] they are the kisses of the sun.'
‘곤충의 소나타’는 그 창작자를 상상했다. ‘곤충은 태양에서 태어난다. [...] 그것들은 태양의 키스인 것이다.’
Scriabin Studies / 스크리아빈 연습곡들
These are technically addressed mood-pictures and tone-poems born of the Chopin-Henselt-Liszt-Schumann line.
이 곡들은 쇼팽-헨젤트-리스트-슈만 라인에서 생겨난, 기술적으로 이야기를 거는 분위기 있는 그림이자 음시이다.
Scriabin Etude in d#, Op. 8 No. 12 (1894) / 스크리아빈 연습곡 작품 8-12
Recorded by the composer in 1910, this was the last piece Sofronitzky played in public, at a shared concert in the Small Hall of the Moscow Conservatory, 9 January 1961.
1910년에 작곡가가 녹음한 이 곡은 소프로니츠키가 1961년 1월 9일에 가졌던 모스크바 음악원 소강당 콘서트에서 공개적으로 연주한 마지막 곡이다.
Scriabin Waltz in Ab, Op. 38 (1903) / 스크리아빈 왈츠 작품 38
One of Scriabin's own favourites, a dance that rises to the heights, ends magically and opens with complex polyrhythms.
스크리아빈 자신이 즐겨 연주했던 곡들 중의 하나로, 높이 올라가는 춤이 마술처럼 끝나면서 복잡한 폴리리듬(대조적 리듬의 동시 사용)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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