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en.wikipedia.org/wiki/Garrick_Ohlsson
http://en.chopin.nifc.pl/chopin/persons/detail/id/2872
https://www.facebook.com/GarrickOhlsson/timeline?ref=page_internal
http://www.allmusic.com/artist/garrick-ohlsson-mn0000756978
http://www.bach-cantatas.com/Bio/Ohlsson-Garrick.htm
http://www.opus3artists.com/artists/garrick-ohlsson
http://www.hyperion-records.co.uk/a.asp?a=A1853
http://gayinfluence.blogspot.kr/2013/05/garrick-ohlsson.html
건반악기의 표현력과 정통 피아니즘을 고수하는 이 시대 마지막 거장. 쇼팽 음악과 라흐마니노프 음악 등에 해박한 지식과 설득력 있는 해석으로 널리 알려진 정통 피아니스트.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에는 미국 출신의 피아니스트이면서도 폴란드의 국가적 영웅이 되다시피 했으며 르몽드 지는 ‘쇼팽 등 특히 낭만파 음악 해석에 있어 탁월한 기량을 자랑한다’고 격찬했다.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개릭 올슨은 낭만파 작곡가들의 작품 외에도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등 폭넓은 레퍼토리를 가진 연주자로 RCA, 버진 클래식스, 텔락, 넌서치 등 유수의 음반사에서 녹음 활동을 해왔다. 미국 태생으로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은 순수 미국인 연주자로서 밴 클라이번과 앙드레 프레빈 등의 뒤를 이어가고 있는 중견 연주자. 실업가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한다. 조기 수재 교육을 받은 뒤, 웨스트체스터 음악원에서 18세로 줄리아드 음악원에 진학. 1979년에 내한 공연을 가졌다.
올슨은 신장 190cm, 체중 240파운드(약 109kg)라는 거인으로, 좌우 양손 모두 1옥타브와 4도 내지 5도까지 닿는다고 한다. 이 야구 글러브와 같은 손으로 난곡을 쉽게 쳐 내는 모습은 정말 시원하다. 연주는 외모처럼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하여 병적인 그늘 따위는 털끝만치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테크닉에 내맡긴 채 그냥 척척 친다는 것은 결코 아니고, 청년 음악가다운 상쾌한 서정도 충분히 나타내고 있다. 음색의 변화도 좋아서 터치로 컨트롤해서, 싱싱한 음악을 노래하게 하는 모습은 역시 보통의 테크니션은 아니다. - 음악사 대도감
타건이 강한 호쾌한 스타일로 유명했지만 초기에는 그 특질이 자칫 표현면에서 경박하다는 인상을 주었는데 최근의 연주에서는 성능 좋은 스포츠카와 같은 예전의 이미지가 많이 사라졌다. 1989년 카토비체(폴란드)에서 가진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 라이브 녹음(폴란드 방송 교향악단)에서는 차분하게 낭만적인 서정성을 추구하는 자세를 느낄 수 있어 그 변모가 인상적이다. 레퍼토리도 자신의 스타일을 세련되게 하기 위해 낭만주의의 대곡인 부조니의 피아노 협주곡(도흐나니/클리블랜드 관현악단 외, 네덜란드 필립스)을 녹음하는 등 의욕을 보이고 있다. - 노모토 이사오
“수정처럼 맑은 소리를 내는 피아니스트”라는 찬사를 받았다. - 1979년 5월 22일 경향신문
Garrick Ohlsson is a pianist with a flawless technique, a strong grasp of form, and a clean, non-romanticized style of performing.
뛰어난 테크닉, 강한 구성, 깔끔하고, 낭만적이지 않은 연주 스타일을 가진 피아니스트.
Garrick (Olof) Ohlsson was born on 3 April 1948 in White Plains, Bronxville, New York. Son of a Swedish father and Italina (Sicilian) mother, Garrick Ohlsson took up the piano at the age of eight at the Music Conservatory of Westchester, New York, with Thomas Lishman. After he saw Rubinstein in concert, he told interviewer Michael Steinberg, his choice of career was set. "I was blasted into orbit. And that's when I said in my mind...when other little boys say, 'I want to be a fireman,' that's what I want to do." In 1961, he entered the preparatory course of the Juilliard School when he was 13, where he studied with Sascha Gorodnitzki; from 1968 remaining at Juilliard for his bachelor's degree in music (earned in 1971), he studied with Rosina Lhévinne. Private studies with Olga Barabini (a pupil of Claudio Arrau and Josef Hofmann), Irma Wolpe, and Claudio Arrau rounded out Ohlsson's education. He made his first public appearance at the age of 12, in 1960. During his student days he was a whiz at math and languages (he speaks English, Polish, Italian, Spanish, French, German and Swedish).
개릭 올슨은 1948년 4월 3일 뉴욕 주 브롱스빌 화이트플레인스의 스웨덴계 아버지와 이탈리아계(시칠리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8세에 뉴욕 웨스트체스터 음악원에서 토머스 리쉬먼과 함께 공부.
9세에 콘서트에서 루빈스타인을 본 후 그는 그의 경력에 대한 선택이 설정되었다고 인터뷰 진행자인 마이클 스타인버그에게 말했다. “나는 궤도로 쏘아 올려졌다. 그리고 내가 내 마음에 말했을 때였다...다른 소년이 ‘나는 소방관이 되고 싶다’고 말할 때 그게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1960년 12세에 첫 공개 연주회.
1961년 13세에 줄리아드 학교 예비 과정에 입학해서 사샤 고로드니츠키 사사.
1968년부터 로지나 레빈 사사.
1971년 학사 학위.
올가 바라비니(클라우디오 아라우와 요제프 호프만의 제자), 이르마 볼페, 클라우디오 아라우와의 개인 교습은 올슨의 교육을 완성시켰다.
학생 시절에 수학과 언어(영어, 폴란드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웨덴어)에서 수재.
Although Ohlsson is especially noted for his performances of the works of Chopin, Mozart, Beethoven and Schubert, he has a broad range from Bach and Busoni to Copland and Gershwin. Writing in The New York Times, music critic Allan Kozinn has characterized Ohlsson's repertory as "huge."
올슨은 특히 쇼팽,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에 뛰어나지만 바흐와 부조니부터 코플랜드와 거슈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다.
After winning First Prizes at the 1966 Busoni Competition in Italy and 1968 Montréal Piano Competition, he made his New York recital debut on January 5, 1970. Later that year he gained international recognition when he became the first American pianist to win the prestigious quinquennial Chopin Competition in Warsaw. A Polish writer described Ohlsson as a "near-butterfly" for his ability to traverse the entire spectrum of 18 dynamic degrees discernible on the modern piano, from the thundering fortississimo to the finest pianississimo, with reference also to his height (6 foot, 4 inches), weight (225 lbs.), and strech of hands (an octave and 5th in the left hand and an octave and a 4th in the right hand).
