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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piano bachelor, piano music lover, CD collector and classical music information's translator. Also KakaoTalk character Tube mania! Naver Blog: http://blog.naver.com/snowseol Youtube Channel: https://www.youtube.com/channel/UCDPYLTc4mK7dOXYTQEOiPew?view_as=subscriber

2019년 8월 16일 금요일

Stanislav Neuhaus Documentary - The Live Voice of the Soul 2007


https://www.youtube.com/watch?v=Y_UeqyjzHqg

스타니슬라프 네이가우스 다큐멘터리
"It seems as if one can hear not the sounds of the piano but the live voice of the soul, full of great kindness and a love for life and people. In order to attain that level of spirituality, a performer must possess the upmost sincerity and be passionately in love with the composer's creation."

“마치 피아노의 소리가 아니라 영혼의 살아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며, 친절함 그리고 인생과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그 수준의 영성을 달성하기 위해, 연주자는 최대한의 진실함을 가지고 작곡가의 창작품을 열정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The Live Voice of the Soul - Stanislav Neuhaus

영혼의 살아있는 목소리 - 스타니슬라프 네이가우스

Stanislav Neuhaus died in 1980; he was just 53. The Italian Academy in Siena where he had taught published a book about him after his death. The author of the preface wrote: "We know nothing about him as a human being because he kept a complete and divine silence. He was a man who did not belong to our time, as he put it, a man who was 'late to be born'. The 19th century is when he should have been born. We will try to get closer to an understanding of this remarkable and tragic romantic by collecting the memories of those who knew Stanislav Genrikhovich as a musician, teacher, and human being. From the fragments of those memories, we will create his portrait."

스타니슬라프 네이가우스는 1980년에 사망했다. - 그는 불과 53세였다. 그가 가르쳤던 시에나의 이탈리안 아카데미는 그가 사망한 후 그에 대한 책을 출판했다. 서문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 “우리는 그가 완전하고 신성한 침묵을 지켰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는 우리 시대에 속하지 않은 사람으로, 그가 놓았듯이, ‘늦게 태어난’ 사람이었다. 19세기는 그가 태어났을 때임이 틀림없다. 우리는 음악가, 교육자, 인간으로서 스타니슬라프 겐리호비치를 알았던 사람들의 기억을 수집하여 이 놀라운 비극적인 낭만적인 존재에 대한 이해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려고 할 것이다. 그 기억의 파편에서, 우리는 그의 초상화를 만들 것이다.”

Debussy's "Bruyères", a recording made in 1956

드뷔시 전주곡 <히스가 무성한 황야>, 1956년 녹음

Stanislav Genrikhovich Neuhaus was born in 1927 into the family of Heinrich Gustavovich Neugaus...a famous pianist and a professor at the Moscow Conservatoire. Heinrich Neuhaus started teaching at the Moscow Conservatoire in 1922. He came to Moscow with his wife Zinaida Nikolayevna - herself a pianist. "In 1927, I gave birth to my son Stanislav. The four of us lived together in one room. The two children slept behind the curtain; two grand pianos stood on the other side of it. Countless pupils would come for lessons, and there was always music in the house. Stasik's musical talent became evident at quite an early age - at 6 he was already a student at the Gnessin Music School."

스타니슬라프 겐리호비치 네이가우스는 1927년 유명한 피아니스트이자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하인리히 구스타보비치 네이가우스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인리히 네이가우스는 1922년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는 아내이자 피아니스트인 지나이다 니콜라예프나와 함께 모스크바에 왔다. “1927년, 저는 아들 스타니슬라프를 낳았습니다. 우리 넷은 단칸방에서 같이 살았어요. 두 명의 아이들이 커튼 뒤에서 잤는데, 2대의 그랜드 피아노가 반대편에 있었죠. 수많은 학생들이 레슨을 받으러 왔으며, 집에는 항상 음악이 있었죠. 스타식의 음악적 재능은 일찍이 눈에 띄었어요. - 6세에 그는 이미 그네신 음대의 학생이었죠.”

In 1932, Zinaida Nikolayevna divorced Heinrich Neuhaus and married Boris Pasternak. Despite this tragic separation, the poet and the musician remained friends until the end. From then on, Stanislav Neuhaus lived in the house of Boris Pasternak. That influenced his attitude toward life and art - and his own communication with his father, Heinrich Neuhaus.

1932년에 지나이다 니콜라예프나는 하인리히 네이가우스와 이혼했으며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와 결혼했다. 이 비극적인 결별이 있었음에도 시인과 음악가는 끝까지 친구로 남았다. 그때부터 스타니슬라프 네이가우스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집에서 살았다. 그것은 삶과 예술에 대한 그의 태도 - 그리고 그의 아버지 하인리히 네이가우스와의 의사소통에 영향을 미쳤다.

