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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piano bachelor, piano music lover, CD collector and classical music information's translator. Also KakaoTalk character Tube mania!Naver Blog: http://blog.naver.com/neige1984Youtube Channel: https://www.youtube.com/channel/UCDPYLTc4mK7dOXYTQEOiPew?view_as=subscriber

2019년 3월 27일 수요일

DG / Seong-Jin Cho Plays Debussy 2017



https://www.youtube.com/watch?v=U3u4pQ4WKOk
https://www.classicalmpr.org/story/2018/03/21/new-classical-tracks-seong-jin-cho

피아노로 그리는 한 폭의 수채화
피아니스트 조성진
[ 드 뷔 시 ]

한국인 최초의 쇼팽 콩쿠르 우승자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첫 스튜디오 레코딩 앨범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발라드](2016)에 이어 11월 17일(금)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의 시조인 [드뷔시] 앨범으로 돌아온다. 2018년 후기 낭만파의 멋진 도전자였던 작곡가 드뷔시 사후 100주년을 기념하여 발매되는 이번 앨범에는 드뷔시 영상 1, 2집, 어린이 차지, 세계적인 사랑받는 드뷔시의 곡 '달빛'이 포함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기쁨의 섬 등이 수록되었다. 지난 6월 베를린 Siemensvilla(지멘스빌라)에서 녹음한 이번 앨범은 조성진 특유의 서정성과 다채로운 음색이 드뷔시의 인상주의 작품들과 만나 마치 피아노로 표현되는 한 폭의 수채화를 감상할 수 있다.


New Classical Tracks: Seong-Jin Cho brings Debussy to life in new album - Classical Music Features Interview with Julie Amacher on the Classical MPR (21 March 2018) / 뉴 클래시컬 트랙 : 조성진이 새로운 앨범에서 드뷔시에 생명을 불어넣다 - 2018년 3월 21일 클래시컬 MPR에서 줄리 아마커와의 클래식 음악 특집 인터뷰
Before he won the gold medal at the International Chopin Competition in 2015, South Korean pianist Seong-Jin Cho lived and studied in Paris. He studied with Michel Béroff who was a Debussy specialist and on his days off when he wasn't busy studying he would wander through the museums and he'd admire the paintings of artists like Monet - the very artists who inspired Debussy so he said he's well prepared to play the music of Debussy which is what we hear on his brand-new recording. Enjoy this new episode of New Classical Tracks. I'm Julie Amacher.

2015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금메달리스트가 되기 전, 한국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파리에서 살면서 공부했다. 그는 드뷔시 스페셜리스트인 미셸 베로프와 공부했고, 공부하기 바쁘지 않은 휴일이면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드뷔시에 매우 영향을 미친 모네 같은 화가의 그림들을 존경하므로 그는 자신의 새로운 음반에서 우리가 듣는 드뷔시의 음악을 연주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뉴 클래시컬 트랙스의 이 새로운 에피소드를 즐기라. 저는 줄리 아마커입니다.

I want to just kind of dive right in to your life which, of course, was really launched when you won the Chopin International Competition in Warsaw. How has your life changed since winning that competition in 2015?

저는 당신의 인생에 바로 뛰어들고 싶은데요, 물론 당신이 바르샤바에서 열린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정말로 경력이 시작되었죠. 2015년에 그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로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나요?

Well, before the Chopin Competition, I just played like 20 or 30 concerts a year and since I won the Chopin, I started to play around 100 concerts a year. So there is a huge change I guess and I could build up my career in Europe and in Asia and also in the States, so, yeah, the Chopin Competition gave me a lot of opportunities for sure.

음, 쇼팽 콩쿠르 전에는 20~30회 정도 연주했는데,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에는 1년에 100회 정도 연주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에 거대한 변화가 있었고 유럽, 아시아, 미국에서도 경력을 쌓을 수 있었으므로 쇼팽 콩쿠르는 제게 많은 기회를 제공했죠.

One, of course, made you really popular especially in your homeland. Do you feel like, perhaps, you know, because now you're sort of a pop star in your homeland. Do you feel a responsibility to I don't know maybe younger musicians who are looking to you?

물론 특히 당신은 조국에서 정말로 유명해졌죠. 그렇게 느끼시나요? 당신은 이제 어쩌면 조국에서 일종의 팝스타이기 때문이죠. 당신을 보는 더 어린 음악가들을 제가 모른다는 것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시나요?

Well, a little bit, but not that much because I couldn't feel that much because I was not in Korea and I just I lived in Paris at that time and I couldn't feel that popularity in Korea. So I could just concentrate my performances and my music. So I thought I was pretty calm at that time.

음, 조금은 그렇지만 그렇게 많이 느끼지는 않아요. 제가 한국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다지 느낄 수 없었거든요. 그리고 저는 그 당시 파리에 살았고 한국에서 그 인기를 느낄 수 없었죠. 그래서 연주와 음악에 집중할 수 있었죠. 그래서 저는 당시에 꽤 침착했다고 생각했네요.

So I see that you've been doing some feeling in for a Lang Lang in a few performances this season. How did that come about?

그래서 저는 이번 시즌에 몇 번의 공연에서 당신이 랑랑에 대해서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바뀌게 되었나요?

I was so lucky and so honored that I could play. I could replace Lang Lang and I could play with the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last November and also in one week, I'm going to play in Ottawa and I will replace Lang Lang again and personally I am so happy and so honored and also I really hope pianist Lang Lang will recover very soon.

제가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자 영광입니다. 저는 랑랑을 대신하여 작년 11월에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연주할 수 있었고 1주일 내에 또 연주할 수 있었으며, 오타와에서 연주할 예정인데 다시 랑랑을 대체하며 개인적으로 정말 행복하고 정말 영광이며 피아니스트 랑랑이 곧 회복되길 바랍니다.

Now is he still battling an injury or what's, what's caused his cancellations do you know?

지금도 그는 여전히 부상과 싸우고 있나요, 아니면 무엇 때문에 그의 취소 사실을 알았나요?

I heard he has some problem in his hands, so that's why he cancelled.

저는 그의 손에 문제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그가 취소한 것입니다.

Yeah, well, you spent some time studying in Paris with Michel Béroff at the Paris Conservatory and that was before you went on to win the Chopin International Competition, so it almost seems like it makes sense after a couple of Chopin recordings that you would step into the music of Debussy which is your new release. And Michel Béroff, Debussy is one of his specialties, so I'm curious what you may have learned from him? One of the things that I read in another interview that you did is you talked about how when the two of you would discuss or work on Debussy, it was really more of a conversation. He didn't tell you what to do, he kind of… you guys had a conversation about it. Is there anything you could add to that? How one of those conversations may have gone?

그렇군요. 음, 당신은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하기 전에는 파리 음악원에서 미셸 베로프와 함께 공부했는데요, 따라서 쇼팽 음반을 두 장 발매한 후에 새로운 음반으로 드뷔시의 음악을 시작한 게 이해가 되는 것 같네요. 그리고 미셸 베로프는 드뷔시 스페셜리스트이므로, 당신이 그에게서 어떤 것을 배웠는지 궁금하네요. 제가 당신이 가졌던 다른 인터뷰에서 읽은 것 중 하나는 두 분이 드뷔시에 대해서 논의하거나 공들일 때 대화의 의미가 더 커졌다는 것입니다. 그는 당신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말하지 않았는데… 당신과 선생님은 그것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죠. 거기에 더할 수 있는 게 있나요? 어떻게 그 대화 중 하나가 사라졌을까요?

Maybe this was because of me, because I asked so many questions every time to Michel and for instance very detailed things like pedal and tempo or rubato. So I always curious about pedal because many pianists or many musicians put a lot of pedal when they play Debussy's music. Like very so-called impressionistic style. But Michel does not agree, didn't agree to put too much pedal. And he showed me some article which, which showed that Debussy didn't like who put too much pedal. And he, when some people play his music, so it was quite amazing to see that article in French and it was his collection. And there are some kind of this historical statement by Debussy also helped me to interpret his music. And Michel always introduce me some kind of book or article about the music and it was really helpful. He inspired me a lot of French music, especially Debussy and Ravel. And also living in Paris helped me to interpret the music by Debussy because there were, there are a lot of museum and a lot of paintings in Paris which inspired Debussy at his time. And it was so natural for me to experience and to see the French or European culture in European painting in Paris. So, unconsciously it helped me to interpret and it became very natural for me, the French music, so, yeah.

아마도 이것은 저 때문에, 제가 미셸에게 매번 많은 질문을 던졌는데, 템포나 루바토 같은 매우 상세한 것들을 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페달에 대해서 궁금한데 많은 피아니스트나 뮤지션이 드뷔시의 음악을 연주할 때 많은 페달을 밟기 때문이죠. 정말 이른바 인상주의처럼 말이죠. 그러나 미셸은 너무 많은 페달을 밟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죠. 그리고 제게 드뷔시가 너무 많은 페달을 쓰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몇 가지 기사를 보여주셨어요. 그리고 몇몇 사람들이 그의 음악을 연주하므로, 프랑스어로 된 기사를 보게 되어 정말 놀라웠는데 선생님이 모으신 거였죠. 그리고 드뷔시의 역사적인 진술도 제게 그의 음악을 해석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어요. 그리고 미셸은 항상 제게 음악에 대한 책이나 기사를 소개하는데 정말 도움이 되었어요. 제게 프랑스 음악, 특히 드뷔시와 라벨에 대한 영감을 많이 주셨죠. 그리고 파리에 사는 것도 드뷔시의 음악을 해석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는데, 파리에는 많은 박물관과 많은 그림이 있으며 드뷔시가 살던 시절에 영감을 주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파리에 있는 유럽 회화에서 프랑스 문화나 유럽 문화를 경험해보는 것은 제게 정말 자연스러웠거든요.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제가 해석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는데, 프랑스 음악이 제게 매우 자연스러워졌네요.

I was imagining perhaps Debussy, of course, doing the same thing. He was inspired by the impressionists' artwork of his day. Did that ever occur to you, like that you were almost seeing it, kind of experiencing it the way he did perhaps?

저는 물론 드뷔시가 같은 일을 할 것이라 상상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살던 시대에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죠. 그가 어쩌면 경험했던 방식을 당신이 거의 보고 있는 것처럼 그것이 당신에게 일어난 것이 아닐까요?

Yeah, in the spare time I went to the museum like every week because I bought annual membership card. It's for students, so it was not that expensive, so and I used to live a near Musée de l'Orangerie which has a lot of painting of Monet, so I, when I visited there very many, many times, so, yeah.

예, 여가 시간에 매주 박물관에 갔는데 연간 회원 카드를 구매했기 때문이죠. 학생용이라서 비싸지 않았으므로 모네의 그림이 많은 오랑주리 미술관 근처에서 지내곤 했는데, 정말 여러 번 방문했어요.

Well, let's dive into the music that's featured on your new recording. You have the Images I and II featured on this release and each of these little movements is kind of like a masterpiece in and of itself. What do you love about these two suites? Is there a particular movement that really, just tickles your fancy or…? Tell me a little bit about Images I.

음, 새로운 음반에 수록된 음악을 들여다봅시다. 이 음반에는 영상 1집과 2집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 작은 악장들은 각각 그 자체로 걸작과 같습니다. 이 두 개의 모음곡에 대해서 어떤 걸 좋아하시나요? 정말로, 당신의 상상을 근질거리게 하는 특별한 악장이나 뭔가가 있나요? 영상 1집에 대해서 좀 알려주세요.

Personally I found Images is one of the most difficult piano piece written by Debussy. Technically and musically, both are really demanding, and I found it's very poetic and there is a lot of color and sometimes it's abstract some kind of title like "Hommage à Rameau". It's quite abstract but somehow we could feel dignity and homage from the music. This is like a longer version of prelude for me. It's very… it's very difficult to interpret.

개인적으로 저는 영상이 드뷔시가 쓴 가장 어려운 피아노곡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술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정말 까다로우며, 저는 그것이 매우 시적이고 여러 가지 색채를 띠며 때때로 <라모를 예찬하며> 같은 제목처럼 추상적인 것을 발견했죠. 꽤 추상적이지만 어쨌든 우리는 음악으로부터 위엄과 존경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제게 프렐류드의 긴 버전인 것 같아요. 정말… 정말 해석하기 어렵네요.

His music sounds like it's sort of free-flowing but he really had very specific intentions and he makes note of that in the music, doesn't he?

그의 음악은 마치 자유롭게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실제로는 매우 구체적인 의도가 있으며 그는 음악에서 그 것을 기록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Yeah, for sure, yeah.

네, 맞아요.

Does that make it more challenging for you?

그게 당신에게 더 어렵나요?

Yes, the difficulty is, is, his imagination is limitless… and we have to produce a variety of sound and color and at the same time we have, we have to make a good balance. Because Debussy, of course he is romantic, but at the same time he was rational. He knew what he wants. So I think that we have to make a good balance between very poetic and colorful and sometimes romantic and also very academic at the same time.

네, 어려운 것이 뭐냐면 그의 상상력이 무한하므로… 우리는 다양한 소리와 색채를 만들어야 하며 동시에 균형을 잘 맞춰야 합니다. 왜냐 하면 드뷔시, 물론 그는 낭만적이지만 동시에 이성적이었거든요.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있었죠. 그래서 저는 우리가 매우 시적이고 다채로우며 때로는 낭만적인 동시에 매우 학구적으로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Children's Corner Suite was written for his daughter, but this piece is actually very much an adult piece even though you started to learn it when you were, what, 11 years old?

<어린이 차지> 모음곡은 드뷔시의 딸을 위해 작곡되었지만, 이 곡은 실제로 성인을 위한 곡입니다. 당신은 이 곡을 11세 때부터 배우셨네요?

Yeah.

예.

So your impression of this work, how has it changed over the years since you've known it for quite a while?

그래서 이 작품에 대한 당신의 인상은, 당신이 꽤 오랫동안 이 곡을 알고 나서 수년 동안 어떻게 변했나요?

Well, I don't remember how I played when I was 11 years old, but I'm sure it has, has been changed. And actually this "Children's Corner" in Debussy just wanted to entertain her daughter, Chouchou. That's why he composed this piece and maybe, probably technically it's not that difficult but to get the feeling of the music. It is quite demanding. For instance, like a fourth piece is really difficult for me, "The Snow is Dancing". We really need to make sounds like snow, very icy, sometimes regular, sometimes irregular and make a good balance and not aggressive. And it is very delicate piece so we have to control the piano so well.

음, 제가 11세였을 때 어떻게 연주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게 변한 것이 있다고 확신해요. 그리고 이 <어린이 차지>에서 드뷔시는 딸 슈슈를 즐겁게 해주길 원했죠. 그래서 이 곡을 썼는데, 어쩌면 기술적으로 어려운 게 아니라 음악에 대한 느낌을 익히는 것이 어려울 거예요. 아주 까다롭거든요. 예를 들어 4번 <눈송이는 춤춘다>는 제게 정말 어려워요. 우리는 실제로 눈, 매우 얼음같이 차가운, 때로는 규칙적이고, 때로는 불규칙적인 소리를 만들어야 하며 균형을 잘 맞추면서 공격적이면 안 됩니다. 그리고 이 곡은 매우 섬세한 작품이므로 우리는 피아노를 잘 컨트롤해야 합니다.

The "Suite Bergamasque" includes the very familiar "Clair de lune". And your interpretation of it is perhaps a little more slow. The tempo is taken more slowly than, than some interpreters. Why do you choose to do that?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에는 매우 친숙한 <달빛>이 있죠. 그리고 이 곡에 대한 당신의 해석은 아마도 조금 더 느릴 것입니다. 템포가 몇몇 연주자들보다 느리네요. 왜 그렇게 선택했나요?

