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SNzoaKN-Yw8&list=OLAK5uy_mrXxignuyektJD0J8Z-I9HyYrjxw7BXA8
국제 피아노계에서 가장 시적인 감성을 가진 젊은 아티스트로 평가받으며, 피아노계의 ‘떠오르는 별’이라 불리는 다닐 트리포노프! 2010년 5월 베네치아 페니체 극장에서 쇼팽 및 스크리아빈의 음악을 소재로 한 독주회의 라이브 레코딩과, 사칠레에 위치한 파치올리 홀 공연 실황까지 함께 수록한 생생한 실황.
활기찬 마주르카 리듬이 배어있는 마주르 풍의 론도에서부터 화려한 반음 변화와 질주하는 리듬으로 가득 찬 피아노 소나타 3번까지. 리사이틀리스트로서 다닐 트리포노프의 성공을 예견하는 음악적 위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생생한 라이브 앨범!
Track
01. Rondo a la Mazur in F, Op. 5
02. Grande Valse Brillante in Eb, Op. 18
03. Etude in F, Op. 10 No. 8
04. Andante Spianato et Grande Polonaise Brillante in Eb, Op. 22
05. Mazurka No. 33 in B, Op. 56 No. 1
06. Mazurka No. 34 in C, Op. 56 No. 2
07. Mazurka No. 35 in c, Op. 56 No. 3
08. Sonata No. 3 in b, Op. 58 - 1. Allegro maestoso
09. Sonata No. 3 in b, Op. 58 - 2. Scherzo. Molto vivace
10. Sonata No. 3 in b, Op. 58 - 3. Largo
11. Sonata No. 3 in b, Op. 58 - 4. Finale. Presto non tanto
Cannons Buried in Flowers / 꽃 속에 숨겨진 대포
With the Congress of Vienna (1815) Poland changed owners once again. Grand Duke Konstantin Romanov settled into the Belvedere Palace in Warsaw to rule in the name of his brother, Czar Alexander I. He presented himself to his new subjects as a melancholic aesthete, with outbursts of violent authoritative madness barely moderated by his beautiful Polish wife, Countess Joanna Grudzińska. In 1810 Nicolas Chopin, a naturalized Polish Frenchman, had moved back to the capital after political exile. By that time he was a praised pedagogue, an employee of the state school administration; his son Fryderyk, born that same year, soon proved to be a child prodigy on the piano. After his debut in a benefit concert at the age of eight, the doors to the homes of aristocrats were wide open to him. Princes Czartoryski, Sapieha, Czetwertyński, Lubecki, Radziwiłł; Counts Wolicki, Pruszak, Hussarzewski, Łempicki, patrons of incredible wealth, vied for him, as if he were the new Mozart. He was received at court and he played for te Grand Duke and his imperial brother who, on visit to Warsaw in 1825, presented him with a precious diamond ring.
빈 회의(1815) 결과 폴란드는 다시 한번 주인이 바뀌게 된다. 러시아 제국의 황제 알렉산더 1세의 동생 콘스탄틴 로마노프 대공이 형의 이름으로 통치하기 위해 바르샤바의 벨베데레 궁전으로 입성했다. 새로운 백성에게 비친 콘스탄틴 대공의 모습은 우울한 탐미주의자로, 그의 고압적인 광기의 격렬한 표출은 아름다운 폴란드 출신 아내 요안나 그루진스카가 겨우 가라앉히게 했다. 폴란드로 귀화한 프랑스인 니콜라스 쇼팽은 1810년 정치적인 망명을 끝내고 바르샤바로 귀국했다. 이 무렵 그는 교육자 그리고 국립학교의 행정직원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고, 같은 해 태어난 아들 프리데리크는 얼마 후 피아노 신동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8세 때 자선공연에서 데뷔한 후, 쇼팽에게 귀족 저택의 대문이 활짝 열렸다. 차르토리스키, 루베츠키, 사피에하, 체트베르티스키, 라지비우 공, 그리고 볼리츠키, 후사르제프스키, 웸비츠키 백작 등 엄청나게 부유한 후원자가 쇼팽이 마치 제2의 모차르트인 양 그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했다. 궁에도 초대받아 대공을 알현하고, 1825년에는 바르샤바를 방문한 러시아 황제 앞에서 연주하여 값비싼 다이아몬드 반지를 하사받기도 했다.