부조니 콩쿠르와 몬트리올 콩쿠르 우승 후 1970년 1월 5일, 뉴욕 데뷔. 폴란드 작가는 그의 외모(6피트 4인치의 키, 225파운드의 체중, 도~솔까지 12도가 닿는 왼손, 도~파까지 11도가 닿는 오른손)에 대한 언급과 함께 우레와 같은 포르티시시모부터 더없이 아름다운 피아니시시모까지 현대 피아노로 식별 가능한 18개 동적도의 전체 스펙트럼을 가로지르는 그의 능력에 대해 “나비에 가깝다”고 묘사했다.
Working with impresario Sol Hurok, he went on his first grand tour of Europe in 1969. His performances at the Santa Cecilia Academy in Rome and the La Fenice in Venice were particularly well received. After his triumph at the Chopin Competition, Ohlsson became a very popular pianist with a heavy invitations overload. American newspapers wrote of him as a national hero; Sol Hurok organized a major US tour, consisting of over 40 concerts. Since that time, Mr. Ohlsson has continued to tour extensively, playing with the best conductors and orchestras in the world. In 1998 he inaugurated the Beijing Music Festival, performing with the Berlin Radio Orchestra under Rafael Frühbeck de Burgos. In 1999, in celebration of the 150th anniversary of Chopin's death, he gave a series of Chopin recitals at European festivals, including La Roque d'Anthéron, the Fêtes Romantiques de Nohant, and the Klavier-Festival Ruhr in Essen. Mr. Ohlsson often performs in Poland as a recitalist and soloist with symphonic orchestras. His playing is a favourite of Polish audiences, highly praised for the virtuosity and grandeur of his interpretations of Chopin, Liszt and Scriabin.
연출가 솔 휴록과 함께 작업하면서 1969년 유럽에서 첫 그랜드 투어.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 아카데미’와 베니스의 오페라 극장 ‘라 페니체’에서의 연주가 특히 반응이 좋았다. 쇼팽 콩쿠르 우승 후 엄청난 초청을 받는 매우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미국 신문은 그를 ‘국가 영웅’이라고 썼다. 솔 휴록은 40개 이상의 콘서트로 이루어진 주요 미국 투어를 조직했다. 그 이후 올슨은 세계의 최고 지휘자 및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면서 폭넓게 투어를 계속했다. 1998년 라파엘 브뤼벡 데 부르고스의 지휘로 베를린 라디오 오케스트라와 함께 베이징 음악제 개막 연주. 1999년 쇼팽 서거 150주기 기념 행사로 라 로크 당테롱, 노앙의 낭만적인 휴일, 에센의 루르 클라비어-페스티벌을 포함한 유럽 페스티벌에서 쇼팽 리사이틀 시리즈. 폴란드에서 종종 리사이틀리스트 및 솔로이스트로서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 폴란드 청중이 그의 연주를 좋아하며, 그의 쇼팽, 리스트, 스크리아빈 해석은 뛰어난 연주 기교와 장엄함으로 극찬 받는다.
In 1966 he won the Busoni Competition in Italy, and in 1968, the Montreal Piano Competition, but it was his 1970 victory in the Chopin Competition in Warsaw that launched his career. He was the first American winner, and his victory gained some of the same kind of attention as had Van Cliburn's Tchaikovsky Competition triumph a little over a decade earlier. A Warsaw critic called Ohlsson a "near-butterfly" of a pianist, and the young pianist had a distinctive image to go with his credentials.
1966년 이탈리아 부조니 콩쿠르와 1968년 몬트리올 콩쿠르에서 우승했지만 1970년 바르샤바 쇼팽 콩쿠르 우승은 그의 경력의 시작이었다. 그는 첫 미국인 우승자가 되었고, 그의 우승은 불과 12년 전에 밴 클라이번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것과 같은 관심을 받았다. 바르샤바 비평가는 올슨을 “나비에 가까운” 피아니스트로 불렀고, 젊은 피아니스트는 그의 자격과 어울리는 독특한 이미지를 가졌다.
Garrich Ohlsson has made nearly a dozen tours of Poland, where he retains immense personal popularity. He has appeared with major symphony orchestras in Europe, USA, Japan, New Zealand Symphony Orchestra. In the late 1980's and early 1990's he appeared with the Cleveland Orchestra, Chicago Symphony Orchestra, Philadelphia Orchestra, Pittsburgh Symphony Orchestra, and San Francisco Symphony Orchestra in the USA; European engagements with the Münchner Philharmoniker, North German Radio Orchestra, Rotterdam Philharmonic Orchestra, all the London orchestras; City of London Festival, South Bank Summer Music, Promenade Concerts with BBC Symphony Orchestra; Festivals, recitals, concerts in Bergen, Prague, Sofia, Dubrovnik, Tivoli. He has also performed with symphony orchestras of Saint Louis Symphony Orchestra, Cincinnati Symphony Orchestra, Indianapolis Symphony Orchestra, Houston Symphony Orchestra, Baltimore Symphony, Pittsburgh Symphony Orchestra, Los Angeles Philharmonic Orchestra, Seattle Symphony Orchestra, Denver Symphony, National Symphony Orchestra (Washington D.C.), and Berkeley; and the National Arts Centre, Saint Paul Chamber Orchestra, and the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at Lincoln Center.
개인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보유하고 있는 폴란드에서 12회에 가까운 투어를 가졌다. 유럽, 미국, 일본의 주요 심포니 오케스트라 및 뉴질랜드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미국에서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 유럽에서는 뮌헨 필하모닉, 북독일 라디오 오케스트라,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런던의 모든 오케스트라와 협연. 런던 시 페스티벌, 사우스뱅크 여름음악제,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프롬나드 콘서트에 출연. 베르겐, 프라하, 소피아, 두브로브니크, 티볼리에서 페스티벌, 리사이틀 및 콘서트. 세인트루이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신시내티 심포니 오케스트라, 인디애나폴리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볼티모어 심포니,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시애틀 심포니 오케스트라, 덴버 심포니, 워싱턴 DC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버클리 오케스트라, 국립예술센터 오케스트라, 세인트폴 실내 오케스트라와 협연 및 링컨 센터에서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
Ohlsson played with Eugene Ormandy and the Philadelphia Orchestra, gave a solo recital in New York and played at the White House for President Nixon. In the early 1970s he toured Europe extensively, made a three-week tour of Japan and made his London orchestral debut playing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 3 in D minor Op. 30. During the 1970s he made a huge number of appearances, playing around ninety concerts a season. He reduced this, but has continued to play regularly in North America, Europe, the Far East and New Zealand. Today he is in great demand, particularly in America, where in one season he can appear with all of the major orchestras. During the 1997–1998 season Ohlsson performed complete cycles of Chopin’s works in London, Paris and Warsaw and in the mid-1990s gave the cycle in New York and many other American cities. In the summer of 2003 he appeared at many music festivals including Tanglewood, Ravinia, Riverbend, and Mostly Mozart.
