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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10일 일요일

Brilliant Classics / Legendary Russian Pianists CD4 Maria Yudina



CD4 Maria Yudina / 마리아 유디나
01 Bach/Liszt Prelude & Fugue in a, BWV 543 / 바흐 오르간 프렐류드와 푸가 BWV 543 (리스트 편곡)
02 Liszt Variations on Bach's 'Weinen, Klagen, Sorgen, Zagen' / 리스트 - 바흐 <울음, 탄식, 근심, 두려움>에 의한 변주곡
03 Beethoven Sonata No. 5 in c, Op. 10 No. 1: I. Allegro molto e con brio / 베토벤 소나타 5번
04 Beethoven Sonata No. 5 in c, Op. 10 No. 1: II. Adagio molto
05 Beethoven Sonata No. 5 in c, Op. 10 No. 1: III. Prestissimo
06 Beethoven Sonata No. 32 in c, Op. 111: I. Maestoso - Allegro con brio ed appassionato / 베토벤 소나타 32번
07 Beethoven Sonata No. 32 in c, Op. 111: II. Arietta. Adagio molto semplice e cantabile

Maria Yudina (1899-1970) / 마리아 유디나
Principal Teacher: Anna Esipova, Felix Blumenfeld / 안나 에시포바, 펠릭스 블루멘펠트 사사

Prize:
1921 - Anton Rubinstein Prize / 안톤 루빈스타인 상 수상

'Listening to music is not a pleasure. It is a response to the grandiose efforts of the composer and the enormously important work of the artist-performer'. Yudina, one of five children born to a Jewish family from north-western Russia, graduated from the Petrograd Conservatory in 1921, on the same day as her friend and classmate Vladimir Sofronitzky (13 May), both playing an identical programme - Beethoven's "Waldstein", the Liszt B minor, and selections from both books of the "Well-Tempered Clavier" at the jury's choice. Out of necessity as much as choice, her life was spent largely teaching - principally at the Petrograd/Leningrad Conservatory (1921-30), the Tiflis Conservatory in Georgia (1932-34); the Moscow Conservatory (1936-51); and the Gnessin Institute (1944-60). Despite contact with eminent conductors such as Paul Hindemith, Otto Klemperer, Dimitri Mitropoulos, Hermann Scherchen, her activities were restricted to the USSR, with only the occasional 'safe' tour, including the Leipzig Bach Festival in 1950.

‘음악을 듣는 것은 즐거움이 아니다. 작곡가의 엄청난 노력과 아티스트-연주자의 엄청나게 중요한 작품에 대한 반응이다.’ 러시아 북서부 출신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다섯 아이들 중 하나인 유디나는 1921년 페트로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그녀의 친구이자 동급생인 블라디미르 소프로니츠키와 같은 날(5월 13일)에 같은 프로그램(베토벤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 리스트 소나타, 심사위원들의 선택에 따른 바흐 평균율 발췌)을 연주하면서 졸업했다. 선택 못지않게 필요에 따라 그녀는 주로 가르치는 데에 인생을 보냈는데, 주로 페트로그라드/레닌그라드 음악원(1921~30), 조지아 티플리스[트빌리시] 음악원(1932~34), 모스크바 음악원(1936~51), 그네신 음악원(1944~60)에서 가르쳤다. 파울 힌데미트, 오토 클렘퍼러,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 헤르만 셰르헨 등 저명한 지휘자들과의 접촉이 있었음에도 그녀의 활동은 1950 라이프치히 바흐 축제를 포함하여 가끔 ‘안전한’ 여행만 있었으며, 소련에 국한되었다.