Early the following year the obsequies of Alexander I revealed the considerable musical resources of the Polish capital: a Requiem by Kozłowski and other composers conducted in the cathedral of Saint John by the Italian Soliva, with 200 vocalists and instruments; then Mozart’s, arranged into a concert by Kurpiński with parts added for octave-flutes, flutes, oboes, clarinets, harps, and military band, for a total of 250 elements. A third Requiem, this time of Lutheran rite, composed by Elsner for men’s voices, cellos, bassoons, brass instruments, and timpani. For the young Fryc, weak in body and shy in character, such greatness did not go to his head. Initially, he studied with private teachers, then at the high school and the conservatory; he attended the opera and even tried his hand at composing. At the age of seven his first work was a polonaise, a slow dance in ternary form of Renaissance origin, whose military tone is underlined by alarms and upbeats. By then its strictly national connotations were lost, but it was danced across all of Europe: at St. Petersburg and Vienna and even Paris. During his summer holidays in Kujawia and in Silesia he came into contact with crude peasant poverty, but also with the authentic roots of popular music, so unlike its urban stylizations played in wealthy salons and theatres.
이듬해 초 거행한 알렉산더 1세의 장례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상당한 음악적 재원을 보여주었다. 코즈워프스키 등 여러 작곡가가 작곡한 레퀴엠은 성 요한 성당에서 이탈리아 출신 작곡가 솔리바의 지휘로 200명의 성악가와 연주자에 의해 연주되었다. 쿠르핀스키는 모차르트 레퀴엠을 협주곡으로 편곡하여 옥타브플루트,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하프 및 군악대를 더해 250개의 요소로 구성했다. 세 번째 레퀴엠은 루터교회 의식을 따랐는데, 엘스네르 작곡으로 남성 성악, 첼로, 바순, 금관악기 및 팀파니로 편성되었다. 몸도 허약하고 수줍음이 많은 성격의 어린 쇼팽은 이런 대단함에 현혹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개인 교습을 받고, 그다음에 고등학교와 음악원을 다니면서 오페라를 관람하고 작곡에도 손을 대었다. 7살 때 첫 작품으로 폴로네즈를 작곡했다. 폴로네즈는 르네상스 시대에 기원을 둔 3박자 형식의 느릿한 춤곡으로, 경보와 올림박이 군악대 성격을 강조한다. 당시에는 폴란드와의 연관성은 거의 사라지고 상트페테르부르크, 빈, 파리 등 유럽 전역에서 폴로네즈에 맞춰 춤췄다. 쇼팽은 쿠야비아와 실레지아 지방에서 여름을 보내면서 농민의 거친 생활과 빈곤을 접하면서 부자의 살롱과 극장에서 연주되는 도시화된 음악과는 너무나도 다른 민속 음악의 진정한 뿌리를 찾게 되었다.
For him, the impact was unsettling: in his letters home he loathed “the shrill semi-tonal voices” and rough instrumental accompaniment. For his first public debuts as a composer he would choose the abstract forms of the solo concert and variations on a given theme (Op. 2 on the duet “Là ci darem la mano” from Mozart’s “Don Giovanni”). In this perspective, the “Grande Fantaisie sur des airs nationaux polonais”, Op. 13 also comes into question, conceived in its core as a double set of variations on bland opera themes by Kurpiński. The exception is the finale, which Chopin carelessly titled “Kujawiak” from the name of a slow version of the mazurka, while the tempo mark here is “Vivace”. The “Krakowiak” Op. 4 builds, upon the brilliant structure of the concerto rondo, such a complex and refined orchestral fabric that it is indeed a shame Chopin practically abandoned large-scale composition after 1830 in order to concentrate on the solo piano. But it is on the piano that elements of the Polish musical idiom would find – this time far from home – a less random and more intimately poetical representation.