Galina Sergeyevna Neuhaus, the wife of Stanislav Neuhaus: One time, Boris Leonidovich decided to buy a grand piano for Stanislav. The Pasternaks had a piano, but it was not a very good one. Pasternak loved music and took great pleasure in listening to Stanislav as he practiced. Sometimes, while passing by, I would see him standing before the closed door of the room where Stasik was practicing, making hush signs to me so that I would not interfere. It was very important to him that the piano be of good quality. Anyway, he gave some money to Zinaida Nikolayevna so that she could go and buy a good grand piano. Heinrich Gustavovich, Stasik's father, helped Zinaida Nikolayevna to choose the right instrument; when it turned out that Zinaida Nikolayevna was a bit short of the required amount, he paid it. Boris Leonidovich was furious when he found out about it and said: "It is I who am buying the piano! Why did you have to bring Garik (a nickname for Heinrich) into this?"

갈리나 세르게예프나 네이가우스 (스타니슬라프 네이가우스의 아내) : 한때 보리스 레오니도비치는 스타니슬라프를 위해 그랜드 피아노를 구입하기로 결정했어요. 파스테르나크는 피아노를 갖고 있었지만, 그다지 좋은 게 아니었죠. 파스테르나크는 음악을 사랑했으며 스타니슬라프가 연습하는 동안 들으면서 큰 즐거움을 얻었죠. 때때로 제가 옆을 지나는 동안 저는 스타식이 연습하고 있는 방의 닫힌 문 앞에 그가 서있는 걸 보곤 했는데, 그는 제가 방해하지 않도록 제게 조용히 하라고 신호를 보냈죠. 피아노는 좋은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어요. 어쨌든, 그는 지나이다 니콜라예프나에게 약간의 돈을 줘서 좋은 그랜드 피아노를 사러 갈 수 있었어요. 스타식의 아버지인 하인리히 구스타보비치는 지나이다 니콜라예프나가 좋은 악기를 선택하도록 도왔는데, 지나이다 니콜라예프나가 필요한 금액보다 약간 부족하다는 것이 밝혀졌을 때, 그가 지불했죠. 보리스 레오니도비치는 그것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매우 격분하여 말했어요. - “내가 피아노를 구매하고 있는 사람이야! 왜 이것을 가릭(하인리히의 별명)에게 가져와야 했지?”

Heinrich and Stanislav Neuhaus, 1958 / 하인리히와 스타니슬라프 네이가우스 부자
"So you going to play that prelude by Rachmaninoff, aren't you?"

“그래서 라흐마니노프 전주곡을 연주하지 않을래?”

"Yes, I am going to play it."

“네, 연주할게요.”

"Go ahead."

“시작해.”

Stanislav Neuhaus first became an assistant in the class of his father, Heinrich Gustavovich. Later, he got his own class. He continued his father's traditions, being his successor in essence, though he was his complete opposite in external attributes. Both Neuhauses didn't simply teach pianists, rather, they nurtured musicians. Their approaches were quite different, though.

스타니슬라프 네이가우스는 처음에 아버지 하인리히 구스타보비치의 수업 조교가 되었다. 나중에 그는 자신의 수업을 가졌다. 그는 외부 속성과는 완전히 반대였지만, 본질적으로 후계자가 되면서, 아버지의 전통을 이어갔다. 두 네이가우스 부자는 단순히 피아니스트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음악가들을 양성했다. 그러나 그들의 접근 방식은 상당히 달랐다.

Elena Richter, a professor at the Moscow Conservatoire and an Honored Artist of Russia: All his (Stanislav Genrikhovich's) lessons were completely different from those of Heinrich Gustavovich. If, say, we played badly at the lessons of Heinrich Gustavovich...he only needed to say two or three words and we would 'see the flower bloom' right in front of us...we would understand 'how' right away, and we would start playing better. It was completely the opposite when we studied with Stasik: there was the impression that we could play quite well, but after his 'interference', everything would be 'ruined'...absolutely nothing would be left. That's how different it was. That openness of Heinrich Gustavovich to people, that openness to everything...his classes were always full of people - people sitting on the windowsills, sitting everywhere, people bringing chairs with them. The more people there were, the more he flourished, the more of an artist he would became. It was impossible to take one's eyes off him. It was quite different with Stasik. He could spend hours with just one student. He spent hours with me sometimes. What Stasik demanded was this: he had this absolutely clear idea of how everything should sound...so when he taught his students, he could not imagine that any other way was possible. Not in the sense that we had to copy everything he was doing. Rather, he demanded that ideal which he himself strove to achieve, ...and he demanded it from every student, without any consideration that maybe someone couldn't do it, just...couldn't. Heinrich Gustavovich understood all this and could somehow always find a 'detour' around it. Stasik, on the other hand...Stasik only wanted the ideal in the end. He himself strove for the ideal, and so that would always lead to a terrible conflict in the beginning, because...because some students just couldn't take it.

