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st Morning in Warsaw
생각보다 얼른 시차 적응에 성공했다. 새벽 6시에 알람 맞춰놓고 깼다. 식당에 가면 한 손이라도 비닐장갑을 끼고 음식을 집어야 하고 카드만 들고 가면 안 되며 몇 호실인지 적힌 종이까지 보여줘야 한다. 다행히 종이를 챙겼다. 조식은 뷔페인데 치즈 종류가 유독 눈에 띄었다. 두부처럼 생긴 것도 알고 보면 치즈. 빵 종류는 별로 안 집었다. 외출할 거라 많이 먹지 않았다. 노란색은 오렌지 주스, 주황색은 그레이프푸르트 넥타. 소시지, 양상추, 토마토, 햄, 후식으로 먹을 과일과 요플레 정도. 생선과 참치도 먹었다. 일식이 몇 가지 있었다. 감기약 때문에 물까지 떴다. 환절기가 되면 목이 예민하게 반응하는데 바르샤바 감기가 독하다고 들어서 보름치를 지었다. 공연장 가서 계속 조용히 앉아있어야 하는데 기침하면 곤란하니까. 식당에서 폴란드 참가자 알렉산드라 시비구트와 닮은 사람을 봤다.
구글 지도를 켜고 시내를 갔다. 슬리퍼를 두 켤레 사야 하니까. 가장 먼저 간 곳은 TK Maxx 매장. 일본인 관광객들도 보였다. 신발 종류가 다양하게 있었다. 여기에서 슬리퍼를 사면 되는 건데 괜히 다른 백화점도 간 게 고생의 시작이었다. 나가면서 크리스마스 장식과 핼로윈 장식을 봤다. 알고 보면 무거운 것들. 구급차가 도로를 지나가는데 자가용 3대가 옆에 남은 차선으로 나란히 비켜줬다. 바르샤바에서는 사이렌 소리가 하루에 3번 넘게 들린다.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성당 앞에 있는 분수대를 봤다. 멀리까지 물이 튄다. 전차도 지나가고 버스도 지나간다. 정거장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잠시 쉬고 있는데 어떤 거지가 즈워티 있냐고 물어봐서 없다고 했다. 지하도를 내려갔다가 나오는데 코로나19 검사하는 텐트가 보였다. 마스크 쓰고 다니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그래도 매장 안에서는 80~90%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버스 탈 때는 필수! 그래도 안 쓴 사람들이 조금은 보인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해보니 우리나라처럼 유행에 민감한 것 같진 않고 패션이 제각각 개성 있었다. 점심은 벤치에서 잠시 마스크 벗고 먹었는데 편의점에서 산 프린스 폴로 과자 2개와 라임맛 콜라로 때웠다. 다행히 아주 배고프지도 않았고 화장실이 급해지면 곤란하니 많이 먹지 않았다. 어떤 동남아 여성으로 보이는 애 엄마도 지나갔는데 나한테 말을 걸었으나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고 도와달라고 했으나 돈이 없다고 했다. 길거리에서 폴란드인 말고 외국인 보는 게 쉽지 않았다. 담배 피는 남자보다 여자를 더 많이 봤던 하루. 호텔에 적혀 있는 문구를 보니 방에서 일반담배 또는 전자담배를 흡입하면 벌금이 450즈워티.
가면서 바르샤바 필하모닉 콘서트홀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어디가 입구인지 모르겠다. 건물 뒤에는 쇼팽 콩쿠르를 중계하는 방송국 차가 보였다. 연주 일정을 적은 커다란 액자 하나가 보였다. 길치라서 헤맸는데 첼시 아울렛 같은 거리도 지나가보고 노보텔, 그로마다 호텔, TVP 방송국, 삼성, LG, 화웨이 건물, 쇼팽 음대 등 여기저기 구경했다. 노보텔 주변을 한참 헤맸다. Zara Home 백화점을 가보니 크록스 신발을 파는 곳이 있었다. 하지만 사지 않았고 처음에 갔던 매장으로 향했다. 슬리퍼 사려고 가격표를 보는데 Made in China. 신발이 맞는지 신어보는데 양말에 구멍이 나 있었다. 유로화로 표시된 상품들도 있었다. 줄이 길었는데 신용 카드 결제가 되지 않아서 120즈워티를 내고 거스름돈을 받았다. 핀 번호에서 막혔다. 여기에서 118.99즈워티를 현금으로 사용했다. 길거리에서 사먹으려고 아껴둔 거였는데 정작 길거리 음식은 구경하지도 못했다.