The tempo marking is "andante" and is walking tempo, like people walking. And for me "andante" is very free compared to "adagio". "Andante" is, have to flow, so well - probably I even play a little bit too slowly - but that's the "andante," what I think.

템포 표시는 “안단테”(느리게)이며 사람들이 걷는 것처럼, 걷는 속도입니다. 그리고 제게 “안단테”는 “아다지오”(느리게)와 비교해서 매우 자유롭죠. “안단테”는 잘 흘러야 하지만, 어쩌면 저는 심지어 너무 느리게 연주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안단테”입니다.

Well, I also read that you felt like it fit the mood the day you were recording it and you were able to do it all in one take. So there was something about the way you were feeling about that piece when this was recorded that just seemed right for you?

음, 저는 당신이 그것을 녹음한 날에 분위기가 맞았다고 느껴서 원 테이크로(단번에) 모든 곡을 녹음할 수 있었다는 것도 읽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당신에게 맞는 것처럼 녹음되었을 때 이 곡에 대해서 느끼는 방식에 뭔가가 있었나요?

Oh, yeah, actually I listen again after I played it and my producer said: "Oh, you play a little bit slower than the others," and then I still felt this is the right tempo for me. And it was still walking tempo for me so that's why I chose this tempo and it was quite natural tempo for me. Perhaps I will play differently in 10 years, but for now I think this is the right tempo.

아, 예, 실제로 저는 그것을 연주한 후 다시 들었으며 제 프로듀서가 다음과 같이 말했죠. “오, 당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느리게 연주하시네요!” 그러고 나서 저는 아직도 이것이 제게 맞는 템포라고 느꼈죠. 그리고 여전히 제게 걷는 속도라서 이 템포를 선택한 것이며 제게 아주 자연스러운 템포였죠. 아마도 저는 10년 동안 다르게 연주할 것이지만, 지금은 이것이 올바른 템포라고 생각해요.

You close out this recording with "L'isle joyeuse" and this is a piece that the composer had thought about including in that "Suite Bergamasque". Tell me a little bit about this piece and what you love about it.

당신은 <기쁨의 섬>으로 이 녹음을 마무리하는데요, 이 곡은 작곡가가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에 포함시키는 것에 대해 고려했던 작품입니다. 이 곡에 대해 그리고 이 곡의 어떤 것을 사랑하는지 말씀해주세요.

It's really brilliant and very lovely, and delicate also, and dramatic piece… What… I think the most dramatic piece by Debussy. And I'd like to just conclude this album with "L'isle joyeuse" with very happy, happy emotion and very, very positive.

이 곡은 정말 화려하고 매우 사랑스럽고 섬세하면서 극적이기도 한 작품입니다. 드뷔시 작품들 중에서 가장 극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앨범을 매우 행복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지닌 <기쁨의 섬>으로 마무리하고 싶어요.

That's New Classical Tracks from American Public Media with special thanks to Valerie Kahler for producing this episode. I'm Julie Amacher.

이 에피소드를 제작하는 데에 도움을 주신 발레리 케일러에게 특별한 고마움을 보내며 어메리칸 퍼블릭 미디어의 뉴 클래시컬 트랙스였습니다. 저는 줄리 아마커입니다.


"Claude Debussy was a revolutionary composer, unconventional and limitless." - Seong-Jin Cho

“클로드 드뷔시는 자유롭고 무한한, 혁명적인 작곡가였습니다.” - 조성진

Track
01 Images I, L. 110 - 1. Reflets dans l'eau / 영상 1집 1번 물 위의 그림자
02 Images I, L. 110 - 2. Hommage a Rameau / 영상 1집 2번 라모를 예찬하며
03 Images I, L. 110 - 3. Mouvement / 영상 1집 3번 움직임
04 Images II, L. 111 - 1. Cloches a travers les feuilles / 영상 2집 1번 잎새를 흐르는 종
05 Images II, L. 111 - 2. Et la lune descend sur le temple qui fut / 영상 2집 2번 달은 황폐한 절에 걸려
06 Images II, L. 111 - 3. Poissons d'or / 영상 2집 3번 금빛 고기
07 Children's Corner, L. 113 - 1. Doctor Gradus ad Parnassum / 어린이 차지 1번 닥터 그라두스 아드 파르나숨
08 Children's Corner, L. 113 - 2. Jimbo's Lullaby / 어린이 차지 2번 코끼리의 자장가
09 Children's Corner, L. 113 - 3. Serenade for the Doll / 어린이 차지 3번 인형을 위한 세레나데
10 Children's Corner, L. 113 - 4. The Snow is Dancing / 어린이 차지 4번 눈송이가 춤춘다
11 Children's Corner, L. 113 - 5. The Little Shepherd / 어린이 차지 5번 어린 양치기
12 Children's Corner, L. 113 - 6. Golliwog's Cakewalk / 어린이 차지 6번 골리워그의 케이크워크
13 Suite bergamasque, L. 75 - 1. Prelude /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1번 전주곡
14 Suite bergamasque, L. 75 - 2. Menuet /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2번 미뉴에트
15 Suite bergamasque, L. 75 - 3. Clair de lune /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3번 달빛
16 Suite bergamasque, L. 75 - 4. Passepied /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4번 파스피에
17 L'isle joyeuse, L. 106 / 기쁨의 섬










A South Korean in Paris
Seong-Jin Cho has always loved French music - Debussy's "Children's Corner" was on the programme of his very first public recital, which he gave when he was only eleven. When, in 2012, he decided to continue his musical studies in the West, his choice fell on Paris. "It was heaven for me!" the South Korean pianist cannot conceal his enthusiasm. Cho is a fan of all classical genres. "France is a centralized country, which means that all the leading orchestras and performers come to Paris," he explains. "Also, ticket prices are much lower than in Seoul. As a result I was able to go to three concerts or operas a week."

Seong-Jin Cho attended Michel Béroff's class at the Paris Conservatoire, having already got to know the French pianist when Béroff sat on the jury at the Tchaikovsky Competition in Moscow. Cho was particularly impressed by the pride that Béroff evinced in introducing him to France's national musical legacy. Béroff is regarded as an outstanding exponent of the piano music of Debussy in particular - and so Cho worked intensively with his former teacher when preparing his own Debussy album. The two are now close friends.

After five years in Paris Seong-Jin Cho felt that he was ready for the composer whose piano music counts among the most sophisticated and exquisite ever written for the instrument. "Debussy was inspired by the most disparate aesthetic impressions," says Cho. "Take, for example, his fascination with Indonesian gamelan music, which he got to know at the Paris World Fair in 1889. He also loved Japanese art, in which perspective is treated completely differently from the way it is treated in Western art and where the areas of the canvas that have not been painted over but have been left blank have an important significance – much like the rests in Debussy’s music."

Debussy was also in close contact with the avant-garde painters of his day, namely the Impressionists. Cho found himself drawn into their sway in 2014, when he bought a season ticket for the Musée d’Orsay and the Musée de l'Orangerie. "I went there practically every day and often spent half an hour just sitting in front of one of Monet's water-lilies, soaking up its atmosphere."

The way in which artists sought to capture the reflection of light on the surface of water is one with which Seong-Jin Cho is very familiar. And he rediscovered in Debussy's music this same attempt to sublimate natural phenomena through art. Nowhere is this more apparent than in the piano cycle "Images" that dates from 1905 to 1907. "It's an absolute masterpiece," says Cho, his eyes sparkling with pleasure, "incredibly atmospheric and highly poetic."

As a result Seong-Jin Cho gave great thought to the instrument that he would use for this recording. True, it would be a Steinway, but one with a bright and lighter tone, less reverberant and less brilliantly metallic than listeners have come to expect from a Steinway concert grand. "It was important for me to be able to produce very delicate and quiet sounds that retain their delicacy and range of colour even when played 'pianississimo'."

"Children's Corner" may have been Cho's first encounter with Debussy, but he naturally approaches it in a very different way from the one he adopted when he was eleven. It is only with the passage of time and in the light of the knowledge that Debussy was an anti-Wagnerian that the significance of the appearance of the "Tristan chord" between the ragtime syncopations of "Golliwogg's Cake-walk" becomes clear. Even though Debussy dedicated the cycle to his three-year-old daughter Chouchou, "Children's Corner" is in Cho's opinion "grown-up music" that clearly resonates with melancholic memories of the composer’s own childhood, and so Cho's favourite numbers are two that are atmospherically muted: "Serenade for the Doll" and "The Snow is Dancing".

Debussy's forward-looking music is practically unthinkable without a knowledge of the context of Paris, since the French capital was indisputably the hub of the world of modern art in the years around 1900. And yet, like Faust, Debussy found two souls contending within his breast, inasmuch as he felt a constant yearning to escape from Paris and enjoy the world of nature. His famous "Clair de lune" from his "Suite bergamasque", for example, is clearly part of the tradition of Romantic nocturnes. Seong-Jin Cho justifies his decision to perform it extremely slowly by explaining that "the tempo marking is Andante - in other words, at a walking pace. But the speed always depends on the person in question. On the day of the recording I felt that this was exactly the right tempo for me personally." As a result he was able to record "Clair de lune" in a single take without any need for editing.

Seong-Jin Cho follows up the "Suite bergamasque" with "L'Isle joyeuse" (The Joyous Isle) "because Debussy toyed with the idea of integrating this piece into the suite". Of all Debussy's piano pieces, "L'Isle joyeuse" is the most brilliant and the liveliest, making it the ideal finale for this Debussy album.


이 음반을 이벤트가 한참 지나고 나서 샀기 때문에 달력은 없다. 구매하면 내지에 있는 내용의 한글 번역을 볼 수 있다. 유튜브에 있는 자막을 받아쓰기한 다음 외국 분한테 수정을 부탁했는데 그분이 다듬어주신 것도 정확한 건 아니라서 내가 문법을 좀 따져봐야 했다. 조성진이 드뷔시에 대해서 careful이라고 했다고 캐나다 사이트에 잘못 나왔는데 외국 분은 colorful로 적었다. 이건 내가 다시 확인해봤는데 문맥상 colorful이 맞고 이미 언급한 단어이기도 하다. one take란 재즈 음반 정리하면서 본 단어인데 take one, take two 이런 단어가 뭔가 했다. 조성진이 말하는 걸 통해서 한 번에 녹음하는 걸 원 테이크라고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재즈에서는 첫 번째 녹음, 두 번째 녹음이 맞겠다.) 고1 때 영어 잘 하는 걸 get이랑 take 두 단어로 따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정말 둘 중에 하나만 만나도 해석에 애를 먹는다. get의 용법만 해도 100가지가 넘으니까. 영어권 사람들이야 이 두 단어를 편하게 쓴다지만 받아들이는 나는 무슨 뜻인지 골치 아프다고~ get이랑 take는 그나마 이 단어들과 관련된 숙어 몇 가지 외우는 정도. get은 얻다, take는 사다, 이렇게만 해석되는 것이 아니다. 유튜브에서 이 인터뷰 전체가 사라지기 전에 자막 기능을 활용하여 받아쓰기할 수 있었는데, 이걸 번역하면서 조성진에 대해서 스스로가 점점 곤란해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다른 외국 피아니스트들의 인터뷰를 번역할 때와 마찬가지로 조성진한테 드뷔시에 대해서 레슨 받는 마음으로 임했다. 어차피 2020년부터는 곤란할 일이 없다. 곤란한 공부조차 그만둘 거니까.

NIFC / Seong-Jin Cho Plays Chopin 2016



“바르샤바 필하모닉과 함께 한 조성진의 E단조 협주곡 연주는 대단히 화려했지만 서정적인 측면도 충분히 발휘되었다.” - The Telegraph

“결선 참가자 10명의 협주곡 연주 중에서 조성진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시적이고 품위 있으며 감동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다... 특히 조성진이 연주하는 느린 악장(로망스)의 첫 부분은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하고 균형이 잡혀 있었으며 그가 악기로부터 이끌어내는 음색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빠른 부분에서도 수정처럼 선명했으며 언제나 잘 다듬어진 연주였다.” - Pianist

“(결선 무대에서) 조성진의 빛나는 협주곡 연주는 충격이었다... 그가 협주곡에서 들려준 완벽함과 자신감은 다른 경쟁자들을 가려버리고 말았다. 대개 결선에서는 나중에 연주하는 것이 유리하다고들 하지만, 조성진은 오히려 10명의 결선 참가자들 중에서 가장 먼저 연주해서 다른 참가자들의 연주를 잊게 만들었다.” - International Piano

“이번 쇼팽 콩쿠르는 전 세계에서 기록적인 인원의 참가자들이 몰려들었다... 조성진은 초월적인 연주를 선보이며 쇼팽 콩쿠르의 확실한 우승자로 등장했다” - 아르투르 슈클레네르 (Artur Szklener, 쇼팽 협회 감독)

지난 10월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제17회 국제 쇼팽 콩쿠르 실황의 감동을 담은 실황 음반이 쇼팽 협회 공식 레이블(The Fryderyk Chopin Institute)로 발매되었다. 이번에 발매되는 음반에는 1라운드부터 3라운드까지 콩쿠르의 매 단계에서 조성진이 연주했던 다양한 쇼팽 작품이 담겨 있으며, 특히 콩쿠르 전체의 하이라이트이자 결선 연주곡이었던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연주 실황이 담겨 있다. 역사적인 쇼팽 콩쿠르 우승의 감동을 가장 완벽하게 담은 음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Track
01 Etude in C, Op. 10 No. 1 / 연습곡 작품 10-1 - 1라운드 (10월 3일)
02 Etude in Ab, Op. 10 No. 10 / 연습곡 작품 10-10
03 Fantasy in f, Op. 49 / 환상곡
04 Ballade No. 2 in F, Op. 38 / 발라드 2번 - 2라운드 (10월 9일)
05 Waltz in F, Op. 34 No. 3 / 왈츠 4번 - 2라운드 (10월 9일)
06 Mazurkas, Op. 33 No. 1 in g# / 4개의 마주르카 작품 33 - 3라운드 (10월 14일)
07 Mazurkas, Op. 33 No. 2 in C
08 Mazurkas, Op. 33 No. 3 in D
09 Mazurkas, Op. 33 No. 4 in b
10 Piano Concerto No. 1 in e, Op. 11: I. Allegro maestoso (with Jacek Kaspszyk & Warsaw Philharmonic Orchestra) / 피아노 협주곡 1번 - 수상자 갈라 콘서트 (10월 21일,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야체크 카스프쉬크 지휘)
11 Piano Concerto No. 1 in e, Op. 11: II. Romance. Larghetto
12 Piano Concerto No. 1 in e, Op. 11: III. Rondo. Vivace


2010년 음반을 보면 디자인이 다 같은데, 2015년 음반은 우승자만 다르다. 알고 보니 우리나라 발매반만 커버에 사진을 담은 것이다.

The Fryderyk Chopin Institute


http://en.chopin.nifc.pl/institute/
https://ko-kr.facebook.com/instytut.chopina/
https://en.wikipedia.org/wiki/Fryderyk_Chopin_Institute

The Fryderyk Chopin Institute in Warsaw is the most important Chopin centre in the world; it plays a key role in promoting, safeguarding and disseminating the heritage of Fryderyk (also known as Frédéric) Chopin and is also a centre for research into the great Polish composer and his work.