이 경험은 쇼팽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쇼팽은 집으로 보낸 편지에 “날카로운 반음계 음성”과 투박한 기악 반주를 혐오한다고 썼다. 그는 작곡가로서 첫 공식 데뷔작에서 독주 그리고 주어진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란 추상적인 형식을 택했다(모차르트 <돈 조반니> ‘라 치 다렘 마노’에 의한 변주곡 Op. 2). 쿠르핀스키의 밋밋한 오페라 주제에 의한 변주곡 두 세트로 구상한 작품인 폴란드 민요에 의한 대환상곡 Op. 13도 이런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예외는 템포가 비바체임에도 성의 없게 일종의 느린 마주르카인 ‘쿠야비아크’에서 이름을 딴 피날레이다. 크라코비아크 Op. 14는 복잡하고 섬세한 관현악 구조 등 협주곡 론도의 형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쇼팽이 1830년 이후 피아노 독주곡에 전념하고 대규모 편성곡 작곡을 거의 그만두다시피 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폴란드의 음악 어법이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덜 임의적이고 더욱 친밀한 시적인 표현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은 피아노를 통해서이다.
During Chopin’s years of exile, from late 1830 to his untimely death in 1849, piano composition seemed to be the way of setting onto paper the spontaneous flow of improvisation, but also a moment of reflection before carrying out the following step. A symbol of this retrospective and critical outlook is the mazurka of Op. 6 and 7, his calling card for the Parisian publishing market. The traditional Polish mazurka, in ternary rhythm, is characterized by a strong accent on the weak beats (the second and above all the third). It often contains rhythmic ambiguity, chromatic passages, empty fifths evoking bagpipe droning; rather than by the major/minor polarity, the harmony seems influenced by ancient ecclesiastical modes, especially the Lydian. Unlike the “polonaise”, the “art” mazurka still maintained during the early 1800s a connotation of Slavic exoticism that made most Western listeners shudder (in horror or delight, according to their taste). The Berlin critic Ludwig Rellstab wrote about Chopin: “In the search for dissonance that unsettles the ear, laborious passages, lacerating modulations, loathsome shifts in melody and rhythm, he is untiring and, we might say, inexhaustible.” Even a friendly reviewer like Schumann sensed an unsettling difference from the international stars of piano playing in vogue during the early 1830s, such as Kalkbrenner, Moscheles, Field. “If that powerful autocrat of the North [Czar Nicholas I, oppressor of the Polish revolution in 1830] knew the formidable enemy threatening him in the works of Chopin, in the simple melodies of his mazurkas, he would ban his music. Chopin’s works are cannons buried in flowers. In this origin of his, in the fate of his country, lies therefore the explanation for his talents as well as his flaws. if one speaks of reverie, of grace, of spiritual liveliness, who cannot help but think of him? But also of extravagance, of morbid eccentricity, of perhaps of hate and a savage nature.”
쇼팽이 망명 생활을 시작한 1830년 말부터 1849년에 요절하기까지의 시기 동안 저절로 흘러나오는 즉흥곡을 종이에 기록하고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기 전에 잠시 숙고하려는 방편으로 피아노 작곡을 선택한 듯하다. 이러한 회고적이고 비평적인 관점을 나타내는 작품으로는 파리의 음악 출판 시장에서 쇼팽의 명함 역할을 한 마주르카 Op. 6과 Op. 7이다. 전통적인 폴란드 마주르카는 3박자로 약박(2박째 그리고 특히 3박째)에서의 강한 악센트가 특징이다. 대체로 리듬이 모호하고, 반음계 악절과 백파이프의 웅얼거림을 연상시키는 공허한 5도를 사용하고, 화음은 장조/단조의 이분법보다 고대 교회선법, 특히 리디아선법의 영향을 보인다. 폴로네즈와는 다르게 마주르카 ‘기법’은 18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슬라브족의 이국적인 면을 함축하고 있어, 서부 유럽 청중 대부분을 (취향에 따라 경악 또는 환희로) 전율하게 했다. 베를린 평론가 루트비히 렐슈타프는 쇼팽을 다음과 같이 혹평했다. “귀를 괴롭히는 불협화음, 고된 패시지, 선율과 리듬의 역겨운 변화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지칠 줄 모르고 끊임없다.” 슈만처럼 우호적인 평론가도 칼크브레너, 모셸레스, 필드 등 1830년대 피아노계의 국제적인 스타와의 차이에서 불안감을 느꼈다. “북쪽의 강력한 전제군주[1830년 폴란드 혁명을 진압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가 쇼팽의 작품, 그의 마주르카의 순박한 선율 속에서 자신을 위협하는 가공할 적의 존재를 알았다면, 쇼팽의 음악에 금지령을 내렸을 것이다. 쇼팽의 음악은 꽃 속에 숨겨진 대포 같다. 그의 태생, 조국의 운명을 보면 그의 재능과 결점을 설명할 수 있다. 몽상, 우아함, 영혼의 활기를 말할 때, 누가 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과도함, 병적인 기벽 또는 증오심과 잔인함도 같이 연상된다.”
