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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piano bachelor, piano music lover, CD collector and classical music information's translator. Also KakaoTalk character Tube mania! Naver Blog: http://blog.naver.com/snowseol Youtube Channel: https://www.youtube.com/channel/UCDPYLTc4mK7dOXYTQEOiPew?view_as=subscriber

2019년 4월 10일 수요일

Peter Donohoe's 1982 Tchaikovsky Competition Diary 07 (14-16 June)

피터 도노호의 제7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일기 07 - 1982년 6월 14~16일
I didn't listen to any of the first round competitors until after I had played. [5]

나는 내 연주를 마칠 때까지 1라운드 참가자들 중 누구도 듣지 않았다. [5]

After that I heard Barry Douglas and the Iranian girl amongst others in the piano section. Barry played a great Appassionata 1st movement. He also did October from Tchaikovsky's The Seasons, using the Peters Edition, which has a couple of different accidentals to the Soviet edition. When he played those notes, there was an audible response from the audience – they seem to know all the music being played, particularly the Russian music, and are very open in their feelings – lots of tut-tutting and talking disapprovingly about it. Their reaction to what they considered to be wrong notes was probably off-putting for Barry. They behaved like they were all piano teachers at a music festival. I was also reminded a bit of Les Dawson dressed as an old Northern woman and gossiping.

그 후 나는 피아노 섹션에서 배리 더글러스와 이란 소녀가 연주하는 것을 들었다. 배리는 베토벤의 위대한 열정 소나타 1악장을 연주했다. 그도 영국의 피터스 에디션 악보를 사용하여 차이코프스키의 사계 중 10월 <가을 노래>를 연주했는데, 이 악보는 소련의 악보와는 다른 변화표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가 이 음들을 연주했을 때, 청중으로부터 들리는 반응이 있었다. - 그들은 연주되는 모든 음악, 특히 러시아 음악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감정이 매우 개방적이다. - 혀를 끌끌 차는 경우가 많았고 그것에 대해 부끄럽게 말하고 있었다. 그들이 잘못된 음들로 여겼던 것에 대한 자기네 반응은 아마도 배리에게 불만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음악제에서 모두 피아노 선생님인 것처럼 행동한다. 나도 늙은 북부 여성처럼 드레스를 입고 험담을 하는 희극배우 레스 도슨이 좀 생각났다.

When the Iranian girl (Кароль Л Амброзио-Мири – it translates as something like Carola Ambrose-Miri) came on, there was booing in the audience before she even sat down to play. I am told that this is because of Soviet propaganda against the Iranian Islamic revolution two years ago. She must have been so upset by this, but played well even so. What an appalling thing to do to her – particularly as she is obviously not part of the Islamic Revolution herself, given that females pursuing a career in the performance of Western music would be frowned upon on all counts.

이란 소녀(카롤라 암브로세-미리 같은 뭔가로 번역됨)가 등장했을 때, 그녀가 연주하기 위해 앉기 전 청중의 야유가 있었다. 나는 이것이 2년 전 이란의 이슬람 혁명에 대한 소비에트의 선전으로 인한 것이라고 들었다. 그녀는 이것으로 인해 정말 화가 났을 것이지만, 잘 연주했다. 그녀에게 하는 소름 끼치는 일! - 특히 그녀는 분명히 이슬람 혁명의 일부가 아니듯이, 서양 음악 연주에서 경력을 쌓고 있는 여성들이 모든 면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I also went to hear Nigel Kennedy's first round which included the Messiaen 'Theme and Variations', Brahms A Major Sonata and some unaccompanied Bach. [6] I ran through the Messiaen and the Brahms with him the other day. He played immediately after a brilliant Russian called Sergei Stadler [ii], who played Paganini amongst other things. Kennedy sounded very thoughtful and un-showy by contrast. Stadler seems to be a favourite with the audience.

나는 메시앙의 <주제와 변주곡>,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2번, 바흐의 몇몇 무반주 작품이 포함된 나이젤 케네디의 1라운드도 들으러 갔다. [6] 나는 다른 날에 그와 함께 메시앙과 브람스를 예행 연습했다. 그는 세르게이 스타들러라고 불리는 멋진 러시아인 다음으로 즉시 연주했는데, 다른 것들 중에 파가니니를 연주했다. 케네디는 매우 사려 깊었으며 이와는 대조적으로 화려하지 않았다. 스타들러는 청중이 선호하는 것 같다.

I heard that an Argentinean cellist was told to go home after her tailpiece snapped. How unreasonable can you get?

나는 아르헨티나 첼리스트가 그녀의 테일 피스(줄을 죄는 나무나사)가 부러진 후 집에 가라는 소리를 했다고 들었다. 얼마나 불합리한가?

This country gets to you when you have been here a while – the propaganda on both sides and the paranoia it induces, combined with the specific propaganda of the competition.

이 나라는 잠시 여기에 왔을 때 낙심하게 한다. - 콩쿠르의 특정 선전과 결합된 양측의 선전과 그것이 유발하는 편집증.

A mild diversion at one point concerned the ensuite bathroom's bidet. Barry Douglas and I apparently shared a keenness for bidets, and so were both frustrated that it was impossible to elicit any water from the faucet. Barry told me that he had turned the tap about thirty times and nothing had happened. I always pride myself - possibly misguidedly - on an ability to sort out practical matters such as this, and thus set about trying to rectify the bidet water supply.

한때 가벼운 전환은 전용 욕실의 비데와 관련이 있었다. 배리 더글러스와 나는 분명히 비데에 대한 예민함을 공유했으므로, 수도꼭지에서 물을 끌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에 좌절했다. 배리는 내게 자신이 30번이나 돌렸으므로 아무 일도 없다고 말해줬다. 나는 항상 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 아마도 잘못 알고 - 이 같은 실용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서, 따라서 비데의 물 공급을 바로잡으려는 시도에 착수했다.