바르샤바 소재 폴란드 프리데리크 쇼팽 협회는 세계 최고의 쇼팽 관련 기관이다. 프리데리크 쇼팽 유산의 홍보, 보존과 확산에 힘쓰고, 위대한 폴란드 작곡가 쇼팽과 그의 작품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다.

Established by the Polish parliament in 2001 as one of Poland’s national cultural institutions, it continues the tradition of the Music Society, the nineteenth-century Chopin Committee and the Fryderyk Chopin Society. It organizes the International Fryderyk Chopin Piano Competition in Warsaw and other significant artistic events, pursues publishing and educational ventures, maintains a rich library and phonographic collection, and also runs the Fryderyk Chopin Museum.

2001년 폴란드 국회에 의해 국립 문화기관으로 설립된 쇼팽 협회는 음악협회, 19세기 쇼팽 위원회와 바르샤바 쇼팽 협회의 전통을 이어간다. 바르샤바에서 열리는 쇼팽 피아노 콩쿠르와 그 외 주요 예술 행사를 주최하고, 출판 및 교육 활동을 하며, 자료가 풍부한 도서관과 음반 컬렉션을 관리하며, 프리데리크 쇼팽 박물관을 운영한다.

One of the Institute's flagship projects is the international music festival "Chopin and His Europe", which every year since 2005 has attracted to Warsaw the world's finest performing musicians: pianists, virtuosos of other instruments, vocalists and world-renowned ensembles. The main strands to the festival’s programme are the presentation of Chopin's music within a broader historical and cultural context (encompassing its sources, inspirations and influence, as well as the music of his times, including little-known Polish works) and performances of the highest calibre on historical instruments (piano music, chamber and symphonic works and opera of the nineteenth century).

쇼팽 협회의 가장 대표적인 프로젝트인 ‘쇼팽과 그의 유럽’ 국제 음악 페스티벌은 2005년부터 매년 피아니스트와 다른 악기의 명연주자, 성악가, 국제적인 앙상블 등 세계 유수의 연주자들을 바르샤바로 이끌고 있다. 페스티벌 프로그램의 주요 취지는 쇼팽의 음악을 더 넓은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서 (작품의 출처, 영감과 영향을 비롯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폴란드 작품 등 당대의 음악) 제시하고, 시대 악기로 최고 수준의 연주를 (19세기 피아노 음악, 실내악과 교향악 작품 및 오페라) 선보이는 것이다.

Inseparably linked to the Institute's concert programme is its media and publishing work. Its recording projects in particular are characterized by the highest standards in performance and production, and it has received many prestigious prizes and awards for its audio and video releases, covering the complete works of Chopin (on both historical and modern instruments), selected concerts, the promotion of young artists and the music of Chopin’s times, as well as other areas.

쇼팽 협회의 콘서트 프로그램은 미디어 및 출판 활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특히 협회의 녹음 프로젝트는 최고 수준의 연주와 제작 기술을 자랑하고 있고, 쇼팽 작품 전 작품 연주(시대 악기 및 현대 악기) 공연, 젊은 연주자 홍보, 쇼팽 시대의 음악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출시된 음반과 영상은 여러 저명한 상을 받았다.

The Institute's wide-ranging scholarly work includes organizing international musicological conferences and issuing highly regarded publications that bring popular science, academic and children’s educational books to an international readership. Particularly important is the ongoing project of publishing all of Chopin's extant music manuscripts in facsimile: these are published in the form of exclusive albums, displaying exceptional scholarly and artistic qualities.

쇼팽 협회의 학술 활동은 음악학 구제회의 개최를 비롯하여 전 세계 독자를 대상으로 대중과학, 학술 및 아동 저서 등 높이 평가받는 출판물의 제작 등을 포함한다. 특히 중요한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 중인 쇼팽의 모든 현존 악보 필사본의 복제판 출판으로,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높은 한정판 앨범의 형태로 제작될 것이다.

An integral part of the Institute is the Fryderyk Chopin Museum, housed in the restored historical interiors of the Ostrogski Palace in Warsaw. Its permanent display contains many invaluable Chopiniana, presented with the use of the latest museum resources and technologies, both interactive and multimedia, and it attracts visitors from all over the world. Also preserved under the aegis of the Museum is Chopin’s birthplace, set within a beautiful park in Żelazowa Wola.

쇼팽 협회는 또한 바르샤바의 오스트로그스키 궁전의 역사적인 공간을 복원하여 쇼팽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상설 전시는 수많은 귀중한 쇼팽 관련 유물을 인터랙티브 및 멀티미디어 등 첨단 매체와 기술을 사용하여 선보이고, 전 세계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박물관 관할하에 젤라조바 볼라의 아름다운 공원에 있는 쇼팽의 생가를 관리하고 있다.

Krystian Zimerman Recital at Lotte Concert Hall in Seoul Day 2 (23 March 2019)


16년만의 내한! 피아니스트의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은 열여덟 살의 나이로 쇼팽 콩쿠르 우승을 거머쥐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고 살아있는 거장, 완벽함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다.

클래식 애호가뿐만 아니라 전 세계 피아니스트들의 롤 모델이기도 한 그는, 곡에 대한 완벽한 이해, 이를 바탕으로 한 자신만의 해석으로 이 시대 거장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며, 앨범을 발매할 때마다 ‘별 다섯 개밖에 주지 못하는 아쉬움’(그라모폰), ‘그로 인해 느끼는 클래식의 영원함’(뉴욕 타임스) 등 세계 언론의 찬사를 받고 있다.

쇼팽 해석의 대가,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 선택한 프로그램
그는 이번 리사이틀을 통해 어느 누구도 이견을 제기할 수 없는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시그니처 레퍼토리인 쇼팽의 4개의 스케르초와 마주르카, 같은 낭만시대에서 상반된 음악적 지향을 두고 있는 낭만 소나타의 정수 브람스의 소나타 2, 3번을 연주할 예정이다. 그는 이번 리사이틀을 통해 무결점에 가까운 연주를 선사할 것이다.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 Krystian Zimerman
열여덟 살의 나이로 쇼팽 콩쿠르에서 1등상을 수상하면서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은 명성을 얻게 된다. 그때부터 그는 세계에서 가장 명망 높은 오케스트라들과 함께 작업하고 최고의 국제적인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개최하며 월드클래스의 커리어를 이어오고 있다.

그는 뛰어난 음악인들과 함께 작업해왔다. 그중에는 기돈 크레머, 정경화, 예후디 메뉴인과 같은 실내악 파트너들도 있으며, 레너드 번스타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세이지 오자와, 리카르도 무티, 로린 마젤, 앙드레 프레빈, 피에즈 불레즈, 주빈 메타, 스타니스와프 스크로바체프스키, 사이먼 래틀 경과 같은 지휘자들도 있다.

지메르만은 모든 리사이틀을 위해 자기 자신의 피아노를 직접 실어 나른다. 이는 청중들로 하여금 악기의 복합성과 역량을 좀 더 알아차리게 하기 위한 지메르만의 습관이라 하겠다. 그의 피아노 제작에 관한 전문 지식과 익숙한 본인의 악기로 연주하는 것이 결합되어 음악적인 문제들 외에 그의 집중을 방해하는 그 어떤 요소도 최소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그는 아내와 함께 그의 삶을 대부분을 보낸 스위스에 거주하고 있다. 자신의 시간을 가족, 콘서트 라이프, 실내악 사이에서 나눔으로써 그는 한 시즌 단 50회의 콘서트 무대에만 오르고 있다. 그는 직업으로서의 음악과 자기 자신에 대한 관리, 그리고 홀 음향학과 최신 음향 기술 및 악기 제작 공부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으로 접근한다. 또한 심리학 및 컴퓨터 공학 공부에도 몰두하고 있다.

지메르만의 음반들은 도이치 그라모폰과의 오랜 작업 기간 동안 수많은 최고의 상들을 수상했다. 1999년 그는 음반을 위해 특별 구성한 오케스트라와 함께 쇼팽의 콘체르토 작품들을 레코딩했으며, 쇼팽 서거 1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그 오케스트라와 함께 유럽과 미국 전역을 돌며 그의 콘체르토 작품들을 연주했다. 또한 그는 폴란드의 작곡가 그라지나 바체비치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그녀의 실내악 음반을 레코딩하기도 했다.


Program
Chopin 4 Mazurkas, Op. 24 / 쇼팽 4개의 마주르카 작품 24
No. 1 in g: Lento
No. 2 in C: Allegro non troppo
No. 3 in Ab: Moderato con anima
No. 4 in b flat: Moderato

Brahms Sonata No. 2 in f#, Op. 2 / 브람스 소나타 2번
I. Allegro non troppo, ma energico
II. Andante con espressione
III. Scherzo. Allegro - Trio. Poco più moderato
IV. Finale. Sostenuto – Allegro non troppo e rubato

Intermission

Chopin 4 Scherzi / 쇼팽 스케르초 전곡
No. 1 in b, Op. 20
No. 2 in b flat, Op. 31
No. 3 in c#, Op. 39
No. 4 in E, Op. 54

Chopin Mazurka in Ab, Op. 59 No. 2 / 쇼팽 마주르카 작품 59-2

Encores
Brahms 4 Ballades, Op. 10 No. 1 in d: Andante [after the Scottish ballad "Edward"] / 브람스 4개의 발라드 작품 10-1
Brahms 4 Ballades, Op. 10 No. 2 in D: Andante / 브람스 4개의 발라드 작품 10-2
Brahms 4 Ballades, Op. 10 No. 4 in B: Andante con moto / 브람스 4개의 발라드 작품 10-4


이튿날인 3월 23일에도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리사이틀을 다녀왔다. 잠실역에 도착하여 여유가 있었으므로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러서 음반을 두 장 샀다. 지메르만의 성질이 어떤지 익히 알기 때문에 전날에 이어서 휴대폰을 다른 공연보다도 특히나 조심 또 조심했다.

이날 공연은 쇼팽 마주르카로 시작해서 뜻밖이었다. 피아노 소리가 전날과 다르게 들렸는데 내가 이번에도 꼭대기라지만 다른 자리에 앉아서 소리가 다른 건가? 아니면 지메르만이 피아노 조율을 전날과 다르게 했나? 전날 못 본 사람들을 위해서 앙코르곡들을 들려주는 것 같았다. 마주르카의 템포 루바토가 루바토인 듯 아닌 듯 절묘하게 들렸다.


네 번째 마주르카는 오른손만 나오는 오프닝 몇 마디에 애착이 있는데 눈물이 핑그르르~~~ 나한테는 해가 저무는 광경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 슬프면서도 서정적이고... 뭔가 슬픈 아름다움. 전날보다 지메르만의 콧노래가 덜 들린다. 자리 탓인 듯.

“쇼팽을 연주할 때면 나는 듣는 이의 가슴에 직접 말하고 있음을 느낀다.” -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루빈스타인이 말한 쇼팽 음악의 특징이 결정적으로 와 닿게 느끼게 해준 연주자는 나한테 지메르만이 유일하다. 결정적으로 나는 지메르만의 연주를 실제로 들으면서 루빈스타인의 말을 다시 한 번 느껴보려고 했는데 내 마음을 비우지 않고 들어서인지 그런 느낌에 닿을 듯 말 듯했다. 가장 접근한 곡은 마주르카. 쇼팽 콩쿠르를 볼 때 느끼는 거지만 폴란드 참가자들의 마주르카를 특히나 즐기게 된다. (다만 마주르카 특별상을 꼭 폴란드 참가자가 받는 건 아니다.)


이어서 연주한 브람스 소나타 2번은 1악장 말고 익숙하지 않다. 대학교 입시에서 어쩌다 보이는 곡이긴 한데 1악장이 워낙 강렬해서인지 나머지 악장들이 심심하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날 연주에서 이런 내 생각을 뒤엎었다.


2악장을 들으면서 소나타 2번의 무게중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2악장은 느릿하게 흘러간다.


3악장 오프닝은 2악장과 비슷한데 빠른 템포. 남자가 저음에서 부르면 여자가 고음에서 대답하는 느낌? (낮은 성부는 지상의 인간, 높은 성부는 천상의 신으로 볼 수도 있겠다. - 연주가 끝나고 지하철에서 후기를 메모하다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 뭐랄까 임이여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그러다가 파도가 덮치는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트리오로 넘어간다.



4악장 오프닝은 쇼팽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폴란드 민요에 의한 환상곡> 도입부와 뭔가 비슷했다. 계이름 자체가 그랬다.

브람스는 악보 보기는 크게 어렵지 않지만 표현에 있어서는 가장 어렵다고 하는 작곡가. 지메르만의 연주를 들으면서 브람스에 대해 전보다 더 진지해졌다. 감상문 쓸 때 악보 캡처하기 귀찮았는데 뭔가 느낌을 그런 방식으로 표현해야 하는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여태껏 감상문 쓰면서 가장 힘들게 했다. 악보 캡처해서 글이랑 곁들여야 했으니까. 악보를 한두 군데만 발췌해도 될 정도면 굳이 안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브람스는 나를 자꾸만 심연으로 내몰았다. 브람스에서 환희의 순간은 짧게 느껴졌으며 그저 잠깐의 위안으로 들렸다. 환희의 순간은 쉽게 말하면 장조인 부분들인데 뭔가 밝게 들리지 않았다.

프로그램북을 아껴뒀다가 마저 읽었는데 지메르만이 공연을 매번 녹음해서 듣는다고 했다. 지메르만이 스케르초에 대해서 반성이라도 했나? 스케르초 3, 4번이 전날보다 나았다. 스케르초를 마무리할 때는 템포를 당기면서 휘몰아쳤다. 그러면서 절묘한 루바토도 느꼈다.


스케르초 4번에서는 중간에 눈물이 맴돌았다. 옛날에 있잖아~ 이러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평소에 들을 때는 그저 서정적이고 평온한 부분이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어떤 작곡가를 앙코르로 연주할 것인지 알려줬다. 첫째 날은 브람스로 시작해서 쇼팽으로 마무리하고 둘째 날은 쇼팽으로 시작해서 브람스로 마무리했다. 지메르만은 쇼팽보다 브람스에서 나를 더 움직였는데 운명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내 머릿속을 내내 지배했다. 쇼팽이든 브람스든 지메르만이 왼손의 낮은 음을 무거운 터치로 찍을 때마다 내 가슴을 내리쳤다. 브람스 발라드 1번 중간부에서도 운명의 소리가 서서히 다가왔다.



발라드 1번과 마찬가지로 2번도 뭔가 어둡지만 평온하게 시작했는데, 발라드 2번 중간부에서도 운명의 문을 두들기는 소리는 내 가슴을 찍어 눌렀다. 중간부의 어두운 소리는 환희의 소리로 바뀌기도 한다.



발라드 4번도 서정적이고 평화롭게 시작한다. 마치 맑게 갠 하늘처럼. 그러다가 중간부에서 먹구름이 끼는 것 같았다. (지메르만의 리스트 음반을 보면 <먹구름>이란 곡이 있기는 하다.) 이날 낮에 일할 때 비오고 천둥치다가 이어서 함박눈까지 쏟아지는 기상천외한 날씨를 경험했다. 살면서 이런 적은 처음인 것 같다. 마지막 앙코르는 슈만 환상소곡집에 나오는 곡의 제목을 빌려서 내 느낌을 말로 표현하자면 “어찌하여?” 단지 가볍게 즐기면서 듣는 앙코르가 아닌, 내게 진지하게 생각하게 했다. 나한테 많은 과제를 부여한 것 같은 느낌! 이틀 동안 지메르만이 옛날에 낸 브람스 음반에 수록된 곡들의 일부를 들려준 셈이었는데, 이날도 뚜껑 덮어서 확실히 마무리.