Rondo “à la Mazur” op. 5 (1826) / 마주르 풍의 론도
The gracious main theme, imbued with a lively mazurka rhythm, is counterbalanced by another more peaceful one in B-flat (Tranquillamente e cantabile). Classic structure in five sections with episodes contrasting in tonality, tempo, and atmosphere.
활기찬 마주르카 리듬이 배어있는 우아한 주요 주제는 조금 더 평온한 B플랫 주제(트란퀼라멘테 에 칸타빌레)와 균형을 맞추고 있다. 고전적인 구조로 다섯 부분으로 나뉘고, 각기 다른 조성, 템포, 분위기의 에피소드가 삽입되어 있다.
Etude op. 10 No. 8 (1829) / 연습곡 8번
An exercise in agility for the right hand, which sweeps across the keyboard with dizzying semiquavers and broad arpeggios, while the left sings a playful and slightly aggressive melody. The didactic function espouses virtuosity, such as in the great precedents of Bach and Paganini.
오른손의 민첩함을 요하는 연습곡이다. 오른손은 건반을 휩쓸며 아찔한 16분음표와 폭넓은 아르페지오를, 왼손은 경쾌하고 다소 공격적인 선율을 연주한다. 곡의 교육적인 기능은 바흐와 파가니니가 남긴 위대한 선례와 마찬가지로 기술의 완성을 도모하고 있다.
Grand Valse Brillante op. 18 (1831-1833) / 화려한 대왈츠
Before 1834, the year this waltz was published, Chopin had written at least sixteen others, all lost or printed after his death. For its playful and light-hearted nature, this piece has become quite popular, even becoming a part of Warner Bros. cartoons. Its structure is based upon seven themes that revolve around the pattern AABABCCxCDDxDxABA-recapitulating coda (where the “x” represents modulating sections of transition without a theme content).
쇼팽은 이 왈츠가 출판된 1834년 이전에 적어도 16곡 이상의 왈츠를 작곡했으나, 전부 유실되거나 사후에 출판되었다. 장난스럽고 가벼운 성격 덕분에 인기가 많은 곡으로 워너 브라더스 애니메이션에도 사용되었다. 곡의 구조는 AABABCCxCDDxDxABA-코다(x는 주제가 아닌 전환을 위한 전조 부분을 의미) 패턴으로 도는 7개의 주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Andante Spianato et Grande Polonaise Brillante op. 22 (1830-1838) /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대 폴로네즈
The “Grande polonaise brillante”, in E-flat major, was written for piano and orchestra in 1830-1831. In 1834 Chopin preceded it with an Andante spianato in G major, uniting both parts with a modulating bridge in the way of a fanfare. The arrangement for solo piano, better known today, dates to 1838. The introduction is a charming cantabile in 6/8, interrupted by pseudo-trio chords without modulation; the polonaises does not reach the same level of quality, but is nonetheless overwhelming in rhythm and well conceived.