유진 오먼디의 지휘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협연.
뉴욕에서 독주회.
닉슨 대통령을 위해 백악관에서 연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으로 런던 데뷔.
1970년대 동안 한 시즌에 90여 회 이상 연주.
연주 횟수를 줄였으나 북아메리카, 유럽, 동아시아, 뉴질랜드에서 정기적으로 연주.
한 시즌에 모든 주요 오케스트라와 협연 가능한 미국에서 특히 수요가 많다.
1997~1998 시즌에 런던, 파리, 바르샤바에서 쇼팽 작품 전곡 연주.
1990년대 중반 뉴욕과 미국의 다른 다수 도시들에서도 전곡 연주.
2003년 여름에 탱글우드, 라비니아, 리버벤드, 모스틀리 모차르트를 포함하여 다수 음악제 출연.
Ohlsson has maintained a strong association with the music of Chopin, and has played the Polish master's complete piano works several times in recital and on recordings. His Chopin interpretations favor intense emotionalism over a languid, swooning salon style. Ohlsson is by no means exclusively a player of Chopin; however, his repertory extends from Haydn to 20th century masters and includes more than 80 works for piano and orchestra. He tours and appears as a guest soloist with orchestras around the world.
쇼팽의 음악과 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폴란드 마스터의 피아노 작품 전집을 리사이틀과 녹음에서 여러 번 연주. 그의 쇼팽 해석은 나른하고 황홀해하는 살롱 스타일을 넘어 강렬한 감성주의를 선호한다. 올슨은 결코 쇼팽뿐인 연주자가 아니다. 그의 레퍼토리는 하이든부터 20세기 음악까지 폭넓고 80개 이상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들을 포함한다. 연주 여행 및 전 세계의 오케스트라들과 함께 객원 솔로이스트로 출연. 특히 그의 쇼팽 연주를 존중하는 폴란드에서 12회 이상 투어.
During the 2002-2003 season, Ohlsson appeared as part of the Lincoln Center Great Performers series in New York, performing works by Busoni. A pianist completely consumed with musical life, Ohlsson has, when asked by an interviewer, been unable to remember what kind of car he drives.
2002~2003 시즌 동안 뉴욕 링컨 센터 ‘위대한 연주자들 시리즈’의 일부로 출연해서 부조니 작품 연주. 음악 인생으로 완전히 소비하는 피아니스트인 올슨은 인터뷰 진행자가 물었을 때 그가 운전하는 자동차의 종류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Ohlsson is an avid chamber musician and has collaborated with the Cleveland, Emerson, Guarneri, Takács and Tokyo string quartets, among other ensembles. In 2005-2006, Ohlsson toured with the Takács Quartet. Ohlsson is also a founding member of San Francisco's FOG Trio, together with violinist Jorja Fleezanis and cellist Michael Grebanier. Passionate about singing and singers, Mr. Ohlsson has appeared in recital with such legendary artists as Magda Olivero, Jessye Norman, and Ewa Podles. He also performs in partnership with violinist Hilary Hahn.
열렬한 실내악 연주자로 클리블랜드, 에머슨, 과르네리, 타카치, 도쿄 스트링 콰르텟 등과 협연.
2005~2006년 타카치 콰르텟과 투어.
바이올리니스트 조르자 플리자니스, 첼리스트 마이클 그레버니어와 함께 샌프란시스코의 포그 트리오 창단 멤버.
성악과 성악가들에 대한 열정으로 전설적인 성악가 에바 포들레스, 마그다 올리베로, 제시 노먼과 협연.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과도 협연.
During the summer of 2006, Garrick Ohlsson presented the complete cycle of L.v. Beethoven piano sonatas in both the Ravinia and Tanglewood festivals, a cycle he performed for the first time in the summer of 2005 at Switzerland's prestigious Verbier Festival. In 2006-2007, he opened the Mostly Mozart Festival in New York in a live, nationally televised performance. He also appeared in North America and Canada with the Atlanta Symphony Orchestra, Detroit Symphony Orchestra, Milwaukee Symphony Orchestra, Montreal Symphony Orchestra, New Jersey Symphony Orchestra, and Pittsburgh Symphony Orchestra, among others. A series of recitals in Anchorage, Boston, Cleveland, Florida, Los Angeles, Ottawa, and San Francisco culminated in three recitals of L.v. Beethoven sonatas at Lincoln Center, and a performance of L.v. Beethoven's "Emperor" concerto at Carnegie Hall with Orchestra of St. Luke's. In Europe, he performed at the BBC Proms with the Budapest Festival Orchestra, at the Warsaw Chopin Festival, with the Czech Philharmonic, with the BBC Philharmonic, and in recital in Spain and Italy.
2006년 여름 동안 라비니아 페스티벌과 탱글우드 페스티벌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 (최초 전곡 연주는 2005년 여름의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
2006~2007 시즌, 전국적으로 텔레비전 생중계된 뉴욕 “모스틀리 모차르트 페스티벌”에서 개막 연주. 애틀랜타 심포니 오케스트라, 디트로이트 심포니 오케스트라, 밀워키 심포니 오케스트라,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 뉴저지 심포니 오케스트라,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과 함께 북아메리카와 캐나다에서 협연. 앵커리지, 보스턴, 클리블랜드, 플로리다, 로스앤젤레스, 오타와,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리사이틀 시리즈는 링컨 센터에서의 베토벤 소나타 리사이틀 3회, 세인트루크 오케스트라와 함께 카네기홀에서의 베토벤 “황제” 협연으로 끝났다. 유럽에서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BBC 프롬스에서 협연, 바르샤바 쇼팽 페스티벌에서 연주, 체코 필하모닉과 협연, BBC 필하모닉과 협연 및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리사이틀.
In the 2007-2008 season, Garrick Ohlsson appeared with the Atlanta Symphony Orchestra, Baltimore Symphony Orchestra, Boston Symphony Orchestra, Houston Symphony Orchestra, San Francisco Symphony Orchestra, and Toronto Symphony Orchestra, among others. Special projects included performances in Berkeley and Los Angeles with Mark Morris Dance Group and pianist Yoko Nozaki in Mozart Dances; performances with the Russian National Orchestra and Vladimir Jurowski in California and at New York's Lincoln Center; and a Florida tour with the Pittsburgh Symphony Orchestra. Additionally, he performed with the Warsaw Philharmonic Symphony Orchestra, RTVE Madrid, MDR Sinfonieorchester Leipzig, and Sydney Symphony Orchestra with Vladimir Ashkenazy.