엘레나 리히터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이자 러시아 공훈예술가) : 그(스타니슬라프 겐리호비치)의 모든 레슨은 하인리히 구스타보비치와는 완전히 달랐어요. 예를 들어, 우리가 하인리히 구스타보비치의 레슨에서 잘못 연주했다면...그는 단지 두세 마디만 말해야 했으며 우리는 우리 앞에서 당장 ‘꽃이 피는 것을 보았을’ 것이고...우리는 당장 ‘어떻게’ 이해하여 더 나은 연주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스타식과 함께 공부했을 때는 완전히 반대였어요. - 우리가 매우 잘 연주할 수 있다는 인상이 있었지만, 그의 ‘개입’ 후에 모든 것이 ‘파멸’되었을 것이고...절대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찌나 달랐던지. 하인리히 구스타보비치의 개방성, 모든 사람에 대한 개방성...그의 수업은 항상 사람들로 가득했어요. - 창턱에 앉은 사람들, 어디에나 앉든지, 의자를 가져오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사람들이 더 많을수록, 아티스트가 많을수록, 그는 더 번창했죠. 그에게서 눈을 떼는 것이 불가능했죠. 스타식과는 상당히 달랐어요. 그는 한 학생과 몇 시간을 보낼 수 있었거든요. 그는 가끔 저랑 몇 시간을 보냈죠. 스타식이 요구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 그는 모든 것이 어떻게 들리는지에 대한 명확한 생각을 가졌으므로...그가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 다른 방식이 가능하다고 상상할 수 없었어요. 우리는 그가 하고 있는 모든 것을 복제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 이상을 요구했고, ...어쩌면 누군가가 그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학생에게 그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인리히 구스타보비치는 이 모든 것을 이해했으며 어떻게든 항상 주변에서 ‘우회’를 찾을 수 있었죠. 반면에 스타식...스타식은 결국 이상적인 것을 원했습니다. 그 자신은 이상을 위해 노력했으므로, 처음에는 항상 끔찍한 갈등을 일으켰을 것인데, 왜냐 하면...어떤 학생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죠.

Stanislav Neuhaus and Brigitte Engerer before the Fourth International Tchaikovsky Competition, 1970

1970년 제4회 차이코프스키 국제음악콩쿠르에 나가기 전의 스타니슬라프 네이가우스와 제자 브리지트 앙제레

Elena Richter, a professor at the Moscow Conservatoire and an Honored Artist of Russia: He worked...he worked on the sound like someone who was possessed. He could spend, say, an hour working on just two measures. Nonetheless, after having spent two hours on half a page, one would start to understand and hear the piano differently. The most important thing the two of them (Stanislav and Heinrich) had in common was the sound they could extract from the piano - it was fantastic. We rarely come across such a sound nowadays.

엘레나 리히터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이자 러시아 공훈예술가) : 그는 공들였어요...소유한 사람처럼 소리에 공들였어요. 말하자면, 그는 겨우 두 마디 가지고 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그럼에도 반 페이지에서 두 시간을 보낸 후에는 피아노를 다르게 이해하고 듣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두 사람(스타니슬라프와 하인리히)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었던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피아노에서 뽑아낼 수 있었던 소리였죠. - 환상적이었어요. 우리는 요즘 그런 소리를 거의 겪지 않죠.

Stanislav Genrikhovich Neuhaus taught many famous pianists: Brigitte Engerer, Vladimir Krainev, Radu Lupu, Valeri Kastelsky, Evgeny Mogilevsky, Andrei Nikolsky, and Andrei Mikita.

스타니슬라프 겐리호비치 네이가우스는 많은 유명한 피아니스트들을 가르쳤다. - 브리지트 앙제레, 블라디미르 크라이네프, 라두 루푸, 발레리 카스텔스키, 에프게니 모길레프스키, 안드레이 니콜스키, 안드레이 미키타.

Andrei Mikita, a pianist and composer: He called himself a teacher...he never said he was a "professor" or anything like that. If he was saying something, but a student couldn't hear him because s/he was playing, ...he would play an abrupt chord on the piano and say, "Listen to what the teacher is saying." So a teacher to him - a music teacher - was someone like a prophet, like a preacher. And so the purpose of the 'School of Neuhaus' was to 'preach music to the people' in order to make them better human beings. That was the main goal. In this sense, the piano was just a means to an end. It was the music itself that mattered - it was eternal, uplifting, divine harmony.

안드레이 미키타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 그는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불렀어요...자신을 ‘교수’나 다른 것으로 말한 적이 없었어요. 그가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면, 학생은 그가 연주하는 것을 들을 수 없었는데, 학생이 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죠...그는 피아노에서 갑작스러운 화음을 연주하고 말하곤 했죠. “선생님이 말하는 것을 들으세요.” 음악 선생님인 그에게 교육자는 선지자, 설교자 같은 사람이었죠. 그래서 ‘네이가우스 스쿨’의 목적은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사람들에게 음악을 전파’하는 것이었죠. 이것이 주요 목표였죠. 이런 의미에서, 피아노는 단지 끝으로 가는 수단이었죠. 중요한 것은 음악 그 자체였어요. - 그것은 영원하고 고상하며 신성한 화성이었으니까요.