A thorn in the side of officialdom, Yudina did her own thing. She spoke for the underdog and the persecuted, she upheld radical values, she championed all that was progressive. Anecdotes of her nonconformist life are legion: sleeping rough in the 1930, sharing a Moscow cellar with her brother, having no piano to practice; being dismissed from her Leningrad and Moscow appointments for, respectively, her Christian beliefs (she converted to Orthodoxy in 1919 while still a student), and her Semitic origins. She gave her money to the church, told Stalin so, and said she would pray for his salvation. She associated with radical architects and artists such as Anna Akhmatova, and defended Shostakovich during the 1948 purges. She incurred a five-year ban on giving concerts by reciting Pasternak in lieu of encores; it was in her Moscow apartment that Pasternak gave a first reading of "Doctor Zhivago".

관료 집단에 눈엣가시였던 유디나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약자와 정신적인 박해를 당했던 많은 동료 예술가들을 대변하고, 급진적인 가치관을 지지했으며, 진보적인 모든 것을 옹호했다. 일반적인 관행을 따르지 않았던 그녀의 인생의 일화들은 아주 많다. - 1930년에는 연습할 피아노가 없이 남매가 모스크바 지하실을 공유하면서 아무데서나 잤으며, 그녀의 기독교 신앙(그녀는 1919년에 아직 학생일 때 정교회로 개정)과 그녀의 유대 혈통에 대한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의 임명으로부터 각각 해고되었다. 그녀는 교회에 돈을 주고 스탈린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의 구원을 위해 기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안나 아흐마토바(시인) 같은 급진적인 건축가 및 아티스트와 관련이 있었으며, 1948년 숙청 과정에서 쇼스타코비치를 옹호했다. 그녀는 앙코르 대신에 파스테르나크의 시를 낭송한 것으로 인해 5년간 연주 금지령을 받았는데, 파스테르나크가 <닥터 지바고>의 첫 낭독을 가졌던 곳이 그녀의 모스크바 아파트였다.

Her musical enthusiasms were similarly broad and unabashed by authoritarian tastes and diktats, encompassing the local "avant-garde", the Second Viennese school (Schoenberg, Berg and Webern) and 'decadent' Western innovators such as Bartok, Krenek, Messiaen, Xenakis and even the Darmstadt school (a group of composers who attended the Darmstadt International Summer Courses for New Music from the early 1950s to the early 1960s in Darmstadt). It was such single-minded championship that eventually got her sacked from the Gnessin. Knowing the hardships of deprivation, censorship, and persecution, Yudina walked a dangerous road with her publicly attested faith, philosophizing attitude and criticism of the Soviet leadership. Yet somehow she managed to keep clear of the "gulag". Even Stalin turned a blind eye (reportedly, her first 78s, of Mozart's Concerto K. 488, made in 1943 with Alexander Gauk, were by his death-bed).

그녀의 음악적 열정은 현지의 “전위주의”(아방가르드), 신빈악파(쇤베르크, 베르크, 베베른), 서방의 혁신가들(버르토크, 크레네크, 메시앙, 제나키스 등), 다름슈타트 스쿨(다름슈타트에서 1950년대 초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새로운 음악을 위한 다름슈타트 국제 하계 강좌에 참석한 작곡가 그룹)도 아우르면서 광범위했으며 권위주의적인 취향과 (정부의) 강권에 부끄럽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녀가 그네신 음대에서 해고당한 것은 외곬수의 챔피언 지위였다. 박탈, 검열, 박해로 고생한 유디나는 소비에트 지도부에 대한 공개적으로 입증된 믿음, 심각한 태도, 비판으로 위험한 길을 걸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녀는 그럭저럭 “강제 수용소”를 피할 수 있었다. 스탈린조차도 눈감아줬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녀의 첫 78 rpm 음반으로 1943년 알렉산더 가우크의 지휘로 녹음된 모차르트 협주곡 23번이 그의 임종 때 있었다.)

Spiritual, never political, acceptance decided the company she kept. Yudina was ready to listen and console, protective towards her students, living for her friends and seeking her God. Yet she was, Kurt Sanderling believed, first and foremost a humanist. 'I do not assert that my path is an universal one, I know there are other ways,' she wrote when she was 17 years old. 'But I feel that this path is mine: everything which is spiritual and divine first appeared to me through art, especially music. This is my vocation! I must for ever follow this road of spiritual contemplation to prepare myself for the lucid moment that will come some day. This is my goal. I am a link in art. Everyone must justify his life.' She 'believed that performing was a sort of investigation, equal to scientific research or the job of a ballet-master. That's why she always objected to being called a performer. She used to think such a title diminished the creative essence of her art' (Natalia Entelis, 2007).