화려한 대 폴로네즈 E플랫 장조는 1830~1831년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해 작곡된 곡이다. 쇼팽은 1834년에 안단테 스피아나토 G장조를 앞부분에 추가하고, 두 부분을 팡파르 풍의 연결부로 이었다. 오늘날 더 잘 알려진 피아노 독주 버전은 1838년에 작곡했다. 개시주제는 6/8박자 형식의 매력적인 칸타빌레인데, 곳곳에 유사 3중 화음이 전조 없이 등장한다. 폴로네즈는 전반부의 수준에는 미치지는 못하지만, 리듬감이 충만하고 잘 구상되었다.
Three mazurkas op. 56 (1843) / 3개의 마주르카 작품 56
The greatest variety unfolds upon these three pages belonging to the same genre and form. The first – lyrical and suited to a salon – boasts a virtuosic exchange of hands while sustaining the melody: a sort of mazurka-waltz. The second extols ethnic elements: a drone-like accompaniment, shifts in rhythm, chromatic alterations, with imitation among the voices. The third reaches a climax of dramatic stylization, as the lilting and melancholic opening theme is contrasted with a strongly rhythmic, proud, and gallant central section.
같은 장르 같은 형식이 세 곡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펼쳐진다. 첫 곡은 서정적이고 살롱에서 연주하기에 알맞은 곡으로, 화려한 손의 교차연주를 보이며 마주르카-왈츠풍의 멜로디를 유지한다. 두 번째 곡은 웅얼거리듯 한 반주, 리듬 변화, 반음계적 화성 변화, 음성의 모방 등 민속적인 요소가 돋보인다. 셋째 곡은 극적인 양식의 절정을 이루며, 부드럽고 음울한 개시부의 제1주제는 강한 리듬의 당당하고 호탕한 중심부와 대비된다.
Sonata No. 3 in B minor op. 58 (1844) / 소나타 3번
The last of Chopin’s three piano sonatas is built like the others in four movements, also with the characteristic inversion of the Scherzo (exceptionally short here) an the slow movement. The opening “Allegro maestoso” is in a modified sonata-form, with a recapitulation where the second theme usurps the place of the first and concludes in B major instead of B minor. After a stormy introduction, the Largo grows serene in a nocturne atmosphere where the “Italian style” song is sustained by long arches against non-conventional harmonic progression. The Finale, in the form of a rondo combined with strong two-theme elements (Presto non tanto), is imbued with a galloping rhythm, flowering with chromatic alterations and implying a truly transcendental virtuosity on the part of the performer.
쇼팽 피아노 소나타 3곡 중 마지막은 나머지 곡과 마찬가지로 4개 악장으로 구성되고, 게다가 (아주 짧은) 스케르초 악장과 느린 악장의 순서가 바뀌어 있다. 첫 악장 알레그로 마에스토소는 변형된 소나타의 형식을 띠는데, 제1주제가 제2주제로 넘어가는 부분에 재현부가 있고, B단조가 아닌 B장조로 마무리된다. 격정적인 도입부를 지나면 라르고 악장은 평온한 녹턴의 분위기를 띠고, ‘이탈리아풍’ 곡조는 독특한 화성 진행을 바탕으로 아치형으로 길게 이어나간다. 피날레(프레스토 논 탄토)는 강렬한 두 주제 요소를 결합한 론도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질주하는 리듬, 화려한 반음 변화로 가득한 이 악장은 연주자의 초월적인 기교를 당연시한다.
Carlo Vitali / 카를로 비탈리 글
Translation: Emily Ligniti / 에밀리 리니티 번역
A native of Nizhniy Novgorod (Russia), Daniil Trifonov was born in 1991. He is nineteen and is becoming one of the most poetical pianists on the international scene. In October 2010, he debuted at the “Fryderyk Chopi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Warsaw, winning third prize and a special award for the best mazurka performance. In Warsaw Trifonov deeply touched great artists such as Martha Argerich and Nelson Freire (both on the jury) as well as Krystian Zimerman, who all foresee spectacular things in his future.