Marina Neuhaus, the daughter of Stanislav: He himself never talked big - probably something he learned from Boris Pasternak. It was all hard work - he worked very hard...he practiced a lot. He probably didn't consider his life and his art to be a service to others, ...but in reality it was so, because his dedication to his art was the one and most important thing. He was always seeking to attain perfection. His attitude was very selfless, very giving - he consumed himself in music to give to others. He would say: "I live it. I know that people leave my concerts more pure, more beautiful inside, and striving for the better." It was not really HIS music, but the beautiful music that he played. So I think this is what service is - service to the people and to the art.

마리나 네이가우스 (스타니슬라프의 딸) : 그 자신은 큰 대화를 한 적이 없었어요. - 아마도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에게서 배운 것이겠죠. 모두 힘든 일이었죠. - 그는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많이 연습했죠. 그는 아마도 자신의 삶과 예술을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예술에 대한 그의 헌신이 하나이자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죠. 그는 항상 완벽해지려고 노력했어요. 그의 태도는 매우 이기적이지 않고 헌신적이었어요. -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음악에서 자신을 소비했죠. 그는 이렇게 말했을 거예요. - “나는 살아간다. 나는 사람들 내면에 내 콘서트를 더 순수하고 아름답게 남기며, 더 나은 것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실제로 그것은 그의 음악이 아니라 그가 연주했던 아름다운 음악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것이 사람들과 예술에 대한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Chopin Scherzo No. 2 / 쇼팽 스케르초 2번
Stanislav Neuhaus plays Chopin's Scherzo No. 2, 1956 recording
Stanislav Neuhaus plays Chopin's Scherzo No. 2, 1979 recording

Valeri Voskoboinikov, the president of the Musical Association "Heinrich Neuhaus" (Italy): Something in that music, in that story, was very close to the life of Stanislav Genrikhovich himself. He understood it so well that he felt absolutely free in all those mood changes...in all that melodiousness...all that passion. And it was strikingly natural. It's the most difficult thing in Chopin to play it naturally. Our generation already couldn't do it, and - I was giving it some thought later - it was probably because we were too "unfree". One should be absolutely free to play Chopin. Let's recall that in 1949, I think, he was selected as the best Soviet pianist to go the International Chopin Piano Competition...but he was literally taken off the plane. Such things don't go away without leaving any scars. He probably would have won a very high prize at that prestigious competition...because the pianists who did win prizes there were not of a higher level...at least not as Chopin performers, pardon me. Stasik had an unsuccessful performance at a piano competition in Paris, and Arthur Rubinstein told him then: "You shouldn't go to piano competitions, because you are your father's son and both of you are pianists who are not made for competitions. It's sport here, not art, so it's not for you."

발레리 보스코보이니코프 (이탈리아의 하인리히 네이가우스 음악 협회장) : 그 이야기에서 그 음악의 뭔가가 스타니슬라프 겐리호비치 자신의 삶과 매우 가까웠어요. 그는 모든 기분 변화...듣기 좋은 모든 것...모든 열정에서 절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잘 이해했죠. 그리고 그것은 놀랍도록 자연스러웠어요. 쇼팽에서 자연스럽게 연주하기란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 세대는 이미 그것을 할 수 없었는데 - 저는 그것을 나중에 생각하고 있었는데 - 아마도 우리가 너무 “자유가 없어서”였겠죠. 쇼팽을 연주하려면 절대적으로 자유로워야 하거든요. 1949년을 떠올리자면,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에 참가할 최고 소비에트 피아니스트로 그가 선정되었지만...말 그대로 비행기가 떠났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은 어떤 상처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지 않아요. 그는 어쩌면 그 권위 있는 콩쿠르에서 최고상을 받았을지도 모르는데...입상한 피아니스트들이 더 높은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에...미안하지만 최소한 쇼팽 연주자들은 아니었죠. 스타식은 파리에서 열린 피아노 콩쿠르에서 실패했으며,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죠. - “당신은 아버지의 아들이고 둘 다 콩쿠르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은 피아니스트이기 때문에 피아노 콩쿠르에 가면 안 됩니다. 여긴 스포츠이지 예술이 아니므로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Rehearsal of Chopin's 2nd Piano Concerto, 1978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리허설 1978

Polish artists and musicians always get a heartfelt welcome in the Soviet Union. A rehearsal of Polish music at the Grand Hall of the Moscow Conservatoire. Polish conductor Karol Stryja and Soviet pianist Stanislav Neuhaus.

폴란드 아티스트들과 음악가들은 항상 소련에서 진심으로 환영받는다. 모스크바 음악원 대강당에서의 폴란드 음악 리허설. 폴란드 지휘자 카롤 스트리야와 소비에트 피아니스트 스타니슬라프 네이가우스.