정신적이면서도 결코 정치적이지 않은 수용은 그녀가 지킨 일행을 결정했다. 유디나는 친구들을 위해 살고 신을 찾으면서 음악을 듣고 위로하며 제자들을 보호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다른 누구보다도 더 인문주의자인 지휘자 쿠르트 잔데를링이 그녀를 신뢰했다. 그녀는 17세였을 때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보편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나는 다른 길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길이 나의 것이라고 느끼는데, 모든 것이 영적이고 예술, 특히 음악을 통해 처음 내게 나타났다. 이것이 나의 천직이다! 언젠가 다가올 분명한 순간을 준비하기 위해 영적인 묵상의 길을 따라야 한다. 이것이 내 목표다. 나는 예술과 연결되어 있다. 모든 사람이 그 인생을 옹호해야 한다.’ 그녀는 ‘연주가 과학 연구나 발레 연출가의 직업과 같은 일종의 연구라고 믿었다. 그래서 자신이 항상 연주자라고 불리는 것에 반대했다. 그런 타이틀이 그녀의 예술의 창조적 본질을 약화시켰다고 생각하곤 했다(나탈리아 엔텔리스, 2007).’

Bach-Liszt Prelude & Fuge in a, BWV 543 (1840s) / 바흐 오르간 프렐류드와 푸가 BWV 543 (리스트 편곡)
'A new era in the history of piano-playing' (Siegfried Dehn). Spirituality before showmanship.

‘피아노 연주 역사의 새로운 시대(지크프리트 덴).’ 쇼맨십 이전에 영적이다.

Liszt Variations on Bach's 'Weinen, Klagen, Sorgen, Zagen' (1862) / 리스트 - 바흐 <울음, 탄식, 근심, 두려움>에 의한 변주곡
Dedicated to Anton Rubinstein, these date from the early years of Liszt's so-called 'Roman' period, and are in the form of a passacaglia on the bass-line from the opening chorus of the 1714 "Weinen, Klagen, Sorgen, Zagen" Cantata (familiar also from the Crucifixus of the B minor Mass).

안톤 루빈스타인에게 헌정된 곡으로, 리스트의 이른바 ‘로마’ 시기의 초기부터 시작되었으며, (바흐의 b단조 미사 <크루치픽수스>에서도 친숙한) 1714년의 바흐 칸타타 <울음, 탄식, 근심, 두려움>의 오프닝 합창에서 베이스 선율에 있는 파사칼리아 형식을 띤다.

Beethoven Sonata No. 5 in c, Op. 10 No. 1 (?1795-97) / 베토벤 소나타 5번
'The most characteristic example of [Beethoven's] organic mode of composition, equalled in this respect only by the [same key] "Coriolan Overture" and the Fifth Symphony' (Edwin Fischer, 1945).

‘[베토벤의] 유기적 작곡 방식의 가장 특징적인 예는 [같은 조성인] <코리올란 서곡>과 교향곡 5번에 의해서만 이 점에서 동일하다(에트빈 피셔, 1945).’

Beethoven Sonata No. 32 in c, Op. 111 (1821-22) / 베토벤 소나타 32번
One of civilization's great swansongs, journeying from dissonance to concord, black "forte" G minor diminished-seventh homelessness to white "pianissimo" C major repose.

문명의 위대한 백조의 노래(백조가 죽을 때 부른다는 아름다운 노래로 최후의 작품)들 중의 하나인 이 곡은 불협화음부터 일치까지 여행하면서 검은 “포르테”(세게) g단조(1악장)의 감7도 음정의 노숙자가 하얀 “피아니시모”(매우 여리게) C장조(2악장)에 잠든다.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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