다닐 트리포노프는 1991년 러시아의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태어났다. 19세의 트리포노프는 국제 피아노계에서 가장 시적인 감성의 피아니스트로 알려지고 있다. 2010년 10월 바르샤바에서 개최한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데뷔에서 3위를 차지하고 최고의 마주르카에 수여하는 특별상을 획득했다. 바르샤바 콩쿠르에서 트리포노프는 심사위원 마르타 아르헤리치 및 넬손 프레이레뿐만 아니라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에게 큰 감명을 주었으며, 그들은 그의 화려한 미래를 예고했다.
After Warsaw, Trifonov has collected a series of important debuts across the world. After having closed 2010 with various appearances in Germany, Poland, Italy, and Switzerland, 2011 has begun with a series of prestigious invitations. In Japan, Tokyo requested his presence, in early January, as the only debutante in a “solo recital” entirely dedicated to him, before the official tour of the competition winners, in which he performed alongside the Warsaw Philharmonic Orchestra and Antoni Wit at the Orchard Hall in Tokyo. The success was enormous also in St. Petersburg, where the severe audience at the Mariinsky Theatre praised him in February, where he debuted in a recital at the request of Valery Gergiev. On March 1, 2011 in Warsaw Trifonov closed the festivities of the 2010 Chopin Year with Concerto no. 1 in E minor, performed with Krzysztof Penderecki conducting the Sinfonia Varsovia. In Italy he debuted in April at the Teatro Regio di Parma with the Orchestra del regio, alongside another young talent, Andrea Battistoni, for the first Liszt concert.
그 이후, 트리포노프는 세계 주요 무대에서 일련의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 2010년은 독일, 폴란드, 이탈리아, 스위스 공연으로 마무리하고, 2011년은 세계 유명 공연장의 부름을 받으면서 시작하였다. 1월 초, 다른 수상자들과 함께하는 공식 투어 전에 일본 도쿄에서 신인 연주자로서 ‘솔로 리사이틀’에서 단독으로 공연하고, 도쿄 오차드 홀에서 안토니 비트가 지휘하는 바르샤바 국립 필하모니 교향악단과 협연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연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2월 발레리 게르기에프의 요청으로 출연하여 마린스키 극장의 까다로운 관객의 극찬을 받았다. 트리포노프는 2011년 3월 1일 바르샤바에서 2010년 쇼팽의 해를 마무리하는 공연에서 크시쉬토프 펜데레츠키가 지휘하는 신포니아 바르소비아와 함께 협주곡 1번을 협연했다. 4월에는 이탈리아에서 데뷔했는데, 파르마 테아트로 레지오에서 레지오 오케스트라와 다른 신인 연주자 안드레아 바티스토니와 함께 최초로 리스트를 공연하였다.
Spring 2010 had already started to place Daniil Trifonov in the limelight and arouse interest on the part of critics for this “rising star” of international piano performance. The excellent results of the solo recital held in March 2010 at the Teatro La Fenice in Venice (entirely dedicated to Chopin and Scriabin), to which this album bears witness (the recording also includes the concert held at the Fazioli Concert Hall in Sacile), is a sign of the musical “stature” which has made Trifonov a well-kept promise on today’s music panorama.
다닐 트리포노프는 2010년 봄부터 이미 각광 받기 시작했고, 국제 피아노계의 ‘떠오르는 별’로 평론가들의 관심을 모았다. 2010년 5월 베네치아 페니체 극장에서 열린 (쇼팽 및 스크리아빈의 음악) 독주회의 훌륭한 결과는 본 앨범에서 (이탈리아 사칠레의 라치올리 홀 공연 실황도 같이 수록하고 있다) 확인할 수 있으며, 오늘날 음악 파노라마에서 트리포노프의 성공을 예견하는 음악적 ‘위상’을 엿볼 수 있다.
Trifonov begun studying music at the age of five: an enfant prodige fortunate enough to have as his first great teacher Tatiana Zelikman, piano instructor at the Moscow Gnessin School of Music from 2000 to 2009 and, before him, the teacher of other talents of the new Russian School, such as Evgeny Lifschitz, Alexander Kobrin, Alexei Volodin. The second important stage in his training is recent and dates to 2009, when he attended the Cleveland Institute of Music, studying with Sergei Babayan, with whom he fine-tuned his technical approach to the piano and studied in-depth his own interpretive dimension.