2007~2008 시즌 애틀랜타 심포니 오케스트라,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 토론토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과 협연. 특별 프로젝트는 버클리와 로스앤젤레스에서 마크 모리스 댄스 그룹 및 피아니스트 요코 노자키와 함께 “모차르트 춤곡들” 협연, 캘리포니아와 뉴욕 링컨 센터에서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의 지휘로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와 협연,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플로리다 투어를 포함한다. 게다가 바르샤바 필하모닉 심포니 오케스트라, RTVE 마드리드 오케스트라, MDR 라이프치히 심포니 오케스트라,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지휘)와도 협연.
In the 2008-2009 season, Garrick Ohlsson appeared in North America with the Atlanta Symphony Orchestra, Philadelphia Orchestra, Pittsburgh Symphony Orchestra, Saint Louis Symphony Orchestra, and the National Symphony Orchestra, among others. He performed Prokofiev's Fifth Piano Concerto with Michael Tilson Thomas and the San Francisco Symphony Orchestra, followed by a west coast tour including Seattle and Los Angeles' Disney Hall. With pianist Yoko Nozaki, Ohlsson reprised their performances with Mark Morris Dance Group in the critically acclaimed Mozart Dances. With contralto Ewa Podleś, he embarked on a tour of North America, followed by the release of their live-recorded recital from London's Wigmore Hall, a project he will revisit with her in the same hall in December 2009. A recital project focusing on the piano music of Scriabin and Russian contemporaries, which began in San Francisco and San Diego in the spring of 2008, continued through the 2008-2009 season and included performances at New York's 92nd Street Y. In Europe, Ohlsson performed with the Salzburg Mozarteum and Hugh Wolff, Hallé Orchestra with both Mark Elder and Edward Gardner, and Deutsche Symphony Berlin.
2008~2009 시즌 애틀랜타 심포니 오케스트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 세인트루이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과 함께 북아메리카에서 연주. 마이클 틸슨 토머스의 지휘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협주곡 5번 협연은 시애틀과 로스앤젤레스의 디즈니 홀을 포함한 서부 해안 투어로 이어졌다. 피아니스트 요코 노자키와 함께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은 “모차르트 춤곡들” 공연에서 마크 모리스 댄스 그룹과 함께 재공연. 2008년 봄에 샌프란시스코와 샌디에이고에서 시작한 스크리아빈과 러시아 현대 피아노음악에 집중된 리사이틀 프로젝트는 2008~2009 시즌에 걸쳐 계속되었고 뉴욕 92번가 Y에서의 연주를 포함한다. 유럽에서는 휴 울프의 지휘로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협연, 마크 엘더와 에드워드 가드너의 지휘로 할레 오케스트라와 협연,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와 협연.
Highlights during the 2009-2010 season include Martinu's rarely performed Concerto No. 4 with the New York Philharmonic Orchestra and the BBC Scottish Symphony Orchestra as well as appearances with the San Francisco Symphony Orchestra, Houston Symphony Orchestra, Atlanta Symphony Orchestra, Vancouver Symphony Orchestra, Indianapolis Symphony Orchestra, San Diego Symphony Orchestra, Milwaukee Symphony Orchestra, Minneapolis Symphony Orchestra and Baltimore Symphony Orchestra.
2009~2010 시즌 동안의 하이라이트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 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애틀랜타 심포니 오케스트라, 밴쿠버 심포니 오케스트라, 인디애나폴리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샌디에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밀워키 심포니 오케스트라, 미니애폴리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뿐만 아니라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마르티누의 보기 드문 협주곡 4번 협연 및 BBC 스코티시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포함한다.
In 2010, he visited Australia and gave concerts in Melbourne.
2010년 오스트레일리아 방문 및 멜버른에서 콘서트.
Mr. Ohlsson brought Busoni's rarely programmed piano concerto to the National Symphony (Washington) and London's Barbican with the BBC Symphony Orchestra in the fall of 2014. 2015 marked the centenary of the death of Alexander Scriabin whose piano music Mr. Ohlsson presented in a series of recitals in London, San Francisco, Chicago and New York. He also returned to the orchestras of San Francisco, Detroit, Dallas, Houston, Baltimore, Minnesota, BBC Scotland and Prague where he is a frequent guest.
2014년 가을, 워싱턴 DC 국립 심포니 및 런던 바비칸 센터에서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부조니의 보기 드문 피아노 협주곡 연주. 2015년 알렉산더 스크리아빈 서거 100주기를 기념하여 런던,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뉴욕에서 스크리아빈 리사이틀 시리즈. 또한 그가 게스트로 자주 출연하는 샌프란시스코, 디트로이트, 댈러스, 휴스턴, 볼티모어, 미네소타, BBC 스코틀랜드, 프라하의 오케스트라들과 재협연.
The 2015-2016 season includes recitals in Berkeley, New York, Indianapolis, Brisbane, Seattle, La Jolla, Evanston, Forth Worth, Lincoln and Costa Mesa. In return visits to Australia he will appear in Perth, Brisbane, Sydney, Melbourne and Adelaide and for the first time with the New Zealand Symphony in Wellington and Auckland. With concerti as diverse as Beethoven, Brahms, Barber and Busoni he can be heard with orchestras in Boston, Los Angeles, Ottawa, Nashville, Indianapolis, Oregon, Warsaw, St. Petersburg, Manchester (UK) and Lugano (Switzerland).
2015~2016 시즌은 버클리, 뉴욕, 인디애나폴리스, 브리즈번, 시애틀, 라호이아, 에번스턴, 포트워스, 링컨, 코스타 메사에서의 리사이틀을 포함한다. 오스트리아 재방문에서 퍼스, 브리즈번, 시드니, 멜버른, 애들레이드에서 연주하고 웰링턴과 오클랜드에서 뉴질랜드 심포니와 함께 처음으로 협연. 베토벤, 브람스, 바버, 부조니만큼 다양한 협주곡들과 함께 보스턴, 로스앤젤레스, 오타와, 내슈빌, 인디애나폴리스, 오리건, 바르샤바, 상트페테르부르크, 영국 맨체스터, 스위스 루가노에서 협연.