Heinrich Neuhaus, Stanislav Neuhaus, Svyatoslav Richter

하인리히 네이가우스, 스타니슬라프 네이가우스,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Professor Andrei Zolotov: I remember one of those days when Sviatoslav Richter was playing at Tchaikovsky Concert Hall and Stanislav Neuhaus was playing at the Grand Hall of the Moscow Conservatoire. I attended Stasik's concert, and the hall was full. Even the fact that Richter was scheduled to give a concert at the same time couldn't take away his (Stasik's) audience. People went to his concerts to listen to some real...real manifestation of life in music. We can talk a lot about exactly what made his interpretations different from those of the other great masters, but that's a separate topic. While performing, he was completely immersed in the music at hand...even as it further transformed the musician that he was. Maybe during concerts, while on stage, he was most himself. He was most focused, most open, yet at the same time he was very reserved...that absolutely gorgeous posture of his...no swaying, no 'wallowing in virtuosity'. I was in his dressing room after the concert when Pasternak came in with the words, "Stasik, you are like Phoenix, you are getting reborn!" It was said in that deep and low voice of his. By the way, at that moment he seemed like he was not very tall. Next to Stasik, Pasternak looked just like some amazed listener from the audience, not like a great poet. Yes, because the poetry at that moment was in Neuhaus.

안드레이 졸로토프 교수 :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가 차이코프스키 콘서트홀에서 연주하고 스타니슬라프 네이가우스가 모스크바 음악원 대강당에서 연주했던 시절 중의 하나를 기억합니다. 저는 스타식의 콘서트에 참석했고, 홀이 가득 찼죠. 리히터가 동시에 콘서트를 열 예정이라는 사실조차도 그(스타식)의 청중을 빼앗을 수 없었죠. 사람들은 그의 콘서트에 가서 음악에서 인생의 실제적 표현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해석이 다른 위대한 거장들의 해석과 다른 점을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것은 별도의 주제입니다. 연주하는 동안, 그는 음악가를 완전히 변형시켰음에도 불구하고...가까이 있는 음악에 완전히 몰두했어요. 어쩌면 콘서트 동안 무대에서 그는 가장 자신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그는 가장 집중되어 있었고, 가장 개방적이었지만 동시에 매우 내성적이었는데...그의 절대적인 화려한 자세는...흔들림이 없었으며, ‘고도의 예술적 기교에 젖어있는 것’이 아니었죠. 파스테르나크가 이렇게 말하러 왔을 때, 저는 콘서트 후 그의 탈의실에 있었어요. “스타식, 당신은 불사조 같아요, 다시 태어나고 있으니까요!” 그는 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그런데 그 순간 그는 키가 크지 않은 것처럼 보였어요. 스타식 옆에 있는 파스테르나크는 위대한 시인이 아닌, 청중 속에 있는 놀라운 청취자처럼 보였어요. 그래요, 당시의 시는 네이가우스 안에 있었으니까요.

Bella Akhmadulina, "Return to Peredelkino", dedicated to Stanislav Neuhaus:
"The riddle lingered in the dark,
And now the answer will glitter forth.
I look at the dome in the hour of sunset,
And a clear opening appears in the sky.
Arrogant is the immortal soul,
And what is the temporary stronghold of the soul?
It desires to live without delay,
But it does recognize this place.
What is the connection between it and the body,
One will be surprised not to guess.
In the distance, down below, behind the field of white
The window also tells the same story.
It grows more righteous, more defenseless
This life of the light in the valiant window.
That is 'Hello' for me through the haze, through the hoarfrost,
That is my reproach and my edification.
More pleading than tears and words,
And louder than the expressions of the mouth
Is the light that radiates from the window.
And I am ready, and I will not become guilty before it.
Neither I will taint myself with glory,
Nor will the field, where the creek flows,
Wish to become a landfill
For alien and unnecessary things."

벨라 아흐마둘리나, 스타니슬라프 네이가우스에게 헌정된 시 <페레델키노로 돌아가다>
“수수께끼는 어둠 속에 남아있으며,
이제 답이 멀리서 빛날 것이네.
나는 일몰 시간에 돔을 보며,
확실한 시작이 하늘에 나타나네.
도도함은 불멸의 영혼이며,
영혼의 일시적 거점은 무엇인가?
지체 없이 살기를 열망하지만,
이곳을 인식하네.
그것과 몸 사이의 연결은 무엇인가,
추측하지 않는 것이 놀라울 것이네.
먼 곳에 아래쪽에 흰 들판 뒤에서
창문도 같은 이야기를 하네.
더 정의롭게, 더 무방비하게 자라네
용맹한 창문에서 이 빛의 인생.
그것은 안개를 통해, 흰서리를 통해 내게 ‘안녕’ 하고 인사한다네,
그것은 나의 비난이자 나의 교화라네.
눈물과 말보다는 애원이며,
입에서 나오는 표현보다 더 크다네
빛은 창문에서 나오는 것인가.
그리고 나는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전에는 죄가 없을 걸세.
나는 영광으로 내 자신을 더럽히지 않을 걸세,
개울이 흐르는 밭도,
매립되길 바라며
이방인과 불필요한 것들을 위해.”