트리포노프는 5세부터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 음악 신동은 2000년에서 2009년까지 모스크바 그네신 국립음악학교에서 에프게니 리프시츠, 알렉산더, 코브린, 알렉세이 볼로딘 등 신(新) 러시아 악파의 촉망받는 신예 피아니스트들을 가르친 타티아나 젤리크만 교수를 사사하는 행운을 누렸다. 음악 공부 두 번째 주요 단계로 최근 2009년까지 클리블랜드 음악학교에서 세르게이 바바얀의 지도를 받으며 피아노에 대한 기술적 접근을 정비하고 자신만의 해석을 연구했다.
Among the competition Trifonov has taken part in: the Moscow Open Artobolevskaya Competition for Young Pianists (Moscow, 1999), the International Competition Memory of Mendelssohn (Moscow, 2003), the International Television Competition for Young Musicians (Moscow, 2003), the Chamber Ensembles Festival “The Return” (Moscow, 2005, 2007), the Romantic Music Festival for Young Musicians (Moscow, 2006), and the 5th International Chopin Competition for Young Pianists (2006, Beijing). In 2008, Trifonov also boasted of the victories at the IV International Scriabin Competition of Moscow and III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San Marino (First Prize and Special Jury Prize). In 2010 he represented Russia at the Young Artists “Eurovision” Competition, which was aired on Eurovision during the inaugural evening of the Wiener Festwochen in Vienna.
트리포노프는 모스크바 오픈 아르토볼레프스카야 청소년 피아노 콩쿠르(1999년 모스크바, 1위), 멘델스존 추모 국제 콩쿠르(2003년 모스크바, 1위), 젊은 음악인을 위한 텔레비전 콩쿠르(2003년 모스크바, 그랑프리), 실내악 앙상블 축제 ‘더 리턴’(2005, 2007년 모스크바), 젊은 음악인을 위한 낭만주의 음악 축제(2006년 모스크바), 제5회 청소년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2006년 베이징, 3위) 등 수많은 콩쿠르에서 입상하였다. 2008년 17살 때 제4회 모스크바 스크리아빈 국제피아노콩쿠르(5위) 및 제3회 산마리노 국제피아노콩쿠르(1위 및 심사위원 특별상)에 입상하였다. 2010년 러시아 대표로 유로비전 젊은 음악가 콩쿠르(3위)에 참가하여, 연주가 빈 축제 개막일 저녁에 방송되었다.
Daniil Trifonov has already performed in many countries across the world, in recitals, and with important orchestras. He has also received awards and recognitions from international foundations and festivals. He has recorded for radio in Russia, the Czech Republic, and the United States. He also skillfully dedicates himself to composing and writing music for the piano, for orchestra, and chamber music.
다닐 트리포노프는 독주회 및 유수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등 세계 각지에서 활발한 공연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국제 재단 및 다양한 축제에서 각종 상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러시아, 체코, 미국 등지에서 라디오 방송 녹음을 진행하기도 하였으며, 작곡에도 재능을 보여 피아노, 오케스트라, 실내악 등 다양한 작품 제작 활동에도 열성을 다하고 있다.
김소연 번역
이 음반은 몇 년 전에 구매한 것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내지에 한글 번역이 있어서 일부 다듬었다. 내가 아는 정보도 추가했다. 폴란드로 가서 깨닫게 된 건 책에서는 흔히 프레데릭 (프랑수아) 쇼팽이라는 프랑스식 이름으로 나오지만, 폴란드에서는 프리데리크 (프란치셰크) 쇼팽이라고 한다. 트리포노프는 모스크바의 차이코프스키 음악원과 쌍벽을 이루는 그네신 음악원에서 공부했는데, 2011 차이코프스키 콩쿠르가 열리는 동안 타티아나 젤리크만이 제자를 따라다니면서 조언해주는 모습이 보였다. 다닐의 예당 공연에 가서 이 음반에 사인을 받았는데, 원래는 CD에 받으려던 것을 펜 색깔과 같은 검은색으로 되어 있어서 음반 커버에 받았다.
http://intoclassics.net/news/2015-11-27-39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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