Among his many recordings, Ohlsson undertook a survey of Chopin's complete piano music—including sonatas, preludes, etudes, ballades, rondos, scherzos, variations, polonaises, nocturnes, waltzes, mazurkas, concertos, and others. In 1989, he recorded Busoni's five movement Piano Concerto in C major, Op. 39 with the Cleveland Orchestra under Christoph von Dohnányi.
다수 녹음들 중에서도 소나타, 전주곡, 연습곡, 발라드, 론도, 스케르초, 변주곡, 폴로네즈, 녹턴, 왈츠, 마주르카, 협주곡 등 쇼팽 피아노 전곡 조사에 착수. 1989년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의 지휘로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함께 5악장 구성의 부조니 피아노 협주곡 녹음.
Mr. Ohlsson can be heard on the Arabesque, RCA Victor Red Seal, Angel, BMG, Delos, Hänssler, Nonesuch, Telarc, Hyperion and Virgin Classics labels. His ten-disc set of the complete Beethoven sonatas, for Bridge Records, has garnered critical acclaim, including a GRAMMY® for Vol. 3. His recording of Rachmaninoff’s Concerto No. 3, with the Atlanta Symphony and Robert Spano, was released in 2011. In the fall of 2008 the English label Hyperion re-released his 16-disc set of the complete works of Chopin followed in 2010 by all the Brahms piano variations, "Goyescas" by Enrique Granados, and music of Charles Tomlinson Griffes. Most recently on that label are Scriabin's Complete Poèmes and ètudes by Debussy, Bartok and Prokofiev. The latest CDs in his ongoing association with Bridge Records are "Close Connections", a recital of 20th-Century pieces, and two CDs of works by Liszt. In recognition of the Chopin bicentenary in 2010, Mr. Ohlsson was featured in a documentary "The Art of Chopin" co-produced by Polish, French, British and Chinese television stations. Most recently, both Brahms concerti and Tchaikovsky's second piano concerto were released on "live" performance recordings with the Melbourne and Sydney Symphonies on their own recording labels, and Mr. Ohlsson was featured on Dvorak's piano concerto in the Czech Philharmonic's live recordings of the composer's complete symphonies & concertos, released July of 2014 on the Decca label.
아라베스크, RCA 빅터 레드 실, 앤젤, BMG, 델로스, 핸슬러, 넌서치, 텔락, 하이페리언, 버진 클래식스 레이블에서 녹음.
베토벤 소나타 전곡 녹음은 그래미 상을 받은 3집 음반을 포함하여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2008년 가을, 잉글랜드 레이블 하이페리언에서 쇼팽 작품 전집 16장 재발매.
2010년 브람스 피아노 변주곡 전곡, 엔리케 그라나도스의 고예스카스, 찰스 톰린슨 그리프스의 음악 녹음.
2010년 쇼팽 탄생 200주년으로 폴란드, 프랑스, 영국, 중국 방송국 합작 다큐멘터리 <쇼팽의 예술>에서 연주.
2011년 로버트 스파노의 지휘로 애틀랜타 심포니와 협연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 음반 발매.
스크리아빈의 포엠 전곡 및 드뷔시, 바르톡, 프로코피에프 에튀드 녹음.
브리지 레코드와의 지속적인 관계인 최근 음반들로는 20세기 작품 리사이틀인 <클로즈 커넥션스> 및 리스트 작품을 녹음한 두 장의 음반이 있다.
멜버른 및 시드니 심포니와 협연한 브람스 협주곡들과 차이코프스키 2번 협주곡 모두 실황 연주 녹음이 그들의 소속 레이블에서 발매.
체코 필하모닉의 작곡가의 교향곡 및 협주곡 전곡 실황 녹음에서의 드보르작 피아노 협주곡 연주는 2014년 7월, 데카 레이블에서 발매.
A 2003 profile in the New York Times by James Oestreich mentioned that Ohlsson lives in San Francisco with his companion, Robert Guter, an historic preservationist. While Ohlsson doesn't like being labelled solely as a gay pianist, he doesn't pretend to be otherwise. He is out and proud, and “I'm no coward,” he says.
제임스 외스트라이히에 의해 뉴욕 타임스에서 2003년 프로필은 올슨이 그의 동반자인 역사 환경 운동가 로버트 구터와 함께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음을 언급했다. 올슨은 게이 피아니스트로만 표시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척하지 않는다. 그는 대놓고 자랑하고, “나는 겁쟁이가 아니라고” 말한다.
No coward, indeed. As proof, in 2013, Ohlsson released Close Connections, a disc on which most of the music was written by gay male composers. I received this album as a Christmas gift, and I’m embarrassed that I’m just now listening to it (sorry, Rob!). It contains Triptych (1969), a solo piano piece by Louis Weingarden (1943-1989) written for Ohlsson. Weingarden also wrote a piano concerto (1974) for Ohlsson, and that composition was nominated for the Pulitzer Prize in 1977. Weingarden and Ohlsson were good friends, even roommates for a time. Also on this disc is Handwork, a piece for solo piano commissioned by Ohlsson in 1986, written by gay composer William Hibbard (1939-1989). Robert Helps (1928-2001), another gay composer, is represented by the solo piano composition “Shall We Dance”.
정말 겁쟁이가 아니다. 그 증거로 2013년에 올슨은 게이 작곡가들의 작품을 녹음한 <클로즈 커넥션스> 음반을 발매했다. 나는 이 앨범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고, 내가 지금 그것을 듣고 있는 것에 당황했다. (미안해, 로버트!) 그것은 올슨을 위해 루이 웨인가든(1943~1989)이 작곡한 <트립틱>(1969)을 포함한다. 웨인가든은 또한 올슨을 위해 <피아노 협주곡>(1974)을 작곡했고, 1977년 퓰리처 상 후보에 올랐다. 웨인가든과 올슨은 좋은 친구이고 한동안 룸메이트였다. 또한 이 디스크에는 게이 작곡가 윌리엄 히버드(1939~1989)가 올슨의 위촉으로 작곡한 독주 피아노 작품 <핸드워크>(1986)가 있다. 로버트 헬프스(1928~2001)는 또 다른 게이 작곡가로 독주 피아노 작품 <쉘 위 댄스>가 대표적이다.