난 이분이 미스터치 하나도 안 내는 완벽주의자인 줄 알았다. 그런데 더러 보였다. (기사에는 완벽주의를 내려놓았다고 표현했다.) 브람스에서 연륜이 느껴졌는데 브람스를 연주하려면 나이가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지메르만의 연주를 보고 나서 미련이 조금 생겨서 아트센터 인천 공연까지 알아봤는데 전날 프로그램이랑 같아서 다행이었다. 전날보다 늦게 끝났지만 막차를 놓치지 않고 귀가할 수 있었다.

외국 분이 나한테 지메르만의 연주가 어땠냐고 물어보셨는데 영어로 후기를 써줄 수 있겠냐고 했다. 그래서 내가 제목만 영어로 써주겠다고 했다. 블로그 자체에 번역해서 볼 수 있는 기능이 있으니 구글이든 네이버이든 번역기 버튼을 눌러서 보면 된다.

Krystian Zimerman Recital at Lotte Concert Hall in Seoul Day 1 (22 March 2019)


16년만의 내한! 피아니스트의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은 열여덟 살의 나이로 쇼팽 콩쿠르 우승을 거머쥐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고 살아있는 거장, 완벽함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다.

클래식 애호가뿐만 아니라 전 세계 피아니스트들의 롤 모델이기도 한 그는, 곡에 대한 완벽한 이해, 이를 바탕으로 한 자신만의 해석으로 이 시대 거장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며, 앨범을 발매할 때마다 ‘별 다섯 개밖에 주지 못하는 아쉬움’(그라모폰), ‘그로 인해 느끼는 클래식의 영원함’(뉴욕 타임스) 등 세계 언론의 찬사를 받고 있다.

쇼팽 해석의 대가,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 선택한 프로그램
그는 이번 리사이틀을 통해 어느 누구도 이견을 제기할 수 없는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시그니처 레퍼토리인 쇼팽의 4개의 스케르초와 마주르카, 같은 낭만시대에서 상반된 음악적 지향을 두고 있는 낭만 소나타의 정수 브람스의 소나타 2, 3번을 연주할 예정이다. 그는 이번 리사이틀을 통해 무결점에 가까운 연주를 선사할 것이다.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 Krystian Zimerman
열여덟 살의 나이로 쇼팽 콩쿠르에서 1등상을 수상하면서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은 명성을 얻게 된다. 그때부터 그는 세계에서 가장 명망 높은 오케스트라들과 함께 작업하고 최고의 국제적인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개최하며 월드클래스의 커리어를 이어오고 있다.

그는 뛰어난 음악인들과 함께 작업해왔다. 그중에는 기돈 크레머, 정경화, 예후디 메뉴인과 같은 실내악 파트너들도 있으며, 레너드 번스타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세이지 오자와, 리카르도 무티, 로린 마젤, 앙드레 프레빈, 피에즈 불레즈, 주빈 메타, 스타니스와프 스크로바체프스키, 사이먼 래틀 경과 같은 지휘자들도 있다.

지메르만은 모든 리사이틀을 위해 자기 자신의 피아노를 직접 실어 나른다. 이는 청중들로 하여금 악기의 복합성과 역량을 좀 더 알아차리게 하기 위한 지메르만의 습관이라 하겠다. 그의 피아노 제작에 관한 전문 지식과 익숙한 본인의 악기로 연주하는 것이 결합되어 음악적인 문제들 외에 그의 집중을 방해하는 그 어떤 요소도 최소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그는 아내와 함께 그의 삶을 대부분을 보낸 스위스에 거주하고 있다. 자신의 시간을 가족, 콘서트 라이프, 실내악 사이에서 나눔으로써 그는 한 시즌 단 50회의 콘서트 무대에만 오르고 있다. 그는 직업으로서의 음악과 자기 자신에 대한 관리, 그리고 홀 음향학과 최신 음향 기술 및 악기 제작 공부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으로 접근한다. 또한 심리학 및 컴퓨터 공학 공부에도 몰두하고 있다.

지메르만의 음반들은 도이치 그라모폰과의 오랜 작업 기간 동안 수많은 최고의 상들을 수상했다. 1999년 그는 음반을 위해 특별 구성한 오케스트라와 함께 쇼팽의 콘체르토 작품들을 레코딩했으며, 쇼팽 서거 1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그 오케스트라와 함께 유럽과 미국 전역을 돌며 그의 콘체르토 작품들을 연주했다. 또한 그는 폴란드의 작곡가 그라지나 바체비치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그녀의 실내악 음반을 레코딩하기도 했다.


Program
Brahms Sonata No. 3 in f, Op. 5 / 브람스 소나타 3번
I. Allegro maestoso
II. Andante - Andante espressivo
III. Scherzo. Allegro energico
IV. Intermezzo. Andante molto
V. Finale. Allegro moderato ma rubato

Intermission

Chopin 4 Scherzi / 쇼팽 스케르초 전곡
No. 1 in b, Op. 20
No. 2 in b flat, Op. 31
No. 3 in c#, Op. 39
No. 4 in E, Op. 54

Encores
Chopin Mazurka No. 14 in g, Op. 24 No. 1 / 쇼팽 마주르카 14번
Chopin Mazurka No. 15 in C, Op. 24 No. 2 / 쇼팽 마주르카 15번
Chopin Mazurka No. 17 in b flat, Op. 24 No. 4 / 쇼팽 마주르카 17번


지난 3월 22일 금요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리사이틀에 다녀왔다. 이틀 연속으로 예매했는데 쇼팽의 스케르초(2부)를 한 번 더 느끼고 싶어서였지 브람스 소나타(1부) 때문인 건 아니었다. 솔직히 1번 말고 3번 듣고 싶었는데 프로그램이 뜻대로 바뀌니 얼마나 기쁘던지...^^* 로비에 매진이라는 자막이 떴다. 사람들이 많이 붐볐는데 피아니스트 김송현 군도 보였다. 예고 학생들이랑 보러 온 모양. 연주회를 다니다 보면 이따금 예중이나 예고 학생들이 보이는 경우가 있다. 어떻게 알았냐면 겨울에 학교 이름 적힌 패딩 입은 것 보고. 사인회 한다면 프로그램북에 받고 싶어서 구매했는데 오랜만의 내한이라서 내용에 대한 정보를 가지려고 한 것도 있다.


지메르만이 무대에 등장하여 앉자마자 브람스 소나타 3번 1악장을 바로 시작했다. 베토벤 교향곡 5번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왼손이 운명의 문을 두드리는 느낌이었다. 악보를 보면서 했는데 넘기는 소리도 났다. 2, 4악장에서는 노래를 입으로 흥얼거리는 소리도 났다. 4악장의 왼손에서도 운명의 문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2악장과 4악장이 비슷하다 싶었는데 악장이 대칭적 구조인 걸 처음 알았네... (프로그램북을 보니 그렇다고 나와 있었다.) 그동안 브람스 소나타 3번을 즐겨 들으면서도 깨닫지 못했다. 지메르만이 연주하는 스타인웨이 피아노는 뭔가 공연장 피아노가 아닌 것 같다. 지메르만이 피아노 갖고 다니지 않는다는 건 옛날 얘기였나? (다음날 프로그램북을 마저 읽어보니 현대음악인 경우에는 공연장 피아노를 쓴다고.) 롯데콘서트홀이 목욕탕 사운드라고 흔히들 그러는데 예당처럼 들리는 마법을 경험했다. 꼭대기에서 들었는데도 잘 들렸다. (내가 롯데콘서트홀에 있는 게 맞는지 몇 번이고 생각할 정도였다.)


쇼팽 스케르초 역시 운명의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들렸다. 역시 망설임 없이 의자에 앉자마자 스케르초 1번을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1번을 가장 좋아하는데 연주 빈도는 2 > 3 > 1 > 4번순인 것 같다.


1번의 중간부에서는 폴란드 크리스마스 캐럴 <잘 자라 아기 예수>의 선율을 느꼈다. 연주가 끝나기도 전에 마지막 페이지가 되지 않았는데도 빨리 박수가 치고 싶어졌다. 이게 무슨 쇼팽 콩쿠르 결선도 아니고... 결선에서 정말 잘 하면 청중이 오케스트라 반주가 끝날 때까지 참지 못하고 피아노 연주가 끝나자마자 박수를 터뜨리기도 한다. 지메르만이 쇼팽 콩쿠르에서 폴로네즈 특별상과 마주르카 특별상을 휩쓸었는데 협주곡 특별상이 있었다면 그것마저도 휩쓸었을 것. (협주곡 특별상은 1980년부터 생겼다.) 2번의 오프닝에서도 운명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느꼈으며 역시 마지막 페이지가 되기도 전에 박수치고 싶어졌다. 3번의 오프닝 역시 운명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3번과 4번은 1번과 2번이 너무 강렬했는지 좀 약하게 들렸다. 4번을 연주할 때에는 악보를 넘기느라 박자를 약간씩 놓치기도 했다.

앙코르로는 쇼팽의 마주르카를 선사했다. 너무 완벽주의라서 그런지 마주르카가 뭔가 계획된 것처럼 들렸다. 자연스럽게 들리지 않다니... 난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걸 원했는데... 두 번째 앙코르가 끝나고 나서 무대 밖으로 퇴장하기 귀찮다는 제스처를 취한 후 다음 마주르카로 이어나갔다. 마지막 곡은 뚜껑을 살며시 덮고 마무리. 앙코르곡들을 뜸들이지 않고 바로바로 해준 편이므로 공연이 10시 되기 전에 끝나서 편히 귀가했다.

후기를 쓰고 나서 기사를 보니 지메르만이 코감기가 걸려서 컨디션이 엉망이었다고 한다.

2019년 3월 7일 목요일

Seong-Jin Cho & Myung-Whun Chung at Philharmonie de Paris (1 February 2019)


2019년 2월 1일 20시 30분 파리 필하모니 콘서트
Seong-Jin Cho, piano / 조성진, 피아노
Orchestre Philharmonique de Radio France /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Myung-Whun Chung, conductor / 정명훈 지휘
2월 21일 20시 France Musique 녹음 중계

Program
Tchaikovsky Piano Concerto No. 1 in b flat, Op. 23 /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I. Allegro non troppo e molto maestoso - Allegro con spirito
II. Andantino semplice – Allegro vivace assai - Prestissimo
III. Allegro con fuoco

Debussy Preludes, Book I: VIII. La fille aux cheveux de lin (encore) / 드뷔시 전주곡 1집 8번 <아마빛 머리의 소녀>

Tchaikovsky Symphony No. 6 in b, Op. 74 "Pathétique" /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
I. Adagio - Allegro non troppo
II. Allegro con grazia
III. Allegro molto vivace
IV. Adagio lamentoso

2019년 3월 1일 금요일

DVD / Andrei Gavrilov Plays Prokofiev, Rachmaninov & Shostakovich 2000



https://www.youtube.com/watch?v=CVcJubmoZ1g
https://www.youtube.com/watch?v=4jIqOHLGIMM
https://www.youtube.com/watch?v=mi_eUq6EJtc

Prokofiev / 프로코피에프
Suggestion diabolique, Op. 4 No. 4 / 악마적 암시

Michael Berkeley: So etwas fiel Prokofieff leicht, nicht wahr? Es kommt auch in der 7. Sonate vor, wie ich meine.

마이클 버클리 : 그건 프로코피에프가 쉽게 발견한 것이네요, 그렇지 않나요? 소나타 7번에서도 나타나네요.

Andrei Gavrilov: Ja, unbedingt. Das war eigentlich die Sprache, die er erfand. Aber er hat sie wahrscheinlich überstrapaziert. Manchmal klappte es, manchmal nicht. Ich finde, es ist ein echter Prokofieff. Es ist wahrscheinlich eines seiner Hauptgesichter, denn er hat viele Gesichter. Es ist die Sprache, die er für den Rest seines Lebens benutzt, dieser kindliche Wechsel der Harmonien und die garstigen Modulationen...oder die unsauberen Harmonien wie am Schluß von "Romeo und Julia". So hat er es beendet...Typisch.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 네, 물론입니다. 그가 실제로 만든 언어였죠. 그러나 그는 아마도 언어를 과용했을 것입니다. 때로는 알맞지 않았을 수도 있죠. 저는 그게 진짜 프로코피에프라고 생각해요. 그는 아마도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의 주된 얼굴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가 여생에 사용하는 언어, 어린아이처럼 화성과 불쾌한 변조의 변화...또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끝에 있는 탁한 화성이죠. 그가 그것을 어떻게 끝내는지는...전형적입니다.

Michael Berkeley: Er hat viel für Klavier geschrieben, wie die Sonate, über die wir reden. Was hat sie, was in der anderen Musik fehlt?

마이클 버클리 : 그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소나타처럼 피아노를 위해 많은 곡들을 썼는데요. 그는 무엇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음악에는 무엇이 빠졌나요?

Andrei Gavrilov: Prokofieff ist einer der wenigen, die für Klavier komponieren, wie Chopin, den wir uns nur mit Klavier vorstellen. Skrjabin war auch ein Klavier-Komponist, genau wie Prokofieff. Strawinsky komponierte eher sinfonisch. Ich meine, Prokofieffs Sinfonien sind wundervoll. Aber er hat immer...wie ein Pianist gedacht, wenn er etwas komponierte. Selbst wenn man versucht, seine Sinfonien am Klavier zu spielen, wäre es angenehm. Er dachte wie ein Pianist. "Romeo und Julia" ist angenehmer zu spielen, und es klingt besser. Einige Beispiele zeigen, wie angenehm...Es ist so pianistisch. Ich würde sagen, es ist sogar angenehmer zu spielen als etwas Einfaches von Tschaikowsky. Wie dieses...Es ist vollkommen unpianistisch. Und auch diese Oktaven...Oder dieses...Es ist alles furchtbar unpianistisch. Er wollte eigentlich keine schwierige Musik schreiben.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 쇼팽은 우리가 피아노만 상상할 수 있는 쇼팽처럼 피아노를 위해 작곡한 소수의 작곡가들 중의 한 명입니다. 스크리아빈도 프로코피에프와 마찬가지로 피아노 작곡가죠. 스트라빈스키는 보다 교향악적으로 작곡했죠. 프로코피에프의 교향곡은 훌륭해요. 하지만 그는 항상...뭔가를 작곡했다면 피아니스트처럼 생각했죠. 그의 교향곡을 피아노에서 연주하려고 해도 즐거울 것입니다. 그는 피아니스트처럼 생각했죠. <로미오와 줄리엣>은 연주하는 것이 더 즐겁고 소리가 더 좋거든요. 몇 가지 예는 얼마나 즐거운지 보여주는데요... 정말 피아니스틱해요. 차이코프스키의 쉬운 곡들을 심플하게 연주하는 것이 더 즐겁다고 말할 수 있죠. 이렇게...완전히 피아니스틱하지 않죠. 그리고 이 옥타브도...아니면...모두 끔찍하게도 피아니스틱하지 않네요. 그는 어려운 음악을 쓰고 싶지 않았던 거죠.

Michael Berkeley: Welchen Satz von "Romeo" spielen Sie?

마이클 버클리 :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어떤 곡을 좋아하나요?

Andrei Gavrilov: Den schönsten, und ich würde sagen, den Popmusik-ähnlichsten, wie "Montagues und Capulets".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팝음악 같다고 말할 수 있는 <몬타규 가와 캐퓰렛 가>입니다.