배터리는 점점 떨어지고 있었고 샤오미를 가져오지 않아서 충전할 길이 없었다. 구글 지도는 3분, 5분 남았다는데 길치라 헤매고... 조금만 방향이 틀어지면 소요시간이 늘어나기도 한다. 주변에 호텔 가는 길을 물어봐도 모른다는 말만 돌아왔다. 지나가다가 어떤 차량에 딱지 끊는 경찰이 두 명 보였는데 그때 물어볼 걸 그랬나보다. 마침 택시에서 내리는 손님이 있어서 타려고 했으나 일 끝났다면서 기사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거부했다. 그때가 6시 40분 조금 넘은 시각. 지나가는 택시 대부분이 손님을 태우고 있었다. 호텔 주변을 맴돌다가 배터리가 8%일 때 겨우 길을 찾아서 호텔로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와서 낮에 샀던 또 다른 음료수를 통째로 다 마셨다. 저녁 7시 되기 전에 가까스로 도착했는데 약을 먹어야 하므로 가까운 편의점으로 갔다. 일식 김밥을 샀는데 맛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롤을 먹는데 맛이 이게 뭔가 싶었다. 뭣 크게 맛이 없을 거란 예상은 했지만. 물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봤는데 주인이 영어를 몰라서 마침 가게에 있던 손님이 통역해줬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여기저기 걸어서 똥개 훈련하느라 엄청 피곤했다. 호텔에 카지노가 붙어있는데 그 간판을 보고도 두 번인가 헤매고 있었던 것. 창문을 보니 밤 11시가 넘었는데도 길거리에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치안이 정말 우리나라와 비슷한데 너무 늦게 다니면 그래도 곤란하다. 대회가 시작되면 밤 10시 넘어서 걸어와야 되는 수가 있다. 어딜 가든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배웠던 하루이기도 했다. 내 맘은 쉬라고 그러는데 내 발은 나를 자꾸 움직이게 만들었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슬리퍼는 거실 겸 침실용, 욕실용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눴다. 별로 쉬지 않고 계속 걸었더니 발가락에 물집이 생겼다. 마침 혹시 옷에서 단추가 뜯어지는 경우가 생기면 실로 꼬매려고 반짇고리를 가져오긴 했다. 2009년 자취하던 시절에 마트에서 산 건데 아직도 필요할 때 쓰고 있다. 상비약(소화제, 지사제, 진통제)에 밴드도 구비해왔다. 막상 유럽으로 와보니 서울 같은 큰 도시로 온 기분이었다. 마치 다른 동네 놀러간 느낌. 가을이라 약간 쌀쌀했다. 폴란드어 읽는 원리를 조금은 아는데 뜻은 당연히 모른다. 유럽의 언어들은 대부분 비슷비슷해서 간판에서 스펠링 보고 느낌으로 이런 뜻이겠다 싶을 때도 있었다. 영어 간판도 더러 눈에 띄었다. 시내 곳곳에는 환전소(Kantor)가 드문드문 보였다. 폴란드에 가면 사려고 했던 물건 중 하나는 지아야(Ziaja) 크림. 하지만 비싼 것만 보였고 나중에 더 보기로 했다. 평소에 하찮게 보였던 낙엽이 여기에서는 사랑스러워 보였다. 아마 낙엽 쓸기 귀찮았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 듯.
폴란드로 떠나기 전에 시간이 되면 크라쿠프도 가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여유도 없었고 코로나19에 묶여서 계획을 하나 접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