Awards
1966 - 18th Busoni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Bolzano, Italy 1st prize / 이탈리아 볼차노 제18회 부조니 국제피아노콩쿠르 1위
1968 - 4th Montreal International Musical Competition in Canada 1st prize / 캐나다 제4회 몬트리올 국제음악콩쿠르 1위
1970 - 8th Chopi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Warsaw, Poland 1st prize, Gold Medal and Polish Radio Prize for the Best Performance of Mazurkas / 폴란드 바르샤바 제8회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1위, 금메달 및 마주르카 특별상
1994 - Avery Fisher Prize / 에이버리 피셔 상
1998 - University Musical Society Distinguished Artist Award in Ann Arbor, Michigan (USA) / 미국 미시건 주 앤아버 시 대학음악협회 "두각을 나타낸 연주자"상
2008 - Grammy Award for Best Instrumental Soloist Performance (without Orchestra) for his Beethoven Sonatas, Vol. 3 (Bridge Records, Inc.) / 베토벤 소나타 3집 음반(브리지 레코드 발매)으로 그래미 상 최우수 기악 독주 부문 수상 (2월)
2014 - Jean Gimbel Lane Prize in Piano Performance from the Northwestern University Bienen School of Music / 노스웨스턴 대학교 비에넨 음악학교로부터 피아노 연주로 "장 짐벨 레인" 상
Eumyeon Piano Magazine (May 2004) Interview with Garrich Ohlsson in Paris (30 March 2004)
순수하고 자유로움에서 오는 행복함
‘브람스 협주곡 1번은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매우 무겁게 쓰여졌고, 피아니스트에게 투쟁을 요하는 작품이다. 1악장의 주요 주제는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사이의 커다란 투쟁이다. 2악장은 매우 정신적이며, 숭고하다. 3악장은 우선 너무 빠르지 않게 연주해야 한다. 너무 빠르게 연주하면 화성적인 진행감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 음악평론가 김동준 글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진행된 쿠르트 마주어의 브람스 전곡 연주 프로젝트 피아니스트로 개릭 올슨이 초대되었다. 4월 1일과 2일 이틀 동안 개릭 올슨은 쿠르트 마주어가 지휘하는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와 두 곡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다. 첫날 연주에서는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d단조’를 교향곡 다음에 연주하는, 그러니까 협주곡을 마지막으로 연주하는 다소 이례적인 구성을 보여주었다.
개릭 올슨은 음반을 통해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실황 연주의 생생함과 흥분감을 느끼게 했다. 브람스 협주곡 1번에서는 곡의 웅장함과 고통스러운 투쟁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그리고 협주곡 2번에서는 실내악적인 구성의 요소가 많은 이 작품을 뛰어나게 아름답게 연주했다. 특히 둘째 날 협주곡 2번에서는 연주자의 의식이나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 마치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자유로운 연주를 들려주어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의 순수한 행복감을 느끼게 했다.
- 당신은 현재 뉴욕에서 살고 있는가.
아니다. 현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살고 있다. 뉴욕에서 태어나서 오랫동안 살았지만 지금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살고 있다.
- 파리에서는 자주 연주를 하는가.
자주 연주를 하는 편은 아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파리에서 연주를 자주 했었는데, 그 이후에는 파리에서 자주 연주를 할 기회가 없었다. 쇼팽 전곡 연주를 뉴욕 · 토론토 · 런던에서 했는데, 런던에서 전곡 연주를 마치고 나서 파리의 살 가보에서도 전곡 연주를 했다.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와의 연주도 이번이 처음이다. 연주 경력은 각각의 피아니스트들이 각 국가나 도시마다 다르게 쌓아가게 된다.
- 언제 처음으로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는가.
우선 협주곡 1번 d단조를 1971년에 처음으로 연주했다. 그리고 협주곡 2번을 1973년에 처음으로 연주했다.
-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을 처음 연주한 이후 당신의 해석은 어떻게 변모되었는가.
많은 것이 변했다. 젊은 시절에는 두 협주곡에 대해서 아주 잘 알지는 못했다. 두 개의 협주곡은 서로 매우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우선 첫 번째 협주곡을 나는 클라우디오 아라우의 제자였던 올가 바라비니와 매우 집중적으로 공부했고, 연주할 준비가 잘 되었었다. 그래서 여러 오케스트라와 연주를 했고, 피아니스트로서 나의 경력을 쌓아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브람스의 협주곡 2번도 공부했고, 연주하기 시작했다. 1973~1974년에는 클라우디오 아라우와 직접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아라우는 작품에 대한 해석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들에 대해서 많은 조언을 해주었고 나에게 커다란 도움이 됐다. 그러면서 작품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도 자연스럽게 변해갔다. 협주곡 1번의 경우는 당시 뉴욕 필하모닉을 지휘하는 쿠르트 마주어와 함께 연주하면서도 해석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쿠르트 마주어와는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투어를 했던 일도 있었다. 그리고 브람스 협주곡을 함께 연주했던 지휘자 가운데는 루돌프 켐페가 기억나며, 클라우스 텐슈테트와의 연주도 잊을 수가 없다. 함께 연주를 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음악에 대한 열정과 감정을 나눌 수가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함께 연주한 위대한 지휘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브람스의 두 개의 협주곡의 문제는 매우 다르다. 우선 협주곡 1번은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매우 무겁게 쓰여졌고, 피아니스트에게 투쟁을 요하는 작품이다. 예를 들면 1악장의 주요 주제는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사이의 커다란 투쟁이다. 2악장은 매우 정신적이며, 숭고하다. 3악장은 우선 너무 빠르지 않게 연주해야 한다. 너무 빠르게 연주하면 화성적인 진행감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브람스의 협주곡 3악장을 연주할 때에 편안함을 느낀다. 왜냐하면 나의 손에 잘 맞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피아노 작품들이 나의 손에 잘 맞는 것은 아니다. 협주곡 2번의 문제점은 1번과는 매우 다르다. 분명히 2번 협주곡은 1번 협주곡에 비해서 가볍게 쓰여졌다. 그러나 3도 · 6도의 진행 등 해결해야 하는 다른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와 실내악적인 조화를 이루어야만 한다.
- 이번 연주 이전에 쿠르트 마주어와 함께 연주했던 연주회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다.
나는 이미 쿠르트 마주어와 브람스의 두 곡의 협주곡을 연주했다. 첫 번째 연주회는 1980년 라이프치히에서였다. 쿠르트 마주어와 처음으로 연주했던 곡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었고, ‘리스트의 협주곡 1번’을 그 다음으로 함께 연주했다. 그 이후에 쿠르트 마주어와 함께 뉴욕 · 부에노스아이레스 등의 투어를 함께 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라이프치히에서 하루 저녁에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곡을 연주했다. 그 이후에도 다시 뉴욕과 런던 등에서 브람스의 협주곡과 다른 작곡가의 협주곡을 함께 연주하고 나서 브람스의 협주곡을 녹음했다. 쿠르트 마주어와 함께 연주하는 일은 커다란 즐거움이다.
- 협주곡을 연주할 때에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지휘자는 어떤 지휘자인가.