10 Pieces from "Romeo and Juliet", Op. 75 No. 6 Montagues & Capulets / 프로코피에프 모음곡 <로미오와 줄리엣> 중 6번 <몬타규 가와 캐퓰렛 가>

Michael Berkeley: Inwieweit beeinflußte die Politik seinen Stil? Die Politik, die damals herrschte, muß für einen Künstler außerordentlich bedrückend gewesen sein, ständig Ausdrucksweisen finden, die akzeptabel waren.

마이클 버클리 : 정치가 그 스타일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나요? 당시에 지배적이었던 정치는, 받아들일 수 있는 표현을 끊임없이 찾는 예술가에게는 극도로 우울하게 했음이 틀림없죠.

Andrei Gavrilov: Sicherlich, zum Beispiel, in Bezug auf die 8. Sonate. Denken wir zunächst an den Menschen Prokofieff. Es gibt unterschiedliche Versionen. Als Vergleich...Prokofieff und Schostakowitsch, denn sie konkurrierten miteinander. Schostakowitsch war über Prokofieff werärgert, denn dieser war gemein zu ihm. Eigentlich war Prokofieff der gemeinste Mensch überhaupt. Man spürt es in "Suggestion diabolique"...Denn er ist in jeder Hinsicht gemein. Schostakowitsch dramatisierte sehr und nahm alles zu Herzen. Er sagte, sein Werk sei ein Denkmal für die verschollenen Freunde und für die Toten...das Massaker...während der Stalin-Zeit und der Zeit des Totalitarismus. Prokofieff war ganz anders als Schostakowitsch mit einem völlig anderen Temperament. Er war eher wie Strawinsky. Sehr "raffiniert", wie man heute sagt, sehr "cool". Natürlich war er nun alt. Aber er widersetzte sich bis zur 8. Sonate, und das ist der Punkt. Erinnern wir uns kurz, an sein Leben, an seine frühe Kindheit. Prokofieff stammt aus einer aristokratischen Familie mit viel Geld. Mit 3 schrieb er bereits seine erste Oper, die man für ihn zu Hause aufführte. Also, eine sorgenfreie Kindheit, frühe Anerkennung seines Genies, rechtzeitige Auswanderung 1918, kurz nach der Revolution, vor dem Anfang de militaristischen Kommunismus, dem Massaker und dem Holocaust. Und so wanderte er aus, und die Revolution berührte ihn nicht. Er entkam problemlos dieser schrecklichen Situation, in der sich Rußland befand. Er war sehr erfolgreich und führte ein angenehmes Universtitätsleben. Er hatte viele Premieren. Es entstand "Die Liebe zu den drei Orangen". Er trat auf als Pianist un Dirigent. Er besuchte Chicago, Paris...Es war ein erfolgreiches Leben.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 물론, 예를 들어, 소나타 8번과 관련하여 먼저 프로코피에프라는 사람을 생각해봅시다. 다른 버전들이 있죠. 비교하자면...프로코피에프와 쇼스타코비치는 서로 경쟁했기 때문이죠. 쇼스타코비치는 프로코피에프에 대해서 화를 냈는데, 그가 자신에게 의미가 있었으니까요. 실제로 프로코피에프는 이제까지 가장 비열한 인간이었죠. 그건 <악마적 암시>에서 느낄 수 있는데요...그가 모든 면에서 의미가 있기 때문이죠. 쇼스타코비치는 각색하여 모든 것을 마음에 품었는데요. 그는 자신의 작품이 스탈린 시대와 전체주의의...잃어버린 친구들과 죽은 사람들...대학살에 대한 묘비명이라고 말했죠. 프로코피에프는 전혀 다른 기질을 가진 쇼스타코비치와 매우 달랐는데요. 스트라빈스키와 더 비슷했죠. 그들이 오늘날 말하는 매우 “세련된” 것은 매우 “냉소적인” 것입니다. 물론 그는 오래되었죠. 그러나 그는 8번 소나타까지 저항했는데요. 소나타, 그게 핵심입니다. 그의 어린 시절의 삶을 간략하게 기억합시다. 프로코피에프는 많은 돈을 가진 귀족 출신의 가정에서 태어납니다. 3세에는 이미 집(러시아)에서 그를 위해 연주된 첫 오페라를 썼죠. 그래서 평온한 어린 시절, 일찍이 천재로 인정받았으며, 혁명 직후, 군국주의 공산주의, 대학살, 홀로코스트가 시작되기 전인 1918년에 출국했죠. 그렇게 그는 떠났고, 혁명은 그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죠. 그는 러시아의 끔찍한 상황을 쉽게 피할 수 있었죠. 그는 매우 성공했으며 즐거운 대학 생활을 보냈죠. 그는 많은 초연을 가졌습니다. 그 결과는 <3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이었죠. 그는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로서 공연했죠. 그는 시카고, 파리를 방문했는데...성공적인 삶이었죠.

Michael Berkeley: Also Prokofieff als Pianist...der für sich selbst komponierte.

마이클 버클리 : 그래서 프로코피에프는 피아니스트로서...자신을 위해서 작곡했군요.

Andrei Gavrilov: Er war sehr berechnend. Ich zitiere das, was er über die pianistische Seite seiner Begabung sagte. "Er ist einfach nicht rentabel. Die Vorbereitung für ein Konzert kostet mich zwei Sonaten." Später wollte er sich völlig auf das Komponieren konzentrieren. Aber nur wenige kennen die Gründe für seine Rückkehr nach Rußland. Es war wahrscheinlich kein Heimweh. Seine finanzielle Situation war miserabel. Wenige wissen, daß er Spieler war. Zu dem Zeitpunkt, als er 1932 nach Rußland zurückkehrte, war seine finanzielle Lage wirklich verheerend. Da rechnete er sich aus, es wäre sehr günstig, in die Heimat zurückzukehren. Es war damals ziemlich beliebt. Die kommunistischen Winde waren für viele günstig bei der künstlerischen Bohéme, bei Künstlern, Malern. Er wollte, wie der Russe sagt, zwei Kaninchen mit einem Schuß erlegen. Er wollte wahrscheinlich zurückkommen wie ein Patriot, in einem interessanten Land sein, wo Interessantes passierte. Gleichzeitig wollte er seiner finanziellen Misere entkommen. Später wollte er dann seine Komponisten-Karriere fortsetzen, als ein anerkannter Komponist. Aber als er kam, erkannte er, daß alles wohl nicht so einfach war, wie er gedacht hatte. Und bis 1944, als diese Sonate komponiert wurde, wurde ihm klar, daß er eine Geisel des Systems geworden war, eine Geisel des schrecklichen Systems und ein Gefangener Stalins, und er nie wieder frei sein würde. Und es gibt in dieser Sonate versteckte Botschaften. Er dachte wohl, dies wäre sein letztes Stück...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 그는 매우 계산적이었죠. 자신의 재능의 피아니스틱한 면에 대해 그가 말한 것을 인용할게요. “그건 단지 수지가 맞지 않는다. 콘서트 준비는 두 개의 소나타가 든다.” 나중에 그는 작곡에 전적으로 집중하려고 했죠. 그러나 그가 러시아로 돌아온 이유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죠. 아마 향수병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의 재정 상황은 처참했죠. 그가 연주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죠. 그가 1932년에 러시아로 돌아왔을 때, 그의 재정적 상황은 정말로 피폐했죠.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정말 편안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요. 그때 꽤 인기 있었거든요. 많은 사람들에게 공산주의 바람은 예술적인 보헤미안, 아티스트, 화가를 선호했죠. 그는 러시아인이 말하듯이 총 한 발로 두 마리의 토끼를 죽이고 싶어 했죠. 어쩌면 애국자처럼 돌아와 재밌는 일이 일어난 흥미로운 나라에 머물고 싶었을 것입니다. 동시에 그는 재정적인 불행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죠. 나중에 그는 저명한 작곡가로서 작곡가 경력을 계속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왔을 때 자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리고 1944년 이 소나타가 작곡될 때까지, 그는 그 체계, 끔찍한 체계의 인질이자 스탈린의 포로였음을 깨달았으며 결코 다시 자유롭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소나타에는 숨겨진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는 이게 자신의 마지막 곡이라고 생각했죠...

Michael Berkeley: Prokofieff starb am gleichen Tag wie Stalin, nicht wahr?

마이클 버클리 : 프로코피에프는 스탈린과 같은 날에 사망했네요?

Andrei Gavrilov: Aber wegen Stalins Tod merkte keiner, daß Prokofieff gestorben war. Nun zur Haltung Prokofieffs, und zu seiner Arbeitsweise. Er wollte immer abstrakt sein, darüber stehen. Swjatoslaw Richter hatte die gleiche Haltung, er haßte die Politik. Er war absolut überzeugt, es sei der schlechteste Beruf überhaupt. Prokofieff hielt das Abstrakte fern von der Realität, die ihm in Rußland Schwierigkeiten bereitete. Aber als er spürte, daß sein Lebensende nahte, da erreichte er den gefährlichen Punkt, wo er uns erzählt von einer ungeheuer ausdrucksstarken Geschichte, einem Geständnis. Was Prokofieff angeht und mich als Pianisten und Interpreten Prokofieffs, ist diese Sonate ein ziemlicher Schock. Lassen Sie mich das Stück kurz durchgehen.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 그러나 스탈린의 죽음으로 인해 아무도 프로코피에프가 죽은 것을 눈치 채지 못했죠. 이제 프로코피에프의 태도와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 말할게요. 그는 그것을 넘어 항상 추상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했죠.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도 똑같은 태도를 지녔지만 정치를 싫어했죠. 그는 그것이 최악의 직업이라고 절대적으로 확신했는데요. 프로코피에프는 러시아에서 그를 괴롭힌 현실을 추상화하지 않았죠. 그러나 자신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했을 때, 그는 엄청나게 표현적인 이야기, 고백을 우리에게 말하는 위험한 지점에 도달했죠. 프로코피에프전문 피아니스트이자 해석자로서 프로코피에프와 저에 대해 말하자면, 이 소나타는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이 곡을 잠시나마 살펴봅시다.

Michael Berkeley: Das erste Thema ist für das Ganze sehr wichtig?

마이클 버클리 : 제1주제가 전체적으로 매우 중요한가요?

Andrei Gavrilov: Ich verbinde es mit seiner Person, wie das Vorwort zu einer Geschichte. Und dieses Thema...Und so weiter. Ich sehe noch das Bild, wie Prokofieff dasaß. Wahrscheinlich spielte er sehr gern Schach. Und wie ein kaltblütiger Erzähler, fast boshaftig, öffnete er dieses schreckliche, heitere Bild von dem, was er sah. Dann kommt das Nächste. Es entwickelt sich sehr langsam, und das Drama, das aufkommt im ersten Motiv, wird nicht vorausgesagt. Die gleiche Tonart...Ein ganz auderes Motiv. Die seltsamen Dinge erscheinen am Anfang des ersten Satzes...Zuerst: poco piu animato. Hier sagt er die Entwicklung des ruhigen Anfangs voraus. Wie die Voraussage des Schrecklichen. Als ob es einem eiskalt den Rücken runterläuft. Dieses Thema symbolisiert das russische Volkslied, das Gesicht eines gestörten Rußlands. Dieses Thema kommt im ersten Satz mehrfach wieder. Also wiederhole ich es. Er ist sehr wichtig...in gewisser Hinsicht das alte Rußland, das sehr gestört ist. Der große Bär rührt sich...Genau, der große Bär wacht auf. Dann nach diesem etwas teuflischen Motiv, kommt es wieder, espressivo und mezzo forte. Die ersten Zeichen, daß etwas Schreckliches passieren wird. Dann andante und etwas espressivo. Espressivo meint er auch wirklich. Als ob man Gott bittet, das Ganze wegzuschieben. Rühr mich damit nicht an! Aber das nächste Motiv enthält Zeichen des Schicksals und Zeichen des Todes. Zwei Motive, die das Klopfen symbolisieren. Ein Motiv ist dunkel und symbolisiert wahrscheinlich den Tod, die Angst vorm Tod, das Schicksal. Oben schreibt er wieder: dolce. Als ob man Gott bittet, rühr mich nicht an mit der Hand des Todes. Es ist sehr ungewöhnlich für Prokofieff. Und wieder erscheint es...Und das entwickelt er...Aber es wird unterbrochen.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 저는 이야기의 서문으로서 그 사람과 그것을 연관시킵니다. 그리고 이 주제는...등등이죠. 프로코피에프가 거기 앉아있는 것을 아직도 볼 수 있는데요. 그는 아마도 체스 게임을 좋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냉혈한 내레이터처럼, 거의 악의적으로, 그는 자신이 본 것을 이 무서우면서도 생기 있는 그림으로 여겼죠. 그러고 나서 다음 것이 옵니다. 매우 천천히 발전하고 있으며, 첫 번째 동기에서 나오는 드라마는 예측되지 않죠. 같은 조성...완전히 다른 동기. 이상한 것들이 1악장 시작 부분에 나타나는데...먼저 포코 피우 아니마토(조금 더 생기 있게). 여기서 그는 조용한 시작의 발전부를 예측합니다. 끔찍한 예측처럼. 마치 차가운 추위처럼. 이 주제는 러시아의 민요, 러시아의 혼란을 상징합니다. 이 주제는 1악장에서 반복되죠. 따라서 그걸 반복해볼게요. 그건...혼란스러웠던 옛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정말 중요해요. 큰 곰이 움직입니다...맞아요, 큰 곰이 깨어나죠. 그러고 나서 이 다소 우울한 동기에 이어 에스프레시보(감정을 풍부하게)와 메조 포르테(조금 세게)가 다시 나옵니다. 처음에는 뭔가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안단테(느리게)와 뭔가 에스프레시보. 그것도 실제로 에스프레시보를 의미하죠. 신께 모든 것을 멀리하도록 요구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걸 만지지 마! 그러나 다음 모티프에는 운명의 징조와 죽음의 징후가 있습니다. 두드리는 것을 상징하는 두 개의 모티프. 모티프는 어둡고 아마도 죽음, 죽음에 대한 두려움, 운명을 상징하겠죠. 무엇보다도 그는 다시 쓰는데요, 돌체(부드럽게). 신께 간구하는 것처럼, 죽음의 손으로 나를 만지지 말라. 프로코피에프에게는 매우 드물죠. 그리고 다시 나타납니다...그리고 그는 그것을 발전시키죠...그러나 그것은 중단됩니다.

Michael Berkeley: Sehr unbeugsam, unnachgiebig...als ob wir nie aufgeben werden.

마이클 버클리 : 우리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처럼...굽히지 않는 거군요.