[Chopin Etude in c, Op. 25 No. 12]

From a letter of Stanislav Neuhaus to Tatiana Pospelova: "I've been practicing with pleasure...even intoxication, for two days now, and again, the thought of not being able to get closer to the music is killing me. It will flicker and then disappear like the elusive bluebird. And all our efforts and exhausting work are only aimed at looking for it again and again...chasing after it, losing its trail, and then all over again, with no end. In essence, it's a pointless exercise. Only those will be successful who will be able to deceive the audience...to make them believe that they hold the bluebird in their hands. So it means that one should strive for deception, a lie? And the more honest the artist is, the more s/he should strive for it? This is very tragic. I can only imagine how intensely the composers feel the tragedy of the situation...bound as it is by so many conventions, and very rarely experiencing just a little bit of satisfaction...having managed merely to hint at the existence of music. It's terrifying to even think about it. But nonetheless, the music does exist somewhere. And that makes life beautiful."

타티아나 포스펠로바에게 보내는 스타니슬라프 네이가우스의 편지에서 : “저는 즐겁게 연습해왔습니다...심지어는 술에 취해서도, 이틀 동안 지금, 그리고 다시, 음악에 더 가까이 갈 수 없다는 생각이 저를 죽이고 있습니다. 깜박거리면서 찾기 힘든 파랑새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노력과 고단한 일은 계속해서 그것을 몇 번이고 다시 찾고...쫓아가며...흔적을 잃은 다음, 끝없이 계속해서 다시 찾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본질적으로 무의미한 연습이죠. 파랑새를 쥐고 있다고 믿게 하려면...청중을 속일 수 있는 사람들만이 성공할 것입니다. 그러면 기만, 거짓말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까요? 그리고 아티스트가 정직할수록, 그/그녀는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이것은 매우 비극적입니다. 작곡가들이 그 상황에 대한 비극을 얼마나 강렬하게 느끼는지 상상할 수 있는데...너무나도 많은 관례에 의해 구속되어 있고, 약간의 만족감을 거의 경험하지 않으며...음악의 존재를 암시할 뿐이죠.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도 끔찍해요. 그럼에도 음악은 어딘가에 존재하죠. 그리고 그것은 인생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From the memoirs of Aldona Dvarionaite, a pupil of Stanislav Neuhaus: It's January 18th, 1980. There is a concert at the Grand Hall of the Moscow Conservatoire. In the program - music of Chopin: the four Ballades and Sonata in C minor. Later people will share their unforgettable experiences and joy, but none will predict that they are listening to him for the last time.

스타니슬라프 네이가우스의 제자 알도라 드바리오나이테의 회고록에서 : 1980년 1월 18일입니다. 모스크바 음악원 대강당에서 콘서트가 있습니다. 프로그램에는 쇼팽 4개의 발라드와 소나타 1번이 있습니다. 나중에 사람들은 잊을 수 없는 경험과 기쁨을 나누게 되지만, 아무도 그들이 마지막으로 그의 연주를 듣고 있다고 예측하지 않을 것입니다.

Elena Richter: I remember his last concert very well. It was an extremely difficult concert, just a few days before his death - the circumstances surrounding the concert were terrible. He made some extraordinary efforts to play in it. He had been in hospital right before that; I had been to visit him. We were walking down the alley, and I asked him: "Are you going to play in the concert?" He said, "If I am still alive...if I am still alive." Exactly in 10 days, he was brought to the same hall of the Moscow Conservatoire, ...and he had on the same black velvet suit...only the expression on his face was frozen - for eternity. Very quietly, as if in a whisper, his playing can be heard...but it's a recording this time. The hall is full of people listening in silence.

엘레나 리히터 : 저는 그의 마지막 콘서트를 아주 잘 기억합니다. 사망하기 며칠 전에 열린 매우 힘든 콘서트였어요. - 콘서트 주변 환경은 끔찍했죠. 그는 연주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어요. 그는 그 직전에 병원에 있었는데, 저는 그를 방문했죠. 우리는 골목을 걷고 있었고, 제가 그에게 질문했어요. - “콘서트에서 연주하실 건가요?”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아직 살아있다면...여전히 살아있다면.” 정확히 10일이 지나서 그는 모스크바 음악원의 같은 강당에 끌려갔고, ...그는 같은 검은 벨벳 수트를 입고 있었는데...얼굴의 표정만이 얼어붙었어요. - 영원토록. 속삭이는 것처럼 매우 조용히, 그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어요...하지만 이번에는 레코딩입니다. 홀은 조용히 듣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Marina Neuhaus: It was a terrible blow for everyone, for every music lover. He had his own audience and a lot of admirers - it was a tragedy for them, too. Not to mention what it was for us, for the family - for Mama, for me, and for my brother. We could hardly live through it. We couldn't listen to any music at all for a while after his death...especially his playing, because it was all so...alive. But then I somehow transcended that barrier, and I felt that he was still with us, that he hadn't left. That gave me incredible strength and I grew in faith. I became very religious after that. I felt that everything was...he was...that he was alive. But of course I missed him terribly. I still miss him...very much.