좋은 지휘자는 많이 있다. 우선 브람스의 협주곡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진정으로 교향곡을 잘 지휘하는 지휘자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브람스 협주곡은 정말로 교향곡적인 구성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우선 쿠르트 마주어의 이름을 들어야겠다. 그리고 볼프강 자발리쉬와 함께 브람스를 연주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그가 지휘한 작품 대부분을 좋아한다. 유진 오먼디 역시 훌륭한 지휘자이다. 오자와 세이지 역시 뛰어난 지휘자이다. 그는 유연함을 갖춘 지휘자이다. 지휘자는 독주자에게 봉사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음악에 봉사하는 사람일 뿐이다. 간혹 음악적으로 비논리적인 피아니스트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지휘자는 독주자의 연주를 들을 줄 알아야 하고 함께 의논할 수 있어야 한다. 젊은 지휘자와 연주할 때 그 지휘자가 나의 연주를 듣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마에스트로, 나는 당신을 따라가야만 하고, 그렇게 할 수도 있소.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는 함께 음악을 만들어야 하오.’
공동 작업이라는 개념은 분명히 어느 한쪽이 명령을 하고, 어느 한쪽이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함께 춤을 출 때에 리드를 하는 쪽은 분명히 어느 한쪽만은 아니다. 나의 음악적인 아이디어를 이해하고, 나 역시 지휘자의 음악적인 아이디어를 이해할 수 있다면 가장 좋다. 물론 가끔 그렇지 못할 경우도 있다. 그리고 서로 의견이 같지 않더라도 나는 좀 더 유연한 자세로 임한다. 시간이 많지 않을 경우 서로 싸우는 것은 음악을 위해서는 나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주는 아니지만 간혹 정말로 좋아할 수 없는 지휘자를 만났을 경우에는 연주를 마치고 감사의 인사를 하지만, 절대로 다시는 함께 연주하지 않는다. 나는 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 1970년 바르샤바 쇼팽 콩쿠르에서의 우승(*개릭 올슨은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바르샤바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이 당신의 삶을 바꾸어놓았는가? 그리고 동시에 쇼팽(*개릭 올슨은 최근 뉴욕 링컨 센터 등에서 쇼팽의 피아노 작품 전곡을 연주)은 당신이 가장 열정을 갖고 있는 작곡가인 것으로 알고 있다.
분명히 그렇다.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기 전에도 나는 미래가 밝은 젊은 피아니스트였고, 계속해서 연주회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쇼팽 콩쿠르가 있었던 1970년에는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도 있었다.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는 바흐 · 모차르트 · 리스트 · 차이코프스키 등 모든 작품을 연주해야 하는 콩쿠르이다. 나는 이미 이전에 부조니와 몬트리올 콩쿠르에서 우승을 한 상태였기에, 마라톤 콩쿠르 같은 차이코프스키보다는 쇼팽 콩쿠르를 택했다. 쇼팽 콩쿠르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쇼팽만을 연주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콩쿠르에 나갈 때에 결코 ‘나는 이겨야만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항상 자신보다 뛰어난 피아니스트는 존재하고 또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나는 이기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더 낫다.
당시 나는 쇼팽 콩쿠르와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사이에서, 쇼팽 콩쿠르는 이기지 못하더라도 분명 음악적으로 중요한 경험이 될 것 같았기 때문에 쇼팽 콩쿠르를 택했다. 바르샤바 쇼팽 콩쿠르 우승을 통해서 나는 전 세계 주요 도시에 데뷔할 수가 있었고,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경력을 쌓아갈 수 있었다. 뉴욕 · 런던 · 도쿄 · 파리 등의 당시 모든 연주회는 매진되었고, 사람들이 나에게 ‘우리들은 당신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다. 당신은 중요한 예술가 가운데 한 명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나는 아직 젊었다.
쇼팽은 내 평생 동안 열정을 기울이고 있는 작곡가 가운데 한 명이다. 쇼팽 콩쿠르 역시 쇼팽에 대한 나의 이해를 깊어지게 했다. 쇼팽 콩쿠르를 위해서 피아노 소나타 가운데 한 곡, 협주곡 가운데 한 곡 등의 주요 작품을 포함해서 다양한 쇼팽의 작품들을 연주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나는 모든 소나타와 협주곡을 공부했다. 쇼팽에 완전히 미쳤었기 때문이었다. 우승을 했을 때 많은 기자들이 나에게 쇼팽의 작품들이 당신을 지치게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반대였다. 콩쿠르 동안에도 쇼팽을 연주할수록 쇼팽에 대한 열정이 커져갔다. 그의 피아노 작품들은 정말로 뛰어나기 때문이다. 콩쿠르 이후에 나는 쇼팽을 더 자주 연주했고, 결국 쇼팽의 모든 피아노 작품들을 녹음했다. 좋은 연주를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하며, 그 작품과 함께 살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는 운 좋게도 쇼팽 해석에 관해 뛰어난 스승들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가 있었다. 우리들 피아니스트들은 쇼팽의 작품들을 통해서 피아니스트로 성숙할 수가 있는 것이다.
- 당신의 쇼팽 해석에 관해서 가장 영향을 준 피아니스트는 누구인가.
우선 내가 어렸을 적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호로비츠와 루빈스타인이었다. 나는 호로비츠와 루빈스타인의 연주회에 무척 많이 갔었다. 당시 나는 10대였는데, 이 두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가장 흥미로웠다. 두 피아니스트는 서로 너무나 달랐다. 루빈스타인은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귀족적이며 아름다운 소리를 지니고 있었고, 마치 오후의 햇살 같았다. 그러나 호로비츠는 창백하고 흥미로우며 관능적이고 밤의 불빛 같았고 악마 같았다. 그리고 간혹은 미치광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당시 나는 이 두 피아니스트의 연주회를 들으며 두 명의 피아니스트는 완전히 다른데 어떻게 둘 다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존재할 수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방식의 질문은 지금의 젊은 피아니스트들에게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특히 쇼팽의 작품 해석에 관해서는 말이다. 쇼팽은 베토벤처럼 건축적이기만 한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루빈스타인과 호로비츠의 쇼팽 해석에 과연 어떠한 공통점이 존재하는지 많은 생각을 해보았었다. 물론 나는 당시 뛰어난 젊은 피아니스트였던 아쉬케나지나 길렐스 · 리흐테르와 같은 거장 피아니스트의 연주회도 많이 들었다. 라흐마니노프의 쇼팽 연주도 매우 흥미롭고 아름다웠다. 나는 많은 피아니스트들의 쇼팽 해석의 전통을 이해하게 됐다. 몇몇 프랑스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도 나에게 커다란 흥미를 주었다. 아무튼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쇼팽 해석에 대해서 내가 이해한 것은 매우 간단한 것이었다. 그것은 쇼팽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는 반드시 마술적인 무엇인가를 작품에 부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색채이든 향기이든, 그런 특별한 요소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바흐적인 구조가 상실되어 있는 쇼팽은 더더욱 끔찍하다. 단순히 음악적인 구조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리고 단순한 색채만으로 작품을 해석하려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쇼팽은 가장 고전적인 동시에 낭만적인 작곡가였고, 또한 가장 낭만적이면서 고전적인 작곡가이다. 그렇기에 그러한 요소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빠지게 된다면 쇼팽의 작품 해석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 당신이 생각하는 위대한 해석은 어떤 것인가.