Andrei Gavrilov: Dann kommt der 2. Satz, der voller Selbstironie ist, glaube ich. Und da steht natürlich: andante sognando. Das bedeutet: wie in einem Traum. Skrjabin würde etwas anderes meinen mit "sognando". Bei Skrjabin wäre es etwas Mysteriöses, erhabene Themen, ein Flug zu den Sternen und anderen Planeten...Ätherisch, so etwas...Bei Prokofieff bedeutet "sognando" eine versteckte Botschaft. Da ist sehr viel Selbstironie, wie wunderbar das. Leben wäre, wenn er nicht so grobe Fehler machte. Verstehen Sie, was ich meine? Wir könnten uns leicht ein Restaurant vorstellen...in Paris oder an einem anderen unterhaltsamen Ort. Ich will es fast wie eine Charge oder eine Witzfigur spielen. Man wird provoziert, es zu spielen...wie eine Karikatur. Denn er meint es wirklich so, aber durch die Ausbildung, die Theorie des "raffinierten" Geschmacks, obwohl man es nicht so weit treiben sollte. Man sollte es nur leicht betonen, die Botschaft vermitteln. Das genügt. Sehr schön. Und nun wieder die Tonart mit der kindlichen Einfalt, von der wir sprachen. Hier funktioniert es wundervoll.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 그러고 나서 자조로 가득 찬 2악장이 나옵니다. 그리고 물론 안단테 소냔도(느리고 몽환적으로)가 있죠. 그건 꿈속에 있는 것과 같죠. 스크리아빈은 “소냔도”와 다른 것을 의미했을 것입니다. 스크리아빈에게는 신비하고, 숭고하며, 별과 다른 행성들로 향하는 비행이었을 것입니다....천상의, 그런 것...프로코피에프의 “소냔도”는 숨겨진 메시지를 의미합니다. 자조가 많은데, 얼마나 멋진가요. 인생은 그가 그렇게 큰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존재했을 것입니다. 제가 무슨 말하는지 이해하시나요? 우리는 파리나 다른 재미있는 장소에 있는...식당을 쉽게 상상할 수 있는데요. 저는 그것을 거의 습격이나 농담처럼 연주하고 싶어요. 하나는 캐리커처처럼...그것을 연주하기 위해 자극됩니다. 그는 진정으로 그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러나 훈련을 통해, “세련된” 취향의 이론, 비록 지금까지는 그것을 하지 말아야 하지만요. 그것은 단지 약간 강조되어야 하며 메시지를 전달해야 합니다. 그게 충분해요. 아주 좋아요. 그리고 다시 우리가 말했던 유치한 단순함을 가진 조성. 여기서 훌륭하게 수행됩니다.

Michael Berkeley: Wie Schostakowitsch's "Tea for Two" - Arrangement.

마이클 버클리 : 쇼스타코비치의 <둘이서 차를!> 편곡처럼.

Andrei Gavrilov: Sehr ähnlich.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 매우 유사해요.

Michael Berkeley: Und danach? Kommt wieder ein völliger Kontrast?

마이클 버클리 : 그러고 나서는? 다시 완전한 대조가 나타날 것인가요?

Andrei Gavrilov: Purer Haß! Da ist enorm viel Energie in diesem Satz. Und ich hätte Tausende von Beispielen. Haß hat verschiedene Gesichter, wissen Sie. Wie ein Maler steigert er sich hinein. Hier schreibt er: espressivo. Es ist die Hölle. Und das Motiv nun...Verschiedene Gesicher von Haß. Dann der symbolhafte Mittelteil. Symbolisch für die Maschinerie des sowjetischen Totalitarismus. Das ist: allegro ben marcato...der Mittelteil. Und nun ein sehr ironisches, sarkastisches Thema. Sauber und unschuldig. So wie Pioniere. Sehr unschuldig.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 순수한 증오! 이 문장에는 많은 에너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수천 가지 예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증오는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죠. 화가처럼, 그는 들어섭니다. 여기에 그는 에스프레시보라고 씁니다. 지옥이죠. 그리고 이제 동기는 ... 다양한 증오심을 주는 증오. 이후 상징적인 중간부. 소비에트 전체주의 기구의 상징. 그것은 알레그로 벤 마르카토(빠르고 음을 또렷하게)...중간부. 그리고 지금은 매우 아이러니하고 비꼬는 주제입니다. 깨끗하고 순수하죠. 개척자처럼. 매우 순수하죠.

Michael Berkeley: Sehr tänzerisch.

마이클 버클리 : 정말 춤추기 쉽네요.

Andrei Gavrilov: Hier ist es verkrüppelt. Als ob etwas in der Maschinerie kaputtgeht. Nochmal...Und wieder verkrüppelt. Nun die Verwandlung. Wie wenn man die Zähne zeigt...mit dieser Tonleiter. Und dies natürlich reine Chargenkunst.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 여기선 절름발이죠. 마치 기계에서 뭔가가 고장 난 것처럼. 다시...그리고 다시 불구가 되죠. 이제 변형입니다. 치아를 보여주는 것처럼...이 스케일(음계)로. 그리고 물론 순수한 습격의 예술이죠.

Michael Berkeley: Das wirft es aus dem Gleichgewicht.

마이클 버클리 : 그게 균형을 잃게 만들죠.

Andrei Gavrilov: Dann klingt es wie Katastrophe. Tempo und Tonart sind gleich, nun aber mit all diesem Unsauberen. Das Motiv steht unter Druck. Er deutet auf das Leiden unter dieser Maschinerie. Wie Schreien. Nach den Trompeten: die Bolschewiken. Was könnte es sonst sein? Dann kommt totale Verwirrung. Dann wieder Trompeten...mit enorm viel Unsauberem. Total absurd. Und das Ende wie ein Epilog. Eine kurze Pause und ein Moll-Akkord. Den interpretiere ich als Haßbotschaft an das künftige Rußland.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 그런 다음 재앙처럼 들리죠. 템포와 조성은 동일하지만, 지금은 이 모든 것이 깨끗하지 않죠. 모티프가 압박감을 느끼고 있죠. 그는 이 기계류의 고통을 지적합니다. 비명 지르는 것처럼. 나팔 다음은 볼셰비키(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에서 분리돼 나온 레닌 중심의 다수파로 구소련 공산당의 별칭). 그 밖의 무엇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러면 전체적인 혼란이 옵니다. 그리고 다시 나팔 소리...엉망진창이죠. 완전히 터무니없죠. 끝 부분은 에필로그와 같죠. 짧은 휴식과 마이너 코드(단화음). 저는 이것을 미래 러시아를 향한 증오의 메시지로 해석합니다.


Track
Piano Sonata No. 8 in Bb, Op. 84 / 피아노 소나타 8번
I. Andante dolce - Allegro dolce - Allegro moderato - Andante - Andante dolce - Allegro
II. Andante sognando
III. Vivace - Allegro ben marcato - Andantino - Vivace

Rachmaninov Moment musical in b flat, Op. 16 No. 3 / 라흐마니노프 <악흥의 한때> 3번

Rachmaninov Elegy in e flat, Op. 3 No. 1 / 라흐마니노프 엘레지
1990

Shostakovich Sonate for violin & piano, Op. 134 /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소나타
I. Andante
II. Allegretto
III. Largo - Andante
... Gidon Kremer, violin / 기돈 크레머, 바이올린
... Andrei Gavrilov, piano /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피아노
1979


Bonus film by Irene Langemann "Russians Vunderkinds" 2000 / 이레네 랑에만의 보너스 필름 <러시아의 신동들>
Ira Tschistjakowa (age 8) / 이라 치스티아코바
Lena Kolesnitschenko (age 16) / 레나 콜레스니첸코
Nikita Mndoyants (age 9) / 니키타 믄도얀츠

Rimsky-Korsakov/Rachmaninov: The Flight of Bumblebee / 림스키코르사코프 <왕벌의 비행> (라흐마니노프 편곡)

- Danach kommt das Solostück. Ira, versuch du es jetzt.

- 다음은 독주곡이야. 이라, 지금 해보렴.

Ira Tschistjakowa: Meine Mutter und meine Schwester spielen auch Klavier. Wenn ich etwas sehe, höre ich gleich Musik. Die schreibe ich dann sofort auf, spiele sie und sehe, was daraus geworden ist. Mit Musik kann man zeigen, wie die Blumen tanzen: der Wind weht und sie tanzen. Man kann einen Blumenwalzer komponieren.

이라 치스티아코바 : 엄마랑 언니도 피아노를 치고 있어요. 저는 뭔가를 볼 때 즉시 음악을 들어요. 저는 그것을 당장 적어두고, 그것을 연주하여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볼 것입니다. 음악으로 꽃이 어떻게 춤을 추는지 보여줄 수 있는데요, 바람이 불면 춤을 추죠. 꽃의 왈츠를 쓸 수 있어요.

- Wie stellest du dir tanzende Blumen vor?

- 춤추는 꽃을 어떻게 상상하지?

Ira Tschistjakowa: Es muß eine zärtliche Musik sein, nichts Strenges. Ein schwacher Windhauch - und die Blumen tanzen.

이라 치스티아코바 : 심한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음악이어야 하죠. 희미한 산들바람 - 그리고 꽃들이 춤추는 것이요.

- Und wie stellest du dir lustige Musik vor?

- 그리고 재미있는 음악을 어떻게 상상하지?

Ira Tschistjakowa: Da kann man sich einen Zirkus und Clowns vorstellen.

이라 치스티아코바 : 서커스와 어릿광대가 있다고 상상할 수 있어요.

- Und was machen sie?

- 그리고 너는 무엇을 하지?

Ira Tschistjakowa: Jonglieren, Tricks zeigen.

이라 치스티아코바 : 트릭을 보여주는 저글링이요.

- Was möchtest du werden?

- 무엇이 되고 싶니?

Ira Tschistjakowa: Pianistin.

이라 치스티아코바 : 피아니스트요.

Ich lebe seit '94 in Moskau, mein 5. Schuljahr hier geht zu Ende. Wir wohnen, wo wir etwas finden: bei Verwandten oder zur Untermiete. Wenn man an die Zentrale Musikschule kommt, muß man zuerst unter Gleichalrigen anerkannt werden. Man versteht vieles nicht. In Charkow war ich ein Star, da gab's nur 5 Leute wie mich. Und hier sind alle auf einem Niveau, denn es ist die beste Schule der Welt, eine der besten.

저는 1994년부터 모스크바에서 살고 있는데, 여기에서 5학년이 끝나네요. 우리는 친척이나 후견인과 함께 뭔가를 발견하는 곳에서 살고 있어요. 중앙음악학교에 올 때, 먼저 동료들 사이에서 인정을 받아야 하죠.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죠. 하르키우에서 저는 스타였는데, 저 같은 사람들이 다섯 명뿐이었죠. 그리고 여기는 모두가 한 가지 수준에 있는데, 세계 최고의 학교 중 하나이기 때문이죠.

Zentrale Musikschule am Moskauer Konzervatorium / 모스크바 음악원 부속 중앙음악학교

Rachmaninov Prelude in c, Op. 23 No. 7 / 라흐마니노프 전주곡 작품 23-7

Tamara Koloss - Leiterin der Klavierabteilung / 타마라 콜로스 - 피아노 학과장

- Das Besondere an unserer Schule liegt darin, daß wir...in erster Linie Interpreten für große Bühnen ausbilden. Die Belastung ist sehr groß: die Kinder müssen 11 Jahre lang...dem Unterricht in Musik und in den allgemeinbildenden Fächern folgen. Die Ausbildung ist gratis, da wir nur die begabtesten Kinder aufnehmen.

- 우리 학교의 특별한 점은...일차적으로 큰 무대를 위한 해석자들로 양성하는 것입니다. 부담이 큰데, 아이들이 11년 동안 음악 및 일반 교육 지도를 따라야 하죠. 우리는 가장 재능 있는 아이들만 받아들이기 때문에 교육은 무료입니다.

Aufnahmeprüfung / 입학시험

Zieh eine Nummer, bitte.

번호를 뽑으세요.

- Drei.

- 3번이요.

So, was kannst du? Kannst du singen?

그래서 무엇을 할 수 있나요? 노래 부를 수 있나요?

- Ja.

- 네.

Welches Lied möchtest du singen?

어떤 노래를 부르시겠습니까?

- Vom Schnee.

- 눈에서.

Gut. Brauchst du die Tonart, Nastja?

좋아요. 나스차, 조성이 필요해요?

- Nein.

- 아뇨.

- Dankeschön.

- 감사합니다.

Ira, spiel bitte nach, was ich dir vorspiele. Gut?

이라, 내가 말한 대로 연주해, 알겠니?

Und jetzt zwei Töne.

그리고 이제 두 가지 톤이 있어.

Und so?

그래서?

Jetzt spiel bitte die Melodie nach, die ich dir vorspiele. Gut?

이제 내가 너에게 연주한 멜로디를 쳐봐. 알겠니?

Haydn Sonata No. 50 in D, Hob. XVI:37 - III. Finale: Presto ma non troppo / 하이든 소나타 50번 3악장

- Vergiß den Wecker nicht, es passiert dir jedesmal.

- 알람을 잊지 마, 매번 너한테 일어나니까.

- Soll ich das Bügeleisen mitnehmen?

- 난로 가져올까?

- Natürlich.

- 물론이죠.

Vor dem konzert mußt du doch Einiges nachbügeln.

콘서트를 하기 전에는 뭔가 철저히 해야 한단다.

Komm, such das Bügeleisen.

어서 난로를 찾아봐.

- Wir sind keine Musikerfamilie, daher ist alles, was bislang pasiert ist, für uns ungewöhnlich. Kinder von Musikern fangen schon früh mit Unterricht an. Bei uns war es der Zufall. Es ist wohl ihr Schicksal. Wir kommen aus Charkow. Als Lena sieben war, brachte meine Kollegin ihre Tochter...zur Aufnahmeprüfung in die Musikschule...und meinte, Lena solle doch auch mitkommen. Und das ist jetzt die Folge davon, daß man Lena gehört hat. Eine Musikpädagogin meinte, sie sei hochbegabt...und müsse unbedingt an diese Schule.

- 우리는 음악가 집안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것은 우리에게 이례적이죠. 음악가의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배우기 시작합니다. 그건 우연의 일치였죠. 아마도 그녀의 운명이겠죠. 우리는 하르키우 출신입니다. 레나가 7세였을 때, 제 동료가 그녀의 딸을 데리고...음악학교 입시 시험에 나왔고...레나도 같이 가야 한다고 말했죠. 그리고 지금 레나의 연주를 듣고 있는 결과죠. 음악 선생님은 그녀가 재능이 있다고 말했으며...절대적으로 학교에 갈 필요가 있었네요.

Lena Kolesnitschenko: Schon ein Jahr später gab ich im großen Saal der Schule...mein erstes Solokonzert. Es war sehr ungewöhnlich, daß eine kleine Schülerin mit einem Solopgrogramm auftritt, u.a. mit dreistimmigen Inventionen von Bach. In der 3.-4. Klasse entfiel für mich die strenge Schulpflicht: Ich gab Konzerte und war etwas Besonderes an der Schule, ein Star.

레나 콜레스니첸코 : 불과 1년 후 저는 학교 대강당에서 첫 독주회를 가졌어요. 바흐의 3성부 인벤션으로 독주 프로그램을 연주하는 건 어린 학생에게는 매우 드물었거든요. 3~4학년 수업에서 제게 엄격한 의무 교육이었는데, 저는 콘서트를 가졌으며 학교에서 특별한 존재인 스타였죠.

Grieg: Zug der Zwerge / 그리그 <난쟁이의 춤>

- Das spielst du zu laut, es klingt wie Bellen. Zwerge sind doch ganz klein und leicht, mach keine Elefanten aus ihnen. Nein, die erste Note nicht mit einem Schlag. Der fünfte Finger! Blitze, so wie Blitze funkeln! Mit Humor! Leiser. Die linke Hand leiser! Wie Flöten! Die Linke gleichmäßig. Leiser. Nicht so grob. Es muß gruselig, aber nicht grob sein. Und jetzt ein schönes Bild der Natur...Klapper nicht, das ist eine friedliche Szene. Und jetzt die gleiche Musik in einer neuen Tonart. Patsch nicht mir der linken Hand. Was soll das? Du mußt es singen. Mit Kristallklang, wie eine Celesta. Das ist jetzt besser geworden. Los, spiel es noch einmal. So ist es gut! Ein Schüler muß vielseitig begabt sein, um sich zu einem großen, bekannten, vom Publikum geliebten Interpreten zu entwickeln. Als ich...die Begabung meines Sohnes Nikita erkannte, begriff ich, daß ich ihm dienen muß, ihm helfen muß in seinem Werdegang.