I discovered, as Barry had, that you could turn the tap until the cows came home with no result, but that actually at one point there was a biting point well after the thirty times Barry had turned it, and that after that the cows came home with a vengeance. Just before that point there was still no water. However, if one applied one picojoule of extra energy and turned it another millimetre, a sodding tsunami hurtled out of the faucet. On this occasion a couple of gallons of water, that had turned brown through lack of use, hit me directly in the face until I had moved out of the way, and then continued on its way to drench the ceiling and subsequently the whole room, all my clothes and the towels that were in the room, and ran along the floor and into the bedroom carpet. It looked like there was an Icelandic geyser in the corner of the room. (It also smelled like an Icelandic geyser, as it was probably the first time since the October Revolution that anyone had attempted to use it.)

배리가 했던 것처럼, 오랫동안 아무 결과 없이 꼭지를 돌릴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사실 한때 배리가 돌리면 30번이 지난 후 어느 시점에서 물기가 생겼으며, 언제까지나 물이 세게 나왔다. 그 시점 직전에는 물이 여전히 없었다. 그러나 1피코줄(1줄의 100만 분의 1)의 여분의 에너지를 적용하여 그것을 1밀리미터 더 돌리면, 빌어먹을 쓰나미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 경우에 별로 사용하지 않아서 갈색으로 변한 2갤런의 물은 내가 나가기 전까지 얼굴에 직접 닿았고, 천장과 그 이후 방 전체, 내 옷들과 수건들에 계속 물을 뿌렸으며, 바닥을 따라 침실 카펫으로 스며들었다. 방구석에 아이슬란드 간헐천이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10월 혁명(실제로는 11월 7일이나 러시아력으로는 1917년 10월 25일)의 레닌의 혁명 이후 처음으로 누군가가 사용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에 아이슬란드 간헐천 같은 냄새가 났던 것 같다.]

It was accompanied by the machine-gun like sound of Soviet plumbing – not only in our bathroom, but all along the corridor. This knocking sound, which emanated from all over the hotel at almost all times, was a key feature of the whole competition.

그것은 소련 배관의 기관총 같은 소리를 동반했다. - 우리의 화장실뿐만 아니라 복도를 따라 있었다. 거의 언제나 호텔 전체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 두드리는 소리가 콩쿠르 전체의 주요한 특징이었다.

I couldn't help wondering why the hell all those people, most of whose rooms were miles away in this indescribably huge hotel, had to take so many showers in the middle of the night (I assumed showers, as the bidet was probably a no-go area in all the rooms). You could be forgiven for thinking that the hotel was under machine-gun attack.

나는 도대체 왜 이 모든 사람들이 이 말로 다할 수 없이 큰 호텔에서 수마일 떨어진 대부분의 전체 방들이 밤중에 너무 많은 샤워를 해야 하는지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비데가 어쩌면 모든 방의 접근 금지 구역이었던 것처럼 소나기를 떠안았다.) 호텔이 기관총 공격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

We gave up on the bidet from then on.

우리는 그때부터 비데를 포기했다.

[5] In retrospect I wouldn't recommend that. In fact, I would recommend the opposite. And it is the opposite of what I did in the finals.

[5] 회고하면서 나는 그것을 추천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나는 그 반대를 추천한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결선에서 했던 것과 반대이다.

[6] Nigel wore a very subdued dark blue suit for his first round performance. I haven't seen him in anything remotely like a suit since. And I don't think anyone else has either.

[6] 나이젤은 1라운드 연주에서 매우 차분하게 진한 파란색 수트를 입고 있었다. 나는 그때 이후로 수트 같은 것을 입은 그의 모습을 좀처럼 보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그 밖의 어떤 사람도 그런 옷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ii] Later Sergei Stadler and I played several concerts together in Moscow, Leningrad and Paris. He also became a conductor, and on one occasion when I was in Leningrad, I went to see and listen to his performance of Puccini's Tosca. He is a very instinctive and warm musician, with a characteristically highly trained brilliant technique. The last I saw of him was during the 2011 Competition, when he was on the violin jury.

[ii] 나중에 세르게이 스타들러와 나는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파리에서 여러 차례 콘서트를 가졌다. 그도 지휘자가 되었으며, 내가 레닌그라드에 있을 때 그의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공연을 감상하러 갔다. 그는 독창적이면서도 고도로 숙련된 뛰어난 테크닉을 지닌, 매우 본능적이면서 따뜻한 음악가이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11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동안이었는데, 그는 당시에 바이올린 심사위원을 지냈다.

He was by that time the head of the string department of the St Petersburg Conservatory, and was alleged to have been involved in some dodgy financial deal concerning roof repairs. I gathered from the competition rumour mill that the FSB (the modern equivalent of the NVKD of former times) had been generous enough to allow him to serve on the Tchaikovsky Competition Jury, before escorting him back to a holding cell in downtown St Petersburg. I do hope he is set free for his next concert engagements. 'Only in Russia', as the Americans might say….

그는 당시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현악과장이었으며, 지붕 수리에 관한 금전적인 거래에 연루되었다는 주장이 있었다. 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의 유치장으로 그가 끌려가기 전에 FSB(이전 시대 NVKD의 현대에 해당하는 러시아 연방보안국)가 그를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허용할 정도로 충분한 관대함을 가졌다는 콩쿠르 소문의 근원지라고 추측했다. 나는 그가 다음 콘서트 계약을 위해 자유의 몸이 되었으면 한다. 미국인들이 말한다면 ‘러시아에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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