마리나 네이가우스 : 모든 사람에게, 모든 음악 애호가에게 끔찍한 타격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자신의 청중과 많은 추종자들이 있었어요. - 그들에게도 비극이었죠. 말할 것도 없이 우리에게, 가족에게 - 엄마, 저, 그리고 제 형제에 대해서요. 우리는 고난을 이기기 힘들었어요. 우리는 그가 죽은 이후 한동안 음악을 전혀 들을 수 없었어요...특히 그의 연주, 그것이 모두...생생했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어떻게든 그 장벽을 넘었으며, 그가 아직 우리와 함께 있고, 그가 떠나지 않았다고 느꼈어요. 그것은 제게 놀라운 힘을 주었으며 믿음 속에서 성장했어요. 저는 그 후 매우 신앙심이 깊어졌어요. 저는 그 모든 것이...그는...그가 살아있다고 느꼈어요. 그러나 물론 저는 그를 몹시 그리워했어요. 아직도 그를...매우 많이 그리워합니다.

Andrei Zolotov: Going back to my "Ballade"...As fate would have it...the movie was finished - and he watched it when he came to the studio - but it wasn't programmed for the longest time. Finally it was decided upon - the date was set, the hour, the schedule was printed already...and on that day I found out that he had died. I went to Peredelkino right away, it was almost evening. I knocked at the door, and Natacha Pasternak, Lyonya Pasternak's wife, mistook me for the priest they were waiting for. I had a long beard, and it was dark. But then we immediately recognized each other, of course. I went in and I saw him, lying - how do you say it - on his deathbed. And on that day, in those very moments, "Ballade" was playing on TV. So Stasik was lying there...and, at the same time, he was playing for us all. There was this visual conjunction of life and death iin one moment. His favorite dog was howling under the table...or maybe it wasn't, I don't remember now. In any case, it was sitting under the table. It was like a mystical act - life passed into music...forever.

안드레이 졸로토프 : 제 <발라드>로 돌아가면서...운명에 따라...영화가 끝났으며 - 그가 스튜디오로 왔을 때 그는 그것을 봤지만 - 가장 오랫동안 프로그램으로 제작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것은 결정되었습니다. - 날짜가 정해졌고 시간, 일정이 이미 인쇄되었으며...그날 저는 그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당장 페레델키노로 갔는데, 거의 저녁에 가까워졌죠. 저는 문을 두드렸고, 나타샤 파스테르나크와 리오냐 파스테르나크는 저를 그들이 기다리는 성직자로 착각했죠. 수염이 긴데다가 어두웠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물론 즉시 알아봤죠. 저는 들어가서 그가 누워있는 것을 봤어요. - 어떻게 말할까요. - 그의 죽음의 침대에서. 그리고 그날, 바로 그 순간에 TV에서 <발라드>가 재생되고 있었어요. 그래서 스타식은 거기에 누워 있었고...동시에 그는 우리 모두를 위해 연주하고 있었죠. 삶과 죽음의 시각적 연결이 한 순간에 있었어요. 그가 가장 좋아하는 개가 탁자 밑에서 울부짖고 있었거나...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기억나지 않네요. 어쨌든, 탁자 밑에 앉아있었어요. 신비로운 행동 같았어요. - 인생이 음악의 일부가 되었죠...영원히.

Fragment from the movie "Ballade", 1979, Director Natalya Pavlova-Arbenina

쇼팽 발라드 4번 - 나탈리야 파블로바-아르베니나 감독의 1979년 필름 <발라드>에서 발췌

Epilogues / 에필로그들
Iliya Karzov, a student of the Chemistry Department at the Moscow State University: I discovered an old LP in my mother's wardrobe. Until the last moment, I was sure it was Heinrich Neuhuas who was playing because I had never heard anything at all about Stanislav Neuhaus. When the music began, from the very first chords, I felt the light. It's very hard to put into words...but one can experience a similar feeling when going out into the streets of one's city after a long illness...one sees the same old shabby buildings and lone, leafless trees...one sees big crowds of people going about their business in a hurry; one sees a 'whirlpool' of day-to-day ordinary life. And then, in that ordinary life, one notices something beautiful, and one doesn't understand why!