- 너무 크게 연주하면 짖는 소리가 나지. 난쟁이들은 작고 가벼우니 코끼리로 만들지 마. 아냐, 단번에 첫 음을 없애지 마. 새끼손가락! 번개, 번쩍이는 번개처럼! 유머를 가지고! 더 조용하게. 왼손을 더 조용히! 피리처럼! 왼쪽 똑같이. 더 조용하게. 그렇게 난폭하지 않아. 무섭지만 난폭하지 않게. 그리고 지금 자연의 아름다운 그림...덜컥거리지 말고, 이건 평화로운 장면이야. 그리고 이제 새로운 조성의 같은 음악. 왼손을 찰싹거리지 마. 이게 뭐야, 어쩌란 말이지? 노래를 불러야 해. 수정 같은 소리로, 첼레스타처럼. 이제 더 좋아졌어. 어서, 다시 연주해봐. 좋아! 학생은 위대하고, 잘 알려지고, 청중을 사랑하는 연주자가 될 만큼 충분히 다재다능해야 합니다. 제가...아들 니키타의 재능을 알아차렸을 때, 저는 그를 도와야 한다, 그의 경력을 도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 Nikita, hast du auch Freizeit?

- 니키타, 자유 시간 있니?

Nikita Mndoyants: Ja.

니키타 믄도얀츠 : 네.

- Was machst du dann?

- 그러고 나면 뭘 하니?

Nikita Mndoyants: Manchmal lese ich...oder ich mache irgendwas.

니키타 믄도얀츠 : 때때로 독서하거나...뭔가를 합니다.

- Was?

- 어떤 것?

Nikita Mndoyants: Ich komponiere.

니키타 믄도얀츠 : 작곡해요.

Je größer das Talent ist, desto größer ist die Verantwortung. Professionalismus erreicht man nur durch Arbeit. Das Talent wirkt auf der Bühne, wenn du schon alles bis zur Perfektion entwickelt hast. Ich konzertiere schon seit meinem 9. Lebensjahr. Die erste Reise war nach Amerika. Damals war Pérez de Cuéllar UNO-Generalsekretär. Ich wurde ihm vorgestellt und bin vor ihm aufgetreten. Einen Monat später habe ich im Vatikan vor dem Papst gespielt. So ein Höhenflug - obwohl ich erst seit kurzem Unterricht hatte.

재능이 커질수록 책임은 커집니다. 전문성은 일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죠.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개발할 때 무대에서 재능을 발휘합니다. 저는 9세 때부터 콘서트를 열었는데요. 첫 번째 여행은 미국이었죠. 그 당시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가 유엔 사무총장이었어요. 저는 그에게 소개되어 그분 앞에서 연주했죠. 한 달 후에는 바티칸 교황 앞에서 연주했고요. 비록 저는 최근에 레슨을 받았지만, 정말 고공비행이었죠.

Vatikan 1991 / 1991년 바티칸에서

Chopin Fantaisie-Impromptu in c#, Op. 66 / 쇼팽 즉흥 환상곡

Alec Band - Konzertmanager Baden-Baden / 알렉 반트 - 바덴바덴 콘서트매니저

Chopin Ballade No. 4 in f, Op. 52 / 쇼팽 발라드 4번

- Das ist klar, ja? Komm, Ira, setz dich. Was machen wir heute? Die Suite und Chopin. Beginnen wir mit Chopin. In der gleichen Reihenfolge, wie du es beim Konzert spielen wirst, ja? Ich denke, es ist besser mit dem Nocturne anzufangen, und dann...

- 그거야? 이라, 와서 앉아봐. 우리 오늘 뭐할까? 모음곡과 쇼팽. 쇼팽부터 시작하자. 콘서트에서 연주하는 것과 같은 순서로, 알겠지? 녹턴으로 시작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는데...

Ira Tschistjakowa: Dann die Mazurka...

이라 치스티아코바 : 그럼 마주르카요...

- Mazurka und dann die Etüde.

- 마주르카 그리고 에튀드.

Ira Tschistjakowa: Ja.

이라 치스티아코바 : 네.

- Gut, laß es uns so machen.

- 좋아, 그렇게 해보자.

Chopin Nocturne No. 20 in c#, Op. posth. / 쇼팽 녹턴 20번

- Ira, alles wunderbar, aber die linke Hand nicht so hervorheben. Es muß eine zärtliche Nachtmusik sein, sonst klingt es zu agressiv.

- 이라, 모든 것이 훌륭하지만, 왼손이 두드러지지 않네. 그건 부드러운 밤의 음악이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너무 공격적으로 들리거든.

- Nikita, komm zur Tafel und zeichne einen beliebigen Winkel. Alle anderen zeichnen es in ihre Hefte. Wieviele Buchstaben schreiben wir? Drei. Bitte lies sie vor.

- 니키타, 칠판 앞으로 와서 어떤 각도를 그려봐. 다른 모든 사람이 공책에 그것을 그리지. 얼마나 많은 문자를 우리가 쓰지? 세 가지. 그걸 읽어봐.

Nikita Mndoyants: A. O. B.

니키타 믄도얀츠 : A. O. B.

- Richtig. Nikita kann sich setzen, und wir schauen auf die Tafel. Alle schauen jetzt auf die Tafel, und ich zeichne einen Winkel...

- 맞았어. 니키타가 앉고, 우리는 칠판을 봤는데요. 모두가 칠판을 보면서 각도를 그리죠...

Rachmaninov Prelude in Eb, Op. 23 No. 6 / 라흐마니노프 전주곡 작품 23-6

Jevgenij Timakin: Spiel so, als ob du hier etwas verlangsamen würdest. Damit du jede Note singen kannst. Manchmal sind die Übergänge bei dir zu kontrastreich. Im allgemeinen hast du auch noch Klangprobleme. Erstens, achte auf die linke Hand: sie muß auch ausdrucksvoll sein. Sie darf nicht so oberflächlich sein. Verstehst du, was ich meine? So darfst du nicht spielen. Das wichtigste Prinzip aller Musikrichtungen und Schulen...besteht darin, daß der Klang in der Fingerkuppe entsteht. Wie eine Blume, die am Ende der Pflanze wächst.

예프게니 티마킨 : 마치 여기에서 속도를 늦추고 있는 것처럼 연주해보렴. 그러면 모든 음을 노래할 수 있단다. 때로는 전환이 너한테 너무 명암이 심하지. 일반적으로 소리에도 문제가 있어. 먼저 왼손에 주의를 기울여봐, 표현력도 있어야 해. 그렇게 피상적이어선 안 돼.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겠니? 너는 그렇게 연주할 수 없어. 모든 음악 장르와 학교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소리가 손끝에서 나온다는 것이지. 식물의 끝에서 자라나는 꽃처럼.

Liszt Consolation No. 3 in Db, S. 172 / 리스트 위안 3번

- Welche Notenwerte beginne hier?

- 여기서 시작하는 음은 어떤 것이 가치 있지?

- Viertelnoten.

- 4분음표요.

- Wie zeigen wir Viertelnoten? Und dann kommen die Achtelnoten. Gut, und was klingt danach? Das sind halbe Noten, ja. Laßt es uns weiter so versuchen. Eine halbe Note...und dann die Viertelnoten und die Achtelnoten.

- 어떻게 4분음표를 보여줄까요? 그리고 8분음표들을 가져오세요. 좋아요, 무슨 소리 같나요? 2분음표요. 그걸 그대로 유지합시다. 2분음표를 반으로 나누면...4분음표와 8분음표.

Tamara Koloss: Im Sepember '49 bin ich an diese Schule gekommen. Die elf Jahre hier waren die beste Zeit meines Lebens. Nach dem Konservatorium begann ich hier zu unterrichten, da ich ohne diese Arbeit und ohne diese Schule nicht leben kann. Inzwischen arbeite ich hier schon 33 Jahre. Das ist Alexander Mondoyants: er unterrichtet hier und am Konservatorium. Jetzt ist schon sein Sohn an unserer Schule.

타마라 콜로스 : 1949년 9월에 저는 이 학교에 왔습니다. 여기서 보낸 11년은 제 인생 최고의 시간이었죠. 음악원을 마친 후 이 일과 이 학교가 없으면 살 수 없기 때문에 이곳에서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그 사이에 저는 33년 동안 여기서 일해 왔죠. 이 사람은 알렉산더 믄도얀츠로, 그는 여기(모스크바 중앙음악학교)와 음악원에서 가르쳐요. 이제 그의 아들이 우리 학교에 있네요.

Alexander Mondoyants: Bedingt durch den Eisernen Vorhang, haben sich viele große Musiker...der Pädagogik gewidmet: sie konnten sich auf internationaler Ebene nicht realisieren. Von den Konzerten in der UdSSR konnten sie nicht leben, deshalb unterrichteten sie parallel. Als Folge, denke ich, kam es zu so einem Aufblühen...der russischen Klavierschule im 20. Jahrhundert.

알렉산더 믄도얀츠 : 철의 장막으로 인해 많은 위대한 음악가들이...교육에 전념했는데, 그들은 국제적 수준에서 스스로를 깨닫지 못했죠. 그들은 소련에서 콘서트로는 살 수 없었기 때문에 가르치는 것을 병행했죠. 그 결과 20세기에는...러시안 피아노 스쿨이 번성했던 것 같아요.

Helsinki / 헬싱키

Nikita Mndoyants: '97 war ich beim Schostakowitsch-Wettbewerb in Hannover. Das war mein erster Wettbewerb und ich war aufgeregt, aber ich erhielt den ersten Preis. Dann gewann ich den Komponisten-Wettbewerb in St. Petersburg. Bei dem Pianistenwettbewerb im italienischen Agropoli...bekam ich den Grand-Prix. Dort waren vier Prüfungen, da habe ich auch mit Orchester gespielt. Jetzt habe ich mein erstes Solokonzert in Helsinki.

니키타 믄도얀츠 : 1997년에 저는 하노버에서 열린 쇼스타코비치 콩쿠르에 있었어요. 제 첫 콩쿠르였고 흥분되었지만 1등상을 받았죠. 1년 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작곡가 콩쿠르에서 우승했죠. 이탈리아의 아그로폴리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는...대상을 받았네요. 4번의 심사가 있었는데, 오케스트라와도 협연했죠. 이제 저는 헬싱키에서 첫 독주회를 가졌습니다.

Alexander Mondoyants: Ich behandele ihn wie einen Ebenbürtigen, der sich mit dem gleichen Fach beschäftigt wie ich. Wir diskutieren gleichberechtigt über seine Kompositionen, ich gebe ihm manchmal Ratschläge. Meistens ist er damit nicht einverstanden, besteht auf seinem Standpunkt, und manchmal fühle ich, daß seine Intuition ihm besseres rät.

알렉산더 믄도얀츠 : 저는 같은 주제를 다루는 동료처럼 그를 대합니다. 우리는 그의 자작곡들에 대해 동등하게 토론하는데, 때로는 그에게 조언을 전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는 동의하지 않고 그의 견해를 고집하는데, 때로는 그의 직감이 그를 더 잘 권고한다고 느낍니다.

Beethoven Sonata No. 1 in f, Op. 2 No. 1: IV. Prestissimo / 베토벤 소나타 1번 4악장

Lena Kolesnitschenko: Ich hatte schon viele Konzerte: in den USA, Italien, Spanien, Frankreich, Österreich, Deutschland, Polen, in der Türkei und der Schweiz, im Baltiküm, auf der Durchreise in Kanada und Irland. In Deutschland war ich schon elfmal, in Frankreich fünfmal mit Konzerten, in Österreich dreimal. Aber die Honorare aus dem Ausland sind nicht so hoch. Sie reichen uns für zwei Monate, um die Miete zu bezahlen.

레나 콜레스니첸코 : 저는 캐나다와 아일랜드를 거쳐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오스트리아, 독일, 폴란드, 터키, 스위스, 발트해 연안 제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서 많은 콘서트를 가졌어요. 독일에서는 11회, 프랑스에서는 5회, 오스트리아에서는 3회의 콘서트를 가졌죠. 그러나 해외의 수수료는 그리 높지 않아요. 임대료를 지불하려면 두 달이면 충분하거든요.

- Die größte Schwierigkeit ist unser Wohnproblem, die ständig wechselnden Unterkünfte. In diesem Zimmer wohnen wir zur Untermiete. Das Schlimmste ist: Lena hat hier keinen Platz zum Üben. Gut, daß die Schule nicht weit ist, nur dort kann Lena üben. Aber auch erst nachdem der Schulunterricht zu Ende ist...und alle weg sind. Es ist alles sehr schwierig.

- 가장 큰 어려움은 주택 문제, 끊임없이 변화하는 숙박 시설입니다. 이 방에서 우리는 빌린 것을 또 빌려서 살아요. 최악의 부분은 레나가 여기에서 연습실이 없다는 것이죠. 학교가 멀리 떨어져있지 않은 것이 좋으며, 레나는 거기에서만 연습할 수 있죠. 그러나 학교 레슨이 끝난 후에도...모든 것이 사라졌죠. 모두 정말 어렵네요.

Mendelssohn Variations sérieuses in d, Op. 54 / 멘델스존 <엄격 변주곡>

Alec Band - Konzertmanager Baden-Baden / 알렉 반트 - 바덴바덴 콘서트매니저

Lena Kolesnitschenko: Zu überleben im professionellen Sinn ist jetzt das Wichtigste. Es gibt ja die Meinung, daß Mädchen, die als Wunderkinder galten, später einfach verschwinden. Mein Lebensziel ist es jedoch, daß es bei mir anders wird, denn...das ist für mich das Schwierigste - ich komme jetzt in dieses Alter, wo man uns kaum mehr beachtet. Ich bemühe mich aber sehr, das Interesse für mich aufrecht zu erhalten und zu vergrößern. Ich bemühe mich sehr.

레나 콜레스니첸코 : 전문적인 의미에서 생존하는 것은 현재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신동으로 여겨지는 소녀들은 나중에 사라질 것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에서 저의 목표는 제게 달라질 것입니다...제게 가장 힘들기 때문이죠. - 저는 우리가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지금 이 시기에 있죠. 그러나 저는 저에 대한 흥미를 유지하고 증대시키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합니다. 정말 열심히 노력해요.

Ich habe bei meinen Kindern nie etwas Besonderes hervorgehoben. Für mich war's natürlich, daß sie ein angeborenes absolutes Gehör haben. Daß sie gerne geübt haben, war für mich auch selbstverständlich. Ich gehe nie in ihre Konzerte, denn wenn ich aufgeregt bin, überträgt sich meine Nervosität auf sie, und sie werden dann auch nervös. Das ist auch wie eine Gehör-kontrolle, die sie stört, finde ich. Deshalb sitze ich nur bei besonderen Anlässen im Konzertsaal. Unser musikalischer Umgang beschränkt sich auf das Zuhause. Das Wichtigste ist die Individualität des Kindes. Wenn ein Kind nur gedrillt ist, und seine Persönlichkeit...in der Interpretation nicht zum Ausdruck kommt, kann man nicht sagen, es sei ein professioneller Musiker. Die Vorbereitung für Wettbewerbe sehe ich...als einen Schritt zurück, denn dabei müssen die Kinder...oft das Programm wiederhlen, in dem sie schon viel erreicht haben. Somit machen sie einen Rückschritt und entwickeln sich nicht. In der gleichen Zeit hätte man ein neues Repertoire aufbauen können. Deshalb sehe ich Wettbewerbe in ihrem Alter als negativ.