나는 행운아이다. 단지 커다란 손을 타고났을 뿐만 아니라 어렸을 적부터 피아노를 연주하기에 아무런 저항감이나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신경에 관련된 부분도 피아노 연주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연주를 듣고 나서는 ‘당신처럼 커다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섬세하게 연주할 수 있는지요’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듣기도 한다.
위대한 해석을 한다는 것은 우선 악보를 정확하게 연주하는 데서 출발한다. 연주상의 어려움을 잘 해결하고 작품의 특성들을 지키는 것 역시 악보를 정확하게 연주하는 것에 속한다. 단지 아름답게 연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가 않다. 작품과 함께 살아야 하며, 마치 연기를 하는 배우와 같아야 한다. 위대한 연기자는 서로 다른 희곡들을 다르게 연기한다. 루빈스타인이 브람스를 연주할 때에 마치 베토벤을 연주하는 것처럼 소리를 내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간혹 연주를 통해서 청중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설명하기 힘든 기적과 같은 일은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내가 음악을 연주하면서 추구하는 것 가운데 하나이다.
푸르트뱅글러는 브람스의 교향곡을 실황으로 많이 녹음했는데, 그의 지휘는 정말로 훌륭하다. 특히 1952년의 그의 브람스 교향곡 실황 녹음은 나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물론 내가 푸르트뱅글러가 본 것과 같은 것을 보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위대한 작품은 그 자체로 위대하지만, 푸르트뱅글러와 같이 강렬한 인격의 소유자는 마치 자신이 작곡가인 것처럼 작품을 바라보며 해석한다. 그것은 단순히 음악적인 구조를 꿰뚫고 있다고 해서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는 브람스 교향곡은 무엇인가 다른 것으로 바꾸어놓았다. 나에게 있어 위대한 해석이란 이러한 것이다. 물론 다른 스타일을 지닌 다른 지휘자도 푸르트뱅글러와 같은 위대한 해석을 할 수 있다. 결국 해석이란 이러한 방식도 또 다른 방식도 가능한 것이며, 언제나 가능성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호로비츠와 루빈스타인은 서로 너무나 다르지만 그 둘은 모두 위대한 피아니스트이자 위대한 해석자였다. 베토벤 소나타에 있어서 리흐테르 · 길렐스 · 아라우 이들은 모두 다르게 연주했지만 모두 위대한 해석자였다. 그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이다. 결국 위대한 해석을 이루는 요소들을 설명한다는 것은 어려운 질문이다.
- 당신은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연주회를 들으러 종종 가곤 하는가.
솔직히 나는 다른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들을 기회가 많지 않다. 나는 늘 연주를 위해서 여행을 하는데, 예를 들어 이번 파리 일정도 연습과 오케스트라와의 리허설로 바쁜 가운데, 오늘 저녁에는 자유시간이 있지만 다른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들으러 가고 싶지는 않다(웃음). 그러나 만일 시간이 허락된다면 내가 흥미를 가지고 있는 피아니스트들, 예를 들어 안드라스 쉬프 ·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 라두 루푸 등의 연주회에는 가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피아노 연주회를 피해서 현악4중주나 오페라 연주회에 갈 것이다.
- 과거와는 달리 국제 콩쿠르의 수가 매우 많고, 콩쿠르를 통해서 자신을 알리려는 젊은 피아니스트의 수 역시 매우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서 당신은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는가.
국제 콩쿠르에서 1등을 한다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출발일 뿐이다. 또 다른 어려움은 요즘은 국제 콩쿠르의 수가 너무나 많고, 경쟁이 너무나 치열하다는 것이다. 내가 젊었을 때에도 어려움은 있었지만, 요즘의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더 힘들고, 경쟁이 치열하다. 내가 바르샤바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당시에는 3개의 국제 콩쿠르, 그러니까 쇼팽 콩쿠르와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정도가 있었다. 물론 밴 클라이번 콩쿠르와 리즈 콩쿠르 등이 점점 성장하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각 주요 도시마다 국제 콩쿠르가 있고, 해마다 누가 우승을 했는지조차도 알기가 어렵다. 이 이야기가 유용할지는 모르겠지만, 간혹 콩쿠르 심사를 하게 될 경우 나는 젊은 피아니스트들을 격려하려고 노력한다. 한 번은 공연 기획과 관련된 사람이 나에게 와서 어떤 젊은 피아니스트에 대해서 ‘그가 천재인가?’라고 물었을 때에, 나는 ‘재능이 무척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저런, 요즘은 모두가 천재이다’라고 답했다(웃음).
나는 그 얘기를 듣고 나 자신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 보았다. 분명히 콩쿠르는 국제적인 경력을 쌓게 해주지만, 그렇게 경력을 쌓아가는 동안에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극복하면서 음악적으로도 성장해갈 수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신동이라고 하더라도 곧 잊히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바이올린 분야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다. 뛰어난 젊은 피아니스트들은 16세이면 이미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연주를 시작한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신동이라 하더라도 매일 저녁 완벽하게 연주할 수는 없는 일이다. 청중은 그들의 연주를 한두 번 듣고는 곧 새로운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를 들으러 갈 것이다. 물론 완벽하고 뛰어난 연주를 하는 젊은 연주자들의 연주를 들으면 흥분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17세의 나이에 믿을 수 없는 연주를 하는 피아니스트들이 존재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이다. 그러나 그의 나머지 인생이 음악적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음악과 함께 성장하고 성숙해지기가 힘든 것이 또한 현실이다.
- 당신은 학생들을 지도하는가.
가르치는 일은 하고 있지 않다. 간혹 공개나 비공개적인 마스터클래스를 하는 경우는 있지만 정기적으로 가르치는 일은 하고 있지 않다. 나는 석 달에 한 번 두 시간 정도의 레슨을 해주는 그런 선생이 되고 싶지는 않다. 가르친다는 일은 커다란 책임이 요구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 이 인터뷰는 3월 30일 파리의 라디오 프랑스 홀에서 이루어졌다.
음연 피아노 잡지 2004년 5월호에 나오는 인터뷰는 내가 돈을 주고 산 정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