일리야 카르조프 (모스크바 국립 대학교 화학과 학생) : 어머니의 옷장에서 오래된 LP를 발견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저는 스타니슬라프 네이가우스에 대해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하인리히 네이가우스가 연주하고 있다고 확신했어요. 음악이 시작되었을 때, 첫 화음부터 빛을 느꼈습니다. 말로 표현하기는 매우 어렵지만...오랜 병을 앓고 나서 도시의 거리로 나갈 때와 비슷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는데...낡은 초라한 건물과 고독한 잎이 없는 나무를 보게 되며...많은 사람들이 서둘러 자신의 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보는데, 일상적인 평범한 생활의 ‘소용돌이’를 봅니다. 그리고 그 평범한 삶에서, 아름다운 뭔가를 발견하며, 왜 그런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Andrei Zolotov: Stanislav Neuhuas is a great Russian artist. And that he should remain. He is a role model for all the Russian artists: not to seek fame - it will come by itself, if it will...not to be useless for humanity; not to hinder others, and...to add something to art and to life. Stanislav Neuhaus added a lot. He added his image, his way of life in art. He added some unsullied atmosphere of his presence on Earth.

안드레이 졸로토프 : 스타니슬라프 네이가우스는 위대한 러시아 아티스트입니다. 그리고 그는 남아있어야 합니다. 그는 모든 러시아 아티스트들의 롤 모델입니다. - 명성을 구하지 않도록 -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 자체로 올 것이고...인류에게 쓸모없도록 -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으며...예술과 삶에 뭔가를 추가합니다. 스타니슬라프 네이가우스는 많이 추가했죠. 그는 자신의 이미지, 예술에서의 삶의 방식을 추가했습니다. 그는 지구에서 그의 존재에 대한 아직 순수한 분위기를 더했습니다.

From the article of Stanislav Neuhaus "About poetry": Poetry, music, painting, architecture...each in its own language talks, in essence, about one and the same thing: About the beauty of the world and the beauty of the human soul...about a loftiness of thought and the flight of ideas; about happiness and the tragedies of existence. There is something that is always present in every true work of art...something that makes up its essence, its beauty, and its pathos...something that gives art its incredible power to influence. It's poetry. Without it, any, even the most perfect - from the formal point of view - creation or performance seems dead and useless. Such a performance might even bring us short-lived joy due to its formal perfection, but it will soon be all but forgotten. And the opposite is true - the more obvious is the presence of poetry in the creation or performance...the greater is the impact it has on the listener. It awakens the somnolent; it calms the restless; it works itself deep into the soul...sometimes even for life. And so, to rephrase the words of the remarkable French poet Paul Verlaine, "Poetry comes first!"

스타니슬라프 네이가우스를 다룬 기사 <시에 대하여>에서 : 시, 음악, 그림, 건축...본질적으로 각각의 언어로 하나와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 세상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영혼의 아름다움에 대해...많은 생각과 아이디어의 비행에 대해, 행복 그리고 존재의 비극에 대해. 모든 진정한 예술 작품에는 항상 존재하는 뭔가가 있다...그 본질, 그 아름다움, 그리고 그 파토스(연민을 자아내는 힘)를 구성하는 뭔가가...예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그 놀라운 힘을 주는 것이다. 그것은 시이다. 그것 없이는, 심지어 가장 완벽한 - 형식적인 관점에서 볼 때 - 창작물이나 연주는 죽어서 쓸모없는 것 같다. 그런 연주는 형식적인 완벽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짧은 기쁨을 가져다줄 수도 있지만, 곧 거의 잊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 창작물이나 연주에서 시의 존재는 더욱 분명한데...청취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그것은 졸음을 깨우고, 불안을 진정시키며, 때로는 평생 동안...그 자체를 영혼 깊이 흥분시킨다. 따라서 유명한 프랑스 시인 폴 베를렌의 말을 바꾸면, “시가 가장 먼저다!”


러시아어라서 잘 모르므로 처음에는 음악과 영상으로 따라갔다. 하인리히 네이가우스의 아들이며 스타니슬라프 부닌의 아버지... 하인리히는 아무리 찾아봐도 유태계 여부가 안 나오는데 그 아들은 모친이 유태계인 건지... 후손인 하인리히 스타니슬라보비치 네이가우스는 나중에 이스라엘로 건너갔고 2017년에 사망했으며 그 아들이 피아니스트 아디 네이가우스. 그래서 독일과 폴란드의 피가 흐르는 부닌을 유태계라고 생각... 다행히 유튜브에 영어 자막이 있어서 받아 적었다. 동영상은 있으므로 유튜브에서 자막만 받았다. 아버지 것을 먼저 정리하느라고 고생 좀 해서 그런지 아들 건 더 수월하게 번역이 풀렸다. 시 번역 같은 경우에는 한글로 번역하면 행이 바뀌기도 하는데 그렇게 하려다가 편의상 그대로 뒀다. 학생 시절에 스타니슬라프 네이가우스의 스크리아빈 에튀드 연주를 좋아했던 기억도 난다. 이렇게 러시안 피아노 스쿨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네이가우스 부자에 대해 주변인들의 회고를 통해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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