저는 결코 제 아이들에게 특별한 것을 강조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제게 그들이 타고난 절대적인 귀가 있다는 건 당연했거든요. 그들이 연습하기를 좋아한다는 것도 물론 제게 당연한 것이었죠. 저는 그들의 콘서트에 가지 않는데, 제가 흥분되면 제 긴장감이 그들에게 전달되어 그들도 긴장하기 때문이죠. 그녀를 괴롭히는 청각 컨트롤과도 같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특별한 경우에만 콘서트홀에 앉아있네요. 우리의 음악 교제는 가정에만 국한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개성입니다. 아이가 뚫기만 하고 자신의 개성이...연주에서 표현되지 않는다면, 전문 음악가라고 말할 수 없죠. 제가 보는 콩쿠르 준비는...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동시에 아이들은...그들이 많은 것을 성취한 프로그램을 종종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그들은 한 발 뒤로 물러나며 발전하지 못하죠. 동시에 새로운 레퍼토리를 구축할 수 있었을 텐데요. 그래서 저는 그들의 나이에는 콩쿠르를 부정적으로 봅니다.

- Natürlich ist die Belastung manchmal sehr groß. Neulich hatten wir im Baltikum acht Konzerte in zehn Tagen...und jeden Tag unterwegs. Auch seelisch ist es nicht einfach. Aber mir ist es lieber, immer aktiv zu sein.

- 물론 그 길이 때로는 매우 큽니다. 최근에 우리는 발트 해 연안에서 10일 동안 8회의 콘서트를 가졌습니다. 정신적으로도 쉽지 않죠. 그러나 저는 항상 활동적인 것을 선호해요.

- Wie alt bist du jetzt, Ira?

- 몇 살이니, 이라?

Ira Tschistjakowa: Acht.

이라 치스티아코바 : 8세요.

- Lena begann auch in dem Alter zu konzertieren.

- 레나도 그 나이에 연주하기 시작했단다.

- Das ist mein Leben, ich kann es mir anders nicht vorstellen. Je anstregender der Rhythmus, desto besser fühle ich mich. Ich weiß dann, daß ich was Wichtiges tue, daß ich lebe.

- 이것이 제 인생입니다. 저는 그것을 다르게 상상할 수 없네요. 리듬이 더 재미있을수록 기분이 더 좋아집니다. 저는 그때 제가 중요한 일을 한다는 것을, 제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거든요.

Lena Kolesnitschenko: Wenn man unter Kindheit Spiele mit Puppen wersteht, so haben alle anderen ihre Freizeit verbracht, und ich habe immer geübt. Ich finde aber, meine Kindheit war millionenfach glücklicher. Wer hat schon so viel gesehen in seiner Kindheit...und ist damit groß geworden. Nein, ich hatte eine eigenartige, aber fantastische Kindheit.

레나 콜레스니첸코 : 어린 시절 인형을 가지고 놀 때, 그 밖의 모든 사람이 자유 시간을 보내지만, 저는 항상 연습했어요. 그러나 제 어린 시절이 백만 배나 더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에 많은 것을 보았고...그걸로 성장했죠. 아니, 이상하게도 환상적인 어린 시절을 보냈네요.

Alec Band - Konzertmanager Baden-Baden / 알렉 반트 - 바덴바덴 콘서트매니저

Lena Kolesnitschenko: Jetzt will er, daß ich nach Amerika, nach Philadelphia gehe. Doch es ist so weit und unterscheidet sich sehr von der russischen Schule, so daß ich dachte, alles, was ich hier lerne, werde ich da umlernen müssen und alles verlieren, was ich schon kann. Und wie kann ich bei einem Lehrer Unterricht nehmen, den ich nicht einmal kenne.

레나 콜레스니첸코 : 이제는 미국 필라델피아로 가고 싶어요. 그러나 그곳은 지금까지 러시아 학교와는 정말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으므로, 여기서 배운 모든 것을 다시 익혀야 하며, 제가 이미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모르는 선생님으로부터 어떻게 레슨을 받을 수 있을까요?

Frankfurt am Main - Kaisersaal /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 기사의 방

Ira Tschistjakowa: Heute bin ich in guter Stimmung. Um gut zu spielen, muß man gut gelaunt sein. Heute habe ich nur daran gedacht, wie ich spielen werde, wie ich alles ausdrücken kann. Ich spiele drei Stücke von Chopin: das Nocturne in cis-moll, die Mazurka in B-Dur, und die Etüde in f-moll.

이라 치스티아코바 : 오늘 저는 기분이 좋아요. 연주를 잘 하려면 기분이 좋아야 하거든요. 오늘은 단지 제가 어떻게 연주할 것인지, 모든 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생각했어요. 저는 쇼팽을 세 곡 연주하는데, 녹턴 20번, 마주르카 내림B장조, 연습곡 f단조입니다.

Lena Kolesnitschenko: Wenn du klein bist, gehst du auf die Bühne und machst das, was man dir beigebracht hat. Aber alles basiert nur auf Emotionen, du bemerkst nicht das Publikumm, spürst nicht die Verantwortung. Als ich klein war, hatte ich nie Lampenfieber.

레나 콜레스니첸코 : 어렸을 때 무대에서 배운 것을 하세요. 그러나 모든 것은 감정에만 기반을 두는데, 대중을 알아차리지 않으면, 책임감을 느끼지 않거든요. 어렸을 때 무대 공포증을 가진 적이 없었네요.

Ira Tschistjakowa: Chopin ist ein schwieriger Komponist, er verlangt eine besondere Romantik. Es muß ein ganz feiner Klang sein. Wenn man Bach spielt, da braucht man eine kämpferische Stimmung. Bei Chopin braucht man einen edlen Klang und eine gute Balance.

이라 치스티아코바 : 쇼팽은 어려운 작곡가인데, 그는 특별한 낭만을 요구해요. 정말 좋은 소리여야 하죠. 바흐를 연주할 땐 싸우는 정신이 필요해요. 쇼팽을 연주하려면 고귀한 소리와 균형이 필요하죠.

Chopin Nocturne No. 20 in c#, Op. posth. / 쇼팽 녹턴 20번

Lena Kolesnitschenko: Vor drei Jahren überkam mich jedesmal...eine schreckliche Aufregung, ein richtiges Grausen vor der Bühne, fast bis zur Ohnmacht. Inzwischen bin ich drüber hinweg. Klar ist man je nach Saal, Publikum...und Ambiente immer mehr oder weniger aufgeregt, so muß es auch sein. Die absolute Freiheit auf der Bühne kommt dann, wenn man keine Angst vor technischen Schwierigkeiten hat. Das muß so perfekt sein, daß man am Flügel singen kann.

레나 콜레스니첸코 : 3년 전에 저는 끔찍한 흥분, 무대 앞에서의 진짜 공포, 거의 무력감의 지점까지 극복했어요. 그 사이에 그걸 넘었죠. 홀, 청중...그리고 분위기에 따라 분명하거나 다소 어두워요. 무대에서의 절대적인 자유는 기술적인 어려움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입니다. 그게 완벽해야 피아노로 노래할 수 있죠.

Chopin Nocturne No. 20 in c#, Op. posth. / 쇼팽 녹턴 20번

Hannover / 하노버

Lena Kolesnitschenko: Mein Kopf ist voller Gedanken an die Zukunft. In einem Jahr...ist die Schule zu Ende und ich muß entscheiden, wo ich studieren werde. Mein Traum ist, die Aufnahmeprüfung bei Vladimir Krainev in Hannover zu schaffen.

레나 콜레스니첸코 : 제 마음은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1년 후에는...학교를 마치며 공부할 곳을 결정해야 합니다. 제 꿈은 하노버에서 블라디미르 크라이네프 선생님과 함께 (공부하기 위해) 입학시험을 치르는 것입니다.

Vladimir Krainev, pianist / 블라디미르 크라이네프, 피아니스트

Lena Kolesnitschenko: Seit meinem 9. Lebensjahr kenne ich ihn. Unsere große Freundschaft begann, als ich 1994 den 1. Preis...beim Krainev-Wettbewerb in Charkow bekommen habe. Menschlich und auch professionell gibt er mir Kraft zum Leben. Ich denke ständig an ihn. Er ist wie mein zweiter Vater.

레나 콜레스니첸코 : 저는 9세 때부터 그분을 알았답니다. 우리의 위대한 우정은 제가 1994년 하르키우의 크라이네프 콩쿠르에서 1등상을 받으면서 시작되었죠. 인간적이면서도 전문적인 분으로, 제게 힘을 실어주십니다. 저는 그분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요. 제2의 아버지 같거든요.

Vladimir Krainev: Sieh mal an, wer da kommt. Grüß dich, meine Sonne. Wie geht's? Ich habe mir schon Sorgen gemacht, wo du so lange bleibst. Komm, leg ab.

블라디미르 크라이네프 : 누가 올지 보렴. 안녕, 나의 태양. 잘 지냈니? 네가 너무 오래 머물러 있을지 걱정했어. 어서 (짐을) 내려놔.

Alec Band - Konzertmanager Baden-Baden / 알렉 반트 - 바덴바덴 콘서트매니저

Lena Kolesnitschenko: Ich fühle mich im Augenblick so, als ob ich ertrinke. Ich kann nicht schwimmen, deshalb kenne ich diesen Zustand gut. Ich hoffe, daß ich bald wieder hochkomme, aber so lange man absäuft, ist es kritisch.

레나 콜레스니첸코 : 지금 저는 익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수영을 할 수 없어서 이 상태를 잘 알고 있거든요. 곧 돌아오길 바라지만, 고갈되는 한 중요해요.

Alec Band - Konzertmanager Baden-Baden / 알렉 반트 - 바덴바덴 콘서트매니저

- Kannst du mit deiner Mutter darübe sprechen?

- 어머니한테 얘기해줄 수 있겠니?

Lena Kolesnitschenko: Wenn es so schlimm ist, was kann sie tun? Sie ist dann absolut verzweifelt, aber wie kann sie helfen? Deshalb kann ich ihr nichts sagen. Natürlich, wenn sie selber etwas merkt, reden wir darüber. Ich habe ja niemanden außer meiner Mutter. Aber wenn es um globale prosessionelle Fragen geht, kann sie mir keinen Ratschlag geben. Sie ist doch keine Musikerin, sie kann nur aus Liebe helfen.

레나 콜레스니첸코 : 그게 그렇게 나쁘다면, 어머니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어머니는 절대 필사적이지만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어머니께 아무것도 말할 수 없어요. 물론 어머니가 뭔가를 깨닫는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어머니 외에는 아무도 없으니까요. 그러나 세계적인 개척 문제에 대해서는, 제게 어떤 조언도 주실 수 없죠. 어머니는 음악가가 아니라, 사랑에서만 나오도록 도와주실 수 있으니까요.

Zwischenprüfung / 중간고사

J.S. Bach Keyboard Concerto No. 5 in f, BWV 1056: I. Allegro moderato / 바흐 키보드 협주곡 5번 1악장

Chopin Fantaisie-Impromptu in c#, Op. 66 / 쇼팽 즉흥 환상곡

Lena Kolesnitschenko: In jedem Jahrgang müssen die Schüler eine bestimmte Anzahl...Zwischenprüfungen vor der Kommission bestehen, die benotet werden. Am Ende jedes Schuljahres gibt es eine Versetzungsprüfung. Nicht alle Kinder halten diesen Druck aus, deshalb nehmen wir in der 4. Klasse eine Siebung vor. Oder wir warnen die Eltern, daß ihr Kind die Prüfung in der 8. Klasse nicht schaffen wird. In profesioneller Hinsicht hält die Schule noch ihr Niveau, dank der Enthusiasten, die hier arbeiten. Aber unsere finanzielle Situation ist katastrophal. Man hätte es sich früher gar nicht vorstellen können, daß es soweit kommen wird. Wir haben hier in der 2. Etage ein Internat, das man eher ein Nachtasyl nennen sollte. Bis 1985-86 befand sich die Schule in der Nähe des Konservatoriums, bis das alte Gebäude zu zerfallen begann. Die vorgesetzte Behörde hat dann entschieden, daß wir...in das jetzige Gebäude für zwei Jahre umziehen sollen. In der Zeit sollte das alte saniert werden. Aber dann begannen die großen Umbrüche, und mit jedem Jahr wurde es immer schwieriger. Und wenn der Bürgermeister von Moskau uns nicht helfen würde, wären wir schon längst auf der Straße. Ich habe mich von meinem Impressario getrennt. Als ich ihm sagte, daß ich bei Krainev studieren möchte, meinte er: 'Na, wie du willst. Entweder du machst es so, wie ich es mir vorstelle, und dann arbeiten wir weiter zusammen, oder du gehst deinen eigenen Weg.' Jetzt bin ich ein freier Mensch, ich gewöhne mich langsam daran...und ehrlich gesagt, gefällt es mir.

레나 콜레스니첸코 : 매년 학생들은 진급하려면 위원회 앞에서 평가받는...중간시험을 몇 번 통과해야 합니다. 매 학년 말에 진급 시험이 있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이 압력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4급을 얻어요. 선별에 앞서는 등급이죠. 또는 부모님에게 자녀가 8학년 시험을 통과할 수 없다고 경고합니다. 직업적인 의미에서, 학교는 여전히 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일하는 열광적인 팬들 덕분이죠. 그러나 우리의 재정 상황은 파국적입니다. 그것이 올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2층에 기숙학교를 가지고 있는데, 오히려 무료 숙박소를 요청해야합니다. 1985~86년까지, 학교는 오래된 건물이 붕괴되기 전까지 음악원 근처에 있었어요. 그런 다음 상급 기관은...2년 동안 현재 건물로 옮겨야 한다고 결정했죠. 그럭저럭 하는 사이에 오래된 것이 재개발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커다란 격동이 시작되었고, 매해가 지나갈수록 점점 어려워졌죠. 모스크바 시장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오래 전에 거리에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제 매니저와 헤어졌는데요. 제가 크라이네프에게 그와 함께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음, 네가 원한다면, 네가 원하는 방식대로 해라. 그러면 우리는 계속 함께 일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너 자신의 길을 가라.’ 이제 저는 자유로운 사람으로, 그것에 익숙해져 있고...솔직히 그게 좋아요.

Moskauer Konservatorium / 모스크바 음악원

Chopin Scherzo No. 2 in b flat, Op. 31 / 쇼팽 스케르초 2번


이라 치스티아코바가 2015 쇼팽 콩쿠르에 언니 갈리나 치스티아코바와 함께 나왔던 동생 이리나 치스티아코바랑 이름이 비슷해서 찾아보니 맞았다. 바덴바덴 콘서트 매니저가 독일어로 말하는 건 자막이 없어서 받아 적지 못했다. 가브릴로프는 영어, 보너스 DVD는 러시아어인데 영어라도 어떻게든 정리하려다가 그냥 다 독일어로 통일했다. 세 명의 영재들이 나온 걸 보면서 레슨 받는 마음으로 자막을 받아쓰기했는데, 믄도얀츠만 그나마 어른이 되어서 이름을 알린 것 같고 나머지 두 명도 음반을 냈으나 잘 모르겠다. 믄도얀츠에 대해서는 내가 몰랐던 입상 경력을 더 알게 되었다. 어렸을 때 신동이라고 해도 나중에 사라지거나 이름 있는 청소년 콩쿠르에서 입상했다고 해도 성인이 되어서 큰 대회에 나가면 그냥 그렇게 들리는 연주자들이 생각보다 많다. 이 동영상이 필요하면 댓글로 요청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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